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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폭포에서 실랑이

 

 

 

"It’s so cool. 시원하다.”

 

폭포수 아래 연못에 몸을 담근 대성은 헤엄치며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소는 혼자 동굴 안을 청소하면서 불만으로 입이 툭 튀어 나왔다.

방앗간에서 나무토막 의자도 훔쳐 옮기고, 긴 나무판자도 가져다가 돌을 괴어 침대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꼴 보기 싫으니까 뭐라도 걸쳐!"

"Nobody is here. 아무도 없어.”

 

대성은 아예 대놓고 영소 보란 듯이 물에 누워서 다리를 파닥거렸다.

 

"쬐그만한 게.”

 

곁눈으로 슬쩍 본 영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성의 지금 모습은 여섯, 일곱 살 쯤 된 빡빡머리 꼬마일 뿐이다.

대신 빨래 말리는 곳에서 쓸어온 옷이며 천들을 어떻게 동굴로 옮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폭포수 밑으로 들어가면 다 젖어버릴 텐데, 안에서는 말리기가 쉽지 않다.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옷이 다 젖는 것도 문제다.

잠시 놀다 갈 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는데, 막상 숨어서 살려니 번거로운 게 한 둘이 아니다.

성가시고 짜증나서 옷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고 대성이 헤엄치는 근처 바위에 앉았다.

멀리서 구름이 풍림원을 감싼 모습이 큰 장벽처럼 근사하다.

머리 위 하늘에도 옅은 구름이 이리 저리 흐른다.

의도치 않게 된 현상이지만 풍림원이 무릉도원처럼 느껴졌다.

영소가 가만히 앉아있자 대성이 바로 밑에 와서 헤엄쳤다.

빡빡머리 하얀 몸뚱이가 물속에서 꿈틀거리니 이상한 물고기 같아 보였다.

상체를 물밖에 낸 대성은 영소가 앉은 바위에 기대어 함께 가을을 감상했다.

영소가 reach out her hand. 손을 내밀었다.

대성이 손을 건네주고, 둘은 손을 잡은 채 서로를 보지는 않고 가만히 가을 정취를 즐겼다.

 

"나...

"분위기 깨는 이상한 소리면 말하지 마. 난, totally exhausted. 오늘 완전히 지쳤어. 놀라고 부끄럽고, 실은 너하고 아웅다웅할 힘도 없어.

 

대성이 말문을 열려는 데 영소가 재빨리 먼저 말했다.

하지만 대성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I’m starving. 배고프다.”

"좀 참아. 어두워지고 나서 주방 털자.”

 

영소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성을 다독거렸다.

지난 5년간 한 번 도 없던 일이다.

대성은 뭉클하여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데 영소의 눈에 근처에서 제법 큰 물고기들이 대성에게로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물고기다!”

 

영소가 반갑게 소리쳤다.

대성이 조금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방금 내가 오줌 쌌어.”

"에이 씨!"

 

영소가 대성의 어깨를 탁 쳤다.

 

"잡아.”

"내 오줌 먹었을 텐데...”

"그러니까 빨리 잡아! 더 먹기 전에!"

 

영소가 대성을 발로 확 밀어 버렸다.

영소의 힘에 못 이긴 대성이 풍덩하고 놀란 물고기들은 첨벙하며 달아났다.

 

"Go get’em tiger. 잡아! 힘내!"

 

영소가 소리쳤다.

대성은 영소의 응원이 욕으로 바뀌기 전에 물고기를 잡으려 손발을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세 발자국도 가기 전에 물고기들을 다 흩어지고 말았다.

 

"에휴, 저 병신...”

 

영소가 결국 욕을 하고 펄펄 뛰었다.

대성도 화가 나서 소리쳤다.

 

"물속에서 어떻게 물고기보다 빨리 움직여? 자신 있으면 네가 해보던가!"

"뭐!"

 

영소가 폭발했다.

 

"내가 잡기만 해봐라.

"해봐! 해봐!"

 

대성이 대들었다.

이미 물고기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소가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대성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It’s never gonna happen 네가 잡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잡았다!"

 

영소는 물고기가 아닌 대성의 팔을 나꿔챘다.

 

"어!"

 

놀랐지만 이미 늦었다.

