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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숲 그림자

 

 

 

대성의 오른손은 영소의 왼손을 잡고 있고, 왼손은 요괴 묘진의 본신인 고양이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

묘진의 축 처진 오른쪽 뒷다리에는 무거운 쇳덩어리 쥐덫이 덜렁거린다.

묘진은 고통으로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뼈를 물고 있는 쥐덫이 크게 흔들리면서 갉아대니 신경이 제멋대로 날뛴다.

달군 부지깽이로 고문 받을 때보다 더 괴롭다.

너무 아파서 꺄울! 하는, 자기도 못 들어본 괴상한 소리를 냈다.

연청으로부터 숨어야 하는데 소리를 내다니.

즉시 여유 손이 없는 대성이 무릎을 밖으로 돌려서 묘진의 머리를 박아버렸다.

묘진의 머리가 공처럼 튕기고, 그걸 영소가 한 번 더 발꿈치로 튕겼다.

내심 묘진이 대성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바랐다.

바람의 검을 익히면서 발꿈치로 돌을 받고 던지던 재주였다.

그러나 대성은 놓치지 않았고 묘진만 졸도해버렸다.

영소는 조금 아쉬웠다.

지금 속도로 봐선 요괴만 없어도 달아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쉽지 않다.

숲에는 풀냄새, 꽃향기가 저녁 바람을 타고 비단결처럼 흐른다.

영소가 대성에게 속삭였다.

 

"빨리 빠져 나가자. 이사형이 들어오기 전에.”

 

이사형 연청은 바람의 검도 달인이지만 풍림화산 중에서 림(수풀)에 해당한 무공인 "숲 그림자"도 잘 쓴다.

숲 그림자는 바람의 검과 마찬가지로 영소와 대성은 구결은 알아도 쓸 수 없는 무공이다.

숲 그림자가 숲에서 쓰는 무공은 아니지만 숲에서는 위력이 더 강할 가능성도 있었다.

바람의 검이 바람이 많이 불 때 더 강해지니까.

연청이 숲으로 들어와서 숲 그림자를 사용하면 대성과 영소에게 좋을 게 없다.

 

"그걸 누가 몰라?"

 

입으로 나온 말은 아니지만 눈으로 대성의 마음이 읽힌다.

초조함이 극도에 달해있다.

 

"거기서!"

뒤에서는 연청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청은 이종무가 골라서 제자로 들였고, 조성일이 풍림원의 선봉으로 삼아서 길러온 고수였다.

자질은 출중했고 총명했으며 무공에는 탁월한 성취가 있었다.

대꾸도 안하고 달아나는데 급급한 두 녀석을 잡기 위해서, 좀처럼 쓰지 않던 힘을 끌어냈다.

이영차! 하는 순간 연청은 거의 두 배나 빨라졌다.

영소가 대성에게 손을 맡기고 달려가면서도 뒤를 살피던 참이었다.

연청이 벼락 치듯이 덮쳐 오는 게 보이자 영소는 비명을 내질렀다.

 

"오지마욧!"

 

앞으로만 달리던 대성은 나무를 돌아서 다른 나무 뒤로, 또 다른 나무 뒤로 움직이면서 연청을 따돌리려 했다.

하지만 연청은 숲에 들어오자마자 바람도 잡아둔다는 숲 그림자를 사용했다.

원래 숲 그림자는 적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대성을 대상으로는 달아나지 못하게 막았다.

대성은 가는 방향 마다 멈칫거렸다.

날은 이미 어두운데, 숲속이라서 더 어두운데, 무엇인가가 앞을 가로 막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성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이 꿈틀거리며 빠져나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네 번째는 벌써 연청에게 열 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까지 따라 잡혔다.

숲 그림자는 펼치는 사람이 더 가까울 수록 위력이 강해진다.

네 번째로 빠져나갈 때, 완전하지 못해서 대성은 영소와 함께 넘어져 여러 바퀴를 굴렀다.

영소는 밥 광주리를 놓지 않았고 대성은 요괴를 놓지 않았기에 묘한 자세로 널부러졌다.

큰 대자로 이어진 그 둘의 한쪽에는 요괴가, 한쪽에는 광주리가 있다.

주변에는 여름에 피었어야 할 작약꽃이 가득해서 꽃밭에 일부러 누운 거 같다.

검푸르스름한 하늘에는 별도 보인다.

발치로는 연청이 근엄한 표정으로 걸어온다.

 

"아씨... 요괴 그게 뭐라고...”

 

잡힌 게 분해서 영소가 작게 투덜거리는데 대성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숲 그림자가 팔방에 드리워져 있다.

 

"요괴는 못 줘!"

 

대성이 소리쳤다.

연청이 소리쳤다.

 

"이 녀석이!"

"아! 사형한테 한 말이 아니고 영소한테 알려 준 거예요.”

