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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7.04 [환락영웅] 제 1장 운남으로 가는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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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전 7권 박스본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일초는 와룡강의 다른 주인공들과는 많이 다른 성향입니다.

천방지축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지요.

복잡한 세태에 지친 일상에 청량제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第 一 章

 

      운남(雲南)으로 가는 꼬마

 

 

 

강남은 물빛이 좋다.

봄 날을 즐기는 유객(遊客)들은 이리저리 몰려 다니고 있고,

대리로 향해 뻗은 길에는 마차들과 사람들이 번잡한데,

아주 기괴한 꼬마 하나가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소년의 등에는 자기의 키만큼이나 한 장도(長刀)가 매어져 있었고,

옆구리에는 머리통만한 술병이 매달려 있었다.

깔끔한 용모와 단정한 백의로 보아 명가(名家)의 자손이 분명한 듯 한데,

눈에서 반들거리는 장난기는 사람 여럿 골탕 먹일 것만 같았다.

강남의 사월 햇볕은 따갑기 조차 했는데……

따분했던지 타박타박 걸어가던 꼬마 소년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빌어먹을……]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행인들이 쳐다보자 꼬마는 기분이 조금 풀리는지 대로를 가로막고 섰다.

한대의 마차가 달려오다가 길을 막고 있는 꼬마 앞에서 황급히 멈추었다.

[아니 이 녀석이 다치면 어쩌려고……]

마차의 마부는 꼬마를 향해 소리쳤다.

꼬마는 앞으로 한걸음 내딛어서 말의 코를 작은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소일초(蘇一招)라구……자네 멋대로 부르지 마!]

마부는 갑자기 말이 막혔다.

사십이 넘은 자기를 꼬마가 자네라고 부르다니……

[이……이……]

화가 뻗혀서 막 욕이 튀어 나오려는 찰나인데 꼬마의 말이 먼저 그의 입을 막았다.

[이 마차 운남 가는 거지? 그렇지?]

행인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 눈이 둥그레져서 이 꼬마 악당의 횡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부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얼굴마저 벌개지는데 마차 안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래! 운남 간다! 어쩔래 임마!]

역시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마차의 문을 벌컥 열면서 뛰어나왔다.

스스로 소일초라고 밝힌 꼬마는 마차에서 뛰어나온 꼬마를 보더니 다짜고짜 달려가서 소매를 꽉 잡았다.

그리고 확 잡아채더니 번쩍 들었다가 관도에 던져버렸다.

[도련님!]

[너 이놈!]

마차의 안팎에서 여자와 남자의 소리가 어우러 터져나오고……

흰옷을 입었던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어이쿠! 이놈이 기습을 해……?]

마부는 어느새 소일초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옷자락을 터는 백의소년의 옆에는 중년여인이 내려서 있었다.

소일초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건방진 녀석……감히 내게 덤벼?]

그때 마부의 우악스런 손길이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행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부는 보통사람이 아닌 듯 그의 손에서는 예리한 바람소리가 나며 마치 소일초의 머리를 깨뜨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빡!

 

소리가 나면서 소년은 뒤로 퍽 쓰러져 버렸다.

눈동자를 까뒤집고 입을 짝 벌린 것이 영락없이 죽은 것같았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살인(殺人)이다. 살인이다!]

마부와 백의소년, 그리고 중년부인은 안색이 확 변했다.

[이……이런, 나는 아무 감각이 없었는데……]

마부는 당황하여 더듬거리며 말했다.

[빨리 마차에 태워요.]

중년부인이 마부를 향해 소리치며 먼저 소년을 데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네……네……]

마부는 어쩔 줄 몰라하며 쓰러져 있는 소일초를 안아들다가 허리를 휘청했다.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아이쿠……시체가 무겁다더니 그 말이 맞는 말이었구나. 이 꼬마마저 이렇게 무거운 것 같으니……)

[빨리 달려 의원으로 가요!]

마차 안에 소년의 시체를 들여 놓자마자 중년부인이 또 소리쳤다.

마차는 미친 듯이 달려갔고, 행인들은 술렁거리다가 제각기 걸음을 재촉했다.

소일초의 시체를 태운 마차는 관도를 따라 쉬지 않고 달렸다.

마차 안에는 한 켠으로 소일초가 눕혀져 있고 다른 쪽에 백의소년과 중년부인이 앉아 있었다.

