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62>

깊은 산중. 음침한 분위기. 낮인데도 먹장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어둑하다.

우오오오! 늑대 한 마리가 높은 절벽 위에 서서 울부짖고

음침한 계곡. 짐승과 사람의 뼈가 가득 널려있고. 계곡 입구 절벽에는 <血狼谷>이라는 글이 이끼에 덮인 채 새겨져 있다. 늑대 몇 마리가 돌아다니며 뼈를 이빨로 깨물어 부서뜨리고 있고

입구 안쪽은 상당히 넓은 원형의 분지. 입구를 제외하고는 까마득한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분지 끝에는 음침한 고대 신전 잔해가 하나 서있다. 절벽을 등지고 지어진 신전인데 그 신전의 안쪽. 동굴이 있다.

우우우! 동굴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63>

원형의 수직동굴 바닥. 직경이 30미터쯤인 원형의 지하광장에 사람들이 수십명 쓰러져 있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고.

어둠속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 섞여있는 죄수3. 몸을 웅크린 자세로 옆으로 누워있다. 그자 상체만 부분 조명해서 주변이 잘 안보이는데

[으으으!] [차라리... 차라리 죽여 다오.] 신음소리가 들려서 귀가 쫑끗해지는 죄수3

죄수3; (여... 여긴 어딘가?) 눈을 조금 뜨고

죄수3; (그자에게 머리를 밟히고 정신을 잃었었는데...) 신행태보가 자신의 머리를 밟아 딸에 처박던 장면 떠올리고. 그때

[으으으!] [끄윽!] [살... 살려주시오.] 신음소리들이 이어지고

죄수3; (나 말고도 다수의 사람들이 이곳에 갇혀있다.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자면 천마성 뇌옥에 갇혀있던 사람들일 텐데...)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컬컥! 콱! 쇠사슬 소리가 나고 몸이 펴지지 않는다

죄수3; [헉!] 눈 뜨며 기겁

쿵! 비로소 드러나는 죄수3의 모습. 양쪽 발목과 양쪽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발목의 수갑과 손목의 수갑은 길이 1미터쯤인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죄수3; (족... 족쇄가 채워져서 몸을 펼 수가 없다.) 철컹! 철컹! 족쇄와 사슬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며 이를 악물고. 그때

[소... 소용없으니 포기하게 장(張)형.] 누군가 옆에서 말하고. 고개 홱 돌려보는 죄수3

죄수2; [우리 모두 혈도가 짚여서 내공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된 상태라네.] 쿵! 멀지 않은 곳에 역시 양쪽 발목과 양쪽 손목이 수갑에 채워지고 그 수갑들이 쇠사슬에 연결되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죄수3과 마주 보는 자세로 누워 말한다. 체념의 표정. 이자는 한쪽 귀가 잘린 것 주의

죄수3; [고... 고(高)형...] 놀라고 기쁘고

죄수3; [난 일찍 정신을 잃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오질 않네.] [우리가 왜 여기에 갇힌 건가?]

죄수2; [우리들뿐만이 아니라네.] 둘러보고. 죄수3도 둘러보고

죄수2; [그날 천마성의 뇌옥에서 냉서시 위상영을 유린하는 데 동참한 죄수들을 남김없이 잡혀왔어.] 쿵! 죄수2가 말하는 배경으로 비로소 보이는 주변 모습.

죄수3과 죄수2가 쓰러져 있는 곳은 수직의 동굴 바닥이다. 원통형의 그 동굴 바닥은 직경이 30미터쯤인데 바닥에 수십 명의 사내들이 손과 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 쓰러져 신음하고 있다. 물론 위상영을 강간한 자들이다. 동굴 벽에는 쇠창살로 만들어진 철문이 달려있는 통로가 몇 개 뚫려있다.

죄수3; [누... 누구 짓인가? 천마성의 잔당들이 복수하기 위해 우릴 잡아온 건가?]

죄수2; [천마성 잔당들의 수중에 떨어졌다면 오히려 행운이겠지.] 한숨

죄수2; [혈교에게 죄를 지었으니 우린 이제 시체도 온전히 보전할 수 없게 되었어.] 주르르! 눈물 흘리며 울고

죄수3; [혈교!] 기겁하고

죄수3; [우릴 잡아가둔 게 혈교란 말인가?] + [!] 말하다가 눈 부릅. 철컹! 철컹! 크르르르! 무언가 쇠를 긁는 소리와 짐승의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리고

반사적으로 돌아보는 죄수3

쿵! 옆으로 뚫려있는 동굴들. 쇠창살 문이 쳐진 그 안쪽에 짐승의 눈들이 번뜩이고 있고

죄수3; [헉!] 기겁

[늑... 늑대!] 쿵! 죄수3의 비명 배경으로 완전히 드러나는 쇠창살 문 안쪽의 상황. 늑대들이 통라 안에 빼곡이 들어찬 채 이빨과 발톱으로 쇠창살을 긁어대고 있다. 이빨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죄수3; [설마... 설마 혈교는 저 짐승들로 하여금 우릴...] 전율. 공포

죄수2; [아마 여러 날 굶겨 놓았을 걸세.] [우리의 손과 발을 족쇄로 채워놓은 건 저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체념한 채 말하고

죄수3; [살... 살려주시오!] 비명 지르고

죄수3; [소생이 혈교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무슨 짓을 해서든 죄의 값을 치르겠소.] [제발 늑대의 밥이 되지 않게만 해주시오.] 비명 지르며 애원하고. 그때

<무슨 짓을 해서든 죄의 값을 치르겠다?> 번쩍! 동굴 중간쯤에서 빛이 번쩍이며 말 소리가 들리고.

모든 죄수들 올려다보고

위진천; [각오는 가상하다만 어쩐다?] 쿵! 드러나는 장면. 10미터쯤 위에 베란다같은 곳이 있고. 그곳에 서서 내려다보는 위진천. 위진천 옆에는 신행태보가 등을 하나 들고 서있다. 그 뒤로 몇 명의 복면인들이 서있다. 복면인들 옆의 벽에는 아래위로 움직일 수 있는 레버가 달려있고

위진천; [네놈들이 죄의 값을 치룰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 산 채로 굶주린 늑대들의 밥이 되는 것뿐이니 말이다.] 음산하게 웃고.

[당... 당신은...] 몇몇 죄수들이 위진천을 알아보고 기겁하고

[운중신룡 위진천!] [칠지무제님의 둘째 제자인 당신이 혈교의 인간이라니...] 경악하고 전율하는 죄수들

위진천; [제대로 된 소개를 하자면 본 공자는 혈교의 소교주다.]

[그... 그런...] [단순히 혈교의 제자가 아니라 소교주인 인간이 칠지무제의 제자 노릇을 하고 있다니...] 전율하는 죄수들

위진천; [본 공자가 거리낌 없이 정체를 드러낸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살벌하게 웃고. 그러자

<오... 오늘 우리들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죄수들 전율하고

위진천; [네놈들에게는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늑대들이 풀려나면 기회가 없을 테니 미리 염불을 외워둬라.] 뒤를 향해 손짓하고. 그러자

고개 숙이는 복면인들. 이어

콱! 콱! 벽에 달린 레버들을 잡아 아래로 내리누르는 복면인들. 그러자

철컹! 철컹! 동굴 사방 벽에 뚫려있는 수평 동굴을 막고 있던 철문들이 활짝 열리고

크왕! 동굴에서 뛰쳐나오는 늑대들

[아... 안돼!] [살려주시오.] 죄수들 자신들에게 쇄도하는 늑대들 보며 비명. 하지만 손발이 묶여서 움직일 수가 없고

[크악!] [아악!] 크르릉! 콰직! 크릉! 처절한 비명과 늑대들의 울부짖음. 뼈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진천의 모습 배경으로 들린다. 위진천은 광기에 사로잡힌 표정이고. 신행태보는 좀 보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소매를 입으로 가리고

위진천; (이제 시작이다.) 크악! 컥! 우두둑! 첩첩! 끔찍한 소리와 비명을 배경으로 광기로 눈을 희번덕이며 웃는 위진천

위진천; (나 위진천에게 죄를 짓는 인간은 그게 누구든 저 놈들처럼 만들어줄 것이다.) 흐흐흐! 웃고. 그러다가

위진천; [무슨 일이냐 백일몽(白日夢)?] 뒤를 조금 돌아보며 묻고

위진천의 뒤쪽. 동굴이 있고 그 끝에 철문이 있는데 철문 밖에 백일몽이 서있다. 백일몽은 다른 작품의 백일몽과 동일 캐릭터

백일몽; [제삼(第三) 인법사(人法師)께서 소교주님을 긴히 뵙자고 하시옵니다.] 공손하게

위진천; [그래?] 눈 번뜩이며 백일몽 쪽으로 가고

위진천; (마태자 이청풍의 시체에서 발견한 반지의 정체를 알아낸 모양이로군.) 백일몽을 지나가며 눈 번득이고. 백일몽은 옆으로 비켜서고. 문 밖은 복도다. 일정 간격으로 횃불이 꽂힌

[크악!] [아악!] 까득! 우적 우적! 크르르! 끔찍한 소리가 들리는 문 안쪽을 힐끔 보며 돌아서는 백일몽. 신행태보가 베란다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보이고

백일몽; (굶주린 늑대들이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으면서 내는 소리...) (그다지 유쾌하진 않네.) 앞장 서서 가는 위진천을 따라가며 찡그리고

백일몽; (한 번 손에 묻힌 피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남에게 피로 진 빚은 반드시 자신의 피로 갚아야만 하고...)

백일몽; (무자비한 살상을 반복해온 마태자 이청풍의 종말이 그걸 증명하는데...) 위진천이 복도에 난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백일몽; (과연 소교주께서는 마태자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으셨는지 의심스럽다.) 한숨 쉬며 위진천을 따라 그 방으로 들어간다

 

#64>

위진천과 백일몽이 들어선 방. 일종의 연구실. 각가지 주술 도구와 실험도구들이 즐비하고. 중앙의 탁자를 에워싸고 몇 명의 인물들이 서 있다가 돌아본다. 복면을 쓴 자들인데 그중 한명만은 얼굴에 복면 대신 반쪽 가면을 쓰고 있다. 눈과 이마만 가리는 가면인데 이마에는 <人-三>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人>자가 크고 <三>자는 작다. 가면을 쓴 이자는 혈교의 인법사다. <건곤일척> <아랑힐월> <투천환일>등에 나온 혈교의 인법사 모습. 가면에 새겨진 숫자는 인법사들의 서열을 나타낸다. 인법사는 탁자에 놓인 무언가를 양손으로 감싸는 형태로 주문을 외우는 중이다. 입구를 마주 보는 위치

고개 숙이며 물러서는 복면인들. 입구를 마주 보는 위치에 선 인법사는 정신을 집중해서 주문을 외우고 있고.

위진천; (인법사...) 멈춰서고

위진천; (우리 혈교의 법사들 중 천(天), 지(地)에 이른 세 번째 등급의 술법사인데...)

위진천; (비록 삼등급의 술법사들이긴 하지만 인법사들은 사람과 관련된 다양한 술법을 구사할 수가 있다.)

<제삼 인법사도 지금 저 반지에 서려있는 혼백을 불러내고 있는 중이다.> 징징! 양손으로 감싸는 시늉하며 주문 외우는 인법사. 반지는 진동하며 빛을 내고 있고.

지지지! 츠으! 진동하는 반지에서 흐릿한 형상이 떠오른다. 사람의 얼굴 모습이고

위진천; (나타난다!) 긴장

위진천; (인법사가 소혼(召魂)의 술법을 써서 반지를 마지막에 지녔던 자의 사념을 실체화시키고 있다.) 츠츠! 반지 위로 떠오르는 반투명한 사람의 얼굴을 보며 흥분하고

위진천; (물론 마태자 이청풍이겠지?) 생각하다가

[!] 눈 부릅뜨는 위진천

쿵! 반지 위쪽의 허공에 나타나는 반투명한 형상은 바로 벽세황이다.

위진천; [이... 이게 무슨...!] [어째서 마태자 이청풍이 아닌 다른 인간의 사념이 반지에 서려 있는 것이오?] 경악과 불신. 그러자

인법사; <속하도 그것이 이해가 가질 않소이다.> 술법을 펼치면서 전음으로 대답하고

인법사; <그래서 반복적으로 반지에 서려있는 혼백을 불러내 확인하고 있는 중인데...> 슈우! 머리에 이어 몸통도 허공에 나타나는 벽세황의 모습을 보며 전음으로 말하고. 반투명한 벽세황은 알몸이다.

<몇 번을 반복해 봐도 반지를 마지막에 소유했던 자는 마태자 이청풍이 아니라 바로 이자였소이다.>이제 완전히 전신이 나타나 허공에 떠있는 벽세황의 반투명한 모습을 배경으로 인법사의 전음 나레이션

위진천; [그... 그러니까 뭐요?] [무제궁이 마태자 이청풍이라며 천마성 정문에 내건 시체가 다른 인간의 것이라는 거요?]

인법사; <속하의 소혼술법은 그렇게 말하고 있소이다.> 양손으로 진동을 일으켜 술법을 구사하면서 전음으로 말하고

위진천; [하지만 천마성 정문에 내걸린 시체가 마태자 이청풍의 것임은 숱한 인간들이 확인한 것인데...] + [!] 말하다가 눈 부릅

위진천; [설마... 천마성이 함락 당하기 직전 누군가 마태자를 다른 인간과 바꿔치기 했다?] 이를 부득

인법사; <현재로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소이다.> 끄덕

위진천; [그럼 마태자로 바꿔치기 당한 저자의 정체는 뭐요?] 벽세황 형상의 반투명한 환각을 보며 묻고

백일몽; [그 점에 대해서는 속하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하고. 돌아보는 위진천

백일몽; [늑대들의 밥이 되고 있는 자들의 진술 중에 지금까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답니다.]

위진천; [그게 뭐냐 백일몽?]

백일몽; [천마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냉서시 위상영... 혈왕공주님께서 뇌옥에 들어와 죄수 한명을 데리고 나갔었는데...]

백일몽; [일다경쯤 후에 그 죄수를 다시 데리고 와서 놓고 갔다고 합니다.]

위진천; [고모... 고모님이 뇌옥에서 꺼내갔다가 다시 데려온 자는 누구냐?] 무언가 느끼고 전율하며 급히 묻고

백일몽; [신장궁의 소궁주인 철수무정 벽세황이옵니다.]

위진천; [철수무정 벽세황!] 눈 부릅

위진천; [그럼 지금 제삼 인법사가 저 반지에서 소환한 혼백의 주인이 바로...] 반투명한 모습의 벽세황을 올려다보며 눈 부릅

백일몽; [철수무정 벽세황이옵니다.] 끄덕

[!] 눈 부릅뜨는 위진천

 

#65>

<-신장궁> 아침.

담장과 정원에 둘러싸인 조용한 건물.

창문이 열린 침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는 벽세황(청풍). 눈을 떴다. 몸에는 고급스러운 잠옷을 입고 있고. 헬쓱한 표정이지만 상태는 전 보다 좋아 보이고. 옆의 탁자에는 거울도 하나 놓여있다.

벽세황(청풍); (신장궁...) 창 밖을 보며 생각하고

벽세황(청풍); (아버지의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난 천마성을 떠나 신장궁에 와있었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화산을 멍하니 보며 생각하고

벽세황(청풍); (어떻게 된 내막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옆에 놓인 탁자의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은 신장궁의 소궁주 철수무정 벽세황으로 바뀌어 있다.> 거울에 비치는 벽세황의 얼굴

벽세황(청풍); (불과 일 년 여만에 천여명의 마도무림 동도들을 살상한 살인귀 벽세황...)

벽세황(청풍); (천마성의 고수들을 파견해서 잡으려 했으나 피해만 생길 뿐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서 악전고투 끝에 사로잡을 수 있었다.> 온몸에서 각가지 암기를 날리며 악을 쓰는 벽세황. 양손으로 빛의 채찍을 일으켜 그 암기들과 무기들을 쳐내면서 벽세황에게 쇄도하는 청풍

 

벽세황(청풍); (직접 상대해본 자인지라 벽세황에 대해서는 제법 아는 바가 많긴 한데...) 찡그리고

벽세황(청풍); (설마 내 얼굴이 벽세황으로 바뀌어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쓴웃음.

벽세황(청풍); (내공을 쓰지 못해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내 얼굴의 뼈 여기저기에는 미세한 무언가가 박혀있는 게 느껴진다.) 자기 얼굴을 만져보고

벽세황(청풍); (아마 그 미세한 침 같은 것들이 내 얼굴을 벽세황의 얼굴로 변형시키고 유지시켜주는 모양인데..) 뺨을 더듬고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위상영의 모습

벽세황(청풍); (상영누님...)

벽세황(청풍); (아마도 상영누님이 내 얼굴을 벽세황의 얼굴로 바꿔놓은 장본인일 것이다.) 미미하게 끄덕이고

벽세황(청풍); (우리 천마성이 무제궁에 함락당할 게 확실해지자 나라도 살려볼 생각으로...) 입술 깨물며 우울한 표정

이어지는 회상

 

귀수신장; [천마성은 칠지무제 진무량이 이끄는 무제궁 정예들의 기습을 받고 함락되었다.] 침대 옆에 앉아서 말하는 귀수신장. 귀수신장 옆에는 황보경이 얼굴이 발개진 채 앉아서 벽세황(청풍)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있고. 두 사람 뒤에는 뇌옥경이 서서 탁자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며 황보경을 흘겨 본다

귀수신장; [진궁주 덕분에 너도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으니 진궁주에게 감사해야만 한다.] 엄한 표정으로 말하는 귀수신장

회상 끝

 

벽세황(청풍); (닷새 전, 우리 천마성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이를 악물고. 눈에 눈물이 그렁

벽세황(청풍); (날 이곳으로 데려온 무제궁 무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버지는 천마해체대법으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셨고...) 주먹 꽉

벽세황(청풍); (나 때문이다.) 주르르! 결국 눈물이 흐르고

벽세황(청풍); (내가 어리석게도 포숙정이 몸으로 펼친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아버지께서 폭사하신 것이다.)

벽세황(청풍); (아버지는 나를 치료하시느라 탈진한 탓에 칠지무제 진무량을 이길 수 없으셨으니...)

벽세황(청풍); (불효를... 절제하지 못한 욕정으로 아버지를 비명에 가시게 만든 이 엄청난 불효의 죄를 어찌 씻는단 말인가?) 눈물 뚝뚝 흘리며 소리없이 울고. 그때

다다다! 무언가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벽세황(청풍); (가벼운 무게의 무언가가 달려오는 소리...) 슥! 서둘러 소매로 눈물 닦고

벽세황(청풍); (그 아이가 오고 있군.) 생각하며 문쪽을 보고. 직후

[아빠!] 발칵! 문을 확 열면서 외치는 벽초아. 한손에는 인형을 들었고.

벽세황(청풍); (벽세황의 외동 딸 벽초아...) 눈 감으며 곁눈질로 보며 생각할 때

벽초아; [아빠! 일어났어?] 다다다! 침대로 달려오고

하지만 벽세황(청풍)은 눈 감고 자는 척하고

벽초아; [아빠!] 팟! 활짝 웃으며 도약해서

벽초아; [일어나 아빠!] 털썩! 벽세황(청풍)의 몸 위에 덮친다. + 벽세황(청풍); [어이쿠!] 벽초아의 작은 몸에 깔리며 엄살을 부리고

벽초아; [그만 일어나라구! 아침이야! 빨리 일어나서 초아랑 놀아줘야해.] 벽세황(청풍)의 몸에 엎드려 얼굴 마구 부비며 재잘대는 벽초아

벽세황(청풍); (가엾은 것...) (정황상 제 아비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건 꿈에도 모르겠지.) 한숨 쉬며 벽초아를 한 팔로 안고 다독이고.

벽초아; [아빠는 엄마하고 냄새가 달라.] [엄마 냄새도 좋지만 초아는 아빠 냄새도 좋아.] 벽세황(청풍)의 몸에 대고 코를 킁킁 거리기도 하고

벽세황(청풍); (미안하구나 아가야. 본의 아니게 네게서 아빠를 빼앗아 영영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한숨 쉬며 벽초아의 몸을 다독이고. 그때

뇌옥경; [그만 해라 초아야.] 쟁반에 음식을 차려 들고 들어오는 뇌옥경. 죽과 간단한 반찬, 젓가락과 수저등이 쟁반에 얹혀져 있다.

뇌옥경; [아빠는 오래 아프셔서 네가 그러면 힘들어 하신단다.] 좀 쌀쌀 맞은 표정으로 들어서며 말하고

벽세황(청풍); (벽세황의 아내 화룡부인 뇌옥경...) 벽초아를 품에 안은 채 돌아보고

벽초아; [알았어 엄마!] 벽세황(청풍)의 몸에서 일어나고

벽초아; [초아는 착해!] [아픈 아빠를 힘들게 하면 안돼!] 폴짝! 침대에서 뛰어내리고

벽세황(청풍); [우리 초아 기특하기도 하지.] 웃고

뇌옥경; [고려삼(高麗蔘)을 넣어서 죽을 쑤어왔어요.] 좀 쌀쌀 맞은 표정으로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고. 돌아보는 벽세황(청풍).

뇌옥경; [입맛이 없으시더라도 드시도록 해요.] 음식들을 탁자에 늘어놓고

벽세황(청풍); [고맙소 부인.] 슥! 억지로 일어나며 억지로 웃고

뇌옥경; [마음에도 없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듣는 제가 민망해지니까요.] 딸칵! 젓가락과 수저를 내려놓으며 쌀쌀 맞게 말하고. 벽세황(청풍)은 뻘쭘한 표정으로 앉아서 보고

뇌옥경; [당신이 지난 일 년 동안 그 고생을 하신 게 저 때문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쌀쌀 맞게 돌아서고.

뇌옥경; [그러니까 미안하다, 고맙다같은 허망한 말은 하지 마세요.] 입술 깨물고. 이어

뇌옥경; [가자 초아야. 아빠 식사하시는 거 방해하지 말고...] 문쪽으로 돌아서고

벽초아; [초아는 아빠와 더 놀고 싶은데...] 울상

뇌옥경; [아빠가 아야야 하시는 중이라는 거 알잖니.] 엄한 표정

벽초아; [그건 알지만...] 시무룩

뇌옥경; [아빠가 건강해지시면 초아와 놀아주실 테니까 오늘은 엄마하고 돌아가자.] 말하며 벽초아의 어깨 다독이고

벽초아; [알았어.] 입이 쭉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뇌옥경을 따라가고

벽초아; [아빠! 빨리 건강해져야해! 그래야 초아가 놀아줄 수 있으니까.] 빠이빠이 하며 뇌옥경을 따라가고

벽세황(청풍); [오냐. 아빠도 초아와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라도 빨리 건강해지마.] 손 들어 보이며 웃고.

벽초아와 함께 방을 나가는 뇌옥경. 쌀쌀한 표정으로 문을 닫으려 한다

탁! 문이 닫히고. 이제 방안에는 벽세황(청풍)만 남는다.

벽세황(청풍); (일 년 여만에 살아 돌아온 남편을 대하는 태도치곤 좀 의외다.)

벽세황(청풍); (벽세황이 마도무림인들을 무차별 살상극을 벌이게 된 원인은 뇌옥경 저 계집 때문 아닌가?)

벽세황(청풍); (저 계집이 친정인 벽력당에 가다가 우리 천마성 소속이라고 알려진 무리들에게 윤간을 당하면서 벽세황의 만행이 시작된 것인데...)

벽세황(청풍); (물론 뇌옥경을 윤간한 자들이 우리 천마성 소속이라는 건 낭설이다.) (벽세황을 생포한 후 진상 파악을 해본 결과 본성의 인간들 중 뇌옥경을 덮친 자들을 없었다.)

벽세황(청풍); (아버지는 비록 마도무림에 몸을 담고 있긴 하지만 하오문의 무리들이 저지르는 강간과 약탈등을 극도로 혐오하셨다.)

벽세황(청풍); (그래서 설령 마도무림에 속한 자라도 음행을 저지르면 가차없이 응징을 가하셨었다.)

벽세황(청풍); (대표적으로 악명 높은 색마 천면랑군이 마도 무림에 속했으면서도 본성의 뇌옥에 갇혀 죽은 게 그 증거인데...)

벽세황(청풍); (당연히 천마성에 적을 둔 자들 중 감히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는 짓을 할 배짱이 있는 자는 없었다.)

벽세황(청풍); (정황상 뇌옥경이 윤간당한 사건은 천마성과 마도무림에 죄를 덮어씌우려는 의도를 지닌 자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기 쉽다.)

벽세황(청풍); (내막이야 어쨌든 뇌옥경은 남편 벽세황이 죽을 고생을 한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다.) (당연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어야한 한다.)

<하지만 현실은 뇌옥경이 사경에서 돌아온 남편을 쌀쌀맞게 대하고 있다.> 벽초아를 데리고 쌀쌀 맞은 표정으로 나가던 뇌옥경의 모습 배경으로 벽세황(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벽세황(청풍); (뇌옥경의 태도는 민망함이나 어색함 때문에 꾸며대는 것이 아니다.) (그 계집은 실제로 남편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있다.)

벽세황(청풍); (벽세황과 뇌옥경 부부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벽세황(청풍); (물론 나로서는 뇌옥경이 쌀쌀맞게 대해주는 게 편하고 안전하다.) 쓴웃음

벽세황(청풍);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주는 덕분에 내가 가짜라는 사실이 들통 날 가능성이 줄어들었으니..) 생각할 때

<들어갈게.> 드륵!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음성이 들리고.

흠칫! 돌아보는 벽세황(청풍)

황보경; [어머나! 내가 한발 늦은 것같네.] 요염한 웃음 흘리며 방안으로 들어서는 황보경. 한손에는 죽이 얹혀진 작은 쟁반을 들고 있다

벽세황(청풍); (귀수신장의 후처 황보경...)

벽세황(청풍); (팔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는 천하제일의 장사꾼 집안인 대륙상단(大陸商團) 단장의 배다른 누이동생...) + [의모님..] 침대에서 억지로 내려서고.

황보경; [그냥 누워있어.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다던데...] 탁! 문을 닫고 들어오고

벽세황(청풍); (천한 신분도 아니면서 서른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귀수신장의 후처로 들어온 데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 [괜잖습니다.] 억지로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고

벽세황(청풍); (물론 신장궁도 저 여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 [어제보다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탁자로 다가오는 황보경을 보면서 힘겹게 발을 움직이고

벽세황(청풍); (대륙상단의 판매망을 이용한 덕분에 신장궁에서 만든 물건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있으니...) + [그래서 이제 움직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비틀거리면서도 탁자로 가고

황보경;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고. 탁자에는 뇌옥경이 차려놓은 죽과 반찬들이 놓여있고

황보경; [초아 어미가 끓여온 죽에는 손도 대지 않았네.] 뇌옥경이 놓고 간 죽 그릇에 눈을 흘기며 자기가 가져온 죽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고

벽세황(청풍);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더니 입 안이 까실까실 해서 넘길 수가 없습니다.] 의자에 힘겹게 앉고

황보경; [죽일 놈의 천마성 인간들 같으니...] 이를 바득 갈며 수저를 집어들고

황보경; [누구보다 먹성도 좋았던 우리 아들을 이 지경으로 망가트리기나 하고...] 의자를 당겨서 벽세황(청풍)의 옆으로 밀착하면서

황보경; [이번에 그 대가를 치뤘다고 하니 십년 체증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하지 뭐냐?] 죽을 수저로 뜨고

벽세황(청풍); [그러게나 말입니다.] 억지로 웃고

황보경; [잠깐 기다려라. 식혀줄 테니...] 후후! 수저로 뜬 죽을 입김으로 불어서 식히고

벽세황(청풍); [저 혼자 먹을 수 있습니다.] 어색하게 웃지만

황보경; [세황이 넌 환자야.] 입에서 수저를 떼고

황보경; [당분간 내가 시중을 들어줄 테니까 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돼.] 식힌 죽이 든 수저를 벽세황(청풍)의 입으로 가져가고

벽세황(청풍); (거절할 수도 없군.) + [고맙습니다.] 입을 벌리고

황보경; [고맙긴 뭐가 고마워?] 눈 흘기며 수저의 죽을 벽세황(청풍)의 입에 넣어주고. 수저를 물어서 죽을 받아먹는 벽세황(청풍)

황보경; [네가 빨리 기력을 회복하는 게 나에게도 좋은 일인데...] 슥! 말하며 왼손으로 벽세황(청풍)의 허벅지를 만진다.

[!] 놀라 눈 치뜨는 벽세황(청풍). 수저는 입에서 빠지고 있고

황보경; [그나마 다행인 건 천마성의 마귀새끼들이 이 소중한 건 건드리지 않았다는 거야.] 할딱이며 손으로 벽세황(청풍)의 거시기를 만진다.

벽세황(청풍); (맙소사!) 놀라며 깨닫고

벽세황(청풍); (벽세황은 자기 의모와 붙어먹는 패륜을 저질러 왔구나.) 왼손으로는 벽세황(청풍)의 거시기를 만지며 오른손에 든 수저로는 다시 죽을 뜨는 황보경을 보며 전율하고. 그러다

벽세황(청풍); (어찌 된 내막인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 수저로 뜬 죽을 후후 부는 황보경을 보며 눈 번뜩

벽세황(청풍); (누가 먼저 유혹했는지는 모르지만 벽세황과 황보경은 사람들 눈을 피해 야합을 해왔을 것이다.) 황보경의 육감적인 옆 모습을 보며

 

<헌데 운 나쁘게 그 현장을 뇌옥경에게 들켰을 것이다.> 어둑한 창고 안에서 교접을 하다가 놀라 입구쪽을 돌아보는 벽세황과 황보경. 둘 다 아랫도리만 드러낸 채 교접을 하던 중이다. 벽세황은 바지를 까내렸고 황보경은 치마를 허리 위로 걷어올려 드러낸 아랫도리를 벌리고 있다. 창고 문을 연 자세로 그걸 보며 경악하는 뇌옥경

 

벽세황(청풍); (기가 막히고 분노한 뇌옥경은 그 길로 신장궁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친정인 벽력당으로 가려고...) 다시 수저를 내밀며 눈웃음 치는 황보경. 왼손으로는 여전히 벽세황(청풍)의 허벅지와 사타구니를 어루만지면서

벽세황(청풍); (뇌옥경이 어린 딸을 남겨두고 자기만 친정으로 가려고 했던 건 그렇게 밖에 이해가 안된다.) 수저의 죽을 입으로 받아먹으며

벽세황(청풍); (물론 신장궁을 나간 얼마 후 뇌옥경은 우리 천마성 소속으로 자처한 일단의 무리들에게 사로잡혀 윤간을 당했고...) 다문 벽세황(청풍)의 입에서 수저를 빼내는 황보경

황보경; [아이구 이쁜 것! 넙죽 넙죽 잘 받아먹는 걸 보니 금방 기운을 차리겠어.] 할딱이며 눈 웃음치고. 그러다가

황보경; [어머나!] 놀라며 벽세황(청풍)의 아랫도리를 보고

황보경이 만지고 있는 벽세황(청풍)의 아랫도리 잠옷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린다

벽세황(청풍); (이런...) 난감

황보경; [확... 확실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같구나. 내가 좀 만져줬다고 금방 이렇게 늠름해지는 걸 보면...] 슥! 벽세황(청풍)의 것을 움켜잡고

벽세황(청풍); [밝... 밝은 대낮입니다.] [보는 눈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만 합니다.] 아랫도리를 조금 움직여서 황보경의 손을 피하며 말하고

황보경; [그... 그렇긴 하지?] 문쪽을 힐끔 보고

황보경; [대신... 오늘 밤... 알지?] 추파를 보내며 할딱이고

벽세황(청풍); [초아어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억지로 웃고

황보경;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대신 단단히 각오해 둬야할 거야.] 벽세황(청풍)의 귀에 속삭이고

황보경; [날 일 년 넘게 방치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까.] 벽세황(청풍)의 귀에 뜨겁게 속삭이고. 난감한 벽세황(청풍)

벽세황(청풍);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다.) 소리없이 한숨

<여자의 몸은 민감하기 이를 데 없어 자칫 내가 가짜라는 게 들통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만 한다.> 벽세황(청풍)의 볼에 키스하는 황보경의 모습을 배경으로 벽세황(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헌데

 

#66>

문 밖. 복도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뇌옥경. 쟁반을 든 두 손에 힘이 꽉 들어가 있고

뇌옥경; (정말 싫어!) 이를 악물고

뇌옥경; (내가 이래서 차라리 저 인간이 천마성의 뇌옥에서 죽어버렸으면 했던 거야.)

뇌옥경; (따지고 보면 내가 천마성의 인간들에게 무참히 짓밟힌 것도 저 두 인간들 때문이었으니...) 이를 갈며 눈물 흘리려는 뇌옥경. 그리고

 

#67>

신소심; (콩가루 집안...) 피식! 건물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쓰게 웃는 신소심. 벽세황(청풍)과 황보경이 있는 건물의 뒷곁이다.

신소심; (의붓어미와 전처 소생의 아들놈이 붙어먹기도 하고...) (역겨워서 도저히 더는 못 봐주겠다.) 슥!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떼고

신소심; (의붓어미의 수작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는 걸 보면 벽가놈이 진짜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건물을 흘겨보며 걸어가고

신소심; (더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으니 그만 신장궁을 떠나야겠다.)

<못 볼 걸 보고 듣지 말아야할 걸 들어서 시궁창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기분이다.> 건물 등지고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신소심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68>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10화  (0) 2024.05.05
[마고천장] 9화  (1) 2024.05.04
[마고천장] 8화  (1) 2024.05.03
[마고천장] 7화  (2) 2024.05.02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59>

따각! 따각! 인적이 없는 산길을 가는 두 대의 마차. 사람이 타는 마차다. 문과 창문은 닫혀있고. 무제궁의 무사들이 마차를 몰고 있다. 호위하는 무사들은 없다. 천천히 가는 마차들의 지붕에는 <武>라 적힌 깃발이 꽂혀있다. 물론 무제궁의 상징이다.

두 번째 마차. 역시 문과 창문이 굳게 닫혀있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어.] 촤락! 상자 안에 든 돈을 쥐었다가 떨구는 누군가의 손. 털이 북실하고 큼직하다.

죄수1; [천마성의 뇌옥에서 일 년 넘게 썩긴 했지만 그 대가로 평생 놀고먹어도 충분한 보상금을 챙겼으니까 말이야.] 촤라! 은자와 동전을 상자에 덜구며 좋아하는 덩치 크고 미련해 보이는 사내. 바로 #46>에 나왔던 죄수들 중 한 놈이다. 마차 안에는 #46>의 죄수들 세 놈이 타고 있는데 각기 하나씩 돈이 든 궤짝을 바닥에 놓고 있다. 상당히 큰 돈 궤짝 안에는 은자와 동전, 지폐등이 가득 들어있다. 얍삽한 인상인 죄수2도 좋아라 하지만 음침한 인상인 죄수3은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

죄수2; [오는 동안 대충 세어봤는데 거의 일만 냥 가까이 되더라고...] 자기 가랑이 사이의 돈 궤짝의 돈을 세어 보면서 좋아하고

죄수1; [확실히 무제궁은 통이 커.] [뇌옥에 갇혀있었던 사람이 수십 명인데 위로금으로 일만 냥씩이나 턱 안기기도 하고...] 연신 돈을 만지며 좋아하고

죄수3; [통이 크긴 개뿔...] 돈을 세면서 코웃음을 치는 세 번째 놈. 죄수1과 2가 돌아보고

죄수3; [이번에 천마성을 무너트리면서 무제궁이 얼마나 챙겼을 것 같은가?]

죄수1;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어마어마하게 챙겼겠지?] + 죄수2; [천마성이 육십 년 넘게 마도 무림을 지배해온 걸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축적해뒀을 거야.] 깨닫고 침 꿀꺽

죄수3; [내가 이쪽 방면에 좀 관심이 있어서 아는데...] [천마성의 수입은 매년 일억 냥 가까이 된다고 하네.] 마부들이 들을까봐 목소리 낮춰서 속삭이고

[일... 일억 냥!] [헉! 그 정도란 말인가? 내가 듣기로 황실의 일 년 수입이 대략 이억 냥 언저리라던데...] 죄수1, 2 경악

죄수1; [일... 일개 강호 무림의 세력의 수입이 중원 대륙 전체의 주인인 황실의 절반이라니... 믿기지 않는구만.] 침 꿀꺽

죄수3; [내 분석을 들어보면 자네들도 수긍이 갈 거야.] [천마성의 수입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죄수3; [그 중 첫째가 천마성에 충성하는 문파들의 상납금!]

죄수1; [자신들이 천마성 소속임을 내세우면 다른 문파들이 시비를 못 거니까 천마성에 상납금을 바치는 문파들이 많긴 하지.] 끄덕

죄수3; [천마성에 적을 둔 문파는 대략 삼백여개며 한 문파가 해마다 바치는 상납금이 대략 십만냥 쯤이라고 하더군.]

죄수2; [그... 그것만으로도 무려 삼천만 냥의 수입이 생기는군.] 침 꿀꺽! 삼키고

죄수3; [두 번째가 주 수입원인데...] [천마성은 육십여 년동안 꾸준히 땅과 사업체를 사들여왔어.]

죄수2; [그 얘긴 나도 들었네.]

죄수2; [천마성은 비옥하기 이를 데 없는 호남(湖南)과 호북(湖北)에 땅을 사 모았으며...] [당대에 이르러서는 호남, 호북의 비옥한 농지(農地)중 삼할 이상이 천마성 소유라지?]

죄수3; [땅 뿐만 아니라 천마성에서 운영하는 각종 사업체가 천개가 넘어.]

죄수1; [직접 운영하는 사업체가 천개가 넘는다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죄수3; [그것도 구멍가게 수준의 작은 업체들이 아니라 종업원을 최소 백 명 이상씩 둔 거대한 사업체들만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

죄수1; [정... 정말 어마어마하구만.]

죄수3; [엄청난 규모의 토지에서 거두는 소출과 함께 천개가 넘는 사업체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못 잡아도 칠천만냥은 된다더군.]

죄수1; [천마성이 실체를 알고 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세력이었구만.] 침 꼴깍

죄수3; [물론 매년 벌어들이는 일억 냥 가량의 수입이 고스란히 누적되지는 않네.]

죄수2; [딸린 식구들이 많아서 쓸 데도 많겠지.]

죄수3; [방대한 조직을 관리하고 투자도 하고 그러다보면 아마 전체 수입의 일할도 채 축적하기 어려울 걸세.]

죄수1; [일할이라 해도 천만 냥... 그렇게 육십년을 쌓아왔다면...] 흥분. 침 꼴깍

죄수2; [아무리 적게 잡아도 억 단위의 재물이 천마성에 쌓여있었겠군.]

죄수3; [그렇게 엄청난 재물을 챙겼으면서 죽을 고생을 한 우리들에게 겨우 일만 냥 정도를 위로금으로 준 걸세.] 코웃음

죄수3; [이제 내가 무제궁이 통 크다고 한 자네 말을 비웃은 이유를 알겠지?] 죄수1을 보고

죄수1; [듣고 보니 억울하구만.] 이를 부득 갈고

죄수1;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더니...] [천마성의 횡포에 맞서다가 죽을 고생을 한 우리들을 겨우 일만냥으로 입막음 하려 들다니...] 분통을 터트리고

죄수2; [복장은 터지지만 어쩌겠나?]

죄수2; [이제 무림은 무제궁의 손아귀에 들어갔는데 주는 대로 받고 떨어지는 수밖에...] + [크악!] [컥!] 갑자기 비명이 들린다.

[비... 비명!] [헉!] 죄수들 기겁하고. 직후

히히힝! 드드드! 말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가 급정거하고.

