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第 十 章

 

               天罡摩罅維深經

 

 

천강마존은 담담한 눈길로 기검룡을 응시했다.

[펼쳐보아라.]

기검룡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쳤다.

순간, 그의 두눈은 갑자기 크게 떠졌다.

 

<무적팔해(無敵八解).>

 

두루마리에는 실로 가공할 위력의 무공이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___제 일해(一解) 개천뢰명(開天雷鳴),

___제 이해(二解) 폭화소천(瀑火燒天),

___제 삼해(三解) 붕천압지(崩天壓地),

___제 사해(四解) 벽뢰파산(霹雷破山),

___제 오해(五解) 노룡자천(怒龍刺天),

___제 육해(六解) 단천복지(斷天覆地),

___제 칠해(七解) 유성파천(流星破天),

___제 팔해(八解) 멸혼극참(滅魂極斬),

 

천강마존은 엄숙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사백 년(四百年) 전의 기인 무적도군(無敵刀君)이 남긴 무공이다. 도법(刀法)이나 검법(劍法) 어느쪽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극강함과 패도적인 위력은 천하에서 또한 으뜸이다. 내일부터 무적팔해의 수련에 들어갈테니 미리 기억해 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기검룡의 얼굴에는 힘찬 투지가 불끈 치솟았다.

 

X X X

 

철썩___ 쿠르릉...!

쏴___ 아___!

교교한 월광(月光)이 파도를 타고 일렁이고 있었다.

파석도(波石島).

그 바위의 정상에 한 인영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칠 척(七尺)에 달하는 거구에 위풍당당한 풍모.

기검룡! 바로 그였다.

그는 바위 위에 우뚝 선채 두 손에 한 자루의 검(劍)도 아니고 도(刀)도 아닌 기형(奇形)의 병기를 들고 있었다.

문득, 우우우... 웅...!

갑자기 기형의 병기가 은은한 울부짖음을 발하며 한 차례 떨렸다.

푹은 한 치에 미치지 못했지만 검신의 길이만 근 네 자.

전체모양은 검(劍)의 형태였지만 날이 한쪽으로 서 있는 끝이 위로 약간 구부러져 검(劍)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이한 병기.

헌데 지금 그 기형의 병기가 은은한 음향을 발하며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 우... 웅!

차츰 병기의 울림이 높아졌다.

순간, 기검룡의 몸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기병기를 중심으로 점차 원반형의 거대한 백색환(白色環)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급격히 백색환은 확산되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간, 파파팍...!

주위의 암석들이 일제히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나갔다.

[멸혼극참(滅魂極斬)!]

파석도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검룡의 대갈일성이 터진 것도 그와 동시였다.

파팟...! 콰르릉___ 쾅!

아! 천지개벽이 일어나려는가?

거대한 백색환이 전광처럼 폭사된 곳은 바닷 속.

헌데 보라! 거대한 포말과 함께 미친 듯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바다의 용트림을.

그 순간 월광마저 포말 위에 부서져 찬란히 흩어졌다.

아아! 실로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어지지 않는 가공할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 성공이다! 멸혼극참을 연성하고야 말았다. 하하하하...]

기검룡은 찌렁찌렁한 대소를 터뜨리며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때,

[허허... 용아! 드디어 성공했구나. 아주 훌륭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낙척문사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기검룡의 등뒤에 우뚝 서 있었다.

[할아버지!]

기검룡은 그를 바라보며 희열의 음성으로 소리쳤다.

낙척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큰 할아버지께 어서 무적팔해를 연성했다고 말씀드려야지. 무척 기뻐하실 것이다.]

[네, 어서가요.]

그들은 곧 몸을 날렸다.

 

석실___.

[할아버지, 용아가 드디어 무적팔해를 모두 연성했어요.]

기검룡은 석실끝의 석상에 앉아있는 천강마존을 바라보며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일순 천강마존의 안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나 그것은 떠올랐던 것보다 더 빨리 사라지고 그는 곧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수고했다. 허나 무적팔해를 익히는데 무려 일년(一年)이라는 기간을 소요했다. 앞으로 더욱 증진해야만 천강무공을 전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

그말에 기검룡의 얼굴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자, 내일부터는 이것을 연마하도록 해라.]

