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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애절한 이별

 

 

막비강은 두 소녀가 필시 뒤쫓아오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북산검호각을 나서기 무섭게 팔보간섬의 경공술을 극한까지 전개하여 유성처럼 날아갔다.

그렇게 얼마를 질주했을까?

붉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어둠의 장막이 대지를 덮기 시작했다.

막비강은 북산검호각에서 족히 오백여 리는 남쪽으로 내쳐 달린 상태였다.

돌연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산봉이 막비강으로 하여금 급히 걸음을 멈추게 했다.

막비강이 멈춰 선 곳은 그 높은 산봉우리에 이어진 수직의 절벽 위쪽인데 수백장은 됨직한 그 절벽 아래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막비강은 비록 깜짝 놀랐지만 적시에 걸음을 멈춘 것을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에 제때 멈추지 못해 강변에 노출된 기암괴석 위에 떨어졌다면 분신쇄골은 말할 것도 없고 뼈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비강은 이내 침통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죽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일 텐데... 나같이 불효불인(不孝不仁)하고 죽어서 묻힐 땅도 없어야 하는 사람은 이런 강물에 빠져 죽어야 마땅하다.]

비통하게 중얼거리던 그는 이내 고개를 설레 저었다.

[... 아니지. 난 마땅히 집에 돌아가 아버님 앞에서 죽어 그분에게 최후의 위안이나마 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내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더더욱 안 된다. 만일 아버님이 나를 죽지 못하게 한다면 앞으로 사람 노릇도 할 수 없는데... 그렇다고 아버님 앞에서 자결한다면 부모의 마음만 상하게 하는 셈이니... ... 죽기는 어차피 죽어야 할 텐데 어떤 방법으로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몇 번이나 투신자살을 생각했다.

하지만 생사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인지라 산봉 위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실성한 사람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헌데 그때였다.

[히히히! 누나! 보아하니 저 사람은 이곳에 연자비운(燕子飛雲)의 경공신법을 연마하러 온 모양이야.]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치기어린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막비강이 흠칫 놀랄 때 또 다른 음성이 이어졌다.

[아니다. 그는 우리처럼 죽을 장소를 찾고 있다.]

두 번째 들린 음성은 제법 나이가 든 소녀의 것이었다.

[그럼 뛰어내리기만 하면 될 텐데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그렇지도 않다. 죽지도 못하고 팔다리만 부러지면 평생을 두고 고생하게 된다.]

막비강은 처음 목소리가 어린 소년의 음성인지라 의아심을 금치 못하고 귀담아들었다.

헌데 이어진 나이가 더 든 소녀의 음성이 자기들도 죽을 장소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가엾은 생각이 들어 탄식을 했다.

(어린 나이에 죽으려고 하다니 애석한 일이구나!)

그는 자기의 소행은 죽는다고 해서 마음속의 번뇌에서 해탈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 그것도 나이도 어린 소년 소녀들이 죽는다는 말을 하자 무엇 때문에 꼭 죽으려 하는지의 이유를 물을 심산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의 대화를 계속 들은 다음에야 비로소 상대방이 자기를 비웃고 있음을 깨닫고 화가 치밀어 버럭 노성을 질렀다.

[내가 죽으려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

그러자 나무 뒤에서 소녀의 놀리는 소리가 전해 왔다.

[호호호! 우리는 여기서 당신이 죽는 것을 구경할 테니 빨리 뛰어내리세요.]

이때 아래쪽 강상(江上)에서 돌연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전해 왔다.

[여아(麗兒), 너는 또 천아(川兒)와 말다툼을 했구나. 천아야! 뛰어내리면 안 된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중년여인의 음성이었다.

막비강은 어둠 속에서 최대한 시력을 돋우어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까마득한 아래쪽의 강 물위로 작은 조각배 한 척이 떠가고 그 위에서 날렵한 인영이 노를 젓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머니! 이곳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중년여인의 말에 소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중년여인의 음성은 싸늘하고 무정하게 일변했다.

[자살하려는 작자가 있다면 뛰어내리게 버려 두어라!]

