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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궁(迷宮)의 비밀

 

 

 

<노부는 누구보다도 옥사후, 그놈을 잘 안다.

옥사후는 절대 혼자만의 판단으로 노부에 대한 독살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배포가 큰 놈이 못 된다.

무엇보다도 옥사후에게 강력한 무공을 지닌 조력자가 있었다는 게 그놈이 다른 인간에게 사주를 받은 확실한 증거다.

무존성을 떠난 직후 정체불명의 인간들이 노부를 공격해왔던 것이다.

비록 노부의 손에 모두 죽기는 했지만 그자들의 무공은 기괴하면서도 위력적이었다.

당금 무림에 존재하는 무공다운 무공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노부건만 놈들의 무공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 데 놈들은 우내사천의 후손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해무존의 죽음에도 우내사천이 관련되어 있단 말인가?”

긁을 읽던 요문천은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득한 옛날 옥문관 밖 서역에 자리한 지옥성이라는 문파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것은 우내사천이라는 인물들이었다.

헌데 지옥성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사해무존 초패강을 공격한 자들 역시 우내사천의 후손일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다.

 

<무존성이 자리한 황산에서 이곳 북경까지 오는 동안 노부는 정체불명의 적들로부터 끊임없이 습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노부는 놈들이 옥사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습격한 자들의 대부분은 노부의 손에 죽었지만 그 대가로 노부 역시 회생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력을 쓰는 바람에 만성독약의 독성이 급격히 온몸으로 퍼져간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천독친왕부의 폐허에 도착한 노부는 오십여 년 전에 파악해두었던 비밀통로를 통해 갈태독의 보물창고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 사이에 독은 골수(骨髓)에까지 퍼져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만일 누군가 이글을 본다면... 무존성에서 노부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딸에게 흉수가 옥사후라는 사실을...>

 

글은 그렇게 끝이 나있었다.

사해무존 초패강은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독기가 골수에 미쳐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이분은 옥면환룡의 배후에 우내사천의 후손들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죽었다.)

저주마경에 적힌 글을 모두 읽은 요문천은 고개를 들어 사해무존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결국 얘기는 돌고 돌아서 우내사천으로 돌아가는구나. 지옥성이란 문파를 멸망시킨 것도 우내사천이고, 그 지옥성의 절기를 얻어 천하제일인이 된 사해무존 초패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후도 우내사천의 후손들인 듯하니...!)

어느덧 요문천의 마음속에도 우내사천이라는 존재가 거대한 바위처럼 들어차게 되었다.

(어쩌면 강호무림을 암중에서 지배하고 있는 것도 우내사천의 후손들일지 모르겠구나!)

요문천이 저주마경을 덮으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

갑자기 요문천의 왼쪽 다리 옆의 바닥에 뾰족한 날이 네 개 달린 얇은 표창이 날아와 박혔다

!”

깜짝 놀라 돌아보는 요문천의 눈이 부릅떠졌다.

끼기!

손바닥만한 크기의 시커먼 전갈이 뒤쪽에서 날아든 표창에 등이 찍힌 채 버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갈은 요문천의 다리 바로 옆에까지 다가왔다가 표창에 꽂혔다.

하마터면 요문천을 독침으로 찌를 뻔했던 상황이었다.

(전갈!)

요문천이 기겁하며 벌떡 일어날 때였다.

"조심해야한다. 이렇게 덥고 습기 찬 곳은 전갈 같은 독충(毒蟲)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니...!"

요문천이 지나온 쪽의 어둑한 통로로 어떤 여자가 말하며 다가왔다.

스윽!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는 물론 철접이었다.

(...)

헌데 그녀의 복장이 요문천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철접은 하의는 입지 않고 상체에 저고리만 걸치고 있는 것이다!

허리띠를 매고 있는 저고리의 하단이 엉덩이와 사타구니까지는 가리고는 있다.

하지만 그 아래로는 튼실하면서도 미끈한 다리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발에는 버선과 가죽신을 신고 있고...

요문천은 철접이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저고리의 아랫단이 조금이라도 들쳐지면 은밀한 부분이 무방비로 드러나는 차림인 것이다.

그와 함께 요문천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저주마경에 적혀있는 세 가지 절세무공의 비결을 집중하여 읽느라 거의 반 시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 몸은 좀 어떠십니까?”

요문천은 저고리의 아래쪽으로 드러나 보이는 철접의 희고도 미끈한 다리를 곁눈질로 훔쳐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졌다. 네게 또 한 번 신세를 졌구나!"

철접은 한숨을 쉬며 요문천에게 고개를 조금 숙여보였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는 더 이상 출혈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요문천이 발라준 금창약에 아주 빠르게 지혈이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 것이다.

물론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지만...

"거듭 입은 은혜는 꼭 갚도록 하마!"

철접이 애잔한 표정으로 요문천을 보며 말했다.

인자답게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철접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표정이 떠오르자 요문천은 가슴이 찌릿한 자극을 받았다.

인형같이 느껴지던 그녀가 비로소 피가 흐르는 여자로 느껴진 때문이다.

"... 마땅히 도와드렸어야하는 상황이었으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요문천은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심장을 애써 누르며 두 손을 마주 쥐어 포권을 했다.

"늦었지만 동생 분의 일은 유감입니다.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요문천은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로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진 것을 어찌하겠느냐?"

철접도 우울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여서 답례를 했다.

그와 함께 내려 까는 철접의 눈가로 눈물이 맺히는 것이 언듯 요문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애처롭다.)