천강마존은 그런 기검룡에게 하나의 낡은 비급을 건네주었다.

 

<절존검보(絶尊劍譜).>

 

비급의 겉장에는 위와같은 네 글자가 희미하게 적혀있었다.

천강마존은 엄숙한 어조로 기검룡에게 설명했다.

[절존검보는 절존검후(絶尊劍后)라는 여걸께서 남긴 비급이다. 무적팔해가 천하에서 가장 극강하고 패도적인 무공인데 반해 절존검보 내의 만절극변검식(萬絶極變劍式)은 가장 현묘하고 유(柔)하면서도 난해한 검법이라 모두 삼백육십식(三百六十式)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식마다 스물 네 가지의 변화를 내포한다. 따라서 모두 팔천 육백 사십(八千六百四十) 가지의 변화를 일으킨다.]

기검룡은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팔천 육백 사십 가지의 변화를 내포한 무학.

범인이라면 평생을 걸려서도 기억조차 못할 엄청난 불량이 아닌가?

허나 천강마존은 준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강무공을 익히려면 이 정도의 난해한 무공을 일년(一年)안에 모두 익힐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검룡은 마음이 무거웠다.

허나 그는 곧 의지가 서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늘 밤부터 당장 연마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는 기형병기를 들고 다시 석실을 빠져나갔다.

___무적패도(無敵覇刀).

과거 무적도군(無敵刀君)이 사용하던 천하의 도다.

그것을 불끈 움켜쥔 그의 두눈은 불타는 투지와 원대한 포부로 빛나고 있었다.

기검룡이 석실을 나가고 나자 문득 천강마존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형도 무적팔해를 연성하는데는 꼬박 이 년(二年)이 걸렸었지. 과연 저 아니는 모든 면에서 노부를 능가하는 기재로군.]

그는 기검룡이 무척 대견스러운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아이가 서운해 할지 모르나 어쩔 수 없네. 천강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강(强)한 자질이 필요하니...]

낙척문사는 충분히 그의 뜻을 알고 있었다.

[용아는 영리합니다. 형님께서 겉으로는 엄하게 대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의 말에 천강마존은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뼈를 깎는 고련(苦鍊)의 세월.

기검룡은 숱한 고통과 역경을 견디며 오로지 무공연마에만 몰두했다.

천강마존은 처음부터 그러했듯이 일언반구의 조언조차 해주지 않았다.

기검룡 스스로 검도를 깨우치게 하려함이었다.

이윽고 반년(半年)___

기검룡은 마침내 팔천 육백 사십 가지의 만절극변검식을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반년이 흐르자 그는 드디어 만절극변검식을 마음대로 펼칠 수가 있게 되었다.

아! 이는 실로 놀라운 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절존검법을 모두 연성한 후 기검룡은 다시 천강마존과 마주앉았다.

천강마존은 또 다른 한 권의 비급을 건네주며 여전히 준엄한 어투로 말했다.

[이것은 칠백 년(七百年) 전의 절정 마두였던 혈음마황(血陰魔況)의 혈황경(血荒經)이다. 다른 부분은 지극히 잔악한 마공들이라 모두 없애버렸다.

다만 혈음패황도(血陰覇皇刀)를 펼칠 수 있는 혈황도식(血荒刀式)과 천천마음의 연마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혈음탈혼소(血陰奪魂笑)만을 남겨 놓았다. 이것을 반년(半年) 안에 연성해야 한다.]

기검룡은 묵묵히 그러나 굳은 의지의 표정으로 비급을 들고 석실을 나왔다.

그날부터 또 다른 수련은 시작되었다.

 

<혈황오식(血皇五式).>

 

___제 일식(一式) 소혼혈(素魂血).

___제 이식(二式) 척혈살(剔血殺).

___제 삼식(三式) 비혈참(飛血斬).

___제 사식(四式) 환혈류(幻血流).

___제 오식(五式) 혈황극(血荒極).

 

이는 혈음패왕도를 위해 만들어진 도법(刀法)이었다.

