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7화

 

                    부자가 되는 법

 

 

깊은 밤이었다.

곽범은 침상의 포근함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조그맣게 들리는 새소리가 신경 쓰여 눈을 떴다.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새소리였다.

"문 열어봐. 문 만 열면 아무 해코지도 안할게.”

"들어오기만 해봐라. 곽범이 잡아먹고 말 걸?”

겁쟁이가 창호를 사이에 두고 다른 새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럼 네가 말 좀 해줘. 난 원래 떠날 생각이 없었어. 그냥 좀 날고 싶었을 뿐이야.”

"왜? 내가 좋은 방에서 맛있는 거 먹으니까 부러운 거 아니고? 꺼져. 곽범은 내거야.”

새 한 마리가 돌아왔다.

겁쟁이가 못 들어오게 하는 중이었다.

"곽범이 그랬어. 나 외엔 다 귀찮다고. 성가시게 굴면 잡아먹어버린다고 했어.”

겁쟁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야야 목소리 좀 낮춰! 곽범 깨겠다.”

겁쟁이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창호 밖의 새가 애원했다.

"여긴 어떻게 찾았어?”

곽범이 물었다.

겁쟁이가 놀라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창호 밖의 새는 달아날 준비를 하며 대답했다.

"냄새 맡고. 나는 냄새 잘 맡아.”

"냄새 못 맡는 새가 어디 있어.”

겁쟁이가 핀잔을 줬다.

곽범은 대부분의 새가 냄새를 잘 못 맡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탁양앵무가 특이한 거다.

"잘 데가 필요해. 먹을 건 내가 알아서 구할 게.”

창호 밖의 앵무가 애원했다.

"조롱이 필요하면 새장수한테 잡힐 거지 여기는 왜 와? 새장수는 먹이도 줄 거야.”

겁쟁이가 비아냥거렸다.

"말도 안 통하는 무식한 놈하고 어떻게 살아.”

"그건 네 팔자지. 다들 그렇게 살아.”

“개자식!”

겁쟁이의 코웃음에 창호 밖의 앵무가 욕을 했다.

덜컹

곽범이 창을 열었다.

달아날 듯하던 새가 곽범의 표정을 보고는 방안으로 날아들어 왔다.

창을 닫기 전에 두 마리가 더 날아왔다.

그놈들은 멀찍이서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둥지가 필요해. 알을 아무데나 낳을 수가 없잖아.”

그놈은 암놈이었다.

"우리 중에 반은 여자야. 이제 곧 알을 낳아야 한다고.”

"그전에는 알 안 낳았잖아?”

곽범이 물었다.

암놈 하나가 화를 냈다.

"빛도 없고 먹이도 물고기밖에 없는데서 어떻게 알을 낳아?”

그 암놈은 까칠했다.

감히 곽범한테 이렇게 소리친 경우는 그간 없었다.

곽범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에는 이런 말 없었잖아.”

"그때는.”

암놈이 말하다가 멈칫한 후에 다시 말했다.

"짝짓기 하기 전이었어.”

다른 암놈이 말했다.

"젠장... 막 하늘로 올라가니까 기분이 죽이더라고. 오랫만이잖아. 그렇게 날아본 게. 그래서 막...”

"막 뭐?”

"막 달려들었어.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난리가 아니었어. 신나게 한 바탕했더니 알집이 무거워지더라고.”

곽범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니 겁쟁이가 말했다.

"새잖아. 당연한 거야.”

암놈이 새침하게 받았다.

"봄이잖아.”

곽범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금왕경에는 새를 부화하는 법이며 기르는 법이 적혀있다.

하지만 곽범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동굴에 있을 때는 무공보다 재미난 게 없었다.

"나도 새장수 해야 할까?”

곽범은 쓴웃음을 지었다.

"해. 너도 짝짓기 해야지.”

합류한 놈들 중 한 놈이 별 생각없이 말했다.

곽범은 그놈은 노려보았다.

그놈은 움찔해서 눈길을 피했다.

그리곤 겁쟁이한테 곽범이 왜 그러는지를 눈으로 물었다.

겁쟁이가 말했다.