팔이 잡힌 대성은 얼어붙어 버렸다.

물에 흠뻑 젖은 채 일어선 영소는 대성보다 거의 두 배나 키가 컸다.

거인처럼 보이는 영소가 노려보자 대성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영소가 때릴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말했다.

 

"잡을 거야 말거야?"

"잡을 게.”

"너, 약속했다.”

 

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소를 올려다보는 게 영 부담스럽다.

물에 흠뻑 젖어 살이 비치는 영소의 모습에 가슴도 쿵쾅거렸다.

 

"못 잡기만 해봐라.”

 

물 밖으로 나가면서 영소는 살에 달라붙은 옷을 손톱으로 잡아당겼다.

매우 고혹적이었다.

영소의 뒷모습을 보던 대성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너, 궁둥이 크다.”

"뭐래. 쪼끄만 게.”

 

영소가 새침하게 퉁겼다.

 

폭포수 속 동굴로 들어간 영소는 침대로 쓸 널판지를 다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판자 아래에 옷이며 얇은 이불 같은 것을 넣어서 폭포수를 통과했다.

좀 젖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영소는 방앗간과 숲속에 있는 목재간을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것은 무조건 챙겨왔다.

그 동안 대성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고심했다.

여러 방법을 썼다.

다시 오줌을 싸서 물고기를 불러 보기도 했고, 돌을 던져서 잡기도 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물고기를 보고 돌을 던졌는데도 돌은 물에 부딪히며 빗나가기 일쑤였다.

나뭇가지를 창처럼 쓰려고도 했지만 대성의 키가 작아서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한 마리도 못 잡고 푸닥거리만 하는 셈이다.

영소가 오갈 때 마다 욕먹을까 긴장되어 눈을 핼끔 거렸다.

물고기는 못 잡고 못 잡은 데 대해 할 만한 변명거리만 머릿속에 수십 개나 쌓였다.

배는 점점 더 고파졌다.

란 선생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란 선생은 바쁘다며 대성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성은 한참을 물에서 헤엄치며 초조하게 보냈다.

해가 늬였해졌을 때 쯤에는 죽을 것 같은 허기가 느껴져 많이 다급해졌고, 마침내 방법을 찾았다.

어쩌면 머릿속의 통증이 사라져 바람의 구결을 만들었던 그 이전의 총명이 돌아왔기 때문일 거다.

아마도 물속에서 헤엄치며 물에 대해서 절로 익숙해진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가만히 느껴보니 물에도 결이 있었다.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길도 결을 따라 만들어져 있다.

물고기들의 몸짓과 지느러미짓, 헤엄친다는 건 사람이 땅에서 걷는 것처럼 물의 길을 여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고기들은 문을 열듯이 물의 길을 열고서 달리는 것이다.

그 사실을 느낀 후에 대성은 폭포를 자세히 보았다.

간혹 어떤 물고기들은 뭔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폭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거슬러 올라갔다.

대성의 생각이 옳았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에조차도 그에 거스르는 결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대성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으면서, 발 근처의 송사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길의 문을 어떻게 여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곤 마침내 어느 문이 열렸는지에 따라서 그 길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헤엄치는 송사리 한 마리를 표적으로, 대성은 고개를 숙여 손을 뻗었다.

송사리는 달아나려 했지만 대성의 손아귀로 쏙 들어왔다.

대성이 길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쪼그만한 거 자꾸 보고 있으면 뭘해!"

 

동굴 근처에서 영소가 신경질을 부리며 소리쳤다.

대성이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이 물에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거 아니야!"

 

대성은 쏘아붙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송사리 잡은 것을 영소가 볼 수 있도록 들었다.

눈 밝은 영소가 보고 코를 찡그렸다.

대성은 저 버릇 때문에 영소가 더 못생겨지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꾹 참았다.

 

"쪼그만 거 맞네.”

 

철딱서니 없는 건지 괄괄함이 천성인지 영소는 자기가 한 번 한 말을 좀처럼 꺾는 법이 없다.

 

"그럼 이건?"

 

대성은 송사리를 던져 버리고 말했다.

 

"뭘?"

 

영소가 어리둥절할 때였다.