그 도세가 독랄, 쾌속하기 이를데 없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마는 잔혹한 필살(必殺)의 도법이었다.

기검룡의 이 도식을 모두 연마하는데에는 삼개월을 소요했다.

이 또한 눈부신 성취라 나이할 수 없었다.

___혈음탈혼소(血陰奪魂笑), 이는 웃음소리로 사람을 살상할 수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 사이한 섭혼술(攝魂術)과도 같은 마력(魔力)을 발한다.

기검룡은 이 무공의 수련에는 불과 한달을 소요했을 뿐이었다.

이미 척천마음을 통해 음률에 대한 조예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남자 기검룡은 천해비보(天海秘譜) 중에서 본 천뢰삼도(天雷三刀)의 수련에 들어갔다.

 

<천뢰삼도(天雷三刀).>

___광극뢰(光極雷),

___심극뢰(心極雷),

___천극뢰(天極雷),

광뢰극! 빛줄기가 번뜩 스치는 순간 이미 적의 몸은 동체에서 날아가 버린다.

심극뢰! 광극뢰보다 두배 빠른 도식(刀式), 살의(殺義)가 이는 순간 도(刀)는 이미 상대의 심장을 뚫고 돌아와 도집에 들어가 있다.

천극뢰! 이것의 위력은 실로 통천가공할 정도, 상상을 불허하는 쾌도(快刀)의 최고 경지다.

비단 빠르기가 심극뢰의 배가 될뿐 아니라 일시에 방원 십 장을 질타하는 위력 앞에서는 그 어떤 공격도 풍지박살을 면치못한다.

기검룡은 천뢰삼도의 도식을 익히며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꼬박 두달이 걸려서야 그는 광극뢰와 신극뢰를 익힐 수가 있었다.

허나 마지막 도식인 천극뢰만은 그의 천고적인 자질이라해도 터득이 불가능한 것이라 다음으로 미루었다.

 

기검룡! 그는 이제 당당한 십팔 세의 청년으로 변모했다.

그가 다시 반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천강마존을 찾아갔을 때 천강마존은 단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앞으로 일 년간은 작은 할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아라.]

그리하여 기검룡은 그날부터 무적패도를 내려놓고 낙척문사와 생활하게 되었다.

낙척문사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대부분 학문(學文)이었다.

허나 강호출도(江湖出道)를 대비한 다방면의 잡학들도 아낌없이 전수했다.

독술(毒術), 의술(醫術), 암기수법, 기관지학, 성복지술(星卜之術), 대화술 등은 물론 심지어는 도박수법까지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낙척문사는 두 가지의 절세무공을 전수했다.

___의형수강(意形手罡).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강기(罡氣)로 최고 백여 장까지 떨쳐 낼 수 있는 가공할 무공이었다.

___허기머리보(虛氣迷鯉步).

고금(古今)이래 최고의 신법(身法).

낙척문사가 수많은 경공들을 종합 연구하여 창안한 그의 독문경공술이다.

하루에 능히 삼천 리(三千里)를 달릴 수 있다.

이것의 특징은 경공을 펼칠시에 전혀 지면을 밟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면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발바닥에서 유출시키는 공력의 힘으로 펼치는 경공술이었다.

 

다시 일년(一年)의 세월이 흘렀다.

기검룡에게 있어서는 어느 한순간도 휴식이 없었던 고련의 나날이었다.

천강마존은 다시 기검룡을 불러 앉혔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이제부터 천강무공의 수련에 들어간다.]

천강마존의 그 한마디에 기검룡의 가슴은 벅찬 격동으로 끓어올랐다.

천강무학(天罡武學)!

이 얼마나 익히기를 원하던 무공인가?

천강마존은 겸양하여 택그성황의 배끝에도 못미치는 보잘 것 없는 무공이라 하지만 기검룡은 잘알고 있었다.

천강무공, 그것이야말로 택그성황의 성취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광세절학이라는 것을, 기검룡은 격동과 희열에 벅차게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천강마존을 응시했다.

허나 문득 천강마존은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전에 이 할아버지와 네 신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두는 것이 좋겠다.]