[헉!] [힉!] 콰당탕! 그 바람에 나뒹굴면서 돈 궤짝들을 치는 바람에

촤락! 와르르! 마차 바닥으로 돈들이 확 흩어지고

[무슨 일이오?] [마차를 어떻게 모는 거요?] 덜컥! 엉금엉금 일어나며 마차 문을 여는 죄수들. 직후

쿵! 마차 밖의 광경. 마차를 몰던 마부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마차 주위에는 복면을 쓴 자들 십여 명이 서있다. 두 놈은 두 대의 마차를 끌던 말들의 고삐를 잡고 있고. 다른 놈들은 앞쪽 마차에서 죄수들을 끌어내고 있다. 죄수 둘이 이미 바닥에 끌려나와 무릎 꿇은 채 떨고 있고. 마지막 한명이 복면인에게 멱살을 잡혀서 끌려나오는 중이다. 그리고 죄수1, 2, 3이 타고 있는 두 번째 마차로도 복면인들이 다가온다. 살벌하고. 이 모든 일의 지휘자는 신행태보 종선이다. 신행태보는 <건곤일척>과 <투천환일>에 나왔던 바로 그자. 이 작품에서는 혈교 소속으로 위진천의 심복이다. 자주 나올 조연. 팔짱을 끼고 있다

[헉!] [네... 네놈들 누구냐?] 죄수1, 2이 기겁하면서도 외치지만

쩍! 서걱! 다짜고짜 칼을 휘두르는 복면인들. 죄수1과 2의 코와 귀가 잘린다.

[크악!] [내... 내 코...] 비명 지르는 죄수1과 2. 죄수1의 코가 베어졌고 죄수2는 귀가 하나 잘렸다. 반면 죄수3은 재빨리 뒤로 주저앉아 피하며 사색이 되고

[이 자리에서 죽고 싶으면 반항해도 좋다.] [어차피 네놈들은 곧 뒈질 운명이니까.] 살벌하게 눈을 번득이며 칼을 겨누는 복면인들. 코와 귀가 잘린 죄수1, 2는 공포에 질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죄수3; (지랄...) 팟! 반대쪽 마차 문으로 쇄도하고

콰창! 반대쪽 문을 박살내며 날아나가는 죄수3. 하지만

피식! 웃는 신행태보. 팔짱을 끼고 있고

스팟!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신행태보

죄수3; [큿!] 콰당탕! 마차 밖으로 날아 나와 숲속으로 나뒹굴고.

죄수3; (오랫동안 단전이 막혀있어서 내공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팟! 이를 악물면서도 다시 벌떡 일어나려 하고. 하지만 그 직후

[!] 눈 부릅뜨는 죄수3. 쿵! 어느 사이에 죄수3의 앞쪽에 나타난 신행태보가 한 발을 쳐들고 있다. 팔짱을 낀 채

죄수3; (어... 어느 틈에...) 팟! 기겁하며 피하려 하지만

쾅! 그대로 죄수3의 머리통을 밞아서 바닥에 처박는 신행태보

바르르! 얼굴이 바닥에 박힌 채 파르르 떠는 신행태보

신행태보; [감히 나 신행태보(神行太保) 종선(宗線) 앞에서 달아날 생각을 해?]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개수작이지!] 콰직! 발로 죄수3의 뒤통수를 비비 돌려 문지르며 웃고

<신... 신행태보 종선!> <저자가 바로 경신술로는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신행태보..!> 복면인들에 의해 마차에서 끌려나오며 돌아보면서 공포에 질리는 죄수1과 2.

다른 마차의 죄수들도 모두 끌려나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고

죄수1; [종... 종대협! 우린 종대협과 척을 진 일도 없는데 어찌 이런 독수를 쓰시는 거요?] 무릎 꿇은 채로 귀가 잘려진 상처를 누르며 외치고. 그러자

신행태보; [곧 죽을 놈들이니 숨길 것도 없겠지.] 죄수3의 머리를 한 발로 밟은 채

신행태보; [나 종선은 사실 혈교의 제자다.]

<혈... 혈교!> 경악과 전율에 휩싸이는 죄수들

 

<-혈교(血敎)! 무림 역사상 최강자들로 꼽히는 삼황(三皇)중 혈왕(血王)이 세운 문파로 광신적인 종교집단이기도 하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회같은 분위기. 음침한 신전에서 <아랑힐월> <건곤일척>등 다른 작품에 나온 혈왕 캐릭터의 노인이 마귀처럼 웃는 모습. 그 앞에서 핏빛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엎드려 절하고 있고

<무공뿐 아니라 각가지 사악한 술법을 구사하여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어온 혈교는 그러나 삼십여 년 전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세상에서 사라졌었다.> 깊은 계곡 끝에 자리한 음침한 분위기의 성채가 공격당하고 있다.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천마성과 무제궁의 고수들이 공격하고 있고. 지휘자는 젊은 시절의 사자천마다. 당시 사자천마의 나이는 십대 후반이다. 청풍과 비슷한 분위기.

<혈교의 만행을 보다 못한 천마성과 무제궁이 일시 휴전을 하고는 함께 혈교를 공격했던 것이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서서 위 장면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 중년인 시절의 칠지마제와 얼굴이 거뭇하고 사나워 보이는 노인이다. 노인은 천마성의 전대 성주 철면천마다. 당시 칠지무제는 손가락이 모두 있었다.

<결국 혈교의 교주 십면혈신(十面血神) 용극(龍極)은 천마성의 당시 성주 철면천마(鐵面天魔) 이무벽(李無壁)에게 패사했고 혈교는 철저하게 절멸을 당했었다.> 음침한 신전 내부.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는데 다른 작품의 십면혈신 용린 캐릭터의 노인이 철면마제에게 죽는다. 철면마제의 밟게 빛나는 손이 십면혈신의 가슴을 으스러트리고 있다.

<후환을 없이하기 위해 천마성과 무제성은 혈왕의 후손들인 용씨(龍氏)는 갓난아이에게조차 가차없이 살수를 썼었다. 그 살겁이 어찌나 철저했는지 혈교의 용씨일족 중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불타는 음침한 성채 앞에서 남녀노소가 천마성과 무제궁의 무사들에게 죽는다. 애원하는 여자나 아이들도 가차없이 죽이는 무사들. 그걸 칠지무제가 보고 있다.

 

죄수1; (혈... 혈교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다니...) 공포에 질리는 죄수1

죄수2; (지난 삼십여 년간 혈교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서 완전히 명맥이 끊긴 것으로 믿어지고 있었는데...) 역시 덜덜 떨고.

신행태보; [오랜 세월 암약해온 본교가 어째서 네놈들같은 버러지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궁금하겠지?] 죄수1과 죄수2에게 다가오며 음산하게 웃고. 그자의 뒤에서는 복면인 둘이 죄수3의 팔을 좌우에서 잡아 일으키고 있다. 죄수3의 얼굴은 뭉개져서 형태를 잃어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채

죄수1; [그... 그렇소.] + 죄수2; [우리... 우리같은 인생들을 왜 굳이 해치려는 것이오?] 겁에 질리고

신행태보; [그것은 네놈들이 이틀 전, 절대 지으면 안되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살벌한 표정으로 멈춰서며 죄수1과 죄수2를 내려다보고

죄수1; [이틀 전이라면 우리가 아직 천마성의 뇌옥에 갇혀있었을 때인데...] 어리둥절 하지만

죄수2; [뇌옥에 갇혀있던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 [!] 말하다가 깨닫고. 이놈이 좀 더 머리가 좋다

<맙소사!> 경악하는 죄수1과 죄수2. 그런 그자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자신들이 위상영을 윤간하던 장면이다.

죄수1; [설마... 설마 우리가 욕보인 천마성 내총관 냉서시 위상영이...] 덜덜

신행태보; [그분이 바로 본교 교주님의 하나뿐인 누이동생이시다.] 이를 갈고

[히익!] [그... 그런...] 전율. 공포에 질리는 죄수1과 죄수2

신행태보; [감히 고귀한 혈왕님의 후손을 능욕했으니 곱게 죽이진 않을 것이다.] 살벌하고 음침하게

죄수1, 죄수2; [살... 살려주시오!] [우... 우린 냉서시가 설마 혈교의 귀인인 줄 꿈에도 몰랐소.] 무릎 꿇고 애원하고. 하지만

신행태보; [네놈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교주님의 권한이다.] 피핏! 핑! 손가락을 튕기고

[컥!] [큭!] 퍽! 푸식! 신행태보가 날린 지풍이 죄수1과 죄수2의 가슴을 찍고. 지풍에 맞아 퍼덕이는 두 놈

털썩! 퍼억! 나뒹구는 두 놈. 그자들에게 복면인들이 다가오고

신행태보; [기대해도 좋다. 네놈들은 혈왕공주(血王公主)님을 겁탈한 대가로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 테니...] 복면인들이 죄수1과 죄수2의 팔을 잡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웃고.

죄수1; [제발... 제발 용서해주시오.] 두 명의 복면인에게 양팔이 잡혀서 애원하지만

신행태보; [놈들을 늑대굴로 데리고 가라.]

<늑... 늑대굴!> 공포에 질리는 죄수1과 죄수2

[존명!] 대답하는 복면인들

휘익! 휙! 날아오르는 여섯 명의 복면인. 죄수1, 죄수2. 죄수3의 팔을 하나씩 잡고 날아오른다

멀어지는 여섯 명의 복면인들. 그걸 보는 신행태보. 나머지 복면인들은 마차 안을 수색하거나 말을 마차에서 떼내고 있다. 기름을 뿌리는 자도 있고.

신행태보; (그럭저럭 끝이 나는 것 같군.) 생각. 그때

[당주(堂主)님!] 휘익! 날아 내리는 복면인 한명. 돌아보는 신행태보

복면인; [보고 드립니다.] 내려서며 포권하고

복면인; [천마성의 뇌옥에 갇혀있던 자들의 거의 대부분을 포획하여 늑대굴로 보냈습니다.]

신행태보; [대부분?] 찡그리고

복면인; [마지막 한 놈이 남았는데...] [소교주님이나 당주님의 지시가 필요하여 감시만 하고 있습니다.] 눈치 보며

신행태보; [그자가 누구냐?]

복면인; [신장궁의 소궁주 철수무정 벽세황입니다.] 눈치 보며 말하고

신행태보; [벽세황이라...] 생각

복면인; [먼저 사로잡힌 자들이 자백한 바에 의하면 벽세황은 당시 혼수상태에 빠져 있어 공주님을 유린하는 만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복면인; [게다가 다른 자들과 달리 벽세황이 타고 가는 마차는 무제궁의 고수들이 경호를 하고 있습니다.] 눈치 보며

복면인; [만에 하나 벽세황이 타고 가는 마차를 습격했다가 그자들 중 하나를 놓치기라도 하면 본교의 존재가 들어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신행태보; [공주님께 죄를 짓지 않은 자라면 굳이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잡아들일 이유는 없겠지.] 끄덕

신행태보; [소교주님께는 내가 보고드릴 테니 벽가놈은 포획 대상에서 제외해라.]

복면인; [존명!] 포권

휘익! 다시 날아가는 복면인

신행태보; [세상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천마성을 무너트린 것이 사실은 무제궁이 아니고 우리 혈교라는 사실을...] 흐흐흐! 멀어지는 복면인을 보며 웃고. 그 뒤에서는 마차에서 돈 궤짝을 꺼내 한쪽에 쌓는 복면인들과 마차에 횃불로 불을 지르려는 복면인들이 보인다.

기름을 뿌린 마차에 횃불을 던지는 복면인들

화악! 확! 불길이 치솟고. 히히힝! 놀란 말들이 펄떡이고. 복면인들이 그런 말들의 고삐를 조인다

신행태보; [머잖아 무림의 인간들은 알게 될 것이다.] 불타는 마차를 돌아보고

신행태보; [삼십여 년 간 폭발을 기다려온 우리 혈교의 가공할 복수의 불길이 제놈들을 집어삼키며 태운다는 것을...] 흐흐흐! 불타는 마차를 보며 웃는 신행태보

 

#60>

<-신장궁(神匠宮)> 낮. 먹장구름. 음침한 날씨. 연기를 뿜어내는 화산을 등지고 공장 분위기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들도 많고. <투천환일>에 나온 신장궁 모습을 그대로 써도 됨

신장궁의 정면 모습.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드나들고 있고, 무사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드나드는 사람들 감시하고 있고.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는 무사 한명. 흠칫! 하며 앞을 보고

동료를 팔꿈치로 툭 치면서 앞쪽을 턱으로 가리키는 그자. 흠칫! 하며 돌아보는 동료 무사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다가온다. 마부석에는 무제궁의 무사 두 명이 타고 있고. 천마성에서 벽세황(청풍)을 태우고 온 그 마차다. 마차의 창문은 닫혀 있어서 안에 누가 탔는지 안 보이고. 마차 뒤로는 두 명의 무제궁 무사가 말을 타고 따라오고. 물론 그중 한명은 백귀의 제자인 신소심. 마차의 지붕에는 <武>라 적힌 깃발이 꽂혀있다.

<武>라 적힌 깃발 크로즈 업

무사들; [무제궁의 상징인 무자번(武字幡)!] [사흘 전 천마성을 출발한 그분이 도착하셨다.] 흥분하는 무사들. 드나들던 사람들은 그런 신장궁 무사들을 어리둥절하며 보고

신소심; (다 왔군.) 눈 번뜩이며 앞을 보고

신소심; (저기가 각종 병장기와 기물을 만들어내는 재주로는 천하제일이라는 신장궁...) 다가오는 신장궁을 보고

신소심; (좀 서두른 덕분에 천마성에서 사흘만에 도착했다.)

신소심; (불과 사흘 거리지만 벽세황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이승과 저승 정도로 멀게 느껴졌었겠지.) 자신들을 발견하고 우왕좌왕하는 신장궁 입구의 무사들 보며 생각하고

무사1; [무제궁이 전서구로 연락해온 대로 소궁주님께서 도착했네.] [빨리 궁주님과 작은 마님께 보고 드려.] 다가오는 마차를 보며 흥분하고

무사2; [그럼세.] 급히 돌아서서 신장궁 안쪽으로 달려 들어가고

따각! 따각! 나머지 무사들이 주시하는 사이에 무제궁 무사들이 끄는 마차가 다가오고

마부석의 무제궁 무사 한 명이 영패를 하나 들어 보인다.

<帝>자가 적힌 영패 크로즈 업. 그러자.

포권하며 말없이 좌우로 물러서서 길을 열어주는 신장궁의 무사들.

신장궁 정문을 통과하는 그 마차. 신장궁 무사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자기들 앞을 지나는 마차를 보고

[소궁주님께서 무려 일 년 만에 집에 돌아오셨군.] [우리 신장궁의 열조들께서 보우하신 덕분이지.] [천마성의 뇌옥은 악명 높아서 일단 갇히면 송장이 되어야 나올 수 있다고 할 정도니...] 마차와 두필의 말이 자신들 앞을 지나 정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무사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

마차가 들어서자. 오가던 신장궁 사람들 걸음 멈추고 고개 숙여 절하고. 여자들은 울면서 고개 조아리고. 무릎 꿇고 앉아 절하는 여자들도 있고

[궁주님과 큰 마님은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실 테지.] [당연하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체념한 외아들이 살아 돌아오셨으니...] 정문쪽의 무사들 마차의 뒷모습 보며 수군

[아무리 그래도 작은 마님의 기쁨에 비할 바가 있겠는가?] 다른 무사가 끼어들고

[하긴...] [청상과부가 될 것을 각오하셨던 작은 마님보다 소궁주님의 생환이 기쁜 사람은 없겠지.] 정문 안쪽으로 멀어지는 마차를 보며 말하는 무사들

 

#61>

신장궁의 깊은 곳에 자리한 마당.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나와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 중앙 앞쪽에는 한 쌍의 남녀가 나란히 서있다. 대장장이처럼 보이는 구부정한 노인과 좀 기승스러워 보이고 풍만한 몸매의 중년부인. 노인은 신장궁의 궁주인 귀수신장 벽치릉이다. 귀수신장은 <투천환일>에 나온 신장궁 전대 궁주 귀수신장 벽치릉 캐릭터. 30대 후반쯤인 중년부인은 벽치릉의 후처인 황보경. 황보경은 <건곤일척 자료집 제19페이지>에 나온 황보경과 동일 캐릭터. 황보경은 전처소생인 벽세황과 패륜을 저질러온 탕녀다.

두 부부 뒤에는 벽세황의 처인 화룡부인 뇌옥경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서있다. 뇌옥경은 복잡한 표정이다. 그런 뇌옥경의 손을 잡고 있는 소녀의 이름은 벽초아. <투천환일>에 나온 벽세준-뇌옥경의 딸 벽진봉 캐릭터. 한 손으로 인형을 안고 있다. 지금 나이는 4살.

귀수신장 부부와 뇌옥경 모녀 등 네 사람 주변으로 남녀노소가 십여 명 서있다. 신장궁 벽씨 일족의 식솔들이다. 젊은 무사들도 몇 명 서서 마당 입구를 보고 있고

따각! 따각! 월동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는 벽세황(청풍)을 태운 마차. 신소심과 다른 무제궁 무사도 말을 타고 따라 들어온다

황보경; [상... 상공! 저... 저 마차에 우리 세황이가 타고 있는 건가요?] 귀수신장 옆에 선 황보경이 흥분이 극에 달해서 발 동동

귀수신장; [진정하게 임자! 아이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 황보경을 달래는 벽치릉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신장궁 궁주 귀수신장(鬼手神匠) 벽치릉(碧治菱)>

황보경; [어떻게...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요? 죽었다고 체념한 외아들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울먹이며 발 동동 구르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귀수신장 벽치릉의 후처 황보경(皇甫鏡)>

한숨 쉬는 귀수신장.

뇌옥경; (상공...)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선 뇌옥경도 복잡은 표정이 되어 가까워지는 마차를 보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벽세황의 처 화룡부인(火龍夫人) 뇌옥경(雷玉鏡)>

뇌옥경; (초아(蕉娥)를 위해서는 당신의 생환이 다행이지만...) (신첩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군요.) 입술 깨물며 복잡한 표정. 뇌옥경이 벽세황의 귀환을 아주 반기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뇌옥경; (당신 얼굴을 보게 되면 애써 잊으려고 노력해온 악몽들이 거푸 떠오를 테니...) 발 동동 구르는 황보경의 뒷모습 보며 입술 깨물고.

<특히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당신의 의붓어미와 관련된 구역질나는 기억이...> 눈물까지 그렁거리는 황보경의 얼굴 배경으로 뇌옥경의 생각 나레이션. 그때

마부1; [워워!] 마차를 몰고 온 두 명의 마부 중 한명이 말고삐를 당겨서 마차를 멈추게 하고.

드드드! 마당 중앙쯤에 멈추는 마차. 그러자

마당 입구 쪽에 서있다가 마차를 따라온 신장궁의 무사들이 급히 다가와서

[먼길에 노고가 많으셨소이다.] 무사 한 명은 말의 고삐를 잡아 진정시키며 마부들에게 말하고.

마부들은 고개 조금 숙여 답례하고

그 사이에 다른 무사들은 마차의 문으로 달려와서

삐꺽! 마차의 문을 연다. 이어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무사 두 명. 그 배경으로 마차를 몰고 온 마부들과 신소심과 동료 무사도 마부석과 말에서 내리고

[조심하게.] [정신을 잃으신 상태야.] 마차에서 벽세황(청풍)을 부축해서 내리는 무사들. 벽세황(청풍)은 여전히 혼절한 상태다. 축 늘어져서 끌려나온다

고개 떨군 채 마차에서 끌려나오는 벽세황(청풍). 순간

황보경; [세황아!] 팟! 자지러지게 울부짖으면서 마차로 달려가고. 귀수신장과 뇌옥경은 침통한 표정으로 황보경을 따라가고

황보경; [아이고 이 녀석아! 이게 무슨 몰골이니?]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기고 늠름하던 네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어?] 무사들이 부축한 벽세황(청풍)을 부여안고 쓰다듬으며 오열하고. 물론 벽세황(청풍)은 기절한 상태라 반응이 없고

황보경; [부처님! 옥황상제님! 감사합니다. 우리 신장궁의 대들보인 이 아이를 다시 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벽세황(청풍)을 끌어안고 과장되게 몸부림치며 울고. 주변의 신장궁 여자들도 눈시울을 닦고. 하지만

뇌옥경; (당신은 한량없이 기쁘시겠지요 어머니.) 좀 비웃고

<당신에게는 그 사람이 단순히 전처(前妻) 소생의 양아들이 아닐 테니...> 벽세황(청풍)의 얼굴 쓰다듬으며 눈물 쏟는 황보경을 배경으로 뇌옥경의 생각 나레이션

뇌옥경; (솔직한 제 심정은 차라리 당신이 천마성에서 불귀고혼이 되는 것이었답니다.) 입술 깨물고

뇌옥경; (그럼 나의 수치심과 당신의 패륜도 영원히 묻혀 버렸을 테니...) 한숨 쉬고. 그때

벽초아; [엄마!] [할머니가 왜 저래?] 벽초아가 뇌옥경의 손을 잡아 흔들며 묻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뇌옥경의 딸 벽초아(壁蕉娥)>

뇌옥경; [우리 초아가 어느덧 아빠 얼굴을 잊어버린 모양이로구나.] 한숨

뇌옥경; [그동안 멀리 떠나있던 아빠가 돌아오신 거야.]

벽초아; [저 아저씨가 초아 아빠야?] 눈이 동그래지고

뇌옥경; [그래! 초아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아빠가 돌아오셨단다.] 억지로 웃고. 그러자

벽초아; [아빠! 아빠!] 뇌옥경의 손을 놓고 벽세황(청풍)에게 달려가고

벽초아; [아빠가 초아 아빠야? 그런 거야?] 무사들에게 부축되고 황보경에게 안긴 벽세황(청풍)의 바지를 부여잡고 흔들고. 황보경은 벽초아를 돌아보며 벽세황(청풍)에게서 좀 떨어지고.

물론 벽세황(청풍)은 정신을 잃은 상태라 고개 떨군 채 대답하지 못하고

벽초아; [할머니! 아빠가 왜 초아를 모르는 척 해?] 울먹이며 황보경을 올려다보고

황보경; [아빠가 지금은 주무시고 계신단다. 깨어나면 초아와 놀아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벽초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억지로 웃고

벽초아; [아! 아빠가 주무시는 중이구나.] 납득하고

벽초아; [그만 자고 빨리 일어나서 초아하고 놀아 아빠.] 벽세황(청풍)의 다리를 끌어안고 얼굴 부비는 벽초아.

그런 벽초아의 모습 보며 눈시울 붉히는 황보경과 신장궁 여자들. 그 사이 가까이 다가온 뇌옥경과 벽치릉도 한숨 쉬며 보고 있고

그 장면을 동료들과 함께 서서 보고 있는 신소심. 두 사람이 타고 온 말의 고삐는 신장궁 무사들이 잡아서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

신소심; (지금까지는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장을 지긋이 보며 생각하고

<벽세황을 신장궁으로 데리고 가면서 잘 관찰해 보거라. 벽세황에게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기분을 금할 수 없구나.> 백귀의 말을 떠올리는 신소심

신소심; (사부님께서 그리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실 것이다.) (그래서 지난 며칠간 벽세황을 유심히 지켜봐 왔지만...) 난감

신소심; (신장궁 식솔들의 반응도 그렇고... 벽세황에 관해 사부님에게 보고드릴 만한 내용은 전무하다.) 찡그리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장궁의 손님 접대를 못이기는 척 받으면서 며칠 더 관찰해본 후 돌아가야겠다.> 벽세황(청풍)을 둘러싸고 울고 웃는 신장궁 사람들 배경으로 신소심의 생각 나레이션

 

#62>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11화  (0) 2024.05.06
[마고천장] 9화  (1) 2024.05.04
[마고천장] 8화  (1) 2024.05.03
[마고천장] 7화  (2) 2024.05.02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48>

뇌옥 입구. 바지를 추스르며 나오는 죄수 세 놈. 좀 질이 나빠 보이는 자들이다. 이자들은 나중에 다시 출연한다.

무사3;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안을 기웃거리며 죄수들에게 묻고

죄수1; [위가년은 아직 명줄을 놓지 않고 있소.] 세 놈의 죄수중 가장 덩치가 크지만 멍청한 인상. + 죄수2;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가실 거요.] 좀 얍삽해보이는 인상인데 히죽거리며 바지를 추스른다.

무사3; [수십명에게 몇 시진 째 돌아가며 당하고도 숨이 붙어있다니...] [역시 사람 목숨은 모진 거구만.]

죄수1; [하지만 결국 우릴 태워 죽이려던 뇌옥 안에서 인생 종치게 될 거요.] + 죄수2; [말이 수십 명이지 쉬지 않고 아랫도리를 치받히다보니 골반이 으스러진 것 같더이다.] 뇌옥 안을 보며 히죽거리는 두 놈. 죄수3은 좀 음침한 인상인데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고

죄수1; [내장도 파열된 것같고...] + 죄수2; [아마 곧 명줄을 놓게 될 거요.]

무사들; [아깝구먼. 냉서시가 천마성 제일의 미녀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살아있을 경우 우리들 한테도 기회가 올 수도 있었구만.] 입맛 다시는 무사들. 그때

위진천; [뭐하는 짓들이냐?] 화악! 뇌옥 입구에 돌풍을 일으키며 내려서는 위진천

무사들; [이... 이공자님!] [이공자님을 뵙습니다.] 기겁하는 무제궁의 무사들. 죄수들은 위진천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위진천; [죽일 놈들! 해도 되는 짓이 있지만 하면 안되는 일도 있다는 거 모르느냐?] 휘익! 뇌옥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이를 갈고

무사들; [이... 이거 어째 느낌이 싸해지는 걸.] [이공자께서 저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보는구만.] [뒷탈이 적지 않게 있겠어.] 위진천이 뛰어 들어간 뇌옥 입구를 보며 겁을 먹고

죄수들; [그... 그러니까 방금 전의 그 젊은이가...] 죄수들도 긴장하고

무사들; [칠지무제님의 둘째 제자이신 운중신룡 위공자님이시오.] [저분이 화를 내는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왜 저토록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일까?] 무사들 겁에 질려서 보고

 

#49>

뇌옥 내부. 복도에 주저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노닥거리는 수십명의 죄수들. 대기자들이다. 감방들 중 가장 넓은 감방. 문이 열려있고 감방 안에서는 다시 십여명의 사내들이 빙 둘러서고 앉아서 무슨 짓을 하고 있다. 한명의 죄수가 알몸이 된 위상영을 올라타고 아랫도리를 흔들고 있고. 다른 놈들은 들여다보면서 위상영의 몸을 주물러댄다. 위상영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것을 만지게 하는 놈도 있고. 위상영은 눈은 뜨고 있지만 초점이 없고. 시체처럼 누워서 강간을 당하는 중이다.

[빨리 좀 끝내쇼.] [기다리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하지 않소?] 투덜대는 죄수들

[조... 조금만 더 시간을 주쇼.] [이 계집이 반 송장이 된 데다가 두 번째 하는 거라 쉽게 끝내지가 않소.] 턱턱! 아랫도리를 거칠게 위상영의 사타구니에 치받아대며 헐떡이는 위상영을 강간하는 죄수. 그때마다 위상영의 몸은 힘없이 흔들리고

[오랜 감금생활로 몸들이 허약해진 상태요.]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끝내쇼.] [그러고 싶지만 저 년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도저히 한번으로 못 끝내겠소.] [위가년이 죽을 때까지 재미를 봅시다.] 키득거리는 죄수들. 바로 그때

[멈춰라!] 고함소리가 들리고. 모든 죄수들 깜짝 놀라 돌아보고. 위상영을 겁탈하던 자들도

위진천; [죽일...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빠지직! 쿠오오오! 온몸에서 벼락을 일으키며 입구로 날아 내리는 위진천. 살벌한 표정이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극도로 분노한 모습.

[저 새낀 뭐야?] [천마성의 잔당인가?] 죄수들 살벌한 표정으로 일어설 때

[!] 눈 부릅뜨는 위진천

<고모님!> 위진천의 눈에 들어오는 위상영의 모습. 알몸이 된 채 사내들 사이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고. 한 놈이 위상영을 겁탈하다가 돌아보고 있다.

위진천; [용서가... 안된다!] 빠지직! 벼락이 일어나는 양손을 쳐들며 이를 갈고

[우리야말로 용서가 안된다.] [천마성의 잔당인 모양이다.] [죽이자!] 죄수들이 위진천을 덮치려 하고. 하지만 그 직후

위진천; [크아!] 꽝! 벼락이 일어나는 양손으로 손뼉을 치고. 그러자

빠지직! 빠캉! 위진천의 손뼉에서 수많은 벼락이 일어나 뇌옥 안의 모든 인간들 몸속으로 스며들어가고.

[크악!] [케엑!] 감전당해 비명 지르는 모든 죄수들

털썩! 퍼억! 감전당해서 몸이 뻣뻣해지고 몸에서 연기가 나며 나뒹구는 죄수들. 위상영을 강간하던 자들도 나뒹굴고

위진천; (뒷탈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네놈들을 지금 이곳에서 몰살시켰을 것이다.) 콱! 우두둑! 이를 갈며 감방으로 가고. 바닥에 쓰러져 벌벌 떠는 죄수들을 무자비하게 밟으면서

위진천; (하지만 네놈들이 살아있는 것도 잠시지간에 불과하다.) 감방으로 들어서고. 감방 안에도 죄수들이 감전당한 채 벌벌 떨고 있다.

위진천; (오늘 고모님을 욕보이는 데 가담한 놈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죄의 값을 치르게 할 테니...) 콰득! 우두둑! [끄윽!] [컥!] 감방 안의 죄수들을 밞으며 위상영에게 다가가고. 위진천의 발에 밟힌 놈들이 비명 지르고

위상영 옆에 이르러 위상영을 내려다보는 위진천

위상영의 처참한 모습. 온몸이 정액으로 더럽혀져 있고 벌어진 사타구니에서는 정액과 피가 뒤섞여 줄줄 흘러넘치고 있다

위진천; (고모님...) 휘릭! 참담한 표정으로 자기 겉옷을 벗고

위진천; (아버지를 대신해서 소질이 용서를 빌겠습니다.) 슥! 벗은 겉옷으로 위상영의 알몸을 덮어주고

위진천; (부디 돌아가시지만 말아주십시오.) 번쩍! 자기 겉옷으로 감싼 위상영의 알몸을 안아들고

위진천; (그럼 어떻게든 소질이 치료해드리고 보살펴드릴 테니...) 시체처럼 늘어진 위상영의 알몸을 겉옷으로 감싼 채 들고 감방에서 나온다. 죄수들은 모두 감전당해서 벌벌 떨고 있고

 

#50>

뇌옥을 밖에서 본 모습. 무사들이 겁에 질려 주춤거리고 있고. 죄수1, 2, 3도 한쪽으로 몰려선 채 역시 긴장해서 뇌옥을 보고

지지지! 빠지직! 뇌옥 안에서 벼락이 작렬하는 게 보이고

<젠장! 사단이 났구만.> <위가년이 윤간당하도록 방치한 불똥이 우리에게도 튀겠어.> <이공자가 개입한 이상 아무 일 없길 바라긴 틀렸다.> 겁에 질리는 무사들. 그때

뇌옥에서 두 팔로 위상영을 안고 밖으로 나오는 위진천. 위상영의 알몸은 위진천의 겉옷으로 덮여있고

[이... 이공자님!] [속... 속하들은...] 겁에 질려 눈치 보는 무제궁 무사들

그자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위진천

위진천;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따라왔지만...) 뇌옥을 등지고 걸어가며 이를 악물고. 뇌옥 입구의 무제궁 무사들과 죄수1, 2, 3은 안도하고 있고

위진천; (상영고모와 관련된 아버지의 처리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바득! 이를 갈고

위진천; (핏줄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세 명뿐인데... 어떻게 상영고모를 이런 지경이 되게 만들었단 말인가?) 휘익! 날아가고.

[휴우! 일단 불벼락은 떨어지지 않았군.] [십 년 감수했어.] 무제궁 무사들 안도하고. 헌데

 

건물들 사이에 숨 듯이 서서 위진천이 멀어지는 것을 보는 유령귀왕

유령귀왕; (운중신룡 위진천... 냉서시 위상영...) 눈 번뜩

유령귀왕; (같은 위씨인 것도 그렇고...) (위상영이 당한 만행에 위진천이 보이는 반응이 예사롭지가 않다.) 음산하게 웃고

<어쩌면 위진천을 옭아맬 수 있는 치명적인 올가미를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위상영을 안고 날아가는 위진천의 모습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생각 나레이션

 

#51>

여전히 천마성. 낮.

불길과 연기가 치솟는다. 수많은 시체가 쌓인 마당. 기름이 부어진 시체 더미가 불에 타고 있고. 연신 기름을 뿌리고 시체를 던져 넣는 무제궁 무사들. 반면

여러 대의 마차에 관이 실려 나간다. 무제궁 무사들의 관이다. 청풍의 모습을 한 벽세황의 시체는 여전히 천마성 정문에 걸려있고

천마성을 나가는 마차들

양지 바른 곳에서 매장이 이루어진다. 천마성의 노인과 소년들이 구덩이를 파고. 마차가 실어나른 관들을 묻는다. 무제궁 무사들이 감시하고 있고

 

#52>

천마성의 어느 건물. 무제궁의 무사들이 약과 물, 천등을 들고 드나들고 있고

건물 내부. 부상당한 무제궁 무사들이 동료들의 치료를 받고 있다.

구석진 곳의 침대. 그곳에 누워있는 벽세황. 물론 벽세황 모습을 한 청풍이다. 벽세황(청풍)으로 표기. 몸에는 환자복을 입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고

벽세황(청풍)의 침대로 오는 흑백신귀중 백귀. 타노가 따라온다.

백귀; [이 젊은 놈이 바로?] 침대 옆에 서서 벽세황(청풍)을 내려다보고

타노; [신장궁의 소궁주인 철수무정 벽세황입니다.] 나란히 서며 대답하고

타노; [냉서시 위상영에게 끌려가서 무슨 고문을 당했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백귀; [몸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군. 내공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 벽세황(청풍)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타노; [저희도 백방으로 깨우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백귀; [일단 기맥은 규칙적이니 머잖아 깨어날 것 같은데...] [이놈은 뭘 밉보였기에 천마성에 끌려와 지독한 꼴을 당한 것이냐?]

타노; [신장궁의 신병이기를 사용하며 마도 무림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습니다.]

타노; [거의 천명 가까운 마도 무림인들이 죽거나 다쳤으니 천마성 입장에서는 찢어죽이고 싶은 원수였겠지요.]

백귀; [신장궁은 각가지 무기나 기물을 만들어 팔기만 할 뿐 딱히 무림의 일에는 관여해오지 않은 가문인데...]

백귀; [이놈은 어쩌자고 그런 살겁을 자행한 것이냐?]

타노; [그것이...] 좀 난감한 표정

백귀; <남이 들으면 난감한 이유가 있겠구나.> 전음으로

타노; <그렇습니다.> 역시 전음으로

 

<벽세황에게는 화기의 명가인 벽력당(霹靂堂) 출신의 아내가 있습니다. 화룡부인(火龍夫人) 뇌옥경(雷玉鏡)이란 여자인데 현모양처의 표본이라 할만한 여자이지요.> 2-3살 쯤 된 귀여운 소녀를 품에 안고 의자에 앉아 웃는 벽세황과 그 앞의 탁자에 앉아 과일을 깍는 절세미녀. <투천환일>에 나온 신장궁의 안주인 화룡부인 뇌옥경과 동일 캐릭터

 

백귀; [이놈 마누라에게 문제가 생겼겠군.] 벽세황(청풍)을 내려다보며

타노; <친정인 벽력당에 다니러 가던 화룡부인 뇌옥경을 천마성 소속의 무리들이 겁탈을 하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전음으로

백귀; [저런...]

타노; <목숨은 건졌지만... 수십 명에게 윤간을 당한 채 초주검으로 발견이 된 아내를 보는 순간 벽세황은 거의 미쳐버렸다고 합니다.>

백귀; [이놈이 마도의 인간들을 철천지원수로 여길만한 사연이 있었군.] 벽세황(청풍)을 내려다보며 혀를 차고

타노; [뇌옥에 갇혀있던 대부분의 죄수들은 운신이 가능해서 체력이 회복되는 대로 귀가를 시킬 예정입니다만...]

타노; [벽세황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좀 난감합니다.]

백귀; [가족들이 학수고대하고 있을 테니 오늘이라도 당장 마차에 태워 신장궁으로 보내도록 해라.] 슥! 말하면서 손을 내밀어 벽세황(청풍)의 목 옆부분을 만지고

타노; [그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그러다가

흠칫! 하며 백귀를 보는 타노

[...] 벽세황(청풍)의 목 옆을 만지며 뭔가 생각하는 백귀. 이마를 모으고 있고

타노;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것이라도...?] 눈치 보며 묻고

백귀; [이놈의 무공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느냐?]

타노; [그저 그런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노; [신장궁이 원래 신병이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게 본업이다보니 무공 쪽에서는 그리 특출 날 게 없습지요.]

백귀; [그럴 거라 생각했다.] 슥! 끄덕이며 벽세황(청풍)의 목에서 손을 떼고

타노; [하오면...] 살피고

백귀; [별일 아니다.] 돌아서고

백귀; [혹시 모르니 경호를 붙여서 신장궁으로 호송해라.] 입구쪽으로 걸어가고

타노; [분부 받들겠습니다.] 포권하고

백귀; (벽세황 저놈...) 찡그리며 입구쪽으로 가고

백귀; (지금껏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기가 막힌 체질을 지니고 있었다.) 벽세황(청풍)의 목을 만졌던 손이 떨리고

백귀; (경맥이 얼마나 넓고 튼튼한지 노부가 진맥하기 위해 투입한 내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파도치는 거대한 바다를 떠올리고. 쌍돛을 단 배 한 척이 파도 사이에서 움직이는데 손톱만큼 작게 보인다

백귀; (생사현관을 비롯하여 모든 경맥이 장강처럼 드넓게 열려있으며 진기를 담아두는 기해혈은 그 용량을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백귀; (물론 내공은 전무한 상태였지만... 만일 저 놈의 몸에 내공이 가득 찬다면...)

백귀; (전설 속의 삼황에 필적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

백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공이 평범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백귀;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힌 적이 없거나 무공을 익혔어도 쓰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일 텐데...) 당혹스러운 표정

백귀; (저 놈을 잘만 가르치면 우리 신귀문(神鬼門)이 무제궁을 능가하는 것도 꿈이 아닐지 모르겠다.) 흥분하며 건물에서 나오고. 오가던 무제궁 무사들 인사하고

백귀; (벽세황, 저놈에 대한 처리를 흑신과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겠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 흑백신귀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니...> 흥분한 백귀의 얼굴 배경으로 나레이션

 

#53>

여전히 낮. 천마성의 다른 곳. 담장으로 구분된 조용한 건물. 건물로 통하는 월동문은 무제궁 무사들이 지키고 있고. 그들 외에 건물 주변에 남자들은 없고.

월동문 안쪽. 위진천이 건물 정문이 보이는 정원에 뒷짐을 짚고 서서 건물을 보고 있다. 건물의 문은 열려있고. 하녀 분위기의 여자들이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건물에서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울고 있다. 그 여자들은 손에 손에 대야, 피 묻은 천, 치료에 쓰인 약통이나 도구들을 얹은 쟁반들을 들고 있다. 건물에서 나온 여자들은 겁에 질려서 정원에 뒷짐 짚고 서있는 위진천을 훔쳐본다.

건물에서 나온 여자들은 부엌이나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나이 든 여자 한명이 소매로 눈물 닦으면서 건물에서 나오고. 문은 닫지 않는다

여자; [외... 외총관님의 치료가 얼추 끝났사옵니다 공자님.] 위진천에게 다가오며 굽신

위진천; [어떤 상태냐?] 뒷짐 진 채 문 안쪽을 보고.

