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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백옥불 내의 어두운 공간.

쩍! 한쪽 벽에 세로로 얇게 빛이 생기더니

슈욱! 안쪽으로 나타나는 청풍.

청풍; [어!] 놀라며 돌아본다. 골방 안에 권완이 없다

청풍; (이쁜이가 어디 갔지?) 두리번거리는데

<전 이쪽에 있어요! 어서 와보세요!> 권완의 음성이 들리고

흠칫하며 한쪽을 본다. 벽이 조금 열려서 문을 형성하고 있다.

청풍; (저런 곳에 문이 있었군!) 문으로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청풍; (하긴 인공적으로 만든 골방이니 출입구가 있는 건 당연하지!) 생각하며 발을 내딛다가

미끈하며 미끄러지는 청풍의 발

청풍; [어어!] 주르르 미끄러진다. 문 안쪽은 아래로 통하는 구버러진 동굴. 마치 워터파크의 슬라이드 같은 구조다.

청풍; (이크!) 천장에 이마가 부딪히지 않도록 뒤로 누운 채 미끄러져 들어가는 청풍

청풍; (불상 내부에 잘도 이런 장치를 마련해놨군!) (제법 재미있는데...!) 미끄러지며 실실 웃고. 그러다가

[이크!] 슉! 원형의 어두운 방 천장에서 뚝 떨어지는 청풍. 어둠 속에 권완이 쪼그려 앉아서 뭔가를 보고 있다.

청풍; [나 왔어!] 휘릭! 덤블링하며 권완의 뒤에 내려서는 청풍. 이곳은 위쪽의 방보다 더 넓다. 둥그스름한 원형의 방이고

권완; [오셨어요?] 돌아본다.

청풍; [절묘하군! 대체 누가 거대한 불상 속을 깎아 이런 밀실들을 만들어 놓은 거지?] 둘러보며 권완에게 다가가고

권완; [백옥불을 깍은 장인은 아마 이걸 숨겨놓으려고 이런 밀실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앞을 다시 보며 말하고

청풍; [뭔데?] 권완 뒤로 다가가서 그녀가 보고 있는 걸 본다

옥으로 깍아 만든 작은 탁자가 있는데 그 위에 조약돌같은 게 두 개 놓여있다. 새하얀 색으로 밝은 빛을 내는 돌이다. 아래가 넓고 위가 좁아서 오뚜기를 연상케 하고

청풍; [난 또 뭐라고! 그냥 돌이잖아!]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서 돌을 잡으려 하고. 순간

놀란 듯이 움찔하는 돌들

발이 달린 것처럼 뒤로 움직여서 청풍의 손을 피한다

청풍; [어!] 놀라고

청풍; [방금 봤어? 저 돌덩이가 내 손을 피했어!] 권완에게

권완; [단순한 돌이 아니에요! 저 돌들은 살아있어요!]

청풍; [돌이 살아있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어이없는데

짝! 짝! 박수를 치는 권완. 그러자

돌이 똑바로 서서 실룩실룩 거리며 움직인다

청풍; [이... 이거....!] 경악하는데

권완; [소릴 내거나 손을 흔들면 따라서 춤을 춰요.] 흥분하며 손을 흔들고.

그러자 두 개의 돌이 권완의 손짓에 따라 서로 몸을 기대기도 하고 서로를 폴짝 폴짝 뛰어넘기도 하면서 논다.

청풍; [와!] 입이 쩍 벌어지고

권완; [이게 바로 <돌>이에요!]

청풍; [돌인 건 나도 알아!]

권완;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요것들이 바로 십장생(十長生) 중의 돌이에요.]

청풍; [십장생!] 놀라고

청풍; [그런 게 정말 있었어?]

권완; [수천년 전부터 전해오던 신령스러운 열 가지 영물이에요.] [마지막으로 십장생을 모두 모았던 분이 바로 <제왕>이세요.]

 

#130>

다시 옥불루. 백옥블 주변에다가 열심히 장작을 쌓고 있는 진달개. 건문 무너진 잔해에서 기둥과 서까래들을 뽑아다가 백옥불 주변에 둥글게 쌓고 있다. 옥불루의 지붕도 휑하니 뚫렸고

개미처럼 열심히 움직이며 장작을 쌓고 있는 진달개. 반면 황보천유는 옥불의 맞은 편에 앉아서 턱을 괸 채 옥불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다.