[...!]

순간 기검룡의 안면이 굳어졌다.

자신의 신세내력, 그동안 그는 많은 고통과 의문을 가지고 자신의 내력을 알고자 했다.

허나 그것을 물을 때마다 천강마존은 굳게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다만 시기가 임박하면 알려주겠다는 그 한마디를 할뿐,

이때, 천강마존은 기검룡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허나 한 가지 할아버지 앞에서 약속해야한다. 어떤 경우에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 이 할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악인(惡人)보다도 나약한 인간이다. 약속할 수 있겠느냐?]

[약속합니다. 할아버지, 여하한 경우에도 눈물을 보이는 못난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소자야말로 진정한 천강마존의 손자가 아닙니까?]

기검룡은 내심의 긴장과 불안을 숨기며 자신있게 다짐했다.

(불쌍한 녀석...)

문득 천강마존의 노안(老眼)에는 측은해 하는 비치 떠올랐다.

허나 그는 곧 안색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백 오십여 년 전, 북건성 일대에 검궁(劍宮)이라는 문파가 있었다.

___팔황신검(八荒神劍) 구양신운(九陽神雲).

그가 바로 검궁의 궁주(宮主)였다.

그는 당시 무림의 최절정고수였던 무림팔걸(武林八傑)의 일인이기도 했다.

검궁은 당시의 어느 방파보다 방대한 세력을 갖춘 명실공히 맹주(盟主)역을 맡고 있었다.

헌데, 어느 해였던가?

서역으로 볼일이 있어 서역에 간 구양신운(九陽神雲)은 이름모를 폐사(廢寺)에서 하룻밤을 거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 폐사의 허물어진 장경각에서 한 권의 고서를 얻게 되었다.

고서는 서역에서도 오래 전에 사용하지 않게 된 고어(苦語)로 기술되어 있어서 구양신운은 전혀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그후, 서역에서 돌아온 구양신운은 그때 비로소 자신이 광세기연을 만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당시, 구양신운(九陽神雲)에게는 열살 정도된 어린아들이 하나 있었다.

구양천(九陽天), 어릴 때부터 신동(神童)이라고 소문이날 정도로 총명이 과인한 아이였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구양천을 반년 이상 가르치지 못했다.

반년만 지나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널리 학식있는 스승을 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한 명의 박고통금한 지식을 지닌 노문사 한 분이 구양천을 가르치기를 자원하여 구양천의 스승이 되었다.

서역에서 돌아온 구양신운은 즉시 그 뜻모를 고서를 노문사에게 보였다.

헌데 고서를 받아든 노문사의 안색이 크게 변하였다.

노문사는 그 고서의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천강마하유심경(天罡摩罅維深經).>

 

노문사가 읽어낸 고서의 제목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이미 천여 년 전 천축에서 실전한 초고의 내공심경(內功心經)이 아닌가?

구양신운은 기연을 얻었다고 뛸 듯이 기뻐하며 노문사에게 그 내용을 자기 아들 구양천(九陽天)에게 가르쳐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기쁨도 일순.

구양신운이 광세절기가 담긴 비급을 얻어 암중에 연마하고 있다는 소문이 강호에 퍼졌다.

그러자 이제까지만해도 다정한 친우들이던 팔걸(八傑)이 주측이 되어 전체 강호인들이 호시탐탐 검궁(劍宮)을 노리게 되었다.

결국, 어느 비오는 날 밤___.

수천의 무림고수들이 검궁으로 난입, 강호제일의 대파를 군림하던 검궁은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 되고 말았다.

그 구양신운을 비롯하여 천여 명 검궁의 신하들은 완저히 몰살당했다.

허나 천운이었던가?

구양신운의 아들 구양천은 노문사가 피신시켜 다행히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노문사는 사실 전대의 기인으로서 신분을 감춘 채로 검궁에서 살고 있다가 구양처능ㄹ 구해낸 것이다.

 

<죽이리라! 무림을 피로 씻으리라!>

 

노문사에 의해 설산(雪山)으로 피신한 구양천은 절규했다.

