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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를 닮은 여인

 

 

 

오봉도인의 물음에 추명염왕은 막비강을 가리켰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이 어린 녀석에게 물어 보시오.]

오봉도인이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빈도더러 어린아이에게 물어 보라는 거요?]

삼촌정이 옆에서 급히 말을 받았다.

[곽 형의 말이 옳소. 도장은 저 어린 녀석에게 물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되오.]

[좋소. 그럼 빈도는 오늘 파격적인 일을 한 가지 하겠소.]

오봉도인은 여기까지 말하더니 막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이야, 너는 빈도와 인연이 많을 것 같구나. 도대체 무슨 일로 그들과 이런 싸움을 하느냐?]

막비강은 겉으로는 청수하게 보이는 이 노도사의 무서운 내력을 모르는지라 솔직히 대답했다.

[이 노적들이 제게 청구단서의 행방을 알려 달라기에 이곳의 대비석 밑에 숨겨져 있다고 말했는데도 믿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다행히 저 분 할머니와 개방 사람들이 저를 도와 주었습니다.]

오봉도인은 무엇을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년 남짓 사이에 각처의 큰 비석이 모두 파헤쳐져 있기에 빈도는 여기의 큰 비석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과연 내 추측이 맞았구나. 그래, 청구단서는 찾아냈느냐?]

추명염왕이 냉랭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흐흐흐! 비급이 비석 밑에 있었다면 우리가 벌써 꺼냈지 당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 같소?]

[그럼 비급은 지금 어디 있소?]

추명염왕은 막비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어린 녀석에게 있소.]

막비강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노마는 무슨 근거로 비급이 내 몸에 있다고 하는 거냐?]

추명염왕은 징그럽게 웃었다.

[노부는 네 놈이 석벽의 조각을 파괴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만약 그 가운데 비밀이 없었다면 넌 왜 그 조각을 파손시켰느냐?]

오봉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그렇다면 당신들은 더 이상 다툴 필요 없소. 비급이 이 비석 밑에 없으면 개방과는 무관하니 이 아이를 빈도가....]

추명염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받았다.

[당신은 이 어린 녀석을 데려갈 생각이오?]

[? 염왕은 내 행동을 제지할 작정이오?]

추명염왕은 소면호와 삼촌정에게 눈짓을 하더니 오봉도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셋이 한꺼번에 오봉도인을 상대할 속셈인 것이다.

오봉도인은 빙긋이 웃으며 막비강에게 말했다.

[너는 잠시 뒤로 물러서 있거라. 빈도는 그들을 수습한 다음 너와 함께 비급을 찾으러 가겠다.]

이때 소면호가 날카롭게 외쳤다.

[나 고금의 일장부터 먼저 받아랏!]

!

말소리와 함께 한 줄기 강맹무비한 장풍이 격출되었다.

오봉도인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막비강을 붙잡고 옆으로 슬쩍 피했다.

하지만 삼촌정이 구르듯이 추격하며 일장을 뻗어냈고 추명염왕과 소면호도 옆에서 각각 협공을 가했다.

오봉도인은 얼굴을 굳히더니 소매 속에서 우선(羽扇)을 꺼내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스스스!

그러자 세 명의 절정고수가 격출한 장풍은 거짓말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의 침착한 태도와 오묘한 초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막비강은 오봉도인의 오 장 뒤로 물러선 후 내심 몹시 흠모했다.

(만약 이분 노도를 사부로 모신다면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강탈한 막가 악적을 충분히 죽일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날수선랑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어 막비강의 귓전으로 모깃소리 같은 작은 음성이 전해졌다.

[아이야, 빨리 여길 떠나라! 저 도인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막비강은 내심 흠칫 놀랐다. 날수선랑이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오봉도인의 청수한 겉모습에 그대로 속아넘어갈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비강은 그런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박수를 치며 오봉도인을 응원했다.

[하하하! 정말 오묘한 초식이십니다!]

그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오봉도인을 치켜 올렸다.

파앗!

그러다가 쌍방의 격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벼락같이 몸을 솟구쳤다.

[어엇! 저 애송이가!]

[거기 서랏!]

네 명의 마두가 실색했을 때 이미 막비강의 모습은 숲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

 

기지를 발휘하여 마두들의 추격을 따돌린 막비강은 곧 역용환으로 용모와 옷차림을 바꾼 후 소흥부(紹興府)로 향했다.

금릉에서 소흥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무림인이라면 경신술을 펼쳐 하루 이틀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막비강은 무려 닷새나 걸려 겨우 소흥부에 도착했다. 혹시나 마두들에게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까봐 경신술을 펼치지 못한 때문이다.

덕분에 막비강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소흥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흥부에 도착한 막비강은 길을 물어 약야계(約野溪) 부근의 경지하를 찾아갔다.