문 안쪽은 침실인데 침대에 잠옷 차림인 위상영이 힘없이 누워있다. 눈은 감고 있고. 침대 옆에는 어린 시녀가 울면서 위상영의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여자; [만신창이가... 특히 아랫도리는 거의 으스러지다시피 망가진 상태이옵니다.] 눈물 닦으며

찡그리는 위진천.

여자; [너무 많은 사내들에게 능욕당한 때문인데...] 눈치 보며 눈물 닦고

무표정하게 건물 내부를 보는 위진천. 하지만

꾸욱! 뒷짐 쥔 위진천의 주먹 꽉 쥐어지고

여자; [공자님께서 본성의 약고(藥庫)에서 가져다주신 공청석유(空靑石乳)를 복용하신 덕분에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골반이 으스러진 탓에 하체를 영영 못 쓰실 수도 있습니다요. 자궁이 망가져서 아기를 갖기도 어려울 테고...>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위상영의 모습. 강간당하는 과정에서 폭행도 당해서 얼굴에 멍이 들고 부어있다. 처참한 모습이고

위진천; [수고했다.] 무표정하게 말하고

여자; [수고라니 가당치도 않사옵니다.] 급히 고개 젓고

여자; [저희들이야말로 공자님께 크나큰 은혜를...] + 위진천; [오해할까봐 말해두는 것이지만...] 여자의 말을 막고

위진천; [내가 위가년을 살린 것은 생포된 천마성의 인간들 중 가장 신분이 높은 때문이다.] 차가운 표정을 짓고

위진천; [우리 무제궁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포로라는 뜻이다.] [그리 알고 위가년을 보살피는데 최선을 다해라.]

여자; [분부 명심하겠사옵니다.]

위진천; [너희들이 전부터 위가년을 모셔왔다고 해서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음산한 표정을 짓고. 겁에 질리는 여자

위진천; [네년들도 다른 계집들처럼 늙은 년은 종으로, 젊은 계집은 기루에 기녀로 팔려나갔을 것이다.] 음산하게 웃고

여자; [공... 공자님의 은혜에는 저희 모두 감읍하고 있사옵니다.] 굽신

위진천; [위가년의 신상에 변고가 생기면 네년들도 나이와 상관없이 몸 파는 갈보 신세가 될 것임을 잊지 마라.] 돌아서며 말하고

여자; [명... 명심하겠사옵니다.] 굽신

위진천; (고모님의 시중은 저 계집들에게 맡겨야만 한다.) 월동문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하고

위진천; (지나치게 관심을 보였다가는 나와 고모님의 사이를 의심하는 인간이 나올 수도 있으니..) 월동문을 나가며 생각하는 위진천. 월동문 밖을 지키던 무제궁 무사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헌데

 

슥! 슥! 월동문을 등지고 멀어지는 위진천을 곁눈질로 보며 비질을 하는 노인. 바로 얼굴에 검뎅을 묻힌 유령귀왕이다.

유령귀왕; (의심의 여지가 없구나.) 히죽

<위진천, 저놈은 위상영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 찡그리며 뭔가 생각하면서 멀어지는 위진천을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생각 나레이션

 

#54>

오후. 천마성 입구.

마차 한 대가 천마성의 정문을 나선다. 두 명의 무사가 마부석에 앉아있는데 마차의 지붕에는 <武>라 적힌 깃발이 꽂혀있다. 무제궁의 상징. 그리고 말을 탄 두 명의 무사가 마차 뒤를 따른다. 말 탄 무사들은 눈빛이 날카로워서 고수들로 보이고. 말 타고 마차를 따라가는 두 명의 무사들중 한명이 특이하다. 남자지만 가냘픈 몸매에 얼굴도 아주 잘 생겼다. 몸매는 가늘지만 키는 상당히 크고. 눈에서는 차가운 눈빛을 뿜어낸다. 이 자는 사실 남자가 아니고 남장여인으로 백귀의 제자인 신소심이다. <투천환일>등의 신소심 캐릭터가 남장한 모습. 무기는 양쪽 허리춤에 찬 휘어진 칼 두 자루

커튼이 젖혀진 창문을 통해 마차 안에 놓인 안락의자에 벽세황(청풍)이 눈을 감고 비스듬히 앉아있는 게 보인다. 거의 누운 상태

멀어지는 마차.

천마성의 성벽 위에 서서 마차를 보고 있는 백귀

백귀; (철수무정 벽세황...) 찡그리고

<저 놈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열린 마차 문을 통해 벽세황(청풍)이 힘없이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 신귀문의 제자들중 가장 영민한 소심(素心)이를 호위로 위장시켜서 딸려 보낸 것인데...> 마차 뒤를 말을 타고 따라가는 신소심의 모습 크로즈 업. 날씬한 몸매와 잘 생긴 얼굴 강조. 가슴도 약간 불룩

배귀; (벽세황... 저 놈이 향후 무림의 정세를 좌우할 것만 같은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 멀어지는 벽세황(청풍)을 태운 마차를 보며 생각하는 백귀

 

#55>

밤. 천마성. 불야성. 순찰 도는 무제궁 무사들

[!] 눈 부릅 놀라는 타노. 앞쪽에 월동문이 있는데 지키는 사람은 없다.

타노; (냉서시 위상영의 거처를 지키라고 배치한 놈들이 안보인다.) 급히 월동문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그 직후

[!] 다시 눈 부릅뜨며 놀란다.

쿵! 건물의 문이 열려 있고 건물 주변에 위상영의 시중을 들던 여자들이 쓰러져 있다. 여자들은 죽지 않고 기절한 상태지만

월동문을 밖에서 지키던 무제궁 무사들도 정원의 나무들 사이에 처박혀 있는데 입과 코로 피를 흘리고 있다. 죽은 것으로 묘사

타노; (혹시나 해서 지나가던 길에 들려본 것인데...) 휘익! 건물 입구로 급히 달려가고. 건물의 입구는 문이 열려있다

타노; (누군가에게 보초 서던 놈들을 몰살당하고 하녀들은 제압당했다.) 팟! 건물 축대 앞에서 도약하고. 곁눈질로 하녀들의 시체를 보며

<이공자가 확보하여 치료를 받게 해준 냉서시 위상영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 것같다.> 휘릭! 건물 입구 앞에 내려서고. 직후

타노; (역시!) 눈 부릅

건물 내부. 어지럽혀진 침실. 하지만

침대에는 어질러진 이불만 덮여있을 뿐 위상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타노; (냉서시 위상영이 사라졌다!) 굳어지는 얼굴

 

#56>

천마성의 다른 곳. 웅장한 건물. 삼엄한 경비.

흑신이 계단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다.

서둘러 그곳으로 다가오는 위진천

위진천; [장로님!] 포권하고

흑신; [들어가 봐라. 네 사부가 기다리고 있다.] 곰방대 입에서 빼며 말하고

위진천; [예...] 고개 숙이며 지나가고

흑신; (궁주의 둘째 제자 위진천...) 눈을 좀 가늘게 뜨고

<궁주가 첫눈에 보고 제자로 삼았을 만큼 빼어난 자질을 지닌 인재인 것은 분명한데...> 곁눈질로 뒤를 살피며 건물 입구로 가는 위진천의 모습 배경으로 흑신의 생각

흑신; (칙칙한 어둠 같은 게 느껴지는 놈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좋아질 수가 없는데...)

흑신; (날을 잡아서 궁주에게 저 놈을 조심하라는 충고를 넣어봐야겠다.) 다시 곰방대를 빨고

위진천; (뒷통수가 간지럽구만.) 곁눈질로 뒤를 살피며 웃고

위진천; (늙은 생각이 맵다고 흑백신귀는 내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고 있는 것같다.)

위진천;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저 늙은이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고

 

#57>

위진천이 열고 들어간 문 안쪽은 화려한 거실. 탁자에 앉은 칠지무제 진무량이 무언가 종이에 쓰고 있다. 진무량 외에는 아무도 없고

위진천; [부르셨습니까 사부님?] 문간에 서서 포권하고

칠지무제; [어서 와라 둘째야.] 글을 쓰면서 말하고. 고개는 들지 않고. 다가가는 위진천

칠지무제; [사부는 이 길로 무제궁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글 쓰면서

위진천; [왜 갑자기 귀환을...] 멈춰서며 놀라고

칠지무제; [딱히 다른 이유는 없고...] 붓을 내려놓고

칠지무제; [천마성의 열조들이 사부를 향해 지독한 원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같아서 머물기가 불편하구나.] 웃는 칠지무제. 하지만

슈우! 화악! 바람도 없는데 칠지무제의 옷과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위진천; (괜... 괜히 해보는 말이 아니다!) 오싹! 소름이 돋는 위진천

위진천; (정말로 지독한 원기가 사부를 에워싸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의자에 앉은 칠지무제. 그 주변으로 투명한 사람들의 형상이 아우성을 치며 휘도는 모습이 모호하게 보인다.

위진천; (여긴 천마의 후손인 이씨 가문이 터를 잡고 산지 백 년 가까이 되는 곳이다.)

<이씨 가문 인간들의 혼백이 강력하게 서려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장소인 것이다.> 식은 땀 흘리며 칠지무제를 보고. 칠지무제는 자신이 쓴 종이들을 확인하고 있고. 그런 칠지무제 주변을 악령같은 것들이 마구 휘돌고 있고

위진천; (사부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을 것이다.) 생각할 때. 칠지무제는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고 있고

칠지무제; [사부는 흑백신귀와 함께 무제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봉투의 뚜껑을 닫고

칠지무제; [이곳의 뒤처리는 둘째 네가 맡도록 해라.] 봉투를 내밀고

위진천; [예...] 두 손으로 봉투를 받고

칠지무제; [그 안에는 천마성의 처리에 관한 지시 상황이 적혀있으니 그대로 시행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위진천; [사부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헌데 그때

타노; [죄송합니다 궁주님!] 휘익! 급히 입구 쪽에 나타나는 타고

위진천; (문제가 생겼구나.) 돌아보고

칠지무제; [말해라.] 돌아보며 타노에게 끄덕

타노; [둘째 공자님과도 관련이 있는 사안인데...] 위진천을 보고

타노; [오전에 둘째 공자께서 뇌옥에서 구해낸 냉서시 위상영이 사라졌습니다.]

[!] 눈 부릅뜨는 위진천

 

#58>

천마성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봉우리

슈우! 유령같은 것이 산봉우리에 서리더니

쿵! 나타나는 유령귀왕.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헌데 두 팔로 천으로 감싼 여자를 안고 있다. 바로 위상영이다. 위상영은 눈을 감고 있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

유령귀왕; [벌집을 쑤신 듯이 소란스러워졌군.] 웃으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멀리 산봉우리 아래쪽, 천마성의 어느 부분이 밝은 불빛으로 물들어 있다. 횃불과 등불이 여럿 움직이고 있는 모습. 바로 위상영의 거처가 있는 곳이다.

 

크로즈 업. 횃불과 등불을 든 무제궁 무사들이 위상영이 치료 받던 건물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지휘자는 타노와 위진천이고. 기절했던 여자들이 깨어나 무제궁 무사들의 취조를 받고 있다. 우는 여자들

 

유령귀왕; [냉서시 위상영...] [지난밤에 사로잡힌 천마성의 인간들 중 최고위직에 있는 이 계집이 사라졌으니 발칵 뒤집힐 만도 하지.] 위상영을 내려다보며 웃고

[끄윽! 끅!] 바득! 바득! 기절한 상태에서도 이를 가는 위상영

유령귀왕; [대단한 사념(思念)이고 살기다.] 오싹! 소름이 돋아 눈을 치뜨며 위상영을 내려다보고

유령귀왕; [이 정도로 독한 마음을 지닌 계집이라면 유령서시(幽靈西施)님의 혼백을 담을 그릇으로 충분하다.] 흥분

위상영; [소성주... 소성주는 안된다.] 중얼거리고. 눈물도 흘리고

유령귀왕; (끔찍한 만행을 당하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 왔으면서도 마태자 이청풍에 대한 일편단심은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인가?)

유령귀왕; (그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지금까지 만나 본 계집들 중에서 이 년만큼 유령서시님을 부활시킬 그릇으로 적합한 계집은 본 적이 없다.)

유령귀왕; (만일 이 계집의 몸이 유령서시님의 혼백과 원기를 무사히 담아내기만 하면...) (나 교백의 대에서 유령산장이 천하를 지배할 수도 있다.)

유령귀왕; [네게 힘을 주겠다. 그러니 너도 나의 염원을 이루어다오!] 위상영의 이마에 키스하고

유령귀왕; (혹시 추적이 있을지 모르니 서둘러 북망산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휘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유령귀왕; (그러고 보니 이 계집의 별호에도 서시(西施)가 들어가는구나.) 날아오르며 자기 품에 안겨 있는 위상영을 보고

<오제(五帝) 중 유령천자(幽靈天子)님의 애첩이셨던 유령서시님을 부활시킬 그릇으로 냉서시라는 별호를 지닌 이 계집이 선택된 것이 어쩐지 운명처럼 느껴진다.>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르는 유령천자의 모습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59>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11화  (0) 2024.05.06
[마고천장] 10화  (0) 2024.05.05
[마고천장] 8화  (1) 2024.05.03
[마고천장] 7화  (2) 2024.05.02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37>

천마성. 연공관. 연공관 입구를 지키던 네 명의 무사들은 모두 죽어있고.

챙! 채챙! 뇌옥 앞에서 벌어지는 싸움. 천마성 무사들 네 명이 수십 명의 무제궁 무사들과 싸우고 있다. 네 명의 천마성 무사들은 뇌옥 입구를 등지고 있고. 뇌옥 입구에는 횃불을 손에 든 위상영이 서서 관전하고 있다.

[덤벼라 개새끼들아!] [같이 저 세상에 가자.] 챙! 카캉! 피투성이가 되었으면서도 악을 쓰며 무기를 휘두르는 천마성 무사들. 무제궁의 무사들이 숫자가 많지만 장소가 좁아서 싸울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천마성 무사들을 금방 해치우지 못한다.

[이 독종들...] [살 생각이 아예 없구나.] [조심해라! 천마성은 이미 함락시켰는데 다치거나 하면 우리만 손해다.] 쩔쩔 매며 천마성 무사들과 싸우는 무제궁 무사들

위상영은 그들의 싸움을 보지 않고 연공관 쪽을 보고 있다.

연공관 입구에 쓰러져 있는 천마성 무사들 네 명

위상영;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연공관 입구를 지키던 자들이 몰살당해있었다.)

위상영; (그렇다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들이 연공관으로 쳐들어갔다는 뜻인데...)

위상영; (아무쪼록 유모와 두 분 의원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38>

연공관 내부. 노파와 두 명의 늙은 의원이 침대 주변에 서서 닫혀있는 철문 쪽을 보고 있다. 노파는 비수를 뽑아 들고 있고. 늙은 의사들도 각기 한 자루씩의 비수를 들고 있다. 침대에는 얼굴이 청풍 얼굴로 변한 벽세황이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다. 상의를 벗은 상태다. 이하 청풍(벽세황)으로 표기

콰쾅! 쾅! 철문 밖에서 들리는 폭음

드드드! 진동이 일어나고

의원1; [싸움이 길어지고 있네.] 동료에게 말하고

의원2; [본성의 호법들 중 최강자들인 건곤이로(乾坤二老)가 고전하는 걸 보면 쳐들어온 자들은 절대 평범한 물건들은 아닐 게야.] 그때

콰쾅! 쾅! 폭발이 들리더니

드드드! 진동만 일어나고 더 이상 폭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결말이 났군.] [하지만 바깥의 상황을 알려주는 전음이 없는 걸 보면 건곤이로가 패했겠지.] 늙은 의사들 탄식하고. 직후

지지지! 츠츠츠! 철문이 안쪽으로 부풀어 오른다.

노파;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철문이 깨지려고 해요.] 그걸 보며 탄식하고. 그러자

의원1; [목부인! 미리 작별 인사를 드리겠소.] 노파에게 고개 숙이고. 돌아보는 노파

의원2; [내세에서도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외다.] 포권하고

노파; [두 분 보다 제가 먼저 삼도천을 건너야겠어요.] 두 손으로 쥔 비수를 자신의 심장 부위에 겨누며 웃고

노파; [마무리를 부탁드릴게요.] 슥! 비수 끝을 자신의 풍만한 젖가슴에 들이밀며 웃고.

[실수 없이 처리할 테니 안심하시구려.]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외다.] 의원들은 말하며 청풍(벽세황)에게 다가가 비수로 청풍(벽세황)의 심장과 아랫배를 겨누고. 그 직후

투쾅! 철문이 안쪽으로 확 터지듯 깨지고.

깨진 철문 밖에는 흑백신귀가 각기 손을 하나씩 내밀고 있다. 그들 뒤쪽에는 철문을 밖에서 지키던 두 노인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고.

텅! 터텅! 부서진 철문의 잔해들이 연공관 안쪽의 바닥에 나뒹굴고. 직후

[!] [!] 철문 안쪽을 보던 흑백신귀 놀라 눈 부릅

노파; [먼저 갈게요.] 푹! 그대로 비수를 가슴에 깊이 꽂고. 동시에

[극락왕생하시구려!] [용서하시오 소성주!] 푹! 푹! 두 의원도 그대로 청풍(벽세황)의 목과 아랫배에 비수를 깊이 박는다. 흑백신귀가 듣도록 과장되게 외치면서

퍼덕! 아랫배와 심장에 비수가 박히자 세차게 퍼득이는 청풍(벽세황)

[무슨 짓이냐?] [멈춰라!] 슈학! 유령처럼 변해서 철문 안쪽으로 날아드는 흑백신귀. 하지만

퍼억! 비수를 심장에 박은 노파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팟! 푸학! 청풍(벽세황)의 가슴과 아랫배에 박았던 비수를 거칠게 뽑는 늙은 의원들

<한 번 더!> 슉! 푹! 뽑았던 비수를 다시 청풍(벽세황)의 가슴과 아랫배에 내리꽂는 늙은 의원들. 비수가 박히면서 다시 퍼덕이는 청풍(벽세황). 그 직후

[멈추라고 했다.] [이 독한 것들이...] 펑! 펑!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며 의원들의 가슴에 장풍을 날리는 흑백신귀.

[컥!] [헉!] 콰당탕! 퍼억! 가슴과 어깨에 장풍을 맞고 나뒹구는 의원들. 비수를 놓치면서. 그들의 비수는 이미 두 번째로 청풍(벽세황)의 가슴과 배에 깊이 박혀있고

[독한 것들!] [마태자가 생포되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살수를 썼구나.] 휘익! 스스! 청풍(벽세황)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멈춰서고. 이어

흑신; [제발...] 급히 청풍(벽세황)의 목을 만져보는 흑신. 청풍(벽세황)은 입과 코로 피를 게워내며 벌벌 떨고 있다.

백귀; [어떤가? 살릴 수 있겠는가?]

흑신; [가망 없네.] 고개 젓고. 손을 청풍(벽세황)의 목에서 떼면서

흑신; [정확히 심장과 단전에... 그것도 거푸 두 번을 찔려 살기는 틀렸어.] 이마 찡그리며 한숨을 쉬고

백귀; [잔인한 것들!] 이를 갈며 의원들을 돌아보고

백귀; [자신들의 주인에게 잘도 살수를...] + [!] 놀라 눈 부릅. 흑귀도 무언가를 보며 눈 부릅뜨고 있고

쿵! 바닥에 나뒹군 늙은 의원들이 입과 코로 거품을 물면서 벌벌 떨고 있다. 눈은 까뒤집은 채로

<입 속에 숨기고 있던 독을 터트려 자살했다.> 거품 물고 죽어가는 늙은 의원들 보며 얼굴 굳어지는 흑백신귀

 

#39>

뇌옥 앞의 상황. 무제궁의 무사들이 뇌옥과 연공관쪽으로 속속 몰려들고 있다. 연공관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자들도 있고. 뇌옥 앞에서는 여전히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천마성 무사들은 이제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위상영은 횃불을 든 채 서서 연공관쪽을 보고 있고

[지겹다!] [그만 죽어라!] 푹! 퍽! 천마성 무사들 중 한명이 무제궁 무사들의 칼질에 팔이 잘리고 가슴이 갈라진다.

[진충!] 퍼억! 나뒹구는 동료를 돌아보며 비명 지르는 다른 천마성 무사들 세 명. 연공관 쪽을 보던 위상영도 돌아보고

[어딜 한 눈을 파느냐?] [네놈도 동료와 함께 지옥으로 가라.] 쩍! 푹! 다시 한명의 천마성 무사가 무제궁 무사들의 칼질에 몸이 갈라지고. 그러자

[내총관님!]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캉! 카캉! 동료가 또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며 위상영에게 외치면서 칼질을 하고

[늦기 전에 불을 질러 버리십시오.] [뇌옥 안의 버러지들과 함께라면 웃으면서 죽을 수 있습니다.] 외치면서 웃는 천마성 무사들. 무제궁 무사들의 칼질에 맞으면서도. 그러자

위상영; [수고했어요 여러분!] 횃불을 쳐들며 비장하게 웃고

위상영; [함께 삼도천을 건너도록 해요.] 화악! 횃불을 바닥에 대고 휘두른다. 그러자

펑! 화악! 뇌옥 입구에 뿌려진 기름에 불길이 옮겨붙는다. 아주 빠르고 강하게

[헉!] [불을 질렀다!] [이제 보니 뇌옥 주변에 기름을 뿌려놓았다.] [위험하다 물러서라!] 맹렬하게 치솟는 불길을 보며 무제궁 무사들 기겁하며 물러서고. 반면

[먼저 간다 개새끼들아!] [귀신이 되어서라도 오늘의 복수는 할 테니 기대해라.] 푹! 쩍! 자신들의 무기로 배를 찌르고 목을 베면서 웃는 살아남은 천마성 무사 두 명. 반면 위상영은 치솟는 불길 속에 마녀처럼 서있고.

퍼억! 화르르! 쓰러지면서 불길에 휩싸이는 두 명의 천마성 무사들

[저... 저 독한 놈들...] [괜히 천마성의 정예가 아니었다.] 그걸 보며 공포에 질리는 무제궁 무사들. 그때

위상영; [진무량에게 나 위상영의 말을 전해라.] 화르르!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마녀같이 웃으며 외치고.

무제궁 무사들 흠칫! 하며 보고

위상영; [귀신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보일 것이라고!] 호호호! 불길에 휩싸이면서 마녀처럼 웃고

[아... 안돼!] [뇌옥 안에는 천마성의 만행에 맞서다가 잡혀온 백도의 의인들이 다수 갇혀있을 텐데...] [구하기는 늦었다! 불길이 뇌옥 안으로 번졌어.] 뇌옥 입구를 뒤덮는 거센 불길을 보며 발 동동 구르는 무제궁 무사들. 그 불길 속에 위상영은 마녀처럼 웃으며 서있고

 

#40>

화악! 펑! 뇌옥 내부. 기름이 뿌려진 복도를 따라 불길이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으악!] [안돼!] [악독한 것들이 기어코 불을 질렀다.] 감방에 갇힌 죄수들 비명 지르며 벽쪽으로 물러서고

죄수들의 아우성을 배경으로 독방에 혼자 누워 있는 벽세황으로 얼굴이 변한 청풍. 물론 기절한 상태고

 

#41>

다시 뇌옥 입구. 화르르르! 완전히 불바다가 되고

위상영;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다.) 불길에 휩싸인 채 눈 부릅뜨고

위상영; (하지만 더 지체하면 소성주님까지 타죽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누구든 손을 써줘야만 하는데...) 불길에 휩싸인 채 좀 초조하고. 그때

펑! 갑자기 위상영 주변의 불길이 물 폭탄을 맞은 듯이 확 꺼진다. 보이지 않는 힘이 허공에서 아래로 확 뿜어진 모습. 그 가운데 서서 눈 치뜨는 위상영

[헉! 불길이 잡혔다!] [이게 무슨...] 무제궁 무사들 놀랄 때

화악! 허공에서 날아 내리는 검은 옷의 흑신. 손으로 아래를 겨눠서 장풍을 쏘아낸 모습이고

위상영; (나타났다!) 올려다보며 눈 치뜨고

[흑신(黑神)장로께서 오셨다.] 환호하는 무제궁 무사들

위상영; (흑신!) (무제궁의 최고 고수들인 흑백신귀중 한명...) 불길의 잔해로 몸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올려다 볼 때

흑신; [간악한 계집!] 휘릭! 분노하며 아래로 내려오고

흑신; [두 번 다시 못된 짓을 못하게 해주마!] 투쾅! 손가락을 퉁기고. 그러자 흑신의 손가락 앞에서 검은 창 같은 것이 튀어나가고

퍼억! 위상영의 아랫배에 시커먼 창같은 것이 박힌다. 눈 치뜨며 휘청하는 위상영

위상영; (단전이 파괴되었다!) 뒤로 넘어가며 기절하려 하고

털썩! 아랫도리에 검은 창같은 것이 박힌 채 뒤로 나뒹구는 위상영. 휘익! 그 앞으로 날아 내리는 흑신

[장로님!] [불길이 뇌옥 안쪽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뇌옥에는 정파백도의 의인들이 다수 갇혀있습니다.] 무제궁 무사들 다급히 외치고

흑신; [알고 있다. 소란 떨지 마라.] 외치며 손바닥을 여전히 불길이 거세게 번지고 있는 뇌옥 안쪽을 향해 겨누고. 이어

지잉! 흑신의 검은 손바닥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화악! 쿠오오! 뇌옥 안쪽으로부터 불길이 빨려나와 흑신의 손바닥으로 스며 들어간다

[오오!] [흑신 장로님께서 불길을 빨아들이고 계신다.] [신기다.] 그걸 보고 환호하는 무제궁 무사들

화악! 그 사이에 마지막 불길이 흑신의 손바닥 안으로 확 빨려 들어가고

흑신; [되었다.] 손바닥을 흔들어 불길을 털어내고

흑신; [불길은 잡혔으니 안으로 들어가 갇혀있는 형제들을 구출하라.] 외치고

[존명!] [서두르자!] 외치면서 뇌옥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무제궁 무사들. 흑신은 좀 옆으로 물러나 보고 있고. 그 옆에 쓰러진 위상영은 기절 직전이고

위상영; (진인사 대천명...) 기절하려 하며 생각하고. 시선은 무제궁 무사들이 달려들어가는 뇌옥 입구를 보며

위상영;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놨다.) 눈을 감고

<이제 천지신명과... 천마성의 열조들께서 소성주님을 보우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기절하는 위상영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42>

[와아!] [반갑소 무제궁의 대협들!] [살아서 대협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소.] 뇌옥 내부.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무제궁 무사들 보며 환호하는 죄수들. 창살에 매달린 채

[고생이 많으셨소!] [꺼내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여러분들은 정파백도의 영웅들이시오.] 콰창! 빠캉! 철컹! 철창의 열쇠들을 박살내고 철창을 열면서 외치는 무제궁 무사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무제궁 만세!] 감방에서 나와 무제궁 무사들과 얼싸안고 감격하는 죄수들. 무제궁 무사들도 죄수들을 끌어안고 감격하고

[무제궁 만세!] [천마성의 마귀들아 각오해라. 우리가 당한 만큼 갚아줄 테니...] 환호성을 배경으로 독방에 혼자 쓰러져 있는 벽세황(청풍)의 모습

 

#43>

<-태산(泰山)> 웅장한 산. 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무제궁(武帝宮)> 그 산의 중턱에 자리한 웅장한 성채. 깊은 밤이라 불은 대부분 꺼져 있고

무제궁의 외진 곳.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태산의 봉우리들과 밤하늘이 잘 보인다. 단촐한 건물이 한 채 있고 담장으로 에워싸여 있는데.

정원 끝에 휠체어가 한 대 서있다. 휠체어에 앉아서 밤하늘을 보고 있는 진상파. 좀 떨어진 곳에는 환설이 공손히 서있다.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 헌데

출렁! 밤하늘의 별들이 갑자기 물결치듯 한 번 일렁이고

찌릿! 감전 당하는 듯한 표정이 되는 진상파

[!] 진상파를 지켜보던 환설 움찔! 하고

꽉! 휄체어의 손잡이를 움켜잡는 진상파의 양손

환설; (소궁주님이 격동하고 계신다.) 긴장

환설;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분이 왜...) 슥! 밤하늘을 보고

환설; (천기(天機)에 변화라도 있었던 것일까?) 밤하늘 살피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밤하늘. 변화가 없다

환설; (내 눈에는 그냥 밤하늘일 뿐인데...) 갸웃. 하지만

진상파; (그가... 사자천마가 결국 종명(終命)했구나.) 얼굴에 표정 변화는 없지만 휠 체어 손잡이를 쥔 손에는 꽉 힘이 들어간다. 사자천마를 떠올리고

진상파; (천신(天神)이든 부처든 인과(因果)의 그물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하물며 새벽에 잠깐 맺혔다가 해가 뜨면 지고 마는 이슬 같은 인생이야 말해 무엇하랴?) 한숨

진상파; (사자천마 정도 되는 위인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죽게 만들었으니 우리 무제궁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우울. 그때

반짝! 하늘에서 강하게 빛나는 별 하나.

진상파; (천랑성(天狼星)이 핏빛을 뿜어낸다.)

진상파; (전쟁과 복수를 주관하는 천랑성이 피로 물들었으니 오늘 밤 벌어진 참극에 관여한 모든 인간들은 피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진상파; (만일 내가 천마성의 공격을 주도했다면 기필코 마태자 이청풍까지 말살해서 후환을 없이 했겠지만...) 청풍을 떠올리고

진상파; (천랑성이 저리 빛나고 피빛으로 물든다는 것은 마태자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휠체어의 손잡이를 꽉 잡고

진상파; (세상 그 누구보다 살기가 강하던 마태자에게 철천지한을 품게 했으니 후과가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숨

진상파; (무제궁이 피로 잠기고 세상이 공포로 전율하지 않게 하려면 아마도 누군가가 제물이 되어 희생해야만 할 것이다.)

진상파; (그 누군가가 나 진상파일 가능성이 높고...)

<그저 하늘의 호생지덕이 실제로 존재하길 바랄 뿐이다.> 진상파가 하늘 보는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44>

아침. 천마성. 이제 불길도 잡혔고. 하지만 여전히 불탄 건물들에서는 연기가 치솟고 있다.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서 천마성 입구쪽으로 끌려가는 천마성의 남녀들. 대부분의 남자들은 죽거나 달아나서 끌려가는 건 여자와 아직 어린 아이들, 또는 일을 시킬 수 없는 아주 늙은 노인들이다. 무제궁 무사들이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있고.

건물을 뒤져서 값나가는 물건들과 중요한 서류등을 끌어내 마당에 쌓은 자들도 있고

양 진영이 시체들을 따로 모으는 무사들도 있다. 무제궁 무사들 시체는 관에 누이고. 천마성 무사들의 시체는 그냥 산더미처럼 쌓고 있다.

천마성 소속의 생존자들중에는 청장년은 없다. 싸우다가 죽었거나 달아났고. 그 때문에 시체를 처리하는 일애 동원된 것은 십대의 소년들과 아직은 운신할 수 있는 노인들이다. 소년과 노인들노인들은 무제궁 무사들의 감시하에 시체를 옮기고 있다. 특히 소년들은 울면서 천마성 무사들의 시체를 쌓는 중이다

 

#45>

천마성 정문. 십여 명의 무제궁 무사들이 경비를 서는데

안쪽에서 그곳으로 끌려오는 포승줄에 묶인 남녀들. 일정 간격으로 따라오는 무제궁의 무사들이 살벌한 표정으로 감시하며 천마성의 생존자들을 끌고 정문을 나온다. 천마성 입구에는 몇 명의 무제궁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고. 헌데

[아... 안돼!] [흐윽!] 천마성 정문으로 끌려나오다가 자지러지는 아녀자와 노인들

쿵! 천마성 정문에 밖으로 내걸린 시체 한구. 발가벗겨진 시체인데 발목이 밧줄에 묶여 거꾸로 매달려 있다. 두 팔을 아래쪽으로 늘어트린 채. 바로 청풍의 모습을 한 벽세황이다. 청풍(벽세황)으로 표기. 발가벗겨진 청풍(벽세황)의 시체에는 무수한 상처가 나있다. 무제궁 무사들이 화풀이로 난도질한 것. 그 때문에 배가 갈라져 창자로 흘러나와 있고

[소... 소성주님!] [소성주님이 저런 꼴이 되시다니...] 끌려가며 청풍(벽세황)의 시체를 보며 전율하고 통곡하는 천마성 사람들

[잘 봐둬라 천마성의 버러지들아!] [너희들이 신처럼 떠받들던 마태자 이청풍의 말로다!] 정문을 경비하는 무제궁 무사들이 신나게 웃고

[마태자란 마귀가 뒈진 것을 너희 년놈들의 눈으로 확인했을 테니 헛된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다.] [천마성은 어젯밤을 끝으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웃는 무제궁 무사들. 끌려가며 울고 통곡하고 합장하며 기도하는 천마성 사람들. 그러다가

흠칫! 하는 무제궁 무사들

휘익! 천마성 정문쪽으로 바람같이 날아오는 청년. 바로 위진천이다.

[저 분은...] [궁주님의 둘째 제자이신 운중신룡(雲中神龍) 위진천(威振天) 공자님이시다.] 무제궁 무사들 긴장하며 보고. 그때

위진천; [수고가 많다.] 휘익! 천마성 정문으로 날아 내리는 위진천

[이(二)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이공자님!] 포권하는 무제궁 무사들

위진천; [사부님께서 맡기신 다른 일을 처리하다보니 역사적인 천마성 공략에 참여하지 못했군.] [나로서는 실로 유감인 일이었다.] 정문으로 다가오며 정문에 내걸린 청풍(벽세황)의 시체를 보고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천마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공자님께서 가세하셨다면 그나마의 희생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부하는 무제궁 무사들

위진천; [그러게나 말이다.] 웃으며 청풍(벽세황)의 시체를 올려다보고

위진천; [정문에 내걸린 저 시체가 혹시...]

무사1; [마태자 이청풍의 시체입니다.] 함께 올려다보며 신나하고

무사2; [궁주님께서는 생포하라고 하셨지만 사자천마의 심복들이 저자를 죽였다고 합니다.] 올려다보며

위진천; [자기들의 소성주가 본궁의 포로가 되어 수모를 당하는 걸 원치 않았겠군.] 고개 끄덕이고

무사1; [좀 아쉬운 결말이지요.] [저놈을 생포했다면 두고 두고 희롱하고 모멸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위진천; [그런 면에서는 복이 많은 놈...] + [!] 말하다가 눈을 번뜩

무사1; [왜 그러십니까?] 의아하며 함께 청풍(벽세황)의 시체를 보는데

반짝! 난도질당해 창자가 흘러나온 청풍(벽세황)의 복부에서 무언가 반짝이고

위진천; (이가놈의 뱃속에 무언가 있다.) 손을 쳐들고.

징! 진동하는 위진천의 손바닥. 그러자

움찔! 반짝이는 물건이 들어있는 부분의 청풍(벽세황)의 복부가 진동하다가

팟! 반짝이는 물체가 위진천의 손바닥으로 날아든다. 반지다. 깜짝 놀라 보는 무사들

팟! 그걸 낚아채는 위진천의 손아귀

[이가놈의 뱃속에 무언가 들어있었군요.] [속하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물건입니다.] 무사들 놀라며 위진천의 손바닥을 보고

펼치는 위진천의 손바닥. 피에 물든 반지가 하나 들어 있다. 폭이 2센티쯤이고 상당히 두꺼운 반지인데 반지 중앙으로 톱니바퀴 형상의 금이 빙 둘러 나있다. 그 금을 중심으로 한쪽은 검은색, 한쪽은 붉은색이다. 이 반지의 이름은 성마지환. 천마와 무성의 무공을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반지 아닙니까?] [저렇게 큰 반지가 어쩌다가 이가놈의 뱃속에 들어있었던 건가?] 커다란 반지 성마지환을 보며 놀라 어리둥절하는 무사들

위진천; (이 반지...) 눈 번뜩이며 성마지환을 보고

위진천; (검고 붉은 서로 다른 재질의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비록 값은 나가게 보이지 않지만 만듦새가 아주 정교하다.) 서로 다른 재질로 이루어진 반지를 둘로 가르는 톱니바퀴 형상의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위진천; (이가놈은 이 반지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삼켰을 것이다.)

위진천; (헌데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반지의 모서리들이 약간씩 부식되어 있다. 그렇다는 건 여러 번 강한 산(酸)에 노출되었다는 건데...)

위진천; (아마도 이가놈은 이걸 삼켰다가 대변으로 배출되면 다시 삼키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눈 번뜩이고

위진천;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다면 이 반지, 엄청난 값어치가 있는 게 분명하다.) 눈 번뜩이고

위진천; (삼황중 최강자였던 천마와 관련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위진천; (잘 하면 이 반지 덕분에 한 몫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히죽

 

#46>

마당에 천마성 무사들의 시체를 쌓고 있는 현장. 무제궁 무사들의 감시하에 노인들과 소년들이 시체를 끌고 와 마당 가운데에 쌓는다. 기름통을 준비하는 무제궁 무사들도 있고. 헌데

시체를 옮기는 노인들 사이에 끼어있는 유령귀왕 교백. 얼굴에 검댕을 칠해서 더 늙고 볼품없어 보인다. 옷도 추레하고

유령귀왕; (예상했던 대로 천마성과 무제궁의 결전은 무제궁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시체를 옮기면서 주변의 무제궁 무사들을 곁눈질하고

유령귀왕; (그보다 지난 밤 내가 천마성에 머물고 있었다는 걸 무제궁의 인간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 조심해야한다.)

유령귀왕; (물론 사라지려면 아무런 문제없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지.) 히죽 웃고

유령귀왕; (천마성이 궤멸 당했으니 이제 무림은 무제궁의 세상...)

유령귀왕; (과연 무제궁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알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이곳에 잠복하면서 진무량과 무제궁 고위층의 생각을 엿봐야한다.) 생각하다가

[!] 무언가 발견하고 흠칫! 하는 유령귀왕

휘익! 건물들 사이를 날아가는 위진천. 굳은 얼굴이고

유령귀왕; (저 놈은...) 곁눈질

<운중신룡 위진천...> 건물들 사이를 날아가는 위진천을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생각. 무제궁 무사들이 급히 인사하지만 본 척도 않고 날아가는 위진천

유령귀왕; (따지고 보면 천마성 궤멸의 일등 공신은 바로 저 놈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들 사이를 날아가는 위진천을 보고.

유령귀왕; (저 놈이 소소를 유혹하는 바람에 소소가 다른 계집으로 하여금 마태자의 수청을 들게 했고...)

유령귀왕; (그 계집이 소양갈맥고로 마태자를 중독 시키는 바람에 작금의 상황이 벌어졌으니...) 생각하다가

유령귀왕; (설마!) 눈 치뜨고

유령귀왕; (마태자를 소양갈맥고로 중독시킨 계집도 위진천, 저 놈의 끄나플이 아닐까?) 침 꿀걱 삼키고

유령귀왕;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다.) 끄덕일 때

[거기 늙은이? 잔꾀 부릴래?] 무제궁 무사중 한 놈이 멈춰 있는 유령귀왕에게 눈을 부라리고. 그자의 발치에 시체들이 여러 구 있고

[빨리 와서 이 송장들 옮겨라!] 눈 부라리는 무제궁 무사

유령귀왕; [가... 갑니다요 나으리.] 굽신거리며 그 무사 쪽으로 가고

유령귀왕; (어쩐지 위진천, 저 놈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것같은 예감이 든다.) 시체들이 널려있는 곳으로 가며 눈 번득이고

유령귀왕; (한번 주의 깊게 저 놈의 뒤를 캐볼 필요가 있겠다.) 시체 한구의 팔을 잡아끌면서 음산한 표정으로 곁눈질. 위진천은 이제 건물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다.