슈욱! 옥불의 뒤에서 빛이 나고

옥불루 밖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청풍. 두 팔로는 권완을 안고 있다. 권완은 양손으로 십장생을 보듬어 쥐고 있다. 권완의 손안에서 꼼지락 거리는 두 개의 돌

청풍; (무슨 짓들이지?) 창문 틈으로 안을 보는 청풍.

개미처럼 부지런히 드나드는 진달개. 양손에 굵고 긴 건물 잔해들을 들고 온다. 척척 백옥불 주변에 쌓는다. 이미 사람 키 정도로 장작들이 쌓여있고

진달개; [오라버니! 이 정도면 되지 않았어요?]

황보천유; [아직 멀었어. 좀 더 빨리 움직여봐 진매!] 대충 말하고

진달개; [알았어요!] 군말 않고 다시 달려 나가고

근처의 건물 잔해에서 기둥과 서까래를 뽑아내는 진달개

그걸 양손에 들고 옥불루로 달려오고

척! 척! 쌓아놓고 다시 달려 나가는 진달개. 완전히 종같다.

청풍; <저것들이 배가 고파서 불상을 구워 먹으려나봐!> 권완에게 속삭이고

권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권완; <저들은 지금 만년옥액을 얻으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절이 망하지만 않았다면 저런 방법은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했겠죠.>

청풍; <불로 구우면 만년옥액이 절로 흘러나오기라도 하나?>

권완; <짐작이 가는 바가 있긴 한데... 하여간 시간은 좀 걸릴 테니까 객점으로 돌아가서 좀 쉬다가 다시 오도록 해요.>

청풍; <그러자구! 여긴 피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오래 있고 싶지 않아!> 휘익! 경신술을 펼쳐서 날아간다.

 

#131>

청풍과 권완이 밥을 먹은 객점이 있는 그 마을. 아직 밤이 깊지 않아서 불빛이 환하다.

그 마을로 권완을 안고 날아가는 청풍. 권완은 두 손에 돌을 얹어놓고 본다. 꼼지락 거리며 서로를 끌어안거나 비비며 노는 한 쌍의 돌

청풍; [십장생이란 게 뭐야? 그냥 신기한 노리개인가?]

권완; [그럴 리가 없잖아요.] 눈 흘기고

권완; [십장생에는 저마다 신묘한 능력이 있대요.] [어쩌면 인간을 신선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르죠!]

청풍; [그럼 지금까지 십장생을 얻었던 사람들은 다 신선이 되었겠네?]

권완; [그렇지 않아요.] [누구든 십장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십장생을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대요.]

권완; [물론 제왕께서는 하나도 아니고 십장생 전부를 부리셨다고 해요.]

권완; [다른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십장생을 복종시킨 것만으로도 제왕께서는 전무후무한 존재신 거예요.]

청풍; [결국 제왕 정도 되는 인간이 아니라면 십장생은 얻어봐야 별 쓸모도 없다는 얘기네.] 돌들을 째려보며 코웃음치고. 순간

바르르! 겁에 질려 서로를 끌어안고 떠는 돌들

흠칫하는 권완

청풍; [뭐야 그것들! 사람 차별해?]

청풍; [자기한테는 온갖 아양을 다 떨면서 난 쳐다보기만 해도 생까고 말이야!] 툴툴 대며 날아간다

권완; (무시하는 게 아니야!)

권완; (십장생의 돌들이 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어!)

권완; (설마 내 생각대로 시댁이 바로 <그분>의 핏줄인 걸까?)

 

#132>

청풍과 권완이 밥 먹었던 그 객점

독채는 아니고. 정원이 보이는 곳에 죽 늘어선 방으로 안내받아 가는 청풍과 권완. 권완도 물론 걸어서 청풍을 따라간다

점원; [이방입니다.] 문을 열고

점원; [저희 가게에서 가장 조용한 객실입지요.]