대성은 갑자기 물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다른 쪽에서 일어섰다.

손에는 자기 팔뚝 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How could you do that, 어떻게 한 거야?"

 

놀란 영소가 펄쩍 뛰었다.

대성은 대답대신 물고기를 영소에게 휙 던져주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대성이 움직이는 모습이 그림자가 물 위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빠르고, 심지어 물결도 거의 일으키지 않았다. 대성이 물고기라도 되어 버린 듯했다.

 

"우와...”

 

영소가 전에 없던 감탄을 내뱉었다.

대성은 물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밖으로 물고기들을 던졌다.

영소는 허둥지둥하면서 물고기들을 받으며 소리쳤다.

 

"그만, Enough is enough. 그만해도 돼.”

 

하지만 대성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영소한테 욕먹은 것을 분풀이라도 하는 듯이, 자기를 과시하는 듯이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서 던졌다.

영소는 급한 김에 물고기들이 다시 물로 뛰어들지 못하게 발 뒷꿈치로 머리를 밟았다.

 

***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풍림원 본채 건물 쪽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아까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영소는 나뭇가지에 생선을 꿰서 구웠다.

연기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저녁 바람이 금방 흩어버려서 들킬 것 같지는 않았다.

대성이 많이 먹겠다니 여러 마리를 동시에 굽는데, 대가리가 멀쩡한 생선이 없었다.

불 앞에서 이불을 쓰고 쪼그려 앉은 대성은 생선 굽는 냄새에 침을 꼴깍인다.

 

"밥 좀 훔쳐오면 안 돼?"

"밤에.”

 

대성이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영소가 대답했다.

 

"솥하고, 그릇, 간장, 된장, 고추장 가져와야 할 게 많아. 반짓고리도.”

"그럼 차라리 돌아가서 방에 꼭 쳐박혀 있다가 밤에 사람 없을 때만 밖에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대성의 말에 영소가 한심한 듯이 쳐다보았다.

 

"왜?"

 

대성이 벌컥 소리치며 항의했다.

 

"차라리 도망을 다녀야지 쫀쫀하게 숨어있자고? 남자가 되어가지고.”

"너, 여기 동굴에 있는 것도 숨어 있는 거야.

"동굴로 도망쳐 온 거지.

 

영소는 때릴 듯이 구운 생선을 대성에게 건넸다.

대성은 원래 체격으로도 싸워서는 영소를 못 이겼다.

작아진 지금은 어림도 없는지라 입을 꾹 다물고 생선을 받았다.

배가 너무 고프고 밥 생각이 간절했다.

대성은 여태까지 단 한 끼도 굶어본 적이 없었다.

구울 때 냄새는 분명히 좋았는데, 생선은 맛이 없었다.

뭐든 잘 하는 영소는 맛없을 게 분명한 생선도 맛있게 먹는다.

 

"맛없어.”

"네 오줌 먹은 물고긴가 보다.”

 

투덜거리는 대성을 영소는 무시했다.

 

"네가 요리를 잘못해서지.”

"내가?"

"그래 네가.”

"You’re a such douchbag. 참 찌질하다.”

 

영소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대성을 보니까 정말 못 먹고 있었다.

구운 생선은 맛있기만 한데 배고파 죽겠다면서 못 먹는 건 정상이 아니었다.

영소는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관심 없는 척 생선만 발라먹으며 곁눈질을 해도 대성은 침울한 표정으로 생선을 아예 놓아버린다.

 

"가시 발라줄까?"

 

넌즈시 말했는데도 대성은 고개를 도리질했다.

 

"맛없어.”

 

영소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엷은 구름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밝다. 땅거미는 숲 위에만 걸쳐있다.

영소는 용기를 내서 일어섰다.

 

"내가 너 때문에 도둑질을 다 한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

"같이 가.”

"옷도 없는 데 가긴 어딜 가? 벗고 다닐래?"

 

영소가 핀잔을 줬다.

대성은 어이없는 이유를 댔다.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다고.”

"내가, 씨... 너 물고기 잡은 성의를 봐서 봐준다.”

 

영소는 이불로 대성을 둘둘 말아서 안았다.

그 시간에 대사형 조성일은 풍림원의 정문 밖을 손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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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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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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