 

대성이 변명했다.

영소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안주면 어쩔 건데? 이사형하고 싸우기라도 하려고?"

"응!"

 

대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요괴 묘진은 기절한 채 대성의 왼손에서 축 늘어져 땅에 끌린다.

몸에 두른 이불이 반은 터여서 알몸이 보일락 말락 한다.

 

"뭐?"

 

영소는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한 표정이 되었고 연청은 더 어이가 없다.

대성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형. 이 요괴 나 줘요.“

 

연청은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잔소리 말고 바치라는 의미였다.

대성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연청은 더 압박해서 성큼성큼 걸었왔고, 대성 뒤에는 숲의 그림자가 행로를 방해했다.

붉은 작약 꽃과 흰 작약 꽃이 키 작은 대성의 가슴 높이에서 흔들린다.

연청과 영소가 나란히 보이다가 연청만 보인다.

갑자기 대성이 소리쳤다.

 

"지금!"

 

영소는 어리둥절하다가 대성의 눈빛을 받고 화들짝하면서 바로 앞에 연청을 공격했다.

바람의 검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권법이다.

주먹을 던지면 권법이고 발을 던지면 퇴법이니까.

 

"매복이냐?"

 

연청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는 물러나면서 끌어들이고 자연스럽게 뒤에 남은 하나가 뒤에서 친다.

일반 병법이라면 훌륭하다.

대성도 앞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꽃잎을 밟고 뛰어 오르는 모습이 물에서 솟구치는 잉어 같다.

연청이 익힌 원본 바람의 검과 대성이 만든 바람의 검의 대결이 되어 버렸다.

영소와 대성은 늘 함께 싸우고 어울렸기 때문에 척하면 착이다.

서로 손발을 맞춰서 대성을 공격하니 대성도 소홀하게 상대할 수가 없다.

하물며 자기가 펼치는 바람의 검보다 더 괴상한 바람의 검이다.

살펴보느라 대 여섯 번의 공격을 받아주고는 반격했다.

 

"아코!"

 

먼저 영소가 나둥그라졌고, 대성은 두 대를 두들겨 맞은 후에 튕겨 나갔다.

한 대는 왼쪽 빰이었다.

목이 돌아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대성이 연공한 바람의 검은 그 충격을 몸으로 흡수한다.

다만 연청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지는 못하다.

일곱 걸음이나 물러선 후 대성은 부풀기 시작한 뺨을 만지며 깨어진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쳇, 내가 몸만 줄어들지 않았어도. 배만 안 고파도...“

 

그러나 실제로는 탈태환골하기 전에는 더 약했고 영소한테도 많이 맞았었다.

못 이기고 지는 김에 치는 허세고 자기 기만이다.

연청이나 영소나 다 알고 있기에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는다.

 

“당장 내놔!"

 

연청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대성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을 해도 요괴를 내주지 않을 거 같았다.

이쯤 되니 연청이 오히려 궁금해졌다.

 

"너, 대체 요괴는 왜 안주려는 거냐?"

 

대성이 영소를 힐끔 보더니 말 못한다는 듯이 도리질을 했다.

그리곤 다시 범빌 듯하다가 도망쳤다.

가까운 거리다.

연청에게는 이제 매우 가소롭다.

가까운 거리에서 원본 바람의 검은 더욱 빠르다.

단숨에 대성의 뒤를 잡아서 요괴를 빼앗으려 하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쏠렸다.

영소의 긴 허리띠가 왼 발에 감겨 있었다.

영소는 나뒹굴면서 미리 허리띠를 풀어 던져 놓았던 것이다.

영소가 나 잘했지 하는 듯이 웃다가 잡고 있는 허리띠 채로 날아갔다.

연청이 중심을 잡으며 발로 채서 던져 버린 때문이었다.

 

"요것들!"

 

그러나 그 간발의 차이로 대성은 연청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앞으로 던져진 영소를 받아서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까지 한다.

화가 난 연청이 보검을 뽑아 들었다.

영소가 비명을 질렀다.

 

"조심해! 이사형이 우릴 죽이려 해!"

 

대성은 검이 뽑히는 소리를 듣고 벌써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이놈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연청은 영소가 하는 말에 더 화가 났다.

자기가 그 둘을 죽일 리 없다.

검은 왼손에 쥐고 빈 칼집을 오른손으로 잡고 영소부터 한 대 때렸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영소가 꽥!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달아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무공으로 펼치는 바람의 검은 연청이 펼치는 것에 비해서 신통한 점이 많다.

연청도 보면서 감탄을 했다.

더구나 두 놈이 서로를 잡아당기거나 밀거나 하면서 협력하여 연청을 상대하는 것도 절묘했다.

하지만 그 정도. 영소와 대성은 완전히 달아나지도 못한다.

연청은 그들을 잡지 못하지만 칼집으로 때릴 수는 있었다.