눈앞에서 부모형제가 도륙당하는 것을 본 그는 반미치광이가 되다시피 무공을 익혔다.

노기인은 암연히 탄식을 하면서도 구양천에게 천강마하유심경을 가르쳐 주고 또한 전대 기인의 무적도군(無敵刀君)의 진전을 물려주었다.

그 뒤 십년 후, 중원무림에는 한 명의 대살성이 출현했다.

미친 듯이 쏟아내는 도세 속에 천하를 울리던 팔걸(八傑)들이 처참하게 쓰러지고 근 이천의 고수가 화를 당했다.

전체 무림은 구양천 한 명에게 피로 씻기게 된 것이었다.

전 강호인들이 전전긍긍 공포에 쌓여 있을 무렵 구양천을 찾은 한 명의 노진인이 있었다.

 

<만검진인(萬劍眞人).>

 

이십여 년 전에 은퇴했던 무당파 최고의 고수.

잠상봉 조사 이후에 처음으로 대라태청강기(大羅太靑罡氣)를 완전히 연성하고 무당최고의 비기 무상혜검(無常慧劍)을 연마해낸 절대고수였다.

만검진인은 좋은 말로 구양천에게 혈겁을 멈추라고 타일렀다.

허나 구양천은 만검진인의 충고를 일소에 붙이고 오히려 그에게 도전했다.

마침내 두 절정고수는 서로 충돌했다. 그러나 구양천은 참담하게 폐했다.

불완전한 천강신공(天罡神功)은 대라태청강기(大羅太靑罡氣)의 강맹한 쇄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무상혜검의 현기 앞에 무적팔해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결국, 만검진인의 백여초를 견디지 못한 구양천은 분루를 흘리며 그 앞에 무릎꿇었다.

 

<빈도를 제압할 자신이 섰을 때 다시 중원으로 들어오시오.>

 

만검진인은 그렇게 구양천을 중원에서 추방했다.

이것이 구양천 즉 천강마존에 있어서의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였다.

천외유천(天外有天)!

하늘밖에 하늘이 있음을 안 구양천은 낙심하여 설산(雪山)으로 들어갔다.

십년(十年)의 세월___

고심참담의 뼈를 깎는 듯한 수련 속에서 구양천은 점차 최초의 분노가 가라앉고 만 것

인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

바로 그 무렵 그의 머리 속에는 삼식(三式)의 검법이 구상되고 있었다.

허나 늘 무엇인가 부족한 듯 그 실체가 잡히지 않아 그는 고심했다.

헌데 어느날이었다.

당시 설산의 패자(覇者)로 군림하던 설산인마(雪山人魔)가 그에게 도전을 청했다.

많은 수련 끝에 마음의 수양을 쌓은 구양천이었지만 도전을 피하지는 않았다.

곧 치열한 혈전은 벌어졌다.

그 결과 설산인마는 구양천의 무적패도를 감당치 못하고 참담하게 죽고 말았다.

허나 구양천 또한 혈전 끝에 천인단애로 떨어져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그는 단애 아래에서 천고의 영약 만년설매실(萬年雪梅實)을 발견한 것이 아닌가?

뿐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빙벽 속에서 무림사상 최고의 여마 절존검후(絶尊劍后)의 진전을 이어받게 된 것이었다.

절존검후의 먼절극변검식의 팔천 육백 사십 가지 변화를 대하는 순간 천강마존은 확연히 깨달았다.

자신이 구상하던 검법에 있어 부족한 점이 바로 변화(變化)와 부드러움(柔)이라는 것을.

다시 십년(十年)의 세월이 유수처럼 흘렀다.

구양천은 그동안 오직 삼식(三式)의 검법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피어린 수련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상유래 없었던 엄청난 검식을 창안하고야 말았으니...!

그것이 바로 천강삼식(天罡三式)이 아닌가?

패도적인 극강함은 무적팔해를 능가하며 종잡을 수 없는 변화는 만절극변검식의 팔천 육백 사십 가지의 변화에 필적했다.

그후, 무림에는 신비한 한 명의 검수(劍手)가 나타났다.

