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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루(血淚)의 일막

 

 

"...!"

고검추는 숨이 멎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어머니가 너무도 무참한 만행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검추가 느낀 충격과 분노는 시작에 불과했다.

흐흐흐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보자!”

사신각주는 음험하게 웃으며 본격적으로 당혜선을 고문하기 시작했다.

"... 죽여라!"

사신각주의 마수에 고문당하며 당혜선은 악에 바쳐 외쳤다.

멀지 않은 곳에 고검추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흐흐흐! 걱정마라. 확실하게 죽여줄 테니..."

사신각주는 히죽거리며 당혜선을 농락했다.

...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복수하고 말겠다.”

당혜선은 수치심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다. 살고 싶으면 복마신검이 어디 있는지 실토해라!”

사신각주는 그런 당혜선을 내려다보며 눈을 희번덕였다.

파르르!

복마신검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애원하던 당혜선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사신각주가 자신을 고문하고 협박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새삼 깨달은 때문이다.

무슨 짓을 당한다 해도 사신각주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는 없다.

!”

당혜선은 대답 대신 사신각주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

물론 사신각주는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에 직접 당혜선의 침이 닿지는 못했다.

흐흐흐 이게 네년의 대답이라 이거지?”

당혜선의 침 세례를 받은 사신각주의 눈빛이 흉포해졌다.

그럼 네년이 원하는 대로 해주마!”

사신각주는 잔인하게 웃으며 당혜선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낙인을 찍었다.

"아악!"

다음 순간 당혜선의 입에서 단말마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몸은 마치 독침을 맞은 나비처럼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부르르!

고검추의 몸에도 세찬 경련이 치달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광경이 도무지 현실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도 엄청난 충격으로 고검추는 반쯤 실신하고 말았다.

"이상하군!"

당혜선을 본격적으로 고문하며 사신각주는 의혹을 느꼈다.

그자가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당혜선에게는 아들이 있다.

헌데 당혜선의 몸은 어떻게 봐도 처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사신각주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흐흐흐... 네년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구나.”

그자는 광기에 사로잡혀 당혜선을 고문하는데 빠져 들어갔다.

"... 네놈을... 죽어 원귀가 되어서라도 저주하겠다."

그자는 당혜선의 악에 바친 저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히 계속 될 것같던 끔찍한 고문도 결국 끝이 났다.

"흐흐흐! 오늘 이후로 두 번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 본 각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주마."

!

그 자는 쓰고 있는 복면 아랫부분을 들어서 얼굴을 당혜선에게 보여주었다.

사신각주는 고검추에게는 등을 돌린 자세인지라 고검추는 그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흐윽!"

하지만 고문당한 자세로 누워있던 당혜선의 입에서는 비명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경악으로 물든 표정이 되어 복면 아래에서 드러난 사신각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 당신이... 사신각주라니...!"

당혜선은 온몸을 벌벌 떨며 비명같은 신음을 토했다.

사신각주는 그녀가 익히 아는 자였던 것이다.

"... 그렇다면... 고사형의... 참사도 바로 당신의 수작..."

당혜선은 분노와 절망에 찬 표정이 되어 사신각주를 노려보았다.

"크크크... 그렇다. 고가놈은 배은망덕하게도 복마신검을 얻고도 본좌에게 바치지 않았다. 그 대가를 치룬 것이지."

사신각주는 음험하게 웃으며 복면을 다시 내렸다.

"... 이 짐승만도... 못한..."

당혜선이 분노와 경악으로 치를 떨 때였다.

사신각주가 품속에서 한 자루의 초혼전을 꺼내들었다.

"본좌의 비밀을 알았으니 안됐지만 죽어 주어야겠다."

그 자는 냉혹하게 말하며 초혼전을 쳐들었다.

(... 안돼!)

고검추는 전율하며 내심 부르짖었다.

바로 지척에서 어머니가 살해당하려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자신은 짚인 혈도가 아직 풀리지 않은지라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고검추는 활활 타는 불구덩이에 떨어진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어머니를 구하는 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아악!"

단말마같은 짤막한 비명이 터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

사신각주가 내리꽂은 초혼전이 당혜선의 하복부로 깊이 박힌 것이다.

