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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처(自處)한 인질(人質)

 

 

 

설마...!”

섭대낭의 눈이 찢어질 듯 치떠지며 그녀의 거구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이런...)

곽산해도 얼굴이 와락 굳어지며 섭대낭을 따라서 일어났다.

그 직후였다.

보고! 소부주님께서 자객의 인질이 되셨습니다.”

!

대청의 뒷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히며 날아든 호장무사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안돼!”

파앗!

거의 동시에 섭대낭은 사납게 울부짖으면서 호장무사와 엇갈려 대청 뒷문으로 날아나갔다.

콰창!

한줄기 섬전처럼 대청 후면으로 쇄도하는 그녀의 어깨에 부딛혀서 대청의 후문과 문틀이 함께 박살나버렸다.

 

***

 

(금검존의 검갑이 비어있다!)

요문천은 순간적으로 금검존이 빈 검갑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는 건...)

이어 요문천은 곁눈질로 자기 뒤쪽에 붙어서있는 철접의 몸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철접의 가슴에는 전체가 황금빛인 보검이 꿰뚫고 들어가 그 끝이 등쪽으로 삐져나와있다.

(이 여자의 몸을 꿰뚫은 보검은 금검존의 애검 낙일금검(落日金劒)이었구나. 금검존은 어검술(馭劍術)을 써서 이 여자를 격중시켰을 테고...)

"포기하라 계집! 천지개벽해도 네년이 빠져나갈 길은 없다!"

철접과 요문천의 앞에 내려선 금검존이 온몸에서 폭풍같은 기세를 흘리며 눈을 부릅뜬다.

"함부로 장담하지 마라 금검존! 만일 내가 오늘 이곳에서 죽어야한다면 필히 저승으로 동행을 데려갈 것이다!"

스윽!

철접도 서늘한 시선으로 금검존을 마주 보며 비수의 날을 요문천의 목젖에 더욱 바짝 밀착시켰다.

"... 살려 주십시오 뇌영반!"

철접이 차갑게 내뱉는 것에 맞춰서 요문천도 다급히 외쳤다.

"... 장가도 못 가고 죽기는 싫습니다! 제발 이 여자 손에서 날 좀 구해주세요"

요문천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금검존에게 애원했다.

(! 호부(虎父)에 견자(犬子) 없다는 옛말도 틀릴 때가 있군! 어쩌다 황사같은 대인(大人)에게서 저런 약골이 나왔단 말인가?)

금검존은 입맛이 썼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 말게! 그 계집이 소부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해주겠네!"

"... 제발 그래주십시오 뇌영반!"

금검존의 말에도 요문천은 여전히 울상을 지으며 애원했다.

"비천한 오랑캐 계집과 말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탐탁치 않다만... 상황이 상황이니 도리가 없군. 네년이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금검존은 벼락이 뿜어지는 것같은 눈으로 철접을 노려보며 말했다.

철접이 비록 대역의 죄인이긴 하나 황사인 요광효의 유일한 핏줄 요문천의 안위를 도외시 할 수는 없다.

"나는..."

철접은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금검존이 오른손을 그녀의 들어 막았기 때문이다.

"미리 경고하겠는데... 무리한 주문은 삼가하라! 우리에게는 소부주의 목숨보다는 대역죄인인 네년의 목숨이 더 중요하니...!"

(여차하면 내 목숨은 돌보지 않고 척살해 버리겠다는 뜻이군!)

금검존의 말에 요문천은 내심 쓴 입맛을 삼켰다.

"걱정마라!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루의 시간뿐이다!"

"단 하루의 시간을 원한다? 무슨 뜻이냐?"

금검존이 찡그리며 되물었다.

"하루가... 지나면 이 글 벌레를 돌려보내겠다! 이가류 당주의 명예와... 우리 대화일족(大和一族)의 시조이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님의 이름에 걸고 맹세한다!"

"섬나라 난쟁이들의 시조 나부랑이에는 관심 없다! 다만 네년도 본좌와 같은 무사이기에 믿어줄 뿐이다!"

금검존은 말하면서 손을 들어 옆으로 저었다.

! 스슥!

그러자 건물을 에워싼 포위망 중 한쪽이 썰물처럼 갈라져서 길을 낸다

"하고 싶지는 않으나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철접은 요문천을 끌고 포위망 밖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

"고맙다!"

"!"

철접의 말에 금검존은 같잖다는 듯이 냉소할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문천은 그 순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금검존이 아니라 나한테 한 거로군!)

그 사이에 철접은 요문천을 끌고 사람들이 터준 길을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소부주님!"

"속하들의 무능을 용서하여주십시오 도련님!"

승상부의 호장무사들은 분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러서서 철접을 포위망 밖으로 내보냈다.

헌데 철접이 막 포위망 밖으로 나섰을 때였다.

"잠깐!"

금검존이 다시 철접을 불러 세웠다.

철접은 혹시 금검존이 생각을 바꾼 게 아닌가 하여 가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금검존을 돌아보았다.

"할 말이 더 있느냐?"

"본좌의 검은 놓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

금검존은 냉소하며 철접의 몸을 가슴에서 등 쪽으로 관통하고 있는 황금색의 보검 낙일금검을 턱으로 가리켰다.

철접은 금검존의 말에 내심 안도했다.

"물론 그래야겠지!"

그러나 일체 표정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낙일금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스윽!

이어 그녀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낙일금검을 가슴에서 뽑아냈다.

