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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살일초(必殺一招)

 

 

따라오느라 고생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장강(長江)과 만나게 된다.”

강조가 손을 들어 멀리 북쪽을 가리켰다.

(이제 보니 안탕산을 종단해서 북쪽으로 왔구나.)

강유는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겹겹이 늘어선 북쪽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았다.

험한 길로 온 이유는 혹시나 끼어들지 모를 마()를 방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

강조는 근처에 서있는 나무의 가지를 하나 꺾었다. 길이 네 자 정도로 곁가지와 나뭇잎이 조금 붙어있지만 반듯한 나뭇가지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서 네게 한 가지 구명절초(求命絶招)를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강조는 나뭇가지에서 곁가지들과 잎사귀를 떼어내며 말했다.

붕정검법에 소자가 익히지 않은 초식이 있는지요?”

강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가르쳐주려는 것은 붕정검법이 아니다.”

강조는 곁가지와 잎사귀를 떼어내어 나뭇가지를 고르게 만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비가 젊었을 때 어떤 노인을 구해준 대가로 전수받은 일초의 검법인데 그 위력이 지나치게 잔인하고 치명적인 탓에 사용한 적은 없다.”

강조는 낭창거리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며 말했다.

대체 얼마나 잔인하고 치명적인 검법이기에...”

어느 정도인지는 네 눈으로 직접 봐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조는 한쪽에 서있는 사람 키만한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이 검법의 이름은 아비도 모른다. 그래서 임의로 필살일초(必殺一招)라고 명명했다.”

강조는 나뭇가지로 바위를 겨누며 말했다.

필살일초... 이름만으로도 살기가 느껴집니다.”

강유는 긴장하며 강조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초식이 아니라 내공의 운용법이다.”

지잉!

강조가 바위를 겨눈 나뭇가지가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강유는 나뭇가지에 측량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이 운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내공의 운용에 변화를 주는 비결인데...”

투투툭! 드드드!

진동이 점점 강해지면서 나뭇가지는 나사처럼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발산되는 내공의 위력이 치명적으로 변한다.”

강조는 뒤틀리며 진동하는 나뭇가지로 바위를 찔렀다.

퍼억!

그러자 나뭇가지 끝이 두부를 찌른 것처럼 바위 속으로 푹 들어갔다.

! 퍼퍽!

뒤이어 바위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나뭇가지도 터져버렸다.

!”

강유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치뜨며 탄성을 토해냈다.

나뭇가지에 찔린 바위에 사발만한 구멍이 앞뒤로 뻥 뚫려있었기 때문이다.

(맙소사! 나뭇가지가 뒤틀림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긴 했지만 단단한 바위에 사발만한 구멍을 냈다.)

강유가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였다.

이것이 필살일초의 위력이다.”

!

강조는 손에 남아있던 한 자 가량의 나뭇가지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일단 펼쳐지면 반드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무공이니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면 사용해선 안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강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고개를 숙였다.

필살일초의 연공비결을 알려줄 테니 집중해서 듣도록 해라.”

이어 강조는 한 가지 내공심법의 비결을 읊어주기 시작했다.

(... 가공하다!)

그 비결을 들으면서 강유는 등줄기로 오싹한 한기가 훑고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말 그대로 상궤를 뛰어넘는 무공이다.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릴 때부터 뒤틀고 꼬아버리는 운공비결인데... 위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심맥에 심각한 무리를 주게 된다.)

강유는 강조가 가르쳐주는 필살일초의 무시무시한 위력과 함께 치명적인 결함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상대를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무공이다.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면 절대로 써선 안되겠구나.)

적을 죽이기 위해 내 몸을 망치는 무공!

그것이 바로 필살일초였다.

필살일초의 결함을 알아차린 강유는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집중해서 강조가 읊어주는 운공비결을 머릿속에 새겼다.

 

* * *

 

위가진(衛家津)은 그리 크지 않은 강가의 마을이다.

비록 마을은 작지만 장강을 건너는 나루터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제법 많다.

끼니때가 되어서인지 위가진의 유일한 객잔 위가반점(衛家飯店)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객잔의 가장 안쪽 구석진 자리 근처에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두 노인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두 노인은 쌍둥이다.

체격과 이목구비가 같은 틀로 찍어낸 듯이 똑같다.

그러나 닮은 것은 체격과 얼굴뿐이다.

두 노인의 모발과 피부의 색은 극단적이다.

한 명은 먹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몸의 모든 부위가 새카맣다. 흰 것은 오직 눈의 흰자위뿐이다.

