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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無人島奇綠

 

 

잠시 숨을 돌린 기검룡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의 두눈은 경이로 크게 떠졌다.

[...!]

그의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섬은 파석도(波石島)와는 전혀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빽빽이 들어찬 수목들이 마치 그림같이 신선한 경이감을 느끼게 했다.

헌데 이때, 정신없이 섬의 풍경에 취해있던 기검룡은 문득 시장기를 느꼈다.

하루종일 음식이라고는 입에 대보지도 못한 탓이었다.

[먹을만한 것이 없을까?]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문득 걸음을 옮겨 섬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얼마정도 들어갔을까?

울창하던 수림이 끝나고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들이 다투어 피어있는 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헌데, 그 초원의 끝에 허술한 한 채의 석옥(石屋)이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의 두눈이 반짝 빛났다.

(사람이 살고 있는 모양인데...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초원을 가로질러 뛰듯이 석옥을 향해 다가갔다.

석옥 앞에 이른 기검룡은 한쪽 옆을 바라보며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석옥 옆에는 장정 두 사람이 팔을 둘러도 다 안을 수 없는 큰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높이는 대략 이 장 정도.

또한 그것은 도저히 몇 년이나 묵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고목(古木)이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무성한 나뭇잎 사이에 어린아이 머리만큼 커다란 하나의 금빛 복숭아가 살짝 감추어진 채 열려있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그 금과(金果)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굉장히 큰 봉숭아구나...)

단번에 시장기를 자극하는 금빛 복숭아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향긋한 향기가 풍겼다.

기검룡은 즉시 복숭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나 그순간 그는 멈칫 했다.

(석옥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이 있는 물건인지 모른다. 더우가 저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몰래 먹어버린다면 주인이 화를 낼 것이다.)

기검룡은 평소 낙척문사에게 엄한 예의범절을 배운 탓으로 비록 허기가 밀려왔으나 선뜻 복숭아를 따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석옥 앞에 우뚝 섰다.

지은지 매우 오래인 듯 벽이며 문() 등이 온통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기검룡은 음성을 가다듬어 주인을 불렀다.

허나 몇번 거듭해 불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기검룡은 음성을 가다듬어 주인을 불렀다.

허나 몇번 거듭해 불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기검룡은 의아함을 느끼며 석문을 밀었다.

___ ___ !

어렵지 않게 석문은 열렸다.

그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허나 그 순간,

[... ... 시체...!]

기검룡은 경악성을 발하며 그 자리에 우뚝 굳어지고 말았다.

석옥의 한 곳에 놓여있는 돌침상에 한 구의 백골(白骨)이 길게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후 조심스럽게 석옥 안을 살펴보았다.

백골이 누워있는 돌침상 앞에는 높이 두 자 정도의 석탁(石卓)이 놓여있었다.

또한 석문의 맞은편 벽에는 기이하게도 한 폭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기검룡은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키고 석옥 안으로 들어섰다.

이어 조심스럽게 석탁이 놓인 곳으로 다가갔다.

석탁 위에는 수북이 먼지가 쌓인 가운데 두 가지의 물건이 놓여있었다.

[...?]

기검룡은 두눈에 이채를 발하며 그 물건을 살폈다.

그중 하나는 극히 낡은 한 권의 책자였다.

책의 겉장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한 자의 글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

 

기검룡은 문득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서슴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허나 그 순간,

[... 이런...!]

그는 당황성을 발했다.

책자의 앞부분이 그의 손에 닿자 한 줌의 가루로 화해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못내 아까운 표정을 지었다.

허나 곧 그는 부서지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내용을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처음으로 읽은 것은 한 가지 장공(掌功)의 진결(眞訣)이었다.

앞부분이 삭아 없어져 어떤 종류의 장공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머지 진결의 내용으로 미루어 끔찍한 음한장력(陰寒掌力)의 위력이 내포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기검룡은 다음장을 넘겼다.

허나 장력의 진결부분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부서져 나갔다.

두 번째의 내용은 고어로 씌어진 한 가지 지공(指功)이었다.