낙일금검은 철접의 몸통을 관통한 궤적 그대로 빠져나오는데 특이하게도 피는 함께 흘러나오지 않았다.

(독한 계집! 생살이 갈라지는 데도 신음소리 한 마디도 안 내다니...!)

(과연 동영의 인자들은 다르구나!)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보는 가운데 이윽고 철접은 낙일금검을 완전히 몸에서 뽑아내었다.

(뭔가 특별한 조치를 한 모양이로구나. 낙일금검에 관통당한 상처에서는 피가 전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요문천은 낙일금검의 끝이 마침내 철접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곁눈질로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오늘 진 빚은 기억해 두겠다 금검존!"

철접은 서늘하게 말하며 가슴에서 뽑아낸 낙일금검을 금검존에게 던졌다.

쐐액!

그녀의 손을 떠난 낙일금검은 마치 활로 쏘아진 것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금검존에게 날아갔다.

"!"

금검존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낙일금검을 보며 냉소와 함께 턱을 오만하게 위로 젖혔다.

!

그러자 금검존의 가슴으로 날아들던 낙일금검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허공으로 퉁겨져 올라갔다.

슈욱! 철컹!

뒤이어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방향을 튼 낙일금검은 금검존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검갑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어검술이다!)

(과연 황실제일검이시다.)

호장무사들과 금의위 위사들은 낙일금검이 저절로 검갑을 찾아들어가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루만 기다려라. 내일 안으로 이자는 확실히 돌려보낼 테니...!!"

몸통에서 낙일금검이 제거된 철접은 왼팔로 요문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돌아섰다.

휘익!

이어 철접은 요문천을 한 팔로 끌어안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심장 부분이 검이 관통 당한 상태였던 것이 믿어지지 않는 날렵한 경신술이었다.

"도련님! 존체보중하십시오!"

"약속은 지켜라 계집!"

승상부 호장무사들의 분노에 찬 외침을 배경으로 철접은 이내 승상부 밖으로 날아나갔다.

"육시를 해도 시원잖을 오랑캐 계집년...!"

금검존은 철접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영반?"

금의위 위사들중 좀 나이가 지긋한 인물이 금검존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건넸다.

"만에 하나... 폐하를 시해하려 했던 대역죄인을 놓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대역죄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상각하의 일점혈육의 안위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금검존은 차갑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괜한 걱정은 하지 마라!"

불안한 표정으로 말 끝을 흐리는 나이든 위사의 말을 금검존은 확신에 찬 어조로 끊었다.

"바뀌는 것은 단 한 가지! 저 왜국의 계집년 목이 하루 늦게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

금검존의 말에 나이 든 위사는 미진한 표정으로 수긍하며 물러섰다.

"천라지망을 더욱 넓게 펼쳐라! 저 계집을 포함하여 단 한명의 대역죄인도 놓쳐서는 안된다!"

파앗!

금검존은 허공으로 새처럼 날아오르며 금의위 위사들에게 지시했다

"존명!"

"봉명하겠습니다 영반각하!"

금의위 위사들은 철접이 사라진 쪽으로 날아가는 금검존을 향해 일제히 포권하며 외쳤다.

! 휘휙!

이어 그들은 일제히 날아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정원에는 승상부의 호장무사들만이 남아 분루를 삼키고 있는데...

무슨 일이냐? 도련님이 인질이 되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화악!

천둥치는 듯한 고함 소리와 함께 거구의 여자가 거센 회오리를 몰고 장내에 내려섰다.

물론 그 여인은 뒤늦게 변고를 알아차리고 대청에서 요문천의 거처로 한 달음에 날아온 섭대낭이었다.

뒤이어 금의위 부통령 곽산해와 승상부 호장무사들의 수령 석호륜도 황망(慌忙)한 표정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 마님... 그것이...”

승상부의 호장무사들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호장무사들중 가장 나이가 많은 무사 진영(陳永)이란 인물이 전후의 경과를 서둘러 보고했다.

... 이 무능한 밥버러지들...”

!

진영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머리카락이 곤두선 섭대낭이 이를 갈며 오른 발로 세차게 바닥을 굴렀다.

그녀가 구른 오른 발 아래에서 정원 바닥이 직경 삼장, 깊이 세자 정도로 움푹 들어갔다.

드드드!

그와 함께 정원 전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뒤흔들리면서 요문천의 거처인 은천각도 파도 위의 조각배처럼 요동을 쳤다..

(방금의 진각(振脚)에는 신비각 사대영반에 못지않은 공력이 실려 있었다.)

승상부의 호장무사들과 함께 비틀거리며 곽산해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알기로 섭대낭은 결코 그 정도의 공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섭대낭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진짜 공력보다 두 세배 더 강력한 힘을 몸 밖으로 내뿜었다.

그것은 그녀가 타고난 살기, 천살지기를 몸 안에 품고 있어서 분노가 극에 달하면 순간적으로 몇 배 더 강력한 힘을 토해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도련님의 신상에 불미한 일이 생긴다면...!”

드드드!

진흙 바닥처럼 뒤흔들리고 출렁이는 지면을 딛고 선 채 섭대낭은 이를 갈며 호장무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뿜어지는 시퍼런 안광에 호장무사들은 숨통이 콱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네놈들을 모두 내 손으로 때려죽이고 나 역시 죽을 것이다!”

섭대낭이 사납게 토해내는 살기는 승상부 내의 모든 숨 쉬는 존재들의 숨을 멈추게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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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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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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