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제 12장

 

             마두들이 준 기연(奇緣) (2)

 

 

(우라질...)

철선동시는 생사를 도외시한 마면혈도의 공격에 진땀을 흘렸다.

독기가 임청우의 몸속으로 퍼져나가면서 몸 상태가 조금 좋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팔과 다리가 잘리는 중상을 입었는지라 공력의 운행이 전 같을 수가 없다.

철선동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말대가리는 같이 죽기만 바랄 뿐이다. 이대로 공력을 겨룬다면 결국엔 둘 다, 아니 이 쥐새끼는 원래 죽을 놈이었으니 셋 다 죽게 된다.)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한 철선동시는 독심을 품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저 말대가리를 먼저 죽이지 않을 수가 없구나.)

(헛!)

마면혈도는 갑자기 철선동시의 공력이 폭발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철선동시도 마면혈도가 그랬던 것처럼 독기를 억누르고 있던 공력마저 풀어서 공격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공력은 철선동시가 마면혈도보다 심후하다.

그 때문에 임청우의 모든 경맥에서 마면혈도의 공력이 급격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임청우의 몸 속에서는 두 절정고수의 공력이 충돌하며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내장은 공력에 충격을 받아 망가지기 직전이 되었으며 혈관은 팽창하고 심장은 박동을 급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차디찬 서리로 뒤덮여 하얗게 변해있다.

그 서리 아래의 피부는 독기로 인해 시꺼멓게 변색 되어있었다.

그러던 중 철선동시가 전력으로 공격을 하여 마면혈도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임청우의 몸을 덮고 있던 서리는 점차 줄어들고 대신 마면혈도의 몸에 두터운 서리가 쌓이기 시작했다.

철선동시가 심후한 공력으로 공격하면서 임청우의 몸속에 있는 빙골산의 독기마저 마면혈도의 몸에 밀어 넣은 때문이다.

마면혈도는 이미 빙골산의 독기에 중독당한 상태였다.

헌데 더 많은 빙골산의 침습을 받게 되자 한기가 뼛속으로 스며들면서 공력이 점점 위축되었다.

이렇게 되자 임청우의 몸속에서 벌어지던 공력의 충돌이 잦아들고 빙골산의 독기도 감퇴했다.

빙골산이 빠져나가면서 한기가 수그러들자 임청우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으으으...)

정신을 차렸지만 임청우는 신음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다. 지독한 한기 때문에 입과 혀가 얼어붙은 때문이다.

정신이 되돌아오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온몸이 쇠망치에 수없이 맞아 짓이겨진 것같다.

뼈란 뼈는 다 부러지고 근육은 갈가리 찢어진 듯한 통증이 엄습한다.

그 때문에 몸뚱이가 자신의 것이 아닌 양 통제할 수조차 없었다.

뿐만 아니라 목구멍으로 올라오려는 듯 속이 니글거리기까지 한다.

헌데 가까스로 힘을 내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서리에 덮인 이마에서 송알송알 땀을 쏟고 있는 마면혈도와 눈길이 부딪혔다.

(허억!)

흉측하면서도 기괴한 마면혈도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접한 임청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다.

반면 마면혈도는 뛸 듯이 기뻤다.

할 수만 있다면 크게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얼어 죽은 시체 놈! 내가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낼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미련한 그답지 않게 머릿속으로 절묘한 계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심이 서자 마면혈도는 임청우의 몸에서 즉시 자신의 공력을 거두어 들였다.

우르르!

그러자 철선동시의 공력이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듯 마면혈도의 몸으로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반격하지 않고 굳게 방비만 하자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임청우는 자신의 몸속에서 돌아다니는 기이한 힘을 느꼈다.

불심연화지의 구결을 외울 때 나타났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힘이었다.

불심연화지의 구결을 외워보았지만 몸속을 누비는 기이한 힘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그 힘은 살아있는 뱀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임청우의 몸속을 제멋대로 헤집고 다닌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법이다.