청풍; [수고했어! 가서 일 봐!] 들어가고

점원;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옆방에는 스님 두 분이 드셨으니까 밤에도 조용할 겁니다!] 음험하게 말하고

청풍; [뭐야?] 눈 부라리고

점원; [헤헤헤! 그럼 편한 밤 되십시오!] 후닥닥 나가서 문을 닫는다

권완; [왜 갑자기 화를 내세요?] 어리둥절

청풍; [몰라서 물어?] 퉁명스럽게 말하는데

점원; [하여간 요즘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까지 객잔 출입을 한다니까!] 궁시렁대며 가는 점원

권완; [그... 그러니까 스님들이 머무는 방의 옆방을 준 게...!] 얼굴 새빨개지고

청풍; [중들이 들을 테니까 야한 짓 하지 말라는 거지 뭐!] 침대에 벌렁 눕고

권완; [무... 무례한 점원이로군요! 우리를 뭘로 보고...!] 얼굴 새빨개져서 문쪽을 곁눈질하고

청풍; [신경 쓰지 말고 이리 와서 좀 쉬어!] 자기 옆 자리를 탁탁 치고

권완; [저... 전 여기 앉아서 쉴게요.] 의자에 앉으며 억지 웃음

청풍; [우리만 떳떳하면 됐지 뭘 꺼리고 그래.] [오늘밤은 꼬박 새야할지도 모르니까 고집 부리지 말고 좀 누워서 쉬도록 해!]

권완; [예!] 일어나고

주춤 거리며 청풍의 옆에 눕는다

청풍; <옆방의 그 중들은 옥불사의 중들이야!> 곁눈질로 옆방을 가리키며 전음

권완;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흠칫

청풍; <옷과 몸에 피비린내가 배어있어! 중 주제에 피비린내를 풍기는 게 옥불사의 중들 말고 또 어디 있겠어!> 코를 벌름거리며

권완; (듣고 보니 그렇네.) 생각하고

청풍; <젠장! 도둑놈들처럼 귀를 벽에 붙이고 우리말을 엿듣고 있군.>

권완; <숨소리를 들어보니 우리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그 스님들이에요. 용케 살아있었어요!> 귀를 쫑긋

청풍; <원래 모진 것들이 명줄은 긴 법이야.> 코웃음

청풍; <신경 끄고 좀 눈을 붙여두자구!> 눈을 감고

 

옆방. 청풍의 말 대로 원구와 원적이 벽에 귀를 붙이고 동정을 살피고 있다.

원구; [바로 그 음탕한 년놈들이다.] 이를 갈며 원적에게 속삭이고

원적; [그런 것 같습니다.] 겁에 질렸고

원적; [전생에 우리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객점에서조차 또 이웃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벽에서 귀를 떼고

원구; [여길 빨리 떠나는 게 상책이다.] 역시 벽에서 귀를 떼고

원적; [방장사백의 유서에 적힌 내용을 풀어내는 대로 떠나도록 하자.] 탁자로 간다. 탁자에는 <遺書>라는 글이 적힌 봉투와 봉투에서 꺼낸 종이가 한 장 얹혀져 있다.

원적; [사형! 정말로 여기 기록된 장소에 만년옥액이 숨겨져 있을까요?] 의자에 앚고

원구; [평소에도 거짓말을 안 하시던 방장께서 죽어가면서 거짓말을 했겠느냐?] 원적과 마주 앉고

원적; [하지만 너무 얼토당토않은 데라서…!] 당혹

원구; [너, 넌 벌써 어딘지를 알아냈느냐?] 눈 번쩍

원적;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겸연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원구; [그럼 빨리 절로 돌아가자.] 벌떡

원구; [천고영약인 만년옥액만 얻을 수 있으면, 황보세가도 마면신장도 무섭지 않다.] 주먹 불끈

 

잠시 후. 원구와 원적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창문 밖으로 살며시 뛰어 나오고

이어 옥불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청풍과 권완이 있는 방. 나란히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청풍과 권완.

그러다가 눈을 뜨는 청풍.

담장을 넘어가며 뒤를 살피는 원구와 원적의 모습이 떠오르고

청풍; [별...!] 코웃음치고

권완; [스님들이 만년옥액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아냈나 봐요!]

청풍; [잘 됐군! 덕분에 옥불사가 머잖아 다시 부흥하겠지 뭐!]

권완; [하지만 그 스님들, 지금 옥불사로 돌아갔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예요.]

청풍; [팔자대로 살라고 해!]

권완; [자꾸 만나는 걸 보면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은데 도와줘야하지 않을까요?]

청풍; [인연은 무슨...!] 코웃음 치다가 찡그린다.

휘이이! 방안에 돌풍이 갑자기 일더니

스스스! 나타나는 공손대낭. 침대로 가까이 오진 못하고 창가에 바짝 붙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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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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