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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상한 장군

 

 

 

그날 밤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달은 밝고 바람은 서늘해져 창으로 들어왔다.

대성은 또 사부가 왜 자기를 제자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글을 잘 쓰니까 서기 대신 일을 시키기 위해서?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서기를 들이면 될 일이다.

글 좀 잘 쓴다는 게 어린아이를 제자로 들일 정도의 거창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대성은 알고 있었다. 오며가며 듣는 귀동냥이지만 사부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자기가 가져다 바친 돈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부유한 풍림원의 입장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었다.

할아범은 왜?

대성은 할아범이 왜 자기에게 풍림원의 제자가 되라고 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풍림원은 일반 무림문파가 아니다.

특별할 것도 별로 없는 곳인데, 할아범이 그렇게 한 데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대성에게 풍림원은 영소가 있고 좋은 어른들이 있는 곳,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낙원 같은 곳이었다.

시장에서 주워듣고 자기가 아는 바로 무림에 이런 문파는 없다.

땀과 피와 죽음이 거친 강물처럼 넘실대는 곳이 무림이다.

어느 문파에 속해있다는 것은 문파라는 배로 그 강을 건너는 것이다.

눈을 뜨고 있었는데 눈을 뜨는 느낌이 들어서 보니까 아침이었다.

그리고 대성은 풍림원 밖에서 풍림원이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

 

"너 나하고 말하기 싫어?"

 

마차를 타고 가는 중에 연청이 물었다.

대성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Not funny. 재미없어요."

 

오전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겨우 한 마디 한 게 재미없다는 소리다.

연청은 어이가 없었다.

 

"넌 말을 재미로 하냐?"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Can a duck swim? 네."

 

연청은 더 기가 막혀 혼자 투덜거렸다.

 

"아무리 우리 풍림원의 기율이 느슨하다지만 너 이건 아니다. "

"사형은 뻔한 소리만 하잖아요. 영소는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는데… 뭐 어른들은 항상 뻔한 말만 하긴 하지만…."

 

대성은 대성대로 시큰둥하게 혼잣말인 듯 들으라는 말인 듯 애매하게 중얼거렸다.

매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익숙해진지라 연청의 성미와 대사형의 성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도 말할 때 대성이 집중해서 듣게 하려면 과자나 떡을 줘야 한다는 걸 알았다.

과자가 없으면 말이 귀에 안 들어온다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거다.

말해 봤자 소귀에 경 읽기다.

연청은 가지고 온 과자나 떡이 없어서 대성에게 더 말을 걸지 않았다.

자기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대성은 간단한 녀석이 아니었다.

별 말썽을 부리지는 않으니 천덕꾸러기라 하기도 애매하다.

노는 꼴을 보면 귀엽지만 말하는 짓을 보면 귀염 받으려고 하는 게 없다.

연청이 보기엔 그냥 어린애다.

대성은 흔들리는 마차에 맞춰서 발을 흔들며 혼자 놀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

할아범과 살면서 뭐든 제멋대로 하던 못된 버릇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

 

그 시각 이종무는 뜨락에서 중천의 햇살을 받으며 눈을 지그시 하였다.

눈썹사이로 빛이 산란했다.

그는 항상 아기를 대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듬는다.

 

"좋다!"

 

하며 웃는데 옆에서 걷던 큰 제자 조성일은 뚱했다.

 

"이번에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많이 나쁘지 않으면 좋은 거야."

 

이종무는 싱글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대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막내는 무공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것에도"

"영소는 좋아하잖아."

 

조성일은 동의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부는 종종 알면서도 엉뚱한 소리를 해서 심각한 것도 심각하지 않게 하는 버릇이 있다.

 

“Relax, relax. 힘 빼.”

 

이종무가 조성일의 어깨를 툭툭 쳤다.

 

"You never know, never know. 앞날은 아무도 몰라. 그 애가 혹시 대문장가나 서예가가 될지 누가 알아?"

 

당연히 모른다.

사부는 조성일이 안다고 했던 것처럼 그걸 대답으로 툭 내놓는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장군님."

