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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노을이 지는 시냇가. 허리까지 잠기도록 들어간 구령이 자신의 가늘고 긴 검을 물에 정성 스럽게 씻고 있다. 손수건으로 검날을 씻어내린다. 흰 비단 치마가 물위로 부풀어 하얀 접시꽃 같다. 공자무는 물가에서 뒷짐을 진 채 보고 있고. 손에는 구령의 검의 칼집을 들고 있다

공자무; [흐르는 물에 검을 씻는 건 처음 보는구나.]

구령; [오라버니 앞에서 검을 씻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오늘 처음 알았으니까요.]

구령; [많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매일 흐르는 물에 씻었답니다.]

공자무; [아무리 보검이라 해도 결국은 금속인데 물을 너무 자주 묻히면 날이 무뎌지지 않겠느냐?]

구령; [전 마도의 사람이에요.] [정파의 협사들처럼 의(義)와 협(俠)과 충(忠)으로 사람을 베지는 않아요.]

구령; [그래서 제 검에 묻은 피는 순수하지 못하고 제 손에 죽은 자들은 한결같지 않답니다.] 검을 들어서 살피고

구령; [흐르는 물로 씻는 건 검에 맺혀있는 그자들의 생명을 씻어 내리기 위해서예요.] 상의에다가 검을 닦는다

궁자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구령; [있고말고요.] 돌아서서 물가로 나오고

구령; [이렇게 씻지 않으면 검이 무거워져요.] [마도인들 중에서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사실이죠.] 물에서 나온다

구령; [정말로 검이 무거워지진 않겠지만 자기 마음속의 검은 무거워진답니다.]

공자무; [그럼 마도에서는 검을 물에 씻지 않고는 절대고수가 될 수 없겠구나.] 검집을 내밀고

구령; [예!] 대답하며 검집을 받고

공자무; [아주 특이하군. 마공은 이래서 이해하기가 어려워.]

구령; [오라버니도 마공을 연구하셨나요?] 검집에 검을 넣고

공자무; [연구는 무슨!] [몇 가지 연마해보려다가 이리 막히고 저리 막혀서 집어던졌을 뿐이다.]

구령; [공씨의 가전무공에 마공도 있나요?] 검을 허리에 차며 놀라고

공자무; [조금은!] 쓴웃음

구령; [쓰지도 않을 무공을 뭣 하러 익히셨는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마공까지....] 치맛자락을 하나로 뭉쳐서 물을 짜내고

공자무; [막혀서 그만두었다니까. 그걸 익힌 놈은 따로 있어.]

구령; [그게 누구죠?]

공자무; [도둑놈이야.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도둑놈이었지.]

공자무; [가상해서 그냥 익히게 놔뒀더니 제법 성취를 이뤘더군.]

구령; [어쩌면 오라버니 집안의 무공을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차갑게 웃고

공자무; [호기심 가져 봐도 소용없다.] [그 잘난 도둑놈은 무림에 나오지 않겠다고 나한테 맹세했으니까.]

구령; [제가 두 번째로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왔네요. 이제 전 어떻게 하죠?] 하늘을 보며 한숨 쉬고

공자무; [!] 찡그리며 무언가를 느끼는 공자무.

구령; [행여나 했는데 그가 맞군요.] [마음 같아선 단칼에 베어버리고 싶지만... 그래선 안 되겠죠?] 한숨 쉬고. 순간

공자무; [신(神)! 나와라!] 앞쪽을 노려보며 일갈하고.

털썩! 갑자기 공자무 앞쪽에서 공간 이동하듯이 나타나 쓰러지는 신.

구령; (숨... 숨이!) 숨이 턱 막히는 구령.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비틀

쿠오오! 그녀 앞에 서있는 공자무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그 앞에 신이 납작 엎드려 있다.

신; [주... 주군!] 납작 엎드린 신이 사색이 되어 겨우 토해내고

그런 신을 노려보는 분노한 표정의 공자무. 몸에서 넘실거리는 무시무시한 기운

구령; (오... 오라버니가 화가 났어!) (화를 내는 대상이 아닌 나마저도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애!) 발발 떨고.

공자무; [큰애는...!] 신을 노려보고

공자무; [큰애는 어디 있느냐?] 이를 부득 갈고

신; [대... 대공... 공자는....!] 헉헉 대기만 할 뿐 말을 잇지 못하는 신. 목과 팔에 핏줄이 툭툭 불거진다. 숨이 막혀 질식해 죽기 직전의 모습

신; [네가 본가의 가법(家法)을 모르는 것도 아닐 터!] [큰애를 지켜야 할 네놈이 어찌하여 내 앞에 나타난 것이냐?] 무시무시한 분노

쿨럭! 입에서 한 덩어리의 피를 토해내는 신

신; [용... 용서를...!] 이어 필사적으로 가슴에서 편지를 한통 꺼내고.

신; [하... 하오나... 속... 속하는 주모님의 엄명을... 거역할 수가...!] 두손으로 편지를 바쳐 올리며 덜덜 떠는 신.

