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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쥐덫에 걸린 고양이

 

 

 

강문설이 묘진을 만난 곳은 풍림원의 큰 주방이었다.

설거지를 마친 찬모들은 내일 아침에 쓸 재료들 주변에 쥐덫을 촘촘히 깔아놓았다.

그 바람에 주방식구들이 아니면 밤에 혼자 주방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강문설도 주방을 바깥에서만 기웃거겼는데,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들여다보니 고양이 한마리가 쥐덫에 걸려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른쪽 뒷다리가 틀에 끼여서 피가 난다.

그런데도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나머지 세 발로 틀을 벗겨 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강문설과 눈이 마주치자 고양이는 몸이 굳어졌다.

강문설은 장검을 뽑아서 고양이의 목에 걸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네가 바로 그 요괴구나!"

 

요괴 묘진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애처롭게 축 늘어졌다.

강문설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별장이 수색도 하지 않아서 별나다 했더니 네가 여기 와서 걸려들 줄 알고 있었던 거였네.“

 

묘진이 사람 소리로 말했다.

 

"Don’t give me that. 조롱할 것 까진 없잖아.”

 

묘진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주 풀죽은 모습이었다.

강문설은 검을 거두고 등을 찾아서 불을 밝혔다.

주방 바닥에는 온통 쥐덫이 깔려 있었다.

묘진이 밟은 쥐덫은 불쏘시개로 쓰는 마른 솔잎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묘진은 바닥의 쥐덫을 피해서 솔잎을 밟고 움직이다가 걸렸다.

강문설은 웃음을 참고 말했다.

 

"우리 집 쥐덫이 좀 특별하긴 하지. 군에서 전마 발목 자르는 틀이니까.“

 

풍림원 대장간에서 농구나 무기 등 쇠로된 걸 만드는 장육자는 이종무를 따라서 군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쥐덫을 만드는 법을 몰라서 전마의 발목 자르는 도구를 개조해서 쥐덫을 만든다.

묘진은 앙칼지게 이빨을 드러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강문설이 요란하게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은 걸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용타, 용타. 요괴 뼈가 야무지긴 하네. 말 다리도 깨부순다는 우리 쥐덫에도 잘리지 않았으니...”

 

묘진이 사람 소리로 말했다.

 

"나를 죽여 봤자 좋을 것도 없어. 난 죽어도 또 살아난다는 걸 알 테지?“

 

강문설은 발 밑의 쥐덫들을 칼집으로 툭툭 쳐서 밀어버리고 가까이 앉으며 말했다.

 

"알지. 그런데 나도 요괴를 잘 죽여. 살아나면 또 죽일 거고.”

 

묘진이 끔찍하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강문설은 쇠로된 부지깽이를 찾아들었다.

 

"사람이 가장 잔인해. 요괴들은 좀 순진하지. 바보 같고.“

"I agree with you. 그건 맞아.”

 

요괴 묘진이 탄식을 했다.

아궁이 옆에는 동그란 부싯돌이 있는데 그 크기가 국그릇 정도였다.

강문설은 부지깽이로 부싯돌을 톡톡 쳐 불꽃이 튀게 했다.

그 후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바람을 천천히 내보냈다.

부지깽이 끝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고문하려고?"

 

요괴 묘진이 두려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Tell me the better way. 더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하든지.“

"내 몸을 지지려고?"

"응, 묻는 말에 대답 안하면 귓구멍을 지지고 대답이 마음에 안들면 쓸모없는 목구멍을 지지려고.”

 

강문설이 미소를 머금었다.

요괴 묘진이 뾰족하게 외쳤다.

 

"차라리 나를 죽여!"

"You are not supposed to say that. 그건 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강문설은 죽으면서 도망가는 재주를 가진 요괴가 죽이라고 외치며 악쓰는 것이 가소롭다.

사람은 예민해지면 예민해진 대로, 둔감해지면 둔감해진대로 잔인할 수 있다.

천진한 어린아이가 잔인하다면, 점잖은 어른들은 때로 잔혹하다.

 

***

 

"못가!"

 

대성이 영소에게 속삭였다.

주방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대성은 사모가 묘진을 발견하고 하는 말을 듣고 즉시 영소를 멈추게 했다.

이럴 때는 영소가 말을 잘 듣는다.

 

"지금 주방에 사모님이 와 계셔.”

 

영소가 귓속말로 물었다.

 

"엄마가 왜?"

