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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의 미녀

 

 

사신각은 호천무맹이 봉문한 후 활동을 시작한 악명 높은 청부살인조직이다.

청부를 받으면 누구라도 죽여준다고 장담하며 설령 청부 대상이 황제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적정한 대가를 치러야하겠지만...

사신각의 살수들은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지령이 떨어지면 <()>자가 적힌 복면을 쓰고 표적을 척살을 시도한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일단 사신각의 표적이 된 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게 무림의 정설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공격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적은 알 수 없지만 사신각의 살수들이 기련산의 골골을 뒤지고 다니는 중이라고 하외다.”

독안랑이란 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딱히 누군가를 두려워해본 적이 없는 독안랑이다.

하지만 상대가 사신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언제 어디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물에게 공격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옥가년을 노리는 건 아닐 테고...”

금포장한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 역시 사신각의 살인귀들에는 꺼리는 바가 있었다.

루주께서 결심만 하지만 우리 마천루(魔天樓)의 형제들이 사신각의 인간백정들을 기련산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오.”

독안랑이 하나 뿐인 눈을 투지로 물들이며 말했다. 외눈의 늑대라는 별호에 어울리게 그자는 밥 먹는 것보다 싸움을 좋아한다.

사신각과는 장차 거래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소.”

루주라 불린 금포장한은 고개를 저었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사신각과는 충돌하지 말고 옥가 년의 종적을 찾도록 하시오.”

그리하겠소이다!”

대답하는 독안랑의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어떤 싸움이라도 마다하지 않지만 상대가 사신각이라면 꺼림칙한 면이 있는 것이다.

휘익!

독안랑은 다시 날아올라 멀어져갔다.

삐익! !

그와 함께 여기저기서 호각소리가 들리며 적지 않은 사람 그림자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애송이놈!”

휘익!

금포장한도 힐끔 소년을 훑어본 후 몸을 날렸다. 그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탓에 소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곧 금포장한의 모습도 소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우!"

그제서야 비로소 소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의 이마로 식은땀이 번져 나왔다. 금포장한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소년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숨을 내쉴 때였다.

!

돌연 소년의 무릎 위에 펼쳐져 있는 죽서기년 위로 새빨간 선혈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아주머니!"

소년은 놀라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으음!"

쿠웅!

그 직후 나직한 신음소리와 함께 나무 위에서 은발여인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 그녀의 입가로는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괜찮으십니까?"

깜짝 놀란 소년은 급히 은발여인에게 다가갔다.

으으으...”

은발여인의 안색은 밀랍같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으며 숨결은 희미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왜 이러실까?)

소년은 갑작스러운 은발여인의 변화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은발여인의 파리한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 말을 하신다.)

소년은 급히 여인의 입 근처로 귀를 기울였다.

"가슴... 약병..."

은발여인은 미약한 음성으로 그같이 말하고는 실신해버렸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슴에 있는 약병을 찾아달란 말씀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소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비록 나이 차이가 많으나 어쨌든 상대는 여자다. 생면부지인 여자의 가슴을 뒤지는 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의술에 문외한인 소년이 보기에도 은발여인의 상세는 아주 위중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은발여인이 걸치고 있는 검은색 저고리의 고름을 풀었다.

!

은발여인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옷고름이 풀려졌다.

출렁!

그러자 한 쌍의 살덩이가 눌려있던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

소년은 숨이 탁 막혔다.

생전 처음 보는 성숙한 여인의 젖가슴이다.

출렁! 출렁!

작은 수박을 반으로 쪼개서 엎어놓은 것같은 한 쌍의 살덩이들이 물 풍선처럼 흔들거린다. 엄청난 크기에 비해 젖가슴 위에 돋아있는 젖꼭지는 팥알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그 매혹적인 살덩이들을 본 순간 소년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어놀고 귀는 멍멍해진다.

본래 은발여인은 유난히 큰 젖가슴을 감추기 위해 비단 천으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헌데 그 젖 가리개가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으스러져 있었다.