 

<현음분뢰지(玄陰分雷指).>

 

기검룡은 지공의 구결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지공은 익힌바 없는 그로서는 생소하고 난해하여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저 내용을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 지나쳤다.

허나 그순간 구결은 이미 그의 뇌리에 암기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적혀있는 무공은 한 가지의 음공(音功)이었다.

 

<척천마음(擲天魔音).>

 

이것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 정도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악기로도 탄주가 가능하다.

이 마음(魔音)이 한 번 펼쳐지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위의 모든 것을 초토화를면 치못한다.

[...!]

기검룡은 척천마음의 위력 앞에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가공할 음공이 하늘아래 존재하다니...]

그는 경악의 심정을 억제치 못했으나 곧 그 낡은 비급을 조심스럽게 품속에 갈무리했다.

비급의 옆에 놓여있는 것은 하나의 소금(小琴)이었다.

먼지를 털어내니 반질반질 윤이나는 일곱 치 길이의 소금이 드러났다.

허나 그것은 마땅이 일곱 줄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줄이 걸려있을 뿐이었다.

[정말 기이한 소금이구나.]

기검룡은 고개를 갸우뚱 했으나 경이함으로 두눈을 빛내며 그것을 갈무리했다.

이어 문득 그는 정면에 걸린 화폭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폭의 상단에는 용비봉무(龍飛鳳舞)의 웅휘한 필체로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태극조원(太極造元).>

 

또한 글자 아래에는 한 가지 기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짙은 채색의 힘있는 화법으로 그려진 훌륭한 그림이었다.

헌데 그것은 기이하게도 작아지는 듯한 절벽이 갈라져 무너지는 형상을 마치 눈으로 보듯 선명하게 그려놓은 것이 아닌가?

[...?]

기검룡은 검미를 가볍게 찌푸리며 의혹의 표정을 지었다.

[... 깊은 현기(玄氣)가 깃든 그림이다...]

그는 직감적으로 화폭에 담긴 속에는 어떤 은밀한 안배가 가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림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 그는 재삼 감탄하고 말았다.

짙은 채색 밑으로 극히 세밀하게 절벽의 결까지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몇번 그 그림을 훑어보는 동안 그림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모조리 외우고야 말았다.

허나 끝내 그림 속에 담긴 깊은 뜻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문득 그의 두눈이 반짝 빛났다.

[할아버지들께서 보시면 알아내실지도 모른다.]

기검룡은 화폭을 거두기 위해 손을 뻗었다.

허나, 우수수...!

비급과 마찬가지로 그 화폭역시 순식간에 부서져 한줌 먼지로 화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일순 가볍게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온전한 것이라고는 소금(小琴)밖에 없군.]

그는 호기심이 사라지자 낮게 투덜거렸다.

이때 문득 그는 다시 극심한 시장기를 느꼈다.

그는 금빛 복숭아를 생각하고 석옥 밖으로 나갔다.

[주인이 없는 것이니...]

그는 금빛 천도(天桃)를 따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

순간 입안 가득 더할 수 없이 향기롭고 달콤한 맛이 느껴지며 복숭아는 그대로 사르르 녹아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가 있었다니...]

기검룡은 순식간에 어린아이 머리만한 복숭아를 게눈감추듯 먹어버렸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허기가 거짓말처럼 싹 가셔버리는 것이 아닌가?

배고픔이 가시자 기검룡은 문득 난감한 심정이 되었다.

파석도로 돌아가야할 것을 생각하니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로서는 이곳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허나 문득 그는 섬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山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산봉에 올라가면 무엇인가 보이는 것이 있을지가 모른다.]

그는 한 가닥 기대를 갖고 획! 몸을 솟구쳤다.

헌데, 산봉을 향해 달리던 기검룡은 문득 의혹의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아무리 빨리 달렸으나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달리면 달릴수록 전신에서 화산이 폭발하듯 막강한 진력이 용솟음치며 단전으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일이다. 순식간에 공력이 배로 늘어난 것 같으니...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산봉의 정상에 이르러 우뚝 몸을 멈추었다.

기검룡은 기대가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나 곧 그는 실망의 표정을 짓고 말았다.

주위는 끝없는 망망대해(茫茫大海)___.