"우리 찾으러 나왔다가 요괴를 찾았어. 주방에서.“

"요괴가 주방에? 아! 요괴도 배고파서 주방으로 왔구나. 하여간 짐승은 먹이 때문에 죽는다니까.”

 

영소가 속삭였다.

대성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요괴도 잡고 밥도 먹었을 텐데.“

 

주방으로 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소리가 목 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기색이 조금 묻어 나왔고 영소가 놓치지 않고 감지했다.

 

"이때다 싶어 내 탓이지? 비겁하게 그러지마.”

 

영소가 처마밑의 그늘에 숨으며 물었다.

 

"엄마는, 요괴 죽였어?"

"아니, 고문하기 시작했어.“

 

고문이라는 말이 천진한 소녀를 흥분시킨다.

 

"가서 보자!"

 

영소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대성이 물었다.

 

"들키지 않을 자신 있어?"

"엄마한테는 안 들켜.”

 

많이 속여 본 영소가 자신있게 말했다.

대성이 귓볼에 코를 대고 속삭였다.

 

"대사형이 오고 있어.“

 

영소가 찔끔했다.

대사형 조성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영소나 대성은 대사형 조성일의 끝을 모른다.

사부 이종무가 없었다면 대성은 조성일을 사부처럼 모셨을 것이다.

영소가 슬그머니 내뺄 채비를 하면서 물었다.

 

"배 많이 고프지?"

"응.”

"내일까지 참을 수 있겠어?"

"아니.“

 

대성은 짧게 대답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영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색을 살피는데 대성의 배에서 꾸룩소리가 나고 목구멍에서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주방이 멀지 않아서 음식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대성이 결심한 듯이 말했다.

 

"Just do as I say. 내 말하는 대로 해.”

"뭘?"

"너는...“

 

설명을 들은 영소는 초조한 기색이었지만 대성은 단호했다.

이정도로 확신에 차 있을 때는 영소도 대성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대성은 땅으로 내려와 머리에서부터 이불을 쓰고 이불자락으로 목을 둘렀다.

그러자 괴상한 장포를 입은 것 같기도 하고 어둠 속의 하얀 유령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얼굴에서 눈만 반짝거리고, 움직일 때마다 이불자락 속으로 몸도 언 듯 언듯 보였다.

영소에게 눈짓을 하고, 대성은 먼저 바람의 검을 펼쳐서 달려 나갔다.

영소는 하나, 둘, 셋을 헤아리고 주방의 뒤쪽을 향해 달렸다.

먼저 간 대성이 주방은 지나서 다른 건물 앞을 돌면서 고함쳤다.

 

"불이야! 불이야!"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부지깽이로 묘진을 고문하던 강문설은 풋! 하고 웃었다.

비명을 참느라고 몸을 벌벌 떨던 묘진이 이빨을 드러내며 앙칼진 표정을 지었다.

 

"성동격서, 요괴가 진을 사용하더니 병법도 쓸 줄 아네. 밖의 저 요괴는 언제 들어온 거야?"

 

강문설이 웃으면서 강문설이 물었다.

빨간 부지깽이를 보면서 묘진이 몸을 움츠렸다.

 

"난 몰라. 여기 온 건 나 뿐이야. 진짜야. 난 언제나 혼자 움직여.”

"그럼 뭐 밖에 저것...들은 대성이나 영소라도...”

 

대꾸하던 강문설은 부지깽이를 바닥에 던졌다.

순간 주방의 뒷문이 확 열리더니 무언가가 들어왔다.

강문설은 대뜸 한 걸음 쭉 나아가서 멱살을 잡았다.

정말 영소였다.

 

"컥!"

 

영소가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 손에 매달렸다.

대성과 함께 바람의 검을 익힌 영소였지만 피할 틈도 없었다.

강문설은 영소를 치켜들고 호통 쳤다.

 

"어디 계집애가 도둑고양이처럼 밤에!"

 

영소가 축 늘어지면서 강문설의 손을 탁탁 쳤다.

강문설은 그제야 손을 조금 풀어주었다.

 

"대성이 배고프대요.“

 

영소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덜 떨어진, 밥 퍼주는 년 같은 소리를 했다.

강문설은 이마를 짚었다.

발랑 까지면 까지기만 하든가, 덜 떨어져서 남자한테 홀라당 넘어간거면 그것만 하든가.

그때 주방의 앞문이 또 벌컥 열리더니 바람이 안으로 확 몰아쳤다.

 

"이녀석!"

 

대성이라고 지레 짐작한 강문설이 호통 치면서 몸을 홱 돌렸다.

 

"엄마야!"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한쪽 구석으로 뛰었다.