다른 한명은 정 반대로 모든 부위가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같이 하얗다. 심지어 눈동자조차 흰색에 가깝다.

두 노인은 몸의 색과는 정 반대 색상의 옷을 입고 있다.

검은 노인은 눈같이 흰 백의를 거치고 있다.

반면 흰 노인은 새카만 흑의를 걸치고 있다.

백귀(白鬼), 자네는 여전하구먼. 저승사자나 염라대왕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니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지.”

검은 얼굴의 노인이 술잔을 입에서 떼며 말했다.

남 말 하지 말게 흑신(黑神).”

백귀라 불린 하얀 얼굴의 노인이 술병을 집어들며 코웃음을 쳤다.

자네는 어디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이는 줄 아는가? 억지로 웃고 있는 얼굴이 인상 쓰고 있는 내 얼굴 보다 더 섬뜩한 거 알기나 해?”

쪼르르!

백귀는 궁시렁거리면서도 검은 얼굴의 노인, 흑신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십팔 년 전까지만 해도 억지로 웃는 얼굴이 아니었지.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참 세상은 살만 했었으니까.”

흑신은 한숨을 쉬며 술잔을 들었다.

지난 일 얘기해서 뭐하겠는가? 우리 두 늙은이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거늘...”

백귀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술잔에도 술을 채웠다.

두 노인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흑신과 백귀, 합쳐서 흑백신귀(黑白神鬼)라 불리는 그들은 제왕성의 태상호법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난 십팔 년 동안 태산(泰山)에 자리한 제왕성에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다.

자신들의 과오로 벌어진 어떤 일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제왕성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때문이다.

얘기해보게!”

얘기해봐!”

! !

흑신과 백귀는 동시에 술잔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라 그런지 두 사람의 행동거지는 판박이다.

말이 서로 부딪히자 흑신과 백귀는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내가...”

내가 먼저...”

잠시 입을 다물었던 두 노인은 또 동시에 말을 꺼냈다.

이번에도 말이 부딪히자 노인들은 한숨을 쉬었다.

작년에는 자네가 먼저 말했으니 올해는 내가 얘기를 시작함세.”

흑신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세나.”

백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여간 우리끼리는 얘기 시작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

백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인 탓이니 어쩌겠는가?”

흑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일 년 간 자네는 성과가 좀 있었나?”

전혀 없었네.”

백신의 물음에 흑신은 고개를 저었다.

무려 일 년 동안이나 공쳤다는 건가?”

백귀는 새하얀 눈썹 사이의 미간을 모았다.

십팔 년 전, 무후(武后)님을 시해하고 소성주(少城主)를 납치해간 그놈... 귀면지존은 정말 교활하기 이를 데가 없네.”

흑신은 고개를 절래 저었다.

약간의 단서를 남겼다가도 추적을 시작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잠적해버리니 말일세.”

지난 십팔 년간 끝없이 반복해온 숨바꼭질이지.”

백귀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백신귀가 태상호법으로 봉사하고 있는 제왕성이 세워진 것은 백여 년 전이다.

제왕성을 세운 것은 섭초천(葉超天)이라는 인물이다.

하지만 섭초천의 출신내력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느닷없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섭초천은 기이한 무공으로 기존 세력들을 가차없이 쓰러트렸었다.

당시의 강호를 호령하고 있던 어떤 세력이나 고수도 섭초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전통의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마도 무림의 종가인 마교, 사파 무림의 본산인 혈교(血敎)도 섭초천에게 무참한 패배를 당했다.

훗날 제왕노조(帝王老祖)라 불리게 된 섭초천은 자신의 무공 내력을 철저히 숨겼다.

그가 구사하는 무공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림인들은 섭초천이 구사하는 경이적인 무공의 출처에 대해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달마묵장!

달마가 달마묵장에 남겼다는 비결만이 섭초천이 이룬 놀라운 성취를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섭초천과 그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무공이 달마묵장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인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인들은 제왕성이 달마묵장을 보유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왕성의 당대 성주는 철면제왕(鐵面帝王) 섭장천(葉長天)이란 인물이다.

신주이십팔숙의 으뜸인 일제(一帝)가 바로 철면제왕 섭장천이다.

제왕노조 섭초천의 손자인 철면제왕 섭장천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인이다.

마교와 혈교의 잔당들을 비롯하여 숱한 고수들이 섭장천에게 도전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섭장천의 수하에서 십초를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다쳤다.