임청우는 헛된 노력은 포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여전히 혼미하고 멍한 정신을 온전히 하는 게 그것이었다.

임청우는 북두무랑에서 보았던 천상열차분야도를 떠올렸다.

끝없는 별의 바다를 유영하며 자기 몸속에 깃든 북두칠성을 확인했다.

그러자 온몸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이 점차 잦아들고 정신은 또렷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의 귓속으로 모기가 앵앵거리는 듯 나직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눈을 번쩍 뜨고 보니 마면혈도가 눈을 껌뻑한다.

임청우는 그자의 얼굴이 정말 말 귀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입과 코 부분은 영락없이 말이다.

그런 입에서 인간의 말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다.

나른하고 권태롭게까지 느껴지는 마음이 된 임청우는 마면혈도의 말을 들은 척 만척했다.

 

<네 손목을 잡고 있는 얼어 죽은 시체같은 놈은 정말 나쁜 놈이다.>

 

마면혈도의 가느다란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와하하하하!)

임청우는 하마터면 큰소리로 웃을 뻔 했다. 마면혈도의 잔학성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바 있는 그였다.

마면혈도는 임청우가 농산 표운봉에서 만났던 소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제 딴에는 임청우를 설득해보려고 철선동시의 험담을 한 것이다.

그같은 수작은 임청우에게 인간이 얼마나 뻔뻔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누가 누굴 보고 나쁜 놈이라는 건가?)

임청우의 혀끝에서 마면혈도의 양심을 찌르기 위한 말이 맴돈다.

그러다가 마면혈도의 음성이 들림에도 불구하고 그자의 입술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놀랐다.

(이 말대가리 귀신은 입이 두갠가?)

마면혈도가 진짜 말 귀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싹 소름이 끼친다.

불심연화지를 깨우치기 전까지는 무공을 배워본 적이 없는 임청우다.

당연히 공력을 써서 특정 대상에게만 소리를 전할 수 있는 전음입밀(傳音入密)이라는 무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리 없다.

임청우가 놀라고 있을 때 마면혈도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만약 네가 노부를 사부로 모시겠다면 눈을 한번만 깜박여라. 그럼 노부는 죽어도 너는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

 

임청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몇 권의 의서를 읽어보았기에 자기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다. 두 가지의 치명적인 극독이 몸속에 스며들어 있으니 해독하기 전에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

그리고 마면혈도가 얼마나 흉악한 괴물인지는 이미 경험한 임청우였다.

남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여겨온 마면혈도가 굳이 임청우 자신을 살려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시체같은 철선동시도 후회하느니 어쩌니 하더니 지금은 자신의 손목을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잡고 있다.

임청우로서는 마면혈도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말해도 믿지 못할 터였다.

만에 하나 마면혈도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손목을 잡고 있는 철선동시가 자신을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믿을 말을 믿지.)

임청우는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마면혈도를 흘겨보았다.

말을 닮은 그자의 얼굴은 다시 봐도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헌데 마면혈도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임청우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자의 눈에는 어떤 열기 같은 것이 담겨있었다.

(설마 날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진심인 건가?)

임청우는 흠칫했다.

(속은 것은 한번으로 족하다.)

하지만 임청우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마면혈도를 스승으로 모신다는 것은 도무지 말도 되지 않을 소리다.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도 해서 될 것과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저 흉악한 마귀의 흉악한 수법을 배워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요사스런 수법을 익혀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오히려 그런 건 몸을 해치게 마련인데...)

임청우의 단호한 표정을 본 마면혈도는 당황했다.

(쥐새끼 정도로 생각했던 놈이 뼈마디가 보통 단단한 게 아니었군. 구슬리자면 꽤 힘이 들것 같군.)

그 사이에 철선동시의 공력이 더 거세게 밀려들어 심장이 터질 것같은 압박이 전해진다.

