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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기정무협소설

 

                     武林群雄譜 -무림군웅보

 

1

 

 

 

 

 

序 章

 

 

 

 

<무림군웅보(武林群雄譜)>

 

수천년 무림의 역사(歷史)는 그야말로 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___겁륜천하(刦輪天下).

피의무림사는 수없이 돌고 도는 수레바퀴의 기록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인들의 뇌리에 깊이 뿌리박힌 무림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무림군웅보(武林群雄譜).

무림군웅보가 작성(作成)된 것은 불과 백년래(百年來)의 일이다.

무림군웅보,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근세 백년무림계는 실전되었던 수많은 신공지학(神功之學)들이 속속 발굴되어 뛰어난 영웅들이 무림사상 최고의 정화로 피어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백년래 가장 강()했던 고수(高手)들이 확연히 드러났다.

 

___백팔무인(百八武人).

 

모두 도합 백팔 명의 절세고수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어 무림을 빛냈다.

그들의 명단을 기록할 것이 바로 무림영웅보(武林英雄譜)였다.

누가, 언제 지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무림영웅보란 한 권의 책자(冊子)도 아니었다.

단지 무림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이었다.

무림군웅보에 오른 백팔무인은 가히 시대만 잘 타고 났으면 족히 무림의 패자(覇者)가 되고도 남을 개세고수들이었다.

허나 그들은 공교롭게도 동시대에 나타났기에 각기 한 지방의 패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걸출한 개세인물들이 있었다.

 

___일존(一尊) 천강마존(天罡魔尊).

 

백팔무인 중 최강의 인물이었다.

그는 백년무림은 물론 무림사를 통해 서로 최강의 천하제일고수(天下第一高手)로 칭송 받았다.

가히 개세무적의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었다.

일존 천강마존, 그는 무림에 활동한지 일갑자(一甲子)하고도 반갑자(半甲子)가 지났다.

그러나 지금껏 그의 일초반식(一招半式)조차 제대로 받아낸 자가 없었다.

그것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하여 무림군웅보에 오른 백칠 명의 절정고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예로, 백칠무인 중 최절정에 속하던 무위대제(武威大帝)조차도 그의 삼겁(三刦)을 못 받아내고 불귀의 객이 된 것이었다.

허나, 비록 그의 별호에 마()자가 붙었다고 하나 결코 그는 마두(魔頭)는 아니었다.

다만 성격이 강직하고 패도적이어서 자신의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여 마음에 거슬리는 자를 정사(正邪)를 가리지 않고 가혹하게 제거했기에 무림인들이 그에게 마존(魔尊)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무림군웅보의 두 번째 서열에는 이인(二人)이 올라 있었다.

 

쌍기(雙奇),

고죽취옹(枯竹醉翁).

낙척문사(落拓文士).

 

그들 두 기인(奇人)은 천강마존과 함게 당금무림에서 가장 배분이 높았다.

특히 고죽취옹(枯竹醉翁)은 천강마존이나 낙척문사보다도 오히려 한 배분이 높았다.

그는 각종 기문진학(奇門陣學)과 역리(易理)에 능통한 기인이었다.

낙척문사(落拓文士)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대학자(大學者)로서 성품이 고결했다.

그들 쌍기(雙奇)는 성격이 매우 고고하여 타인과 좀체로 다툰적이 없어 진정한 실력조차 알려진 바가 없었다.

무림군웅보는 세 번째 서열에 사인(四人)을 놓고 있었다.

 

사제(四帝).

 

당금 천하무림(天下武林)을 사분(四分)하고 있는 무적의 패자(覇者).

그들은 명성이나 위용은 구주사해(九州四海)를 진동시켰다.

 

구유명제(九幽冥帝).

유성검제(流星劍帝).

만천독제(滿天毒帝).

황룡대제(黃龍大帝).

 

이들 사인은 오히려 일존(一尊)이나 쌍기(雙奇)보다도 더욱 무림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본래, 일존 천강마존에게 죽음을 당한 무위대제(武威大帝)가 사제(四帝)의 일인(一人)이었다.

허나 그가 죽은 후 갑자기 두각을 나타낸 젊은 기협(奇俠) 황룡대제(黃龍大帝)가 사제의 일원이 되었다.

사제는 한결같이 경세적인 무학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잣 사순(四旬)인 황룡대제를 제외하고는 모구 백 세가 넘는 자들이었다.

시제는 모두 웅심호담을 지닌 대야심가들이었다.

허나 그들은 불행히도 한 시대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고금제일인으로 불리는 일존 천강마존으로 인해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칼을 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무림을 위해서는 그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만일 일존이 없었다면 그들 사제의 패권다툼으로 인해 무림은 평지(平地)가 될지도 모를 것이므로,

구유명제(九幽冥帝).

그는 사십 년 전 무위대제가 죽어 해체된 무위궁(武威宮)을 휘하에 끌어 들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구유문(九幽門)과 병합하여 유명궁(幽冥宮)을 세워 천하독패의 꿈을 꾸고 있었다.

 

유성검제(流星劍帝), 그는 무려 삼백 년(三百年)의 전통을 이어 내려온 유성검문(流星劍門)을 당대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대검사(大劍士)였다.

그 결과 유성검문은 산동(山東), 산서(山西), 그리고 장강(長江) 일대의 패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만천독제(滿天毒帝), 그는 사천(四川)에 독존궁(毒尊宮)을 세웠다.

그의 독존궁은 천하의 수많은 고수들을 끌어들여 나날이 세력을 확장할 뿐 아니라 강남(江南)과 멀리 천남(天南)에 까지 점차 마역(魔域)을 넓히고 있었다.

 

황룡대제(黃龍大帝), 그는 성품이 지극히 담백한 군자(君子)였다.

비록 사십의 중년에 불과하나 그의그런 인풍 때문에 그의 곁에는 절로 수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모였다.

때문에 비록 스스로 원하지는 않았으나 휘하의 도움으로 그는 돈황(敦皇)에 황룡보(黃龍堡)를 건립했다.

 

황룡보, 비록 건립된지 십여 년에 불과하나 황룡보는 정사(正邪) 양도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기인들이 모여 점차 무림의 태두(泰斗)로 발전하고 있었다.

실로 방대한 세력을 북()으로부터 뻗치고 있었다.

 

사제(四帝), 그들의 세력은 가히 천년 전통의 구파일방을 짓누르고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다.

허나 그들은 아무도 감히 천하제패의 발걸음을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

 

___천강마존(天罡魔尊),

 

모두가 무림군옹보의 첫머리를 장식한 그의 존재 때문이었다.

사제로서는 한시라도 천강마존이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무림(武林)___!

풍운일변의 혈세무림천하여___.

무림군웅보의 백팔무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무림은 흡사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이 무림사상 유래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허나...,

허나....!

무림군웅보의 영광스런 자리에 올랐던 백팔인의 개세고수들이 어느날 태반이 쓰러지면서 중원무림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대혈풍(大血風)이 일기 시작했으니...

새로운 무림의 혈사(血史)가 창조되려는가?

... 바람()이 분다.

()와 살()과 마()와 죽음()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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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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