노려보는 공자무. 그러다가

공자무; [그만 두자!] 한숨을 쉬고. 순간

슈우! 공자무의 몸에서 넘실거리던 무서운 힘이 사라진다.

안도하며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는 구령

구령; (오라버니의 저 힘 앞에서는 무공도 술법도 소용이 없어!) 신이 내민 편지를 받는 공자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

구령; (오라버니가 천부의 자질을 지니고서도 무공 수련에 별로 열의를 보이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일 거야!) 편지를 들고 길가의 바위로 가는 공자무

<진정한 왕에게는 힘이 있어도 그 힘을 직접 쓸 일이 생기지 않을 테니...!> 바위에 앉아서 편지를 읽는 공자무의 모습 배경으로

 

해가 좀 더 서산으로 기울고

바위에 걸터앉아 편지를 심각한 표정으로 읽고 있는 공자무. 구령은 옆의 바위에 다소곳이 앉아있고. 신은 원래 자리에 엎드려서 기다린다. 검은 허리에 찼다.

편지를 내리며 한숨을 쉬는 공자무.

구령; [진군소...] 억지로 입을 떼고.

구령; [아니, 오라버니의 잘난 부인께서 돌아오라고 써 보냈겠지요?] 억지로 웃고

묵묵히 끄덕이는 공자무

구령; [그럴 줄 알았으면 오라버니가 눈치 채시기 전에 베어버릴 걸 그랬어요.] 신을 돌아보며 억지로 웃고

우울하게 한숨 쉬며 편지를 봉투에 다시 넣고

구령; [가보세요.] 억지로 웃으며 하늘을 보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치려 한다

구령; [저는 상관 말고... 어서 가보세요.]

구령; [빨리 가지 않으시면... 제가 오라버니를 베어버릴지도 몰라요.] 주르르!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뺨을 타고 흐르고

공자무; [가자!] 일어서고.

구령; [!] 벼락에 맞는 것같은 충격을 받아 눈이 하얗게 되는 구령

신; [예 주군!] 튕기듯이 일어나고

신; [집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흥분하여 조심스럽게.

공자무; [지금은 아니다!] 고개를 젓고.

공자무; [돌아가서 전해라. 지금은 아니지만 머잖아 돌아가겠다고!]

공자무; [단. 그땐 혼자가 아닐 것이라는 말도!] 구령을 보고

[!] [!] 구령과 신이 충격을 먹고.

구령; [오... 오라버니!] 감격으로 달달 떨고.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신; [소... 소인은 차마 마지막 말씀은 전할 수가 없습니다.]

공자무; [그 사람 때문인가? 아니면 나 때문인가?] 노려보고

신; [마도의 여자입니다. 마님을 해칠지도 모릅니다.] 구령을 보고. 순간

쩡! 하늘에 하얀 무지개가 피어난다.

공자무는 그냥 걸어가고 있고.

구령의 보검 천궁 끝이 반쯤 뽑힌 신의 검날을 누르고 있다.

검을 뽑는 것을 제지당한 신은 무표정.

구령; <가서 전해! 나는 그쪽을 향해서 발도 한번 뻗지 않고 살아왔다고!> <죽일 작정이었으면… 진작에 죽였어.> 이를 바득 갈며 신에게 전음을 보내고

쩡! 다시 허공에 무지개가 번쩍하고

어느덧 검을 검집에 넣은 구령이 신에게 등을 보이고 공자무를 따라가고 있다.

신; (주군!) 난감하고. 그때

공자무. <돌아가서 군소에게 전해라. 내 평생 단 하나 남아 있던 마음의 빚을 갚고 있는 중이라고!> 공자무의 전음이 들리고

공자무; <인생은 유한하고 봄날은 길지 않다. 세월은 여느 때처럼 무심히 흘러가지만 한 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이키지 못한다!>

이어 구령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며 노래를 부르는 공자무.

 

<不知香積寺 - 알길 없어라 향적사 가는 길은

數里入雲峯 - 몇 리를 들어가도 구름 덮인 산뿐이로고

古木無人徑 - 나무들은 오래 되고 인적도 끊겼는데

深山何處鍾 - 깊은 산 어드메쯤 들려오는 종소린가?

泉聲咽危石 - 흐르는 물소리는 돌에 걸려 흐느끼고

日色冷靑松 - 산 깊어 푸른 솔에 햇볕도 서늘하다.

薄暮出潭曲 - 해설피 여울 물 소리만 들려오는데

安祿制毒龍 - 선정에 들으니 알 길 없어라.>

 

수줍은 표정의 구령이 뒤를 이어 노래를 부른다.

 

<버들 우거진 나룻가엔 행인도 드문데

어부는 노 저어 한가히 포구로 간다.

다만 못 잊는 정, 봄빛처럼 한없는데

강남북으로 찾아온 봄을 보내는 듯하구나.>

 

신; (주군!) 난감하고

신; (다정(多情)도 병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언제까지 주모님을 마음 아프게 하실 것인지...!)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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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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