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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천안탑 내부. 아주 화려한 대청이다. 네 명의 가마꾼이 조심스럽게 가마를 내려놓고 있다. 철신장이 가마의 문을 열려 하고

철신장; [도착했습니다 전하!] 덜컹! 가마의 문을 열어주며 말하고

영락제; [수고했네.] 슥! 가마에서 나서고. 죽립은 쓰지 않았다. 도연도 죽립은 가마에 벗어둔 채 따라 나온다. 그러다가

[!] 눈 번뜩이는 영락제

냉상영; [천한 계집이 용안(龍顔;임금의 얼굴)을 뵈옵게 되었으니 삼생의 영광이옵니다.] 쿵! 냉상영이 단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 있다.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 있고. 단상에는 화려한 의자가 놓여있고. 풍신장은 벽쪽에 붙어 있다가 고개 숙인다

영락제; (이 계집이 천안신녀...) + [명불허전이로군.] 냉상영에게 다가가며

영락제; [고가 그대를 방문한 일은 천하에 오직 왕사만이 알고 있었거늘...] 냉상영 앞에 멈춰서며 말하고. 그 뒤에서 가마꾼들은 가마를 들고 뒷걸음질치고 있다. 벽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냉상영; [용(龍)이 움직이면 구름도 함께 움직이옵니다.] [술사를 자처하는 인생이 어찌 그 정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겠사옵니까?] 고개 들며 배시시 웃고. 요염하다

도연; (용안이라는 말을 하더니 아예 전하를 용으로 비유한다?) 눈 번뜩

영락제; (요물이로군.) + [시험은 통과다.] 냉상영을 지나치며 말하고

영락제; [그럼 이제 본론을 말해봐라!] 슥! 단상으로 올라가 몸을 돌리며 말하고. 냉상영도 앉은 채 몸을 돌리고

영락제; [고가 무슨 용건으로 그대를 찾아온 것같은가?] 슥! 단상의 의자에 앉으며 말하고

냉상영; [전하께서는...] 배시시 웃으며 말하고

냉상영; [하얀(白) 모자를 쓰실 준비를 마치지 않으셨사옵니까?]

<하얀 모자!> 눈 부릅 놀라는 영락제

[!] 도연의 눈도 부릅떠지고

 

#12>

천안탑을 밖에서 본 모습. 사람들이 여전히 줄을 서있고. 염신장과 냉신장도 여전히 팔짱 낀 채 문을 지키고 있고

[!] [!] 무언가 느끼는 염신장과 냉신장

덜컹! 좌우에서 문을 여는 두 사람

휘익! 열린 문으로 날 듯이 나오는 가마. 네 명의 건장한 가마꾼이 가마를 들고 달려나오는데 아무런 소리도 흔들림도 없다. 그 뒤를 철신장이 따라 나오고

사람들이 놀라 보는 사이에 날 듯이 멀어지는 가마. 그 뒤를 향해 포권하는 철신장

<저 가마에 탄 인물이 누구기에 사신장의 으뜸인 철신장이 직접 배웅을 하는 건가?> <놀랄 일이로구먼.> 사람들 그걸 보며 생각

그 사이에 멀어지는 가마

그러자 포권을 풀고 돌아서는 철신장

철컹! 철신장이 들어가자 문을 닫는 염신장과 냉신장

 

#13>

천안탑의 오층. 창가에 냉상영이 서있다. 약간 안쪽에 서있어서 아래쪽 사람들의 시야에서는 안보인다

멀리 신녀문의 정문을 빠져나가는 가마가 작게 보이고

그긍!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철신장이 나온다

철신장; [대사를 무사히 치룬 셈인가?] 다가오고

냉상영; [지금까지 접견한 인간들중 최고의 거물이라 부담이 됐는데 어쨌든 별 탈 없이 끝났군요.] 두 손으로 옥패를 하나 만지작거리고 있다. 직사각형으로 윗 부분에는 끈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철신장; [귀족(貴族)이라면 몰라도 황족(皇族)이 찾아온 적은 없었지.] 나란히 옆에 서며 고개 끄덕

철신장; [헌데 연왕이 흰 모자를 쓸 준비를 마쳤다는 건 무슨 뜻인가?] 냉상영을 돌아보며 묻고

냉상영; [왕(王)이 흰(白) 모자를 쓰면 뭐가 될까요?] 배시시 웃고

철신장; [황(皇)!] 깨닫고 눈 부릅뜨는 철신장.