[유모! 이젠 어떻게 하지?]

백의소년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도련님은 아무걱정 않아도 됩니다.]

중년부인이 말했다.

한데 갑자기 죽은 소일초의 목소리가 백의소년의 귀에 들려왔다.

[아니 나를 죽였으니 너도 곧 죽게 될거야………]

백의 소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유모! 이 놈이 벌써 귀신이 되었나봐? 금방 내귀에다 대고 뭔가 말했어……]

소년의 유모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금방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어, <나를 죽였으니 너도 죽게 될거야> 하고 말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소년의 귀에 소일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란 말이 빠졌군]

[그래 <곧>이란 말이 빠졌군.]

하고 소년은 따라서 말하다가 깜짝 놀랐다.

유모는 소년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시체가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지요. 그럼 내가 화골산으로 녹여 없애버리도록 하지요.]

그녀는 품에서 작은 옥병을 끄집어내서 뚜껑을 열었다.

그녀의 손이 소일초의 몸에 가까이 갔다.

막 그녀가 화골산(化骨酸)을 그의 몸에 부으려 할 때였다.

[왁!]

하고 소리치고 소일초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백의소년은 발을 들어 소일초를 걷어차려 했고,

중년부인의 손에든 화골산은 마차의 앞 벽에 쏟아져 버렸다.

[악독한 계집!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증거까지 인멸(湮滅)하려는 구나!]

소일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죽지 않았구나!]

백의소년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중년부인은 그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코웃음을 치면서 원래의 자리에 앉았다.

소일초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차 좀 얻어 타자는 거였지. 앞에 앉은 바보에게 내가 맞기는 왜 맞아?]

[아까 분명히 머리를 맞는 것 같았는데……?]

[내가 살짝 피하면서 입으로 <빡>하고 소리를 질렀지.]

소일초는 입으로 다시 한 번 <빡> 소리를 냈다.

영락없이 그 소리였다.

백의소년은 손뼉을 치며 재미있어했다.

[그래. 이제 생각해 보니 네 비명소리가 나지 않았어.]

소일초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이름은 소일초라고 해. 운남까지 가려고 하는 데 설마 쫓아내지는 않겠지?]

[나는 백소중(白小重)이야. 운임은 조금만 받을게.]

그의 말에 중년부인이 정색을 했다.

[도련님! 저런 불량스런 아이와 함께라니…… 안됩니다.]

소년 백소중이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말을 뱉었다.

[안되다니……? 그럼 유모가 내리도록 해!]

도저히 어린아이의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유모는 찔금하며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소일초가 백소중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보였다.

[너도 대단한데…… 최고야!]

 

마차는 남쪽으로 계속 달려가고 안에서는 두 명의 괴동(怪童)이 의기투합하여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백소중이 물었다.

[운남에는 뭘 하려 가니?]

[응, 우리 집 글 선생으로 있는 구질구질한 늙은이가 하나 있는데, 그 늙은이가 운남이란 곳에 가면 괴상한 짐승들과 맹수, 그리고 독물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군]

[…………]

[그래서, 아버지한테 불만도 좀 있고 해서 이번 기회에 운남에 가서 그것들이나 잡아오려고 도망쳐 나왔지.]

[몰래 집을 나왔다고?]

백소중의 물음에 소일초가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물론. 나같이 어린아이에게 운남까지 가라고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걱정하실텐데……]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니까 별로 걱정은 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벌써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가 나를 잡으러 오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네 아버지 작은 마누라가 무섭니?]

[그럼! 제기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를 꼽으라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여자를 꼽을 거라고. 무공도 얼마나 센지 도저히 한 번 눈에 뛰었다 하면 천하의 나도 도망칠 생각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잡혀가고 말지……]

[너보고 때리기도 해?]

[아니……그와는 정반대야 항상 나에게 잘해줘. 게다가 내가 무엇을 해도 꾸짖는 법이 없어.]

[그런데 왜 무섭다는 거지?]

백소중은 점점 더 소일초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수법이 통하지 않은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거든, 나는 매일 장난을 치지 않으면 몸에서 좀이 쑤신다고!]

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일초를 지켜보던 중년부인도 그들의 말에 점점 호기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장난 중에 불장난이 있어.]