 

#47>

위진천; (젠장... 젠장!) 휘익! 건물들 사이를 질풍같이 날아가고

<천마성 내총관 위상영 말씀이십니까?> <그 계집은 지금쯤 걸레가 되어가고 있는 중일 겁니다.> 히죽거리며 웃는 무제궁 무사들을 떠올리는 위진천

이하 회상

 

무사1; [냉서시 위상영은 뇌옥에 갇혀있던 정파백도의 죄수들을 불 태워 죽이려고 했습니다.] 천마성 정문에서 위진천에게 말하는 무사들

무사2; [흑신장로께서 늦지 않게 개입하신 덕분에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는데...] [자신들이 타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죄수들이 위가 계집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신이 나서 말하고

무사1; [흑신장로께서 말려보려 하셨지만 복수에 눈이 뒤집힌 죄수들을 말릴 수 없었고...]

무사1; [결국 위가 계집은 지난밤부터 죄수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히죽거리며 말하고

회상 끝

 

위진천; (고모님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휘익! 이를 갈며 날아가고. 이제 멀리 앞쪽에 뇌옥이 보이고. 뇌옥 주변에는 무제궁 무사들이 뇌옥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뇌옥에서 바지를 묶으며 나오는 자들도 있고. 죄수들이다.

위진천; (헌데 짐승같은 놈들에게 겁탈을 당하기까지 할 줄이야.) 쐐액! 그 뇌옥을 향해 날아가고

 

#48>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10화  (0) 2024.05.05
[마고천장] 9화  (1) 2024.05.04
[마고천장] 7화  (2) 2024.05.02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33>

뇌옥. 네 명의 무사들이 커다란 통에 든 기름을 뇌옥 안쪽에 뿌리며 뒷걸음질 쳐서 나오고 있다. 뇌옥 밖에는 이미 여러 개의 빈 나무통이 뒹굴고 있고. .

뇌옥에 기름을 뿌리면서 뒷걸음질로 나오던 무사들 흠칫하며 옆을 돌아보고.

연공관에서 달려오는 위상영. 두 팔로 벽세황(청풍)을 안고 있다. 벽세황(청풍)은 상체를 벗은 상태고

[내총관께서 돌아오시는군.] [철수무정 벽세황을 다시 데려오고 있는 걸.] 허리 펴며 어리둥절하는 무사들

위상영; [기름은 다 뿌렸느냐?] 휘익! 뇌옥 앞에 멈추면서 묻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충분한 양은 구하지 못했습니다만...] [입구 쪽에 중점적으로 뿌렸으니 직접 태워죽이지는 못한다 해도 연기로 질식시켜 죽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무사들 빈 기름통을 옆으로 던지며 말하고

위상영; [이 정도면 되었다.] 무사들을 지나 뇌옥으로 들어가고

위상영; [불을 붙일 횃불도 한 자루 준비해둬라.] 들어가며 지시하고. + [예 내총관님.] [준비하겠습니다.] 뒤에서 대답하고

위상영; (성주님이 진무량을 때려죽여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길 바라지만...) 입술 깨물며 뇌옥 안쪽으로 들어선다. 바닥이 기름으로 질척거리고 있다.

위상영; (온전한 몸 상태라 해도 진무량을 이기려면 벅차실 텐데... 성주님은 소성주님을 치료하시느라 완전히 탈진한 상태다.) 뇌옥 안으로 들어가고.

위상영;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해야만 한다.) 이를 악물고

 

#34>

뇌옥 내부. 중앙의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철창으로 쳐진 감방이 각기 십여 개씩 있는 구조다. 각 감방 안에는 초췌하고 봉두난발인 죄인들이 여러 명씩 갇혀서 입구쪽을 보고 있다. 눈들이 흥분과 두려움으로 번들거린다. 모두 깨어있는 상태다. 기름은 뇌옥 입구와 복도에 질펀하게 흐르지만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복도 중간쯤에서 흐르는 게 멈췄다.

철벅! 철벅! 기름으로 질척거리는 복도로 들어서는 위상영. 물론 두 팔로는 벽세황(청풍)을 안고 있고

<천마성 내(內)총관 냉서시(冷西施) 위상영!> <저 마녀가 철수무정 벽세황을 다시 데리고 돌아왔다.> <대체 무슨 수작인 건가?> 감방 안의 죄수들이 핏발 선 눈으로 그런 위상영을 보고 있고

감방 중 한 칸의 철창으로 만들어진 문이 열려있다. 비어있는 그 감방이 벽세황이 갇혀있던 감방이다. 벽세황(청풍)을 안고 그곳으로 오는 위상영

위상영; [들어가 있어라!] 휙! 벽세황(청풍)을 감방 안으로 던지고

털썩! 감방 바닥에 나뒹구는 벽세황(청풍)

위상영; [악질 중의 악질인 네놈을 토막 쳐서 죽이려 했다만...] 철컹! 철창으로 이루어진 문을 다시 닫으며

위상영; [간단히 죽이는 건 너무 편한 것같아서 다른 놈들과 함께 태워 죽이기로 마음을 바꿨다.] 철컹! 문을 완전히 닫고. 그러자

[태... 태워 죽인다고?] [그럼... 천마성의 마졸들이 기름을 뇌옥 안에 뿌린 이유가...] 감방 안의 죄수들 기겁하고

위상영; [이 상황이 되어서 뭘 더 숨기겠느냐?] 죄수들을 돌아보며 마녀처럼 웃고

위상영; [너희들이 하늘같이 여기는 진무량이 기습을 해 와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문쪽을 보며 말하고. 죄수들도 일제히 돌아보고

와아! 와! 펑! 퍼펑! 크악 컥! 비명과 폭음이 열린 문을 통해 들리고

[아... 아까부터 밖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칠지무제께서 우릴 구하러 오셨구나.] 감격하고 흥분하는 죄수들

위상영; [예상도 못했던 기습이라 현재 우리 천마성 쪽이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네놈들에게는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기도 하다.] 냉소하고

[설마...] [우릴 태워 죽인다고 한 게...] 깨닫는 죄수들

위상영; [본성이 함락될 경우 골칫거리였던 네놈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겠느냐?] 사악하게 웃고

위상영; [마지막 방어선이 돌파당하는 순간 이곳은 불구덩이가 될 테니 각오를 해두는 게 좋은 것이다.] 살벌하게 웃고

[!] [!] 공포에 질리는 죄수들. 그때

콰왕! 엄청난 폭음이 뇌옥 밖에서 들리고. 눈 치뜨는 위상영. 죄수들도 기겁하고

드드드! 뇌옥 전체도 지진이 난 듯이 뒤흔들린다.

위상영; (가... 가공할 폭발이 일어났다. 그렇다는 건...) 입구를 돌아보고

위상영; (성주님과 진무량의 격돌이 결판이 났겠구나.) 굳어지는 얼굴

 

#35>

화악! 핵폭발이 일어나듯이 사발같은 폭발이 일어난다. 불타는 건물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그 폭발에서 떨어져 있던 무사들이 폭발에 휘말려 뒤로 날아가거나 밀려난다

콰드드! 콰쾅! [허억!] [조... 조심해라!] [크악!] [안돼!] 폭발에 휘말려 가랑잎처럼 날아가며 비명을 지르거나 방어막을 일으켜서 몸을 보호하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양 진영의 사람들. 타노도 있다. 타노는 양팔을 십자로 해서 방어막을 만들며 버티며 앞을 보고 있다. 하지만 흑백신귀와 위극겸은 보이지 않는다.

콰드득! 화악! 폭발의 여파로 불타던 건물이나 주변의 건물들이 외곽으로 무너지고 기와로 된 지붕들이 날아간다.

퍼퍽! 콰당탕! 우지끈! [커억!] [큭!] 무너지는 건물들. 날리는 기왓장들. 건물들 잔해에 처박히거나 기왓장과 건물 파편에 맞아 나뒹구는 사람들. 무공이 높은 자들은 호신강기를 일으켜 버티면서 밀려나고

드드드! 진동이 갈아앉고

퍼퍽! 콰창! [끄윽!] [컥!] 흩날리던 기왓장과 파편들도 바닥에 떨어지고. 그 사이로 나뒹구는 사람들 비명 지른다

화아! 쿠오오! 장내를 덮고 있던 사발같은 거대한 기운이 흩어지면서 그 안쪽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난다. 한명은 서있고 한명은 나뒹군 모습이고

<어... 어떻게 된 건가?> <양쪽 다 전력을 기울여 공격을 주고 받았는데...> 타노를 비롯한 양 진영의 사람들 긴장하며 보고. 직후

쿵! 드러나는 장면. 칠지무제는 서있고 사자천마는 뒤로 벌렁 나자빠져 있다.

칠지무제의 입과 코로 피가 줄줄. 내상을 입을 모습이지만 어쨌든 서있다. 눈을 부릅뜨고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멀쩡하던 다섯 손가락 중 중지가 터져서 사라졌다. 오른손은 원래부터 엄지와 검지만 남은 상태고.

반면 사자천마는 뒤로 나자빠져 있는데 옷이 터지고 입과 코로 피가 줄줄. 그리고 가슴에 사발만한 구멍이 뻥 뚫려있다. 사자천마의 오른손 중지에 마귀 얼굴 형상인 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주의. 직후

[와아!] [궁주님이 이기셨다!] [폭혈탄지공(爆血彈指功)을 쓰셔서 사자천마의 가슴에 구멍을 내셨다.] [손가락을 하나 더 잃으셨지만 마침내 천마의 후손을 쓰러트리셨다.] 폭발적으로 환호하는 칠지무제 뒤쪽의 검은 옷을 입은 무제궁 고수들. 타노도 주먹 불끈 쥐며 안도하고. 반면

[성... 성주님!] [안돼!] [성주님께서 치명상을 입으셨다.] [소성주님을 구하시느라 내공을 소진하신 결과다.] 사자천마 뒤쪽의 천마성 남녀들은 절망하고

칠지무제; (드디어 끝났군. 천마성과의 오랜 악연도...) 슥! 안도하며 쳐들었던 왼손을 내밀고. 그때

[하나 물어봅시다.] 누군가의 말이 들려 흠칫! 하는 칠지무제

사자천마; [승기(勝機)를 취하기 위해 내 아들을 미끼로 쓴 계책은 궁주가 생각해낸 거요?] 하늘 보고 누운 채 말하고

[헉!] [아... 아직 살아있다!] [심장에 구멍이 났을 텐데 어떻게...] 무제궁 무사들 공포

[성... 성주님!] [성주님은 돌아가시지 않았다.] [무제궁의 개잡종들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흥분하고 악을 쓰는 천마성 무사들

칠지무제; [노부의 대답은...] 침통하게 말하고.

타노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입을 다물며 칠지무제를 주시하고

칠지무제; [물실호기(勿失好機;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음)일세.]

사자천마; [물실호기라...]

사자천마; [역시 그런 것이었군.] 스윽! 일어난다. 가슴에 난 구멍에서 피와 살점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저... 저런 몸으로 움직이다니...> <과연 삼황(三皇) 중 천마(天魔)의 후손답다.> 공포에 질리는 타노와 무제궁 고수들

사자천마; [죽음을 목전에 든 처지라 그런지 아둔한 내 눈에도 천기(天機)가 읽히기에 한 마디 하겠소.] 슥! 완전히 일어나고

사자천마; [궁주는 남의 손바닥 위의 인형같은 신세...] [머잖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시게 될 것이오.] 음산하게 웃고

칠지무제; [노부의 귀에는 천기가 아니라 그저 악담(惡談)으로만 들리는구먼.] 찡그리며 마주 노려보는데

사자천마; [천기인지 악담인지 판단하는 것은 오늘 이후로도 살아계실 궁주의 몫이니 내 알 바 아니고...] 우둑! 양손을 마주 쥐어 소리를 내고

사자천마; [피할 수 없는 저승길이라 길동무나 좀 데려가야겠소.] 화악! 사자천마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지고

[헉!] [가... 가공할 살기...] [조... 조심해라!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모양이다.] 심각한 표정인 칠지무제 뒤에서 타노와 무제궁 무사들 기겁하며 뒷걸음질 칠 때

우둑! 우두둑! 사자천마의 몸이 마구 자라나기 시작한다. 헐크처럼 변하는 것인데 헐크보다 훨씬 크게 변한다. 최종적으로 5미터 이상의 거인이 된다

[성... 성주님의 몸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설마 성주님은 그 금단(禁斷)의 마공을 쓰시려고...] 천마성 무사들 기겁하고. 그때

칠지무제; [천마해체대법(天魔解體大法)!] 심각한 표정

칠지무제; [그대들 천마성의 시조인 천마가 남긴 금단마공 천마해체대법인가?] 쿠오오! 온몸을 방어막으로 두르며 심각한 표정

사자천마; [천마해체대법이 어떤 무공인지 아시는 듯 하니 달아난다 해도 비웃지 않겠소.] 우둑! 우두둑! 몸이 자라면서 칠지무제를 내려다보며 웃고

칠지무제; [지금 그 말이 족쇄가 되어 노부의 퇴로마저 박아버리는군.] 지지지! 온몸을 강력한 호신강기로 덮으면서 쓰게 웃고

타노; [궁주님! 피하십시오!] 뒷걸음질하며 외치고. 다른 놈들은 이미 달아나려 하고

타노; [그냥 둬도 곧 죽을 자의 도발에 넘어가실 필요 없습니다.] 외치지만

<너나 피해라 타노! 노부마저 피하는 건 저 젊은 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바웅! 오른손을 내밀어 방패같은 기운을 만들면서 전음으로 말하고

타노; [궁주님...] 울상

사자천마; [충성스러운 종을 뒀소이다 진궁주.] 콰드드! 이제 거의 5미터쯤 크기로 변한 채 타노를 보며 웃고. 그 앞의 칠지무제와 타노가 주먹정도 크기로 작게 보인다. 동시에

<모두 들어라!> 천마성 무사들의 귀에 들리는 전음. 울먹이다가 흠칫! 하는 천마성 무사들

<천마해체대법으로 기회를 만들 테니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모두 본성을 탈출하라!> 콰득! 우둑! 풍선처럼 몸이 부풀어 오르는 사자천마의 모습 배경으로 전음이 들리고. 그러자

<안됩니다 성주님!> <속하들이 어찌 성주님과 소성주님을 남겨 두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겠습니까?> 천마성 무사들이 이를 갈며 전음으로 대구하면서 울지만

<청풍이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우둑! 우두둑! 극한까지 부풀어 오른 몸으로 전음을 날리는 사자천마

[!] [!] 깨닫는 천마성 사람들

<그러니 살아서 후일을 도모해라! 그것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충성이다!> 번쩍! 쩍! 전음으로 말하는 사자천마의 몸의 여기저기에서 강한 빛의 가닥들이 창처럼 뚫고 나온다

[헉!] [사자천마의 몸에서 빛이...] [천... 천마해체대법이 시전되려는 전조다!] 무제궁 사람들 공포에 질려 기겁하고

<가자!> <성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다!> <수하 된 처지에 따라야만 한다!> <용서하십시오 성주님!> 팟! 화악! 일제히 날아오르는 천마성의 고수들.

[헉! 저 놈들이...] [천마성의 잡것들이 달아나려 한다.] 무제궁 무사들이 외치며 함께 날아오르혀 하고. 하지만 그 직후

<잘 가라 천마의 종들아!> 번쩍! 사자천마의 전음을 배경으로 그의 몸 전체가 엄청난 빛을 뿜어내며 폭발한다

[!] [!] 그 빛에 휩싸이는 칠지마제와 타노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 이어

쩌억! 처음 일어났던 것보다 몇 배 더 큰 빛의 폭발이 사발처럼 일어난다.

콰드드! 콰콰쾅! 엄청난 폭발, 사람과 건물들이 핵폭발에 휩쓸린 듯 날아가고

[크악!] [컥!] [피해라!] 허우적 대며 날아가는 무제궁의 무사들. 필사적으로 버티는 사람들

콰드득! 퍼퍽! 무너지는 건물들. 나뒹구는 무제궁 무사들. 비틀거리며 내려서는 자들

[!] [!] 내려서다가 놀라는 무제궁 무사들

쿠쿠쿠! 거대하게 부풀었던 반구형의 폭발 충격파가 흩어지며 흐려지고. 헌데

휘익! 휙! 그 흐려지는 충격파 뒤쪽, 사자천마의 뒤에 있던 천마성 무사들은 새처럼 날아서 날아가고 있다. 폭발의 충격파를 이용해서 날아가는 모습이고

[저... 저 놈들이...] [천마성의 마졸들이 달아나고 있다.] [도망치게 놔둘 것 같으냐?] 휙! 휘익! 무제궁 무사들이 이를 갈며 날아오르고. 그때

<쫓지 마라!> 누군가의 전음이 들려 흠칫! 하는 무제궁 무사들. 날아오르거나 날아오르려는 자세로.

쿠오오! 휘이이! 흩어지는 반구형의 충격파. 그 안쪽에 두 명의 인물이 앉고 서있는 게 보인다. 한손을 내민 자세로 서있는 인물은 물론 칠지무제고 칠지무제 뒤쪽에 타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웅크리고 있다. 칠지무제가 막아줘서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모습

칠지무제와 타노의 모습. 칠지무제는 옷이 누더기가 되었고 입과 코로 피를 줄줄 흘리지만 버티고 있고.

[궁주님!] [무사하십니까?] 휘익! 휙! 다시 지면으로 내려서는 무제궁 무사들

그 사이에 경신술을 펼칠 수 있는 천마성 무사들은 모두 날아서 멀어지고 있다

[왜 천마성의 잔당들을 추격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까?]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놈들을 추살해야합니다.] 멀어지는 천마성 무사들을 보며 이를 가는 무제궁 무사들

칠지무제; [사자천마가 자폭하여 사라진 이상 천마성의 무리들은 오합지졸일 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손을 내리며

칠지무제; [지금 최우선적으로 집중할 일은 마태자 이청풍의 신병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긴...>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천마성의 적통인 마태자 이청풍을 제거해야한다.> 깨닫는 무제궁 무사들

칠지무제; [흑백신귀를 도와 마태자를 찾아라. 생사를 불문하고 마태자를 본좌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 준엄하게 외치고

[존명!] [마태자를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휘익! 휙! 외치며 날아가는 무제궁 무사들. 이제 칠지무제 주변에는 타노만 남았다.

타노; [감축드립니다 궁주님!] 일어나며 포권하고

타노; [드디어 본궁과 천마성간의 길고 긴 투쟁을 궁주님 대에서 종식하셨습니다.]

칠지무제; [고맙구나.] 억지로 웃고

칠지무제; [하지만 마태자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한 안심할 수가 없다.] [타노 너도 마태자의 수색에 합류해라.]

타노; [존명!] 포권하고

휘익! 날아가는 타노

칠지무제; (타노의 말 대로 이씨가문과 진씨가문 간의 길고 긴 쟁투는 나의 대에서 결말이 났다.)

칠지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납덩이가 들어찬 것같이 답답한 것은 어째서인가?) 찡그리고

칠지무제; (사자천마가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거의 모든 내공을 소모하지 않았다면 오늘 명줄을 놓은 것은 나였을 텐데...)

칠지무제; (천마성의 기밀을 수시로 제보해온 혈편복(血蝙蝠)이란 자의 정체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칠지무제; (혈편복이 천마성 상층부의 요인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칠지무제; (과연 그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무슨 목적으로 우리 무제궁을 도운 것일까?)

그런 칠지무제의 뇌리에 떠오르는 사자천마의 마지막 말

 

사자천마; [죽음을 목전에 든 처지라 그런지 아둔한 내 눈에도 천기(天機)가 읽히기에 한 마디 하겠소.] 슥! 완전히 일어나고

사자천마; [궁주는 남의 손바닥 위의 인형같은 신세...] [머잖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시게 될 것이오.] 음산하게 웃고

회상 끝

 

칠지무제; (사자천마의 말 대로 나 역시 혈편복이란 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꼭두각시일 수도 있다.)

칠지무제; (하지만 나 진무량이 누구인가?) (삼황(三皇) 중에서도 으뜸이셨던 무성(武聖)의 적손(嫡孫)이 아닌가?)

칠지무제; (비록 무성조사의 최고 절기가 유실되어 천마의 후손들인 천마성에 고전해왔지만...) + [!] 생각하며 앞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반짝! 바닥에서 무언가 빛을 발한다.

칠지무제; (혈교(血敎)에 이어 마침내 천마성까지 쓰러트렸으니 우리 무제궁의 군림천하를 막을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멈춰서면서 바닥을 보고

칠지무제의 발치에 잘려진 손가락이 하나 있는데. 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다. 마귀가 입을 벌리고 있는 조각이 붙어있는 큼직한 반지다. 마귀 얼굴에는 눈이 세 개 달려있는데 작은 보석들이 눈 부위에 박혀있고

칠지무제; (이 반지...) 슥! 허리 숙여서 반지를 집어들려 하고. 순간

푸스스! 손가락은 먼지가 되어 흩어지면서 반지만 남고. <반지의 제왕> 제1편에서 사우론의 잘린 손가락에서 절대반지가 빠지는 장면처럼

칠지무제; (사자천마 이무외의 것일 텐데...) 슥!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손가락 잔해에서 반지를 집어 들고. 사자천마가 오른 손 중지에 그 반지를 끼고 있었던 것 떠올리고

칠지무제; (일단 펼치면 몸뚱이를 먼지보다 곱게 분쇄해버리는 천마해체대법을 견디어 냈다.) 반지를 얼굴 앞에 들어보며 생각하고

<세 개의 눈을 가진 마귀...> 반지에 달려있는 마귀의 얼굴 크로즈 업 배경으로 칠지무제의 생각 나레이션

칠지무제; (절대 평범한 물건이 아니고...) (어쩌면 천마와 관련이 있는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두 손으로 반지를 잡고

칠지무제; (사자천마 이무외...) 두 손으로 반지를 잡아 허공으로 쳐들며 사자천마를 떠올리고

칠지무제; (비록 적이었으나 그대의 인격과 행적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일세.) 눈 감고 기도를 하고

<부디 극락왕생하기를 빌겠네.> 혼자 남아 반지를 두 손으로 쳐들고 사자천마의 명복을 비는 칠지무제의 모습.

 

#36>

천마성 뒤의 높은 산. 그 산 위에 서있는 귀면지존. 원통형의 망원경을 눈에 대고 천마성을 내려다보고 있다.

불타는 천마성의 모습. 불타는 건물들 사이를 무제궁의 무사들이 돌아다니며 건물에서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다.

끌려나온 천마성의 남녀들은 곳곳의 마당에 모여 있다. 일부 무제궁 무사들은 끌려나온 천마성 남녀들을 감시하고 있고.

저항하다가 무제궁 무사들의 칼질에 죽는 천마성의 사내들도 속출한다.

이상의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망원경의 원형 화면에 잡히는 칠지무제의 모습. 반지를 두 손으로 쳐들고 사자천마의 명복을 빌어주는 모습

귀면지존; [사자천마 이무외의 명복을 빌어주는 건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귀면지존; [하지만 당신이 죽은 후에는 진심으로 당신의 명복을 빌어줄 인간은 없을 터...] [가엾소이다 칠지무제시여.] 웃으며 망원경을 내리고. 그때

[칠지무제가 아니라 육지무제(六指武帝)라 해야 옳을 것이다.] 휘익! 귀면지존의 뒤로 누가 날아내리며 말하고. 돌아보는 귀면지존

위극겸; [진무량은 사자천마를 쓰러트리기 위해 손가락을 또 하나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내려서는 위극겸

귀면지존; [아버지!] 포권하고

위극겸; [수고했다.] [네가 일을 제대로 한 덕분에 우리 혈교(血敎)의 부흥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사자천마와 천마성을 없앨 수 있었다.] 귀면지존에게 다가와 멀리 산 아래의 천마성의 모습 보면서 말하고

귀면지존; [소자보다는 뇌공량의 마누라 포숙정의 공이 크지요.]

귀면지존; [포가 계집이 이청풍을 소양갈맥고로 중독 시키지 않았으면 사자천마가 칠지무제에게 패사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극겸; [포가년에게는 제대로 보상을 해줘야겠지.] 음산하게 웃으며 아래를 보고

불타는 천마성의 모습이 멀리 보이고

위극겸; [꼴좋구나 천마성!] [네놈들은 삼십여 년 전 무제궁과 함께 우리 혈교를 멸족(滅族) 시킨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갈고

위극겸; [머잖아 무제궁도 너희들 꼴이 날 테고...] [그럼 천하 무림은 다시 위대한 혈교가 부활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흐흐흐! 광기에 차서 웃고. 그때

귀면지존; [사자천마 이무외가 죽은 것은 확인이 되었는데...] 눈치 보며 말 걸고

귀면지존; [마태자 이청풍은 어찌되었습니까?]

위극겸; [이청풍은 곧 산 채로든 시체가 되어서든 무제궁 인간들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히죽

위극겸; [제 아비가 죽어버린 지금 그놈을 지켜줄 수 있는 인간은 천마성에 없으니 말이다.] 음산하게 웃고

귀면지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미심쩍은 어조

위극겸; [왜?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느냐?] 그런 귀면지존을 돌아보고

귀면지존; [기우(杞憂;쓸데없는 걱정)인지 모르겠으나...] [어쩐지 이청풍이 끝끝내 우리 혈교의 부흥에 걸림돌이 될 것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위극겸; [네가 한 말 그대로 기우일 뿐이다.] 고개 젓고

위극겸; [이청풍은 제 아비의 희생 덕분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내공은 상실한 상태였다.] [설령 오늘 살아난다 해도 본교의 군림대업(君臨大業)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하고

귀면지존; [내공을 상실했다면 그렇겠지요.] 대답은 하지만 찜찜한 표정

위극겸; [천마성을 무너트리는 데 성공했으니 다음 표적인 무제궁의 공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위극겸; [앞으로는 아비가 귀면지존 역할을 할 테니 너는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 진무량을 상대하도록 해라.]

귀면지존; [예...] 달칵! 쓰고 있던 귀신 가면을 벗고

위진천; [이제야 좀 살 것같습니다.] 벗으면서 말하고

위진천; [그동안 이 가면을 쓰고 지내느라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쿵! 드러나는 얼굴. 바로 위진천이다. 이하 위진천으로 표기

위극겸; [고생했다.] 위진천이 내미는 가면을 받고

위극겸; [앞으로는 네가 귀면지존 역할을 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라.] 가면을 만지면서 말하고. 반면

위진천; [천마성을 무너트린 건 기쁜 일이지만 고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한숨 쉬고

위극겸; [어쩔 수 없지. 큰일을 위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하니...] 천마성을 내려다보고

위진천; [고모에게 우리 가문의 내력을 말해주시지 그랬습니다.] 위극겸의 눈치를 보면서

위진천; [우리 일족이 바로 천마, 무성과 함께 삼황으로 꼽히는 혈왕(血王)의 후손임을 아셨으면 고모도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말입니다.]

위극겸; [삼십여 년 전, 우리 혈교가 천마성과 무제궁의 협공을 받고 궤멸당할 때 네 고모 상영이는 갓 태어난 핏덩이였다.] 천마성을 내려다보며

위극겸; [그래서 자신이 혈왕의 자랑스러운 핏줄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자랐다.]

위진천; [천명이 넘던 혈왕일족 중에서 목숨을 부지한 것은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아버지와 상영 고모 뿐이셨지요?]

위극겸; [천마성과 무제궁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여자와 아이들에게까지 무자비한 살수를 펼쳤었다.] 이를 부득. 살기

위진천; [죽일 놈들...] 역시 분노

위극겸; [아비와 상영이는 천우신조로 그때의 살겁(殺劫)에서 살아났었는데...]

위극겸; [아비가 하나뿐인 핏줄인 상영이에게 끝내 가문내력을 말해주지 않은 것은 상영이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위진천; [정에 이끌려 이무외나 이청풍에게 아버지의 정체를 누설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셨군요.]

위극겸; [네 사부이기도 한 진무량은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돌아서고

위극겸; [비록 상영이가 천마성의 내총관이라는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해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믿고 그만 이탈하자.] 팟! 날아오르고

위진천; [예...] 대답하면서도 천마성 쪽을 보며 돌아서고

위진천; (아버지의 생각대로 되면 좋겠지만...) 팟! 날아오르고

위진천; (어쩐지 고모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 앞서 날아가는 위극겸을 따라 날아간다.

 

#37>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9화  (1) 2024.05.04
[마고천장] 8화  (1) 2024.05.03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마고천장] 4화  (1) 2024.04.29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29>

<-일다경(一茶頃) 전> 어둠에 잠긴 천마성을 배경으로

천마성 깊은 곳의 어느 건물. 건물 주위를 천마성 무사들 수십 명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다.

가끔 건물 쪽을 힐끔거리는 천마성 무사들. 건물에는 불이 꺼져 있는데

조금 열린 창문틈으로 밖을 보는 유령귀왕. 창가에 놓인 의자에 옆으로 앉아서

좁은 창문 틈으로 건물쪽을 힐끔거리는 천마성 무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유령귀왕; (이거야 원 손님 대접이 아니라 죄수 취급이로구만.) 쓴웃음

유령귀왕; (만일 마태자의 신상에 불미한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나에게 묻겠다는 무언의 서언인데...)

유령귀왕; (아비가 되어서 그 책임을 딸에게 떠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교소소가 울던 장면 떠올리고

유령귀왕; (그렇다고 천마성에서 탈출을 기도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없는 죄도 생길 테니...)

유령귀왕; (입맛이 쓰긴 하지만 내 운명은 사자천마에게 달려있다.)

유령귀왕; (나 교백을 위해서라도 제발 아들을 구할 수 있기를 바라겠소 사자천마!) 사자천마가 청풍의 등에 손을 대고 내공 불어넣어주는 장면 떠올리고. 헌데 바로 그 직후

삐익! 삑! 뎅뎅뎅! 요란한 호각소리와 요란한 종소리가 들린다. 눈 부릅뜨는 유령귀왕

유령귀왕; (다급한 호각소리와 종소리!) 벌떡 일어나고

유령귀왕; (뭔가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났다!) 덜컹! 문을 열고. 건물을 지키던 무사들도 전부 멀리를 보고 있고, 천마성의 외곽 쪽이다. 불길이 치솟고 사람들이 비명과 요란한 호각소리 종소리들이 뒤섞여 들린다

유령귀왕: (천마성의 적, 무제궁이 사자천마 부자의 다급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습격해왔구나!) 흥분하여 몸을 밖으로 내민 채 몇 개의 담장 너머로 치솟는 불길과 비명, 금속성등이 보인다.

 

#30>

천마성의 가장 깊은 곳. 절벽을 등진 연공관. 수십명의 무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다.

연공관 내부. 사자천마가 여전히 청풍을 치료중이다. 연공관 내에는 노파 한명과 늙은 의사 두 명, 그리고 위상영이 있다. 노파는 사자천마의 유모인데 의자에 앉아서 보고 있다. 위상영과 의사들은 돌침대 옆에 서서 보고 있고.

돌침대에는 상체를 벗은 청풍이 등을 구부린 채 앉아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데 전보다는 상태가 조금 좋아 보인다. 여전히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지만 몸에 힘이 좀 들어가는 모습이고. 그런 청풍의 뒤에 사자천마 이무외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오른손을 청풍의 등에 붙이고 있다. 이무외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는 눈이 세 개 달린 마귀 형상이 조각 된 반지를 끼고 있는 것으로 묘사. 이 반지는 나중에 중요한 소품 역할을 함. 청풍의 상태가 좋아진 것과 달리 청풍을 치료하는 사자천마는 극도로 지친 모습이 되어있다. 온몸이 비지땀으로 덮여있고 얼굴도 초췌해졌다.

쿠오오오! 두 부자의 몸에서 강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위상영; (다행스럽게도 소성주님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안도. 여전히 초조

<성주님께서 당신의 내공을 거의 다 소모해가면서 치료해주신 덕분에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좀 좋아진 청풍의 모습을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위상영; (내공은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지만 거의 소멸되어가던 순양지기가 되살아났다.) 안도하고

위상영; (이제 영약을 지속적으로 복용시키고 정양하게 하면 언젠가는 내공도 전처럼 쓰실 수 있을 것이다.)

위상영; (물론 소성주님을 살리는 과정에서 성주님께서 너무도 많은 희생을 하셨다.) 초췌한 사자천마를 보고

<오갑자를 상회하던 내공의 거의 대부분을 소모하셨고 체력도 고갈되어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같다.> 초췌해진 사자천마의 모습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나레이션

위상영; (소성주님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입으신 타격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위상영; (그렇다고는 해도 소성주님께서 회생하셨으니 소성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나로서는 천만다행이다.) 미소 짓고

위상영; (성주님의 이번 노고를 봐서라도 가능한 빨리 소성주님의 아기를 낳아드려야만 한다.) 얼굴 발개지고. 직후

움찔! 무언가를 느끼는 표정이 되는 사자천마.

흠칫! 하며 그런 사자천마를 보는 위상영

부르르! 온몸이 떨리는 사자천마

위상영; (성주님이 갑자기 왜 저러시지?) 어리둥절하고.

의사들과 노파도 흠칫! 하며 사자천마를 보고

위상영; (혹시 탈진하셔서 몸에 이상이 생기시기라도...) + [!] 생각하다가 두 눈을 부릅뜨는 위상영

<와아!> <크아악!> <죽여라!> 챙! 채채챙! 퍼펑! 폭음과 비명이 위상영의 귀에도 들리고

위상영; (갑자기 비명과 싸우는 소리가 폭발적으로 들려온다!) (연공관 외곽의 철문이 열리면서 바깥의 소음이 전해지는 것인데...) 철문쪽을 홱 돌아보고.

<와아!> <크아악!> <죽여라!> 챙! 채채챙! 퍼펑! 폭음과 비명이 위상영의 귀에 이어지고

위상영; (설마... 설마 외적이 침입했단 말인가?) 놀랄 때

[성주님!] 철컹! 철문이 다급히 열리며 뛰어드는 위극겸. 열린 철문 밖에서는 철문을 지키던 두 명의 노인이 당황하며 돌아보고 있고

연공관 안에 있던 노파와 의사들도 놀라서 위극겸을 돌아보고

위극겸; [적이... 칠지무제 진무량이 무제궁의 정예를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팟! 사색이 되어 문 안쪽에 멈추며 외치고. 한 손에 검을 든 위극겸의 온몸도 피로 물들어 있고

위상영; [무슨 소리에요 오라버니?] [수천 리 밖에 있어야할 칠지무제가 어떻게 느닷없이 본성을 쳐들어왔다는 거예요?] 외쳐 묻고. 아직 사자천마는 원래 모습대로 청풍을 치료하고 있고. 의자에 앉아있던 유모는 의자에서 일어나고

위극겸; [과정은 모르겠다만... 진무령과 졸개들이 느닷없이 쳐들어온 건 사실이다.] 초조한 표정으로 말하고. 그 사이에도 열린 문을 통해 비명과 폭음 무기 부딪히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이어지고. <으악!> <크악! 이 비겁한 놈들이...> <남김없이 죽여라!> 펑! 퍼펑! 차차창!

위상영; [그래서... 그래서 지금 전세(戰勢)가 어찌 되어가고 있는 건가요?] 다급히 묻고. 노파와 의사들도 겁에 질려 위극겸을 보고

위극겸; [진무량은 고르고 고른 고수들만 이끌고 쳐들어 왔다.] [그 때문에 전체 숫자는 우리가 많지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초조하게 밖을 힐끔. 펑! 퍼펑! 크악! 컥! 여전히 폭음과 비명이 들리고

위상영; [다시 나가셔서 싸울 수 있는 자는 전부 연공관 주변으로 모으도록 하세요.] [성주님이 소성주님의 치료를 마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만 해요.] 이를 갈며

위극겸; [그렇지 않아도 본성의 고수들을 연공관 일대에 집결시켜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다.] 땀을 닦고

위극겸;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본성에서 칠지무제 진무량을 저지할 수 있는 자는 성주님 밖에 없다.] 짐짓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사자천마를 힐끔

위극겸; [여러 당주들과 호법들이 진무량을 막으려다가 이미 불귀고혼이 된 상태다.]

위극겸; [나머지 호법들이 필사적으로 진무량에게 맞서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같다.] 연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위상영; [소성주님의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보세요.] 이를 갈면서 말하고

위상영; [무제궁의 버러지들이 소성주님이 치료 받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만...] 말할 때 + [크왓!] 뒤에서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사자천마를 돌아보는 실내의 사람들

쩡! 청풍의 등에 댄 사자천마의 손이 강렬한 빛을 내며 진동하고. 사자천마는 눈 부릅뜨며 기합 지른 모습. 그러자

화악! 청풍의 몸 전체에 엄청난 힘이 물결치듯 퍼지는 모습. 고개 젖히며 충격 받은 표정이 되는 청풍.

<저... 저건...> <성주님은 남아있는 순양지기를 일거에 소성주님 몸으로 쏟아 넣으셨다.> 사람들 모두 놀라 돌아볼 때

청풍; [컥!] 입과 코로 피를 왈칵 토하며 앞으로 몸을 숙이고

슥! 그 바람에 사자천마의 손바닥이 청풍의 등에서 떨어지고

털썩! 앞으로 나뒹구는 청풍. 약간 옆으로 쓰러지는 모습. 그런 청풍의 뒤에서 손을 내민 사자천마도 휘청하는데

위상영; [소성주님!] 급히 침대로 다가가고.

위상영; [괜잖으세요 소성주님?] 약간 옆으로 나뒹군 청풍의 팔을 잡아서 바로 누이려 하고. 그러다가

위상영; [흑!] 놀라 사자천마를 돌아보고

눈 부릅 뜬 사자천마의 입과 코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앞으로 내밀었던 오른손은 다시 내린 상태고

위상영; [성... 성주님! 내상을 입으셨는가요?] 급히 바로 눕힌 청풍의 팔을 놓고 사자천마를 향해 돌아서지만

사자천마; [됐다!] 손을 조금 들어서 위상영이 자신을 부축하는 걸 막고

사자천마; [내총관은 여기 남아서 청풍이를 돌봐라.] 슥! 침대에서 한 쪽 발을 내리며 말하고. 다른 사람들 긴장해서 보고

위상영; [예...] 대답할 때

휘청! 침대 아래로 내려서다가 휘청하는 사자천마

위상영; [성주님...] 다시 비명. 다른 사람들도 눈 치뜰 때

콱! 침대 모서리를 잡아서 바닥에 주저앉는 걸 모면하는 사자천마.

위상영; [무리하지 마세요. 성주님은 소성주님을 치료하시느라 지치신 상태잖아요.] 울먹이며 다시 부축하려 하지만

사자천마; [상영아!] 침대 모서리를 잡은 채 그런 위상영을 돌아보고

위상영; [하... 하명 하세요 성주님!] + (날 직책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셨어!) 뭔가 깨닫고 얼굴이 굳어지고

사자천마; [나 대신... 청풍이를 부탁한다.] 슥! 소매로 피를 닦으며 몸을 바로 세우고.

위상영; (설마 성주님은...) + [걱... 걱정마세요 성주님!] 주르르! 눈물이 흐르고

위상영; [소성주님은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드리겠어요.] 울며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다짐하고

사자천마; [고맙다.] 서늘하게 웃고

사자천마; [난... 너만 믿는다 상영아.] 억지로 웃으며 지긋이 위상영을 보고

위상영; [예...] + (성주님은 죽음을 각오하시고 계신 것 같다.) 울면서 올려다보고

사자천마; (청풍아!) 시선을 돌려 청풍을 보는 사자천마. 청풍은 바로 누운 채 벌벌 떨며 입과 코로 피를 흘린다. 정신은 잃은 상태고

<아무래도 다시 널 보기는 힘들 것 같구나. 부디 우리 이씨 가문의 열조(烈祖)들께서 널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사자천마의 생각 나레이션. 이어

사자천마; [가자 외총관!] 슥! 가슴 펴며 입구쪽으로 돌아선다.

