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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출도

 

 

! 카캉!

강유의 목검과 타복의 목도가 격렬하게 뒤엉켰다.

주로 타복의 목도가 공격하고 강유의 목검은 부드럽게 휘돌면서 타복의 공격을 막거나 휘감아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

카캉! 스악!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나 물러섬도 없이 점점 더 빠르고 격렬하게 공방을 펼쳤다.

(... 너무 빨라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보이질 않아.)

분이는 눈이 팽팽 돌아가는 기분이 되었다.

무공을 모르는 분이로서는 강유와 타복의 공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도련님도 아버지도 다치지 말아야하는데...)

분이는 그저 물통에 달린 줄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쥔 채 가슴만 조일 뿐이었다.

하여간 볼수록 놀라운 녀석이오. 나도 붕정검법을 자유자재로 펼치기까지는 십년이 넘게 걸렸는데...”

강조는 타복과 공방을 벌이는 강유를 보며 감탄하는 표정이 되었다.

“...”

반면 냉상영은 여전히 미간을 조금 모은 채 무언가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 사이에 강유와 타복의 대결은 정점으로 치달리고 있었다.

타복의 목도는 격렬하면서도 숱한 변화를 일으키며 강유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강유는 목검과 몸을 유연하게 움직여서 타복의 공격을 흘려보내거나 오히려 역습을 가했다.

임기응변도 자연스럽고... 이제는 나로서도 더 가르칠 게 없는 것같소.”

강유가 능숙하게 타복을 상대하는 걸 보며 강조의 머리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번쩍! 서걱!

그때 강유와 타복의 무기가 뒤엉키며 서로의 몸을 베었다.

목검과 목도에 묻은 먹물들이 두 사람이 걸친 흰 옷에 흔적을 남겼다.

일격을 주고받은 후 물러섰던 강유와 타복은 다시 서로에게 돌진하려고 했다.

그쳐라!”

그때 강조가 오른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강유와 타복은 즉시 거리를 벌리며 멈춰 섰다.

오호단문도 칠십이식이 일순(一巡)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강조가 쳐들었던 손을 내리며 말했다.

타복은 순식간에 오호단문도의 모든 초식을 한 차례 구사했던 것이다.

헌데 멈춰서는 강유와 타복이 걸친 흰 옷 여기저기에는 먹물이 묻어있었다.

강유의 옷에는 주로 점이 찍혀있는 반면 타복의 옷에는 먹물 자국들이 길게 이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유는 목검을 두 손으로 든 채 타복에게 포권을 했다.

별 말씀을...”

타복도 목도를 내리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서로 상대방의 옷에 찍힌 먹물 자국의 숫자를 확인해라.”

예 아버지!”

...”

강조의 말에 강유와 타복은 동시에 대답하며 서로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흰 옷을 입고 무기에 먹물을 묻혔던 것은 승패를 판독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타복의 몸에는 모두 열 세 곳에 먹물 자국이 나있습니다.”

강유가 먼저 강조에게 말했다.

강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타복을 보았다.

도련님의 몸에는 스물한 개의 자국이 났습니다.”

!”

타복의 말에 분이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번 대련에서는 타복이 이겼군.”

강조는 이마를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타복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실전에서라면 노복이 졌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가?”

강조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타복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왜 패배를 자인하는 걸까?)

분이도 의아해하며 타복을 바라보았다.

주인님께서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복이 도련님 몸에 남긴 먹물 자국은 그리 짙지도 길지도 않습니다.”

타복은 강유의 몸을 살펴보며 말했다.

, 실전이었다면 그냥 옷이 베어지거나 약간의 자상이 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반면 노복의 몸에 난 먹물자국들은 대부분 짙고 길뿐 아니라 치명적인 요혈(要穴) 근처에 나있습니다.”

타복은 말하면서 자기 몸에 난 먹물 자국들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아비의 설명을 들은 분이의 얼굴이 흥분으로 발개졌다.

언제부터인가 분이는 아비의 안위보다는 작은 주인의 성취를 기뻐하고 있었다.

정확한 분석이네.”

강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주고 뼈를 자른다는 무도의 이치에도 부합하니 오늘 대련은 유가 이겼다.”

소자,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강조의 칭찬에 강유는 포권하며 고개를 저었다.