경지하를 찾아간 막비강은 높직한 강변 언덕 위에 한 채의 칠층보탑(七層寶塔)이 보고 내심 크게 기뻐했다. 칠층보탑이 있는 강변의 풍경이 대석비곡의 석실에서 본 산수화 조각과 완전히 일치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탑이 바로 영롱탑이겠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더니 드디어 난 청구단서가 있는 곳을 찾아냈구나!)

헌데 그가 흥분하여 영롱탑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어머니! 저 보탑에서 밤이면 빛을 흘리는 게 요정(妖精)일까요 요귀(妖鬼)일까요?]

돌연 어디선가 은방울 소리 같은 소녀의 음성이 전해 왔다.

[세상에 요귀가 어디 있느냐? 그건 다 무림인들이 양민들로 하여금 겁을 먹고 접급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다.]

막비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두들이 여기까지 쫓아온 게 아닐까?)

막비강은 이렇게 생각을 굴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변에 자리한 초가집의 대나무 울타리 뒤에 두 개의 크고 작은 인영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모녀(母女)로 보이는 두 여인은 영롱탑을 응시하느라 막비강 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군! 두 여자가 다 눈에 익잖은가?)

막비강은 두 모녀의 옆얼굴을 보며 갸웃했다.

모녀 중 딸 쪽은 열 일곱 살 가량 되어 보이는데 바로 대석비곡에서 자신을 도와 준 연아란 소녀와 비슷한 생김새였다. 다만 다른 점은 연아가 활달한 편에 비해 이 소녀는 새침하고 쌀쌀맞아 보이는 것이 틀릴 뿐이었다.

(어머니를 닮았다!)

그리고 모녀 중 어머니 쪽을 본 막비강은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여인은 바로 막비강의 생모인 한경파와 판에 박은 듯 흡사했던 것이다.

다만 이 여인은 농사일을 하는 탓인지 피부가 좀 검다. 그리고 날씬한 한경파와 달리 상당히 살이 쪄서 풍만해 보이는 점이 차이일 뿐이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이라면 막비강의 생모 한경파가 늘 어둡고 쌀쌀맞은 표정인데 반해 이 여인은 아주 푸근하고 자애스러운 표정을 지니고 있다.

여인은 막비강이 진정으로 원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여인이 어머니라면 자신의 어리광이나 투정도 다 받아줄 것만 같다.

막비강은 한동안 망연자실해서 생모를 닮은 그 촌부(村婦)를 바라보다가 곧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긴 넓은 세상에 닮은 사람이 한둘인가?)

막비강은 고소를 지으며 영롱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가 막 대나무 울타리를 지나치려 할 때였다.

[어머니! 저 사람이 영롱탑 쪽으로 가고 있어요. 혹시 저 사람도 요귀들의 일당이 아닐까요?]

소녀가 막비강을 보며 말했다.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다. 남의 집 귀한 도련님을 요귀의 일당이라니...!]

한경파를 닮은 촌부는 소녀를 꾸짖더니 곧 막비강에게 말을 건넸다.

[얘야! 너는 이 일대에 밤만 되면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도 못 들었느냐?]

막비강은 웃으며 포권을 했다.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소흥부에 처음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 기이한 일이 발생한 줄 몰랐습니다.]

[! 이 고장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어린 네가 혼자 나돌아다니면 집안어른들께서 걱정하지 않느냐? 네 이름은 무엇이냐?]

막비강은 본명이나 곡능천이라는 새 이름을 말하기 뭣해 대충 둘러대었다.

[저의 성은 능()가고 이름은 곡천(曲天)이라 합니다.]

그러자 소녀가 코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 당신은 왜 곡능천이라고 하지 않죠?]

막비강은 잠시 당황하다가 말을 이었다.

[부모가 주신 성을 어떻게 마음대로 고칠 수 있소?]

소녀가 또 차가운 코웃음을 날렸다.

[! 성은 고칠 수 없다고요? 그럼 왜 고쳤다가 또 고치곤 하세요?]

[내 이름은 진짜 능곡천이오. 낭자에게 이름을 속일 필요가 뭐 있소?]

자애로운 인상의 촌부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얘야, 우릴 속일 필요 없다. 너의 본명은 막비강이지만 어떤 사정 때문에 곡능천이라고 개명했다가 금릉에서 다시 능곡천로 고치고....]

소녀가 얼른 말을 가로챘다.

[다음에 만나면 천능곡(天凌曲)이라고 바꿀 거예요.]

막비강은 이 말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면전의 이 촌부의 얼굴이 생모를 빼닮은 탓에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다.

촌부는 온화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너는 모르고 있겠지만 사실 너의 정체는 이미 천면신룡(千面神龍)이라는 이름으로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다. 더 이상 이름만 바꿔서는 남의 눈을 속이기 어려울 것이다.]