은발여인이 걸친 흑의의 재질은 천잠사라 외력에 손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젖 가리개는 평범한 비단이라 으스러진 것이다.

(... 이럴 수가...!)

헌데 당황하던 소년의 눈에 경악의 빛이 더해졌다.

한 쌍의 육중한 살덩이 사이에 시뻘건 손바닥 자욱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희디흰 속살에 찍힌 핏빛 손자국은 너무나 선명하다.

그 때문에 소년은 핏빛 장인을 누가 일부러 그려 놓은 것이 아닌가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결코 그린 것이 아니었다.

(이 손바닥 자국이 이 분을 실신하게 만든 원인인 듯한데...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시 놀라던 소년은 서둘러 은발여인의 저고리 섶 안쪽을 뒤졌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소년의 손에 은발여인의 젖가슴이 느껴졌다.

따스하고 뭉실뭉실한 감촉은 한참 피가 뜨거울 나이인 소년에게는 아찔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게... 이게 여자의 젖가슴 감촉이로구나.)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소년은 곧 은발여인의 가슴 섶에서 하나의 옥병을 찾아냈다.

반 뼘도 안되는 자그마한 옥병 안에는 밀랍에 싸인 세 알의 호두알만한 환약이 들어있었다. 비록 밀랍에 싸여있지만 환약에서는 그윽한 향기가 풍겨 나와 주위를 진동했다.

(이것인 모양이다.)

소년은 눈을 빛내며 급히 한 알의 환약을 꺼내 밀랍을 벗겼다.

그리고는 은발여인의 입 안에 넣어주려 했다.

하지만 은발여인은 입을 꼭 다문 채 실신하고 있는 상태라 환약을 넣어줄 수가 없었다.

(어찌한다?)

소년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은발여인은 인사불성이라 스스로 환약을 삼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환약을 먹이려면 물 같은 것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소년은 준비해온 물을 모두 마셔버렸다.

그렇다고 근처의 샘이나 개울로 물을 뜨러 갔다 올 여유는 없다.

물을 뜨러 갔다 오는 사이에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은발여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잠시 갈등하던 소년은 결심을 했다. 비록 물은 없지만 은발여인에게 환약을 먹일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소년은 환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상큼하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그와 함께 환약은 소년의 침에 녹아 걸죽해졌다.

(용서하십시오.)

환약을 자신의 침으로 녹인 소년은 입술을 은발여인의 창백한 입술 위에 포개었다.

(허억!)

입술에 느껴지는 너무도 보드라운 감촉에 소년은 당황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여인의 입술... 그 황홀한 감촉에 금방이라도 심장이 펑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년은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은발여인의 꼭 다물려진 입술을 혀를 써서 벌렸다.

여인의 매끈한 치아가 혀끝에 느껴져 소년을 아찔하게 만든다.

소년은 비몽사몽간을 헤매면서 자신의 침으로 녹인 환약을 여인의 입속에 흘러 넣어 주었다.

잠시 후 소년은 마지못해 은발여인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미 침으로 녹인 환약은 모두 은발여인의 입속으로 흘러들어간 상태였다.

은발여인의 입술에서 입술을 뗀 소년의 가슴은 여전히 터질 듯 두근거리고 있고 귀는 멍멍하다.

입가에 남아있는 꽃잎의 그것같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

이성과의 처음으로 입맞춤을 한 경험은 실로 충격적이면서도 황홀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분이시다. 어머니 못지않게...)

소년은 망연한 표정으로 은발여인의 조각처럼 단아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은 넋이나가서 은발여인의 풍만한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사이에 은발여인의 창백한 얼굴에 발그레한 혈색이 돌아왔다. 소년이 먹여준 약기운이 온몸으로 퍼진 것이다.

"휴우..."

이윽고 긴 한숨과 함께 은발여인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은발여인은 흠칫했다. 가슴 부위가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젖 가리개가 훼손되었겠구나.)

