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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왕(毒王)이 남긴 보물

 

 

 

종유석의 뒤쪽에는 또 다른 지하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앞쪽의 지하 광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다.

또 빛을 뿜어낼만한 보물들이 없어서 어둑하다.

그 어둠 속에 거대한 뱀의 골격이 누워있다.

형태를 보면 분명 뱀의 것이다.

한데 죽 늘어선 갈비뼈 안쪽으로 사람이 서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스스스! 지지지!

몸길이가 끝이 안 보일 지경으로 긴 그 괴수의 시체에는 수많은 독충들이 달라붙어 있다.

(무슨 뱀의 골격이 이렇게 크단 말인가?!)

요문천이 어둑한 광장 안쪽을 기웃거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였다.

"저놈은 아마도 파사(巴蛇)일 것이다."

"파사!"

요문천은 놀라 철접을 돌아보았다.

"전설 속의 영웅 예(羿)가 죽였다는 그 거대한 뱀 말입니까? 코끼리도 한 입에 삼켰다는...?"

"그 옛날 후예(后羿)가 동정호(洞庭湖)에서 잡아 죽인 파사는 얼마나 컸는지 그 뼈를 모아놓은 것이 언덕이 되어 파릉(巴陵)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진짜 파사에 비하면 저놈은 아주 작은 축에 속할 것이다."

철접이 어둑한 지하 광장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파사는 용이 되다만 영물로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짐승의 왕이었다고 한다.

크기가 코끼리를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고 한다.

또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신통력과 한번 뿜어내면 수십 리 안쪽의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끔찍한 독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파사는 용이 되지 못한 분풀이를 세상에 해대었다.

그 때문에 동정호 일대는 수시로 물난리가 났고 파사가 내뿜는 독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명이 죽어갔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천신(天神) 중 한명인 후예로 하여금 파사를 죽이게 했다 것이 전설의 내막이다.

후예의 아내가 달에 홀로 산다는 항아(姮娥).

 

키키키! 키키! 샤샤샥! 스르르!

철접이 연기를 뿜어내는 등을 들고 다가가자 파사의 뼈에 달라붙어 있던 독충들이 썰물처럼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

독충들이 달아나면서 광장 바닥에 손바닥보다 큰 비늘들이 수없이 널려있는 게 드러난다.

금속인 듯 번쩍이는 그것들은 파사의 몸을 덮고 있었던 비늘이다.

강철보다 더 단단한 그 비늘 덕분에 인간의 힘으로는 파사를 죽이는 게 거의 불가능했었다.

이놈이 진짜 파사의 후손이라면 멀리 남쪽 동정호 근처에 살았을 텐데... 어떻게 멀고 추운 이곳 북경 근처까지 와서 죽은 것일까요?”

요문천은 철접의 뒤를 따라 두 번째 광장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내 생각으로는 갈태독이 이놈을 동정호에서 이곳으로 불러왔을 것이다. 시시각각 북경으로 육박해오는 주원장의 군세를 상대할 무기로 쓰기 위해서... 독왕보궁 일대에 서식하는 독충들은 갈태독이 기르던 것들일 테고...”

철접이 파사의 골격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요문천의 뇌리에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원나라 말엽에 조백하에 용이 나타났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나라는 망하지 않을 거라고들 했지만 채 한 달이 못 되어 대장군 서달의 군세가 북경을 점령했지요.”

만일 이놈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걸 사람들이 보았다면 용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철접은 등을 쳐들어서 무언가를 찾는 표정으로 파사의 골격 옆을 지나갔다.

(오래 살아 영통했을 터인 파사는 동정호에 살던 중 갈태독의 부름을 받고 장강(長江)을 따라 동해(東海)로 나갔다가 북상하여 북경 근처를 흐르는 조백하로 거슬러 올라왔을 것이다. 이 지하광장은 조백하와 연결되어 있을 게 분명하고...)

요문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파사의 거대한 뼈 옆을 지나갔다.

"독왕보궁 근처에 사는 독충들이 유별나게 컸던 것은 파사의 시체를 뜯어먹은 때문일 것이다!"

철접은 말하면서 한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의 독충들이 비정상적으로 큰 건 그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군요."

요문천도 철접의 말에 동의했다.

(헌데 누가 이 엄청난 괴물을 죽인 것일까? 유력한 후보라면 사해무존 초패강이지만 그가 이무기나 대사(大蛇)를 죽였다는 얘기는 없는데...)

요문천이 파사의 사인(死因)에 대해 생각하며 갸웃거릴 때였다.

"네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파사의 골격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철접이 어떤 종유석 앞에 멈춰서며 말했다

"... 시체로군요!"

멈춰선 철접 옆으로 다가간 요문천은 다시 한 번 놀라 침을 꼴깍 삼켰다.

철접이 보고 있는 종유석 아래쪽에는 한 구의 시신이 기대앉아 있다.

시신은 살이 독충들에게 뜯어 먹힌 듯 모두 사라져 뼈만 남은 상태였다.

헌데 기이하게도 남아있는 뼈가 온통 수북한 털로 뒤덮여있다.

골격으로 보아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았던 인물일 것이다.

그 시체 옆에는 낡은 책 한권과 수없이 많은 마디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채찍이 한 자루 놓여있다.

(사람의 뼈에서 털이 자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시신의 뼈가 털로 덮여있는 것을 본 요문천이 놀랄 때였다.

"이 시신의 주인이 누구일 것 같으냐?"

등을 바닥에 내려놓은 철접이 시신 옆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두 가지 물건을 집어들며 물었다.

순간 요문천의 뇌리를 벼락같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천독친왕 갈태독? 사해무존에게 패해 중상을 입고 달아난 후 두 번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그자의 유골입니까?"

