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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탈퇴환골?

 

 

 

영소는 대성을 부축하고 약당으로 갔다.

풍림원에는 농민들이 늦가을에 채집해온 약초들을 사들여 말리고 보관하는 약당이 있었다.

책임자인 노노인은 침과 뜸을 쓸 줄 알았다.

약은 물론이다.

영소는 노노인한테 약을 배운다.

 

"또 쓰러진 거냐?"

 

노노인은 조그마한 얼굴에 쥐처럼 눈을 반짝이며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는 질문을 했다.

대성은 지난 3년 동안 머리가 너무 아프면 아무데서나 기절하곤 했다.

그때마다 영소가 들쳐 없고 약당으로 뛰어왔었다.

 

"Something must be wrong 이번엔 뭐가 영 잘못 됐나 봐요."

 

영소가 걱정을 섞어 말했다.

노노인이 의아한 듯이 보았다.

그 전에도 영소는 기절한 대성을 들고 왔다.

그러면서 항상 대성은 아무렇지 않다며 신경질을 부렸었다.

 

"He runs a fever 열이 많이 나요."

 

영소는 노노인에게로 대성을 떠밀었다.

싫은 걸 억지로 떠맡고 있다가 떨쳐내는 느낌과 넘겨주기 싫은 걸 마지못해 건네주는 느낌이 공존했다.

영소의 코끝에는 땀이 달려 있었다.

노노인이 영소에게서 건네 받은 대성의 몸은 매우 뜨거웠다.

 

"Do I have a fever 나 열 나는 건가?"

 

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고 감각은 솜털이 흔들리는 것도 느껴질 정도로 선명했다.

자기 몸이 뜨겁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대성이었다.

노노인은 대성의 맥을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영소를 시켜 조성일을 불러 오게 하였다.

영소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조성일이 오고 나서 영소는 또 아버지 이종무를 부르기 위해 달려갔다.

약당으로 풍림원의 주요 인물이 모여들었다.

대성은 옷을 모두 벗고 있었다.

침대의 이불이 대성의 몸에서 나온 열기로 누렇게 변색되는 중이었다.

몸에 손을 대기 어려울 만큼 열이 난다.

그런데도 대성은 오히려 정신이 말짱했다.

이종무도 이런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다만 이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은 죽고 말거라는 건 분명했다.

이종무가 속으로 탄식을 삼키고 물었다.

 

"할 말은 없느냐?"

 

조성일과 연청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영소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Am I in trouble 저 혼낼 건가요?"

 

대성은 건조한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리가."

 

이종무의 대답을 듣자마자 대성은 입을 열었다.

 

"저 영소하고 입 맞췄어요."

"저 바보가! 비밀이라더니."

 

울던 영소는 벌컥 소리쳤다.

하지만 걱정이 되어서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 이종무의 눈치를 살폈다.

연청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에게 영소와 대성은 멀쩡할 때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둘이 좋아서 붙어있는데 언제 해도 할 짓이었다.

하지만 사부가 남길 유언이 없느냐고 물은 셈인데 입 맞췄다는 고백을 하는 녀석이라니.

영소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사실의 순서를 뒤바꿔 말했다.

 

"바보가 저한테 혼인하재요. 그래서..."

"It’s about time 그럴 때가 됐지. I have done too 나도 그랬어."

 

이종무가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

 

영소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성은 씨익 웃더니 갑자기 실이 끊어진 것처럼 잠들어버렸다.

이종무가 노노인에게 물었다.

 

"열을 다스릴 수만 있으면 방법이 나올 듯도 한데, 어떻게 될 거 같소?"

 

이종무는 대성을 거의 포기했다가 기어코 살려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듯했다.

노노인이 골똘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말로만 들었던 탈퇴환골 증상과 비슷합니다.“

 

이종무 대신 조성일이 물었다.

 

"영약이나 영물의 내단 같은 걸 복용해야 탈퇴환골 하지 않습니까?"

 

듣고 있던 연청이 이의를 제기했다.

 

"탈퇴환골이 아니라 탈태환골 아닙니까?"

"제대로 알아들었으면 됐어. 노칠자님은 '태'를 늘 '퇴'라고 하시니까."

 

조성일의 대꾸에 연청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감히, 사형은 그럼 왜 탈퇴환골이라고 하냐는 말은 못했다.

