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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선도(夢仙圖)를 얻다. (2)

 

 

쉭쉭!

임청우는 자신의 가슴에 올라앉아 얼굴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척포로 인해 정신을 차렸다.

으악!”

임청우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척포의 목을 움켜잡고 패대기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이놈! 배가 고파도 서로 잡아먹기 없다고 했는데...”

헌데 임청우가 바닥에 패대기쳐진 척포에게 삿대질을 하며 버럭 외치는 순간이었다.

!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며 기와가 와르르 쏟아졌다.

몸이 저절로 튀어 올라 무려 삼장이나 되는 천장에까지 솟구쳤던 것이다.

어이쿠!”

콰당탕!

임청우은 낭패한 몰골로 다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

마지막에 떨어지던 기와 한 장이 머리를 강타했다.

하지만 간밤에 떨어진 청강검에 다쳤던 그 머리건만 기와만 산산조각 나고 머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임청우가 패대기쳤던 척포만이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화를 내며 코앞에서 쉭쉭 거리고 있었다.

임청우는 실내의 정경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간밤에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에 떠올랐다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자기 때문에 철선동시가 죽은 것도, 우협 장백승이 왔다가 자신의 몸속에 든 색혈지독을 제거해주고 두 구의 시체를 태워버린 것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마면혈도의 혈도(血刀)와 철선동시의 빙혼철선(氷魂鐵扇)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도 두구의 시체가 없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네가 먹었냐?”

임청우는 눈을 부라리며 척포에게 물었다.

하지만 척포는 고개를 저었다. 결코 먹지 않았다는 시늉이다.

꿈이었나 하고 생각해봐도 목이 없는 아미타여래의 불상이라든가, 반으로 잘려진 비로자나여래의 불상이 어젯밤의 일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군다나 등의 상처는 신통하게 아물었지만 한쪽에 떨어져 있는 철선동시의 왼팔이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졸여졌다.

어디선가 철선동시와 마면혈도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히 임청우의 눈이 사방을 살피게 되었다.

문득 바닥에서 누런빛이 비치는 곳이 두 군데나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밤에 철선동시와 마면혈도가 있던 곳이다.

(한데 나는 어째서 석가여래 앞에 놓여있었지? 이게 바로 부처님의 조화인가?)

임청우는 기이하게 생각하며 석가여래를 향해 합장한 후에 철선동시의 시체가 재가 되어 사라진 곳으로 갔다.

반짝이는 것은 녹아버린 누런 황금이었다.

옆에는 은도 함께 녹아있었다.

그리고 돌돌 말린 양피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몽선도다!)

이미 몇 차례나 몽선도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기에 임청우는 펼쳐보기도 전에 그것이 몽선도라고 생각했다.

쫘락!

펼쳐보니 한 폭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아지랑이가 아롱지는 듯한 꽃밭에서 신선으로 보이는 노인이 죽장을 짚은 채로 허리를 숙여 꽃을 구경하는 그림이다.

신선의 모습도 생생하고 꽃도 생생하여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신선 주위에는 아지랑이같은 것이 흐르고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꿈결같은 환상에 젖어들게 만든다.

임청우는 황금과 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즉시 마면혈도가 있던 자리에 있는 양피지도 집어들었다.

그림은 두 개의 양피지가 이어진 것이었다.

마면혈도의 양피지에는 궁장을 한 절세가인(絶世佳人)이 그려져 있는데, 한 송이 부용꽃을 들고 고개를 젖힌 채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찌나 그 표정이 생생하고 아름다운 지 임청우는 호호호호! 하고 웃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함께 얻었던 몽선도를 둘로 나누어 가질 때 여색을 밝히는 마면혈도는 주저 않고 절세가인을 택했던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단 한번 보기만 해도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임청우는 여인의 미모에 넋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두 장의 그림을 함께 생각해 볼 때 꽃을 구경하는 노인을 보고 여인이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다.

꾸르르르!

한동안 몽선도의 감상에 빠져있던 임청우의 뱃속에서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비로소 극심한 허기를 느낀 임청우는 보고 있던 두 장의 양피지를 함께 겹쳤다.

헌데 임청우가 도르르 만 양피지를 막 품으로 넣으려고 할 때였다.

휘익!

갑자기 척포가 날아올랐다.

임청우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척포는 말린 양피지의 가운데에 난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신기하게도 척포의 몸은 그리 길지 않은 양피지 속에 모두 들어가 꼬리도 머리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놈이 무슨 신통력을 부린 모양이다.)

임청우는 신기해하면서도 내심 꺼림칙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록 친구라고 하기는 하지만 척포는 성질이 급하고 흉악한 데가 있는 놈이다.

그런 놈을 품속에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찜찜하지 않을 수 없다.

척포! 당장 나와! 나오지 않으면 불에 태워버린다!”

임청우는 몽선도를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척포는 임청우의 으름장에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더욱 깊숙이 움추리며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척포는 우협 장백승이 철선동시와 마면혈도의 시체를 삼매진화로 태워버릴 때에도 몽선도는 벌겋게 달아오르기는 했지만 결코 불타지 않는 것을 보았다.

영물인 척포가 생각할 때 그것은 예사 보물이 아닌 것이다.

척포는 몽선도를 집으로 삼는다면 자신의 위엄이 더욱 높아질 것같은 허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어쩌면 허영이 아닐 수도 있지만...

탁탁탁!

