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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四海船門

 

 

일출(日出).

끝없이 펼쳐진 대해(大海)를 가르며 불끈 태양이 치솟아 올랐다.

만경창파(萬頃蒼波), 보검(寶劍)의 칼날처럼 출렁이는 물결 위에 시뻘건 불덩이가 퍼져오른다.

! 그것은 실로 형용할길 없는 벅찬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소주(小舟)___

기검룡 일행을 태운 작은배는 천천히 일출의 바다 속을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기검룡은 눈부시도록 찬란한 일출의 장관에 넋을 잃고 있었다.

[...!]

신비한 태양의 광휘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러자 문득 그는 가슴 속에 위대한 포부가 형성되는 느낌이었다.

()! 뜨거운 피가 불끈 치솟아 웅심(雄心)을 흔들었다.

능소취와 철담흑객도 멍한 표정으로 일출을 감상하고 있었다.

헌데 이때, 문득 기검룡이 무엇을 발견한 듯 소리쳤다.

[! 큰 배가 온다!]

그말에 능소취와 철담흑객은 대번에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안력을 돋구어 머리 앞을 바라보았다.

[...?]

허나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엄청난 태양의 광막이 안력을 차단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검룡은 똑똑히 보였다.

그는 능소취를 바라보았다.

[저기 태양의 왼쪽에 큰 배가 오는 것이 보이지 않아?]

허나 능소취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철담흑객도 의아하다는 듯 기검룡을 응시했다.

기검룡은 그제서야 깨달은 듯 고개를 갸웃했다.

[...? 그렇군. 정말 이상한 일이다. 전에는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니...!]

그는 의혹의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실상, 그것은 바로 무인도의 기이한 복숭아를 먿은 덕분이라는 것을 기검룡은 까마득히 몰랐다.

그로인해 내공과 시력이 급증했다는 사실도.

이때, 철담흑객이 탄성을 발하며 입을 열었다.

[! 맞습니다. 그제서야 과연 공자님의 말씀대로 배입니다.]

능소취도 그제서야 그것을 발견하고는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허나 문득 철담흑객은 불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 해역에는 해룡방(海龍幇)의 배가 자주 출몰(出沒) 하는데, 혹시...?]

기검룡은 멀리 보이는 큰 배를 자세히 살폈다.

[선두에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엉켜있는 깃발이 달려있는 배다!]

기검룡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철담흑객은 안색을 활짝 펐다.

[그럼 본문(本文)의 순시선이 분명합니다. 해룡방의 표식은 흑룡(黑龍) 입니다.]

그말에 능소취도 기쁜 듯이 활짝 웃었다.

잠시 후, 거선은 점점 그들 가까이로 다가왔다.

[하후할아버지!]

능소취는 거선에 오르자마자 반가운 환성을 지르며 한 명의 백삼노인에게 안겼다.

백삼노인___ 약 칠순(七旬) 정도의 청수한 인상이었다.

허나 그의 두눈에는 번갯불같은 안광이 번뜩였다.

백삼노인은 달려오는 능소취를 안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취아! 얼굴이 새카맣게 탓구나.]

이어, 그는 철담흑객을 바라보며 엄숙한 어조로 물었다.

[어찌된 일인가? 호의무사들과 오향주(五香主)는 어찌되고 자네만 남았는가?]

철담흑객은 급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 화후당주님. 오향주는 모두 전사하고 소인과 아가씨만 간신히...]

이어 그는 기검룡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 공자님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순간 백삼노인은 허연 눈썹을 꿈틀했다.

[, 해룡왕(海龍王)! 그 작자가 점점 담이 커지는군, 빨리 제거해야겠군.]

이어 그는 기검룡을 응시하며 인자한 음성으로 말했다.

[허허... 소공자께서 우리 취아를 구해주셨다니 정말 고맙소.]

허나 기검룡은 그저 싱긋 웃어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능소취는 백삼노인을 올려다보며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할아버지. 용오빠는 굉장해요. 그 단홍검(丹紅劍)이란 자를 일장(一掌)에 죽였고요. 바다위를 마음대로 걸어요.]

어느새 능소취는 기검룡을 오빠라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기검룡의 나이가 그녀보다 한 살 많았기 때문이었다.

백삼노인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빙그레 웃었다.

[그래? 굉장하구나.]

허나 그는 단순히 그녀의 말을 일축해 버리고 실제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자 능소취는 정색을 하며 재차 말했다.

[어머! 정말이예요. 용오빠. 어디 한 번 보여줘요.]