어디를 둘러봐도 푸르게 출렁이는 물(), 물뿐이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점차 서쪽 수평선이 진홍의 불덩이에 잠겨 가라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석양(夕陽). 해가 지고 있는 것이다.

기검룡은 막연한 심정이 되어 한동안 산봉에 우뚝 서 있었다.

일신에 아무리 뛰어난 절기를 지녔다 하나 그는 이제 십오 세밖에 안된 소년이 아닌가!

허나 기검룡은 결코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이슬을 피할 장소를 찾았다.

[어두워지기 이전에 잠잘 곳은 찾아봐야겠다.]

석옥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웬지, 그곳은 다시 들어가기가 싫었다.

백골과 함께 밤을 새우기에는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기검룡은 다시 산봉을 내려갔다.

산봉중턱___.

그곳에 다행히 하나의 작은 암혈(暗穴)이 있었다.

기검룡은 그곳에 잠자리를 만들어 드러누웠다.

[... 할아버지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하실텐데...]

그는 문득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었다.

허나 몇 번을 뒤척이던 기검룡은 깜박 잠이 들었다.

 

[___ ___ ___!]

돌연 멀리서 허공을 쥐어뜯는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기검룡은 그 소리에 잠이 깨어 벌떡 일어났다.

섬칫한 전율이 전신으로 퍼졌다.

허나 그는 혹시하는 기대감으로 조심스럽게 암혈을 나섰다.

밖은 칠흑의 밤이었다.

암혈을 빠져나온 기검룡은 순간 두눈을 크게 떴다.

[... 배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소리쳤다.

섬의 동쪽 바다 위___.

두 척의 거선(巨船)이 거의 맞붙다시피 떠올랐다.

헌데, 그 중 한 척은 온통 시뻘건 화염으로 휩싸인 채 파선직전에 놓여있었다.

기검룡은 안력을 돋구었다.

그의 눈에 불붙은 거선에서 한척의 소주가 내려지는 것이 보였다.

또한 이 소주(小舟)는 빠르게 무인도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두 배에 탄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혈전(血戰)을 벌이고 있는 듯 했다.

허나 기검룡은 그들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절해고도, 무인도에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급히 산봉을 내려갔다.

이윽고, 그가 해안에 닿았을 때 예의 소주는 해안에서 약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이르러 있었다.

허나, 북붙지 않은 거선에서 내려진 또다른 한 척의 소주가 앞의 그것을 바싹 뒤쫓고 있었다.

기검룡은 앞의 소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이때, 뒤따르던 소주가 무서운 속도로 앞의 소주를 향해 쇄도하여 들어왔다.

동시에, 한 명의 흑의인이 뱃전을 박차고 앞의 소주를 덮치는 것이 아닌가?

앞의 소주에는 모두 세 명의 인물들이 타고 있었다.

이때, 흑의인이 덮쳐들자 한 중년인이 벌떡 일어서며 무섭게 장()을 후려쳤다.

허나, 그순간 중년인은 한 줄기 싸늘한 검망이 자신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___ !]

그는 피화살을 내뿜으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첨벙___!

그는 물속으로 급속히 나가 떨어졌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기검룡은 두눈을 번쩍 빛냈다.

[굉장한 쾌검(快劍)!]

이때 나머지 한 명의 중년인이 노를 젓다가 벌떡 일어서며 쇠로 만들어진 노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중년인, 그는 마치 철탑을 연상케하는 거구(巨軀)였다.

또한 얼굴 전체가 시커먼 구레나룻으로 뒤덮여 있어 몹시 위맹해 보였다.

___ ___ ___!

긴 노는 풍차처럼 돌며 흑의인을 단번에 박살낼 듯 몰아쳐갔다.

소주로 내려서려던 흑의인은 그 공세를 피하기 위해 일순 흠칫 하는 순간 수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허나 그때,

[당주님! 갑시다.]

뒤따르던 소주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치며 넓적한 판자를 흑의인의 발밑으로 던졌다.

[타핫___!]

흑의인은 재빨리 그 판자를 찍으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중년의 대한은 버럭 노갈을 터뜨리며 재차 노를 휘둘렀다.

[내려가랏!]