[…………]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작은 찻잔에다 불씨를 담아가지고 소매 속에 숨겼다가 여종들을 만나면 그들의 낡은 치마나 옷자락에 대고 살그머니 불씨를 옮겨 놓아 버리는 거지.]

[그러면……?]

[그들은 치마를 벗어 던지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나는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이 와서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백소중도 못마땅한 듯이 말했고 중년부인은 아예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그러면 아버지가 알고 난 후에는 그 여종에게 새 옷을 주거든.]

[아무래도 그건 좀 심한 것 같애. 여종에게 옷을 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군]

[좋아! 네 생각도 일리가 있어. 한데 그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 말이야……]

[…………]

[그 여자한테는 아무리 몰래 옷자락에 불을 붙혀도 불씨가 절로 사그라져 버리고 연기하나도 나지 않는단 말야 게다가……]

[잠깐! 너는 어느 집의 자손이지?]

중년의 유모가 소일초의 등에 있는 장도(長刀)에 눈이 닿자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물었다.

[나는 절대 말 못해!]

[네 등에 있는 그 장도는 보통 물건이 아닌 듯한데……]

소일초는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흥! 물론 보통이 아니지…… 내가 나오면서 우리 아버지 걸 훔쳐서 나온 거니까!]

유모는 어이가 없는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백소중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야! 너 집에서 나올 때 도둑질까지 했구나!]

[원래 가출할 때는 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래야 가출효과가 더 큰 거라구……]

그때 마차의 뒤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멈춰라!]

아주 큰 목소리 였다.

순간, 소일초는 욕을 했다.

[제기랄, 저 귀신같은 영감들이 벌써 이곳까지 쫓아 오다니……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잡힐 수도 있겠어……]

마차는 이내 멈추어 섰고,

뒤에서 들렸던 목소리는 마차의 앞에서 들리고 있었다.

마차 앞에는 두 사람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가로막고 서 있었다.

[이 마차가 그 마차 인 듯하군……]

[내가 물어보도록 하지.]

두 노인은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그 중에서 한 사람이 마부에게 물었다.

[당신이 마차 속에 장도를 맨 꼬마를 태웠소?]

[물어볼 것 뭐 있어. 문을 열어 보면 금방 알 것가지고……]

한 노인은 성미가 급한 듯 마차 옆으로 순식간에 다가와 문을 열려고 했다.

그 순간 마부는 안색이 확변하며 성미급한 노인을 향해 일장을 내리쳤다.

[영감! 물러서!]

마부의 손은 허공에서 많은 그림자를 남기며 문을 여는 노인을 향해 덮쳐갔고 노인은 모른 척 하고 그냥 문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마부의 무수한 손 그림자는 다른 한 노인이 소매를 휘두르자 무산되어 버렸다.

이어 노인의 한 손이 마부의 허리띠를 잡아들고 멀리 휙 던져 버렸다.

덜컹󰠏󰠏󰠏󰠏󰠏󰠏

소리를 내며 마차문은 열렸고,

불안한 기색을 띤 중년의 유모가 백소중을 안은 채 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백소중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한 마디 툭 뱉고 문을 닫았다.

[실례했소이다. 사안이 워낙 급하다 보니 결례를 하게 되었소. 우리는 백인장(百刃莊)의 사람들이오.]

두 노인은 몸을 솟구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부는 황당한 일을 당한 듯 입을 다물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마부석에 앉았다.

마차의 천정에 매달려 있던 소일초는 그때서야 내려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조마조마 했네……]

이때 멀리서 노인의 음성인듯한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백대선생(白大先生)에게 백인장의 두 늙은이가 안부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귀신같은 쭈그렁탱이들……]

소일초가 또 욕을 했다.

중년의 유모는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이 안되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밖에 있는 마부는 원래 백가장(白家莊)의 일급무사였다.

노인을 향해 백가장의 절기인 산수장(散手掌)을 펼쳤음에도 전혀 힘도 쓰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붙잡혀 던져지고 말았다.

게다가 백인장(百刃莊)의 사람들이라니……

천하 무림인 치고 누가 그 위대한 백인장을 모르겠는가?

백 명의 도(刀)의 달인들이 대를 이어서 소속해 있는 곳,

백인장의 사람치고 고수아닌 자 없다 했는데……

게다가 십여 년 전부터는 그 모습을 완전히 세상에 드러내 놓고 있었다.

