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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피와 살을 먹는 새

 

 

곽범은 누운 채 도끼를 들었다.

힘을 다해 새장수의 가슴을 찍었다.

퍼석! 퍽!

도끼는 급히 날아든 새들과 부딪혀 빗나갔다.

새들의 몸뚱이가 쇳덩이 같다.

믿기 힘든 단단함이다.

"뼈도 남기지 말고 쪼아 먹어.”

새장수가 중얼거렸다.

꾸욱 꾹! 파다다닥!

새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곽범을 뒤덮었다.

곽범은 손으로 눈과 귀를 가렸다.

새들의 부리는 송곳같이 날카로웠다.

쪼는 대로 살이 파이고 피가 튀었다.

그때마다 까무라칠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그나마 부상은 대부분 치유된 상태다.

새장수의 공력을 끌어들여 신공을 운용한 덕분이다.

주로 다친 곳에 공력을 보냈었다.

곽범의 공력이 가는 곳을 새장수의 고강한 공력이 따라왔었다.

새장수의 공력은 곽범의 공력을 흉내 내며 상처를 치유했다.

곽범의 몸에는 일시적이지만 새장수의 거의 전 공력이 들어와 있다.

그 공력들은 곽범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곽범은 그 힘을 빌어 껑충 뛰어 올랐다.

도망 가야한다.

이 일대의 길은 눈을 감고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새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곽범은 팔다리가 둘씩 밖에 없다.

새들은 어찌 보면 새장수보다 더 똑똑했다.

곽범의 온몸에 달라붙어 쪼고, 내동댕이치고, 바닥에 굴렸다.

곽범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몸은 삽시에 피를 내뿜고 있었다.

"눈알을 빼버려. 눈알을. 고 새까맣고 교활한 눈알부터.”

새장수가 소리치고 또 피를 토했다.

곽범은 공력을 피부로 돌려서 새들의 부리를 견디려했다.

무리였다.

이제 겨우 다친 곳으로 공력을 보내 치유하는 방법을 알아냈을 뿐이다.

공력은 피부를 단단하게 하기 보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쪽으로 저절로 쓰였다.

새들이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상처에 부리를 박고 피를 마시는 놈도 있다.

곽범은 고통보다도 미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있다는 사실을 더 견딜 수 없었다.

목을 쪼으려 파고드는 새를 턱으로 튕겨내었다.

튕겨나가던 새의 날개죽지가 입에 닿았다.

곽범은 입을 크게 벌렸다가 새를 물어버렸다.

새의 몸뚱이는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하지만 턱에 힘을 주니 입안에서 퍼석 터져버렸다.

씹지도 않고 그대로 삼켰다.

날카로운 발톱이 입천장과 목을 긁었다.

개의치 않았다.

비어있던 위장이 든든해졌다.

곽범은 한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한손으로 어깨에 붙어 살을 뜯는 새를 잡아챘다.

그놈을 입에 넣고 두어 번 씹은 후 삼켜 버렸다.

목구멍이 꽉 막히는 듯했지만 막히지는 않았다.

네 마리를 연거푸 잡아먹었다.

새는 사람을 먹고 사람은 새를 먹는 혈전이 반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마침내 곽범이 이겼다.

열일곱 마리의 새를 문자 그대로 털도 뽑지 않고 씹어 삼켰을 때였다.

곽범은 도끼날을 새장수의 목에 걸치는데 성공했다.

새들의 몸뚱이와 뼈는 정말 단단하다.

도끼에 찍혀도 다치지 않는다.

그 새들을 곽범은 이빨로 깨물어 죽였다.

그걸 본 새장수의 마음은 탐욕으로 들끓었다.

곽범의 무지막지한 힘이 방금 경험했던 신공에서 나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 힘이 자기의 공력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새장으로.”

곽범은 피가 흐르는 손으로 열여덟 마리째 새를 잡으며 말했다.

"새장으로.”

피를 뒤집어 쓴 곽범의 모습에 질린 새장수가 급히 말했다.

파다닥 쏴아

새들은 새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새들의 몸은 곽범의 피에 젖어 붉었다.

