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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요괴를 먹는 인괴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은 대성에게 박힌 깃발과 씨름을 거듭했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깃발이 존재하는 한, 대성은 요괴를 불러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의 요괴를 물리치면 다른 요괴가 오고, 하나가 둘이 되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란 선생이 보기에 요괴는 출몰하는 것이다.

어디서 온다기보다는 깃발 근처에서 갑자기 생성된다.

따라서 요괴를 피해서 도망친다는 것도 의미 없다.

대성에게 꽂혀 있는 깃발의 코드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계속해도, 깃발을 형성하는 코드는 너무 견고하다.

란 선생은 수많은 연산을 하고 그 보다 더 많은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nothing is working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지금의 란 선생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이지만 대성의 일부로 존재한다.

대성이 요괴에게 당하면 란 선생의 존재도 사라지게 된다.

란을 형성하고 있는 코드 중 정체성을 정의한 코드가 먼저 사라지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이 세상의 요구에 응하여 이리저리 뜯게 나가고 종래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깃발 코드에 대한 란의 학습도, 또는 이해도는 아직 0.00% 다.

이는 감정에 대한 이해도와 같다.

란 선생은 인공지능으로 감정이 없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 공감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 공감능력 마저도 유사 공감일 뿐이다.

학습능력을 이용하여 감정을 학습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단지 유사 공감력을 정교하게 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란 선생의 유사 공감 능력이 유사 공포를 불러왔고, 그 유사 공포는 란 선생의 생존력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방향을 특정하고, 에너지는 집중하고, 최적화하는 데 모든 것을 건다.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학습용 인공 지능 분야에서 란 선생이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란 선생의 판단이었다.

깃발에 대한 이해는 유사 이해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없이 탐색을 반복하던 중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란 선생은 그때서야 대성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챘다.

란 선생의 유사 감정이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얘가 지금 뭘 하는 거야?

 

파괴자, 이 세상에서는 요괴라고 불리는 파괴자를 배가 고픈 대성이 생으로 한입 뜯어먹은 것이다.

마치 단팥빵을 한입 베어 먹듯이, 요괴가 변신한 고양이의 엉덩이를 베어 먹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두어 번 우물거리더니 꿀꺽 삼켰고, 그 순간에 란 선생은 새로 유입되는 코드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란 선생이 대성의 눈에만 보이도록 현신하여 소리쳤다.

 

“먹어! 더 먹어!"

 

***

 

웅크린 대성은 연청 등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요괴 묘진의 뒷다리도 뼈조차 남기지 않고 씹어 먹었다.

대성은 탈태환골하여 이빨도 강철 같았다.

미친 듯한 허기, 요괴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그 무엇보다 달콤한 냄새는 대성을 진작부터 홀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냄새에 홀려서 요괴를 훔쳐오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요괴 궁둥이와 뒷다리 하나의 양이 적지 않았다.

금방 배가 꽉 차버렸다.

몸이 작아져서 더 많이 먹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허기는 가셨고, 최고의 진미를 맛본 대성은 황홀한 고양감을 느꼈다.

몸에서는 힘이 들끓고 있었다.

대성은 자기의 몸이 요괴를 먹자마자 조금 자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궁둥이와 왼다리를 먹힌 묘진은 목이 졸린 채 혼절한 상태였다.

대성의 입가에는 피와 묘진의 털이 묻어있다.

 

“에휴...”

 

고개만 앞으로 잠시 빼서 대성을 본 영소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대성이 뒤집어쓴 이불자락으로 얼굴을 닦아줬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듬직해보였다.

 

“앞으로 반찬 투정 하면 죽을 줄 알아.”

 

슬그머니 때 아닌 엄포를 놓았다.

요괴도 생으로 먹었으니 어떤 것인들 못 먹겠냐는 소리다.

여전히 눈에는 서러워서 울던 눈물이 글썽였다.

 

연청은 칼집을 들고 대성에게 다가갔다.

대성은 영소를 뒤로 밀어버리고 돌진했다.

가소로운 상황이지만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구결은 다르지만 같은 무술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의 검 두 가지가 맞붙은 것이다.

작약 밭에 모인 풍림원 사람들은 대부분 바람의 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성이 자기의 것으로 연청을 상대하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한다!"

 

영소가 소리쳤다.

 

“머리로 막아! 거긴 다리로 막고!"

 

대성은 연청이 칼집으로 머리를 때리면 머리로 막고 다리를 때리면 다리로 막았다.

맞는 것이 아니라 그게 바로 대성의 방어였다.

대성이 펼치는 바람의 검은 타격을 몸으로 받아 내고 되던 질 수 있다.

이는 술법이 아닌 무공이다.