(내게 천면신룡이란 별호가 붙었구나!)

막비강은 비로소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음을 알았다.

천면신룡이라는 별호는 제법 마음에 든 막비강은 웃으며 물었다.

[아주머니는 누구신데 저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십니까?]

[내 성은 조()가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딸로 장몽아(張夢兒)라 한단다. 이 아이에게 장연아(張燕兒)라는 말괄량이 동생이 있는데 너는 이미 만나 보았을 것이다.]

막비강은 그제서야 내막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날수선랑 송 할머니께서 아주머니께 말씀해 주셨군요. 어쩐지 금릉에서 고친 이름까지 아주머니께서 알고 계시더라니....]

[네가 여기 온 건 비급을 찾는 일과 관련이 있겠지?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많은 무림인들이 이 근처에 출몰하고 저 낡아빠진 탑에서는 밤마다 불빛이 흘러나오더구나.]

막비강은 무림인들이 출몰한다는 조씨부인의 말을 듣고 안색이 일변했다.

[아주머니, 어떤 인물들이 이곳에 찾아왔습니까?]

조씨부인은 칠층보탑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선 우리 집에 들어와서 얘기를 나누자.]

조씨부인은 사립문을 열고 막비강을 맞아들였다.

 

조씨부인의 집은 대나무 울타리로 둘러쳐진 여덟 칸짜리 초가집이었다.

비록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가지만 뒤로는 악야계의 그림같은 봉우리들을 등지고 있고 앞쪽에는 천하절경인 경지하가 흐르고 있어 빼어난 운치를 풍겼다.

막비강이 조씨부인의 안내를 받아 초가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집 뒤에서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말한 그 바보가 왔으니 어서들 나가 봐라!]

이어 세 명의 소동들이 왁자하니 뛰어나왔다.

일곱 살에서 열 두어살까지인 이 개구쟁이들은 장연아와 장몽아를 닮아서 그녀들의 친 동생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막비강은 아이들에 둘러 쌓인 채 집 뒤쪽을 보며 웃었다.

[내가 바보라고 해둡시다. 헌데 낭자는 어떻게 내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거라구요!]

집 뒤에서 장연아가 웃으며 나왔다. 새침 떠는 언니 장몽아와 달리 이 말괄량이의 얼굴에서는 생글생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당신이 없어지자 마두들은 싸움을 멈추고 당신을 추격해 갔어요. 우리도 즉시 따라가려고 했는데 범개선이 할머니에게 당신이 경지하로 갈 거라 말해주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이리로 달려왔지요. 우연인지 당신이 찾아온 곳이 우리 집 근처였지 뭐예요.]

장연아가 말하는데 조씨부인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얘기를 나누거라.]

막비강이 세 모녀를 따라 대청에 들어가니 십여 명의 남녀노소가 앉아 있었다.

날수선랑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마음씨 좋아 보이는 칠순 가량의 노부인이 일가친척으로 보이는 어른들에 둘러 쌓여 앉아있다.

조씨부인은 막비강에게 그들을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막비강의 어머니 한경파를 닮은 촌부 조씨부인은 막비강이 생각했던 대로 날수선랑의 딸이었다.

, 장씨 집안과 날수선랑은 사돈간인 것이다.

장씨 집안은 지금은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한 때 표국을 운영했던 무가(武家).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조씨부인의 남편 장대일(張大日)이 표행을 나갔다가 흑도의 흉사들과 시비가 붙어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사고로 장씨 일족은 표국을 그만 두었고 장대일은 얼마 안 가 부상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즉 조씨부인은 현재 과부(寡婦)인 것이다.

조씨부인은 막비강의 생모인 한경파보다 한 살이 아래인 마흔 두살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경파보다도 먼저 했다.

조씨부인은 불과 열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 장대일과 금슬이 아주 좋아서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 자식을 두었다.

장연아 장몽아 자매 위로도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장남은 장성대(張成大)라고 하며 벌써 스물 여섯 살이나 되었다. 조씨부인은 첫 아들을 겨우 열일곱살에 낳은 것이다.

둘째 아들 장성일(張成日)도 막비강보다 세살이 많은 스물 두 살이다.

두 아들은 이미 장성하여 집안일을 이끌어 가고 있다.

듬직한 두 아들을 낳은 후에도 조씨부인은 꾸준히 아이들을 가져서 이남삼녀를 더 낳았다.

장몽아, 장연아를 연년생으로 낳고 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은 것이다.

막내딸인 장상아(張翔娥)는 조씨부인의 남편 장대일이 변을 당했을 무렵 아직 그녀의 뱃속에 있었다.

[엄마! 젖줘!]

올해 네 살인 이 귀여운 소녀는 사람들이 보는 중에도 자꾸만 엄마의 품에 파고 들어 젖을 찾는다. 전형적인 막내딸인 장상아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엽다.