그녀는 기검룡을 바라보며 재촉했다.

기검룡도 흥미가 있었다.

순간, 그는 바다 위로 휙! 몸을 날렸다.

이어, 파도를 밟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신법으로 거선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 저럴 수가...!]

[___ ___!]

백삼노인과 사해선문의 제자들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윽고 거검룡은 유유한 신법으로 다시 배위로 올라왔다.

백삼노인은 두눈을 크게 뜬채 기검룡을 바라보았다.

[정말 놀랍구려. 혹시 그 경공은 해연약파(海燕躍破)가 아니요?]

[맞습니다.]

순간, 백삼노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필시 이 소년의 신분은 범상치가 않다...!)

그는 예리한 직감을 놓치지 않고 내심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어, 그들 일행은 모두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백삼노인___.

그는 바로 사해선문의 수석당주인 비천해응(飛天海鷹) 하후염(夏候炎)이었다.

그는 비천응신술(飛天鷹身術).

이 경공은 과거 무림군웅보(武林群雄譜)에 올랐던 백팔무인(百八武人) 중 일인(一人)인 혈응신(血鷹神)의 경공에 맞먹는 절기로 알려졌다.

 

선실(船室)___.

기검룡과 능소취, 비천해응 하후염과 철담흑객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기검룡은 물론 능소취와 철담흑객도 몹시 시장해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웠다.

식사가 거의 끝날 때 쯤 비전해응 하후염이 문득 기검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공자 사부는 누구시오?]

허나 기검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모릅니다. 단지 저는 그분들을 작은 할아버지, 큰할아버지라고 불러왔어요.]

하후염은 더욱 관심이 깃든 어조로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그분들의 생김새는 어떠하오?]

기검룡은 천강마존과 낙천문사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낙척문사에 대해 자세히 얘기했다.

허나 천강마존에 대해서는 간단히 말했다.

단지 매우 엄격하고 과묵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얘기했을 뿐.

그의 설명을 듣고난 하후염은 안색이 대변했다.

(... 그렇다면 틀림없이 한 분은 낙천문사(落拓文士)...! 그러면 나머지 한 분은 쌍기(雙奇)의 한 명이신 고죽취옹(枯竹醉翁)이 아니겠는가?)

내심 그렇게 추측한 그는 가슴이 크게 격당함을 느꼈다.

쌍기(雙奇)___ 이들이 어떤 인물인가?

무림군웅보의 당당한 서열 제 이위(二位)에 오른 전대고인이 아닌가?

허나 하후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설마 낙척문사 외의 기검룡의 또 다른 사부가 바로 천강마존일 줄은.

 

사해선문(四海船門).

동해를 주름잡는 사해선문의 총단은 동해의 절유도(絶有島)에 위치하고 있었다.

___사해신룡(四海神龍) 능천위(凌天威).

그가 사해선문의 문주(門主)였다.

사해선문은 중원과의 왕래가 거의 없으니 쟁쟁한 위력을 지닌 문파였다.

 

기검룡 일행이 탄 거선은 이윽고 절유도에 도착했다.

거대한 수채(水寨)로 형성된 사해선문의 총단.

그들은 마침내 거선에서 내렸다.

수십 척의 선박이 질서있게 정박해 있는 도선장(渡船場)에는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늘어 서 있었다.

앞 장 선 사람은 한 쌍의 부부(夫婦)였다.

남자는 남포장삼을 걸친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당당한 위엄이 넘쳐 흘렀다.

그는 사십 후반의 중년인으로 두눈은 정광으로 충만해 있었다.

여자는 백의궁장(白衣宮裝)을 한 삼십 전후(前後)의 미부인(美婦人)이었다. 이때,

[어머니...!]

능소취가 반가운 음성으로 소리치며 미부인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녀는 기품있는 자태에 온화하고 포근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품에 안긴 능소취의 머리를 매만지는 그녀의 손길을 한없이 부드러웠다.

[취아, 무사히 돌아왔구나.]

그녀는 기쁨과 함께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때, 남포장삼을 입은 중년인은 위엄서린 표정으로 하후염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후당주. 어떻게 당주께서 취아를 데리고 왔소이까?]

하후염은 공손히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문주님, 그것은 모두 이분 공자덕분이었습니다.]

그는 한옆에 우뚝 서 있는 기검룡을 가리켰다.

문주(門主)라면...?

! 그렇다면 남포장삼인 그가 바로 사해신룡 능천위란 말인가?