강북에서는 청옥검궁이 최고의 문파라고 하고 있지만 강남에 웅크리고 있는 백인장이야 말로 진정 고수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장주(莊主)인 도왕(刀王) 소선풍(蘇仙風)은 무공이 신화경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도법(刀法) 뿐만이 아니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내공(內功)으로 당금 무림에서 은근히 최고수로 부상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백인장(百刃莊)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하나뿐인 아들 신행마동(神行魔童) 소일초(蘇一招)이다.

 

-신행마동 소일초!

 

그는 그의 아버지 보다 더욱 무서운 인물로 불리워 진다.

나이는 올 봄에야 겨우 십 세가 되었지만 칠 세 때 부터 무림에 이름을 떨쳐왔다.

도왕 소선풍과 그의 부인인 이씨가 함께 원영련무대법을 펼쳐서 소일초를 낳았기 때문이다.

 

-원영련무대법(元影鍊武大法)!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특이한 비법이었다.

소선풍이 창안한 것으로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대법은 산모(産母)가 이미 절정의 신공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태아가 발생한 초기부터 산모는 원영련무대법에 따라 아직 제대로 발현도 하지 않은 태아에게 운기행공을 시키게 된다.

즉 태아는 태중에서 부터 신공을 수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태아가 자란 삼개월 부터는 매일 그의 아버지가 내공을 주입하여 태아의 신공을 숙달시켜 나가고……

그렇게 하여 육개월이 지나면 태아는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이백 팔십 년에 달하는 내공을 지니고 있으며 몸은 금강체(金剛體)가 되어 있는 것이다.

태어난 후 하루가 지나면 걸으며 이틀이 지났을 때는 뛰고 달릴 수 있다.

사흘이 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바로 신행마동 소일초, 그가 그 대법이 장본인이었다.

너무도 총명하여 그의 아버지가 나중에는 아예 괴물이라고 쳐다보기조차 싫어 했다는 꼬마다.

지금의 신행마동 소일초는 오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서 신행마동 소일초는 다른 두 명의 절세고수와 더불어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당금 무림의 고수들을 꼽자면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일노일녀일소이왕삼현사수(一老一女一少二王三賢四手),

 

일노는 당연히 은거한 천하제일인인 혈기자를 말한다.

그리고 일녀는 취풍녀(吹風女), 일소는 바로 신행마동이다.

이왕(二王)은 신행마동의 아버지인 백인장주 도왕과 청옥검궁주 검왕 이극송(李克宋)을 말하고,

삼현은 백대선생과 혈군자, 그리고 무심군자이다.

사수는 바로 혈기자의 네 제자로 등천마교의 겁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누가 꼽더라도 혈기자가 제일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는 직접 겨루어 보지 않는 한 무공의 우열은 알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다만 도왕 소선풍의 무공이 혈기자 다음일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중년의 유모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꼬마가 바로 신행마동 소일초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백소중이 소일초에게 말했다.

[네 집이 백인장(百刃莊)이었구나.]

소일초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꺼덕였다.

[네가 바로 신행마동(神行魔童)이고……?]

[응.]

대답한 소일초가 백소중에게 되물었다.

[네 아버지가 백대선생이냐?]

[아니……우리 할아버지…… 그런데 너 정말 그렇게 무공이 강해?]

소일초가 씩 웃었다.

[별것 아니야. 나는 우리 아버지한테도 못 이기고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한테도 못이기는 걸……]

[…………]

[게다가 난 진짜 절학은 맛도 못봤다구……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자기 도법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뺀단 말이야……]

[그걸 가르쳐 주고 나면 네 아버지가 너한테 질까봐서 그럴 거야!]

백소중이 틀림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내 불만이 쌓인 거지. 사실 내 사부들은 신법 말고는 쓸만한 무공이 없거든……]

[네 사부도 따로 있어?]

[물론이지 임마! 원래 무공이란 사부한테 배우는 거라고……]

[난 우리 아버지가 가르쳐 주던데……그런데 네 사부들도 유명한 사람이야?]

[별로……난 잘 모르겠어. 다들 우리 아버지가 백인장에 잡아다 놓았는 걸 내가 몰래 풀어줘 버렸지……]

[이름이 뭔데……?]

[사마귀(四魔鬼)!]

소일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백소중의 유모가 아연실색을 했다.

 

사마귀(四魔鬼)-!

 

바로 네 사람의 괴인들을 말한다.