 

"아야! 악!"

"아이고!"

 

자지러지면서도 두 놈은 숲속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약밭 속을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그들의 몸은 충격을 잘 받아낸다.

약 오른 연청이 더 세게 때려도 효과는 비슷했다.

화가 끝까지 난 그 둘이 돌아서서 달려들다가는 더 두들겨 맞고 또 도망친다.

그래도 숲 그림자 때문에 작약밭을 벗어나지 못한다.

작약밭이 초토화되어 갔다.

대성의 손에 들린 요괴도 정신이 들었다가 맞아서 기절하기를 반복한다.

때리는 사이에 연청의 화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때릴 수록 대성과 영소의 움직임은 점점 더 정밀해지고 기묘해지는 중이었다.

연청은 그 둘의 움직임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우쳤다.

구결만 알고 한 번씩 지나가다 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속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때려도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마음 놓고 때렸다.

대성이 젖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젖 먹던 힘까지 다 뽑아 쓴 모양이었다.

연청의 칼집에 어깨를 두들겨 맞았는데 폭 고꾸라졌다.

영소가 그 다음 매를 몸으로 때우면서 대성을 뒤에서 안아 붙잡았다.

 

"이사형 이 나쁜 놈아! 여자를 때리는 나쁜 놈아!“

 

영소는 악을 쓰면서 욕하다가 머리며 허리, 팔, 다리 빠짐없이 골고루 맞았다.

대성이 웅크러져 버렸으니 혼자 두고 도망가지도 못했다.

연청이 칼집으로 둘의 머리를 한 번 씩 때리고 말했다.

 

"끝났냐?"

 

영소는 맞은 게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둘러보니 어느 새 작약밭은 사람들로 에워싸였다.

매섭게 노려보는 엄마가 보이고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보인다.

그들은 영소가 맞는 것을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했다.

어찌된 게 이 풍림원에서의 사부의 무남독녀 정도는 아무 방패막이가 못 된다.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땡강은 부릴 수 있지만 하소연은 못한다.

영소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다들 나만 미워해.”

 

평소 느끼던 서러움이 치밀어 올라 큰 소리로 울었다.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요괴는 이자씩이 훔쳤는데 맞기는 내가 더 많이 맞고... 엉엉.”

 

대성은 몸이 작아졌고 영소는 크니까 더 맞은 거다.

 

(그건 네가 못 되어서지.)

 

연청은 윽박지르려다가 너무 잔인한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영소는 주저앉아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었다.

머리는 대성의 머리에 기댔다.

연청은 못됐지만 강한 영소가 울음을 터뜨리자 적잖게 당황했다.

강문설을 쳐다보자 강문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더 때려요. 이 번 기회에 때려서 사람 만들어요.“

 

그 소리에 영소가 숫제 통곡을 한다.

대성의 목을 껴안고 우는데 대성의 입가에 피가 가득했다.

 

"악!"

 

영소가 놀라 소리치며 대성의 뺨을 잡았다.

연청과 어른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입으로 피를 토했다면 내상이다.

다만 연청은 대성에게 내상을 입힐 정도로 공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연청을 책망하듯이 보았다.

 

"다쳤느냐?"

 

당황한 연천이 자기도 모르게 다가갈 때였다.

 

"난 너 안 미워해.”

 

대성이 피 묻은 입으로 영소에게 말했다.

그리곤 영소가 어떤 반응도 하기 전에 연청의 왼팔을 바깥에서 감아 잡더니 뒤로 한 바퀴 돌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의 기척도 없는 암습이었다.

연청의 몸이 절로 반응하여 뒤틀림을 바로 잡는데 대성의 발이 연청의 오금을 깊이 밟고 튕겨버렸다.

연청은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엇!"

 

놀라는 소리가 연청과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성은 어느 새 영소의 손을 잡고 연청에게서 멀찍이, 에워싼 사람들로부터도 거리를 둔 곳으로 달아났다.

몸이 고꾸라지기 전보다 더 날쌨다.

 

"더 때려요.“

 

강문설이 냉정하게 말했다.

연청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서, 검은 땅에 깊숙이 박아버리고 칼집을 오른손으로 바꿔잡았다.

맞은편에서 대성이 형형한 눈으로 쏘아보고, 영소는 대성의 뒤에 병풍처럼 서있다.

 

"제대로 된 병법은 배우지도 않고 간교한 술책만 쓰는구나!"

 

연청이 소리쳤다.

대성이 마주 소리쳤다.

 

"배고픈데 어쩌라고요.”

 

다들 이게 뭔 소린가하는데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소리쳤다.

 

"요괴 궁둥이하고 왼발이 없다!"

"세상에 요괴를 먹었어.

 

요괴가 사람을 먹는 경우는 흔하다.

그 반대의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재주도 좋다. 먹는 기척도 안 보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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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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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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