막비강은 멀리 떨어진 강 위에 있음에도 음성이 맑고 똑똑히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 그 여인의 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뛰어내렸다가 저 여인에게 구조된다면 죽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녀에게 마음속의 일을 말해 주어야 하니 더욱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

여기까지 생각을 굴린 막비강은 아무 대꾸도 않고 발을 굴러 절벽을 따라 상류 쪽으로 질주해 갔다.

[호호호, 겁쟁이!]

그런 그의 등 뒤에서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좋다. 너희들이 내가 죽지 못한다고 비웃지만 나는 꼭 강물에 뛰어내려 죽을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보여 주겠다.)

막비강은 미친 사람처럼 질주하며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였다.

 

***

 

절벽 위의 길을 따라 다시 얼마를 달려갔을까?

그는 어느덧 또 다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천인단애 위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센 파도가 춤을 추고 괴석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이번에는 뜻대로 죽을 수 있겠구나. 여기서 뛰어내리면 분신쇄골이 되어 강물에 떠내려갈 테니 나의 이 죄 많은 몸은 세상에 뼈도 남지 않겠지.)

헌데 그가 막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려 할 때였다.

[어머니, 저길 봐요. 저 사람 혹시 둘째 오라버니가 아녜요?]

[정말 그렇구나!]

갑자기 절벽 중간쯤에서 귀에 익은 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막비강은 그 목소리들을 듣는 순간 그것이 누구의 음성인지 알고 깜짝 놀랐다.

바로 막고천의 다섯 번째 첩인 냉상영과 그녀의 딸 막영란이었다.

혈검산장에서 막고천과 함께 사라졌던 두 모녀가 어떻게 이런 곳에 있단 말인가?

막비강은 당혹해하면서도 생각을 굴렸다.

(염라철장 곡 백부님의 일을 그들 모녀에게 알려 주어 그들 모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나의 부친 막고천도 이 근처에 있다면 죄를 받고 죽을 수 있으니 더욱 잘된 일이다.)

이런 염두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강아! 절대 아래로 뛰어내려선 안 된다!]

냉상영의 애절한 음성이 전해 왔다.

화라라락!

고함 소리와 함께 절벽 아래쪽으로 이어진 좁은 협도(狹道)로 한 명의 중년여인이 다급히 달려 올라왔다.

바로 막고천의 다섯 번째 첩인 냉상영이었다.

온순하고 자애로운 냉상영의 얼굴은 이 순간 당혹과 초조로 물들어 있었다.

냉상영은 혹시나 막비강이 투신할까 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냉상영의 뒤쪽으로는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체구의 소녀가 종종걸음을 치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냉상영의 딸인 막영란이었다.

[이러지 말아라, 강아야!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 돼!]

단숨에 절벽 위로 달려 올라온 냉상영이 와락 막비강을 끌어안았다.

막비강의 어깨까지밖에 안 오는 자그마한 키의 여체가 부들부들 떨며 막비강의 건장한 몸을 휘어감는다.

너무도 풍만하고 뼈가 없는 듯 부드러운 그녀의 몸에서는 막비강의 코에 매우 익숙한 내음이 났다.

은은히 백합 형기가 감도는 살내음이다.

하지만 이 순간 막비강은 그걸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는 마치 넋 빠진 사람처럼 멍청한 표정으로 냉상영을 내려다보았다.

가녀린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육중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냉상영의 젖가슴이 자신의 가슴과 그녀의 교구 사이에 끼어 납작하게 눌려져 있다.

[두 분은 어찌하여 이런 곳에 계십니까? 나의 부친은 어딜 가셨습니까?]

막비강이 망연자실하여 묻자 냉상영이 곤혹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누가 네 부친이란 말이냐?]

[혈검산장의 막고천 장주님 말입니다.]

[그 막가 악적 말이냐?]

순간 온순하던 냉상영의 눈에서 표독한 한기가 내뻗쳤다.

[그는 네 부친이 아니다.]

냉상영은 만면에 분노의 빛을 머금으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런 소리하지 마시오! 그분 어른은 나를 낳아 주신 부친이 틀림없소.]

막비강은 검미를 치켜 올리며 외쳤다.