그들은 각기 주색투도(酒色偸賭)로 악명을 날렸다.

 

주귀(酒鬼)는 불취(不醉)이고 부진언(不眞言)이었다.

그의 말에 사실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럼에도, 들을 때는 도무지 거짓의 흔적 역시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그의 주전신공(酒箭神功)은 술 대결에서 패한 많은 주당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한다.

그가 바로 사마귀의 우두머리였다.

 

색귀(色鬼)는 남성경직증환자(男性硬直症患者)였다.

그의 남성(男性)은 언제나 팽만해 있었고 그의 눈은 향상 대상을 찾아 희번덕거렸다.

그는 여성을 언제나 정면에서 마주보지 않는다.

얼굴을 돌린 채 어떤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기에 동조하게 되는 여자는 그의 마수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고 대화하는 상대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그에게 빠져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때 그는 얼굴을 상대편 여인에게 보여주게 되는데,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불그스레하고 중후한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는 여인으로 하여금 넋을 놓아버리게 한다.

여인이 고개를 숙이면 또한 언제나 팽만해 있는 그의 바지속의 남성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미 여인은 그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다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처녀와 유부녀를 가리지 않았으며 관계가 맺어지고 나면 매정하게 버려 버린다.

버림받은 여인은 자살하기 일쑤였고 원한을 품은 여인이나 남자는 오히려 그에게 살해당했다.

그런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색귀가 익힌 무공은 전혀 엉뚱하게도 소림의 대자비수(大慈悲手)였으니……

 

투귀(偸鬼)는 세상에서 가장 대담한 도둑이다.

그가 드나드는 장소에는 분간이 없다.

빈민가의 주방에서 부터 황실의 보고(寶庫)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바닥은 마치 기름을 칠한 듯 매끄러워 어디에서도 매이는 법이 없었고 그의 신형은 연기와 같아서 누구도 잡을 수 없었다.

그에게도 한 가지 철저한 규칙이 있었으니,

바로 살인과 절도를 동시에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장소에서 사람을 죽였다면 결코 그곳에 있는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

한 장소에서 물건을 훔쳤다면 반대로 그곳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또 한 장소에서 물건을 훔칠 수 없었으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는 무림에서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중무신법(重霧身法)을 익혔으며 화산파의 매화지를 훔쳐 배운 후 더욱 발전시켜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도귀(賭鬼)는 철저한 도박사(賭博士)다.

결코 어떠한 도박에서도 패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정말로 승부를 점칠 수 있는 절묘한 재주가 있었고 그가 손가락을 몇 개만 꼽아보면 승패는 간단하게 추론해 낸다.

그렇기에 그는 큰 도박에서는 언제나 자기의 목을 걸고 상대방의 사지 중 하나를 걸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도박이 끝날 때 까지는 상대방은 결코 도귀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도박에 대하여 불복하는 자는 그의 수정검우(水晶劍羽)에 목숨을 잃고 만다.

도귀……

사마귀의 막내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공은 그들 중 제일 높을 것이라고 추정되어 진다.

그의 무공은 전혀 내력이 알려지지 않았다.

무림사에 어느 누구도 수정검우를 무기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사마귀 중의 신비인(神秘人) 도귀……

 

백소중의 유모는 정말 까무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행마동의 사부가 사마귀라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마귀는 무림의 고수서열에서 열외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식적인 무공대결을 하는 법이 없기에 누구도 그들을 고수에 편입시키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그들과 함부로 맞서지도 못한다.

무서운 마귀들이기 때문이다.

유모가 떠듬거리며 소일초에게 물었다.

[사마귀가 소대협(蘇大俠)에게 감금되어 있다구요?]

그녀의 어투는 어느새 변해 있었다.

[유모는 귀가 없어? 내가 풀어줬다고 했잖아!]

소일초는 거듭 말하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 툭 쏘아붙였다.

[야! 너 아직도 젖 먹어?]

[아니……]

백소중이 눈을 동그랗게 떠고 대답했다.

[그럼 어디다 쓸려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유모를 데리고 다니는 거야?]

백소중은 아무 말도 못하고 유모를 바라보았다.

유모도 속이 부글부글 끌었지만 상대가 워낙 무서운 십이 고수 중의 하나 인지라 역시 아무 말 못하고 있었다.

[유모는 신경쓰지 말고 이야기나 계속해봐……뭘 그런데 자꾸 신경쓰고 그래?]