"네가 직접 확인해봐라!"

철접은 흥분하여 묻는 요문천에게 바닥에서 집어든 두 가지 물건 중 낡은 책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미는 검은색의 책 표지에는 <九毒眞經 上篇>이라는 글이 적혀있는 게 요문천의 눈에 들어왔다.

(구독진경(九毒眞經) 상편(上篇)!)

요문천은 눈을 치뜨며 책을 받아들어 표지를 넘겨보았다.

표지 안쪽의 첫번째 장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필체의 글이 아래위로 적혀있다.

 

<구독신왕(九毒神王) 갈극(葛極)이 독문(毒門)의 영광을 위해 구독진경 상, 하편을 짓는다.>

 

이것이 상단에 적혀있는 글이다.

저주마경처럼 아주 오래전에 쓰여진 듯 서체가 전자체(篆字體).

(구독신왕 갈극? 이 이름도 처음 듣는 것인데...!)

요문천은 갸웃하며 아래쪽의 글을 읽었다.

 

<못난 후손 갈태독이 조사님의 보우하심 덕분에 구독진경 상, 하편 중 상편을 얻게 되었습니다. 조사님의 뜻을 받들어 우내사천과 다른 천외오패(天外五覇)를 세상에서 없이할 것을 맹세합니다.>

 

두 번째 글은 해서체(楷書體)로 적혀있는데 먹의 색이 선명하여 쓰여진 것이 아주 오래 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갈태독! 역시 저 해골은 천독친왕 갈태독의 것이었군요!"

두 번째 글을 읽은 요문천은 털로 뒤덮인 해골을 돌아보며 흥분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자세히 보니 해골은 오른쪽 팔이 팔꿈치 위에서 잘렸으며 가슴의 늑골들도 여러 개 잘려져 있다.

무언가 예리한 것이 해골의 팔과 가슴을 동시에 베어버린 형상이다.

해골의 주인은 바로 천독친왕 갈태독이었던 것이다.

(각기 한 시대를 호령했던, 그리고 서로를 죽고 죽인 사이인 사해무존 초패강과 천독친왕 갈태독이 지척에서 최후를 맞이했구나.)

해골이 된 시신이 갈태독의 것임을 확인한 요문천은 복잡한 심사가 되었다.

사해무존과 갈태독이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해무존에게 패해 치명상을 입은 갈태독은 이곳 독왕보궁에 숨어서 상처를 치료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을 것이다."

철접이 구독진경과 함께 집어든 검은색의 채찍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그럼 그 채찍이 바로...!"

요문천은 놀라 눈을 치뜨며 철접의 손에 들린 채찍을 바라보았다.

"갈태독의 애병인 묵린천독편(墨鱗千毒鞭)이다. 듣기로는 한번 휘둘러지면 어떤 호신강기라도 촛농처럼 녹여버렸다는구나."

철접은 말하며 검은색의 채찍, 묵린천독편을 요문천에게 내밀었다.

 

묵린천독편은 이무기의 비늘을 천 가지 독()에 담가 만든 채찍디.

내공을 주입시키면 멸절독강(滅絶毒罡)이라는 무시무시한 독기가 뿜어져 나간다.

묵린천독편에서 뿜어지는 멸절독강의 위력은 실로 가공하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철벽을 녹여 버릴 정도라고 한다.

오십이 년 전, 사해무존 초패강이 지옥교를 들고 나타나기 전까지는 세상 그 어떤 신병이기도 묵린천독편에 맞설 수 없었다.

사실 묵린천독편과 지옥교는 모두 고금십병(古今十兵)에 드는 무서운 병기들이었다.

경륜이 일천한 요문천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독왕보궁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찾은 건 너다. 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철접은 묵린천독편을 요문천에게 내밀며 말했다.

"묵린천독편은 필요 없습니다. 전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요문천은 허리에 차고 있는 지옥교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묵린천독편은 내가 잠시 보관하도록 하마!"

요문천이 사양하자 철접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따라 오너라!"

그녀는 묵린천독편을 둘둘 말아 쥐며 파사의 골격쪽으로 걸어갔다.

요문천도 구독진경 상편을 품속에 넣으며 철접을 따라서 파사의 뼈 안으로 들어갔다.

 

파사의 골격은 워낙 커서 철접과 요문천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골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찌찌찌! 스스스!

철접이 둘둘 말아 쥔 묵린천독편을 앞으로 내민 채 다가가자 파사의 골격에 달라붙어 있던 독충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묵린천독편에 농축되어있는 독기가 워낙 강해서 독물들도 두려워하는구나!)

요문천이 그것을 보며 생각하며 따라갈 때였다.

"여길 봐라!"

이윽고 파사의 목 부분에 이른 철접이 묵린천독편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요문천이 올려다보니 그 부분의 뼈가 마치 촛농처럼 녹아있다.

"파사의 목 부분 뼈가 녹아있군요! 저 상처는 혹시...!"

"묵린천독편에 당했을 것이다!"

요문천의 말에 철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사를 죽인 게 다른 사람도 아닌 갈태독이었군요. 헌데 갈태독은 어째서 수천 리 밖에서 자신을 찾아온 이 영물을 죽인 걸까요?"

"파사는 몸 속에 한 가지 보물을 품고 있었다. 그걸 빼앗아 복용하면 사해무존의 검기에 심장이 갈라지는 중상을 입었던 갈태독도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철접은 요문천의 물음에 대답하며 다시 돌아섰다.

"갈태독이 독왕보궁으로 숨어들어온 이유가 단지 몸을 숨기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철접을 따라가며 요문천은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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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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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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