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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같은 말()을 탄 원수

 

 

(누가 활을 쏜 건가?)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란 백남빈은 몸을 반쯤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불과 얼마 전 대려장 기마대와의 거리가 십리 이상인 것을 확인 했었다.

그리고 제 아무리 팔 힘이 좋은 궁수라도 화살을 십리 넘게 날려 보내지는 못한다.

하물며 말의 목에 상처를 낸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든 게 아니라 수평으로 들이닥쳤었다.

“!”

몸을 돌리며 뒤를 돌아보던 백남빈의 눈이 부릅떠졌다. 불과 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시커먼 말 한 마리가 쇄도하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백남빈으로서는 십여 리나 되는 거리를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좁힐 수 있는 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화악!

낙타보다도 큰 흑마는 말 그대로 나는 듯이 들이닥치고 있다.

콰드드!

얼마나 빠른지 그 흑마의 네 개의 발굽이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뒤늦게 들려올 정도다.

거센 바람을 탄 먹장구름처럼 다가오는 흑마에는 날씬한 몸에 붉은 옷을 걸친 소녀가 타고 있는데 상체를 고추 세운 채 철궁의 시위를 놓고 있었다.

(아차!)

붉은 옷의 소녀가 시위를 놓은 자세인 것을 본 백남빈의 눈이 다시 치떠졌다.

!

두 번째 화살이 이미 자신의 가슴 바로 앞에까지 이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

두 번째 화살이 말 위에서 돌아보는 자세인 백남빈의 가슴에 여지없이 꽂히면서 날카로운 금속성을 냈다.

티잉!

하지만 화살은 백남빈의 가슴을 궤뚫지 못하고 궤적을 바꾸며 옆으로 튕겨나갔다.

동시에 화살에 실린 강력한 힘에 백남빈의 몸이 뒤로 홱 넘어갔다.

(어떤 갑옷이라도 뚫을 수 있는 강철촉의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 저자의 옷 속에 든 더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힌 때문이다.)

츄학!

강미루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놀라면서도 물이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다시 두 자루의 화살을 화살통에서 뽑았다.

"! !"

"미루! 미루!"

십여 리 뒤에서 따라오는 대려장 기마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거리가 먼 탓에 그들의 눈에는 백남빈이 강미루가 쏜 화살에 맞아 거꾸러지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허억!)

왼쪽 늑골에 가해진 충격에 백남빈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강미루가 쏜 화살에는 그만큼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 했지만 백남빈은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겨우 버티며 말 등에 엎어졌다.

(아버지가 날 지켜주셨다.)

백남빈은 말의 갈기를 움켜쥐어 옆으로 넘어지려는 몸을 지탱하면서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

백남빈이 강미루가 쏜 두 번째 화살에 맞고도 죽지 않은 것은 목에 걸고 있는 주머니에 든 옥패 덕분이었다.

실종 된 아버지가 남겼다는 그 옥패가 화살을 막아준 것이다.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백남빈이 지닌 특별한 능력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옥패는 정확히 화살이 닿는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강철로 만든 화살촉도 그 옥패를 깨트리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 !

말 등에 엎드린 백남빈의 귀에 연달아 시위를 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바로 뒤에서 들리는 듯 했다.

사실이 그러했다.

강미루를 태운 거대한 흑마 흑왕은 불과 십여 장 뒤에까지 따라 붙고 있었다.

흑왕도 진저리치게 빨랐고 강미루 속사(速射)도 무섭게 빨랐다.

!

백남빈은 말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은 채 몸을 옆으로 굴려 말의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 피잉!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날아든 두 자루의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백남빈의 등을 스치며 지나갔다.

콰드드!

백남빈의 몸은 말의 옆구리에 달라붙었으나 두발은 땅에 끌리면서 먼지를 확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난 대량의 먼지에 의해 바로 뒤에까지 따라붙었던 강미루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가려졌다.

강미루는 다시 활에 화살을 재운 상태였지만 백남빈의 모습을 놓쳐 쏠 수가 없었다.

!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백남빈은 땅에 끌리던 두 발로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가 다시 말 등을 구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달리는 속도가 번개같은 흑왕을 떨쳐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니 반격할 수밖에 없다.