잠시 전력을 다해 방어한 후 마면혈도는 간절한 어조로 다시 임청우에게 말했다.

 

<노부의 무쌍층층공(無雙層層功)은 대성하기만 한다면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절세의 신공이다. 노부는 비록 칠성(七成) 수준 밖에 이르지 못했지만 강호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가 되었다.>

 

마면혈도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임청우는 요지부동, 도무지 눈을 뜨지 않았다.

우협 장백승의 모습이 마치 화인(火印)처럼 뇌리에 박힌 임청우다.

무쌍층층공 어쩌고 아무리 떠든다 하더라도 소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마면혈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중한 공력을 허비하며 억지로 말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우르르르...

철선동시는 마면혈도를 함락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임청우의 몸으로 색혈지독을 옮기기 전에 공력이 소진되어 자신이 먼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면혈도를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생각에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없다!)

철선동시의 맹공격에 궁지에 몰린 마면혈도는 다급해졌다.

그래서 임청우가 장백승에게 들은 것 외에는 무공이니 무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벽창호라는 사실도 모른 채 안간힘을 다해 말을 이어갔다.

 

<무쌍층층공은 일성(一成)을 익히게 되면 맨손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고, 이성(二成)을 익히면 일성의 두 배가 되며, 삼성(三成)은 이성의 두 배가 되고, 사성(四成)은 삼성의 두 배가 된다. 자질과 인연이 닿아서 십이성(十二成)을 대성하게 된다면 무림에서 제일가는 인물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래도 내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어조가 사뭇 애원조다.

그래도 마음이 돌덩이 같은 임청우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임청우는 목숨마저 체념하고 편안한 마음이 되어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을 떨게 만들던 한기도 이미 많이 가셨다.

대신 마면혈도의 몸에 서리가 덮여 얼음이 되었다.

임청우의 몸속에서 빙골산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철선동시의 공력이 몸속에서 돌고 있기 때문에 한기를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다만 몸을 자꾸 무겁게 하는 그 무엇이 약간 불편할 따름이다. 그것도 실상은 철선동시가 그의 몸 안으로 불어넣은 색혈지독 때문이기는 하지만...

마면혈도는 자신이 그처럼 애원하는 데도 불구하고 임청우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속에서 불이 나는 것같다.

(이 어린놈은 바보 멍청이인가? 죽을 사람이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사부로 모시지 않겠다는 그런 바보가 어디 있는가? )

철선동시의 공력은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지는데 겨우 찾아냈다 싶은 마지막 수법은 사용도 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마면혈도는 억울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속으로 자기는 재수가 정말 없는 놈이라 생각하며 전음입밀로 말한다.

 

<좋다, 이놈아! 내 제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네놈이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말대로 해야 할 것이다.>

 

말투가 거칠어지고 떨려나온다.

빙골산의 독기를 방비하지 않은 탓에 이미 한 치 두께로 얼어붙은 서리가 마면혈도의 몸을 덮고 있다.

그러나 마면혈도가 뭐라 하던 간에 임청우는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잠잠히 있었다.

철선동시의 심후한 공력은 임청우의 몸을 경유한 후 마면혈도를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비유하자면 미친 들소 떼가 비좁은 골목길을 치달리며 닥치는 대로 짓밟고 뭉개버리는 형국이었다.

우둑! 우두둑!

손목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왔다가 발목으로 빠져나가는 철선동시의 공력이 경맥과 근육을 제멋대로 뒤틀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청우는 그리 큰 고통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망망하기 이를 데 없는 별의 바다를 유영한 기억이 정신을 육신에서 분리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임청우는 어느덧 자신의 육신이 두 악귀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것을 남의 일처럼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고통 속에서 자신의 몸을 잊는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의 상태에 은연중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두 괴인은 임청우의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고, 더구나 알 생각도 없다.

단지 서로가 임청우를 이용하여 상대를 해치려는 마음뿐이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