백소중이 소일초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소일초는 얼굴에 무서운 표정을 한번 지으며 유모를 노려본 후 다시 말했다.

[사마귀 사부는 말이야 우리 아버지한테 죄를 지은 적이 있다고 하더군.]

[…………]

[그래서 도망 다녔는데 ……너도 보았지 아까 그 두 영감쟁이 말이야. 그 영감들이 천하를 이 잡듯이 뒤져서 붙잡아 왔지. 그런데 이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이야.]

[…………]

[우리 집에 경계가 가장 심한 곳이 정뇌(井牢)인데 우물처럼 생긴 감옥이지. 그저 밑으로만 파져 있는 곳의 제일 밑에 사마귀가 감금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아홉 개의 칸이 있는데 각 칸 마다 한 사람의 고수가 지키고 있지.]

[그렇게 되면 정말 빠져 나올 방법이 없겠는데……?]

백소중의 말이었다.

[천만에! 더욱 빠져 나오기가 쉽지.]

[어떻게……?]

[내가 사마귀한테 무공을 배운 대가로 가르쳐 줬는데, 그건 뇌옥을 무너뜨려 버리는 거야.]

[…………?]

[뇌옥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뇌옥에서 지키고 있던 고수들이 먼저 빠져 나가게 되지. 그러면 제일 밑의 뇌옥만 파괴하고 그 고수들의 뒤를 따라서 빠져 나오는 거야. 그 다음 장원을 빠져 나가는 일이지 뇌옥을 나가는 일은 아니니까 내 소관이 아니지……]

백소중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너는 너무 일을 경중(輕重) 없이 처리하는 것 같아……]

소일초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봐! 난 아직 어린아이야, 당연히 어린아이는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거라구……]

[말이 되는 건지 안되는 건지…… 참.]

[사마귀가 정뇌에서 한 가지 좋은 일을 하기는 했어. 아버지한테서 도망가려고 그들은 특이한 신법을 한 가지 창안했더군, 그 이후로 내가 가출할 때 마다 잘 써먹고 있지……]

 

마차는 남으로 남으로 달렸는데 사방은 어둑어둑 해 오고 있었다.

소일초가 문득 말을 멈추고 벌떡 일어섰다.

[백소중, 고마웠다. 이제 나는 다시 도망쳐야겠어.]

[아까 그 영감들은 가버렸잖아?]

[그 영감들은 별 것 아니지만 우리 아버지 작은 마누라는 정말 대단하거든, 실은 여기서 내가 노닥거리고 여유를 부린 것도 오늘은 그 여자가 외출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야.]

[…………]

[벌써 돌아와서 나를 잡으러 나섰을 텐데……여긴 우리 집에서 겨우 오백 리 정도 밖에 안되잖아. 이 정도라면 우리 작은 어머니 손바닥 위라고 할 수 있거든.]

[어? 너 이제는 작은 어머니라고 하는 구나.]

[짜식! 나도 스무 번에 한 번쯤은 아버지 작은 마누라 대신에 작은 어머니 라고 불러주기도 하는 효자란 말이야. 그만 갈게.]

그가 막 마차 문을 열었을 때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지 분간이 되지 않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마치 곁에서 이야기 하듯이 조용히 들려왔다.

[우리 말썽꾸러기…… 거기에 숨어있었구나.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지……]

소일초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어머니! 한 달 만 놀다 갈게요. 절 쫓아오지 마세요……]

소일초의 몸이 뿌연 안개에 휩싸이면서 빗살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아득히 사라져 갔다.

그의 끝말은 이미 먼 곳에서 들려왔다.

마부와 백소중, 그리고 유모는 멍해져 버렸다.

마차는 그대로 달리고 있는데……

마차의 열려진 문 앞에 아주 아름다운 젊은 부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마차가 달리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문 앞에서 안에 탄 백소중과 유모를 향해서 인사를 했다.

[우리애가 아직 버릇이 없어서……폐가 많았지요? 언제 백인장에 한번 들려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달칵!

마차 문은 절로 닫혔고 미부(美婦)의 모습은 소일초가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유모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인장이야 말로 무림의 용담호혈(龍潭虎穴)이구나. 일개 여주인의 무공도 초일류라고 할 만 하니……]

마차는 어둠이 깃드는 관도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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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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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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