"곽범은 이판하고 달라. 사람 같이 살고 싶은 가봐.”

"새 주제에 사람은 무슨.”

암놈 하나가 말하다가 부리를 닫았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 맞네. 같이 말하다 보면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려.”

기막힌 소리였지만 납득이 되었다.

제일 먼저 왔던 새가 곽범에게 애원했다.

"네가 우리 주인해라. 응. 말 잘들을 게. 원하면 알도 나눠줄 수 있어.”

겁쟁이가 생각을 바꿨는지 거들었다.

"품에 날아든 새는 쫓는 법이 아니라더라.”

새가 할 법한 소리도 아니었다.

"알아서 해.”

귀찮아진 곽범은 침대에 가서 누웠다.

허락받은 앵무새들이 깃털 날리지 않게 통통 뛰어와서 침대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새들은 겁쟁이가 올라앉았던 장대에 나란히 앉았다.

잠이 깨버린 곽범은 어떻게 돈을 벌어서 사람답게 사나 하는 고민을 했다.

그에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별 거 없었다.

좋은 것으로 가득한 인간세상에서 좋은 것을 다 누리는 것이었다.

예쁜 여자들도 많이 거느리고 싶었다.

 

***

 

아침이 밝은 후에 보니 방안은 새 노린내로 가득했다.

열었다가 대충 닫은 창문으로 십 여 마리가 더 들어왔던 것이다.

어떤 놈 밑에는 새똥이 떨어져 있었다.

곽범이 노려보자 그놈이 변명했다.

"자다가 깜박했어. 새장인줄 알고...”

새들은 겁쟁이만 남고 나머지는 곽범이 방을 나설 때 창밖으로 날아갔다.

 

방을 나서기 전에 몸을 씻고 동경 앞에 앉았다.

머리를 빗어 띠로 묶었다.

이년이나 빛을 보지 않고 살아서 피부가 분칠한 듯 하얗다.

피부는 희지만 새들과 싸우면서 철포삼을 익혔던 흔적이 남아있다.

흰 피부가 올록볼록해서 묘한 느낌을 주었다.

흰 돌이나 옥을 정으로 쪼아서 다듬은 것같다.

아랫층에 내려가니 객점 주인이 보고 말했다.

"마마를 아주 곱게 앓았구만.”

곽범은 맛있는 냄새에 환장할 지경이었다.

주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손님이 먹는 음식을 가리켰다.

"저거 주세요.”

"소고기 라면?”

"예.”

곽범은 빈자리에 가서 앉아 기다렸다.

여러 가지 요리 냄새가 황홀했다.

행복했다.

소고기 라면이 나왔을 때도 냄새부터 실컷 마신 후에 먹었다.

곽범은 주인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어쩌면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어요?”

"다른 것도 다 맛있어? 이것도 먹어볼래?”

곽범에게 돈이 있는 줄 아는 주인은 거푸 권했다.

곽범은 주는 대로 먹었다.

겁쟁이도 식탁 위의 음식을 주워 먹었다.

 

***

 

아침을 먹는다는 게 점심 때가 될 때까지 먹어 버렸다.

곽범은 자기도 객점을 가져서 먹고 싶은 건 다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객점을 차릴 돈이 필요했다.

 

시장과 점포를 돌면서 어느 곳에 가든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다 갖고 싶었다.

노리개들은 예뻤다.

붉고 푸른 비단 옷들은 매혹적이었다.

호통 치면서 일꾼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니 사람을 부리고 싶었다.

멋진 마차를 타고 가는 여인을 보니 마차 채로 다 가지고 싶었다.

"다 좋고 다 가지고 싶지?”

겁쟁이가 어깨에 올라 귀에 대고 조잘거렸다.

"촌놈인거 티 다나.”

"다 갖고 싶다.”

곽범은 솔직하게 말했다.

"도둑이나 강도는 싫다며? 그럼 부자가 되면 돼. 아니면 높은 벼슬아치가 되거나.”

겁쟁이가 말했다.

곽범은 머리를 저었다.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곽범은 성 안의 사람들을 찬찬히 살폈다.