 

조성일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장군님이라는 호칭은 조성일이 부하로서 이종무를 모실 때의 엄격한 호칭이다.

제자가 된 이후로는 이종무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또 또 그런다. 난 네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철렁한다."

"경옥이가 네 달 동안 조사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딱 막내가 말한 것만 나왔습니다. 막내뿐만 아니라 죽은 노인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시장에 나타났답니다."

 

경옥은 이종무의 네 번째 제자로 여제자다.

장원 안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종무와 조성일의 지시를 받아 늘 외부에서 어딘가로 다닌다.

 

"그럼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보네."

"이상한 게 너무 많습니다. 제가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성일은 딱딱하게 말했지만 이종무는 바위에 걸터앉아 웃기만 했다.

 

"그 노인이 막내한테 우리 풍림원의 제자가 되라고 한 것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고… 연청이 틀렸습니다. 막내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연청한테 딸려서 밖으로 보낸 건가?"

 

이종무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조성일이 정색을 했다.

 

"막내는 귀가 이상할 정도로 밝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들을 수 있는지 짐작도 안 됩니다. 제가 사무를 보다가 작은 소리로 한 말도 다 듣더군요. 우리 풍림원 안에서 하는 말은 어디서 하든 다 듣습니다. 그건…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넌 막내가 무슨 요괴라도 되는 듯이 말한다."

 

책망도 아니고 그냥 하는 말이다.

하지만 조성일은 책망을 듣는 한이 있어도 자기가 해야 할 말, 해야할 책무를 다 하는 사람이었다.

이종무의 압력 속에서도 자기 의지를 밀어부치고 관철하는 데 이골이 나있다.

 

"요괴가 아닌 건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많습니다. 막내는 자기가 멀리서 나는 소리도 다 듣는 줄 모르거나, 그게 이상한 줄을 모릅니다."

 

이종무는 막내 대성에게 큰 기대나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무공 연구하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영소와 매일 논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건 그대로 좋은 일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니까.

이종무의 처는 신경 쓰고 걱정도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종무는 대성과 영소가 그렇게 자라 정이 들어 혼인한다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미 죽은 자들을 이어서 살고, 살다가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어가는 세상이다.

세상만사를 아기 보듯 보고 꽃 키우듯 대하는 이종무다.

그에게 이 세상은 다 그렇게 돌아가는 거고, 사람일은 조금 멀리서 보면 대수로울 게 없다.

하지만 대성이 이상해 보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가 생각하는 범주를 벗어난다.

 

"음. 그건 좀 별스럽네."

 

이종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성이 쓴 글씨도 놀라웠다.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도 모르면서 대성은 문장을 줄줄 써낼 수 있었고, 글씨에서는 특히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What’s your concern? 네가 걱정하는 게 뭐야?"

 

조성일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노인은 장군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종무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이종무가 장군이었다는 사실은 그 일대에 알려져 있었다.

대농장을 가진 토호들 중에는 크고 작은 나라 벼슬을 하지 사람이 거의 없으니 대수로울 게 없다.

그러나 조성일이 말하는 것은 그 이상을 의미했다.

 

"나를… 안다?"

"제 짐작입니다. Take a look 한 번 보십시오."

 

조성일은 소매 속에서 할아범의 모습이 그려진 종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최대한 할아범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이종무는 그림을 잠시 보다가 조성일이게 돌려주었다.

 

"모르는 얼굴이야. 기억에 없어."

"장군님을 직접 안다면 아마 바로 찾아왔겠지요."

 

이종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성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막내의 얼굴을 보면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없습니까? 그 노인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고 막내를 주인으로 대했으니까 막내와 관련 있는 사람이 장군님을 아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종무는 이내 대성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천천히 말했다.

 

"진진홍. 막내는 진진홍의 자식인가?"

"장군님의 군사를 다 말아먹은 그……"

 

개자식이라는 욕이 나오려는 걸 조성일은 겨우 삼켰다.

 

조성일은 이십 수 년 전, 전쟁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조성일은 열여덟 살이었다.