허나 한 번 겪어본 흑의인은 날렵하개 그의 공세를 피해내며 기쾌한 일검을 내뻗었다.

츠츠츠츳...!

[!]

섬전같은 검기의 공세를 피하지 못하고 대한은 어깨에 일검을 맞고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의 어깨에서는 피보라가 솟구쳤다.

흑의인은 일검이 성공하자 점차 벼락같이 검을 휘둘렀다.

[죽어랏!]

그의 장검이 막 대한의 심장을 향해 짓쳐오는 순간,

[멈추시오!]

낭랑하고 위엄있는 소년의 음성이 흑의인의 손속을 제지시켰다.

___!

흑의인은 새파란 강기(罡氣)가 무섭게 자신의 장검을 타격해 들어오자 자칫 쥐고 있던 검()을 놓칠뻔 하였다.

그는 험악하게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

그의 일갈이 떨어지는 순간 기검룡이 가볍게 흑의인과 대한 사이로 날아내렸다.

[이보시오! 왜 사람을 함부로 해치는거요?]

기검룡은 흑의인을 바라보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흑의인은 그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꼬마야 비켜라!]

그는 기검룡의 존재를 싹 무시하고 이번에는 무겁게 장()을 휘둘렀다.

___ ___ !

웅후한 음향과 함께 막강한 장력이 노도처럼 기검룡을 짓쳐들었다.

기검룡은 냉혹한 표정으로 흑의인을 내려보았다.

[당신은 나쁜사람이군!]

이어, 그는 번쩍 우수(右手)를 치켜들었다.

___ ___ !

그의 장심(掌心)에서 일순 새파란 강기가 폭사되었다.

순간,

[___ ___ ___!]

흑의인은 자신의 장력이 가볍게 무산됨을 느끼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첨벙___!

그는 피화살을 내뿜으며 바닷 속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대한과 소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두눈을 크게 떴다.

허나 정작 더욱 놀란 사람은 기검룡 자신이었다.

그는 흑의인이 너무도 어이없이 죽어 버리자 도리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___천강신공(天罡神功),

그가 펼친 이 무공에 대적할 무공이 천하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 리 없는 그였다.

이때, 뒤따르던 소주에서 또 다른 흑의인이 벼락같이 기검룡을 덮쳤다.

[... 꼬마 놈이... 죽어랏!]

그들은 흉폭한 기세로 맹렬하게 검을 쪼개갔다.

허나 기검룡은 빙글 몸을 돌리며 우수를 휘둘렀다.

[! 돌아가랏!]

그의 우수가 섬전처럼 허공을 가른 순간, ___! ___!

[으헉!]

[!]

귀청을 찢는 금속성과 함께 다급한 신음이 잇따라 터졌다.

이어, ___ ___! 첨벙___!

두 명의 흑의인은 거의 동시에 바닷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

기검룡은 단번에 세 명의 흑의인을 격퇴하고 나자 일순 멍한 표정으로 지었다.

그로서는 처음으로 저지른 살생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공손하고도 미세한 대한의 음성이 그의 등뒤에서 들렸다.

[소공자님! 위험한 지경에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말에 기검룡은 퍼뜩 정신이 들어 돌아섰다.

그의 눈앞에 우직하고 순박해 보이는 대한과 그려 놓은 듯 아름다운 한 소녀가 놀란 눈을 한 채 서 있었다.

기검룡은 문득 소녀의 얼굴에 시선을 꽂았다.

십 사오 세 가량의 취의소녀, 그녀의 용모는 찬탄을 금치못할 정도였다.

막 여인(女人)으로 발돋움하는 풋풋하고 청초한 아름다움, 그녀의 전신은 샘물처럼 맑은 싱그러움으로 뭉쳐져 있는 듯 했다.

기검룡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그러자 취의소녀 역시 배시시 따라 웃는 것이 아닌가?

눈부시도록 맑고 고운 웃음이었다.

기검룡은 문득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기검룡(奇劍龍)이다. 파석도(波石島)에서 왔지.]

그 말에 취의소녀는 반짝 두눈을 빛내며 생긋 웃었다.