자신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 알아차린 은발여인의 얼굴에 홍조가 살짝 어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물기 젖은 봉목이 나타났다.

"... 괜찮으십니까 아주머니?"

은발여인이 눈을 뜬 것을 본 소년은 당황하여 시선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소년의 순진한 모습에 은발여인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여자의 젖가슴을 처음 보느냐?"

은발여인은 드러난 젖가슴을 가릴 생각도 않고 짓궂게 물었다.

"... 당연하지 않습니까?"

소년이 화난 음성으로 내뱉으며 일어서려 할 때였다.

!

은발여인의 섬섬옥수가 소년의 손목을 잡았다.

지극히 연약하고 보드라운 섬섬옥수다.

하지만 일단 가녀린 그 손에 잡히자 소년은 움쭉달쭉도 할 수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은발여인은 소년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젖가슴으로 가져갔다.

"...!"

부르르!

소년은 당혹과 충격으로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몸을 벌벌 떨었다.

손바닥 가득히 느껴지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육질의 감각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자신의 손이 그대로 여인의 젖가슴으로 녹아들어가는 것같은 기분이 되었다.

은발여인은 그윽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처녀의 몸이란다."

"... 무슨 뜻이십니까?"

소년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은발여인은 그런 소년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나 옥여상의 젖가슴을 보고 만진 것은 네가 처음이란 말이다."

"... 죄송합니다."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은발여인은 고개를 살래 저었다.

"그런 말 할 것 없다. 너는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원한다면 나의 모든 것을 줄 수도 있단다."

그렇게 말하는 은발여인, 옥여상의 얼굴에 발그레 홍조가 어렸다.

(...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소년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미 옥여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소년은 얼굴이 발개진 채 은발여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은발여인의 젖가슴을 보지 않으려고 돌아앉았다.

"호호호 매정한 도련님이시군요."

옥여상은 유쾌하게 웃으며 일어나 앉았다.

(비록 어리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충후한 군자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내도 있구나.)

옥여상은 돌아앉은 소년을 살펴보며 벌어져 있는 상의를 여몄다.

"장난으로 해본 소리이니 마음에 둘 것 없다. 헌데 내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의 이름을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옷고름까지 단단히 동여맨 옥여상은 토라진 소년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녀의 말에 소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검추(劒秋)! 고검추(高劒秋)라고 합니다."

"고검추! 좋은 이름...!"

미소 지으며 말하던 옥여상은 일순 흠칫했다.

그녀는 놀란 눈길로 소년, 고검추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단아한 가운데 강직한 인상을 풍기는 고검추의 얼굴은 옥여상으로 하여금 어떤 인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그러고 보니 그를 닮지 않았는가? 성까지도 그와 같은 고씨이고...)

옥여상은 어떤 예감에 전율했다.

소년 고검추가 대체 누구를 닮았단 말인가?

(하지만 그에게 후사(後嗣)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아미를 모으며 잠시 생각하던 옥여상은 고검추에게 물었다.

"혹시 고창룡이란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느냐?"

고창룡이라면 욕정에 눈이 멀어 자신을 길러준 사모를 유린했다는 희세의 패륜아가 아닌가?

그렇다면 소년 고검추가 정파의 수치인 철사자 고창룡을 닮았단 말인가?

"고창룡? 저와 종씨인 듯하지만... 그런 분은 알지 못합니다."

고검추는 검미를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고창룡을 모른다?"

옥여상은 실망과 안도가 교차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 그보다 이 주위에 조용히 쉴만한 곳이 있겠느냐?"

"있기는 합니다만... 왜 그러시는지요."

고검추는 의아한 기색으로 옥여상을 바라보았다.

옥여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삼신단(雪蔘神丹)이 비록 희세의 영약이기는 하지만 쇄심마장(碎心魔掌)에 당한 나의 내상을 완전히 치료해 주지는 못한단다."

그녀의 말에 고검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삼신단이니 쇄심마장이나 하는 이름들은 그에게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무림인들이 옥여상의 말을 들었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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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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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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