위극겸; [예 성주님!] 포권하고

서둘러 돌아서서 입구로 달려 나가는 위극겸. 그 뒤를 큰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자천마

[성주님! 무운을 비옵니다.] [조심 하세요 성주!] 의사들과 유모가 포권을 하거나 허리 숙이며 말하자

손을 들어 보이며 문을 나가는 사자천마. 문 밖의 두 노인은 철문을 닫으려 하고

위상영; (틀... 틀림없다!) 전율하고.

<성주님은 칠지무제 진무량과 동귀어진(同歸於盡) 하실 생각이다. 진무량을 막을 수 있는 건 천마성 내에서 오직 당신뿐이라는 사실을 아시기에...> 철문 밖으로 멀어지는 사자천마의 뒷모습 배경으로 위상영의 생각 나레이션. 문 밖의 노인들이 다시 철문을 닫는 중이고

위상영; (하지만 지금의 성주님은 탈진하실 대로 탈진해서 운신도 어려우신 상태야.)

위상영; (저런 몸으로 칠지무제와 싸운다면 결과는 뻔해!) + [유모(乳母)!] 철문 쪽으로 가며 노파를 부르고

노파; [오냐! 말 해라.] 긴장하며 대답하고

위상영;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소성주님을 저 대신 보살펴주세요.]

노파; [소성주는 걱정 말고 어여 다녀와라.] 침대쪽으로 오며 말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사자천마의 유모 목파파(木婆婆)>

위상영;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만 해!) 철문을 양손으로 밀며 나가고.

열리는 철문 밖에 서있던 노인들이 돌아보고

위상영; (내가 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사용해서...) 노인들 무시하며 밖으로 나오는 위상영의 결연한 표정. 놀라지만 뭐라 묻지도 못하는 노인들

 

#31>

연공관 밖. 네 명의 무사들이 연공관 입구에 남아있다. 원래는 수십 명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무사들은 싸우러 간 상태다. 네 명의 무사들 중 둘이 철문을 닫으려 한다. 나머지 두 명은 연공관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건물들 쪽을 보고 있다. 당황한 표정들이고.

[크악!] [커억!] [죽여라!] [막... 막아라!] [더는 못 간다 개새끼들아!] 퍼펑! 펑! 차차창! 연공관이 있는 절벽을 반원형으로 둘러싸듯 서있는 건물들 사이와 그 외곽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게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기도 하고. 건물과 건물들 사이에서, 또는 지붕 위에서 양 진영의 무사들이 날고뛰며 싸우고 있다. 수많은 시체들이 바닥에 널려있는 것도 보이고

[비겁한 무제궁 놈들! 정파백도의 종가입네 하면서 기습이나 하고...] [성주님께서 가셨으니 곧 전세가 역전될 게야.] 건물들 너머와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보며 이를 가는 연공관 입구의 무사들

그긍! 그 뒤에서 두 명의 무사가 철문을 거의 다 닫고 있고. 그때

[닫지 마라!] 철문 안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 흠칫! 하며 철문 닫는 것을 멈추는 두 명의 무사.

위상영; [문을 열어놓고 대기해라!] 휘익! 철문 안쪽의 복도를 바람처럼 달려 나오는 위상영

[내총관님!] [어인 일로 나오셨습니까?] 그긍! 끼익! 다시 철문을 활짝 열며 외치는 철문을 닫던 두 명의 무사.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보던 두 명의 무사도 돌아보고

위상영; [뇌옥(牢獄)에 다녀올 일이 있다.] 휘익! 바람처럼 연공관에서 나오고

[뇌옥에는 무슨 일로...] 무사들 중 한 놈이 묻지만

위상상; [경계를 늦추지 마라.] [무제궁의 버러지들은 단 한 놈이라도 연공관에 들여보내면 안된다.] 휘익! 말하며 절벽을 따라 옆으로 달려간다. 시선은 연공관의 전면을 향한 채.

[존명!] [목숨으로 연공관을 지키겠습니다.] 뒤에서 대답하는 네 명의 무사들

대꾸하지 않고 옆을 보며 달리는 위상영. 위상영이 보는 쪽은 물론 싸움이 벌어지는 연공관 외곽이다.

[크악!] [커억!] [죽여라!] [막... 막아라!] [더는 못 간다 개새끼들아!] 퍼펑! 펑! 차차창! 연공관이 있는 절벽을 반원형으로 둘러싸듯 서있는 건물들 사이와 그 외곽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게 보인다.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기도 하고. 건물과 건물들 사이에서, 또는 지붕 위에서 양 진영의 무사들이 날고 뛰며 싸우고 있다. 수많은 시체들이 바닥에 널려있는 것도 보이고

위상영; (본성의 무사들이 무제궁의 인간들이 연공관쪽으로 몰려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절벽을 따라 옆쪽으로 달려가면서 연공관 외곽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위상영; (하지만 오라버니 말 대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전에 일을 끝내야만 한다.) 휘익! 연공관 외곽에 죽 늘어 서있는 건물들 중 하나로 달려간다. 강철과 바위로 이루어진 튼튼한 건물. 감옥이다.

<牢獄>이란 글이 적힌 현판이 철문이 달려있는 입구 위쪽에 박혀있고. 감옥 입구에는 역시 네 명의 천마성 무사들이 초조한 기색으로 서성이고 있고. 그러다가

감옥 쪽으로 달려오는 위상영을 발견하고 돌아보는 무사들. 거리는 30미터쯤

[내총관님!]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무사들 위상영을 발견하고 급히 포권하며 외치고

위상영; [죄수들 중 한 놈에게 볼 일이 있다. 문을 열어라.] 휘익! 달려오며 외치고. 이제 뇌옥과의 거리는 20미터쯤

[옛!] 무사 한명이 대답하며 급히 철문 쪽으로 돌아선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열쇠 꾸러미를 쥐면서. 이어

철컥! 커다란 열쇠 하나를 감옥의 철문에 나있는 구멍에 꽂는 그자

철컹! 그자가 돌리는 대로 열쇠가 돌아가며 안쪽에서 열리는 소리가 나고

[들어가십시오.] 그그긍! 다른 놈이 문을 열며 외치고

위상영; [금방 나올 것이다. 문은 닫지 마라.] 휘익! 바람처럼 감옥 안으로 날아 들어가며 외치고. [예!] [대기하겠습니다.] 대답하는 무사들

그 사이에 감옥 안으로 사라지는 위상영

[내총관님께서는 이 급박한 때에 왜 뇌옥에 들어가신 걸까?] [무제궁의 잡종들이 방어선을 돌파하기 전에 뇌옥에 갇혀있는 정파백도의 인간들을 잡아 죽이시려는 걸까?] 무사들 갸웃하며 감옥 입구를 보고. 그때

퍼펑~ 펑! [크악!] [컥!] 차창! 화르르! 그 사이에도 외곽에서 싸우는 소음은 더 커진다. 돌아보는 무사들

[크악!] [무제궁의 버러지들아! 같이 죽자!] [우리 시체를 밟고 지나가라.] 퍼펑! 차창! 고함과 비명, 무기 부딪히는 소리들. 건물들을 태우며 맹렬히 치솟는 불길 때문에 건물들 사이가 환하고 건물들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불길을 배경으로 건물들 외곽에서 양 진영의 무사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작게 보인다.

[방어선이 뒤로 밀리고 있네.] [아무래도 오래 못 버티겠어.] 긴장하는 무사들

[성주님께서 출전하셨는데도 전세가 호전되지 않는 것 같네.] [성주님으로서도 칠지무제 진무량 한명 상대하기도 벅차서 다른 형제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때문일 게야.] 무사들 싸움이 벌어지는 외곽을 보며 긴장

[우리도 각오를 해둬야겠군.] [까짓, 방어선이 무너지면 무제궁의 버러지를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지 뭐.] 전의를 불태우는 무사들. 그때

위상영; [됐다!] 휘익! 열려진 철문 안쪽에서 달려 나오는 위상영. 헌데 양손으로 한 명의 사내를 안고 있다. 온몸이 고문당한 상처투성이에 옷도 누더기가 된 청년.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지만 오랜 투옥 생활로 피골이 상접하다. 피골이 상접한 수준이 청풍과 비슷한 이자는 <투천환일>등 다른 작품에 나온 벽세황 캐릭터. 이 작품에서도 벽세황이다. 정파백도의 명문가들인 삼문육가중 신장궁의 소궁주다. 돌아보는 무사들

위상영; [구할 수 있는 만큼 기름을 구해서 뇌옥 안에 뿌려둬라.] 휘익! 무사들 사이를 달려가며 외치고. 방향은 연공관쪽이고

[기... 기름을 말입니까?] 당황하는 무사들

위상영; [뇌옥에 갇혀있는 것들은 악질 중의 악질들이다.] [만일 전세가 완전히 기운다면 살려둘 이유가 없다.] 휘익! 연공관 쪽으로 날아가며 외치고

[존명!] [분부 따르겠습니다.] 포권하는 무사들

대답하지 않고 연공관으로 날아가는 위상영. 연공관 입구를 지키던 무사들이 급히 길을 터주고 있고

[여차하면 뇌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을 불태워죽이겠다는 건데...] [산 채로 태워 죽이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무사들 중 두 놈이 난감해 하지만

[난 찬성일세.] 세 번째 놈이 말하고. 다른 놈들이 돌아보고

[성주님은 성품이 관대하셔서 어지간한 죄를 지은 자들은 훈계하신 후 방면해오셨네.] [하지만 지금 뇌옥에 갇혀있는 자들은 말로 타이를 수 없는 구제불능의 악질들이잖은가?] 세 번째 놈이 문이 열려 있는 감옥을 보며 말하고

[하긴...] [지금 뇌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은 정파백도입네 하며 우리 천마성에 해를 끼치려고 온갖 발악을 한 놈들이지.] [살려두면 두고두고 우환거리가 될 테니 죽일 수 있으면 죽이는 게 최선이야.] 다른 무사들도 끄덕이고

[내총관께서 데려가신 놈만 해도 그래.] 연공관으로 날아 들어가고 있는 위상영의 뒷모습 보며 말하고

 

#32>

<정파백도의 유서 깊은 명문 신장궁(神匠宮)의 소궁주 철수무정(鐵手無情) 벽세황(壁世皇)!> 연공관의 입구 안쪽, 벽세황을 두 팔로 안은 채 통로를 달려가는 위상영의 모습 배경으로 무사들의 말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고.

<마도 무림에 극단적인 증오를 품고 있어서 마도 무림에 속한 자라면 불문곡직하고 살상을 자행해왔다.> 축 늘어져 있는 벽세황의 모습 배경으로 무사들의 말 나레이션

<신장궁은 각가지 병장기와 기물들을 만드는 재주로 천하에서 으뜸가는 가문이다. 벽세황은 신장궁에서 만든 그 기괴한 살상무기와 장치들을 써서 불과 일 년여 만에 천명 가까운 마도무림인들을 학살했다.> 통로 끝의 연공관 입구 철문을 지키고 있던 노인들. 흠칫! 하고

<결국 벽세황의 만행에 격노한 마태자께서 직접 손을 써서 벽세황을 사로잡았으며, 뇌옥에 가둬두고 두 번 다시 햇볕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급히 문을 열어주는 노인들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위상영; [고마워요 호법님들!] 휘익! 노인들이 열어주는 철문 쪽으로 달려가며 외치고

위상영; [문을 닫으시고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단속해주세요.] 노인들을 지나치며 외치고

[걱정 말게.] [개미 새끼 한 마리 접근시키지 않을 테니...] 그긍! 다시 철문을 닫아주며 말하고. 위상영은 이미 철문 안쪽으로 뛰어들었고.

 

[!] [!] 침대에 누운 청풍을 보살피던 노파와 두 명의 의사들 흠칫! 하며 입구쪽을 보고. 닫히는 철문을 배경으로 위상영이 달려들어 온다. 두 팔로 벽세황을 안은 채로

노파; [내총관, 그놈은 누군가?] 뒤돌아보며 묻고

위상영; [신장궁의 소궁주인 철수무정 벽세황이라는 자예요.] 침대로 다가와 벽세황을 침대에 누이려 한다.

의사들; [벽세황이라면 신장궁의 신병이기로 마도 무림의 형제들을 무차별 살상해온 살인귀 아닌가?] [이 악명 높은 말종을 왜 데려온 겐가?] 위상영이 벽세황을 청풍의 옆에 눕히는 걸 보며 의아해하는 늙은 의사들

위상영;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절대 입 밖에 내면 안돼요.] 말하며 품속에 손을 넣고. 벽세황은 청풍의 옆에 눕힌 채 옆으로 돌아가고

[그러마고 약속은 하네만...] [벽가놈을 어디에 쓸 생각인지 감이 안잡히는구만.] 위상영이 청풍의 옆으로 오도록 비켜주면서 의사들이 갸웃할 때.

다시 꺼낸 위상영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있고.

달칵! 그 상자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뚜껑을 여는 위상영

쿵! 뚜껑이 열린 상자 안에는 볼펜같이 생긴 도구와 1센티도 안되는 짧고 가는 침들이 가득 들어있다. 침들은 구획된 칸에 가지런히 들어 있고

[그건 혹시...] [투골성형침(透骨成形針) 아닌가? 악명 높은 색마 천면랑군(千面郞君)이 얼굴을 수시로 바꿀 때 사용했던...] 놀라는 의사들. 그러다가

[!] [!] 무언가 깨닫는 의사들. 위상영은 대답하지 않고 청풍과 벽세황의 얼굴을 살피고 있다. 볼펜같은 도구를 집어 들면서

<맙소사!> <벽세황과 소성주의 얼굴을 바꿀 생각이로구나!> 깨닫고 굳어지는 의사들. 노파도 알아차리고 놀라지만 내색하지 않고

팟! 벽세황의 얼굴을 살피면서 청풍의 얼굴을 볼펜 같은 도구 끝으로 살짝 찍는 위상영.

핏! 볼펜 같은 도구 끝에서 짧은 침이 튀어나와 청풍의 얼굴로 스며들어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살 속으로 사라지는 것 주의. 그러자

슥! 청풍의 얼굴 근육이 조금 움직이고

<투골성형침이 박힌 부분의 근육이 변형된다.> 의사들 놀라고

팟! 팟! 연달아 도구를 써서 청풍의 얼굴에 침을 박는 위상영. 아주 진지하고

위상영; (얼굴을 수시로 바꾸는 재주를 악용해서 부녀자들을 간음하던 천면랑군은 본성의 뇌옥에서 죽었었다.) 팟! 팟! 의사들과 노파가 놀라며 보는 배경으로 연달아 침을 청풍의 얼굴에 박으면서

위상영; (그자의 시신에서 수습한 이 성형투골침을 이렇게 긴요하게 쓸 줄은 몰랐다.) 팟! 팟! 연달아 침을 청풍의 얼굴에 박고. 그러다가

위상영; (되었다.)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들고

위상영; (이 정도면 벽세황의 마누라라 해도 소성주를 진짜 벽세황으로 믿을 것이다.) 만족한 표정. 그리고

<과연!> 놀라는 의사와 노파

<소성주의 얼굴이 벽세황으로 바뀌었다.> 쿵! 드러나는 청풍의 얼굴. 옆에 누운 벽세황과 판박이처럼 똑같아졌다. 이하 벽세황(청풍)으로 표기

위상영; (이제 벽세황의 얼굴을 소성주의 얼굴로 바꿀 차례다.) 침대를 돌아서 벽세황 얼굴 쪽으로 가고

위상영; (날 원망하진 마라 벽세황.) 벽세황의 얼굴을 왼손으로 만지고

위상영; (뇌옥에 갇혀있는 자들 중에서 연령대와 체격이 소성주와 가장 흡사한 자가 너라서 선택된 것뿐이니...) 팟! 위상영의 손에 들린 볼펜 같은 도구가 벽세황의 얼굴에 가는 침을 박고

스스! 침이 박힌 부위의 벽세황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고

위상영; (소성주의 얼굴이라면 눈을 감고도 똑같이 그릴 수가 있다.) 팟! 팟! 연달아 벽세황의 얼굴에 침을 박고

위상영; (네 얼굴을 완벽하게 소성주의 얼굴로 바꿔주마.) 팟! 팟! 연달아 침을 벽세황의 얼굴에 박고.

위상영; (소성주를 위해... 그리고 우리 천마성을 위해 벽세황 네가 희생을 해줘야겠다.) 벽세황의 얼굴에 침을 꽂는 데 집중하고.

그걸 긴장하며 보는 의사와 노파. 이윽고

위상영; [끝났어요.] 슥! 다시 왼쪽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허리를 펴고

위상영; [벽가놈의 변한 얼굴이 소성주의 얼굴을 닮았는지 확인해보세요.] 노파와 의사들에게 말하며 벽세황을 가리키고.

쿵! 드러나는 모습. 청풍이 누워있다. 몸에 누더기를 걸친 걸 빼면 완벽하게 청풍으로 변했다. 이하 청풍(벽세황)으로 표기.

[허어!] [기가 막히는구먼. 벽가놈의 얼굴이 완벽하게 소성주의 얼굴로 바뀌었어.] [판박이가 따로 없구먼.] 노파와 의사들 감탄하고. 그 사이에 위상영은 벽세황(청풍)에게 가고

위상영; [소성주를 갓 났을 때부터 보아온 세 분이 구분을 못할 정도라면 성공이에요.] 슥! 두 팔로 벽세황(청풍)을 안아들고

노파; [소성주를... 어찌 할 생각이냐?]

위상영; [만약을 대비하여 벽세황과 얼굴을 바꿔치기한 소성주님을 뇌옥에 옮겨 놓을 거예요.] 벽세황(청풍)을 안아들고 돌아서며

<그럼 혹시 본성이 무제궁에 함락 당하더라도 소성주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지.> <소성주를 벽세황으로 알고 해치지 않을 테니...> 노파와 의사들 알아차리고. 그 배경으로 위상영은 벽세황(청풍)을 안고 문쪽으로 가고 있고. 그러다가

위상영; [유모! 두 분 의원님!] 입구에 서서 돌아보고

노파; [오냐! 말해라.] 노파가 대표해서 대답하고

위상영; [뒷일을...] 목이 메어 말을 못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그렁

위상영; [뒷일을 부탁드리겠어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눈물 떨군다

<뒷일!> 깨닫는 노파와 의사들. 그러다가

노파; [걱정 말거라.] 울며 웃고

노파; [여기는 우리 늙은이들이 알아서 정리하마.] [상영이 넌 소성주나 잘 모시도록 해라.]

위상영; [내세(來世)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어요.] 울며 웃으며 고개 들고. 이어

돌아서는 위상영. 그러자

철컹! 밖에서 문을 열어주는 노인들. 노인들도 철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굳은 표정들이고

위상영; [고마워요 두 분 호법님!] 눈물 젖은 얼굴로 철문 밖으로 나가고. 굳어진 얼굴로 말없이 고개 끄덕이는 노인들

철컹! 다시 닫히는 철문. 이제 철문 안쪽에는 노파와 늙은 의사 둘과 청풍의 모습으로 변한 벽세황, 즉 청풍(벽세황)만 남았다.

노파; [우리도 준비합시다.] 침대 쪽으로 돌아서고

말없이 끄덕이는 의사들

노파; [본성의 유일한 후계자인 소성주가 이렇게 초라한 차림이면 안되지.] 슥! 청풍(벽세황)의 낡은 옷을 벗긴다.

노파; [가엾은 인생! 소성주와 나이와 체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처자식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구나.] 옷을 벗기며 청풍(벽세황)의 뺨을 쓰다듬고

노파; [그나마 우리 늙은이들이 네가 갈 저승길에 동행해주는 것을 위안으로 삼거라.] 비장하고 애절한 표정으로 웃는 노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우리 늙은이들도 오늘 이곳에서 삶을 마쳐야겠지.> 침통하고 비장하게 고개 끄덕이는 늙은 의사들

 

#33>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8화  (1) 2024.05.03
[마고천장] 7화  (2) 2024.05.02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마고천장] 4화  (1) 2024.04.29
[마고천장] 3화  (1) 2024.04.28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23>

<-태산(泰山)> 웅장한 산. 밤. 하늘에는 보름달

<-무제궁(武帝宮)> 그 산의 중턱에 자리한 웅장한 성채. 깊은 밤이라 불은 대부분 꺼져 있고

무제궁의 외진 곳.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태산의 봉우리들과 밤 하늘이 잘 보인다. 단촐한 건물이 한 채 있고 담장으로 에워싸여 있는데.

정원 끝에 휠체어가 한 대 서있다. 휠체어에 앉은 것은 무염무후 진상파. 진상파는 <아랑힐월> <투천환일>등 다른 작품의 진상파 캐릭터. 좀 떨어진 곳에는 환설이 공손히 서있다. 환설은 진상파의 호위무사. 역시 <투천환일>등 다른 작품의 환설 캐릭터다. 무기는 지니고 않고 있는데 허리띠가 무기다. 약간 폭이 넓은 허리띠를 펼치면 긴 장검이 된다.

진상파; (천기(天機)가 요동을 치고 있다.) 하늘 보며 어두운 표정. 배경으로 나레이션. <-칠지무제의 외동딸 무염무후(無染武后) 진상파(陳祥波)>

휘이! 하늘에서 별똥별도 여럿 떨어지고 있고

진상파; (숱한 비명과 단말마가 들린다.) 찡그리고. 진상파의 뇌리에 불타는 건물과 그 건물에 갇혀 타죽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진상파; (조만간 피가 내를 이루고 비명이 천지를 뒤흔드는 대격변이 일어나겠구나.) 한숨 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고.

진상파;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이미 대혈겁의 서막은 열렸고...) 두근! 두근! 손으로 누른 가슴이 뛰는 소리

진상파; (나 진상파의 운명도 격랑에 휘말려들게 될 것이다.) 우울한 표정

 

환설; (가엾은 분...) 진상파의 뒷모습 보며 소리없이 한숨. 배경으로 나레이션. <-진상파의 수신호위 환설(煥雪)>

환설; (의심의 여지도 없이 무제궁 사상의 최고 기재였고... 그래서 천마성과의 오랜 대치를 끝낼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분인데...)

환설; (갑자기 주화입마에 빠지시면서 모든 걸 잃어버리셨다.)

환설; (이미 오 년 전에 부친이신 칠지무제님을 능가했던 것으로 믿어지던 무공은 소멸되었으며...)

<당신의 몸 하나 제대로 추스릴 수조차 없는 무력한 처지가 되셨다.> 휠체어에 앉은 진상파의 모습 배경으로 환설의 생각

환설; (천고기재이신 소궁주님 자신이 무공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

환설; (결국 누군가 소궁주님에게 해코지를 한 결과 주화입마에 빠지셨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환설; (대체 어떤 자가 소궁주님께 독수를 쓴 것일까?) 생각하다가

흠칫! 하며 돌아본다. 건물 옆으로 누군가 걸어온다. 칠지무제 진무량인데 아직은 뒷모습이다. 검은 색의 망토를 두른 모습이다

환설; (저분이 이 시간에 어인 일로...) 다가오는 칠지무제에게 급히 두 손 앞으로 모으며 인사한다. 소리는 내지 않고. 여전히 칠지무제는 뒷모습이고

 

진상파; (곧 벌어질 대혈겁에 우리 무제궁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하늘 보며 고민하고

진상파; (이미 진행되고 있으니 내 무력한 능력으로 저지하기는 불가능...) 찡그리고

진상파; (아무쪼록 무고한 희생이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숨 쉬며 생각할 때

[근심이 많구나.] 슥! 진상파의 옆으로 나서는 칠지무제. 고개 조금 돌려보는 진상파

칠지무제; [천기가 어지러운 게 늙고 아둔한 아비의 눈에도 보이거늘...]

칠지무제; [천기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능력을 지닌 네 심사가 편할 수가 없겠지.] 진상파 옆에 서서 하늘을 보는 칠지무제의 모습. 망토를 둘렀고. 나이는 70살쯤이다.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엄지와 검지만 있어서 칠지무제다. 배경으로 나레이션. <-무제궁 제오대 궁주 칠지무제 진무량>

진상파; [아버지...] 고개 조금 숙여 인사하고

칠지무제; [짐작하고 있겠지만... 아비는 오늘 밤 천마성을 치러 출진(出陣)한다.]

칠지무제; [사자천마 이무외의 신상에 변고가 생길 테고...] [말 그대로 천재일우의 기회이니 놓칠 수가 없구나.]

진상파; [밤에 떠나시는 건 세상의 이목을 피해서이시지요?] 한숨

칠지무제; [너도 알다시피 지난 몇 년 새 우리 무제궁은 천마성에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천마성에 마태자 이청풍이라는 천고기재가 난 때문인데...]

칠지무제; [정면승부를 걸어서는 당연히 승산이 없다.] [그래서 소수정예만 이끌고 천마성을 급습할 생각이다.]

말없이 듣는 진상파

칠지무제; [실제로 천마성의 전력은 천하에 넓게 분산되어 있다.] [그 때문에 천마성의 총단에는 의외로 상주하는 고수가 많지 않다.] 그런 진상파를 슬쩍 보며

칠지무제; [반면 아비는 무제궁의 고수들 중 고르고 고른 오백 명을 이끌고 갈 것이다.]

칠지무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만...] 진상파의 의견을 묻고

진상파; [아버지의 이번 원정을 대성공을 거두게 될 거예요.] 우울

칠지무제; [천... 천기에 그리 나오느냐?] 안도하고

진상파; [자세한 경과는 모르겠지만...] [사자천마의 명수(命數;운명과 재수)는 며칠 내에 끊어지는 것으로 나오는군요.,] 한숨

칠지무제; [아비가 사자천마를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면서 어째 표정이 밝지 않구나.] 눈치 보며 묻고

진상파; [아니에요. 아무리 천기를 읽는다 해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으니 걱정이 될 뿐이랍니다.]

칠지무제; [그렇다니 다행이로구나.] 안도하고

칠지무제;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을 상파 너를 위해서라도 보신(保身)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마.] 돌아서고

진상파; [무운을 비옵니다.] 고개 조금 돌리며

칠지무제; [오냐 고맙다.] 웃으며 돌아보면서 왔던 방향으로 가고. 환설이 인사하고

 

#24>

잠시 후. 무제궁의 뒤쪽

휘익! 휙!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산속으로 날아가는 일단의 무리들. 선두에 칠지무제가 날아가고. 그 뒤를 검은 옷을 입은 수백명의 고수들이 날아간다. 모두 눈이 빛나서 고수들임을 알 수 있고. 특히 칠지무제의 바로 뒤를 따르는 노인들은 아주 강해 보인다. <아랑힐월> <투천환일>에 나온 <흑백신귀>들이다. 이 작품에서도 흑백신귀

칠지무제 일행이 날아가는 걸 자신의 거처인 고지대의 정원에서 보고 있는 진상파

새떼처럼 무제궁 뒤의 산속으로 날아서 사라지는 칠지무제 일행

진상파; (죄송해요 아버지.) 한숨

진상파; (물론 이번에 천마성을 궤멸시키는 데는 성공하시겠지만...) (그 다음에 우리 무제궁에 칠흑같은 암운이 엄습할 것이라는 말은 차마 드릴 수가 없었답니다.)

진상파; (무제궁을 뒤덮을 그 암운이 우리 모녀(母女)의 죄 때문이기도 해서 더더욱 언급할 수가 없었고...)

진상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번의 비극에서 희생자가 한 명이라도 덜 나오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합장하며 눈 감는 진상파. 환설은 진상파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고

 

#25>

<-유령산장> 음침한 날씨. 유령산장 입구에서 마차들이 나가고 있다. 짐을 가득 실은 마차들. 그걸 보고 있는 교천기

교천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만 한다.)

교천기; (마태자가 끝내 되살아나지 못하거나...) (살아난다 해도 불구가 될 경우 천마성이 우리 유령산장에 화풀이를 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교천기; (본장의 보물들과 중요한 물건들을 미리 다른 곳으로 옮겨 놔야하는 이유다.)

교천기; (다행히 이곳 북망산에는 바깥세상의 인간들은 절대 찾아낼 수 없는 은밀한 장소들이 있다.)

교천기; (그곳에 본장의 보물들을 숨겨놓고 여차하면 나와 소소도 몸을 감추어야한다.)

교천기; (아버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는 암시를 주신 것도 내가 이러길 바라셨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하는데

[소... 소장주님!] 뒤에서 들리는 다급한 음성. 흠칫! 돌아보는 교천기

하녀; [큰일... 큰일 났어요 소장주님!] 유령산장 안에서 울먹이며 뜀박질해서 달려 나오는 하녀. 바로 교소소의 몸종이다. 오른손에는 편지를 한 장 들고. 마차를 몰고 가던 유령산장의 하인들도 놀라 돌아보고

교천기; (저년은 소소의 몸종인 도앵...)

교천기; (저년이 저렇게 허둥댄다는 것은 설마...)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하녀; [아가씨... 아가씨가...] 헉헉! 숨이 턱에 차서 교천기 앞에 멈춰서고

교천기; [소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급히 도앵의 팔을 잡으며 묻고

하녀; [아가씨.. 아가씨가...] 울먹이고. 숨 헐떡이며

하녀; [이걸... 이걸 남기고 사라지셨어요.] 들고 온 편지를 내밀고

교천기; [소소가 사라져?] 탁! 하녀 팔을 놓고 그년이 내민 편지를 낚아채고

하녀; [아침... 아침나절부터 두문불출 하셔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하도 기척이 없어서 침실에 들어가 보니 아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 편지만 남아있었어요.] 교천기가 눈 치뜬 채 편지를 읽는 것을 보며 울먹이고.

<날 찾지마 오빠. 아버지에게도 나같은 딸 없는 셈 치라고 전해드려.> 편지의 내용. 죽립 쓰고 봇짐 짊어진 먼길 떠나는 모습의 소소를 배경으로 나레이션

교천기; [이...이 어리석은 년이...] 콰직! 편지를 움켜쥐며 이를 갈고

교천기;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소소 네년까지 속을 썩이는구나! 강호가 얼마나 험한 곳인 줄 알고...) 당황하고 화가 난 교천기의 얼굴 크로즈 업

 

#26>

<-동정호(洞庭湖)> 바다같이 드넓은 호수. 섬들도 많이 떠있고. 배도 많이 오간다. 때는 저녁 무렵. 해가 서쪽 수평선에 걸려 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그 산 아래 웅장한 성채가 자리하고 있다.

<-천마성(天魔城)> 호수가 바라다보이는 반월형의 호변 뒤의 성채. 호변은 거대한 부두다.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있고. 또 나가거나 들어온다. 헌데

부두로 들어오는 커다란 배. 사공들이 뭔가 긴장한 모습으로 배를 몰고 있고

갑판. 짐들이 쌓여있는데

갑판에 쌓인 짐들 사이로 갑판 아래로 통하는 계단을 덮은 판자가 있고.

약간 벌어진 판자의 틈

쿵! 그 틈새로 보이는 사람 둘의 강렬한 눈빛

판자 아래의 어두운 선실. 중앙에 칠지무제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눈을 감았고. 칠지무제의 뒤로 흑백신귀가 역시 눈을 감고 있고. 주변에 흑의를 입을 무사들이 긴장한 채 역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두 명의 무사가 계단 위로 올라가 판자 틈으로 밖의 상황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천마성에 도착했네!> 판자의 틈으로 보이는 천마성의 모습을 배경으로 밖을 살피는 무사들의 전음

<장강수로채(長江水路寨)가 협조해준 덕분에 놈들의 코밑에까지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게 되었어.> <장장수로채 입장에서는 동정호에 버티고 있는 천마성이 눈에 가시 같았을 테지.> 밖을 살피며 전음 주고 받는 계단 위의 무사들

<드디어... 오늘밤 무림의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다.> 눈 감고 있는 칠지무제 주변의 무사들 긴장되고 흥분된 표정 배경으로 나레이션

 

#27>

천마성의 깊은 곳. 높은 절벽을 등진 공터가 있고. 절벽 아래에는 동굴이 있다. 동굴에는 철문이 달려있고. 동굴 앞쪽의 공터에는 백여명의 무사들이 긴장한 채 경비를 선다. 철문은 반쯤 열려있다. 동굴 위에는 <鍊功關>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탁탁! 동굴 안을 달려가는 여자. 30대 중반쯤이다. 절세미녀지만 좀 드센 인상. <건곤일척 자료집 제1페이지>의 위상영이다. 위상영은 위극겸의 누이동생이며 천마성의 살림을 책임지는 내총관이다. 청풍에게 처음 여자를 가르쳐준 장본인이기도 하고

위상영이 달려가는 동굴은 천연동굴을 다듬어 만든 복도. 일정 간격으로 빛이 나는 구슬이 박혀있다.

위상영; (안돼! 안돼!) 이를 악물고

위상영; (이대로 죽으면 안돼요 소성주님! 당신은 나 위상영(威霜英)의 모든 것이니...) 배경으로 나레이션. <-천마성 내(內)총관 냉서시(冷西施) 위상영>

동굴 끝에는 또 다른 철문이 있는데. 철문을 지키던 두 명의 노인이 위상영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철문을 열고 있다. 고수들로 보이는 노인들. 천마성의 호법들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돌아왔구먼.> <고생했네 내총관.>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위상영에게 전음을 보내고

위상영; <수고가 많으세요 두 분 호법!> 달려오던 걸음을 늦춰서 노인들에게 다가가며 역시 전음으로 말하고

위상영; <소성주님은 어떤 상태인가요?> 철문 안쪽을 보며 노인들에게 다가오며 전음으로 묻고

<들어가서 직접 보도록 하게!> <벌써 내리 하룻동안 성주님의 치료를 받으시는 중이네.> 철문 열어주며 역시 전음으로 대답하는 노인들

위상영; <그러지요, 혹시 모르니 경비에 만전을 기해주세요.> 철문 안쪽으로 들어가며 말하고. 그러자

노인들; <강호에 나가 있는 모든 호법과 장로들을 본성으로 소환하고 있는 중이네.> <총단에 상주하는 고수들은 전부 연공관 주변의 경비에 동원한 상태고...> 철문 안으로 들어가는 위상영에게 전음으로 말하고

위상영; <제가 들어가면 연공관을 밖에서 봉쇄하세요. 안쪽에서 연락하기 전에는 열지 마시구요.>

<그럼세!> 그긍! 철문을 닫는 노인들.

닫히는 철문을 배경으로 안쪽으로 들어서는 위상영

철문 안쪽은 상당히 넓은 밀실. 중앙에 놓인 돌침대를 에워싸고 십여명의 남녀가 서있다가 돌아본다. 노파 한명, 젊은 시녀 두명. 나머지는 전부 노인들인데 그들 중에 위극겸도 있다

사람들 위상영이 다가오는 걸 보며 목례로 인사하고. 위상영도 목례로 인사하며 다가가고

위상영; <오라버니!> 위극겸에게 다가가고

위극겸; <어서 와라 상영아.> 끄덕이고

위상영;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성주님 생신 준비를 위해 악양(岳陽)에 나갔다가 급보를 받고 달려왔어요.>

위상영; <소성주가 대체 어떤 상태이기에 전서구를 날려서까지 제게 연락을 하신 건가요?>

위극겸; <네 눈으로 직접 봐라!> 옆으로 물러서 시야를 터주고

[!] 위극겸이 터준 사이로 그 안쪽을 보며 눈 치뜨는 위상영

사람들이 빙 둘러선 안쪽. 넓은 돌 침대가 있고. 그 돌침대에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다. 상체를 벗은 청풍이 등을 구부린 채 앉아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고. 여전히 피골이 상접한 모습인 청풍의 뒤에 사자천마 이무외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한손을 청풍의 등에 붙이고 있다. 이무외는 옷을 모두 입은 상태인데 눈을 감은 채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쿠오오오! 두 부자의 몸에서 강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사자천마 이무외는 건곤일척, 투천환일등에 나온 사자천존 이무외 캐릭터. 얼굴이 좀 검은 게 차이다.**

위상영; (엄청난 열기...) 숨이 턱 막힌 표정을 짓고

위극겸; <성주께서 소성주의 단전에 남아있는 미미한 양기의 불길을 다시 타오르게 하려고 애쓰시는 중이다.> 위상영의 뒤에서 전음으로 말하고

위상영; <소성주가 소양갈맥고에 중독되었다는 전서구의 내용이 사실이었군요.> 이를 악물며

위극겸; <소성주는 소양갈맥고에 중독되었을 뿐 아니라 그 상태에서 여러 번 방사(房事)를 하는 바람에 양기가 거의 고갈되어 버렸다.>

위상영; (대체 어떤 년과...) 질투 분노

위극겸; <소양갈맥고는 해독이 불가능한 극독이고... 유일한 치료법은 양강한 내공으로 남아있는 양기를 북 돋워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인데...>

위극겸; <그 과정에 엄청난 내공의 소모가 필연적이다.> 야릇한 표정

<오갑자(五甲子)를 상회하는 내공을 지니신 성주님이시지만 과연 소성주를 무사히 치료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쿠오오! 열기에 휩싸인 청풍와 사자천마의 모습 배경으로 위극겸의 말 나레이션

위상영; (제발...) 두 손 꼭 모아 쥔 채 간절한 표정으로 사자천마와 청풍 부자를 보고

위상영; (제발 소성주님을 살려 주세요 성주님!) (성주님께는 외아들이지만 제게는 낭군이고 목숨이랍니다.)

<소성주님만 살려주시면 저 위상영은 이씨 집안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어요.> 위상영의 간절한 기원.

그걸 야릇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위극겸

 

#28>

깊은 밤. 천마성. 대부분의 건물들에 불이 꺼졌고.

이제 천마성 앞의 호수를 오가는 배들도 없다. 포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만 수없이 정박해있고. 헌데

슥! 슥! 부두에 정박한 배들의 갑판 바닥에 나있는 문이 위로 열리면서

배 밑창에서 빠져나오는 검은 옷의 무사들. 물론 무제궁의 무사들이다. 모두 중년 이상들이고 눈빛이 형형해서 고수들로 보인다.

부두에 정박한 배들 중 가잔 큰 배. 칠지무제가 타고 있는 그 배

휘릭! 허공에서 검은 옷의 사내 한명이 그 배의 갑판으로 날아 내리고. 중년의 나이에 등이 굽은 곱추다. 다른 작품의 타노. 이 작품에서도 타노

끼릭! 주변 살피며 갑판의 문을 위로 여는 타노. 이어

옆으로 물러서는 타노. 그러자

[수고했다 타노(駝奴)!] 슥! 말과 함께 계단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검은 망토를 두른 칠지무제. 칠지무제 뒤로는 흑백신귀도 갑판 위로 나온다.

타노; [궁주님!] 포권하고

칠지무제; [상황은?] 밖으로 완전히 나서며 천마성 쪽을 보고.

타노; [천마성의 요인이면서 본궁에 내응(內應)해온 혈편복(血蝙蝠)으로부터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편지 한 장을 두 손으로 내밀며. 하지만

힐끔 보기만 할 뿐 편지를 받지는 않는 칠지무제. 그런 칠지무제 뒤로 흑백신귀가 나와서 주변을 경계한다

타노; [사자천마는 하루 반나절을 쉬지 않고 아들의 치료에 전념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내밀었던 편지를 내리면서 말을 하고. 칠지무제는 편지는 거들떠도 안 보고 뱃머리로 가며 천마성 쪽을 본다. 그 사이에 수많은 검은 옷의 무사들이 배에서 나오고 있다.

타노; [제 아무리 사자천마라 해도 지금쯤은 녹초가 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따라가며 보고. 흑백신귀도 좌우에서 사자천마를 따라가고. 주변의 배들 밑창에서 검은 옷의 무사들이 꾸역꾸역 나오고 있다.