!

백남빈은 허공에 뜬 채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두두두!

그 사이에 흑왕은 백남빈의 발 아래로 달려왔다.

!

백남빈은 그런 흑왕의 등 위로 떨어져 내리며 검으로 강미루를 찔러갔다.

하지만 강미루는 이미 왼손에 흑왕의 안장에 달아놓았던 방패를 들고 있었다. 백남빈이 두 발로 먼지를 일으켜 시야를 가리자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해서 방패를 집어든 것인데 그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다.

어림없다!“

!

강미루는 앙칼지게 외치며 백남빈의 검을 방패로 막았을 뿐 아니라 강하게 옆으로 밀쳐 버렸다.

아직 어린 여자답지 않은 기민한 반응이다.

몸은 허공에 떠있는데 전력을 기울여 찔렀던 검은 강하게 옆으로 밀쳐졌다.

휘익!

그 때문에 균형을 잃은 백남빈의 몸은 강미루의 머리를 넘어 흑왕의 뒤쪽으로 날아갔다.

!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패대기쳐지려는 순간 백남빈은 왼손으로 흑왕의 길고 풍성한 꼬리를 잡아챘다.

히이잉!

느닷없이 꼬리가 잡힌 흑왕은 깜짝 놀라 껑충 껑충 뛰며 앞으로 달려갔다.

낙타보다 큰 체격의 흑왕은 겅중겅중 뛰면서도 질풍같이 달려갔고 그 바람에 그놈의 꼬리를 잡은 백남빈의 몸은 마치 깃발처럼 허공에 휘날려졌다.

!

그런 백남빈의 머리를 향해 방패가 맹렬히 돌면서 날아든다. 강미루가 몸을 돌린 자세로 왼손의 방패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놀란 흑왕이 겅중겅중 뛰면서 달리고 있는 탓에 조준을 정확히 할 수가 없었다.

! 따다당!

백남빈의 머리 위로 스치고 지나간 방패는 뒤쪽의 땅바닥에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방패로 백남빈을 때리는 게 실패하자 강미루는 활을 던져버리고 안장에 걸려 있는 창을 뽑아들었다.

떨어져랏!”

그리고는 몸을 뒤쪽으로 돌린 자세로 창을 휘둘러서 백남빈의 머리를 내리쳤다.

부악!

던져진 방패와 달리 수직으로 내리쳐지는 창은 정확히 백남빈의 머리로 날아들었다.

흑왕의 꼬리를 잡은 채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백남빈으로서는 피할 길이 없다.

별 수 없이 내공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그대로 얻어맞았다.

!

굵은 창대가 백남빈의 정수리를 강타하며 요란한 소리가 난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날카로운 날이 아니라 창대에 맞아 치명상은 피할 수가 있었다.

그렇긴 해도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서 백남빈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장검을 놓쳐버렸다.

만일 강미루가 당황하지 않아서 창대에 내공을 주입해서 휘둘렀더라면 백남빈의 머리는 잘 익은 수박처럼 깨어졌을 것이다.

따다당!

백남빈이 놓친 검도 흑왕의 뒤로 아스라이 멀어진다.

"차앗!"

그 사이에 창을 짧게 고쳐 잡은 강미루가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백남빈을 찔러왔다.

검을 놓쳐버렸으니 찔러오는 창날을 막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백남빈은 흑왕의 꼬리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창날을 피했다.

가뜩이나 휘날리던 몸인데 이제 백남빈의 몸은 바람 속에서 세차게 펄럭이는 깃발처럼 변했다.

미꾸라지 같은...”

강미루에게는 황당한 일이었으나 백남빈에게는 목숨이 걸린 상황이다.

이렇게 빨리 달리는 말에서는 굴러 떨어지기만 해도 큰 부상을 당하고 말 것이다.

설령 다치지 않는다 해도 흑왕의 꼬리를 놓치면 뒤 따라오는 대려장의 무사들에게 잡히게 된다. 사람의 발걸음이 아무리 빨라도 네 발로 달리는 말의 추격을 떨쳐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황하고 놀라긴 흑왕도 마찬가지였다.

히히힝! 두두두!