그렇다. 그는 바로 사해선문의 문주 사해신룡 능천위였다.

하후염의 말에 사해신룡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하후염이 모든 사정을 얘기할 때 기검룡을 쌍기(雙奇)의 제자라고 밝힌 점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기검룡을 주시했다.

기검룡은 선뜻 그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소생 기검룡 두분 숙부님과 숙모님을 뵙습니다.]

그의 깍듯한 태도에 사해신룡 부부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사해신룡이 안색을 부드럽게 풀며 말했다.

[쌍기 두분 노선배님의 제자라면 강호에서 높은 배분이지만 그냥 네게 용아(龍兒)라고 부르겠다. 그래도 되겠는가?]

기검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물론입니다. 숙보님. 용아는 오히려 그러기를 더욱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외로운 몸이었다.

절해고도에서 천강마존과 낙척문사 두 사람밖에 모르던 그러서는 오랜만에 가진 사람들과의 접촉이 무척 기뻐던 것이다.

이때, 능소취가 문득 기검룡의 손을 잡아끌었다.

[용오빠, 날따라 와봐. 이곳엔 구경할게 많으니까.]

기검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이끄는데로 따라갔다.

그들이 수채 안으로 사라지자 사해신룡은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해룡방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모양이군.]

하후염 역시 안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비록 천해비동(天海秘洞)의 위치를 모르나 대강 추측은 한 듯 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아가씨를 노린 것이 분명합니다. 아가씨를 인적으로 삼아 천해비동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한 것입니다.]

사해신룡은 하후염을 바라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내일이 천해비동으로 입동(立洞)할 수 있는 자오절(子午節)이오. 아무쪼록 기밀이 유지되도록 당주께서 힘써주시오.]

하후염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X X X

 

어둠. 깊은 어둠이 흐르고 있었다.

기검룡은 사해선문 안의 깊은 대전에 속한 한 칸의 방에 들어 있었다.

침상___ 그는 지금 편안히 침상에 누워있었다.

허나 잠은 오지 않았다.

웬지 머리 속에 자꾸만 무인도에서 발견한 비급의 구결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허나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는 일어나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의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름모를 불완전한 장공(掌功)이었다.

기검룡은 머리 속의 기억을 따라 천천히 운공했다.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가 익힌 천강신공(天罡神功)의 진기를 운용하여 장공의 구결을 따라 기류를 운행하는 순간,

[!]

그는 잠시에 전신을 부르르 떨며 고통의 비명을 발했다.

전신의 진기가 폭풍처럼 소용돌이치며 마구 요동치는 것이 아닌가?

[아악...! ___ 으윽...!]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듯 몸을 데굴데굴 구르며 연신 비명을 터뜨렸다.

마침내, ___!

그는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

허나 그 순간, 노도같은 경기가 갑자기 기경팔맥(奇經八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기검룡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기검룡은 무거운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순간, 그는 만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했다. 헌데 나는 죽지 않았단 말인가?)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기이하게도 아무런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실상, 기검룡은 하마터면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할 뻔했다.

각기 성질이 틀린 두 가지 무공을 잘못 융합한 탓이었다.

허나 무인도에서 먹은 금빛복숭아로 인해 오히려 극적으로 진기를 융합, 그것이 사지(四脂)로 퍼지면서 내공마저 배이상 급증한 것이었다.

허나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기검룡은 의혹의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내가 이 장공(掌功)의 연마에 성공했단 말인가?]

그는 앉은 채 자신도 모르게 바닥을 탁 쳤다.

순간, 그의 몸이 그대로 부웅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 연대좌불(蓮台坐佛)의 경공이 펼쳐지다니...!]

기검룡은 희열의 탄성을 발하며 빙글 몸을 회전하여 그대로 창밖으로 날아갔다.

___연대좌불(蓮台坐佛).

그는 낙척문사가 그에게 전수한 개세의 경공이었다.

허나 기검룡은 여태까지 내공이 약해 그것을 떨치지 못햇던 것이다.

기검룡의 기쁨은 실로 컸다.

그는 한 인공야산의 바위 앞에 우뚝 서 있었다.

[!]

그는 육성(六成)의 공력을 사용하여 장력을 내뻗었다. 허나,

[...!]

기검룡은 놀람을 금치못했다.

장력은 소리는 물론 아무런 형체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바위에는 장력이 부딪친 흔적이 조금도 없었다.

기검룡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어째서 아무런 위력도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가 무심코 바위를 발로 툭 찼다.