[당초 염라철장 곡 선배님이 나를 잘못 유괴하는 바람에 난 그분이 나의 부친이라 오해했던 거요. 그러나 이제 나는 염라철장 곡선배가 아주머니의 원래 남편이고 나는 막 장주의 친자식임을 알아냈소.]

막비강의 말에 냉상영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나는 염라철장 곡 선배님이 내게 금강옥액을 먹여 대공을 성취시켜 주신 은덕을 생각하여 두 분을 탓하지 않겠소. 곡 선배님의 유품을 돌려줄 테니 안전한 곳에 숨어 편히 사십시오.]

막비강은 품속에서 염라철장의 상징인 강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냉상영이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말했다.

[강아, 기구한 우리 모녀는 너의 호의를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막고천은 절대 너의 부친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악적이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한 사실이니 틀림없다.]

[... 그게 정말입니까?]

냉상영의 말에 막비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왜 네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냉상영이 애절한 표정으로 막비강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나의 진짜 부친은 누굽니까?]

막비강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급히 물었다.

[그 문제에 대해선 네 모친이 상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혹시 나를 속이려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냉상영의 대답에 막비강은 검미를 찌푸렸다.

[내가 무엇 때문에 네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냉상영은 애잔한 눈빛으로 말했다.

[네가 삼년 만에 혈검산장으로 돌아와 소란을 피웠을 때 나는 네 수중의 강장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원래 남편이신 염라철장께서 너를 자기 유복자로 알고 데려갔음을 알았다. 하지만 막가 악적의 장원에선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냉상영은 막비강이 혈검산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다음의 이야기를 하였다.

[네가 보인 놀라운 신위에 놀라 달아난 막가 악적은 혈검산장에서 멀지 않은 곳의 은신처에 피신했다. 그곳에서 막고천은 경파 언니에게 악독한 자식을 낳아 다리가 잘리고 수모를 당하게 했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네 어머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너를 끝까지 막가 악적의 자식이라 고집했다. 그러자 막가 악적은 그제서야 네 모친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었다.]

막비강은 참지 못하고 말을 받아 물었다.

[그 사실이 무엇입니까?]

[원래 그 노적은 한 가지 악독한 무공을 연성한 후 일신의 정혈(精血)이 고갈되어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 노적이 그렇게 된 것은 이미 이십 년도 전의 일이다.]

막비강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작자는 이미 아이를 가진 임산부만 골라 탈취했군요. 남의 자식을 훔쳐 가문을 이으려고!]

[단순히 그런 이유뿐만이 아니다!]

냉상영은 한 서린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막고천은 고갈된 정혈을 보충하고 또 내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태한 여인들을 골라 욕보인 것이다!]

그녀는 지난날의 치욕이 떠오른 듯 치를 떨었다.

남편의 아이를 가진 몸으로 막고천에게 처음 능욕 당하던 그날의 악몽이 지금도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그녀다.

막비강도 민망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남편의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외간 사내에게 겁탈 당했을 냉상영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는 조금쯤 상상이 간 때문이다.

[, 그렇다면 큰형 막불계도 막고천의 친자식이 아니겠군요.]

막비강은 어색함을 감추려 화제를 돌렸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냉상영은 소매 자락으로 눈가의 물기를 찍으며 한숨을 쉬었다.

[네 모친이 막가 악적의 집에 끌려온 것은 나보다 삼 년 가량 빨랐다. 그리고 경파 언니가 혈검산장에 들어왔을 때 불계는 이미 세 살이었으므로 그 애가 막가 악적의 친자식인지의 여부는 그 애의 생모만 아는 일이다.]

막비강은 냉상영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막고천에게 피를 뽑아 혈연관계를 증명하자고 말했을 때 그의 안색이 대변한 것은 내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이구나. 자살하지 않았기에 천만다행이지 자칫 천추의 한을 남길 뻔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막비강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혈검산장에 돌아가 그 악적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지 않으면 난 사람도 아니다.]

냉상영이 탄식을 하며 말을 받았다.

[지금 산장에 가 보았자 그 악적을 만나지 못한다.]

막비강은 두 눈에서 살기를 뿜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중이 도망쳐도 절까지 짊어지고 도망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혈검산장이 존재하는 한 언제고...!]