타복이 손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으면...”

그만해라.”

강조가 손을 들어 강유의 말을 저지했다.

겸양도 지나치면 상대에 대한 모욕이 되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강조의 지적에 강유는 머쓱해서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말씀이 맞아.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가 양보한 건 아니야.)

분이의 눈이 흥분으로 반짝거렸다.

타복의 실력은 당금의 무림을 통틀어 백대고수(百大高手) 안에 든다. 칠절의 한명으로 꼽히는 아비라 해도 타복을 쉽게 이기지는 못한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주인님.”

강조의 말에 타복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타복과 호각으로 싸웠으니 무림에 나갈 자격이 있다.”

하오면...”

강유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혈기왕성한 다른 젊은이들처럼 강유도 인적이 드물고 외진 산중에서의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아비의 심부름도 한 가지 할 겸, 안탕산을 내려갔다 오너라.”

강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강유는 기쁜 내색을 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어머니와 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본 때문이다.

 

* *

 

스윽! !

타복은 대련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당을 비로 쓸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온 신경은 강유의 침실이 있는 왼쪽 모옥을 향해 있었다.

그 모옥 앞에는 봇짐을 품에 안은 분이가 울상을 지은 채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문이 열려있는 모옥 안에서는 냉상영이 먼 길 떠날 차림인 강유의 옷을 매만져 주고 있는 중이다.

 

너 혼자 강호에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매사에 조심해야만 한다.”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지만 냉상영의 말에는 절절한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강유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번 산 아래 마을에 내려갔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혼자 집을 떠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냉상영으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아버지의 심부름만 하고 바로 돌아오도록 해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어찌 걱정이 안되겠느냐? 세상은... 특히 무림인들이 설치는 강호가 얼마나 험한 곳인데...”

냉상영은 강유의 상의를 매만져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늘 긴장을 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하고... 하여간 일을 보는 대로 지체없이 돌아와야만 한다.”

당부를 하며 냉상영은 곁눈질로 문 밖을 살폈다.

냉상영의 시야에는 분이만 보이고 타복과 강조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지나치게 불안해하신다.)

강유가 바깥의 눈치를 살피는 냉상영의 모습을 낯설어할 때였다.

유야!”

곁눈질로 문 밖을 살피던 냉상영이 두 손으로 강유의 저고리를 잡고 몸을 바짝 접근시키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예 어머니...”

심상치 않은 냉상영의 태도에 강유도 긴장하며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사실 네 아버지는...”

!”

냉상영이 극도로 긴장한 채 강유에게 속삭이려는데 문 밖에서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 아니다.”

그러자 냉상영은 깜짝 놀라며 강유에게서 떨어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문 밖에는 강조가 뒷짐을 짚은 채 서있다.

봇짐을 품에 안은 분이는 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괜한 노파심이라 여기지 말고...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하거라.”

냉상영은 억지로 웃으며 문밖의 강조를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오늘 따라 어머니가 좀 이상하시구나.)

강유의 가슴 속에서 의혹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심려 끼쳐드리지 않도록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그만 나가자.”

...”

냉상영이 앞장서서 방을 나갔다.

강유도 탁자에 올려놓은 검을 집어들고 그 뒤를 따랐다.

봇짐에 빠진 건 없지?”

밖으로 나온 냉상영은 남편 강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분이에게 물었다.

예 마님. 말씀하신 건 전부 챙겼어요.”

그럼 되었다. 뒷마무리는 분이 네가 하거라.”

냉상영은 쌀쌀맞은 표정으로 말하며 분이와 강조 앞을 지나간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소요유거 가운데에 자리한 가장 큰 모옥 쪽으로 걸어갔다.

(마님이 정말 심란하신 모양이네.)

분이가 돌아보는 사이에 냉상영은 모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긴 사랑하는 외아들이 난생 처음 혼자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으니 마님 속이 걱정으로 까맣게 타들어가겠지.)

가운데 모옥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본 분이는 소리없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준비 되었습니다 아버지.”

방에서 나온 강유가 허리띠에 고정한 검을 만지며 강조에게 말했다.

그럼 가자. 관도(官途) 근처까지는 아비가 함께 가주마.”

강조는 분이가 건네주는 봇짐을 받는 아들에게 말하며 돌아섰다.