철접의 눈물을 본 요문천은 가슴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작은 표정, 감정의 변화등이 어째서 이렇게 강렬하게 느껴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요문천이었다.

(그나저나 뭐가 급해서 하체는 벌거벗은 차림으로 온 것일까? 치마가 찢어지고 피로 물들긴 했어도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문천은 치마를 입지 않아서 그대로 드러난 철접의 미끈한 다리를 곁눈질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앞으로 어찌하실 계획인지요?"

그러면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글쎄다!"

요문천의 물음에 철접은 힘없이 웃었다.

"청부받은 일을 실패했으니 막북의 토곤에게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도 이젠 내게 없구나!"

철접은 천장을 보며 처연하게 웃었다.

"아무리 비정하고 냉혹한 인자로 길러져온 나라고 해도 일단 첫 시도에서 실패한 자살을 다시 하기는 쉽지 않단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철접의 눈가로 눈물이 비치는 게 요문천의 눈에 들어온다.

"자살이란 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요문천은 어색하게 웃으며 철접의 말에 동조했다.

"세상은 넓고 넓지만 내가 돌아가고 속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지!"

철접은 눈 꼬리에 맺히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면서 처연하게 웃었다.

(너무도 가엾다.)

철접의 모습의 요문천은 가슴 깊은 곳이 다시 한 번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저 여자의 외로움과 비애가 내 일처럼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정은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인데...!)

그런 요문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접은 우울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여서 전갈을 찔러 죽인 표창을 회수했다.

철접이 몸을 숙이자 저고리 사이로 묵직한 가슴이 출렁이는 모습이 들여다보여 요문천의 입속을 마르게 한다.

"내가 아는 바가 정확하다면... 난 너보다 열 살 연상이다."

철접은 표창에 묻은 전갈의 흔적을 옷깃에 닦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봤는데... 이 여자 벌써 서른 살이 다 되어가는구나!)

요문천은 철접의 나이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한 두 살 차이도 아니니 앞으로도 계속 말을 놔도 되겠지?"

철접은 그런 요문천을 지긋이 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요문천은 얼굴이 좀 붉어지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선은 여길 더 살펴볼...!"

말하던 철접이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에 귀를 기울였다

"왜 그러십니까?"

그 모습에 요문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도 귀를 기울여 봐라!"

철접이 손가락으로 어둑한 통로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요문천은 저주마경을 들지 않은 왼손을 귀에 대고 철접이 가리키는 쪽으로 청각을 집중했다

사락! 사락! 사각!

그러자 무언가 흐르는 듯한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이건...!"

요문천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모래가 흘러가는 듯한 소리로 들립니다만... 썩 기분이 좋은 소리는 아니군요."

"같이 가보자!"

요문천의 말에 철접이 그때까지 지옥교의 손잡이에 걸려있던 등을 떼어 들고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

요문천은 대답하며 급히 저주마경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사해무존의 시신이 두르고 있는 허리띠에서 빈 칼집을 뽑아내었다.

칼집은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듯 상당히 묵직하다.

요문천은 그때까지 바닥에 꽂아놓았던 지옥교를 뽑아서 그 칼집에 꽂았다.

철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지옥교는 칼집 속으로 정확하게 채워지며 들어갔다.

(역시 이게 지옥교 전용의 칼집이었구나!)

요문천은 칼집에 넣은 지옥교를 자신의 허리띠에 끼웠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초노사의 사인은 무존성에 분명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어 그는 사해무존 초패강의 시신에 대고 정중하게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철접이 앞서 간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요문천의 앞쪽에 철접이 등을 왼손으로 쳐들어서 앞쪽을 비추며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철접이 상체에 걸치고 있는 저고리는 대부분이 피로 물들어 있어 어두운 색조를 띄고 있다.

또 긴 머리카락이 등 뒤로 흘러내려 뽀얗던 목덜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철접의 상체는 어둠에 동화되어 그 형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옷을 걸치지 않은 하체는 흐릿한 등불에 비쳐져서 뚜렷하게 부각되어 보인다.

(마치 아랫도리만 있는 여자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같다.)

요문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종종 걸음으로 철접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앞서가던 철접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요문천이 철접 바로 뒤에 멈춰서며 물을 때였다.

피핑!

철접은 대답하지 않고 앞쪽의 어둠 속을 향해 오른손을 저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 틈엔지 네 개의 뿔이 달린 얇은 표창이 몇 개 쥐어져 있다가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 끼익! 빠카캉! !

어둠 속에서 불똥이 튀면서 무언가 비명을 지른다

(또 전갈인가?)

요문천이 흠칫 놀랄 때 멈춰서있던 철접이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삼장 정도 앞쪽의 통로 여기저기에 표창들이 박혀있다.

전갈과 커다란 지네, 거미등이 그 표창에 꽂혀 벌벌 떨고 있다.

독충들은 모두 비정상적으로 커서 손바닥만하다.

전갈과 지네, 거미등이 그렇게 크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 요문천이다.

(이 안의 독충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저렇게 큰 것일까?)

요문천이 놀라며 기웃거릴 때였다.

앞서가던 철접이 허리를 숙여서 독충들의 몸에 박힌 표창을 다시 회수하기 시작했다.

(으헉!)

순간 요문천은 심장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눈을 부릅떴다.

철접이 허리를 숙이는 바람에 저고리가 위로 딸려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달덩이같은 둔부가 요문천의 시야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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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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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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