칠지무제; [더 기다려 봐야 우리에게 이로울 건 하나도 없다.] 슥! 뱃머리에 올라서고. 이 배가 부두에서 가장 큰 배라 이제 칠지무제의 모습은 모든 흑의인들의 눈에 보인다

칠지무제; [각처에 파견 나가있던 천마성의 고수들이 이무외로부터 소환령을 받고 달려오는 중일 게 뻔하니...] 강렬한 눈빛으로 천마성을 보고. 이어

칠지무제; <모두 들어라!> 전음으로 말하며 둘러보고

주변의 배에서 나온 수백명의 검은 옷의 무사들이 일제히 칠지무제를 돌아보고

칠지무제; <현재 천마성 총단을 지키는 자들중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잘 해야 일, 이백명 정도일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주변의 배들 밑창에서 수백명의 검은 옷의 무사들이 나와서 대기하고 있다. 모두 눈빛이 강렬하고

칠지무제; <반면 아군의 숫자는 오백!> <비록 적지에 쳐들어왔지만 실제 전력(戰力)은 본궁이 압도하는 상황이다.>

무사들 끄덕이며 강렬한 눈빛들. 자신감이 넘치고

칠지무제;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일거에, 가차 없이 쓸어버려라. 저항하는 자는 일절 살려두지 마라!> 천마성 쪽으로 손짓하고. 그러자

<존명!> <천마성을 오늘 속하들 손으로 끝장내겠습니다!> 일제히 포권하는 검은 옷의 무사들. 이어

팟! 파앗! 일제히 새처럼 날아서 천마성으로 날아가는 검은 옷의 무사들

칠지무제; [흑백신귀(黑白神鬼)!] 무사들이 천마성 쪽으로 날아가는 걸 보며 말하고

흑백신귀; [예 성주!] [하명하시지요.] 뒤에서 대답하고. 갑판을 열어준 타노도 아직 남아있다.

칠지무제; [이무외와의 결판은 나 혼자 내겠소.] [두 분 장로께서는 이무외의 외동아들... 마태자 이청풍을 맡아주시오.]

흑백신귀; [삭초제근(朔草制根)!] [아직 어린놈에게 못할 짓이긴 하지만 화근의 뿌리는 제거해야겠지요.] [마태자는 우리 늙은이들이 확실하게 처리하겠소.] 스스스! 사라지는 흑백신귀.

칠지무제;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스윽! 허공으로 떠오르고.

칠지무제; (하지만 사자천마에게는 마태자라는 뛰어난 후계자가 있는 반면 내게는 불구인 딸 밖에 없다.) 허공을 걸어서 천마성쪽으로 가고. 그 사이에 오백여명의 검은 옷의 무사들이 물결처럼 소리없이 천마성으로 쇄도하고 있다.

칠지무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 무제궁이 천마성에게 멸절 당할 것은 명약관화!) (비겁하다 욕을 먹더라도 오늘 결판을 내야한다.) 천마성 쪽으로 날아가고

그 사이에 검은 옷의 무사들 선두가 천마성의 성벽을 날아 넘는다. 천마성 성벽을 지키던 천마성 무사들이 뒤늦게 발견하지만

단번에 노도같이 밀려드는 검은 옷의 무사들에게 파묻혀 버리는 천마성 무사들.

천마성으로 날아 들어가는 오백명의 검은 옷의 무사들. 뒤이어

삐익! 삑! 뎅뎅뎅! 천마성 안에서 다급한 피리소리와 종을 치는 소리들이 들리지만

[와아!] [쳐라!] [막는 자는 죽는다!] [사자천마의 종적을 찾아라!] 크악! 컥! [적... 적이다!] [무제궁 놈들이 기습을 해왔다.] 단번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천마성. 여기저기 불길도 치솟고

배에 홀로 남아서 아수라장이 되는 천마성을 보는 타노

타노; (기습은 성공했다.) 긴장하며 보고

타노; (궁주님의 제자 위진천을 통해서 본궁과 접촉해온 혈편복이 천마성의 내부 사정을 소상히 알려준 덕분인데...)

타노; (혈편복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또 위진천은 혈편복과 어떻게 줄이 닿았던 것일까?)

타노; (위진천은 혈편복쪽에서 먼저 자신에게 접선을 해왔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천마성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걸 보며 생각. 불길 속에서 비명과 호통소리, 피리소리 종 치는 소리들이 마구 뒤섞여 들리고

타노; (혈편복의 제보대로 사자천마가 마태자를 치료하느라 탈진한 상태라면 오늘 본궁이 천마성을 궤멸시킬 가능성은 아주 높다.)

타노; (당연히 기뻐해야할 일이지만...)

타노; (위화감과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타노; (궁주님과... 상파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황을 주시해야만 한다.) 진상파를 떠올리며 결심하고

 

#29>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7화  (2) 2024.05.02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4화  (1) 2024.04.29
[마고천장] 3화  (1) 2024.04.28
[마고천장] 2화  (2) 2024.04.26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6>

청풍이 머물고 있는 영빈관. 위극겸이 여전히 계단에 걸터앉아 있고

건물 안에서는 더 이상 야한 소리들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위극겸; (그렇게 요란하던 몸부림도 잦아들고...) 건물을 힐끔 돌아보고

위극겸; (그럭저럭 끝이 보이는 것같군.) 야릇한 웃음

 

[!] 눈 부릅뜨는 청풍.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인데 얼굴이 초췌해졌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되었고

청풍; (이게 무슨...) 벌벌 떨고. 지금은 청풍이 포숙정을 올라타고 있다. 포숙정은 여전히 면사를 쓴 채 누워있는데 신부복의 저고리 부분이 벌어져 젖가슴이 일부 드러나 있고. 치마는 허리 위로 걷혀져 아랫도리는 다 드러난 상태. 발에는 버선을 신고 있고

청풍;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마치 몸속의 양기가 모두 소진되어버린 것처럼...) 벌벌 떨리는 청풍의 두 팔. 포숙정의 몸통 옆을 짚어서 상체를 버틴 상태로. 그러자

포숙정; [왜요? 벌써 양기가 바닥이 났는가요?] 얇은 면사 속에서 배시시 웃고

청풍; (그러고 보니...) 눈 부릅

포숙정; (면사를 쓰고 있지만... 이 계집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숙정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를 벗기려 하고

포숙정; [더러운 손을 어디에 대려고 그래?] 탁! 매몰차게 손으로 청풍의 손을 손을 쳐내고. + 청풍; [!] 몸에 힘이 없어서 옆으로 휘청하고

포숙정; [내 손으로 직접 얼굴을 보여줄 테니 기다려라.] 콰직! 이어 손으로 면사를 거칠게 뜯어낸다. 그러자

쿵! 드러나는 포숙정의 얼굴

청풍; [네... 네년...!] 알아보고 눈 치뜨고

포숙정; [그렇다. 난 네놈 손에 무참히 돌아가신 철신금강 뇌공량이라는 분의 아내 포숙정이다!] 콱! 한손으로 청풍의 목을 움켜잡고

청풍; [끄윽!] 목이 조여져서 눈이 돌아가고

포숙정; [내가 그날 말했지? 날 죽이지 않으면 기필코 내 손으로 네놈의 심장을 뽑아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청풍; [네년... 네년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끄윽! 목이 조여지면서 꺽꺽! 거리고. 피골이 상접해서 전혀 저항을 못 한다

포숙정; [곧 죽을 신세니 궁금증은 풀어주마.] [네놈은 내가 음부에 머금고 있던 소양갈맥고에 중독 되었다.]

청풍; [소... 소양갈맥고!] 전율하고

포숙정; [표정을 보아하니 소양갈맥고가 어떤 독인지 아는 모양이네.] 마녀처럼 웃고

청풍; [끄윽...] 경악과 분노

포숙정; [묘강(苗疆) 독성부(毒聖府)에서 만든 소양갈맥고는 사내들에게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극독이다.]

포숙정; [그리고 난 소양갈맥고를 가장 효과적으로 네놈 몸에 침투시키기 위해 음부에 그걸 머금고 있었다.]

청풍; [나... 날 중독 시키려고 자진해서... 수청을 들었다는 것이냐?] 꺽꺽 거리고

포숙정; [누가 네놈의 약점이 호색이라는 조언을 해주더구나.] [그래서 소양갈맥고를 음부에 머금은 채 네놈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청풍; (내... 내게 대뜸 두 번의 절을 한 이유가... 날 오늘 밤 죽이고 말겠다는 결의의 표시였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포숙정이 자신에게 절 하던 장면 떠올리고

포숙정; [그래도 위안이 될 말은 한마디 해줄게.] 우둑! 다른 손으로도 청풍의 목덜미를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뭉클! 턱! 청풍의 상체가 허물어져서 포숙정의 품에 안기고. 포숙정의 젖가슴이 청풍의 빈약해진 가슴에 짓눌리고

포숙정; [너와 이거 하면서... 정말 황홀했다. 남편과 할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청풍의 귀에 속삭이고. 얼굴이 달아오른 채

청풍; [네... 네년...] 치욕스런 표정으로 신음. 하지만 몸에 힘이 없어서 포숙정의 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해진 팔로 필사적으로 침대를 짚어서 상체를 일으키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포숙정; [너무 좋아서 하는 도중에 까무라칠 뻔 했었는데...] 아랫도리를 움직이고

청풍; [제... 제발...] 절망에 차서 애원하고

포숙정; [사내는 지푸라기 하나 잡을 힘만 있어도 여자와 즐길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아랫도리로 청풍의 하체 휘감은 채 들썩이고

포숙정; [숨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 속에 들어있는 네놈의 더러운 그건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걸 보면...] 할딱이고

청풍; [죽... 죽여라! 더 이상 날 모욕하지 말고...] 비참

포숙정; [물론 죽여줄 거야.] [가장 수치스럽고 비참한 죽음인 복상사(腹上死)를 당한 모습으로...] 아랫도리를 움직이며 할딱이고

청풍; [하... 하지 마라! 제발...] 애원하지만

포숙정; [조금... 조금만 더 힘을 내 봐.] [이번에 한번만 더 양기를 내 몸에 쏟아내면 염라대왕 앞으로 갈 수 있게 될 테니...] 마녀처럼 할딱이며 몸을 움직여 청풍을 겁탈하고

청풍; (죽... 죽는다.) 청풍의 두 팔에 목이 휘감겨 고개 옆으로 돌린 채 절망

청풍; (이 계집 말대로 남아있는 양기가 모두 소진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 복상사를 당한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절망하고. 바로 그때

[소성주!] 밖에서 누군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자

포숙정; [쳇! 방해꾼이 나타났네.] 확! 청풍을 확 밀치며 일어나고

[무사하시오 소성주?] 다시 이어지는 고함소리. 그 배경으로 포숙정의 가랑이에서 풀려난 청풍의 몸은 침대 밖으로 넘어가고 있고

콰당탕! 청풍의 몸뚱이는 침대 아래로 나뒹굴고. 물론 알몸이고. 그 배경으로 포숙정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치마를 내리면서

포숙정; [네놈의 숨통을 직접 끊어놓지 못하는 게 유감이지만... 이만 헤어져야겠다.] 사락! 치마를 내려 아랫도리를 완전히 가리며 침대에서 내려서고

청풍; [끄윽...] 침대 아래 바닥에 알몸으로 쓰러져 벌벌 떨고. 그 배경으로 포숙정은 욕실 쪽으로 가고

포숙정; [먼저 저 세상에 가서 기다려라.] 사락! 욕실의 입구에 쳐진 주렴을 손으로 가르며 돌아보고

포숙정; [네놈 아비도 곧 뒤따라가게 해줄 테니...] 촤락! 욕실의 주렴을 가르면서 욕실 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본다. 침대 옆의 바닥에는 알몸의 청풍이 피골이 상접한 채 누워서 벌벌 떨고 있고. 고개만 욕실 쪽으로 조금 돌린 채로. 이어

포숙정; [끝났어요.] 욕실 안으로 들어가며 누군가에게 말하는데. 욕실에는 달빛이 비스듬히 내려 비치고 있다. 지붕에 구망이 뚫려서 그곳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고

포숙정; [그만 절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말하고

청풍; (욕... 욕실 안에 누군가 있다.) 비로소 깨닫고. 고개 옆으로 조금 돌릴 채. 그때

귀면지존; [수고하셨소.] 슥! 달빛이 비치지 않는 욕실의 어둑한 곳에서 누군가의 손이 나와 포숙정의 팔을 잡고. 물론 귀면지존이다.

귀면지존; [부인이 오늘 세운 공로는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이오.] 쿵! 모습 드러내며 주렴 밖의 침실을 보는 귀면지존

 

#17>

[!] 흠칫! 하며 고개 들면서 일어나는 위극겸. 배경으로 [소성주!]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물론 유령귀왕의 외침이다

위극겸; (때맞춰 등장하시는군.) 일어나고

유령귀왕; [무사하시오 소성주?] 화악! 질풍같이 날아 내리는 유령귀왕

위극겸; [장주!] 계단을 내려가 유령귀왕을 맞고

위극겸; [이 밤중에 어인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포권하는데. 유령귀왕은 급히 다가온다

유령귀왕; [설명하면 길어지니... 우선 소성주님의 안위부터 확인하세.] 급히 위극겸을 지나 침실 입구로 가려 하고. 그때

콰당탕! 건물 안에서 무언가 나뒹구는 소리가 들리고

유령귀왕; [무슨...] + 위극겸; [헉!] 기겁하는 척. 이어

유령귀왕; [소성주!] 팟! 한 걸음에 계단을 건너뛰어 건물 입구로 쇄도하고. 위극겸도 당황하는 척 하며 뒤따라가고

유령귀왕; [실례하겠소이다.] 쾅! 문을 박살내며 뛰어 들어간다. 직후

[!] 그대로 굳어지며 눈 부릅뜨는 유령귀왕과 그 뒤를 따라 건물로 들어서던 위극겸도 짐짓 눈을 치뜨고

쿵! 침대 아래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청풍. 피골이 상접해있고

[소성주!]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려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비명

 

#18>

시간이 좀 지났다.

횃불과 등으로 대낮같이 밝아진 영빈관 건물. 하녀들과 하인들이 황망히 영빈관으로 드나들고 있다. 여러 가지 물건과 약재가 든 병등을 들고. 주변은 무사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다. 무사들을 지휘하는 건 교천기다.

의사로 보이는 노인들이 무사들의 안내를 받아 서둘러 들어가기도 하고. 그걸 보며 수군거리는 무사들. <중독...> <상태가 심각...> <얼마 못 버티고 죽을 것같은...> 등의 대화

그걸 월동문 밖에서 훔쳐보는 하녀 한명. 이어

서둘러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하녀

 

#19>

교소소의 거처. 역시 불이 밝혀져 있고

교소소; [죽... 죽어간다고? 마태자 이청풍이?] 사색이 되어 되묻고. 창가에 서있다가 돌아보며. 침실에는 불이 켜져 있고

하녀; [영빈관을 지키는 무사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어요.] 문간에 서서 교소소의 눈치를 보면서

하녀; [마태자 이공자는 어떤 극독에 중독 당했는데...]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이라고 해요.]

하녀; [이대로 가면 얼마 못가 죽게 될 거라고도 하고...] 눈치 보며 말할 때

털썩!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 교소소. 눈에 초점이 없고

하녀; [아... 아가씨!] 급히 다가와 부축하려 하지만

교소소; [가... 나가.] 넋이 나가 손짓을 하고

하녀; [예...] 눈치 보며 뒷걸음질.

탁!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는 하녀

교소소; [마태자... 천마성의 소성주인 그자가 죽을 거라고?] 실성한 듯 중얼거리고

그런 교소소의 뇌리에 떠오르는 유령귀왕이 고함치던 장면

 

유령귀왕;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만일 그년이 마태자를 노리는 자객이면 어쩔 생각이냐?] 분노하고

유령귀왕; [그래서... 그 계집이 마태자에게 위해(危害)라도 가하면 우리 유령산장이 무사할 것 같으냐?]

유령귀왕; [외아들을 잃은 사자천마가 우리 유령산장을 용서할 것같으냐 말이다!] 무섭게 화를 내고

회상 끝

 

교소소; [아버지... 아버지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어.] 턱! 등을 벽에 기대며 사색이 되어 중얼거리고

교소소; [내... 내 실수로 마태자가 죽게 되었으니...]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교소소; [우리 유령산장은 천마성의 보복으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거야.] 겁에 질려 울고

교소소; [엄마! 나... 소소는 이제 어떻게 해요? 나 때문에 유령산장이 망하게 되었으니...] 우는 교소소

 

#20>

다시 영빈관.

침대에는 청풍이 누워있고 나이 든 의사들이 진맥하고 있다. 침대 주변에는 유령귀왕, 위극겸, 청풍을 수행한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있다. 하녀들이 대야와 수건, 약통들이 얹혀진 쟁반등을 들고 침대 주변에 대기하고 있고. 하녀들과 젊은 의사들이 연신 들어오며 여러 가지 약재를 침대 옆의 탁자에 놓고 있는 중이다. 나이 든 의사들 중 몇은 그 약재들을 살피고 있고

청풍의 맥을 짚어보고. 눈을 까뒤집어보는 나이 든 의사들

서로를 보며 고개 젓는 의사들. 이어

청풍의 몸에 침을 놓기 시작하는 의사들. 다른 의사들은 하녀와 젊은 의사들이 방안으로 가져오는 약재들을 골라 약을 조제하고 있다. 가루를 낸 약재를 물에 타기도. 하는 모습

한명의 나이 든 의사가 청풍의 머리와 상체를 좀 들고.

고개가 젖혀지자 입을 벌리는 청풍

그 입에 가루를 낸 약을 탄 물을 붓는 의사들

청풍의 코가 의사의 손 잡혀서 막히고

꿀꺽! 꿀꺽! 어쩔 수 없이 물과 약을 마시는 청풍

약을 다 먹은 청풍을 조심스럽게 누이는 의사들

한명의 의사가 땀을 닦으며 유령귀왕에게 다가오고. 의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의사다. 이하 늙은 의사도 표기

유령귀왕; [어떤 상태인가?]

늙은 의사; [소성주께서 정신을 잃기 전에 소양갈맥고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소이다.]

유령귀왕; [분명 그렇게 들었네.]

늙은 의사; [소성주가 보이는 증상도 소양갈맥고에 중독되었을 때의 증상과 일치하외다.] 치료 받는 청풍을 보며.

유령귀왕; [그... 그럼 치료 방법이...] 굳어지고

늙은 의사; [없소이다.] 고개 저으며 한숨

[그... 그런...] 청풍을 수행한 무사들 사색. 유령귀왕과 위극겸은 예상했던 던 듯 굳어진 표정이지만 놀라지 않고

늙은 의사; [소양갈맥고는 이름 그대로 양기를 소멸시켜서 경맥을 말라붙게 하는 극독이외다.] 청풍을 보며

늙은 의사; [즉, 해독을 할 수 있는 독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유령귀왕; [나... 나도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방법이...] 사색. 청풍을 수행한 젊은 무사들도 사색

늙은 의사; [만일 중독 초기에 발견해서 독성이 퍼지지 않게 막았으면 심각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늙은 의사; [소성주는 소양갈맥고에 중독된 상태에서 여러 번 계집과 관계를 한 탓에 양기가 거의 다 소멸되어 버렸소이다.]

유령귀왕; [해독... 해독이 안된다 해도 뭔가 치료할 방법은 있지 않겠는가?] 필사적인 표정으로 묻지만

늙은 의사; [지금 상황에서 소성주를 살리는 방법은 양기를 보충해줄 기사회생의 영약을 먹이는 것인데...] 난감

유령귀왕; [기... 기사회생의 영약이라면...]

늙은 의사; [만년 묵은 거북이의 내단인 만년금구단(萬年金龜丹)이나 천년 이상 산 잉어 천년화리(千年火鯉)의 피, 또는 신통력을 얻은 산삼이나 하수오 정도겠지만...] 말끝을 흐리고

유령귀왕; [그... 그런 영약은 천운이 닿아야 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늙은 의사; [일단 우리 유령산장이 보유하고 있는 양기가 강한 보약은 전부 투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의사들이 연신 청풍에게 뭔가 먹이는 모습을 돌아보고

<침술을 써서 양기의 소모를 극한까지 제한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청풍의 몸에 침을 놓는 나이 든 의사들의 모습 배경으로 의사의 말

유령귀왕; [정말... 정말 소성주를 살릴 방법은 없는 것인가?]

늙은 의사; [한 가지 가능성은 있는데...] 난감

유령귀왕; [그게... 그게 뭔가?]

늙은 의사; [살펴보니 소성주는 아직 단전에 양기를 일부 보전하고 있소이다.] [워낙 내공이 심후했고 또 익힌 무공이 신묘했던 덕분일 것이외다.]

유령귀왕; [단전에 보전하고 있는 그 양기가 혹시...] 기대

늙은 의사; [불씨의 역할을 할 수 있소이다.] 끄덕

늙은 의사; [만일 누군가 소성주의 단전에 내공을 투입해주면...] [작은 불씨가 강한 바람을 만나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되살아날 여지가 있지요.]

유령귀왕; [내가... 내가 하겠네.]

유령귀왕; [내가 내공을 모두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소성주의 몸속에 남아있는 불씨를 살려보겠네.]

늙은 의사; [유감스럽게도 장주님은 소성주를 도울 수가 없소이다.] 고개 젓고

유령귀왕; [어... 어째서인가?]

늙은 의사; [장주님께서 익힌 무공은 음유(陰柔)해서 오히려 소성주의 몸에 남아있는 불씨를 꺼트릴 수 있기 때문이외다.]

유령귀왕; [아!] 절망

늙은 의사; [아주 강한 양강(陽强)의 무공을 익혔으면서 내공이 최소한 삼갑자(三甲子) 이상인 인물만이 소성주의 양기를 되살려줄 수 있소이다.]

유령귀왕; [확... 확실히 난 자격이 없군. 양강한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뿐더러 내공이 채 이갑자(二甲子)도 되지 않으니...] 비지땀을 소매로 닦고. 그때

위극겸; [소성주에게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요?] 늙은 의사에게 묻고

늙은 의사; [본장이 보유하고 있는 양강한 성질의 영약을 모두 먹이고 있으니까...] 치료받는 청풍을 돌아보고

늙은 의사; [최대 열흘 정도는 버티실 수 있을 것이오.]

위극겸; [그럼 되었소!] [서둘러 소성주를 천마성으로 모시고 가야겠소이다.] 침대로 다가가고

유령귀왕; [위총관! 혹시...]

위극겸; [성주님은 천하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내공을 지니셨으며 천마성의 무공은 원래 양강한 성질의 것이오.] 청풍을 내려다보며

위극겸; [즉, 열흘 안으로 소성주를 천마성으로 모시고 갈 수만 있다면 살릴 수 있다는 뜻이오.] 강렬한 표정으로 말하고

[!] [!] 침 꿀꺽! 삼키는 유령귀왕과 청풍을 수행한 젊은 무사들

 

#21>

아침. 유령산장. 여전히 우중충 음산

유령산장 입구. 여러 사람이 나와 있고 한 대의 가마를 덩치 큰 상복 입은 무사들 네명이 짊어지고 있다. 기둥과 천장은 있지만 벽과 문은 없는 가마 안에는 청풍이 힘없이 누워있다. 위극겸과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서있고. 가마 뒤에서는 유령귀왕이 교천기에게 뭔가 말하는 중이다. 유령산장의 의사들과 하녀들이 수십명 나와 있다.

유령귀왕;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아비가 직접 소성주를 모시고 천마성까지 다녀와야 한다.] [아비가 없는 동안 본장의 일은 천기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교천기의 어깨를 만지며 말하고

교천기; [본장은 걱정 마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포권하고

유령귀왕; [본장의 후계자인 네가 제 몫을 해낼 때가 되었음을 명심해라.] 돌아서고

교천기; [명심하겠습니다.]

유령귀왕; [가세 위총관!] 가마쪽으로 가고

위극겸; [그러지요.] 돌아서고

팟! 유령귀왕이 먼저 몸을 날리고. 그 뒤를 가마를 멘 장한들이 날아오른다. 가마 뒤를 위극겸과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따라간다. 젊은 무사들은 상자를 짊어지고 있고

[다녀오십시오 장주님!] [존체보중하십시오.] 교천기와 유령산장의 식솔들 멀어지는 가마를 향해 외치며 포권 하거나 허리 숙이고

삽시에 까마득히 멀어지는 가마 행렬

교천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라...) 눈 번뜩

교천기;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내게 하신 당부다.) 돌아서고

교천기; (마태자가 죽든 살든 우리 유령산장에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본장의 보물들과 무공 비급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두어야한다.) 강렬한 표정으로 유령산장 안으로 들어간다.

 

#22>

높은 산 위에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있는 귀면지존. 귀면지존의 뒤에는 복면인 한명이 매를 한 마리 팔뚝에 앉힌 채 서있다. 매의 발목에는 천이 묶여있고

멀어지는 가마 행렬이 작게 보이고. 귀면지존의 시점

귀면지존; [여기까지는 순조로운 진행이로군.] 흐흐흐! 음산하게 웃고

귀면지존; [무제궁으로 신응(神鷹)을 날려라!] [마태자 이청풍이 천마성에 도착하는 다음날 총 공격하라고!]

복면인; [존명!] 고개 숙이고

복면인; [가라!] 휘익! 매를 날려보내고

화악!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는 매

귀면지존; [흥분되고 기대 되는군.] [내가 설계한 대로 숱한 목숨이 사라지고 무림의 운명이 뒤바뀌게 될 테니...] 흐흐흐! 음산하게 웃는 귀면지존

 

#23>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마고천장] 3화  (1) 2024.04.28
[마고천장] 2화  (2) 2024.04.26
[마고천장] 1화  (2) 2024.04.25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

깊은 밤. 하늘에는 보름달. 유령산장의 후원. 잘 가꿔진 정원에 둘러싸인 화려한 건물. 불이 켜져 있다.

교소소; [뭐라구요?] 분노하며 벌떡 일어나고

교소소; [어떻게... 어떻게 제게 그런 일을 시키실 수가 있어요?] 분노하여 치를 떨며 얼굴 발개진 교소소. 그 앞에 유령귀왕이 앉아있다. 배경으로 나레이션. <-유령일염(幽靈一艶) 교소소(喬素素)> 장소는 교소소의 침실이다. 교소소는 잠옷 차림이고. 침대에는 화려한 신부복이 한 벌 펼쳐져 있다.

유령귀왕; [진정하고 애비 말을 마저 들어라 소소야.]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서 맞은편에 일어선 교소소를 달래고

유령귀왕; [아무렴 아비가 아무 생각도 없이 너보고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고 했겠느냐?]

교소소; [하지만...] + 유령귀왕; [너도 아비가 명리(命理;사주)에 밝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교소소의 말을 막고

유령귀왕; [그리고 아비가 마태자의 사주를 뽑아 헤아려 보니 마태자는 오늘 밤 자식을 얻을 운수로 나왔다.]

교소소; [그... 그러니까 저보고 오늘밤 마태자 이청풍에게 몸을 바쳐서 그 인간의 아이를 배라는 건가요?] 분노와 수치심에 치를 떨며 유령귀왕을 노려보고

유령귀왕; [천마성이 어떤 가문이냐?] 설득

유령귀왕; [천고기재인 마태자의 활약 덕분에 조만간 무제궁을 누르고 천하의 주인이 될 명문중의 명문이다.] 심각

유령귀왕; [만일 마태자의 아이를 낳기만 하면 넌 장차 천마성의 안주인이 될 것이다.] [무림에 적을 둔 여자에게 이보다 더한 출세가 또 어디 있겠느냐?]

유령귀왕; [그러니 내키지 않더라도 아비의 뜻에 따라다오.]

교소소; [물론 근래 천마성의 기세가 무제궁을 압도하고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교소소; [그렇다고 뜬금없이 저보고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고 하시는 건...] + 유령귀왕; [아비가 왜 무제궁의 청혼을 거절했겠느냐?]

교소소; [아버지!] 울상

유령귀왕; [아비의 판단으로 무제궁은 이제 얼마 못 버티고 천마성에게 궤멸 당한다.]

유령귀왕; [당연히 우리 유령산장은 천마성 쪽에 줄을 서야하는데 마침 마태자가 방문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했다.]

유령귀왕; [이런 상황이니 여러 말 말고 마태자가 머무는 영빈관(迎賓館)을 찾아가거라.] [아비가 준비해온 저 신부복을 입고...] 침대에 펼쳐져 있는 화려한 신부복을 가리키고. 하지만

교소소; [싫어요!] 두 주먹 불끈 쥐며 바락

교소소; [아무리 권세가 좋다고 해도 어떻게 난생 처음 보는 사내에게 몸을 바칠 수가 있어요?] 울먹이면서

교소소; [전 절대 마태자, 그 인간이 수청은 들 수 없어요.] 이를 갈고

유령귀왕; [권하는 게 아니라 아비로서 명령하는 것이다.] 굳어진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고

교소소; [그... 그런 억지가...!] 억울

유령귀왕; [만일 아비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라면...] 입구쪽으로 걸어가고

유령귀왕; [유령산장을 나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마라.] 화가 좀 난 표정으로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간다

교소소; [아버지!] 다급하게 외치지만

탕! 거칠게 닫히는 문. 이제 방에 교소소 혼자 남아있고

교소소; [이게 무슨 폭거(暴擧)야?] 분노. 억울

교소소;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처녀인 딸 보고 처음 보는 사내의 수청을 들라는 게 말이 돼?] 이를 갈고

교소소; (하지만 아버지의 성격상 내가 끝내 마태자의 수청을 거절할 경우 정말로 유령산장에서 쫓아낼 텐데...) 울상

교소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죽어도 마태자에게 몸을 바치는 건 싫은데...] 잠옷 소매를 물어뜯으며 울먹이고. 바로 그때

[그 고민, 내가 해결해줄게.] 누군가의 말이 들려 눈 부릅뜨는 교소소

포숙정; [내가 동생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어줄 수도 있어.] 슥! 촤락! 침실에 딸린 욕실의 주렴을 들추며 침실로 들어서는 포숙정의 모습

교소소; [당... 당신 누군데 내 침실에...] 당황하며 주춤 물러서고

포숙정;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어.] 침대로 다가오고

포숙정; [다만 마태자와의 동침을 간절히 원하는 여자라는 것만 알면 돼!] 사락! 신부 복장을 두 손으로 집어 들고

포숙정; [동생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은인이기도 하고!] 신부 복장의 옷을 두 손으로 들어 자신의 몸에 대보면서 야릇하게 웃고

교소소; (살았다!) 침 꿀꺽 삼키는 교소소

 

#11>

역시 밤. 잘 가꿔진 정원에 둘러싸인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 건물이 있는 정원 일대가 높은 담장으로 에워 쌓여있어 조용하다. 역시 깊은 밤이라 인적이 없고. 불이 꺼진 건물 앞에는 청풍을 수행한 두 명의 젊은 무사가 경비를 서고 있다. 건물 처마에는 <迎賓館>이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월동문으로 누군가 들어서고.

흠칫! 하며 차고 있는 칼 손잡이에 손을 대는 무사들. 그때

위극겸; [수고한다.] 다가오는 위극겸.

[총관님!]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십니까?] 포권하는 무사들

위극겸; [교대해주러 왔다. 너희들에게 배정된 거처로 가서 눈을 좀 붙이도록 해라.]

무사들; [괜잖습니다.] [아직 졸리지 않습니다 총관님.]

위극겸; [말 들어라.] [내일 또 먼 길을 가야하니 너희들도 좀 쉬어야 한다.]

[하오면...] [분부 따르겠습니다.] 포권하는 무사들

서둘러 떠나는 무사들

위극겸; (이래 저래 긴 밤이 되겠군.) 영빈관 앞을 떠나는 무사들을 보며 음산하게 눈을 번뜩이고

위극겸; (여러 인생의 운명이 오늘밤을 기점으로 대격변을 겪게 될 테니...) 생각할 때

건물 모퉁이에서 불빛이 보이고. 돌아보는 위극겸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두 명의 여자. 늙은 노파가 등을 옆으로 들어 앞길을 비춰주는 뒤로 화려한 신부 복장을 한 여자가 따라온다. 얼굴을 면사로 가린 그 여자는 물론 포숙정이다.

위극겸; (왔군.) 눈 번뜩이고

<오늘 밤의 주역이...> 포숙정의 모습 크로즈 업. 면사가 얇아서 얼굴이 비쳐 보인다.

 

#12>

넓고 화려한 침실. 불이 꺼져 있어 어둡다. 영빈관의 내부다

큰 침대에 누워있는 청풍. 상체를 벗은 채 허리 아래를 얇은 이불로 덮고 있다. 건장한 상체가 보디빌더 같다. 침실 한쪽에는 주렴이 쳐진 욕실이 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 움찔! 하며 깨어나는 청풍

사락!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서는 포숙정. 문 밖은 약간 밝다. 포숙정을 안내 해온 노파가 등을 들고 있어서.

청풍; (여자...) 눈 감은 채 생각하고

달칵!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는 포숙정

청풍; (유령귀왕 교백이 어째 수청들 여자를 보내지 않는가 싶었다.) 약간 쓴웃음

<내가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건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문간에 서서 망설이는 포숙정을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당연히 유령귀왕 교백은 나와 동침할 여자를 준비해뒀을 텐데 밤이 깊도록 찾아오지 않아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포숙정의 떨리는 손 배경으로 청풍의 모습이 좀 보이고

청풍; (일단 방에 들어오긴 했지만 망설이고 있다.) 눈 감은 채 생각하고

청풍; (그렇다는 건 저 여자가 하녀나 가기(家妓;개인 집에 고용된 기녀)처럼 천한 신분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생각할 때

슥! 이윽고 결심하고 문간을 떠나 침대 쪽으로 다가오는 포숙정

청풍; (드디어 결심을 했군.) 눈 감은 채 생각

청풍; (정황상 저 여자는 유령산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청풍; (그런 여자와 동침을 했다가는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망설이는 사이에 포숙정은 침대 옆에 이르고. 이어

슥! 침대에 누운 청풍을 향해 절을 한다.

청풍; (수청을 들러온 처지에 절을 하다니...) 어이없고. 헌데

슥! 다시 일어나더니

또 한 번 절을 하는 포숙정

청풍;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절을 한다?) 약간 찡그리고

<두 번의 절은 죽은 자에게 하는 제사의 예법인데...> 슥! 청풍의 생각을 배경으로 두 번째 절을 한 포숙정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든다

청풍; (고의는 아닐 테고...) (긴장해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두 번 절 하는 게 결례라는 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겠지.) 생각할 때

포숙정; [천한 계집이 소성주님같이 존귀한 분의 수청을 들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공손히 말하고

청풍; (목소리로 미루어보자면 아주 젊은 여자는 아니다.) (당연히 처녀도 아닐 테고...) 눈 감은 채 생각하고

포숙정; [다만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면사를 쓰고 온 점은 용서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슥! 일어나고

청풍; (얼굴을 가린 채 찾아온 것도 그렇고...) (설마 유령귀왕이 자신의 아내나 첩들 중 한 명을 보낸 것인가?) 난감할 때

포숙정; [죄를 짓겠사옵니다.] 사락! 청풍의 아랫도리를 가린 얇은 이불을 걷어버리고.

이불이 걷히자 드러나는 청풍의 아랫도리. 빤스만 걸친 알몸이다. 빤스의 중간 부분은 이미 불룩해져 있고

청풍; (분명한 것은 이 여자가 천한 신분은 아니라는 점이다.) 포숙정이 두 손으로 자신의 빤스를 벗기려는 것을 느끼며

청풍; (거절하려면 더 늦기 전에 해야 하는데...) 갈등할 때

슥! 포숙정이 두 손으로 청풍의 빤스를 아래로 벗긴다

청풍; (이미 늦었다.) 한숨 체념

텅! 빤스가 벗겨지자 무언가 세차게 튀어나오고. 그걸 보며 면사 속에서 눈을 치뜨는 포숙정

청풍; (못 보일 것을 보였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체념하고.

포숙정; (이렇게... 이렇게 거대하다니...) 곁눈질로 청풍의 거시기를 보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청풍의 빤스를 완전히 벗긴다. 아랫도리를 들어서 포숙정이 자신의 빤스를 벗기는 걸 도와주는 청풍.

포숙정;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저 혐오스러운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다만...) 청풍의 빤스를 발에서 빼내고. 수치심과 살기를 필사적으로 참으며 곁눈질로 청풍의 거시기를 보고

포숙정; (참아야만 한다. 내 실력으로 이자를 죽이는 건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니...) 슥! 치마를 두 손으로 걷어 올리며 침대 위로 올라가고. 치마 속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 신을 벗고 올라가는데 발에는 버선을 신었다.

청풍; (이 여자... 확실히 처녀는 아니다.) 포숙정이 치마를 걷어 올리면서 자신의 아랫도리 위에 가랑이를 벌리며 서는 걸 느끼고

<처녀라면 이렇게 주도적으로 방사를 진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걷어 올린 치마를 두 손으로 모아 쥐며 청풍의 아랫도리 위에 소변 보는 자세로 앉으려는 포숙정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치마가 허리 위로 걷혀 올라가서 허연 아랫도리가 어둠 속에 다 드러났다.

포숙정; (드디어...) 슥! 소변 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사타구니로 넣은 손으로 청풍의 거대한 거시기를 잡는 포숙정

포숙정; (드디어 그이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편 뇌공량이 청풍에게 죽던 장면 떠올리고 눈이 광기로 번들. 포숙정의 기억 속 뇌공량은 가슴을 청풍의 손바닥에 밀리는 모습인데 등쪽으로 피와 내장과 뼈가 튀어나간다.

이어지는 회상

 

귀면지존; [이 독약의 이름은 소양갈맥고(消陽渴脈膏)요.] 청풍이 함정에서 벗어나던 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장소에서 귀면지존이 십센티 정도 길이의 유리병을 들어 보이며 말하던 장면

귀면지존; [점막(粘膜)을 통해 몸속으로 침투하는 성질을 지닌 독인데...] 유리병을 돌아보는 포숙정에게 보여주며

귀면지존; [이름 그대로 양기(陽氣)를 소멸시켜서 경맥을 말라버리게 만드는 독성을 지녔소.] 유리병에 들어있는 끈적이는 액체가 조금 움직인다. 수치심에 얼굴이 좀 발개지고 찡그린 채 그걸 보는 포숙정

귀면지존; [다만 양기를 소멸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여자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고 오직 사내에게만 치명적으로 작용을 하오.]

귀면지존; [이걸 은밀한 곳에 머금은 채 이청풍과 교접을 하기만 하면 그놈은 양기가 소멸되고 경맥이 말라붙어 지옥같은 고통을 느끼다가 죽게 될 것이오.] 음산한 눈빛으로 말하는 귀면지존의 얼굴 크로즈 업

회상 끝

 

포숙정; (음부에 독을 머금은 채 외간 사내와 교접을 하다니...) (그이가 살아계실 때라면 상상도 못할 짓이지만...) 슥! 청풍의 것을 자신의 아랫도리에 끼우려는 몸짓을 하며

포숙정; (그이를 무참히 죽인 이 원수에게 복수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한 짓도 할 수 있다.) 이를 악물고. 이어

스윽! 포숙정의 육중한 엉덩이가 아래로 내리눌러지고

청풍; [!] 이를 악물며 고개 젖히고

포숙정; [끄윽!] 역시 전율하며 벌벌 떨고. 두 손으로 청풍의 가슴 누른 채

완전히 밀착한 두 사람의 아랫도리. 걷어 올린 치마 아래로 드러난 희고 육중한 엉덩이가 청풍의 거뭇하고 근육질인 허벅지에 짓눌려있다

청풍; (기... 기가 막힌 명기...) (흡사 수많은 문어의 빨판이 숨겨져 있는 것같다.) 벌벌 떨고

포숙정; (정... 정신이 혼미해져! 너무 굵고 뜨겁고 깊어서...) 역시 혼망 가서 벌벌 떨고

포숙정; (그이... 그이와 십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느낌은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혼망 가면서 두 손으로 청풍의 가슴을 누르고

포숙정; (믿기지 않지만... 이 원수와 나의 속궁합은 너무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헉헉

포숙정; (그저... 그저 결합 했을 뿐인데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황홀한...) + [!] 혼망 가다가 진저리를 치고

포숙정; (무슨 죄 많은 망상이냐 포숙정아!) (그이를 무참히 죽인 원수와 교접하면서 쾌감을 느껴서 어쩌자는 것이냐?) 이를 악물고

포숙정; (용서 하세요 상공!) 두 손으로 청풍의 가슴 누르면서 뇌공량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장소는 침실인 데 알몸의 뇌공량이 야한 잠옷 차림인 자신을 무릎에 앉힌 채 정수리에 키스하던 장면이다.

