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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실내에 묘한 침묵이 흐른다.

공대벽은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웬지 주눅이 든 표정으로 공대벽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지 못한다.

이산굉; (젠장! 점점 더 기분이 나빠지는군!) 얼굴이 조금 이지러진다.

이산굉; (이 자리의 주재자는 분명 나 이산굉인데.... 어쩐지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이산굉; (혀가 굳어진 것도 같고 머리 속이 하얘져서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른 침을 삼키고

이산굉; (이게 다 저 젊은 친구 때문이다.) 공대벽을 곁눈질하고

이산굉; (이상하게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렵고 또 함부로 말을 꺼내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마치 천자(天子)의 면전에 선 신하처럼...!) 침 꿀꺽. 이산굉의 머리속에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써서 천자임을 짐작케 하는 인물이 옥좌에 앉아있는 형상이 떠오른다

이산굉; (천하의 나 이산굉이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두 주먹 부르르 떨고

형파도 비지땀을 흘리며 바닥만 보고 있고.

이수는 할끔 할끔 공대벽을 훔쳐 보고 있다. 물론 똑바로 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그들의 그같은 반응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차가운 미소를 짓는 귀. 그때

서문숙; [험험!]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하는 서문숙

<살았다!> <저 나무귀신이 숨통을 터주는군!> 형파와 이산굉이 안도하며 서문숙을 보고

서문숙; [천동대협! 저 상자들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겠는가?] 상자를 보며 말하고

이산굉; [혼을 태우는 상자올시다.]

형파; [소혼곽(燒魂槨)!] 눈이 번쩍.

눈이 풀려있던 이수도 움찔하며 퉁소를 가볍게 움켜쥔다.

이산굉; [노야께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이오.] [그 옛날 정(正), 사(邪), 마(魔)를 일통하여 새로운 천하를 열었던 인물이 있었음을!] 서문숙을 보고

서문숙; [!] 수염이 부르르 떨리고

공손대낭; [아!]

공대벽; (칠년천하(七年天下)!) 부채를 쥔 손에 힘이 꾸욱

이산굉; [제왕(帝王)이라고 불리는 그 인물이 열었으며 칠년 동안 존속한 후에 사라졌던 칠년천하는 모든 무림인들이 못 잊어 그리는 것이 아니겠소?]

이산굉; [저 일곱 개의 상자, 소혼곽은 바로 제왕을 못 잊던 추종자 일곱 사람이 만든 것이오.]

순간 서문숙이 벌떡 일어나더니

상자를 향해서 허리를 깊이 숙이고 포권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다른 사람들도 엄숙하게 보고 있고. 형파와 이수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이산굉; [제왕의 최측근이었던 칠인을 칠고신(七高臣)이라고 하거니와...!] [칠고신은 한 날 한시에 모여 저 상자들 속에 들어가 자신들의 육신과 혼을 태웠소.]

이산굉; [칠고신이 혼을 태운 이유는 칠년천하의 붕괴를 안타까워했을 뿐 아니라 다시 천하가 하나로 합쳐지기를 고대한 때문이오.] 상자를 향해서 손을 뻗고.

휘익! 상자 하나가 공깃돌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그의 손에 들어간다.

이산굉; [칠고신이 자신들의 혼을 태우면서까지 만든 소혼곽에는 두 가지 공능이 있소.] 손바닥에 얹은 상자를 들어보이고

이산굉; [한 가지는 소혼곽을 만든 당사자의 힘을 끌어내어 쓸 수 있다는 것이고...]

모두들 긴장. 침 꿀꺽

이산굉; [다른 한 가지는 소혼곽을 통해서 제왕이 될 수 있는 자를 검증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오.]

공손대낭; [세상에….] 입 가리고 신음

이산굉; [소혼곽으로 만들어지는 인물이 진정한 제왕이 아닐지는 몰라도 천하를 거머쥘 만한 자일 것임은 분명하오.] [소혼곽을 만든 칠고신 개개인이 제왕이 없었다면 능히 천하를 다툴 만한 자들이었으므로....]