조씨부인은 손님인 막비강이 있는 자리건만 별 거리낌 없이 저고리 고름을 풀어 가슴을 들어내고는 막내딸에게 젖을 물려주었다.

물론 젖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래도 장상아는 맛있다는 듯 엄마 젖을 빨며 한 손으로는 엄마의 다른 젖을 쥐고 조물락거린다. 아마도 아버지가 없이 자란 응석을 이런 식으로 부리는 모양이다.

햇볕에 그을려 가무잡잡한 얼굴과 달리 조씨부인의 젖가슴은 너무도 희고 곱다. 갓 쪄낸 백설기같이 하얀 그녀의 젖가슴은 또 아주 풍만하고 탐스럽다.

큼직한 수박만한 살덩이 두 개가 거친 삼베 저고리 사이에서 털렁 드러나 출렁거린다. 나이가 나이인데다가 또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 자식을 젖을 먹여 키운 탓인지 조씨부인의 유방은 좀 늘어진 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탄력과 묵직한 중량감을 지녀 보기에 좋다.

막비강은 막내딸을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조씨부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 한경파가 너무 쌀쌀맞은 탓에 막비강은 일찍 젖을 떼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모성, 특히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다.

자애스러운 표정으로 막내 딸을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조씨부인의 모습은 막비강이 늘 꿈꿔오던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딸에게 젖을 물리던 조씨부인은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이 딸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을 넋을 놓고 보는 막비강과 시선이 닿았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굳이 자기 젖가슴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막비강은 장씨 집안의 사람들을 전부 소개받았다.

장신을 차린 막비강도 자신이 혈검산장을 뛰쳐나온 사정을 실토했다. 어머니를 닮은 조씨부인때문인지 장씨 집안의 사람들이 남같게 느껴지지 않은 때문이다.

[가엾기도 하지! 이젠 그만 고생하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구나.]

조씨부인에게 시어머니 되는 노파가 막비강의 손을 꼭 쥐며 인자하게 말했다.

막비강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콧날이 시큰거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푸근한 가족의 정을 느낀 때문이다.

[할머니! 말씀은 고맙지만...!]

헌데 막비강이 막 대답하려 할 때였다.

[우우우!]

돌연 멀리서 날카로운 여자의 장소성이 전해 왔다.

그 장소성을 들은 장씨 일족 어른들의 안색이 일변했다.

[사돈어른이 또 그 마두들을 만난 모양이구나.]

조씨부인의 시어머니가 급히 지팡이를 들고 일어서려 했다. 비록 칠순은 넘었지만 젊은 사람처럼 정정한 것으로 보아 이 노파 역시 상당한 무공을 지닌 고수로 보인다.

하지만 막비강이 얼른 노파를 막았다.

[할머니께선 여기 계십시오. 마두들은 제가 다른 곳으로 유인하겠습니다.]

장연아가 얼른 끼어들었다.

[나도 함께 가겠어요.]

하지만 막비강은 얼굴을 굳히며 엄숙하게 말했다.

[안 되오. 나와 함께 나가면 이 집에까지 화가 미치게 되오.]

막비강의 말에 장연아는 입술만 삐쭉일 뿐 더 이상 우기지는 않았다.

[대신 이걸 좀 맡아주시오!]

막비강은 호로와 강장을 장연아에게 맡겨 두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

 

장씨 일족의 집을 나선 막비강은 외침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얼마 안가 그의 눈에 추명염왕, 삼촌정, 그리고 소면호 등이 날수선랑을 포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핫하하하!]

막비강은 마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큰소리로 광소를 터뜨리며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 저놈이 그놈이다!]

삼촌정은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에 날수선랑을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는 쏜살같이 막비강 쪽으로 날아왔다.

[거기 서랏!]

추명염왕과 소면호는 삼촌정이 비급이 숨겨진 장소를 먼저 알 것이 염려되어 다투어 삼촌정의 뒤를 쫓았다.

날수선랑도 마두들을 유인해간 소년이 누군지 궁금하여 황급히 마두들을 추격했다.

 

막비강은 비록 일 갑자 가까운 내공을 심후한 지녔지만 이제까지 전심전력으로 무예를 연마할 시간이 없었다. 자연히 추명염왕같은 절정고수들의 추격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십여리를 달렸을 때 마두들은 막비강의 바로 뒤에까지 따라붙었다. 이제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지만 막비강은 나름대로 생각해둔 바가 있어 태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들은 왜 나를 쫓아오는 거요?]

막비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추명염왕등을 돌아보며 물었다.

삼촌정이 맨 먼저 도착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앞에 서있는 소년의 얼굴은 처음 보는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막비강이 역용환을 이용하여 얼굴을 바꾼 것을 알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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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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