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20

 

             풍진세월(風塵歲月)

 

 

그후 노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짐작하건데 장사성이 그후로도 제법 오래 살아있었으니 노파가 마음을 바꾸어 먹었거나 오히려 장사성의 군사에게 죽었을 것이다.

천하를 떠돌면서 전쟁의 참상을 본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진룡이 보았던 것은 죽거나 상처 입고 신음하는 군사들의 고통이고 참상이었을 뿐이었다.

통곡하던 노파같이 전쟁의 추이(推移)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백성들마저도 그같이 고통 받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천하 전체가 전란에 신음하고 있음을 진룡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진룡은 알면 알수록 인간이 두려워졌다.

힘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기를 원하며 싸우는 바람에 가지지 못한 자들은 눈물과 굶주림 속에서 하늘만 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나도 힘을 가진다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각축을 벌일까?)

진룡은 파양호변을 거닐면서 끊임없이 자문했다.

"나는 전쟁이 싫다. 파리처럼 값없이 죽어가는 그 많은 인간들 중에는 이인(異人), 재사(才士)들도 끼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사(安史)의 난> 때 왕유(王維)가 귀머거리가 되었고 두보는 장안에 연금되는 신세가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밖에도 죽은 재사들이 어디 한 둘일까?

이토록 전쟁이 계속된다면, 재사는 모두 죽거나 심산에 은거하여 세상은 거친 무지랭이들만이 판을 치게 되어 황폐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진룡의 중얼거리는 말을 유심히 들은 노인이 있었으니 바로 사자검의 제십이대 전인 정사초(鄭詞樵)였다.

정사초는 진룡의 골격이 뛰어나고 문인의 기질이 있음을 높이 사서 그를 사자검의 제십삼대 전인으로 맞이하였다.

이미 세상에 흥미를 잃은 진룡인지라 스승인 정사초를 따라 창평곡으로 와서 검술을 익혔다.

그때까지 창평곡에서는 제이대 우승유로부터 스승이 제자에게 몇 가지의 검초를 가르치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었다.

사자검결이 너무도 오묘하여 말년에 가서야 겨우 어느 정도 깨우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전에 바탕이 될만한 검초를 가르친 것이다.

 

***

 

진룡이 창평곡에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을 때 진우량은 신주(信州)에서 주원장의 군대에 패해 근거지인 무창(武昌)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삼년 후 진룡이 어느 정도 검술을 연마한 후 다시 세상에 나왔을 무렵 진우량은 세력을 회복하여 휘하의 군사가 육십만이 넘었다.

 

진룡이 창평곡을 나오기 얼마 전 장사성이 부장 여진을 보내 안풍(安豊)이란 곳을 포위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당시 안풍에는 주원장의 형식상 상관인 백련교 교주 한림아(韓林兒;한산동의 아들)가 심복인 유복통과 함께 머물고 있었다.

이에 주원장은 직접 군대를 인솔하여 안풍으로 가서 여진을 격퇴하고 한림아를 구했다.

진우량은 그 틈을 타 파양호 남쪽에 자리한 주원장의 군사거점 홍도(洪都)를 공격했다.

그리하여 천하를 잡느냐 못 잡느냐를 판가름할 건곤일척의 결전이 파양호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때가 때인지라 진룡은 의절했던 아버지를 찾아갔다.

홍도로 가는 길목은 온통 진우량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왕자(王子)임을 알리자 앞을 가로 막는 사람은 없었으나 진룡은 군사들이 민간을 수탈하고 여인들을 겁탈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야만 했다.

도저히 그 혼자서는 말리지 못할 상황이었다.

복잡한 심정으로 홍도에 도착한 진룡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 무렵 진우량은 파양호 일대에 거대한 수군을 구축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대신 큰형 진선(陳善)을 만나 젊은 장수 예지운(睿芝雲)과 함께 병사를 논하고 작전을 세웠다.

예지운은 여동생 예이연(睿夷燕)과 함께 뛰어난 남매 장수였는바, 진룡은 예이연에게 한 눈에 반해 깊은 정을 나누게 되었다.

 

***

 

마침내 천하의 주인을 결정하는 전투가 파양호에서 벌어졌다.

피아를 합쳐 무려 팔십만명의 군사가 동원된 파양호대전(鄱陽湖大戰)이 시작된 것이다.

헌데 전투는 진룡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진우량의 군대는 숫적으로 우세한데다 진룡이 신위를 발휘하기도 해서 주원장의 군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혼전 속에서 주원장도 몇 번인가 죽을 고비를 넘긴 치열한 격전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전혀 생각지도 않은 변고가 발생했다. 진씨 부자가 그토록 신뢰했던 선봉장 예지운이 돌연 주원장에게 항복해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전세가 급변하여 진우량의 군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결국 진우량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화살에 맞은 채 물에 빠져 죽고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후 주원장은 진우량의 잔당을 토벌하여 호북성 일대를 평정했는데 이때 앞장 선 자가 바로 진우량의 가장 믿었던 부하 예지운이었다.

 

파양호대전에서 진룡은 뛰어난 검술로 적을 수없이 베고 큰형 진선을 구했다.

하지만 둘째형 진리(陳理)는 주원장 군대에 잡혀버렸고 셋째형 진충(陳忠)은 불타는 배와 함께 파양호에 가라앉은 후였다.

진룡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연인 예이연을 찾았다.

그러나 예이연의 함선은 깃발을 바꾸어 달고 오히려 그를 공격했다.