서문숙; [제왕께서 종적을 감추신 후 함께 사라지셨던 칠고신께서 저 상자들을 만드셨구나.] 탄식하고

공대벽; [제왕의 칠고신은 어떤 분들이십니까?] 입을 열고

모두들 공대벽을 돌아보고

이산굉; [태두(泰斗) 차윤(車胤)!] [천도(天道) 모일(毛溢)!] [유성(流星) 손축과(孫築果)!] [광성자(廣聖子) 서문이진(西門珥晉)!] [혈귀(血鬼) 조파풍(曺破風)!] [역천신마(逆天神魔) 김적(金勣)!] 보고하듯이 엄숙하게 말하고

이산굉; [그리고 천검(天劒)으로도 불렸던 배장군 배민일세!] 엄숙하게 말하고. 순간

공손대낭; [흑!]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지르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상자들만 보고 있고

공손대낭; (배... 배장군!)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달달 떨며 소혼곽들을 보고

공손대낭; (내게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지셨던 배장군님의 혼이 저... 저 상자들 중 하나에....!) 눈물이 주르르

서문숙; <고정하시오 대낭!> <백척간두처럼 위태로운 자리이니 절대 틈을 보여서는 아니 되오!>

공손대낭; <알아요 진보!>

공손대낭; <하지만... 하지만 배장군님의 혼백이 바로 지척에 계신다고 생각하니...!> 울고

이산굉; [오늘의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 중 최소한 셋 이상이 칠고신과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을 거요!] 그런 공손대낭을 보며 상자를 다시 원래 위치로 던진다.

상자는 원 위치에 떨어지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산굉; [칠고신은 정, 사, 마가 하나가 되었던 칠년천하를 상징하는 인물들이기도 하오.] [그들의 혼이 깃든 소혼곽을 갖는 것은 천하를 갖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겠소?]

이수; [천동대협이 수작만 부리지 않는다면 그렇겠지요.] 냉소하고

이산굉; [이산굉은 수작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며 이수를 노려보고

이산굉; [거침없이 행동할 뿐 나를 가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누구도 나의 진면목을 보려하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수; [그 말 역시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군요.]

이산굉은 냉소하며 상자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가 다시 이수를 가리킨다. 순간

상자 하나가 둥실 떠오르더니

투학! 빛살처럼 이수를 향해 날아간다. 드드드! 가공할 힘이 쇠상자에 실려서 칠층탑 안의 공기가 찢어지며 우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수; [흥!] 날아드는 쇠상자를 향해 왼손을 뻗고, 순간

화악! 그녀의 새하얀 손이 마치 그물이 펼쳐지듯 거대하게 펼쳐지면서 쇠상자를 받는다.

이수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쇠상자는 얌전히 그녀의 원래대로 돌아온 손위에 얹혀진다.

서문숙; [천림소수(天臨素手)!] 눈 부릅

서문숙; [소저는 집마천(集魔天)에서 어떤 신분인가?] 주먹 불끈 쥐며 이수를 노려본다

귀; <집마천은 마교의 한 지파(支派)로써 사백여 년 전 무림일통을 부르짖으며 등장했던 세력입니다.> 공대벽에게 설명하고

귀 <제왕십대수호가문으로 내려오던 권씨세가가 무림세가로 등장한 것도 집마천의 등장때문이며 그런 이유로 집마천은 십대세가는 물론이고 마교와도 한 하늘아래 공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공대벽

서문숙; [어서 말하게!] 이수를 노려보고. 하지만

이수(쇠상자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저는 마(魔)를 숭상하지만 귀신(鬼神)은 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서문숙은 본 척도 않고 상자만 살핀다

이수; [여기에 죽고도 사람으로 행세하는 자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제가 그를 상대할 이유는 없지요.] 냉소하고

분노하는 서문숙과 공손대낭

형파; [집마천의 마녀가 방자하구나.] 먼저 주먹으로 바닥을 쾅 치고

드드드! 탑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고

이수; [호호호! 형상방주의 삼권을 나도 받아봐야겠군요.] 비웃고

형파; [어린 계집이라도 집마천 소속이라면 손에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 노려보고