철신장; [연왕... 연왕 주체가 조카인 건문제(建文帝)를 몰아내고 황제가 될 작정을 했구나!] 흥분하며

냉상영; [연왕은 아비인 주원장(朱元璋)을 닮아서 철석간담(鐵石肝膽)을 지닌 위인이에요.] 끄덕이며 수중의 옥패를 보고. 직사각형인 옥패에는 <免死>라는 글이 적혀있다.

냉상영; [하지만 제 아무리 간담이 커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도박을 목전에 두었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옥패를 살피며 차갑게 웃고

냉상영; [그러던 차에 내가 족집게처럼 예언을 한다는 소문을 듣자 불안한 마음을 달래볼 겸 찾아왔던 거예요.]

철신장; [그럼 삼년고진(三年苦盡) 만세영화(萬世榮華)라는 참언(讖言;예언)을 한 건 연왕이 결국 모반에 성공하여 황제가 된다는 뜻인가?]

냉상영; [건문제가 비록 무능하다 해도 명나라 황실의 정통성은 그에게 있어요.]

냉상영; [연왕이 꾀주머니인 도연의 보좌를 받아 책략(策略)과 용전(勇戰)을 다한다 해도 건문제를 쓰러트리려면 족히 삼년은 걸릴 거예요.] 도연을 떠올리며

철신장; [지금 그 말이 맞다면 신녀가 정말로 선견(先見)의 이능(異能)을 지녔다고 믿지 않을 수가 없군.]

냉상영; [그럼 지금까지 제가 사술(詐術)로 사람들을 기만했다고 생각해온 건가요?] 철신장을 흘겨보고

철신장; [솔직히 그런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끄덕

철신장; [우리 마교에도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투심섭혼술(偸心燮魂術)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냉상영의 표정이 약간 변하고

철신장; [신녀가 혹시 투심섭혼술같은 것을 익혀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원하는 대답을 해준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냉상영; [섭섭하긴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이니 화를 낼 수는 없군요.] 새침하게

냉상영; [하지만 당신도 머잖아 내가 진짜 신녀(神女)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홱 돌아서서 엘리베이터쪽으로 가고

철신장; (계집의 속 좁은 소견이라 한동안 삐져서 찬바람을 일으키겠군.) 쓴웃음 지으며 따라가고

냉상영; [먼저 내려가서 준비하겠어요.] [당신은 계단으로 내려가서 사람들을 들여보내세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며 말하고

멈칫! 하며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서는 철신장

냉상영; [해질 때까지만 사람들을 접견할 테니 나머지는 돌려보내도록 하세요.] 그긍! 닫히는 문 안에서 말하고

철신장; [그럼세.] 끄덕이며 돌아서고

철신장; (냉상영...) (난 저 계집의 이름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계단으로 가며 찡그리면서 생각하고

철신장; (십삼년 전, 몰락한 마교의 후계자로 실의에 빠져 나날을 보내던 나와 의형제들 앞에 어느 날 문득 모습을 드러냈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하고

 

<냉상영은 어디서 구했는지 천마 방각님의 구대절기(九大絶技) 중 네 가지를 내놓으며 계약을 제안했었다. 천하의 주인이 되려는 자신의 야심에 일조하라는...> 어둑한 술집 같은 곳에서 20대 초반이던 냉상영이 네명의 사내를 만나고 있다. 탁자에는 네권의 비급이 놓여있고. 네 명의 사내들이 눈을 부릅뜨며 그걸 보고 있다. 네명의 사내들은 물론 신녀문의 사신장이다. 철신장은 변함이 없고 풍신장은 기생오라비같은 인상의 청년이고 염신장은 우직한 인상, 냉신장은 차가운 표정의 서생이었다.

 

철신장;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형제들은 신녀의 번견(番犬;집 지키는 개) 노릇을 해온 것이다.)