조심하세요 도련님.”

분이는 안고 있던 봇짐을 강유에게 건네주며 울상 지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 강호래요. 한시도 긴장을 늦추시면 안돼요.”

걱정마라. 내가 누구냐?”

강유는 봇짐을 등에 비스듬히 걸치면서 웃었다.

무공뿐 아니라 지혜로도 칠절중 으뜸이신 소요신군님의 아들 아니더냐? 눈치와 임기응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래도...”

강유가 어깨를 다독이며 안심을 시켰지만 분이는 여전히 울상을 지우지 못했다.

숭산(崇山)까지 다녀올 동안 어머니를 부탁하마. 외로워하지 않으시도록 자주 말 상대도 해드리고...”

집 걱정은 말고 도련님 몸이나 잘 챙기세요.”

강유의 당부에 분이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이 너만 믿는다.”

강유는 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돌아섰다.

그 사이에 마당을 가로질러 간 강조는 사립문 근처에 타복과 함께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타복은 다가오는 강유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 없는 동안 고생 좀 해줘요 타복.”

강유는 타복에게 포권을 한 후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곧 두 부자의 모습은 소요유거가 자리한 계곡 밖으로 사라졌다.

정말... 정말 별일 없겠죠 아버지?”

사립문쪽으로 나온 분이가 울상을 지으며 타복에게 물었다.

도련님은 복이 많은 분이다. 설령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전화위복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타복은 분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독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따라가고 싶어. 도련님이 눈에서 보여야 안심이 될 테니...)

분이는 강유가 강조를 따라 사라진 계곡 입구를 보며 눈가의 물기를 훔쳤다.

(드디어 시작이로군.)

울먹이는 분이와 달리 타복의 눈빛은 스산해지고 있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타복의 입가로 음산한 미소까지 서렸다.

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 * *

 

(좀 더... 좀 더 대범했어만 했다. 그 사람의 눈치 볼 것 없이...)

어둑한 방안을 서성이며 냉상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쩌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든 그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줬어야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 아이가 알도록...)

뒤늦은 후회가 냉상영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강유는 그녀의 곁을 떠나버린 후였다.

(제발... 부디 무사히 돌아오너라. 네게 해줄 이야기가 너무도 많으니...)

이제 냉상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강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저 하늘의 가호가 그 아이와 함께 하기를 빌 뿐이다.)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모으는 냉상영의 눈가로 물기가 서리고 있었다.

 

* * *

 

안탕산은 절강성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명산으로 이름났다는 것은 그만큼 험하다는 뜻도 된다.

소요신군 강조는 그 험한 안탕산을 동네 뒷동산이라도 되는 듯 뒷짐을 쥔 채 여유롭게 걷고 있다.

천천히 걷는 것같지만 실제로 강조의 걸음은 흐르는 구름같다.

(역시 아버지의 경신술은 대단하구나.)

강유는 앞서가는 강조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으로 경신술을 펼쳐야만 했다.

(틈만 나면 안탕산을 누비고 다닌 덕분에 경신술은 나름대로 자부해왔지만... 산책하듯 걷는 아버지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뒷짐을 짚고 유유자적 걸어가는 강조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강유는 숨이 턱에 닿도록 힘을 내야만 했다.

(아버지가 무림칠절 중에서도 첫째로 꼽히는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소요보법과 붕정검법만 완전히 익혀도 무림을 독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삼 자신의 아버지의 무공에 감탄하던 강유는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관도까지 배웅해주시겠다더니 어째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강유는 점점 더 험해지는 주변의 산세를 곁눈질하며 의아해했다.

백여 리를 달려왔음에도 관도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휘익!

강유가 의아해할 때 강조가 마침내 걸음을 멈추었다.

강유도 거친 숨을 고르며 강조의 뒤로 내려섰다.

두 부자가 멈춰선 곳은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바위 봉우리 위였다.

강조와 강유가 달려온 쪽만이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봉우리 위에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가 몇 그루 서있다.

(여긴 처음 와보는 곳인데...)

강조를 따라 봉우리 위로 올라선 강유는 자신이 낮선 곳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안탕산은 워낙 넓어 북()안탕산, ()안탕산, ()안탕산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철이 들 때부터 안탕산에서 살아온 강유도 못 가본 곳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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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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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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