코웃음치는 이수

이산굉; [공공자는 무림공적인 집마천의 마녀에게 도리를 가르쳐 볼 생각은 없는가?] 억지로 웃으며 공대벽에게 수작을 붙이고

흠칫하며 공대벽을 곁눈질로 보는 이수. 하지만

공대벽; [주인이 계신 자리에서 객이 나선다면 모두가 욕할 것입니다.] 웃고

안도하며 수줍게 웃는 이수

이산굉; [하하하! 공공자는 겸손하기까지 하니 정말 마음에 드네!] 어색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고

이산굉; [만약 이산굉이 저 마녀를 붙잡게 된다면 자네에게 선물하겠네.] 자신과 공대벽 사이에 앉아있는 이수를 보며 웃고

이수; [흥! 앞산의 웅크린 호랑이는 구름 속의 봉황도 몰라본단 말인가요?] 냉소하면서도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바로 그때

<둥지를 떠난 새는 숲조차 잊어버린단 말인가?> 밖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리고

순간 이산굉의 뒤에 서있는 백영의 눈이 반짝 빛을 발하고

이산굉; [하하하! 이제야 도착했군.] 과장되게 웃고

이산굉; [천하에 영웅이 많다곤 하지만 자네가 빠지고선 영웅을 말할 수 없지.] 입구를 보며 말하고. 직후

쉬이이익! 마치 한줄기 빛이 흐르듯 하며 입구로부터 한 사람이 들어왔다. 키가 아주 크고 얼굴은 구릿빛이고 강렬한 기상이 서려있는 인물. 등에는 폭이 넓고 긴 칼을 짊어지고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물이며 강한 기운이 풍겨난다. 바로 마교주인 역천마도 김치독이다

역천마도; [마교의 교주인 김치독(金痴禿)이외다.] [별호는 역천마도(逆天魔刀)요.] 가볍게 포권하며 탑 안의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역천마도

다른 사람들도 마주 포권하지만

이수; [흥!]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린다

이산굉(앉은 채 두 팔을 벌려 반기는 태도를 하며); [많이 컸군, 많이 컸어.]

이산굉; [이제는 나와 겨루더라도 손색이 없을 것 같구만.]

역천마도; [이 자리에 나를 부른 것을 후회하게 될 거요.] 이산굉을 노려보고

이산굉; [자네 윗분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네만 그래도 나 이산굉은 자네를 환영하네.]

역천마도; [길고 짧은 것은 대보면 알 게 될 거요.] 냉소하며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역천마도; [여기 당신이 원했던 것을 가져 왔소.] 품속에서 직경 한자 정도 되는 황금 접시를 꺼내고

휙! 황금접시를 쇠상자들 쪽으로 던진다.

챙그랑! 황금접시가 그 중 하나 위에 떨어지며 맑고도 요란한 소리를 낸다.

이산굉; [마교의 으뜸가는 보물인 황금신반(黃金神盤)을 가져오다니!] [자네는 과연 말이 통하는 사람일세.] 박수를 치며 웃고

역천마도는 대꾸하지 않고 성큼 성큼 걸어가 남아있는 두 개의 자리 중 <2>번, 즉 이산굉의 바로 옆자리에 가서 앉는다.

이산굉;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이산굉; [올 사람은 아직 많은데 자리가 부족함은 오로지 이산굉의 불찰이로다.] 그때

히익! 문밖에서 뭔가가 날아와

쇠상자 중 하나에 떨어진다. 어른의 주먹만한 돌인데 오색이 영롱하게 감돈다.

서문숙; [여의채옥(如意彩玉)!] 눈 부릅.

형파; [난릉왕의 법기?] 역시 긴장하며 외치고

귀; <저 옥석이 난릉왕이 술법을 부릴 때 사용하는 법기입니다.> 공대벽에게 설명하고

<여의채옥은 당금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법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롱한 빛을 발하는 돌덩이를 배경으로

묵묵히 끄덕이는 공대벽. 그때

따깍! 따깍! 말발굽소리가 문 밖에서 들린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는 사람들. 직후

긴 그림자가 열려진 문을 통해 탑 안에 드리워지고

쿵! 입구에 거대한 말을 타고 나타나는 난릉왕. 난릉왕 뒤에는 두 명의 동자가 따라오는데 한 명은 난릉왕의 장검을 품고 있고 다른 동자는 두루마리를 하나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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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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