그들이 하는 일과 돈이 오가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 중에서도 차림새가 좋고 품위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살폈다.

여럿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한 두 명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무리를 따라가니 음악소리 흘러나오는 기생집이나 요리집이 나왔다.

밖에서 듣기만 해도 흥겨웠다.

예쁘게 분단장한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애교부리는 콧소리가 가슴을 들끓게 했다.

겁쟁이는 곽범이 기생집에 들어갈까 봐 막았다.

거기 들어가고 나면 가진 돈 홀라당 다 털릴 거라며.

 

사람들은 따라 다녀 보니 그 중 반 이상의 행선지가 책방이었다.

그 바람에 책방 앞을 자꾸 어슬렁거린 꼴이 되었다.

곽범은 느끼는 바가 있었다.

사람이 되려면 배워야 한다.

부자가 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해도 배워야 한다.

책방 앞을 떠나지 않고 드나드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간혹 옷차림이 남루한 사람들이 보따리를 갖고 책방으로 들어갔다.

돌아 나오는 그 사람들에게 보따리는 없었다.

(아. 가난해서 책을 팔러 나오는 사람이구나.)

가슴이 철렁했다.

책을 사서 부자 되는 법과 높은 사람 되는 법을 배우려 했다.

그랬는데 책으로 배웠음에도 가난해져서 책을 파는 사람이 있다.

뭔가 잘못 되었다.

자칫하면 돈만 날려먹을 것 같았다.

책을 읽기만 하면 부자가 되어 즐겁게 살 거라 생각했었다.

그 계획에 먹구름이 끼어버렸다.

불안으로 심장이 쿵쿵거렸다.

곽범은 칼이 눈앞에 떨어져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부자는 되지 못하고 돈만 날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몹시 불안해졌다.

그럼에도 쉽사리 책방 앞을 떠나지 못했다.

부자가 되려면 글을 읽고 배워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떠올릴 수 없었다.

결국 책방으로 들어갔다.

"부자 되는 책 있어요?”

나이 지긋한 점원에게 대뜸 물었다.

점원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곽범의 얼굴을 보고는 진지하게 물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책은 없고 부자가 되는 방법을 말한 책은 있단다.”

점원의 말에 곽범의 불안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점원은 책 한 권을 골라 펼치더니 한 구절을 읽었다.

"부를 일구는 데는 정해진 일이 없고 재물에도 정해진 주인이 없다. 재주와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재물도 달아난다.”

곽범은 매우 기뻤다.

옳은 말이라는 걸 듣자마자 알았다.

"그 책을 사고 싶어요.”

"이 책은 69권 중의 마지막 권이야. 전부 다 사야해. 이것만 봐서는 아무 소용없어.”

점원은 책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고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예요?”

곽범은 책값을 물었다.

"책은 비싸다. 얼마 있는지 말하면 그에 맞춰 책을 주마.”

점원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사기네.”

곽범은 이마를 찌푸렸다.

점원이 의외라는 듯이 곽범을 다시 보았다.

곽범은 아직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겁쟁이한테 들은 대로라면 이판은 겁탈과 사기, 방화를 밥 먹듯 하던 놈이었다.

사부는 자신을 죽이려 했다.

사부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자기를 키웠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팔 년 넘게 가르친 제자를 죽이려 들 줄은 몰랐다.

"생긴 건 촌놈인데 영 촌놈은 아닌 모양이네.”

점원이 웃었다.

"얼마 있어? 싸게 줄 테니 말해봐.”

곽범은 주머니에서 아침에 밥값으로 썼던 만큼의 돈을 꺼냈다.

"겨우? 이거면 한 권도 못줘.”

점원이 코웃음을 쳤다.

겁쟁이가 곽범의 귀에 대고 제제거렸다.

"그냥 가자. 허여멀건 놈들이 말은 더 번지르르해. 넌 저놈을 말로 못 이겨.”

곽범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돌아 나왔다.

점원 뒤에서 돈 더 가지고 오라고 소리쳤다.

겁쟁이가 말했다.

"여기 말고 다른데도 있어. 전에 지나가면서 한 번 본적이 있어.”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