백남빈이 꼬리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대자 놀란 흑왕은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죽엇! 죽어라!”

슈슉! 피핑!

강미루는 뒤를 돌아보는 자세인 채 기를 쓰고 백남빈을 찌르려 했고 백남빈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날카로운 창끝을 피해냈다.

백남빈으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 상태를 타개하지 못하면 결국 창에 찔리고 말 것이다.

반격을 해야만 한다.

"크왓!"

화악!

다시 한 번 강미루의 세찬 창질을 피한 백남빈은 온 힘을 모아 말꼬리를 축으로 몸을 옆으로 휘돌렸다.

그리고는 몸이 돌아가는 기세를 빌어 양발로 강미루의 허리를 찍어갔다.

!”

강미루는 기겁하며 몸을 흑왕의 엉덩이 쪽으로 홱 젖혀서 백남빈의 발길질을 피하려 했다.

발길질이 빗나가려 하자 백남빈은 붙이고 있던 두 다리를 확 벌렸다.

콰득!

그리고는 뒤로 몸을 젖히던 강미루의 허리를 두 다리로 휘감아버렸다. 몸은 거의 수평으로 누인 채로...

네놈이...”

허리가 휘감긴 강미루는 깜짝 놀라 창대로 백남빈의 머리를 내리쳤다.

!

백남빈은 그때까지 잡고 있던 흑왕의 꼬리를 놓고는 자신을 내리쳐오는 창대의 중간을 잡았다.

백남빈의 이같은 수법은 대담하고 재빨랐지만 강미루 또한 임기응변이 아주 빨랐다.

!

창대가 상대에게 잡히자마자 강미루는 즉시 창을 놓아버리며 허리에 찬 단검을 뽑았다.

!

그리고는 그 단검을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백남빈의 왼쪽 허벅지에 힘껏 꽂았다.

(!)

백남빈은 까무라칠 듯한 통증에 눈을 흡떴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여유도 백남빈에게는 없었다.

서로의 몸이 밀착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강미루가 다시 단검을 쓰게 하면 위험하다.

우둑!

잡고 있던 창을 던져버린 백남빈은 강미루를 두 팔로 와락 껴안았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초식이고 뭐고 나올 게재가 아니었다.

아흑!”

강미루의 눈이 치떠졌다.

백남빈의 허벅지에 꽂은 단검을 뽑을 새도 없이 두 팔이 백남빈의 강철 족쇄같은 팔에 묶여 버린 것이다.

!

놀라고 분노한 강미루는 생각할 틈도 없이 입을 벌려 백남빈의 턱을 덥썩 물었다.

(!)

턱이 물린 백남빈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정말 심보가 악독하기 짝이 없는 계집이다.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토록 몸도 사리지 않고 덤빈단 말인가?)

난생 처음 겪는 고통에 백남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몸을 밀착한 채 한 덩이가 된 두 사람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엇비슷한 수준의 내공을 지녔으며 그 내공을 상대방이 혈도를 찍지 못하도록 중요한 혈도를 방어하는데 동원하고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내공을 흐트렸다가는 상대방에게 혈도를 제압당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완력으로만 대치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백남빈은 허벅지를 찔린 고통으로 인해 땀을 비 오듯 쏟고 있지만 강미루 역시 죽을 맛이 되어 있었다.

강미루는 철령보의 종자들은 하나같이 허약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헌데 자신의 몸을 팔과 다리로 제압하고 있는 이 사내가 보여준 임기응변은 놀라운 것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무지막지한 놈을 만나서 육탄전(肉彈戰)을 벌이는 곤욕을 치룬담!)

강미루는 부끄럽고도 화가 치밀어 머리에서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

철이 든 이래 사내의 손가락 끝조차 몸에 닿아본 적이 없는 강미루다.

헌데 지금 사내의 품에 으스러지도록 안겨 있으며 사내는 또 그녀의 하체 위에 걸터앉은 자세가 되어 있다.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강미루의 입이 물고 있는 부위가 문제였다.

단단한 뼈로 이루어진 백남빈의 턱을 물고 있자니 오히려 그녀의 턱이 얼얼해 왔다.

사람의 턱은 정말 물어뜯을 곳이 못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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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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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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