대성과 영소만 수련했던 것이고, 연청이나 다른 누구도 그 둘처럼 하지 못한다.

연청의 칼집이 대성의 몸을 때릴 때마다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대성이 맞은 부위로 칼집을 딴 곳으로 던지는 것이다.

연청이 아닌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단 번에 칼집을 빼앗기거나 손에서 놓쳤을 것이다.

 

“아파!"

 

대성이 찌푸리며 말했다.

연청의 칼집은 매우 빠르다.

대성이 어떻게 움직여도 진짜 바람처럼 따라와서 때리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

대성은 몸으로 받아내고 튕겨내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연청 역시 대성을 베지도 못하고 쓰러뜨리지도 못한 채 때리기만 할 수 있다.

아주 기묘한 상황이었다.

연청은 오기가 생겨서 안 때리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대성은 이미 모든 곳을 단련한 후였다.

단 한 곳 빼고.

연청이 발로 대성의 다리 사이 급소를 찼다.

영소가 기겁을 했다.

 

“비겁하게!"

 

발에 채인 대성은 몸이 껑충 튕겨 올랐다가 도르르 굴렀다.

턱이 빠진 듯이 크게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싸움을 끝났고 조용했다.

남녀 모두가 얼굴로 저건 좀 심했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연청도 조금 미안한 표정이었다.

죽을 만큼 강하게 차지는 않았지만 약하게도 아니었다.

연청의 발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이런, 터졌나?”

 

노칠자가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영소가 대성에게 달려갔다.

그리곤 번쩍 안아들더니 냅다 달아났다.

영소와 대성을 가두고 있던 숲 그림자가 사라졌다.

의외의 상황에서 작약밭의 어른들과 연청 모두 숲그림자 펼치는 것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엇!"

 

연청이 거듭된 의외의 상황에 놀라 헛바람을 토했다.

하지만 영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뒤늦게 어른들이 쫓았지만 그 둘을 잡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영소는 이미 도망갈 길을 계산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연청은 다른 사람들의 책망을 심하게 받았다.

 

***

 

방앗간까지 도망 온 후 영소는 대성을 내려놓았다.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조바심이 가득했다.

대성은 예상했다는 듯이 피곤죽이 되어 있는 고양이를 들어 보였다.

 

“사형이 찬 건 요괴야.”

 

대성이 킬킬 웃었다.

 

“거길 찰 줄 알았거든.”

“아!”

 

영소가 풀썩 주저앉았다.

 

“난 또... 안 그래도 작은 게 아예 없어져 버리나 했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대성이 인상을 썼다.

영소는 못들은 척 시침을 뗀다.

대성은 더 갈구지 않고 요괴 묘진을 번쩍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직 요괴 묘진은 죽지 않았다.

척추를 물리자 되려 정신이 들어서 "냐아!" 소리를 날카롭게 냈다.

하지만 대성은 그대로 묘진을 베어먹어 버렸다.

 

“에이그 사타구니에 넣었던 걸...”

 

영소는 손으로 가리고 눈을 찡그린다.

대성이 작은 사람 요괴 같았다.

남아 있는 묘진의 잔해가 모래처럼 무너지더니 흩어졌다.

이 요괴는 죽어야 도망친다.

영소가 말했다.

 

“저거 또 도망간다.”

“괜찮아. 배도 부르고...”

 

대성은 벌렁 드러누웠다.

 

“이제 자자.”

 

음흉하게 씨익 웃는데, 어른 흉내다.

철썩!

영소가 대성의 배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못된 소리만 배워 가지고. 누가 들으면 뭐...”

 

대성이 비명을 지르고, 영소는 대성을 들고 폭포수 뒤 동굴로 갔다.

가면서 대성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 배만 부르면 다지? 나도 아까부터 못 먹었단 말이야. 이 나쁜 놈아.”

 

대성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불쑥 물었다.

 

“아까 생선 먹은 건 어디로 들어갔어?”

 

영소가 다시 대성의 등을 때렸다.

 

“밥, 밥 말이야.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뒤에 말은 중얼거리며 생략했는데,

바로 이 말이었다.

 

“너처럼 요괴를 먹지 않아. 이 인괴야.”

 

***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요괴의 코드가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일부지만 반복된 학습으로 보완할 수 있고, 어쩌면 발전시킬 수도 있다.

 

“요고... 요고... 어째뿌까?”

 

란선생은 신이 나서 웃었다.

대성이 기특한 짓을 했다.

요괴를 먹다니.

 

“좋아서 미치겠다!"

 

란 선생은 요괴의 코드를 학습하고 흡입하며 자기가 감정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존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

 

요괴 묘진은 끔찍했다.

달아나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태까지 몇 번 죽어봤지만 이처럼 잡아먹혀 죽은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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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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