아수라장에서 큰형만을 구해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진룡은 심한 허탈감과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만약 자신이 세운 계책대로 전투가 진행되었더라면 주원장 군대를 섬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지운의 배신으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그저 사람을 잘못 본 것을 한스러울 뿐이었다.

 

진룡은 뒤쫓는 적을 베고 또 베면서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여산(廬山)으로 숨어 들어갔다.

두 형제는 여산의 깊은 계곡에 숨어서 전군(全軍)이 다 파()했으며 아버지 또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몸과 함께 마음도 약해진 큰형 진선이 걱정하는 것은 무창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동생들의 안위뿐이었다.

손에 들어올 뻔 했던 왕업(王業)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얼마 후 무창은 예지운이 이끄는 주원장의 군대에 함락 당했다.

자신의 가족들이 죽거나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진선은 상처가 도져 죽었다.

효자인 진선은 죽으면서도 부모의 생사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했다.

진선은 죽기 직전 진룡에게 말했다. 형제 중 오직 진룡만이 살아남았으니 만약 왕업에 뜻이 있다면 아버지가 몰래 숨겨놓은 재물을 찾아내어 군사를 일으키라고...

그 보물들은 무창의 어느 절에 숨겨져 있는데 진우량이 참배하려 갈 때마다 가져가서 숨긴 것이라 했다.

 

***

 

큰형을 여산에 묻은 진룡은 도처에 깔려 있는 주원장의 군사들을 피해 무창으로 갔다.

진우량이 무창에 세웠던 웅장하던 궁궐은 불타 없어졌고 남아 있는 가족도 없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예지운이 배신하지만 않았어도 아버지가 죽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무창을 공략한 선봉이 바로 배신자 예지운임을 들었다.

어머니는 진우량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결했으며, 형수들은 무창이 무너지던 날 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결했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과 누이들은 주원장의 군사들에 의해 어디론지 끌려갔다고 했다.

 

***

 

진룡은 변복을 하여 신분을 감추고 명나라의 당시 도성이던 금릉(金陵) 응천부(應天府)로 갔다.

배신자 예지운을 처단하기 위해서였다.

진룡은 자신의 가족이 당한 참사가 어쩌면 아버지가 일으킨 난으로 말미암은 인과응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지 예지운의 배신 때문이라고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끌려간 누이들과 조카들을 찾아야만 했다.

절망과 불행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진룡은 남의 불행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의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금릉 응천부로 가는 길에 그가 본 것은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한 민초들의 모습이었다.

역설적으로 제왕들의 불운이 시작되자 민초들의 고통은 끝이 나는 듯 보였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도 이제 수습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여기저기서 활기찬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금릉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표정 어디에서도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오가는 군사들의 무장(武裝)만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줄 뿐이었다.

거리에는 검을 지닌 사람들의 수도 상당했다.

새로운 천하의 주인에게 한자리 얻기 위해서 기웃거리는 치들이리라.

 

***

 

금릉으로 들어온 진룡은 객점에 투숙한 후 사자검을 꺼내어 닦고 또 닦으면서 살기를 키웠다.

예지운은 주원장에게 공을 인정받아 광동행성우승(廣東行省右丞)이란 높은 벼슬을 하사받아 호사하고 있었다.

그의 집이 어딘지는 금릉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진룡은 연인인 예이연의 소식이 궁금했다.

파양호대전 때 그녀의 함선이 자신을 공격하기는 했지만 무언가 잘못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예이연에게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 테고 배은망덕한 오라비 예지운같지는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객점의 사환을 불러 물어 보았다.

"혹시 진우량군에서 전향한 여장군 소식을 듣지 못했느냐?"

"미녀장군 말이죠? 그녀가 이곳 응천부에 왔을 때 정말 대단했죠."

"...!"

"아마 응천부 백성들 모두가 그 미녀장군을 보기위해 나갔을 겁니다. 제가 보아도 정말 예쁘더군요."

"그래 그 여장군은 지금 어찌 됐느냐?"

"주천자(朱天子)의 측실로 들어갔다는 말이 있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지요."

진룡은 사환의 말에 앞이 깜깜해졌다.

사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룡은 예지운이 출세를 위해 동생을 팔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갈았다.

호색한 주원장의 품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예이연을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함께 그리움이 밀려 왔다.

"먼저 그녀를 만나 저간의 사연을 들어 보고 누이들과 조카들의 행방도 물어보자. 어쩌면 그녀가 그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진룡은 그렇게 생각했다.

 

***

 

배신자 예지운을 찾아가는 것을 미룬 진룡은 야행(夜行)에 적합한 복장을 한 후 궁궐의 담을 넘었다.

무창에 있었던 아버지의 궁궐도 금릉의 궁궐을 본 따 지은 것이기에 구조가 낯설지 않았다.

대충 짐작으로 여인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숨어들어갔다.

곳곳에 내시와 위사들이 보였지만 절세고수인 진룡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순시를 도는 위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잠시 어느 지붕위에 엎드려 있을 때였다.

"호호호...!"

귀에 익은 여인의 웃음소리에 진룡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마 끝을 타고 봉창으로 접근하여 작은 구멍을 뚫었다.

방안에는 화려한 비단휘장이 휘감겨 있고 진기한 장식들이 곳곳에 놓여 있어 귀비(貴妃)의 침실인 듯 했다.

금포를 걸친 건장한 사내의 뒷모습에 가려져 소매자락만 보이는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호호호! 황상! 그 당시에는 무척 다급하셨던 모양이옵니다."

몽매에도 그리워한 예이연의 목소리였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