늘 청삼을 걸치고 한 자루 반투명한 보검을 지니고 다니는 중년인(中年人), 그가 가는 길에는 적수를 찾을길 없었다.

아니 적수는 고사하고 그의 일초반식(一招半式)을 제대로 받아낸 자가 없었다.

그만큼 그는 강(强)했다.

헌데 그는 항상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남이 자신을 건들이지 않으면 자신도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의 철칙, 허나 막상 그의 눈을 벗어나는 자는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었다.

개세무적의 고수 더 나아가 대방파라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암중에 무림제패를 꿈꾸던 무위대제(武威大帝)와 무위궁(武威宮)의 제물이었다.

단 일검에 무위대제의 몸이 양단되었고 무위궁의 최정예 무위삼십육천(武威三十六天)의 태반이 몰살당한 것이 아닌가?

 

<천강마존(天罡魔尊).>

 

이것이 무림인들이 그글 경원하여 붙인 별호였다.

천강마존은 그후 사제와의 대회전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이야기를 하고 말을 멈추었다.

[...]

[...]

두 노소는 말없이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검룡의 눈에는 앞에 앉아있는 병색완연한 천강마존이 태산과 같이 느껴졌다.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미동도 않을 것만 같은 거산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니는 지나간 할아버니의 생애를 결코 후회의 눈으로 되돌아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신념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천강마존은 문득 말을 멈추고 앞에 앉아 있는 기검룡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도 노부와 비슷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자칫하면 제 이의 천강마존이 될 수도 있다.)

천강마존은 착잡한 눈빛으로 기검룡을 주시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노부는 네가 노무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네,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기검룡이 힘있게 대답하자 천강마존의 눈속에 안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노부 평생에 후회가 되는 일은 가문을 이어 부모님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한 일이다. 너는 노부의 전철으 밟지 않도록 명심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기검룡은 가문의 이야기가 나오자 바짝 긴장하였다.

[이제는 네 신상에 얽힌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천강마존이 입을 떼자 기검룡은 모든 신경을 천강마존의 말에 기울였다.

[할아버지가 언급한 바가 있었지. 노부이후에 중원패주(中原覇主)가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 있었다고 말이다.]

[네. 황룡대제(黃龍大帝) 기용천(奇龍天)이라는 분이 그분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말하는 순간 기검룡은 이상하게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천강마존은 침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는 본시는 서역 황교(黃敎) 출신이었으나 태양성자(太陽聖子)의 진전까지 얻은 듯 했다.]

천강마존의 말을 들으며 기검룡은 무의식적으로 목에 걸린 황룡옥패를 만졌다.

문득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그분이 소손과 무슨 관계라도...?]

천강마존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렇다. 너는 황룡대제 기용천과 청해설랑(靑海雪랑) 모연옥과의 사이에서 난 그의 일점혈육이다.]

순간,

[아아...!]

기검룡은 마치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괜찮겠느냐?]

어느새 다가온 낙척문사가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기검룡은 전신을 경련하며 두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허나 차츰 그는 안정을 되찾았다.

[괜... 괜찮습니다.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이를 악문 채 힘겹게 천강마존을 응시했다.

찢어질 듯 흡떠진 그의 두눈은 무섭게 충혈되었고 악다문 입술에서는 한 줄기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천강마존은 가슴이 쓰라렸다. 허나 그는 지금이 기검룡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임을 잘 알고 있엇다.

자칫 기검룡이 감정을 억제치 못한다면 강호에는 또다시 제 이의 천강마존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강마존은 침착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이것이 전부다. 이후의 판단은 네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 할아버지가 간섭할 일이 못된다. 다만 할아버지는 네가 강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검룡은 멍한 눈빛으로 허고을 쏘아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그의 두 손은 너무도 힘주어 움켜쥐어 붉은 선혈이 터져 흘렀다.

허나 그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천강마존은 그의 모습을 대하기가 고통스러운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으아아... 아아___!]

파석도 정상에서는 바다를 뒤엎을 듯한 처절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쿠르르... 콰___ 릉___!

미친 듯한 파도의 소용돌이는 여전히 섬의 전부를 함락시킬 듯 몰아치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