임청우는 바닥에 대고 몽선도를 두들겼다.

그래도 척포는 나오지 않았다.

배는 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리고 무엇이나 살 수 있는 금과 은이 두 무더기나 눈앞에 있는 데도 척포와 말도 안되는 다툼을 벌이노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침내 임청우가 항복하고 말았다.

좋다! 내가 졌다. 하지만 만약에 내 몸에 긁힌 자국이라도 하나 내는 날에는 앞뒤로 끈을 꽁꽁 묶어 불속에 집어넣어 버릴 테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고집 부릴 때도 마찬가지고!”

척포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알았다는 시늉을 한다.

요놈!”

임청우는 잽싸게 머리를 잡고 끌어내려고 했지만 척포는 그보다 더 빨리 쏙 들어가 버렸다.

고집불통같으니...”

임청우는 투덜거리며 몽선도를 품속에 넣고 바닥에 녹아있는 금은을 챙겼다.

그때 갑자기 아래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숙님! 틀림없다니까요. 어젯밤의 그 거지새끼가 탑 위에 올라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대로 뒀다간 대안탑이 거지 소굴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라구요.”

(그 건방진 지객승이구나!)

임청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을 막아섰던 젊은 지객승의 것이었다.

(여기 올라와서 부서진 향로와 불상을 물어내라고 하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금 한 무더기는 남겨두고 가야겠다.)

임청우가 서둘러 금과 은이 녹아있는 곳으로 갈 때였다.

지덕(智德)! 네 녀석은 어찌 그리 입이 험하냐? 입을 깨끗이 함도 수도라는 것을 모르느냐?”

늙구수레한 목소리가 지객승을 꾸짖는 것이 들려왔다.

대저, 험한 말을 하면 그 말을 듣는 가장 가까운 귀가 바로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험한 말을 내뱉는 것이 버릇이 되면 마음도 자연 거칠어지느니라. 그런고로 남을 꾸짖을 때도 엄한 말로 자신도 꾸짖는 말을 써야만 하지 함부로 그 행위를 비방하거나 욕설을 해서는 결코 아니 되느니라.”

노승의 준엄한 목소리에 지객승의 음성이 쑤욱 들어가 버렸다.

임청우는 품속에 넣은 금과 은이 떨어지지 않도록 허리띠를 졸라맨 후 우협 장백승이 준 청강검을 챙겨들었다.

그런 후에 막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마면혈도의 혈도와 철선동시의 빙혼철선이 눈에 들어왔다.

(흉악한 병기(兵器)를 절에 남겨두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가져가서 깊은 계곡이나 물 속에 던져버려야겠구나.)

휘익! !

임청우는 재빨리 달려가 빙혼철선을 소매 속에 넣고 혈도를 허리춤에 끼웠다.

그 직후 임청우는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하며 자신의 발을 내다보았다.

틀림없이 자기의 발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왜 이렇게 빨라졌지?)

임청우가 철선과 혈도를 잡기 위해 걸음을 옮기자 순식간에 도달해 버렸던 것이다.

한쪽 발을 들어 발바닥을 보았지만 기름이 묻어있지도 않다.

다른 발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니 척포 때문에 놀랐을 때도 단번에 삼장이나 솟구쳐 머리를 천장에 박았었다.

어쩌면 간밤에 마면혈도가 일러주던 무쌍층층공의 구결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는 했지만 그것을 깊이 연구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육조(六祖)께서 말씀하시길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오직 저 말만 왼다면 또한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셨느니라. 지덕 너도 스스로 닦음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래에서 노승이 지객승에게 훈계하는 음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하나......!)

!

임청우는 마음속으로 셋을 센 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힘을 다해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휘이익!

귓가에 찬바람이 느껴졌다.

발이 땅을 밟을수록 힘은 솟구치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휘이익!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마치 날듯이 해서 내려갔다.

으앗! 귀신!”

지객승이 자기의 머리를 훌쩍 뛰어 넘어 내려가는 임청우를 보고 기겁해서 소리치며 엎드렸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수염이 허연 노승은 연신 아미타불을 중얼거리며 벽면을 더듬고 있었다. 이미 혼은 반쯤 달아난 상태였다.

대략 일각의 시간이 지나서야 지객승은 고개를 들었다.

사숙이 염불을 외우며 벽을 더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이 빠져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눈치다.

지객승은 사숙의 소매를 끌면서 말했다.

사숙! 요괴는 이미 사라진 모양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노납은 지금 남아있는 요괴들을 쫓았느니라.”

노승이 황망히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지객승이 씨익 웃자 노승은 용기를 쥐어 짜내어 앞장 서서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이리로 와 보거라. 이제는 요괴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데 요괴가 분탕질을 쳤을까 싶어 그것이 걱정스럽구나.”

말은 그렇게 해도 노승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헌데 노승을 따라 칠층에 올라온 지객승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 잘린 아미타부처님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사숙께선 벌써 득도하신 모양이구나. 올라와 보지도 않고 요괴들이 분탕질 친 것 까지 아시다니...)

지객승은 사숙의 다리가 후들거린 것은 이십장이 넘는 대안탑을 노구의 몸으로 올랐기 때문이라 결론을 내리고 존경이 가득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때 노승은 눈을 감은 채 아미타불을 외고 있었다.

(부처님...제발... 이 어리석은 중을 굽어 살피소서. 나이어린 사질(師姪)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만은 면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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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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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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