날개 짓을 따라 피가 흩뿌려졌다.

곽범은 비틀거리며 걸어가 새장을 걸어 잠궜다.

새장에는 백 마리 정도의 새가 들어있다.

새들은 곽범을 노려보며 위협적으로 날개짓을 했다.

"비급 있지요?”

새장을 등지고 새장수에게 물었다.

"무슨 비급? 나는 무공이 약해. 비급 갈은 거 없어.”

"이 새들을 훈련시킨 비급!”

"비급 없다. 거짓말인 거 같으면 내 몸을 뒤져봐.”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가만있으면 너도 출혈이 심해서 죽어. 나한테 약이 있다.”

곽범은 새장수에게 걸어갔다.

걸음마다 핏자국이 찍혔다.

새장수가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

"이 약이 부리에 쪼인 상처를...”

곽범은 도끼로 새장수의 목을 찍었다.

텅텅

잘린 머리가 몇 번 튀었다가 멈췄다.

머리를 튕겨낸 피가 여전히 뛰는 심장의 힘으로 추욱, 추욱 뿜어졌다.

"필요 없어요.”

곽범은 새장수의 손에 들린 파란 약병을 옆에 두고 품을 뒤졌다.

약병은 두 개가 더 나왔다.

하나는 노란 약병이고 하는 붉었다.

옆구리에는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호패와 함께 걸려 있었다.

새들은 새장에서 날뛰며 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곽범이 새장 문을 새들이 열수 없도록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이었다.

먹지 못할 큰 짐승을 잡았다.

곽범은 곰도 잡고 표범도 잡아 보았다.

그 과정에서 지금처럼 큰 상처를 입은 적은 없었다.

화가 몹시 났다.

사부에 대한 원한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새장수를 보내 시체를 처리하게 한 걸 보면 사부는 다시 돌아올 게 분명했다.

하늘에 빠질 뻔 한 후로 명징해진 곽범의 사고가 말해주고 있었다.

 

곽범은 주방에 있는 물로 몸의 피를 씻어냈다.

새가 쪼았던 상처에서는 새살이 차오르고 있다.

올록볼록 작은 밥풀떼기꽃이 새겨진 것 같았다.

새가 쫄 때마다 공력을 보내서 치료했었다.

그러다보니 경맥들이 몰라보게 넓어졌다.

내상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근육과 피부가 회복되었다.

(사부는 이렇게 쉬운 것도 내가 빨리 못 깨달아서 화난 것일까?)

곽범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어디가 어딘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산과 숲은 곽범 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사부가 찾아오지 못할 곳이 있다면 바로 이 산속뿐이다.

또 무공에 대한 이해가 터져 나와 정리하고 다듬을 장소도 필요했다.

곽범은 새장수의 새장과 그의 봇짐을 지고 이전에 발견했던 숲속 동굴로 갔다.

물도 있고, 물고기도 있는 곳이었다.

 

***

 

곽범은 숲속에 있는 모든 동굴은 알고 있다.

그 중 가장 은밀한 동굴을 찾아갔다.

그 동굴은 숲속을 흐르는 계곡물이 크게 휘도는 곳에 있었다.

입구가 그늘져서 물 건너편에서 보면 작은 바위처럼 보였다.

동굴 안은 제법 넓고 깊다.

계곡물 한 가닥이 동굴을 통과한다.

모래톱과 마른 땅도 있다.

빛은 오전에만 천장의 좁은 바위틈 새로 잠시 들어왔다.

곽범은 바위를 가져와 동굴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지난 8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모른다.

단지 사부가 와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가 좋았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혼자서 절벽을 타고 숲을 뛰어 다녔다.

수련이었지만 즐거운 놀이기도 하였다.

짐승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냈다.

돌을 쌓아서 작은 성벽도 만들면서 노는 것은 항상 즐거웠다.

 

맑은 물에 비치던 햇빛이 마지막 바위에 의해서 막혔다.

동굴 속은 손바닥만한 구멍으로 들어온 빛만 남았다.