순간, 우수수...!

놀랍게도 바위는 완전히 부서져 가루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껍질부분만 남고 바위의 속부분이 다 부서졌다는 점이었다.

[...!]

기검룡은 두눈을 크게 뜨며 경악의 환성을 발했다.

이어 문득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정말 이 장법은 악독하기 그지없구나. 검은 멀쩡하나 속은 완전히 부서졌으니... 더구나 무형중에 날아가니 피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는 잠시 묵상에 잠겼다.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겠군. 헌데 이 장법의 이름을 모르니...

허나 그 순간 그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그래. 이것을 극영쇄심인(克影碎心印)이라 부르자!]

그는 스스로 장법에 이름을 붙인 후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소금(少琴),

기검룡은 방으로 돌아와 무인도에서 가져온 일곱 치 길이의 소금을 만지고 있었다.

그는 소금의 외줄을 장난삼아 당겨보았다.

허나,

[?]

소금의 외줄은 조금도 당겨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기검룡은 공력을 끌어올려 다시 줄을 당겼다.

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검룡은 은근히 오기가 솟았다.

[어디... 얼마나 단단한가 보자!]

그는 전 공력을 끌어모아 손가락으로 힘껏 소금의 줄을 당겼다.

그 순간, !

한 줄기 청아한 금음이 울려퍼졌다.

이어, 콰르릉...!

가공할 천둥소리와 함께 무형의 강기(罡氣)가 사방으로 폭사하는 것이 아닌가?

와르르... 우릉...!

그와 동시에 방의 사방벽이 무섭게 무너져 내렸다.

[... ...!]

기검룡은 일순 당황하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용아! 무슨 일이냐? 이 소리는?]

사해신룡과 그의 부인 능부인, 또한 능소취 마저 놀란 표정으로 기검룡의 방으로 달려왔다.

그들을 보자 기검룡은 쑥스럽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만 심심풀이 무공을 연마하다가...]

그이 멋적어하는 태도에 사해신룡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무공이길래 방이 이 모양으로 변했단 말이냐?]

허나 기검룡은 무인도 얘기를 꺼내기가 웬지 망설여졌다.

문득 그는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입을 열었다.

[. 그것은과거 벽력문(霹靂門)의 절기 풍천벽력장(風天霹靂掌)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사해신룡은 두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벽력문이라고?]

그는 경악을 금치못했다.

 

___벽력문(霹靂門).

이는 삼백 년(三百年) 전 대막혈궁(大漠血宮)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멸문(滅門)한 막강한 문파였다.

그들의 무학 중 벽력진해(霹靂眞解)는 그야말로 무림일절이었다.

 

사해신룡은 기검룡을 바라보며 문득 침음성을 발했다.

[... ... 벽력문의 절기를 네가 익혔다니...]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허나 곧 그는 돌아섰다.

[이제 그만 자거라.]

사해신룡은 방을 나갔다. 이때, 능소취가 얼른 그의 등뒤에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취아는 용오빠하고 자겠어요!]

그말에 사해신룡은 흠치했다.

허나 문득 그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무나.]

그가 방을 나가자 능부인이 황급히 그를 뒤따르며 말했다.

[아니 여보! 어쩌자고 한방에... 저들이 아무리 어리다지만...]

그녀는 자못 염려스러운 듯 사해신룡을 바라보았다.

허나 사해신룡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나쁠 것 뭐가 있소? 당신은 저 두 아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지 않소?]

[... 그건 그렇사오나...]

[하하... 내게 다 생각이 있소]

그제서야 능부인은 문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오빠. 그 풍천벽력장(風天霹靂掌)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취아에게 보여줄 수 있어?]

능소취는 기검룡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간청했다.

기검룡은 향긋한 소녀의 체취에 문득 당황한 마음이 되었다.

[... 여기선 안돼. 잘못하면 옮긴 이 방도 무너진다.]

그는 조금 전에 들었던 방의 벽이 다 무너져버린 탓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의 말에 능소취는 안색을 활짝 퍼며 말했다.

[! 혹아저씨, 나 용오빠하고 바닷가에 잠깐 다녀올께요.]

그녀의 말에 철담흑객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두 분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가시려면 소인과 같이 가셔야 합니다.]

능소취는 쾌히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같이 가요.]

 

바닷가.

밤의 바닷가는 깊고 짙은 어둠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거대한 암석으로 가로막힌 곳에 삼인(三人)이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은 물론 기검룡과 능소취, 그리고 철담흑객이었다.