철신장; (냉상영, 네 진정한 속셈을 나로서는 모른다.) 이윽고 계단을 통해 일층에 내려온 철신장. 일층에서는 냉상영이 의자에 여신처럼 앉아있고 내총관을 비롯한 여자들이 그녀의 몸 단장을 해주고 있고 사람들을 접견한 준비를 한다

철신장; (하지만 날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곁눈질로 냉상영을 보며 입구쪽으로 걸어가고

철신장; (나 방철산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금제일인이셨던 천마 방각님의 고귀한 핏줄이니...) 덜컹! 문을 연다

문 밖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고

철신장; [신녀께서 일몰(日沒) 전까지만 접견을 허락하셨소.] 사람들에게 외치고

[일... 일몰전까지...?] [그럼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사람들 울상 짓고. 특히 뒷열의 사람들이

철신장; [여러분의 간절한 마음은 알겠지만 대략 서른분정도만 접견이 가능할 것이오.] [나머지 분들은 객사(客舍)로 돌아가셨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방문해주시오.] 눈을 부라리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신... 신녀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도리가 없지.] [내일은 꼭두새벽부터 달려와야겠군.] 실망한 뒷열의 사람들 돌아서고. 앞열의 사람들은 희망에 찬 표정들이고. 보따리를 품에 안은 노인도 아슬아슬한 선에서 남아있다.

철신장; [그럼 첫 번째 분부터 입장하시오.] 옆으로 물러서고

[감... 감사합니다요.] 짐을 짊어진 사내가 굽신거리며 들어간다.

철신장; (저 표정들이 우리 신녀문의 힘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흥분과 희망에 찬 표정을 보며 생각하고

철신장; (어리석은 중생들의 신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이용하면 한 때 사비세의 으뜸으로 불리던 마교를 부활시키는 것도 꿈은 아닌 것이다.) 철신장의 야심에 찬 표정

 

#14>

신녀문이 멀리 보이는 길. 사람들이 오가는데. 가마를 멘 네명의 가마꾼이 날 듯이 달려간다. 사람들이 급히 피하고

가마의 내부. 영락제와 도연이 마주 앉아있다. 화려한 가마 내부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영락제; [하늘의 눈(天眼)을 지닌 신녀라...] 팔짱을 낀 채 중얼거리고

도연; [전하께서는 천안신녀의 참언을 믿으시는지요?] 눈치 보며 묻고

영락제; [삼년고진 만세영화...]

영락제; [천안신녀가 한 참언은 고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생각해온 말이었네.] 웃으면서 말하고

도연; [천안신녀가 전하의 마음을 훔쳐봤다는 말씀이십니까?] 놀라고

영락제; [고는 무격은 믿지 않지만 술법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었네.] 고개를 끄덕이고

영락제; [헌데 그 계집은 고가 누구에게도, 심지어 왕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던 생각을 알아냈어.]

도연; [천안신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술법을 익히고 있을 뿐 실제로 선견의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영락제; [선종(禪宗)의 가르침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처럼 진실로 믿는 것은 기필코 이루어지는 법일세.] 엄숙하게

영락제; [다만 인간은 두려움과 탐욕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확신하지 못할 뿐이지.] 한숨 쉬고

도연;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을 확신시켜주면 그 믿음대로 살겠습니다.] [자연히 예언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질 테고...]

영락제; [고도 이미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해두었고 그것이 끝내 이루지리라 믿어왔네.] 끄덕이고

영락제; [천안신녀란 계집은 바로 고가 믿어온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구체화해준 것뿐이야.]

영락제; [선견이나 예언의 능력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고...]

도연; [그걸 아시면서도 어찌하여 천안신녀에게 면사(免死)의 증표와 함께 강호에서의 특권을 하사하신 것인지요?]

영락제; [강남에서는 무황성이 금릉(金陵) 정권의 비호하에 맹렬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네.] 심각

도연; [신녀문을 무황성의 대항마로 키우실 안배를 하셨군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감탄하고

영락제; [금릉 정권이 강호의 지원까지 받으면 힘겨운 싸움이 될 걸세.] 끄덕이고

도연; [결국 천안신녀고 신녀문이고 전하께서 펼쳐놓으신 장기판의 말일 뿐이었습니다.] 감탄하고

영락제; (그렇기는 하지만...) 찡그리고

<나 주체조차도 가슴이 섬뜩해지는 심연같은 원한을 지닌 계집이었다. 대체 무슨 사연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녀같은 냉상영의 얼굴을 떠올리는 영락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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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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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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