이종무는 서른 세 살이지만 일군을 이끄는 장군이었고 그 무엇도 거침없던 시절이었다.

네 번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세운 전공은 너무 커서 포상을 받을 포상을 정하지 못한다는 말이 돌았다.

나랏님도 안절부절하다니...

이종무의 측근들은 큰 공을 세운 게 오히려 화근이 될까봐 불안한 정도였다.

옛날부터 나랏님들은 너무 큰 공을 세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종무는 당시,

 

"새는 모이 때문에 죽고 사람은 탐욕 때문에 화를 입지."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말한 후에 모든 포상을 마다하고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장군의 인부를 반납한 후 낙향했다.

논공행상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게 전부 진실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진진홍 장군은 이종무의 후임이었다.

그도 재주가 많은 사람이고 무공이 높았다.

명문가 출신의 뛰어난 무장으로 전장에서 이종무가 갑자기 능력을 드러내기 이전까지는 이종무에 버금가는 장군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종무의 군을 물려받은 후 이종무처럼 공을 세우려다가 수 만 명의 군사를 잃고 자기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종무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진진홍은 감히 이종무를 경쟁자로 여겼던 것이다.

이종무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진진홍에게 작은 재주가 좀 있기는 해도 그런 신통한 재주 같은 게 있었을 리가 없다. 그냥 좀 닮은 얼굴일 뿐이야. 진진홍의 자식이라면 경옥이가 벌써 알아냈을 거야."

 

일리가 있었다.

조성일은 자기가 해야할 일을 확정했다.

 

"진진홍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I am easy 그러든가 말든가. It’s up to you 알아서 해."

 

하며 이종무가 일어났다.

이종무는 조성일에게 뭐든 다 믿고 맡기고, 조성일은 항상 그 이상을 해왔다.

 

"아직 애야. 막내 상하게 하지는 말고."

 

하는 말에 조성일은 이종무가 대성을 다섯 달도 되지 않은 새 완전히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과 어떤 경우에도 그 마음이 결코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정4품 장군 직에 있으면서 대장군과 상장군도 듣지 못한 군신, 전신이라는 소리를 30살 때부터 듣던 이종무였다.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종무는 부하들을 철저히 신뢰했고 부하들은 이종무를 신같이 추종했다.

이종무에게는 이상한 능력이 있다.

그의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한 신뢰를 받은 자는 자기의 뼈를 갈아서라도 그 신뢰를 배신하지 않았다.

조성일은 이종무를 따르던 정 7품 별장이었다가 첫번째 제자가 되었다.

제자가 되기 전부터 이종무를 수발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적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이없는 상황들을 숱하게 봤었다.

승패를 좌우할 중요한 역할을 능력도 없는 자에게 맡기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이종무를 혐오하기도 했다.

능력도 없는 사람이 장군이 되었고, 부하들의 실력도 알아보지 못하니 금방 전쟁에서 패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종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조성일은 이종무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이종무가 왜 전쟁의 신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지목한다면 바로 조성일 자신이다.

 

"What if I can’t complete the operation? 제가 임무를 완수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임무를 맡은 신임 장교들이 불안해하며 물을 때면,

 

“it never gonna happen. 그럴 일은 절대 없어. I can assure you. 내가 장담해."

 

조성일이 대신 답해주기도 했다.

조성일에게 대성은 이종무 외에 처음 보는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종무가 있는 풍림원에 또 다른 이상한 능력이 있는 대성이 오게 된 게 우연일리가 없다.

이종무의 보이지 않는 무엇에 끌려 왔을 수도 있고, 어떤 사정이 있었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풍림원은 세상의 여러 곳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곳이다.

대성에게 있는 특별한 능력이 무엇이든 열 두 살이 되기 전에 알아야 방향을 잡기에 좋다.

조성일 자기처럼 너무 늦으면 사제들처럼 못 되고 반쪽이 되고 만다.

사부 이종무는 신경 쓰지 않더라도 조성일 자신은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야 하고, 그게 조성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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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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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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