노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몸은 신비하지요. 영약에 의해 변하기도 하지만 고작 침 하나에도 큰 변화가 생기니까요. 탈퇴환골은 무엇으로든 촉발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영소가 기대에 부풀어 끼어들었다.

 

"그럼 탈퇴환골한 사람이 아주 많겠네요."

"I haven’t seen anyone yet 난 아직 한 사람도 못 만나봤다."

 

노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별똥별이 매일 하늘에서 떨어지지만 손에 쥔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렇게 길게 말 안해도 알아들어요."

 

영소가 못마땅한 듯이 투덜거렸다.

이런 점은 대성과 영소가 똑 같다.

쌍으로 겪다보니 모두에게 익숙하다.

이종무는 대성의 몸에 손을 대고 변화를 읽었다.

 

"탈퇴환골인지는 몰라도 몸이 좋게 변하는 중인 건 맞구나."

 

이종무마저 탈퇴환골이라 했다.

연청은 탈태환골이 탈퇴환골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탈퇴환골은 대성이 죽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한데 그 시간에 풍림원은 이상한 백운에 포위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종무가 먼저 낌새를 알아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원무사가 달려와서 보고 했다.

 

"장군님, We’ve got a situation 큰일 났습니다."

 

땡 땡 땡

긴급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병장기를 갖춘 무사들과 노복들이 일터에서 달려왔다.

일부는 담장으로 달려가 경계하고 탐색했다.

연병장으로 몰려든 나머지는 조성일의 지시에 따라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풍림원 내부의 정해진 장소에 은신했다.

영소는 불덩어리 같은 대성을 이불에 둘둘 말아서 안고 피신처로 달려갔다.

대성이 아픈데 갑작스런 이런 변고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풍림원에 적이 침입한 적도 없었다.

영소는 걱정과 불안, 분노를 정체 모를 적에게 옮겼다.

속으로 ‘어떤 새끼들인지 모르지만 너희들 다 죽었어.’ 하고 소리쳤다.

무려 청혼을 받은 날이다.

It ruined everything 그것들이 몽땅 망쳐버렸다.

논리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보이지 않음에도 영소는 모든 원망을 침입자에게로 돌렸다.

 

"문을 열어라."

 

이종무는 호원무사들이 닫아버린 정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담장 바깥에도 흰 뭉개구름이 가득하다.

정문 밖 하늘에는 검푸른 빚이 감도는 구름이 떠있는데 가끔 뇌전도 번득였다.

조성일이 방위를 살피곤 말했다.

 

"뇌정멸운살진입니다."

 

연청이 긴장한 표정으로 이종무를 보았다.

 

"군진이잖습니까?"

 

연청은 이종무가 군에서 나온 후에 받은 제자다.

그래도 전장에서 쓰이는 병법과 진법은 배웠다.

뇌정멸운살진은 강호 무림의 진이 아니라 나라 간에 전쟁할 때 사용하는 군진이었다.

연청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적이 강호의 세력이 아니라 나라일 수 있다는 말이다.

임금이 이종무를 치기 위해 기척도 없이 군을 일으킨 것일까?

밖에서 움직이는 넷째 정경옥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군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직 큰일에는 경험이 적어서인지 연청의 마음에서 의혹이 피어났다.

 

"Don’t even think that 그딴 생각은 하지도 마라. 넌 의심을 적으로 쓰려는 거냐? 의심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다."

 

연청의 마음을 읽은 조성일이 단호하게 연청을 꾸짖었다.

자기 속의 의심은 전장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방패기도 하다.

둥 둥 둥

진 속에서는 우레소리인지 북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있었다.

노노인이 짧은 목을 쭉 뽑아서 새까맣고 작은 눈으로 보고 한마디 했다.

 

"나랏님은 아니야. 나랏님이 용렬하긴 해도 우리 풍림원을 치면서 뇌정멸운살진을 사용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지."

 

조성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에 뭔가를 적었다.

 

"이 정도면 I can’t complain 나쁘지 않습니다."

 

그때 정문 쪽 구름 속에서 뾰족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 이거 토끼굴인 줄 알았더니 완전히 호랑이굴이잖아. 호랑이 새끼가 드글드글하네."

 

전삼자가 창으로 바닥을 툭툭 치면서 가소로운 듯이 웃었다.

 

"쳐맞기 전까지는 다들 지가 억수로 쎈 줄 알아. 예외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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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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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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