[강아, 내 말을 끝까지 들어라! 네가 산장을 떠난 후 막가 악적은 대부분의 수하들을 해산시키고 여자들과 몇 명의 심복만 데리고 떠났다. 우리 모녀는 그자의 심정이 극도로 복잡해져 있는 틈을 이용하여 간신히 도망쳐 나온 것이다.]

[그럼 제 생모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막비강은 급히 물었다.

[당시 제각기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다른 사람은 돌볼 겨를이 없었다. 네 모친은 막가 악적의 심복들로부터 삼엄한 감시를 당하고 있었는지라 아마 우리처럼 도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

막비강은 곤경에 처해 있을 생모를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냉상영이 그런 그를 품에 안아 다독이며 위로해 주었다.

[강아, 울음을 거두어라! 네 모친이 고생은 하겠지만 결코 죽임을 당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적은 다시 네게 따라잡힐 경우를 대비하여 그녀를 살려 둘 것이기 때문이다.]

막비강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막고천! 나는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놈을 찾아내고 말겠다.]

냉상영은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강아, 너는 어디서 란아의 부친을 만났는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 아주머니!]

이어 막비강은 염라철장에 대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냉상영은 막비강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비 오듯 흘리더니 갑자기 막비강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깜짝 놀란 막비강은 그녀와 함께 무릎을 꿇으며 손을 저었다.

[아주머니, 이러시지 마십시오.]

[아니다. 네가 친히 내 남편을 안장해 주었으니 마땅히 나의 절을 받아야 한다. 란아, 너도 빨리 오라버니에게 큰절을 올려 고맙다는 인사를 해라!]

막영란은 모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릎을 꿇었다.

막비강은 안절부절못하며 급히 만류했다.

[아주머니, 이러시지 말고 일어나십시오.]

냉상영은 만면에 처량한 빛을 가득 머금었다.

[강아, 네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느냐?]

막비강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염라철장 곡 선배님께 대은(大恩)을 입은 그때부터 그분을 부친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아주머니는 저의 친어머니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분부만 내리십시오. 저는 어떠한 일이라도 기꺼이 복종하겠습니다.]

냉상영의 처량한 얼굴에 한 가닥 희열의 빛이 스쳐 갔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는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란아 부친의 얼굴을 봐서라도 란아에게 몇 가지 무예를 가르쳐....]

막비강이 얼른 말을 가로챘다.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지금 저는 그날 복용했던 금강옥액을 모두 란 매에게 돌려주고 제가 연성한 절예까지 모두 전수해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너의 마음이 그렇게 기특하니 하늘도 너희 모자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이다.]

냉상영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막비강을 끌어안더니 막영란을 돌아보았다.

[란아, 똑똑히 들어라! 어미가 막고천 그 악적에게 정조를 잃고도 지난 십 팔 년간 모욕을 참으며 살아온 것은 네가 커서 부친의 원수를 갚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오라버니를 사부로 모시고 열심히 무예를 연마해라. 그래야만 이 어미를 슬프지 않게 할 수 있다.]

막영란은 눈물을 흘리며 냉상영에게 큰절을 했다.

[어머니, 소녀는 어머니의 말씀을 명심하겠어요.]

[아무렴 그래야지. 그럼 어미는 이만 가 보아야겠다.]

화라락!

냉상영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막비강을 힘껏 밀치더니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

막비강은 그녀가 자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로 있었던지라 냉상영이 미는 기세에 뒤로 벌렁 자빠졌다.

[안 됩니다!]

막비강이 벌떡 몸을 일으켰을 땐 냉상영은 이미 절벽 아래로 투신한 후였다.

[어머니!]

그때 막영란도 모친을 따라 뛰어내리려 했다.

[란 매, 안 돼!]

막비강은 급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막영란이 놀랍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절벽 아래에서 바람을 타고 냉상영의 목소리가 전해 왔다.

[란아, 굳세게 살아 남아서 부친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어미는 이제야 마음놓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구나.]

절벽은 너무 높아 냉상영은 이 몇 마디 말을 하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수면에 떨어졌다.

첨벙!

물에 빠진 냉상영은 순식간에 파도에 삼켜져 버렸다.

그리고 절벽 위에서 두 남녀만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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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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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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