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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마왕(轉生魔王)

 

 

 

 

0화

 

                      하늘에 빠질 뻔하다.

 

 

수백 길, 수천 길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 중간쯤 바위틈에는 작은 암자가 끼어있다.

암자에서 나온 계단이 구름 아래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신기하게도 봉우리 정상 근처에 샘이 있다.

샘물은 거울처럼 하늘을 비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샘을 들여다보던 곽범(郭汎)은 움찔 물러섰다.

하늘에 빠질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졌다.

(물에 빠지듯 하늘에도 빠질 수 있겠구나!)

현기증과 함께 황홀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수백, 수천 번 샘을 들여다보았었다.

오늘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쩡하며 깨졌다.

“때가 된 것일까?”

스스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흔들리는 몸을 가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일 보던 아침 풍경이다.

그럼에도 전혀 달라보였다.

모든 게 단청을 새로 덧칠한 것처럼 찬란했고 선명했다.

무채색이었던 세상이 화려한 색을 입고 있다.

기암괴석들 사이로 흐르는 운무는 황금빛이다.

몽롱한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다시 태어난 것 같기도 했다.

나른해진 몸을 바위에 기댔다.

남아있는 밤의 냉기가 등으로 스며들었다.

얼굴에는 따뜻한 햇살이 쏟아진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랗다.

영락없는 바다다.

본 적이 없음에도 바다임을 알 수 있다.

바다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니, 내려다보고 있다.

당장이라도 등이 바위에서 떨어져 바다로 추락할 것 같다.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바다로, 하늘로 뛰어들 수 있다.

하늘 너머에 자신이 원래 있던 곳이 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하다.

날개가 돋아나려는 것 같다.

 

<때가 이르지 않았다.>

 

누군가 귓가에 속삭였다.

바위가 자석처럼 등을 잡아당겼다.

아니, 이 세상인가?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바다는 다시 하늘이 되어 있었다.

곽범은 자신의 몸이 땅의 권세에 속박되는 것을 느꼈다.

전율이 폭풍처럼 몸을 쓸고 지나갔다.

아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아니, 떨어지는 거였을까?)

방금 전의 감각을 또 느끼고 싶었다.

애쓰면 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아쉬움을 달래며 항아리에 샘물을 담았다.

사부가 좋아하는 차를 다릴 물이다.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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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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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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