부르르!

한 차례 격렬하게 떨리던 당혜선의 몸은 이내 축 늘어졌다.

"흐흐흐... 감히 본좌의 뜻을 거스른 대가다."

사신각주는 그런 당혜선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

화락!

이어 그 자는 검붉은 장포자락을 휘날리며 날아올랐다.

"으하하하! 나 사신각주이 얼굴을 본 자는 모두 죽는다."

한 줄기 광소와 함께 사신각주의 모습은 장내에서 멀어져 갔다.

적막...

다시 사위는 죽음같은 적막에 휩싸였다.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진 장내에는 하복부에 초혼전이 박힌 당혜선만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초혼전이 박힌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당혜선이 누워있는 바닥을 흥건히 물들였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저녁노을도 스러지고 어둠이 스물 스물 번지고 있었다.

"크흑... 어머니...!"

문득 비통한 울부짖음과 함께 석벽 아래 동굴에서 고검추가 달려나왔다.

마침내 막혔던 혈도가 풀린 것이다.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어머니... 제발."

달려온 고검추는 당혜선을 끌어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고문당하고 죽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아무것도 못한 자신의 무능이 저주스럽다.

사신각주! 하늘에 맹세코 네놈을 반드시 찢어죽이고 말겠다!”

고검추는 어머니의 알몸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며 악을 썼다.

헌데 그때였다.

두근 두근

고검추의 귓전으로 미약하지만 심장 박동소리가 들렸다.

(... 설마!)

오열하던 고검추는 눈을 부릅뜨며 급히 귀를 당혜선의 왼쪽 젖가슴에 대었었다.

두근 두근

그런 고검추의 귀에 확실히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 아직 살아계시다.)

당혜선의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한 고검추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고검추의 뇌리로 신비한 은발의 여인 옥여상의 음성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조만간 이것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설삼신단!)

내심 부르짖은 고검추는 안고 있던 당혜선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뉘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옥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옥여상이 준 그 옥병에는 만년설삼으로 만든 두 알의 설삼신단이 들어 있었다.

설삼신단은 기사회생(起死回生)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한 알만 복용해도 백년 수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효능을 지녔다.

(그 분은 이런 상황을 예견하시고 설삼신단을 내게 주었구나.)

고검추는 옥병에 들어있는 설삼신단을 보며 경이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새삼 옥여상이란 여인이 신비하게 느껴진다.

설삼신단을 꺼낸 고검추는 당혜선의 하복부에 박혀있는 초혼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초혼전을 제거해 드리자.)

고검추는 설삼신단이 든 옥병을 내려놓고 당혜선의 아랫배에 박혀있는 초혼전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고검추의 손은 멈칫 멈춰졌다.

(초혼전에는 백일취가 묻어있을 테니 직접 만지면 안된다.)

초혼전에 백일취라는 약물이 묻어있다는 당혜선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고검추는 당혜선의 찢어진 옷으로 추혼전을 감싸쥐었다.

스윽!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초혼전을 뽑았다.

후두둑!

선혈이 분수같이 뿜어지며 초혼전이 당혜선의 아랫배에서 뽑혀졌다.

초혼전을 집어던진 고검추는 급히 두 손으로 상처를 눌러 지혈을 했다.

그런 후 어느 정도 피가 멎자 손을 떼고 옥병에서 설삼신단을 두 알 모두 꺼냈다.

고검추는 설삼신단 두 알을 모두 당혜선의 입에 넣어주었다.

설삼신단은 당혜선의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제 운명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설삼신단을 먹여준 고검추는 초조와 긴장으로 물든 시선으로 당혜선의 상태를 주시했다.

잠시 후 당혜선의 밀랍같이 창백하던 옥용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초혼전이 박혔던 하복부의 상처도 급속히 아무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혜선은 세상에 보기 드문 영약인 설삼신단을 한 알도 아닌 두 알씩이나 한꺼번에 복용했다.

설령 더 심각한 상태였어도 되살아났을 것이다.

당혜선은 상처가 치료되었을 뿐 아니라 삼갑자 이상의 내공까지 얻었다. 게다가 강력한 극음기공까지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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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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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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