능소취는 두눈을 기대의 빛으로 반짝이며 기검룡을 바라보았다.

[여기선 마음을 놓아도 돼, 어서 한 번 해봐 용오빠.]

그녀의 재촉에 기검룡은 문득 눈썹을 꿈틀했다.

이어 그는 약 십 장(十丈) 거리에 있는 오 장(五丈) 높이의 한 암석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가슴에는 불끈 투지가 끓어올랐다.

그는 내심 풍천벽력장의 구결을 외웠다. 이어,

[벽력진천(霹靂振天!]

우렁차고 낭랑한 일성과 함께 우수를 쭉 내뻗었다.

꽈르릉...!

그의 힘찬 우장(右掌)이 펼쳐지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둥벽력음이 터져올랐다.

[___ !]

능소취는 이 경악한 사태에 소리 높여 탄성을 발했다.

오 장 높이의 암석 중 한부분이 완전히 부서져 내린 것이었다.

허나, 쿠르릉___ 콰릉___!

기검룡은 연달아 장력을 내뻗었다.

 

풍천벽력장.

이는 모두 팔식(八式)으로 되어 있었다.

매초식마다 그 위력이 배로 증가하는 가공할 장법이었다.

꽈르릉___ ___ !

기검룡의 우장이 휘둘러질 때마다 엄청난 폭음이 잠시 숨을 돌렸다.

이윽고, 풍천벽력장의 팔식(八式)을 완전히 펼쳐낸 기검룡은 잠시 숨을 돌렸다.

헌데, 아 보라!

십 장 앞의 암석은 절반정도가 완전히 붕괴된 것이 아닌가?

능소취와 철담흑객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허나, 기검룡은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번엔 더 놀라운 것을 보여주마.]

이어 그는 입속으로 무엇인가를 중얼중얼 외웠다.

다음 순간,

[벽력패왕수(霹靂覇王手)!]

그는 섬전같이 손바닥을 쭉 뻗었다.

순간, 주황빛 경기가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 꽈르르릉___! ___!

천지개벽(天地開闢)의 가공할 굉음과 함께 전면의 암석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

능소취는 찬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다시 탄성을 질렀다.

허나 철담흑객은 그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기검룡의 안색은 약간 창백하게 변했다.

벽력패왕수.

이는 벽력진해 중에서도 최강에 속하는 무공이었다.

따라서 진기소모가 극심했던 것이다.

능소취는 그 모습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용오빠.]

기검룡은 빙그레 웃었다.

[괜찮다. 잠깐 운공을 하면 되니까.]

이어 그는 곧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앉아 운공했다.

그는 빠르게 공력을 회복했다. 문득, 그는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이 벽력패왕수는 실상 벽력천강(霹靂天罡)에 비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작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

[...!]

능소취와 철담흑객은 그말에 그만 아연한 표정으로 넋을 잃고 말았다.

허나 곧 철담흑객이 그제서야 생각난 듯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 두 분도 이제 그만 돌아가 주무셔야지요.]

기검룡과 능소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들 삼인(三人)은 돌아섰다.

헌데, 섬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기검룡은 문득 흠칫 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잠깐! 누군가 있어요.]

[...?]

능소취와 철담흑객은 의아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허나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았다.

해변(海邊), 어둠 속의 한 그루 커다란 송목(松木) 아래 두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새하얀 백의를 입고 있었다.

허나 그는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회의(灰衣)를 입은 깡마른 노인이었다.

그는 백의인(白衣人)과 마주보고 서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턱밑에 염소수염을 기른 자로 쭉 찢어진 뱁새눈에 음험한 인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선채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백의인이 문득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문주와 수석당주가 굳게 입을 봉하고 있기 때문에 천해비동(天海秘洞)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회의의 깡마른 노인은 낮고 음침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흐흐.. 상관없다. 천해비동의 빙죽도(氷竹島)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천해비보(天海秘寶)는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헌데 이때,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듣기위해 앞으로 고개를 내밀던 기검룡은 잘못하여 그만 발밑의 조약독을 건드리고 말았다.

...!

조용한 가운데 그 소리가 울리자 회의인(灰衣人)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누구냣!]

동시에 그의 소매가 번득 휘둘어지며 무수한 한망이 세 사람을 덮어씌웠다.

[... 들켰어.]

능소취는 겁먹은 음성으로 울상을 지었다.

허나, 기검룡은 추호도 당황함 없이 벌떡 일어서며 풍천벽력장(風天霹靂掌)을 후려쳤다.