전에 동굴 천장 위쪽에 가보았었다.

매우 가팔라서 날쌘 곽범도 올라가기 힘들었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쌓여 있었다.

바위들 틈새가 조금 열려 있어서 빛을 들여보낸다.

아늑했다.

곽범은 모래톱에 앉아서 이곳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운기행공을 한 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햇빛이 들던 곳으로 달빛이 들었다.

새들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있었다.

곽범은 심법을 운용해서 운기조식을 했다.

운기조식을 할 때마다 새장수한테 뺏은 공력의 양은 줄어들었다.

대신 앙금처럼 정순한 공력은 기해혈에 쌓였다.

그 양이 상당했다.

지난 8년 간 혼자 쌓은 것보다 배 이상 많은 것 같다.

양만 많은 게 아니다.

곽범은 자신의 공력이 더 정순해지는 걸 느꼈다.

어둠이 마냥 어둡지 않았다.

눈으로 기운을 돌리면 시력이 좋아진다.

달빛이 닿지 않은 곳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새들은 조용히 있었다.

밤새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반짝이는 눈을 보면 여타 새들처럼 밤눈이 어두운 것 같지도 않았다.

곽범은 새장 앞으로 걸어가서 물었다.

"누가 말할 줄 알아?”

새들 중 한마리가 흠칫한다.

곽범은 어둠 속에서도 그걸 놓치지 않았다.

새장의 문을 걸어잠근 걸쇠를 손으로 폈다.

문을 열고 냉큼 손을 넣어 그놈을 잡아 꺼냈다.

예상과는 달리 새들은 곽범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잡힌 새도 얌전했다.

곽범은 새를 입으로 가져갔다.

"다 말할 줄 알아.”

새된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꾸엑! 꾹! 꾹!

새장 속의 새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잡힌 새가 비명처럼 외쳤다.

"난 아니야. 내가 한 말 아니야.”

새장이 조용해졌다.

"새를 꾈 때 새소리로 속이는데 사람 소리에 속는 새도 있네.”

곽범은 손에 든 새를 노려보았다.

새는 고개를 숙여 시선을 외면했다.

다 말할 줄 안다고 외친 건 곽범이었다.

"저 바보.”

새장 속에서 어떤 놈이 외쳤다.

"너희들 무슨 새야?”

곽범이 물었다.

잡혀 있는 새가 즉시 대답했다.

"탁양앵무.”

양을 쪼는 앵무새라는 뜻이다.

"양 아니라 범도 잡아먹겠던 걸.”

"우린 범도 잡아먹어. 외공을 익혔거든.”

새장에서 어떤 새가 말했다.

"쓸모도 많아. 아주 많아.”

곽범은 코웃음을 쳤다.

"맛도 괜찮더라.”

앵무새들이 조용히 부리를 다물었다.

스무 마리에 가까운 새들이 털도 뽑히지 않은 상태로 곽범에게 잡아먹혔다.

"살려줘.”

새장에 있던 한 마리가 말했다.

"뭐든지 다 할게.”

"대장이 누구야?”

"네가 먹었어. 제일 먼저.”

"그것 잘 됐네.”

곽범은 새들을 훑어보았다.

"배고프면 그 바보 먹어도 돼.”

새장에서 누가 말했다.

곽범의 손에 있던 새가 비명을 질렀다.

"절대 안돼.”

"왜?”

"난 한입 거리밖에 안 돼. 먹으려면 저 자식도 같이 먹어.”

서로를 비난하는 새소리가 왁자지껄하게 터져 나왔다.

곽범이 물었다.

"비급은 어디 있어?”

순간 조용해졌다.

모든 새가 일제히 새장 바닥을 날개로 가리켰다.

“하하하!”

곽범은 웃음을 터뜨렸다.

새들 중 한마리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금수가 하는 게 다 이렇지 뭐.”

곽범의 손에 있던 새가 급하게 말했다.

"조심해. 재들 발톱에 독 묻히고 기다리는 중이야.”

"배신자!”

새소리가 다시 귀를 찢을 듯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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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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