포숙정; (당신... 당신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답니다.) 청풍의 가슴을 두손으로 누른 채 방아를 찧기 시작하는 포숙정.

청풍; [끄윽!]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포숙정의 엉덩이를 부여잡고

포숙정; (독이... 내가 음부에 머금고 있는 소양갈맥고가 점막을 통해 자신의 몸에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들썩! 들썩! 점점 더 빠르게 아래 위로 움직이는 포숙정의 허연 엉덩이

청풍; [허억! 부... 부인!] 비명 지르며 고개 젖히고

포숙정; (벌... 벌써 하려고 해!) 눈 치뜨고

포숙정; (원수 놈의 더러운 씨가 내 몸속에 뿌려지는 건 죽기보다 싫고 끔찍한 일이다.)

포숙정; (자칫 임신할 수도 있고...) + [공... 공자!] 방아를 찧으며 할딱이고

포숙정; (하지만 지금 중단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다.) (또 소양갈맥고가 이자의 몸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할 수도 있고.) + [어서...] 방아를 더 빠르게 찧으며

포숙정; (어차피 복수만 하면 죽어버릴 작정을 했던 터...) + [마음껏... 참지 마시고.. 원하는 대로...] 고개 숙이며 재촉하고

포숙정; (얼마든지 네놈의 더러운 배설물을 자궁에 받아들여주마.) + [어서... 어서 하세요!] 하악! 교성을 지르며 세차게 몸을 아래 위로 흔든다

청풍; [허억! 부... 부인!] 비명 지르며 고개 젖히면서 포숙정의 엉덩이를 부여잡는다

[!] 입 딱 벌리며 역시 고개 젖히는 포숙정

화산이 폭발하는 형상이 눈을 까뒤집은 포숙정의 뇌리에 떠오르고

포숙정; (하... 하고 있어!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뜨겁고 격렬하게...)

<너무... 너무 강렬하고 깊어서 나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이런... 이런 황홀경은 그이와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몸을 필사적으로 결합한 채 절정을 맛보는 두 사람의 모습 배경으로 포숙정의 생각 나레이션

 

#13>

건물을 밖에서 본 모습. 건물의 계단에 걸터앉아 하늘 보고 있는 위극겸

<부... 부인...> <하악! 벌... 벌써 또 이렇게... 공... 공자님! 정말 대단하세요. 하악!> 건물 안에서 야한 소리가 들리고

위극겸; (여러 가지 의미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밤이로군.) 하늘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위극겸; (오늘 밤을 기점으로 숱한 목숨들이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될 테니...) 야한 소리가 연신 나는 건물을 배경으로 앉아서 생각하는 위극겸의 모습

 

#14>

더 깊어진 밤. 유령귀왕이 청풍을 영접하던 그 건물. 대부분의 건물에 불이 꺼져 있지만 그 건물에는 불이 밝혀져 있다.

응접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유령귀왕.

유령귀왕; (후회 할 일도 걱정 할 일도 아니다.) 술 마시며 생각하고

유령귀왕; (소소를 마태자와 짝 지어주는 건 내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선택이고 도박이다.)

유령귀왕; (마태자의 사주(四柱)가 틀리지 않는다면 오늘밤 마태자는 거의 확실하게 자식을 얻는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며

유령귀왕; (그렇게 태어날 아이가 소소의 소생이라면... 천마성은 사실상 우리 교씨 집안 소유가 되는 것이다.) 히죽

유령귀왕;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찡그리고

<소소가 일전에 찾아왔던 운중신룡 위진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것같았다는 점이다.> 위진천과 인사하며 부끄러워하는 교소소의 모습을 배경으로. 거실에서 위진천과 인사하는 장면인데 현장에 유령귀왕과 교천기도 있었다

유령귀왕; (하지만 지금쯤 소소는 마태자의 여자가 되어 있을 테니 더 이상 헛된 마음을 품지 않겠지.) 술 마시며 생각할 때

교천기; [밤이 깊었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십니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천기

유령귀왕; [어서 오너라 천기야.] 돌아보고

유령귀왕;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해서 잠자기는 틀린 것같구나.] 앞의 자리에 앉으라 권하는 손짓하며

교천기; [마태자가 본장에 머물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시겠지요.] 유령귀왕 앞쪽 자리에 앉으며 말하고

유령귀왕; [물론이다.] 술 마시며

유령귀왕; [하물며 소소가 마태자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있는 데 어찌 신경이 쓰이지 않겠느냐?] 한숨. 그러자

교천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소가 마태자와 밤을 보내고 있다니요?] 놀라고

유령귀왕; [소소에게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고 했다.]

유령귀왕; [못하겠으면 집을 나가라고 겁을 줬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마태자가 머무는 영빈관에 갔을 것이다.]

교천기; [아버지가 잘못 알고 계십니다.] 굳어진 표정

유령귀왕; [무슨 소리냐? 내가 잘못 알고 있다니?]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부릅뜨는 유령귀왕

교천기; [이곳으로 오기 전에 순찰을 한 바퀴 돌았는데...] [소소는 불 꺼진 자기 방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눈치 보며

유령귀왕; [뭐야?] 벌떡! 일어나고

유령귀왕; [이 망할 년이 그렇게 알아듣도록 설명을 했건만...] 펑! 창문을 박살내며 날아나가고. 분노한 표정으로. 그 뒤에서 + 교천기; [아버지!] 깜짝 놀라며 일어나고

하지만 대답하지 않고 사라지는 유령귀왕. 근처의 경비 서던 무사들이 놀라서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고

교천기; [이게 무슨...] 경악

교천기; [그러니까 아버지는 소소에게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 했는데 소소는 딴 계집을 보내기라도 했다는 건가?] 팟! 놀라며 역시 밖으로 날아가고

교천기; (젠장!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이를 갈며 유령귀왕이 날아간 곳으로 날아가고. 건물 주변으로 모여들던 무사들 당황하고

 

#15>

역시 밤. 하늘에는 달. 잘 가꿔진 정원에 둘러싸인 화려한 건물. 건물이 있는 정원 일대가 높은 담장으로 에워 쌓여있어 조용하다. 바로 교소소의 거처인데 불은 안 켜져 있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불이 꺼진 침실의 창가. 잠옷 차림인 교소소가 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서 하늘의 보름달을 보고 있다.

<후환은 없을 거야. 오늘 밤이 지나면 마태자 이청풍은 영원히 동생을 괴롭히지 못하게 될 테니까.> 알몸에 화려한 신부복을 입으면서 웃던 포숙정의 말을 떠올리는 교소소

교소소; (무슨 뜻이었을까? 마태자가 영원히 날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교소소; (설마 그 여자, 마태자를 죽일 생각이었을까?) 침 꼴깍. 하지만

교소소; (내 알 바 아니다. 그 인간이 죽든 살든...) 이내 고개 젓고

교소소; (만일 위공자님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혼망 간 표정. 유령귀왕의 거실에서 위진천과 인사하며 수줍어하던 자신의 모습 떠올리며 얼굴 발그레

교소소; (허구헌날 우중충하고 음침한 인간들만 보아온 내게 밝고 자신감 넘치는 위공자님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 같았어.)

교소소; (그 때문에 위공자님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버렸고...) 화끈거리는 뺨을 두 손으로 만지며 좋아 죽으려 하고

<아버지와 오빠의 눈을 피해서 그분에게 내 마음을 전하게 되었어.> 은밀한 담장 아래에서 위진천의 품에 안겨 키스하는 교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교소소의 생각 나레이션

교소소; (비록 그분에게 몸을 완전히 바친 건 아니지만... 난 이미 위공자님의 여자야.)

교소소; (그런 내게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는 아버지의 명령은 청천벽력이었지.)

교소소; (만일 그 여자가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다면 난 유령산장에서 도망쳐서라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했을 거야.) 포숙정을 떠올리고

교소소; (다른 여자가 마태자의 수청을 든 걸 알면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시겠지만 어쩌겠어?) 샐쭉 거리고

교소소; (하나뿐인 딸을 때려죽이기야 하겠어?) 코웃음. 직후

화악! 갑자기 방안에 돌풍이 불고

교소소; [엄마야!]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돌아보는데

유령귀왕; [소소 네년...] 쿠오오! 돌풍 속에서 나타나며 살벌한 표정의 유령귀왕. 콰당탕! 주변의 가구들이 돌풍에 휘말려 나뒹굴고

교소소; [아... 아버지!] 겁에 질려 비틀 물러나고.

턱! 교소소의 엉덩이가 창틀에 닿고

유령귀왕; [그렇게 알아듣도록 말했거늘...] [아비의 명령을 귓등으로 흘려들어?] 분노

유령귀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태자의 침실로...] + [!] 말하다가 눈 부릅. 침대를 본다. 침대에는 당연히 화려한 신부복이 없고

유령귀왕; (어쨌든 첫날밤이라 준비해준 예복이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에 소름이 오싹 끼치는 유령귀왕.

교소소; [아버지! 진정하시고 제 말도 들어주세요.] 애원

교소소; [사실 저는 운중신룡 위공자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 유령귀왕; [예복!] 이를 갈며 버럭 고함.

교소소; [흑!] 깜짝 놀라는 교소소

유령귀왕; [아비가 가져다준 신부 예복은 어디로 치웠느냐?] 살벌. 이를 바득

교소소; [그... 그게...] 당황

유령귀왕; [네 년 설마...] 깨닫고 눈 부릅

교소소; [죄... 죄송해요 아버지!] [저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겠다는 여자가 있어서 신부복을 그 여자에게 주었어요.] 눈치 보며 겁 먹은 표정

유령귀왕; [여자?] 콱! 손으로 교소소의 목을 움켜잡고. + 교소소; [악!] 목이 조여지며 비명

유령귀왕; [여자라니...!] [어떤 년이 너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겠다고 했느냐?] 이를 갈며 교소소의 목을 쳐들고

교소소; [몰... 몰라요!] [갑자기 나타나서 대신... 저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겠다고...] 컥컥! 몸이 허공에 쳐들리며 컥컥 대고

유령귀왕; [닥쳐!] 우둑! 교소소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 교소소; [끄윽!] 눈이 튀어나오려는 교소소

유령귀왕; [어떤 년인지도 모르는 계집을 대신 마태자 침실로 보내는 게 제 정신으로 할 짓이냐?] 분노 살기

교소소; [끄윽! 제... 제발...!] 목이 조여지며 눈이 돌아가고. 그때

교천기; [아버지!] 화악! 실내에 나타나며 다급히 외치고

교천기; [고정하십시오.] [그러다 소소를 죽이시겠습니다.] 콱! 다급히 두 손으로 유령귀왕의 팔과 손을 잡아서 교소소의 목을 풀어주려 하고

유령귀왕; [망할 년!] 퍽! 분노하며 거칠게 교소소를 패대기치고. + 교소소; [악!] 나뒹굴며 비명. 교천기도 유령귀왕이 뿌리치는 힘에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유령귀왕;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만일 그년이 마태자를 노리는 자객이면 어쩔 생각이냐?] 분노하고

<자... 자객!> 비로소 사색이 되는 교소소. 나뒹굴었다가 목을 만지며 일어나려 하면서

[!] 교천기도 눈 부릅 뜨고

유령귀왕; [그래서... 그 계집이 마태자에게 위해(危害)라도 가하면 우리 유령산장이 무사할 것 같으냐?]

유령귀왕; [외아들을 잃은 사자천마가 우리 유령산장을 용서할 것같으냐 말이다!] 무섭게 화를 내고

교소소; [저는... 저는 그냥 마태자에게 수청을 들기 싫어서...]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손으로 목을 만지면서

유령귀왕; [망할 년! 계집의 좁은 소견으로 가문을 멸문의 위험에 몰아넣기나 하고...] 화악! 다시 몸에서 돌풍이 일어나고

<네년에 대한 처분은 마태자의 안위를 확인하고 내리겠다.> 콰아! 사라지는 유령귀왕의 모습을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말

교천기; [이런 이런...] 한숨 고개 절레 저으며 창쪽으로 가고

교천기; [이번 일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네 편은 되어주지 못하겠다.] 창쪽으로 가며 교소소에게 말하고

교소소; [오빠...] 울먹이지만

교천기; [마태자의 수청을 들기 싫었으면 멀리 도망쳐버리기라도 할 것이지...] [누군지도 모르는 계집을 대신 보낸 건 정말 생각 없는 짓이었다.] 휘익! 창문 밖으로 날아가고

교천기; [아무쪼록 마태자에게 아무 일 없기를 기도 하거라.] 날아간다

교소소; [내가... 내가 정말 그렇게 죽일 짓을 한 거야?] 억울한 표정으로 이를 갈고

교소소; [하나뿐인 딸을 죽이려 들 정도로 이청풍, 그 인간의 안위가 소중한 거냐고!]

교소소; (아버지도 그렇고 이가놈도 그렇고 미워 죽겠어!) 이를 바득 바득 갈며 울고

<날 홀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줄 거야.> 방안에 홀로 주저앉아 분해하며 우는 교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16>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마고천장] 4화  (1) 2024.04.29
[마고천장] 2화  (2) 2024.04.26
[마고천장] 1화  (2) 2024.04.25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7화

 

                     미녀의 몸을 건 비무

 

 

 

희야가 나온 갱도는 아래쪽에 있는 화독문으로 길이 나있었다. 철광을 캐서 나르는 길이었다.

희야는 배후와 야산 위쪽에서 내려올 수도 있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우묵한 곳으로 옮겨갔다.

육연부가 있는 북쪽 방향으로 별도 잘 보였고 전망도 좋았다.

적들은 당장 희야를 공격할 뜻이 없는 듯 했다. 역시 곽범과 양설을 기다리는 것이다.

축릉사 하나가 말했다.

"흑귀면탈의 말은 뭣하나 맞는 게 없군. 칠접산에 중독되어 나뒹굴거라더니 멀쩡하기만 하니.”

독을 쓴 자들이 희야 등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희야는 저들이 기다리는 것이 곽범과 낭낭뿐만 아니라 육연부 여자들이 음약에 중독되어 발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희야와 단아 등은 잘 견디고 있었다.

육연부에서 성에 대해서 솔직하고 소탈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도를 하면서 하나의 마음을 붙잡고 다른 마음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법을 익혀왔던 덕분에 음약의 기운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와 같은 상태다.

언제 시위가 터지거나 손아귀를 벗어날지 몰랐다.

희야는 업고 있던 단아를 내려놓았다.

부상자들을 뒤로 모으고 싸울 수 있는 상태인 전옥과 두 계집애가 희야 뒤에 섰다.

척살객들은 양소의 명에 따라 희야 앞에서 횡진을 쳤다.

축릉사가 말했다.

"밤길 걷는 계집이 간음을 꿈꾸지 않을 리 없는데 얼굴 없는 사내들을 만났으면 얼굴만 가리면 꿈을 이루지 않겠는가? 우리는 너희 계집들의 목숨을 취할 생각이 없으니 치마들어 얼굴 가리고 죽을 자리를 면하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축릉사가 말했다.

"여자의 부끄러움은 얼굴에 있지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지. 얼굴을 가렸으니 이후에도 알아볼 사람이 없는데 늘 가린 치마 밑이야 부끄러울 일이 있나?”

은근한 말로 시작하는 노골적 유혹이었다.

말을 섞으면 오히려 말려들게 된다.

저런 말들이 계속되면 겨우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희야는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도 공력을 과도하게 쓰면 평정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다.

"칼 든 여자 하나도 상대하지 못하고 여럿이서 음탕한 소리만 늘어놓는다면 사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내가 아닌 짐승에게 희롱 당한다면 짐승이 수치스러우냐 희롱당한 여자가 수치스러우냐? 여자는 경멸할 뿐 수치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희야가 냉오하게 말했다.

축릉사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명가 등석자의 궤변을 여자 입에서 듣게 되는군. 말은 그래도 검으로 너를 꺾어야 사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너를 꺾으면 기꺼이 몸을 바치겠다는 말도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희야가 말했다.

"나는 약한 여자인데 천하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많겠나? 나는 단지 그대들이 사내인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상대가 사내라서 몸을 허락하는 거라면 네 처와 어미는 얼마나 많은 사내에게 몸을 허락하였느냐?”

원래부터 말이 왔다 갔다하는 경향이 있는 희야는 양설의 지도에 따라 명가의 궤변을 익혀오고 있었다.

따라서 희야는 옳다고 했다가도 그르다고 하고, 그 반대로 말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고 이치를 만들어 붙인다.

사업과 거래에서는 쓸 수 없지만 싸울 때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축릉사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내 처와 노모는 밤 걸음을 하지 않지. 종을 거느리지 않고는 바깥출입도 않는다.”

"너 같은 자가 사내라면 네 집 담장을 넘고 네 처와 어미의 치마를 걷는 사내도 있겠지.”

희야가 차갑게 웃으며 축릉사를 욕했다.

“네 아비가 네 아비고 네 자식이 네 자식인 줄은 치마 들어 얼굴 덮었던 네 어미와 네 처가 아니면 누가 알까? 네 집 담장 안의 노복이 너와 닮고 어느 종놈이 네 자식과 닮지는 않았더냐?”

축릉사도 기본적으로는 유교를 신봉하는 자들이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집착과 처첩의 정절에 대한 강요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도 같았다.

마침내 축릉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방자한 년.”

희야는 처음과 같은 어조로 욕을 이어갔다.

"두 손이 있으면서 칼도 뽑지 못하고 혀끝만 놀리는 건 손 없어서 짓기만 하는 개보다 못한 자가 아니냐? 근본이 있다면 어찌 사람이 개보다 못하겠는가? 너는 네 아비를 종으로 부려먹은 놈이 틀림없구나.”

친아비를 종으로 부려먹었다는 것은 어미가 종과 사통하여 낳았다는 말이었다.

이에 더 나아가면 종놈의 자식을 적자로 키우고 자기 자식을 서자 종놈으로 키우는 놈도 나온다.

희야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래도 검을 뽑지 않는 자라면 벗은 여자 앞에서도 다가설 용기가 없을 것이다.”

"네 년의 입을 찢고 주리를 틀어서 보마.”

축릉사가 이를 갈았다.

그자는 소매 속에서 끝이 낫처럼 휘어지고 날카로운 갈고리 두개를 꺼내들었다. 단검보다는 길어 두 자 가량 되었고 찌르거나 걸거나 베는 데 쓸 수 있는 무기였다.

희야는 단공36검법의 첫번째 초식인 만천과해를 준비했다.

단공36검법은 수원의 아버지가 만든 것으로 모든 초식이 병법과 통해있어 단순한 초식 이상의 위력을 발하는 절기다.

근처로 희야와 양소를 나누어 수색하고 쫓던 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희야와 양소는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었다.

그들은 곽범과 양설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미녀를 보자! 하는 소리와 맛나겠다! 는 등 음탕한 소리들도 나왔다.

신분이 낮은 자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고수들이 아래에서 희야와 미녀들을 올려다보면서 노는 형세가 되었다.

"음약이 약했던가 보군. 누가 다른 음약 있으면 좀 더 써보는 게 어떻겠소?”

희롱하는 소리도 나왔다.

희야는 단아를 묶느라 이미 찢어진 겉옷을 조금 더 찢어서 면사 밑으로 눈을 가리며 축릉사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눈을 가렸으니 사내라면 10초 안에 나를 제압할 수 있을 테지. 10초 안에 제압할 수 없다면 스스로 모자람을 알고 물러나라.”

"응당 사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희야의 말에 찬성하는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상황은 미녀가 몸을 걸고 비무 하는 것과 비슷했다.

싸움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고 미녀라면 눈도 까뒤집히는 강호인들이 이 상황을 마다할리가 없었다.

누가 다시 소리쳤다.

"어서 싸워라! 누가 이기든 결과를 보고 싶다.”

희야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면사를 걷었다.

어차피 패하여 죽게 되면 다 드러날 얼굴이었다. 면사로 가려도 사내들의 음심은 끊어내지 못했다.

강호의 여검객 하나로 위기 속에서 검으로 싸우다가 죽어 이름을 남기는 것도 괜찮았다.

흰 천으로 눈을 가렸지만 그 아래 위로는 흰 천보다 더 희고 빛나는 백옥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비녀를 뒤에 받친 작은 귀바퀴에서 이어진 가녀린 턱선이 붉은 입술을 받치고, 오똑한 콧날이 좌우 얼굴의 정기를 모아 아름다움을 비추었다.

연한 분홍빛 두 볼은 입술을 매달았다.

적들이 희야의 미모에 잠시 말을 잃었다.

쌍검을 드리우고 단공36검법의 춤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니 눈 가리고 하강한 선녀 같았다.

누가 욕을 했다.

"육연은 저런 미녀가 열도 넘는다는 거지!”

희야가 당당하게 외쳤다.

"덤벼라.”

축릉자는 조롱당하고 분노하였지만 눈을 가리고 서있는 미녀에게 칼을 휘두를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고리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내가 졌다. 눈 가린 여자와 싸워 이긴들 내가 사내라 할 수는 없을 터.”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도전하지. 내 눈을 가리고 도전하지.”

음심이 동해서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이 소리쳤다.

눈 가리개와 가슴가리개를 베어라는 말과 치마를 베서 다리를 보자는 소리가 연이었다.

희야는 자기가 푸줏간의 고기와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을 알고 시선을 견뎌야 했다.

"말만 많은 것들.”

그저 나직하게 욕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육연부의 감독 희! 누가 나와 검을 겨루겠느냐?”

희야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음성과 태도에 모두 당당한 기상이 서려있었다.

아쉬운 듯이 상대할 수 없다고 물러나버리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말했다.

"여걸이군. 오늘 죽어도 이름을 크게 남기겠어.”

적이지만 희야에게 감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희야의 미모에 현혹되어 광기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장미원 계집들 보다 더 낫다는 소리며 온갖 평과 추잡한 소리가 이어졌다.

윗쪽에서 단아를 비롯한 계집애들이 눈물을 흘렸다.

양소가 그들에게 말했다.

"경동하지 마시오. 큰아가씨께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부끄럽지만 변고를 만들지 않아야하오. 육연대인은 지금도 달려오고 있을 것이오.”

전옥이 고개를 저었다.

"감독님은 조금도 쉬지 못했어요. 공력도 많이 써서 독을 누르고 있기도 힘들어요. 저러다가 정신을 놓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에요.”

전옥이 단아를 보자 단아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면서 말했다.

"가! 가서 방법이 없을 때는 감독님을 깨끗하게 보내드려.”

전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육연부에는 미녀호걸이 아닌 이가 없구나.”

술법도 깨어지고 내공도 잃어버린 양소는 안타까워서 탄식만 했다.

"저 무리들은 장차 자기들에게 닥칠 죄과를 모르겠지. 이들 하나라도 잃는다면 육연이 삼족을 멸하고도 남을 것을.”

아래쪽에서는 누군가 검으로 희야와 맞서기 시작했다.

전옥이 내려가자 시선이 분산되고 소란스러워졌지만 시작된 싸움이 그치진 않았다.

희야의 검법은 병법의 묘리를 갖추었다.

초식이 절묘하여 내공을 동원하지 않고 초식으로만 맞선다면 절세고수라 할지라도 쉽게 상대하지 못한다.

도전하고 나선 자는 주위의 눈이 있으니 눈 가린 미녀를 내공으로 찍어 내누르는 방법을 쓰지 못했다.

때로는 검이 흔들리고 때로는 몸이 움직이는 희야의 검법 앞에 10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도전했던 자는 처음에는 약하게 공격했다.

그러다가 희야가 눈을 가리고도 전혀 불편 없는 것을 보고 제대로 공격하다.

그랬음에도 그자는 희야의 검법을 깨뜨리지 못했다.

걷어내고 끌어들이며 파고들어 흐트리는 매 초수의 절묘함이 보는 이들을 감탄시켰다.

칭찬소리와 함께 희야를 욕심내는 자들의 욕심은 더 높아졌다.

이 자리에서 희야를 탐하고 말게 아니라 굴복시켜 데려가서 첩으로 삼으려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희야의 검술이 대단한 줄 알자 도전할 고수들이 순서를 정했다.

하지만 희야는 내리 일곱 번 모두 눈을 가린 채 10초를 버텼고 도전자들이 부끄러워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도전자들 때문에 억지를 부리거나 분풀이하지도 못했다.

희야는 독을 누르는 것이 한계에 달해서 입도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도전자가 나서면 조용히 검법을 펼쳐 버텼지만 몸이 떨리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6>

낮. 험준한 바위산

좁은 계곡. 그곳을 날아오는 청풍과 위극겸과 두 명의 젊은 무사가 등에 상자를 하나씩 지고 따라온다. 좌우로 엄청난 높이의 절벽

청풍; [유령귀왕 교백이 무제궁쪽으로 말을 갈아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뒷짐 쥐고 걷듯이 날아가며 약간 뒤를 따라 날아오는 위극겸에게 묻고. 두 사람은 여유 있게 나아가지만 젊은 무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을 다해 날아온다

위극겸; [속하의 생각으로는...] 눈치 보면서

위극겸; [늘 그랬듯이 교백은 이번에도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청풍; [유령귀왕 교백이 워낙 꿍꿍이가 많은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던 바이지만...] 찡그리고

청풍; [그래도 이번처럼 무제궁의 거물을 드러내놓고 맞아들인 경우가 없지 않았소?]

위극겸;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제법 다른 상황이긴 합니다.]

위극겸; [이번에 유령산장을 방문한 운중신룡(雲中神龍) 위진천(威振天)은 무제궁의 궁주 칠지무제(七指武帝) 진무량(陳無量)의 둘째 제자입니다.]

위극겸; [무제궁 궁주의 제자가 보란 듯이 유령산장을 방문한 것은 유령귀왕 교백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청풍;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관은 유령귀왕이 무제궁 쪽으로 완전히 돌아설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같소.]

위극겸; [유령귀왕 교백은 절대 경솔한 인간이 아닙니다.]

위극겸; [천마성과 무제궁 어느 쪽으로 확실하게 노선을 정했다가는 유령산장의 존립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청풍; [그런 그자가 칠지무제의 제자를 대놓고 만난 이유를 짐작하기 쉽지 않소.]

위극겸; [아시다시피 유령산장은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사파무림(邪派武林)의 종가(宗家)라는 명분까지 갖고 있습니다.]

청풍; [유령산장 교씨일족이 오제(五帝)중 한명이며 사파무림의 시조격인 유령천자(幽靈天子)의 후손임을 총관도 믿고 있는 거요?] 좀 비웃는 표정

위극겸; [교씨일족이 정말 유령천자의 후손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눈치 보며

위극겸; [그들이 유령천자가 남긴 무공과 술법을 구사하는 건 사실입니다.]

청풍; [사람들 현혹하는 술법 따위가 뭐 대단하다고...] 비웃고

위극겸; [그렇게나 말입니다.] 아부

위극겸; [어쨌거나 유령산장과 적대하는 것은 사파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셈이 되긴 합니다.]

청풍; [그래서 본성이나 무제궁도 유령산장을 지워버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손을 쓰지 못해왔지.] 끄덕

위극겸; [유령산장은 자신들의 위치를 이용하여 천마성과 무제궁 어느쪽에도 편향(偏向) 되지 않으면서 실속을 차려왔습니다.]

위극겸; [이처럼 얻는 게 많은 중립정책을 유령귀왕이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위극겸; [소성주님께서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신 이후로 열세에 몰리고 있는 무제궁이 유령산장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청풍; [파격적인 제안?]

위극겸; [속하가 추측하기로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위극겸; [먼저 양측간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혼인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풍; [혼인이라...]

위극겸; [아시다시피 유령귀왕 교백은 일남일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유령공자(幽靈公子) 교천기(喬天基)와 유령일염(幽靈一艶) 교소소(喬素素)가 그것들입지요.> 교천기와 교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위극겸의 설명. 교천기와 교소소는 <아랑힐월>에 나온 교가장의 남매 캐릭터. 교천기의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음침하고 교활한 인상. 교소소는 18세 전후로 좀 발랑 까진 인상

 

청풍; [칠지무제가 그들 남매중 누군가를 자신의 슬하와 짝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위극겸; [칠지무제의 슬하에는 딸만 하나 있습니다.] [아들도 둘을 두었었지만 어렸을 때 거푸 요절한 탓이지요.]

청풍; [칠지무제의 유일한 핏줄인 그 딸도 불구가 아니오?]

위극겸; [무염무후(無染武后) 진상파(陳祥波)!] [소성주님에 필적하는 천고의 기재라 아들들을 거푸 잃은 칠지무제에게 위안이 되는 딸이었지만...]

 

<오 년 전 돌연 주화입마에 빠져 하반신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내공까지 잃어서 지금은 남의 보살핌이 없으면 운신도 못하는 처지라고 합니다.> 정원에서 유모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먼 곳을 보는 진상파의 모습. 이때 나이는 20대 초반. 칠지무제가 월동문 밖에 뒷짐을 짚고 서서 그걸 보며 한숨을 쉰다. 칠지무제 진무량은 다른 작품의 천강마존 진무량 캐릭터

 

청풍; [비록 불구라 해도 진상파는 칠지무제의 유일한 핏줄...] [무제궁의 후계 문제가 걸려있으니 경솔하게 배우자를 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닐 것이오.]

위극겸; [그래서 속하도 만일 무제궁에서 혼인을 제안했다면 진상파와 관련된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풍; [유령공자 교천기를 무염무후 진상파와 짝 지어주려는 게 아니면...]

위극겸; [무제궁에서는 유령일염 교소소를 혼인의 대상으로 지명했을 것입니다.]

청풍; [칠지무제는 교소소를 누구와 짝 지어주려고...] 말하다가 입을 다물고

위극겸; [소성주님께서 추측하시는 대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미심장하게 웃고

위극겸; [칠지무제는 자신의 둘째 제자인 운중신룡 위진천과 유령일염 교소소를 짝 지어주자는 제안을 유령귀왕에게 했을 것입니다.]

청풍; [칠지무제가 교소소의 배필로 내세운 게 위진천일 것이라 단정하는 근거는 뭐요?]

위극겸; [첫째 제자인 석헌중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으니 둘째 제자인 위진천을 내세우지 않았을지요.]

청풍; [하긴...] 끄덕

청풍; [결국 위진천이 직접 유령산장을 방문한 건 선을 보기 위해서였겠소.]

위극겸; [위진천이 교소소와 부부가 되면 무제궁과 유령산장은 인척지간이 되는 셈이므로...] 말하다가 흠칫! 하고. 청풍이 손을 내밀어 위극겸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급정거하고 있다. 시선은 앞쪽을 향한 채

위극겸; [소성주님!] 휘익! 청풍을 따라 급정거하며 의아. 그 뒤를 헐레벌떡 따라오던 젊은 무사들도 흠칫! 하며 급히 멈춰 서려 하고

위극겸; [왜 그러십니까?] 휘릭! 청풍과 나란히 계곡 바닥에 내려서면서 묻고

청풍; [냄새...] 코를 벌름거리고

청풍; [무슨 냄새가 나지 않소?] 코를 벌름거리며 앞을 보고

위극겸; [그러고 보니...] 역시 코를 벌름거리며 놀라고

슈우! 어떤 냄새가 일행의 코 주변으로 흐르고. 젊은 무사들도 흠칫! 하며 코를 벌름거리고

위극겸; [이건 분명 기름 냄새입니다.] 말하며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가고. 앞쪽은 약간 굽어지는 모퉁이고

위극겸; [이런 깊은 산중에 기름 냄새가 날 일이 없는데...] 갸웃하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청풍과 두 명의 무사들이 뒤를 따르고

[!] 모퉁이를 돌아서던 위극겸과 그 뒤를 따라가던 청풍, 젊은 무사들 눈 치뜨고

쿵! 앞쪽에는 바위들이 십미터 이상으로 쌓여있어서 길이 막혀있는데. 그 바위들 아래쪽에 여러 개의 나무통이 깨져 있고. 깨진 나무통에서 흘러나온 기름들이 계곡 바닥에 흥건하다

위극겸; [함... 함정입니다!] 기겁하며 뒤로 주춤

위극겸; [어떤 놈들이 길을 막고 기름을 대량으로 뿌려놓았습니다.] [화공(火攻)이 예상 되니 빨리 여길 이탈해야합니다.] 사색이 되어 외치는데

청풍; [이미 늦었소!] 말하며 위를 보고, 반사적으로 위를 보는 청풍과 두 명의 젊은 무사들

쿠쿵! 화악!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바위와 불을 붙인 횃불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쏟아지는 바위와 횃불들 사이로 절벽 위 양쪽에서 무사들이 바위를 밀어 떨어트리고 횃불을 던지는 것이 보인다.

[헉!] [안... 안돼!] 젊은 무사들 비명 지르며 돌아서서 도망치려 하고.

청풍; [퇴로는 없다.] [내 주변으로 모여라!] 부악! 두 주먹 불끈 쥐어 몸에서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젊은 무사들에게 외친다. 달아나려다가 돌아보는 젊은 무사들. 위극겸도 당황하며 청풍의 옆으로 오고. 직후

콰콰쾅! 바닥을 강타하는 바위들. 바위들이 고여있던 기름에 떨어져 기름을 사방으로 치솟게 만들기도 하고

화악! 확! 튀어 오르는 기름과 횃불들이 만나며 강한 불길을 일으킨다

 

#7>

드드드! 계곡을 밖에서 본 모습. 지면이 갈라져 생긴 긴 균열인데 지진이 난 듯 뒤흔들리고.

콰콰쾅! 화악! 엄청난 폭음과 함께 계곡 아래쪽에서 대량의 연기와 불길이 치솟는다. 계곡 위쪽에 수십명의 무사들이 물러서며 비틀거린다. 지면이 마구 흔들려 휘청거리고. 무사들은 칼과 검 외에도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있다.

화악! 계곡의 밖으로까지 치솟는 불길과 화염.

[해치웠다!] [이 정도 함정이라면 마태자 이청풍이 아니라 그 아비 사자천마 이무외라도 죽이고 남을 것이다.] [드디어 본문이 천마성에 당한 치욕을 갚게 되었구나.] 드드드! 진동하고 흔들리는 양쪽 절벽 위에서 환호하는 무사들. 하지만 그 직후

펑! 갑자기 연기와 불길을 뚫고 미사일처럼 치솟는 청풍. 양손으로 젊은 무사들의 팔을 잡고 있는데 몸이 반투명한 방어막에 덮여있으며 그 방어막에는 위극겸도 들어있다. 위극겸은 청풍의 뒤에 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고

[헉!] [마... 마태자다!] [마태자가 죽지 않았다.] 경악하는 절벽 양쪽의 무사들. 급히 활을 뽑아드는 자들도 있고

휘익! 사색이 된 젊은 무사들의 팔을 잡고 한쪽 절벽 위에 내려서는 청풍. 위극겸도 자석에 이끌리는 쇳조각처럼 청풍의 몸에 이끌려 근처에 내려서며 휘청거리고

[말도 안되는 괴물...] [호신강기로 쏟아지는 바위와 불길을 뚫고 날아올랐다.] [마태자가 제 아비 사자천마에 못지 않은 고수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휘익! 패앵! 무사들 공포에 질리면서도 다급히 활에 화살을 메겨서 청풍과 일행을 겨누고

[쏴라!] [죽여라!] [형제들의 복수다!] 피피핑! 쐐액! 수십개의 화살이 일제히 청풍과 일행에게 날아든다. 아주 빠르고 강하다. 바닥에 내려선 젊은 무사들은 사색이 되지만

징! 양손을 좌우로 펼치는 청풍. 손이 진동하고

멈칫! 멈칫! 빠르게 날아들던 화살들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추고

[헉! 우리가 철궁으로 쏜 화살을 멈추게 했다!] [말도 안되는 격공섭물(隔空攝物)...] 활을 쏜 자세로 놀라는 무사들.

청풍; [네놈들이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다.] 살벌 표정

청풍; [남의 목숨을 노렸을 때는 네놈들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을 터...] 스읏! 슥! 양쪽으로 내밀었던 손을 뒤집고

청풍; [그 결의를 존중해주겠다!] 팽! 휘릭!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서는 허공에 뜬 화살들

[우... 우릴 노린다!] [피... 피해라!] [안돼!] 팟! 휘익! 무사들 일제히 날아오르며 비명 지르지만

청풍; [잘 가라!] 스팟! 팟! 양손을 강하게 젓고. 그러자

쩍! 팽! 날아올 때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들

퍼퍽! 퍽! 푹! 푸푹! 모든 화살이 쏜 자들의 등에 박힌다. 몸이 관통될 정도로 깊게. 허공에 뜬 채 화살에 맞아 휘청하는 무사들

[크아아아악!] [컥!] [아악!] 퍼퍽! 콰당탕! 쐐애액! 화살에 맞은 무사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지는 자도 있고 깊은 계곡으로 추락하는 자도 있고

<가... 가공!> 전율하고 흥분하는 청풍의 뒤쪽 젊은 무사들. 위극겸은 고개 끄덕이고 있다. 야릇한 표정으로

젊은 무사들; (호신강기로 우박같이 쏟아지는 바위와 지옥같은 불길을 뚫고 탈출한 것도 놀라운데...) (수십 개의 화살을 정확히 쏜 자들에게 돌려보냈다.) 놀라고

<소성주님의 무공은 이미 신화경(神化境)에 접어드셨구나.> 함정을 판 무사들이 몰살하는 배경으로 선 청풍의 모습. 헌데 청풍은 멀리를 보고 있다. 위극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고

반짝! 멀리 있는 높은 산봉우리. 그곳에서 무언가 반짝이고

청풍; [...] 찡그리며 그걸 보고. 흠칫! 하며 그런 청풍을 보는 위극겸

위극겸; [왜 그러시는지요?] 청풍 옆으로 다가와 함께 산봉우리 쪽을 보고

위극겸; [뭔가 발견하시기라도...] 기웃거리며 산봉우리쪽을 보고

청풍; [아니오.] 고개 젓고

청풍; [생각지도 않은 방해 때문에 지체했소. 그만 갑시다.] 걸어가고. + 위극겸; [예...] 산봉우리를 힐끔거리며 따라가고. 젊은 무사들도 짐을 추스르며 걸음 옮기려 하고

청풍; (어떤 자가 지켜보는 기분이었는데...) 찡그리고

청풍; (설령 그렇다 해도 따라잡기는 불가능... 신경 쓰지 말아야한다.) 걸어가고

멀어지는 청풍의 일행. 헌데

 

#8>

멀어지는 청풍의 일행 뒷모습이 원형의 유리에 비친다

산봉우리 근처 바위틈에 앉아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여자. 바로 포숙정이고. 포숙정 뒤에는 귀면지존이 서있다.

[...] 뭔가 생각하며 망원경을 내리는 포숙정

귀면지존; [직접 보신 소감이 어떠시오?]

포숙정; [무공으로든 함정으로든...] [마태자 이청풍, 저 마귀를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어요.] 이를 바득 갈고.

귀면지존; [본좌도 부인과 같은 생각이오.] 끄덕

귀면지존; [당금 무림에서 마태자를 무공으로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채 다섯 명이 되지 않소.] 손가락을 펴보이고

포숙정; [귀면지존(鬼面至尊)께서도 그 다섯 명 중 한분이신가요?]