대성은 보이지 않고 하얀 귀신이 주방으로 날아들었고, 쥐덫에 걸려 있는 요괴 묘진을 휘감아서 뒷문으로 날아가버렸다.

검술 명가인 진주 강가의 딸로 여장부인 강문설이지만 귀신은 무섭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했지만 영소를 찾아서 고개를 돌렸는데, 영소도 광주리 하나를 들고서 뒷문으로 달아나는 중이었다.

잡혀 있으면서도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게 그 틈에 남은 밥이 어디 있는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풍림원에서는 저녁에 먹다 남은 밥으로 새벽에 미음을 끓여서 일찍 일하는 사람들이 먹는다.

영소가 들고 튄 광주리에는 미음 끓일 밥이 가득 들어있다.

여전히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강문설은 자기가 대성의 장난질에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아직 혼례도 안 치른 것들이, 딸년은 서방 될 놈과 함께 친정을 털었다.

아까 딸년은 요괴를 죽여서 도망치게 만들었고, 그 짝 되는 놈은 요괴를 훔쳐가 버렸다.

 

"이것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강문설이 쇠로된 부지깽이를 다시 주워들며 이를 갈았다.

어느 틈에 왔는지 조성일이 주방에 들어서며 물었다.

 

"사모님, 요괴는...?"

"대성이 놈이 훔쳐 갔어요.”

 

이종무의 큰 제자인 조성일이 강문설보다 나이가 조금 많다.

그래서 강문설도 남편의 제자기는 하지만 늘 존대를 해왔다.

조성일은 그답지 않게 어리둥절했다.

 

"대성이 왜 요괴를 훔쳐갑니까?"

"천방지축이 하는 짓을 누가 알겠어요?"

 

강문설이 탄식했다.

 

"조별장님, 이것들을 몽땅 잡아다가 버릇을 좀 고쳐주세요.”

 

조성일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연청이 대성과 영소를 뒤쫓는 중이었다.

뒤쳐진 영소가 고함쳤다.

 

"같이 가!"

 

대성은 몸이 작아지기는 했지만 더 단단하고 잽싸졌다.

힘도 전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밥 바구니를 든 영소가 쥐덫에 걸린 요괴를 든 대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밥!"

 

용소가 급히 외치자 대성이 휙 돌아와서 손을 잡았다.

그 뒤에는 연청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대성도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니 어둠 속을 날아가는 유령 같았다.

탈태환골의 효과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배는 고파도 힘을 쓰니 모든 게 자연스럽고 점점 더 익숙해졌다.

영소가 대성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 미쳤어? 이 요괴는 어디에 쓰려고 가져 온 거야?"

 

원래 계획에는 성동격서로 밥만 훔쳐오는 거였다.

대성은 대답대신 더 힘껏 달렸다.

짧은 거리라면 연청에게 순식간에 따라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가 멀면 술법에 가까운 연청의 바람의 검은 속도가 많이 느려진다.

대성의 바람의 검은 무공이라 할 수 있기에 그런 단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성은 그런 점을 잘 알기에 조금만 더 달리면 연청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We can do it. 할 수 있어.”

 

대성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숲이 코 앞이었다.

연청은 앞에서 달려가는 허연 것이 정말 대성인지 의심스러웠다.

대성은 이미 어른만큼 컸는데 저 모습은 너무 작다.

처음에는 또 다른 요괴가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괴가 바람의 검을 펼칠 수는 없다.

조금 색달라 보이지만 영소의 손을 잡고 달리는 허연 덩어리는 분명히 바람의 검을 펼치고 있다.

성미 나쁘기로 유명한 영소가 대성이 아닌 사람의 손을 잡을 리도 만무하니 귀신 같은 덩어리는 대성이다.

탈태환골하고 작아졌다더니 정말 작아졌다.

그런데, 대성의 구결로 만들어진 바람의 검을 연청이 따라잡지 못하는 중이었다.

연청은 대성이 돌 던지기에서 시작하여 이제 발가락으로 몸을 던지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하고 생각했다.

급하게 소리쳤다.

 

"막내야! 요괴만 놓고 가라. 늙은 요괴다. 힘을 회복하면 너희들이 감당 못해.”

 

대성은 대꾸도 하지 않고 도리질 치며 숲으로 뛰어들었다.

연청은 급하기도 하고 대성을 잡지 못하자 화가 치밀었다.

잡히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속도를 더했다.

숲에 가면 숲에 이는 바람을 잡아두는 숲 그림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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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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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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