삼대에 걸쳐 거푸 천하제일인을 배출한 제왕성의 성세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헌데 십팔 년 전, 제왕성에서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었다.

섭장천의 아내인 무후 주영청(朱永淸)이 살해당하고 한 살짜리 외아들 섭무궁(葉無窮)이 납치된 것이다.

범인은 제왕성 섭씨일족의 가전 보물을 훔치러 잠입한 도둑이었다.

도둑이 노린 가전 보물은 물론 달마묵장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달마묵장은 제왕성 내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태상호법들인 흑백신귀가 근처에 늘 상주하며 지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은 용케 달마묵장을 훔쳐냈다.

도둑은 얼굴에 귀신 형상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훗날 밝혀진 정체는 마교의 신임 교주 귀면지존이었다.

귀면지존은 달마묵장을 훔친 직후 흑백신귀에게 포착되었었다.

흑백신귀는 함께 손을 쓰면 섭장천과도 호각을 이룰 수 있다는 절세고수들이다.

귀면지존이 범상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흑백신귀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귀면지존은 제왕성의 후원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소성주인 섭무궁을 인질로 잡아버렸다.

그 과정에서 섭장천의 아내 무후 주영청은 어린 아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다가 귀면지존의 독수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삼 년 전부터 강북(江北) 육성(六省)에서는 놈의 종적이 뚝 끊겼네.”

흑신이 말을 이었다.

아마 강남(江南)으로 근거지를 옮겼거나 어딘가에 깊이 숨어서 못된 짓을 꾸미고 있는 때문일 걸세.”

내가 담당한 강남 칠성(七省) 쪽에서는 그래도 지난 일 년 간 서너 번 놈의 흔적이 포착되었었네.”

백귀가 흑귀의 말을 받았다.

흑백신귀는 주모인 주영청이 살해당하고 소성주 섭무궁이 납치된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라 자책했다.

그래서 귀면지존을 잡아 죽이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 맹세하고 제왕성을 떠났었다.

그 후 십팔 년의 세월 동안 흑백신귀는 강북과 강남을 나누어 귀면지존의 행방을 추적해왔다.

강북에서의 수색은 흑신이 맡았고 강남은 백귀가 뒤져온 것이다.

놈은 서너 달마다 한 번씩 대처(大處)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볼일만 보고는 재빨리 모습을 감추길 반복해왔네.”

어디 어디서 놈의 흔적이 발견되었는가?”

흑신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백귀에게 대답을 채근했다.

무창(武昌), 소주(蘇州), 상해(上海), 마지막으로 두 달 전쯤 광릉(廣陵)에 모습을 드러냈었네.”

광릉이라...”

백귀의 말에 흑신은 고개를 갸웃했다.

광릉이라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가 서린 유서 깊은 고장인데... 근처에 숨을 만한 곳이 있는가?”

산이 깊기로는 안탕산(雁蕩山), 물길이 험하기로는 대택향(大澤鄕)이 있네만...”

백귀가 대답했다.

귀면지존은 제왕성의 이목이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그물처럼 깔려있다는 걸 잘 알고 있네.”

흑신이 새카만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일 은신처를 마련한다면 가급적 인적이 드문 곳을 택하겠군.”

백귀도 무슨 말인지 깨닫고 눈을 치떴다.

앞으로는 외진 곳을 중점적으로 뒤져 봐야하는 이유일세.”

흑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놈의 종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광릉 근처의 안탕산과 대택향을...”

말을 이어가려던 흑신은 미간을 찡그렸다.

백귀의 치떠진 눈이 자기 뒤쪽의 객잔 입구에 고정되어있음을 발견한 때문이다.

사람이 말을 하면 집중해야지 딴전을 피우면...”

백귀를 타박하며 뒤를 돌아보던 흑신 역시 눈을 치뜨며 입을 다물었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객잔으로 들어오는 청년을 본 때문이다.

청년은 먼 길을 가는 듯 등에 봇짐을 비스듬히 짊어지고 있으며 허리에는 검을 한 자루 차고 있다.

(... 저놈...)

흑신은 숨이 턱 막히는 표정이 되었다.

(천부(天賦)의 무골(武骨)이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창가의 빈자리에 앉는 청년의 모습을 살펴보며 흑백신귀는 실로 오랜만에 온몸을 뒤흔드는 전율을 느꼈다.

청년의 빼어난 자질은 백 년 가까이 살아온 흑백신귀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안탕산을 떠나온 강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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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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