우르릉...!

고막을 진동시키는 우뢰성이 이는 순간, 회의인이 발출한 암기는 일제히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흐흐흐... 제법이구나.]

회의인은 음험한 광망을 번득이며 휙 선형을 날렸다.

어느새 그의 신형은 기검룡의 머리 위에 이르러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의 벽락같이 장()을 후려쳤다. 허나,

[타앗!]

기검룡도 물러서지 않고 천왕탁탑(天王托塔)의 일식에 그의 장경이 맞섰다.

___! 하는 폭음과 함께,

[...!]

회의노인은 기혈이 뒤집히는 충격을 받고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는 경악의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내려서 기검룡을 노려보았다.

이때, 그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백의인이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회의노인에게 말했다.

[그 꼬마가 쌍기(雙奇)의 손자라는 아이입니다. 어리지만 무서운 공력을 지녔으니 조심하십시오.]

회의노인은 두눈을 번쩍 빛내며 차갑게 말을 잘랐다.

[알았다.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순간, 백의인은 전면의 송림사이로 휙 신형을 날렸다.

[서랏!]

기검룡은 벼락같이 소리치며 그의 뒤를 쫓으려했다.

허나, 회의노인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그를 가로막았다.

[흐흐... 꼬마야, 네 강대는 여기있다.]

동시에 그는 숨쉴틈 조차 주지않고 막강한 장력을 쏟아냈다.

기검령은 반사적으로 마주 일장을 쳐냈다.

콰르릉___!

두 사람의 장력이 격돌하자 요란한 폭음이 들썩 사위를 흔들었다.

회의노인은 신형을 휘청하며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기검룡 역시 일순 몸이 흔들렸으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회의노인은 내심 경악의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 역시... 어린 놈의 공력이 노부보다 뛰어나구나, 허나 어린 놈은 역시 어린 놈... 흐흐...)

그는 암중에 독계(毒計)를 품고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어린 놈! 죽어랏!]

그는 재차 일갈하며 장을 후려쳤다.

기검룡 역시 물러서지 않고 기쾌하게 일장을 내뱉았다.

허나,

[...!]

두 사람의 장력이 맞부딪친 순간, 그는 자신이 허공을 후려쳤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회의노인이 펼친 허초(虛招)에 속은 것이었다.

이때,

[흐흐... 죽어랏!]

회의노인이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번득 우수(右手)를 휘둘렀다.

헌데 그의 손에서 발출된 것은 한 무더기의 독침이 아닌가?

[!]

기검룡은 철판교의 수법으로 다급히 몸을 피했으나 몇 개의 독침들이 그의 다리에 적중되고 말았다.

[아주 가거랏!]

회의노인은 앞으로 쓰러지는 기검룡을 단번에 박살낼 듯 다시 장을 후려쳤다. 순간,

[... 용오빠___]

보고있던 능소취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이때, 바닥에 나뒹굴던 기검룡의 몸이 돌연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어느새 그의 우수가 번득 청색고아망을 일으켰다. 찰나!

[___ !]

회의노인은 기혈을 토해내며 나뒹굴었다.

허나 그와 동시에, 그는 기검룡이 저지할 틈도없이 풍덩 바닷 속으로 뛰어들며 사라졌다.

[...]

기검룡은 일순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때,

[용오빠, 괜찮아요?]

능소취가 잔뜩 염려가 어린 표정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디봅시다. 공자님. 방금 그자는 독수인마(毒手人魔)라는 자로 그자의 암기에 발린 독()은 극히 악랄하여 위험합니다.]

철담흑객도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기검룡은 독침이 박힌 다리의 바지를 걷어올렸다.

그의 하얀 다리에는 서너군데 미세한 검은 점이 푸른빛을 띈 채 박혀있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 푸른 반점은 점차 조금씩 축소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철담흑객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공자님께서는 전에 무슨 영약을 복용한 적이 있으십니까? 독이 절로 소멸되고 있습니다.]

허나 기검룡 역시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별로 그런 기억은 없는데...]

이어 그는 장()을 독침이 박힌 부위에 대고 공력으로 독침을 빼내었다.

이윽고, 다리에 박힌 독침을 모두 빼낸 기검룡은 문득 침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외인(外人)과 내통한 그 백의인을 잡았어야 하는건데...]

능소취 역시 약간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하옇든 돌아가 아버님께 말씀드려야겠어요.]

[그렇게하지.]

기검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들 삼인(三人)은 사해선문의 총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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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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