[파석도라는 이름은 처음듣는 것 같아요. 흑아저씨는 혹시 알고 있나요?]

그녀의 의아하다는 듯 옆의 거한을 바라보았다.

허나 거한은 우직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소인은 모르겠습니다. 수십 년 동안 바다를 누벼 동해(東海)라면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알고 있지만 파석도는 처음듣는 섬이름입니다.]

파석도, 남해에서도 특히 외진 곳에 위치한 절해고도를 그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문득 취의소녀가 당황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어머! 배가 가라앉으려고 해요!]

기검룡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과연 취의소녀 등이 처음에 타고 있던 기선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점차 기울어지고 있었다.

기검룡은 문득 호승심이 치솟았다.

그의 취의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대신 저기 큰 배를 가라앉혀 버릴까?]

허나 그말에 취의소녀는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싫어. 더 이상 사람들이 죽는 모습은 보기 싫어 아저씨 빨리 이곳을 떠나요!]

그녀의 재촉에 거한은 상처를 싸매고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삐걱... 삐걱...!

그들 삼인(三人)을 태운 작은 배는 물살을 가르며 쉼없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근 한 시진이 지나자 그들은 완전히 치열한 해전(海戰)이 벌어졌든 수역(水域)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둠이 물러가고 동녘이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 문득 기검룡이 취의소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취의소녀는 크고 해맑은 눈으로 기검룡을 응시했다.

[능소취(陵素翠)라고 해. 그냥 취아(翠兒)라고 불러줘.]

이어 그는 거한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 아저씨는 철담흑객(鐵擔黑客)이라고 불러. 취아는 그냥 흑아저씨하고 부르지만 말이야.]

취의소녀, 즉 능소취의 말에 거한은 노를 젓으며 기검룡을 기검룡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기검룡은 사람좋아 보이는 철담흑객을 바라보며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는 굉장히 힘이 세어보이는데 아까는 왜 그 사람의 검을 그냥 맞았지요?]

철담흑객은 머쓱하게 웃었다.

[소인은 아가씨의 부친이신 사해신룡(四海神龍)을 모시는 일개 종복인지라 정식으로 내공을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저 외공(外功)을 약간 익혔기 때문에 내가고수(內家高手)들을 당하기는 힘들지요.]

기검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는 갑자기 환한 표정으로 탄성을 발했다.

[... 그렇군.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의 갑작스런 태도에 능소취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기검룡은 철담흑객과 그녀를 동시에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혹시 철벽신공(鐵壁神功)을 알고 있나요?]

허나 철담흑객과 능소취는 고개를 저었다.

기검룡은 빙긋 웃으며 그들에게 설명했다.

[철벽신공(鐵壁神功)은 외가(外家) 최고의 기공이예요. 철파상이나 금종조 같은 외공(外功)보다도 뛰어난 외공으로 만일 이것을 완전히 연성하면 내공으로 이룰 수 있는 금강기체(金剛之體)와 똑같이 될 수 있어요.]

그의 말을 듣고난 능소취는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넌 참 아는 것도 많구나. 그런 것은 다 어디서 배웠어?]

기검룡은 가볍게 씨익 웃었다.

[난 그동안 두분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작은 할아버지는 별별신기한 냉용의 책을 다 갖고 계시지. 철벽신공도 할아버지의 책을 보고 외운거다.]

이어 그는 철담흑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의 어떠십니까? 어렵신 하지만 철벽신공을 익혀보지 않겠습니까?]

철담흑객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배울 수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배워보겠습니다.]

기검룡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시간이 나는대로 철벽신공을 연마하는 방법을 전수해 주겠어요.]

그들 사이의 대화가 끝나자 능소취는 두눈을 반짝이며 기검룡을 응시했다.

[그런데 넌 왜 그 무인도에 혼자 있었지?]

[백경(白鯨)과 싸우다가 그놈이 나를 꿀꺽 삼키는 바람에 그렇게 됐지.]

기검룡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며 삼키는 시늉을 하자 능소취는 끔찍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야? 고래에게 잡혀먹혔는데 어떻게 살아나올 수가 있어?]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기검룡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빙긋 웃으며 자신이 겪는 일들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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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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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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