귀면지존; [언감생심!] [본좌도 마태자와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삼할 아래라고 봐야하오.] 고개 젓고

포숙정; [그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이가놈을 죽일 수 있는 비책은 갖고 계신 듯하군요.] 차가운 표정으로

귀면지존; [그렇긴 하오만...] 좀 난감한 듯 말을 흐리고

포숙정; [그게 무언지 기탄없이 말씀해보세요.] [전 이미 이가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맹세한 몸이니...] 고개 조금 돌린 채 쌀쌀 맞게

귀면지존; [그런 결심이시라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소.] [마태자의 거의 유일한 약점은...] 뜸을 드리다가

귀면지존; [호색(好色)이오!] 말한다

포숙정; (역시...) 짐작했다는 표정이고

귀면지존;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 그대로 마태자는 여자를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오.]

귀면지존; [본래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도 있지만...] [대대로 이씨 집안은 자손이 귀한 탓에 사자천마가 외아들인 마태자로 하여금 일찍 여자를 알게 한 탓이오.]

포숙정; [그렇군요.] 좀 민망한 표정

귀면지존; [철이 들자마자 여자를 안 결과 이청풍은 여자가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가 되었소.]

포숙정; [물론 숱하게 여자를 건드렸어도 자식은 얻지 못했지요?]

귀면지존; [이청풍의 나이도 이미 약관을 훌쩍 넘겼소.] 끄덕

귀면지존; [그 나이 되도록 단 한명의 자식도 얻지 못해서 이청풍은 물론이고 사자천마도 초조해하고 있는 형편이오.]

포숙정; [그러니까 은인께서 제게 제안하시는 방법이란 것이...] 얼굴 붉어지고. 좀 화난 표정

귀면지존; [부인은 이청풍에게 몸을 허락하기만 하면 남편의 복수를 할 수 있소.]

포숙정; [이청풍이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방사(房事;남녀간의 교접) 할 때는 방심한다 해도...] 억지로 분노와 수치심을 누르며

포숙정; [보잘 것 없는 저의 무공으로 이청풍을 죽이려는 시도는 그다지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군요.] 새침. 귀면지존은 품속에 오른손을 넣고 있고

귀면지존; [부인은 굳이 이가놈을 죽이려 애쓰실 필요가 없소.] 슥! 품속에서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내며 말하고. 길이는 십센티 정도인데 안에 끈적이는 검은 액체가 반쯤 들어있다

귀면지존; [이걸 부인의 은밀한 곳에 머금고 있기만 하면 이가놈은 물론이고 그 아비인 사자천마까지 확실하게 죽일 수가 있소!] 유리병을 들어보이며 말하고

<은... 은밀한 곳에 머금고 있으라고?> 침 꿀꺽! 삼키며 그 유리병을 돌아보는 포숙정

 

#9>

<-북망산(北邙山)> 음침한 산. 밤. 하늘에는 보름달. 기암절벽. 도처에 크고 작은 무덤들

기암절벽들 사이에 자리한 음침한 장원. 드라큐라의 성 같은 분위기

<-유령산장(幽靈山莊)> 위 장원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어느 건물. 상복을 입은 무사들이 배회하고 있고. 입구에는 청풍을 수행한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긴장한 채 서서 주변을 오가는 상복을 입은 무사들을 보고 있다

유령귀왕; [부디 곡해하지는 말아주시오 소성주!] 굽신거리는 유령귀왕 교백. 청풍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다. <기인천추>에 나온 캐릭터. 교천기와 교소소도 그 작품의 캐릭터. 굽신거리는 유령귀왕 뒤에는 교천기가 굴욕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다. 유령귀왕과 마주 앉은 청풍의 뒤에는 위극겸이 서있고. 청풍은 차를 마시는 중이다.

유령귀왕; [운중신룡 위진천이 우리 유령산장을 직접 찾아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소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말하는 유령귀왕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유령산장 장주 유령귀왕(幽靈鬼王) 교백(喬魄)>

유령귀왕; [무제궁에서 중요한 제안을 하기 위해 사자(使者)를 보낸다는 통보를 받긴 했소이다만...] 땀을 닦으며

유령귀왕; [설마 궁주의 제자인 위진천이 그 사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소이다.] 억지 웃음

위극겸; [그러니까 무제궁의 술수에 교장주께서 일방적으로 당하셨다?] 찡그리며 말이 없는 청풍을 대신하여 위극겸이 말하고

유령귀왕; [그렇네 위총관!] 살았다는 표정

유령귀왕; [근래 본장이 천마성과 급격히 친밀해지자 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무제궁이 쓴 꼼수가 위진천을 직접 본장으로 보낸 것이었네.]

유령귀왕;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칠지무제의 제자가 본장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천마성으로부터 의구심을 살 건 뻔하지 않은가?]

위극겸; [그렇다 치고...] 냉소

위극겸; [칠지무제가 제자를 직접 보냈다면 대단한 제안을 했을 것같습니다만...]

유령귀왕; [그... 그게...] 당황

위극겸; [소성주께는 차마 말씀드리기 난감한 제안을 받은 것입니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그러자

유령귀왕;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더 숨기겠는가?] 한숨 체념

유령귀왕; [칠지무제는 위진천을 통해서 청혼(請婚)을 해왔다네.]

[!] 차를 마시며 무언가 생각하는 청풍.

위극겸; [청혼?] 짐짓 모르는 척

위극겸; [칠지무제가 외동딸 무염무후 진상파를 소장주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제안이라도 한 것입니까?] 유령귀왕의 뒤에 서있는 교천기를 보며

유령귀왕; [그럴 리가 있겠는가?] 기겁하며

유령귀왕; [당금 무림의 그 누가 무제궁의 상속자인 진상파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망상을 할 수 있겠는가?] 억지 웃음

불만스러운 표정의 교천기. 배경으로 나레이션. <-유령공자(幽靈公子) 교천기(喬天基)>

위극겸; [외동딸을 내세운 청혼이 아니라면 혹시...] 놀라는 척

유령귀왕; [칠지무제는 본 장주의 어리석은 딸년을...] 소매 속에 손을 넣고

유령귀왕; [자신의 둘째 제자인 위진천의 배필로 주었으면 한다는 친서를 보냈네.] 소매 속에 넣었다가 꺼내는 손에 편지가 한통 들려있다.

위극겸; [영애를 무제궁에 달라는 청혼이었군요.] 놀라는 척

유령귀왕; [이게 칠지무제가 위진천을 통해 보낸 서찰이외다.] 슥! 편지를 조심스럽게 청풍의 앞으로 내밀고.

편지봉투의 표면에는 <幽靈鬼王 喬莊主 親傳>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편지봉투를 보기만 하고 집어 들지는 않는 청풍. 차를 마시면서

유령귀왕; [청혼의 당사자인 위진천이 직접 방문해서 당혹스럽고 난감하긴 했지만...] 그런 청풍의 눈치를 보고

유령귀왕; [일단 완곡하게 거절을 하고 돌려보냈소이다.]

위극겸; [따님을 무제궁에 시집보내면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되는 것인데 받아들이시지 그랬습니다.] 냉소

유령귀왕; [그런 말 마시게나 위총관!] 정색하고

유령귀왕; [우리 유령산장은 천마성과의 우의(友誼)를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네.] [딸년이 무제궁에 시집을 가는 일은 천지가 개벽해도 일어나지 않을 걸세.]

위극겸; [물론 장주님의 지금 그 말씀이 진심이라는 것은 압니다만...]

위극겸;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법!] [장주께서 상황에 쫓겨 무제궁과 사돈관계를 맺을 일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좀 비웃고

유령귀왕; [하늘에 맹세코 그런 일은...] 좀 화난 표정으로 말하다가 흠칫! 하고. 탁! 청풍이 소리를 내어서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움찔하며 입을 다무는 유령귀왕. 위극겸도 청풍의 눈치를 보고

청풍; [교장주!] 찡그리며

유령귀왕; [말씀 하시지요 소성주!] 눈치 보며

청풍; [밤이 깊어져 오늘은 부득불 귀장에서 하룻밤 폐를 끼쳐야겠습니다.] 슥! 일어나고

유령귀왕; [폐라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따라서 일어나고

유령귀왕; [귀한 걸음을 해주셨는데 어찌 대접이 소홀할 수가 있겠소이까?] [거처를 마련해두었으니 함께 가십시다.] 앞장서서 거실을 나가며 안내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청풍과 위극겸

유령귀왕의 안내를 받아 건물에서 나가는 청풍과 위극겸. 그걸 노려보는 교천기

교천기; (젠장!) 이를 바득

교천기; (아무리 상대가 무림 양대세력중 하나인 천마성의 후계자라 해도 아버지의 저자세는 지나치시다.)

<아들인 내 또래의 애송이에게 아랫사람인 것처럼 굽신거리기나 하고...> 가식적인 웃음 지으면서 청풍을 안내하여 건물 앞을 떠나는 유령귀왕 교백의 모습 배경으로 교천기의 생각 나레이션

교천기; (난 절대 아버지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는다.) 이를 바득

교천기; (마태자 이청풍!) (언제고 나 교천기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사악하게 웃는 교천기

 

#10>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마고천장] 4화  (1) 2024.04.29
[마고천장] 3화  (1) 2024.04.28
[마고천장] 1화  (2) 2024.04.25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마고천장 -魔高千丈

 

#1>

<무림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천마성(天魔城)과 무제궁(武帝宮)의 쟁패는 어느덧 육십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산을 등지고 자리한 웅장한 장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격전. 검은 옷의 무사들이 흰옷을 입은 무사들이 지키는 장원을 공격하는 모습. 전세는 치열하지만 검은 옷의 무사들쪽이 이기고 있다. 담장을 넘거나 무너트리고 안으로 쇄도하는 검은 무사들. 흰옷의 무사들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승패는 결판나지 않은 모습이다.

<어느 쪽의 전력도 상대방을 압도하진 못하는 탓에 정마쌍천(正魔雙天)으로 불리는 양 가문의 격돌은 끝날 줄 모르고 지루하게 이어져 온 것이다.> 위의 격전 장면에서 장원의 정문 모습 정문 앞에서 두 명의 인물이 싸우고 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다른 무사들처럼 날고 뛰는 게 아니라 마주 선 채 서로를 치는 모습이다. 둘 다 건장한 체격인데 한명은 평균보다 약간 더 큰 체격이지만 다른 한명은 2미터쯤 되는 키에 보디빌더같은 거인이다. 작은 쪽이 청풍이다. 이때 청풍의 나이는 20대 초반. 청풍의 몸은 방어막에 덮여있지만 거인은 방어막을 두르지 않은 대신 온몸이 강철같이 단단해 보인다. 두 사람이 싸우는 배경인 장원의 정문 처마에는 <鐵王莊>이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두 사람 주변에는 양쪽의 고수들 수십명이 손에 땀을 쥔 채 보고 있다. 관전하는 자들은 나이가 좀 있어서 양진영의 지휘부임을 알 수 있게 하고

<그러나 궁즉통(窮卽通)! 일갑자(一甲子) 넘게 균형을 이루어온 양 가문의 전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정문 앞에서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 크로즈 업. 패도적인 인상의 청풍과 보디빌더같은 체격에 몸이 강철처럼 번들거리는 거인이 모습. 이 거인은 철왕장의 장주인 철신금강 뇌공량. <건곤일척 자료집 제21페이지>의 뇌공량 캐릭터로 옷이 터져나가서 상체는 거의 벌거벗은 모습. 이때 나이는 40전후인데 옷이 터져나가 드러난 상체가 금속질로 번들거리게 묘사. 청풍과 뇌공량은 3미터쯤의 거리를 두고 마주 전 채 서로에서 주먹과 장풍을 날린다. 뇌공량은 벼락이 일어나는 주먹을 지르고. 청풍은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그 공격을 막고 흘려보낸다. 두 사람 앞 뒤로는 양 진영의 리더들이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 명의 기린아(麒麟兒)의 출현에 의해서였다.> 크아! 악을 쓰며 강력한 주먹을 날리는 뇌공량의 모습. 쇳덩이같은 주먹이 벼락과 충격파를 몰고 청풍에게 날아든다

! 뇌공량의 강력한 주먹이 청풍이 몸을 두른 방어막을 때려 출렁이게 만든다. 방어막이 청풍의 뒤로 확 밀리는 모습이고

! 그 충격파에 청풍의 가슴에 타격이 가해지고

!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면서 장풍을 날리는 청풍. 손바닥에서 손 모양의 섬광이 날아가

! 강철로 만들어진 것같은 뇌공량의 가슴을 때린다. 하지만

! 뇌공량의 몸을 진동시키기만 할 뿐 흔적도 남지 않는 청풍의 장풍

뇌공량;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냐 이()가야?] 콰직! 주먹을 움켜쥐어 다시 주먹질을 하려는 자세로 외치고. 눈 부릅뜬 뇌공량의 얼굴 배경으로 나레이션. <-무제궁 서북면(西北面) 통령(統領) 철신금강(鐵身金剛) 뇌공량(雷空量)>

뇌공량; [나 뇌공량의 철왕금강신(鐵王金剛身)은 천하최강의 외공(外功)이다!] [네놈의 봄바람 같은 장풍 따위에는 타격을 입지 않는다.] 부악! 바캉! 다시 청풍에게 내지르는 뇌공량의 주먹에서 엄청난 풍압과 벼락이 일어난다.

청풍; (이게 저자의 최대치 공격이겠군.) ! 양팔을 십자로 교차하며 기합을 넣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천마성 소성주 마태자(魔太子) 이청풍(李淸風)>

바웅! 청풍의 몸을 두른 방어막이 더 강화되고

! 탄력 있는 고무같은 그 방어막을 강타하는 뇌공량의 주먹. 주먹에 맞은 청풍의 방어막이 안으로 움푹 들어가며 그 충격파가 방어막의 다른 부분으로 퍼진다. 방어막을 움푹 들어가게 만드는 뇌공량의 주먹은 거의 청풍의 교차한 팔에 닿을 뻔하고

콰앙! 콰드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확 밀려가는 청풍. 양팔을 가슴 앞에 교차한 채 버티고 손 두 발이 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고. 그 앞에서 주먹을 휘두른 자세인 뇌공량의 역동적인 모습.

쿨럭! 피를 토하는 청풍.

[와아!] [이겼다!] [역시 장주님은 무제궁 사대천왕(四大天王)중 한분이시다!] [이가놈을 때려 죽이십시오 장주님!] 뇌공량의 뒤에서 환호하는 흰 옷의 무사들. 반면

[... 저런...] [소성주님!] [소성주님께서 중상을 입으셨다.] [안돼!] 청풍 뒤쪽에 서있던 검은 옷의 무사들은 사색이 된다. 그자들 중앙에는 위극겸이 서있다. 다른 작품의 위극겸과 동일 캐릭터이고 별호는 삼절마유로 천마성의 외총관이다. 이때 위극겸의 나이는 40대 중반인데 위극겸은 다른 자들과 달리 그리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고

뇌공량; [여기까지다 마태자 이청풍!] 으스대며 청풍에게 다가가고, 옷이 찢어져 드러난 상체의 피부가 강철처럼 번쩍이고

뇌공량; [지난 몇 년간 네 놈의 독수에 쓰러진 무제궁 형제들의 복수를 오늘 내 손으로 해주겠다.] 우둑! 양손을 마주 쥐어 소리를 내며 흉포하게 웃고

뇌공량; [네 아비 사자천마(獅子天魔) 이무외(李無畏)도 곧 보내줄 테니 먼저 저승에 가서 기다리...] + [!] 덜컥! 말하다가 무언가 느끼고 눈 부릅 뜨고. 그러자

청풍; [이제야 느낌이 오는 모양이로군.] 소매로 피를 닦으며 웃고. 몸을 바로 세우면서

뇌공량; [!] 얼굴이 고통으로 이지러지면서 비틀거리고

[... 장주님이 왜 저러시지?] [왜 그러십니까 장주님?] 뇌공량의 부하들이 놀라 외치고.

우둑! 우두둑! 강철로 만들어진 것같이 번들거리는 뇌공량의 상체가 마구 꿈틀대며 움직인다. 몸 속에서 무언가 돌아다니는 모습이고.

뇌공량; [끄윽!]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얼굴은 고통으로 이지러지는데

[... 저게 무슨...] [장주님의 몸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장주님은 외가기공(外家奇功)으로는 천하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인데...] 철왕장의 무사들 당황하고

뇌공량; [네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비틀. 고통으로 이지러진 채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은 입과 코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다가오고 있다

청풍; [뇌공량!] [철신금강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네 몸뚱이가 강철보다 더 단단하다는 건 사전에 알고 있었다.] ! 피를 옆으로 뱉고

청풍; [당연히 널 상대하기 위해 특별한 수단을 준비했다.] 소매로 입과 코의 피를 닦고

뇌공량; [... 네놈의 공격은 내 몸에 흠집도 못 냈는데 어떻게 이런...] 우둑! 우두둑! 몸속에서 무언가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고통스런 표정. 입과 코로 피가 흐르고

청풍; [비록 네 몸뚱이가 강철 이상으로 단단하긴 해도 피부 안쪽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소매를 내리며 웃고

뇌공량; [... 설마...!] 깨닫고

청풍; [그렇다.] [난 지금까지 널 가격한 모든 장력에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이치를 몰래 가미했었다.] 끄덕

뇌공량; [격산타우!] 눈 부릅

위극겸; (역시...) 끄덕. 야릇한 미소. 배경으로 나레이션. <-천마성 외()총관 삼절마유(三絶魔儒) 위극겸(威極謙)>

[격산타우라면...] [산 너머의 소를 때린다는 이름 그대로 간격을 두고 타격을 가하는 무공이잖은가?] 위극겸 주변의 천마성 무사들 흥분하고

청풍; [물론 격산타우는 그리 효과적인 무공이 아니다.] [잘해야 전체 타격의 이삼 할 정도만 몸 속으로 스며들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고통으로 이지러진 채 비틀거리는 뇌공량의 앞에서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면서 말하고

청풍; [그 때문에 난 네 미련한 주먹질을 견디면서 열 번 이상을 거푸 가격해야만 했다.]

뇌공량; [... 교활한...] 비틀

청풍; [격산타우를 써서 네 단단한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게 만든 형극장강(荊棘掌罡)의 가시들이 지금 네 몸속을 난도질 하고 있을 것이다.] 몸속에서 무언가 마구 돌아다니는 모습인 뇌공량의 모습을 보며 웃고. 이제 뇌공량의 입과 코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 형극장강이라면 가시같이 날카로운 강기인데...] [그게 장주님의 몸속을 누비고 다니는 중이라니...] 철왕장 무사들 공포

청풍; [아직 살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청풍;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앞으로는 무제궁 대신 천마성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면 형극장장의 힘을 뽑아내주마.] 거만하게

뇌공량; [개소리는...] 이를 갈고.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면서

뇌공량; [저 세상에 가서 마저 해라!] 부악! 악을 쓰며 사력을 다해 청풍을 향해 주먹을 날려온다. 주먹 주변에서 벼락과 돌풍이 일고

청풍; [안타깝군!] ! 한쪽 발을 강하게 앞으로 내딛으며

청풍; [살 수도 있었는데 죽는 쪽을 선택하다니...] 부악! 몸을 강하게 틀어 뇌공량의 주먹을 피하면서

! 몸을 트는 반동으로 강력하게 손바닥으로 뇌공량의 가슴을 친다.

! 뇌공량의 가슴을 친 청풍의 손바닥이 진동하고

! 가슴은 멀쩡하지만 등쪽이 터지면서 부서진 뼈와 내장과 심장이 튀어나가는 뇌공량

[!] [!] 보고 있던 양진영의 모든 사람들 경악하고

위극겸; (상상이상이로군!) 식은땀 흘리고

퍼억! 후두둑! 바닥에 흩뿌려지는 내장과 뼈와 심장들

<내공을 운용하지 못하면 외공도 약해진다. 그 때문에 강철보다 단단하던 뇌공량의 몸뚱이도 방금 전에 가해진 소성주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위극겸의 생각 + 뇌공량; [끄윽!]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입과 코로 피를 흘리는 뇌공량. 청풍은 손바닥을 내밀어 앞으로 기울어진 뇌공량의 몸을 떠받히는 자세로 서있다. 굴진자세로.

쩌적! 청풍의 손바닥이 닿은 뇌공량의 가슴에 마구 균열이 가고 있고

뇌공량; [... 이청풍...] 벌벌 떨며 양손으로 청풍을 끌어안으려 하고

뇌공량; [네놈이 손에 묻힌... 무고한 피의 대가는... 오직 네놈의 피로만 치룰 수 있을 것이다.] ! ! 이를 갈며 양손으로 청풍의 어깨를 잡지만

청풍; [그게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는 유언인가본데...] 비웃고

청풍; [너무 자주 들어서 그다지 감흥은 없군.] ! 청풍의 손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터엉! 뒤로 넘어가 바닥에 쓰러지는 뇌공량의 거구. 그 앞에서 청풍이 손바닥을 내민 자세로 서있고

[와아!] [해치웠다.] [드디어 무제궁의 사대천왕중 한 놈도 소성주님 손에 죽었다.] [마태자님 만세!] 위극겸 주변에서 일제히 환호하는 천마성 무사들.

위극겸; (드디어 결말이 났군.) 고개 끄덕이고 있고

[크윽!] [... 어떻게 이런 일이...] [장주... 장주님께서 저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다니...] 반면 철왕장의 무사들은 망연자실. 오열하고

도처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멈춰지고. 모두 정문 쪽을 보는데

청풍; [들어라!] 주변 둘러보며 고함

청풍; [항자불살(降者不殺)!]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청풍의 고함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지고. 천마성 무사들과 싸우던 철왕장 무사들 사색이 되고

청풍; [그러나 끝내 저항하는 자는...] 살벌한 표정을 짓고

청풍; [역자필살(逆者必殺)!] [기필코 죽여서 뇌공량의 저승길 동무로 삼아줄 것이다.] 살벌하게 웃고. 그러자

! ! 손에서 무기를 떨구는 철왕장 무사들

[투항하자!] [장주님께서도 패사하셨는데 더 이상 싸우는 건 무의미하다.] [우리가 졌소.]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오.] 바닥에 주저앉는 철왕장의 무사들

위극겸; (현명한 판단이고 처리다.) 끄덕.

<철왕장 무사들이 끝까지 저항했다면 우리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을 테니...> 천마성 무사들이 철왕장 무사들의 혈도를 찍거나 밧줄로 묶는 것을 보며 생각하고

위극겸; (소성주는 비단 무공이 부친인 성주에게 필적할 뿐 아니라 냉철한 안목과 탁월한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다.)

위극겸; (덕분에 우리 천마성의 전력은 급상승했다.) (성주가 갑자기 두 명이 된 셈이니 무제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위극겸; (지난 몇 년간 무제궁의 수많은 고수들이 소성주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었고...)

위극겸; (오늘 마침내 무제궁의 사대천왕 중 한명이며 무제궁의 서북면 분타들을 총괄하는 철신금강 뇌공량까지 소성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위극겸; (무제궁의 최고 고수들인 사대천왕중 한명이 죽었으니 육십년 넘게 유지되어온 정마쌍천(正魔雙天) 간의 세력 균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겠구나.) 생각할 때

[상공!] 누군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고. 흠칫! 하며 일제히 철왕장의 정문을 보는 사람들. 청풍도 돌아보고

포숙정; [상공! 상공!] 울부짖으며 철왕장의 정문을 통해 밖으로 달려 나오는 여자. <건곤일척 자료집 제23페이지>에 나오는 포숙정 캐릭터. 나이는 30살 가량. 절세미녀인데 좀 기가 센 인상이다. 실제로 곧 남편 복수를 하기 위해 끔찍한 짓도 마다 하지 않는다. 당황한 천마성의 무사들은 포숙정을 제지하지 못하고

위극겸; (드디어 등장하셨군!) 뇌공량의 시체 쪽으로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포숙정을 보며 눈 번뜩이고. 위극겸은 포숙정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었다.

포숙정; [안돼요 상공! 안돼요!] 와락! 뇌공량의 시체 옆에 주저앉으며 뇌공량의 시체를 끌어안는다.

청풍; [위총관!] [저 계집은...?] 포숙정이 뇌공량의 머리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것을 보며 위극겸에게 묻고

위극겸; [포숙정(浦淑貞)이라고... 뇌공량의 마누라입니다.]

청풍; [내가 또 본의 아니게 과부를 한 명 만들었군.] 쓴웃음

청풍; [홀몸이 된 게 가엽긴 하지만 방치하면 철왕장을 장악하는데 방해가 될 거요.] 돌아서고

청풍; [저 여자에게 뇌공량의 장례를 치르게 해준 후 본성으로 이송하도록 하시오.] 철왕장의 정문쪽으로 가려 하고

위극겸; [분부 받들겠습니다.] 고개 숙일 때

포숙정; [마태자 이청풍!] 남편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돌아보며 악을 쓰고.

철왕장 정문쪽으로 가다가 멈춰 서며 돌아보는 청풍

포숙정; [나도 이 자리에서 남편처럼 죽여라!] [만일 날 살려둔다면...]

포숙정; [기필코 내 손으로 네 놈의 심장을 뽑아내고 말겠다.] 악을 쓰고

[이년이...] [감히 누구에게 개소리냐?] [남편 곁으로 가고 싶으냐?] 천마성 무사들이 살벌하게 포숙정을 덮쳐가려 하지만

청풍; [됐다.] 손을 들고

멈추는 천마성 무사들

청풍; [지아비 잃은 계집의 한풀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되는 일이다.] 웃으며 철왕장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위극겸은 남고 몇 명의 나이 든 무사들은 따라간다.

[예 소성주님!] [하긴...] 무사들도 머쓱하고

포숙정; [두고 보면 알 게 될 것이다. 나 포숙정이 그저 한풀이로 네놈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것인지!] 여전히 악을 쓰고. 철왕장 정문을 통해 철왕장으로 들어가는 청풍을 향해 악을 쓰고

포숙정; [천지신명께 맹세하거니와...] [마태자 네놈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살지 않겠다.] 악을 쓰고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표시로 손을 들어 보이며 철왕장 안으로 들어가는 청풍. 나이 든 무사들이 따라가고. 철왕장 안에서도 천마성 무사들이 철왕장 무사들을 묶어서 끌고 가고 있다. 여자와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한곳에 모여 있고 천마성 무사들이 감시한다.

포숙정; [내 이름을 기억해둬라 마태자! 나 포숙정이 네놈을 파멸로 이끌 테니...] 악을 쓰며 우는 포숙정. 주변의 천마성 무사들은 설레 설레 고개를 젓고. 반면

[으아아아!] 울부짖는 포숙정을 지긋이 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위극겸

 

#2>

달이 떠있는 밤. 철왕장. 도처에 횃불이 밝혀져 있고. 천마성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경비 서는 무사들 빼고 천마성의 일반 무사들은 불이 환하게 켜진 대청이나 마당에서 술을 마시며 놀고 있다.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는 놈들도 있고

감옥이나 건물에 갇혀 있는 철왕장 식솔들. 남자들은 비참한 표정. 여자와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고 있고

감옥 건물. 엄중한 감시

감옥 내부. 철창이 쳐진 감방마다 철왕장 무사들이 가득 들어있다. 나이가 있어 보이고 고수들로 보이는 자들이다. 철왕장의 주요인물. 복도 끝에 철문이 달려 밖에서 안 보이는 감방이 있다

사내1;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천마성의 인간들이 본장의 식솔들을 해코지하지는 않고 있어.] 옆의 동료에게 속삭이고

사내2; [마태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본장을 천마성의 분타로 삼을 계획일 게야.]

사내2; [그래서 본장 식솔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개들이 망나니짓을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겠지.]

사내3; [하지만 언제 돌변해서 본장을 지옥으로 만들지 모르는 일이네.]

사내1; [마태자가 자신에게 맞서는 문파나 가문은 흔적도 남지 않게 쓸어버려온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

사내2; [돌아가신 장주님께는 죄송하지만 천마성에 복속할 수밖에 없어.]

사내3; [피붙이들의 안위가 걸려있으니 어쩔 수 없지.] 한숨

사내1; [그나저나 주모님이 걱정이로구만.] 복도 끝의 철문을 보며 한숨 쉬고

다른 놈들도 철문을 보고

 

#3>

<그렇게 금슬이 좋으셨던 장주님과 하루아침에 사별을 하셨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시겠나?> 철문 안쪽의 독방을 배경으로 사내1의 말 나레이션. 철문 안쪽은 어두운 감방인데 바닥에 포숙정이 시체처럼 늘어져 있다. 완전히 탈진한 모습이고.

힘없이 늘어진 포숙정. 그런 포숙정의 뇌리로 떠오르는 장면. 남편 뇌공량이 청풍에게 죽던 장면이다.

포숙정; (죄송해요 상공! 죄송해요.) 주르르! 눈물 흘리며 울고. 눈은 감은 상태

포숙정; (신첩이 무능해서 원수가 지척에 있는 데도 복수를 해드릴 수가 없어요.)

포숙정의 뇌리에 이어지는 장면. 뇌공량과의 행복하던 시절. 침실에서 거의 알몸인 채 뇌공량의 품에 안겨 수줍어한다.

포숙정; [이청풍... 이청풍!] 주먹 쥐고 이른 간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포숙정; [네놈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웃으면서 지옥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 이를 갈며 중얼거리고. 바로 그 직후

<지금의 그 맹세, 믿어도 되겠소?> 누군가의 말이 들려 눈 부릅 뜨는 포숙정. 이어

푸스스! 가루 같은 게 포숙정의 주변으로 떨어지고

! 달빛이 어둑한 감방 안을 비춘다

포숙정; (누가...) 놀라며 고개 들어 위를 보고. 조금 일어나며. 그러다가

포숙정; [!] 눈 부릅 뜨며 놀라고

푸스스! 쿠오오! 검옥의 천장 일각이 소용돌이치면서 천장이 가루가 된다. 기와와 지붕 구조물이 가루가 되면서 생기는 틈으로 달빛이 비스듬히 감방 안으로 내리비추고

포숙정; (... 뇌옥의 지붕이 가루가 되고 있어!) 놀라 일어나 앉을 때

슈우! 넓어지는 구멍을 통해서 천천히 아래로 하강하는 사내. 얼굴에 귀신가면을 쓰고 있다. 다른 작품의 <귀면지존>이고. 이 작품에서도 귀면지존으로 묘사. 귀면지존의 정체는 위극겸과 위극겸의 아들인 위진천이다. 교대로 가면을 써서 귀면지존으로 위장하는데 지금은 위진천이 귀면지존으로 위장하고 있다.

포숙정; (고수...) 슈우! 달빛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귀면지존을 보며 놀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가 날 찾아왔어.> 스윽! 이윽고 바닥에 내려서는 귀면지존을 배경으로 포숙정의 놀람과 흥분. 그때

귀면지존; [다시 한 번 묻겠소.] 귀신 가면 속에서 강렬한 눈을 번득이며 말하고

[!] 정신 차리는 포숙정

귀면지존; [마태자 이청풍에게 복수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으신 것이오?]

포숙정; [천지신명께 맹세를 하겠어요.] 단호

포숙정; [복수를... 무참히 돌아가신 남편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화산에라도 뛰어들 수 있어요.] 이를 갈고

귀면지존; [그 정도의 결의라면 충분하오.] ! 손을 내밀고

귀면지존; [부인에게 마태자 이청풍, 아니 천마성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기회를 드리겠소.] ! 귀면지존의 손바닥이 진동하고

[!] 스으! 약간 놀라는 포숙정의 몸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고

귀면지존; [일부함원(一婦含怨) 오월비상(五月飛霜)이 뭔지 마태자와 천마성의 인간들은 곧 알게 될 것이오.] 흐흐흐! 슈우! 웃는 귀면지존의 몸도 떠오르고. 먼저 떠오르는 귀면지존의 몸을 따라 포숙정의 몸도 떠오르고

포숙정; (이자가 누군지는 상관없다.) 자신보다 조금 앞서 떠오르며 지붕에 난 구멍을 향해 올라가는 귀면지존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내게 상공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자라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 귀면지존과 함께 천장에 난 구멍으로 날아올라가는 포숙정의 모습 배경으로 포숙정의 생각 나레이션

 

#4>

역시 밤. 철왕장.

화려한 건물. 천마성의 무사들이 삼엄하게 경비 서고 있고

불 켜진 실내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청풍. 위극겸과 나이 든 무사들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위극겸을 보여주어서 포숙정을 구해간 건 위극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청풍; [철왕장은 우리 천마성과 무제궁의 대결에서 요충 중의 요충이오.] [무제궁에서도 반드시 탈환을 시도할 터!]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할 것이오.]

[명심 하겠습니다 소성주님!] 나이 든 무사들이 고개 숙이고

청풍; [일단 지() 당주가 철왕장을 맡아서 정비해주시오.] 늙은 무사에게 말하고

청풍; [본성으로 귀환하는 대로 본성의 정예들을 추가로 보내주겠소.]

무사1; [신명을 바쳐서 철왕장을 보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청풍에게 지목된 늙은 무사가 포권을 하며 대답하고

청풍;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유령산장(幽靈山莊)을 향해 출발할 예정이니 수고를 해주시오.]

무사2; [유령산장에는 무슨 일로...]

청풍;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령산장은 지금까지 본성과 무제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중립을 견지해왔는데...]

청풍; [최근 유령귀왕(幽靈鬼王) 교백(喬魄)이 무제궁의 요인을 접견했다는 첩보가 있소.] 힐끔 위극겸을 보며. 위극겸은 고개 조금 숙이고

무사1; [유령귀왕 교백! 그 놈이 간덩이가 부었군요.]

무사2; [명목상으로는 우리 천마성에 충성하는 척 하면서 무제궁의 인간들과 어울리다니...] 분노하고

청풍; [무제궁 측에서 본성과 유령산장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꾸민 공작일 수도 있으니...] 말하다가 입을 다물고

다른 자들도 흠칫! 할 때

 

[급보!] 휘익! 한명의 젊은 무사가 다급하게 건물 쪽으로 날아온다. 건물을 경비하던 무사들 흠칫! 하고

 

위극겸; [이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른 무사들도 흠칫. 청풍은 약간 이마 찡그리고

위극겸; [무슨 일이냐?] 덜컹! 문을 열며 밖에 대고 외치고

젊은 무사; [소성주님께 보고 드립니다!] ! 열린 문 밖에 한쪽 무릎 꿇으며 포권하고. 주변의 경비서던 무사들 당황

젊은 무사; [뇌공량의 처, 포숙정이 뇌옥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색이 되어 말하고

[!] [!]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 놀라고

 

#5>

뇌옥. 수많은 천마성 무사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뇌옥의 문은 열려있고

뇌옥 내부. 복도 좌우의 감방에 갇혀있던 철왕장 요인들이 창살에 매달려 뇌옥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철문 쪽을 보고 있다. 그 철문은 열려있고. 그 안에 몇 사람이 서서 천장과 바닥을 보고 있다.

철문 안쪽. 포숙정이 갇혀있던 감방. 청풍이 서서 천장을 보고 있고. 주변을 나이 든 무사들이 굳응 표정으로 살피고 있다. 위극겸은 안보인다

천장에 나있는 직경 2미터쯤의 구멍을 통해 달빛이 흘러들고 있고.

무사1; [기와는 물론이고 천장을 이루고 있던 철골과 석재까지 고운 가루가 되었습니다.] 푸스스! 한 무릎 꿇은 채 손으로 바닥에 흩어진 모래같은 것들을 쥐어보며 말하고

무사1; [짧은 시간 안에 뇌옥의 천장을 고운 모래처럼 분쇄시킬 수 있었다면 범인은 무시 못할 고수인 게 분명합니다.]

무사2; [무제궁 상층부의 어떤 인간이 뇌공량을 도우러 왔다가 이미 늦은 걸 알고 포가 계집만 구해간 것 같습니다.] 청풍의 눈치를 보며 말하고. 그때

<다녀왔습니다 소성주님!> 누군가의 말이 들리고

휘익!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감방으로 날아 내리는 위극겸

[총관!] 바닥을 살피던 나이 든 무사들 일어나고

휘익! 청풍의 앞쪽에 날아 내리는 위극겸

[어떻소이까?] [범인이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 확인하셨소이까?] 나이 든 무사들이 위극겸에게 묻고

위극겸; [동쪽으로 어떤 자가 이동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질문은 나이 든 무사들에게 받지만 대답은 청풍에게 하고

위극겸; [경비를 서던 본성의 무사들 보고로는 반 시진 전 쯤에 무언가 높이 날아갔다고 하는데...] 눈치 보며

위극겸; [당시에는 밤새인 줄 알고 주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 시진이면 아직 오십 리 안쪽에 있겠군.] [당장 놈을 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성주님!] 나이 든 무사들이 포권하고 분노하며 말하지만

청풍; [그럴 거 없소.] 손 들며 나이 든 무사들의 말을 막고

[하지만...] 나이 든 무사들 난감해 할 때

청풍; [포숙정을 감쪽같이 빼낸 솜씨만 봐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자요.]

청풍; [게다가 이미 오십여 리 밖으로 달아났다면 따라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하오.]

[...] [그렇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사람들

청풍; [각지의 분타에 이번 일의 전말을 알리고 포숙정의 행방을 탐문하게 하시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그 정도뿐이오.] 말하며 철문으로 가고.

[존명!] 포권하는 무사들

위극겸을 거느리고 철문 밖으로 나서는 청풍

<주모님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셨다.> <불행중 다행이로군.> <역시 하늘이 마냥 무심하지만은 않았어.> 복도를 지나가는 청풍을 배경으로 양쪽의 감방에 갇혀있는 철왕장 인물들의 수군거림

청풍; (포숙정...)

청풍; (무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연약한 계집일 뿐인데...) 포숙정이 자신에게 악을 쓰던 장면 떠올리고

<오늘 밤 그 계집을 놓친 것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같은 예감이 드는 건 어째서인가?> 청풍의 굳어진 얼굴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헌데

청풍을 따라오며 야릇한 표정이 되는 위극겸

 

#6>

728x90

'와룡강의 작업실 > 마고천장(魔高千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고천장] 6화  (3) 2024.05.01
[마고천장] 5화  (1) 2024.04.30
[마고천장] 4화  (1) 2024.04.29
[마고천장] 3화  (1) 2024.04.28
[마고천장] 2화  (2) 2024.04.26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6

 

                  미녀들, 깨끗함을 남기기 위해 자결을 결심하다.

 

 

 

화독문은 하호성에서 남쪽으로 170리가량 떨어진 산기슭에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일대에 넓은 농토를 소유했으며 철을 녹이고 쇠를 치는 대장간도 하던 집안이었다.

그러다가 무공을 얻어 붉게 녹은 쇳물을 손으로 치면서 단련하는 독장을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그들의 장원이 있는 산에는 철을 캐내며 생긴 갱도가 많았다.

산의 뒷편에는 강이 접해서 생긴 갈대밭이 있다.

 

귀곡수재 양소는 추헌부 척살객 일곱 명과 함께 갈대밭에 숨어 있었다.

육연부의 여자들과 잠시 합류했으나 이내 적들의 공격에 의해 분리되어 이 상황에 몰렸다.

양소는 한 지역을 멀리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천안(天眼)과 공곡전성이라는 술법을 지녔다.

그 재주로 적들의 이목을 숨기고 피해왔지만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자기가 중상을 입으면서 탈출시킨 김혁이 육연부에 무사히 도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양소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도 김혁을 보냈을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 육연부에 상황을 알리러 갈 사람이 적들에게도 필요했다.

양소는 유언을 준비했다.

"날이 새기 전에 육연을 만나면 너희는 산다. 나를 두고 산으로 가서 육연부의 여자들과 합류해라. 어차피 육연이 오더라도 합류하지 못하면 죽는다.”

부하들이 거부했다.

"각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양소가 한숨을 쉬었다.

"술법을 다했으니 나는 곧 죽는다.”

그때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행관 각하, 우리가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내공으로 말을 전하는 전음이었다.

척살객들이 긴장하며 경계했다.

양소는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막으며 힘을 짜내 그 방향으로 전음을 보냈다.

"육연부의 큰 아가씨요?”

"셋째이지만 여기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아까 뵈었던 육연부의 감독입니다.”

양소는 쉽사리 의심을 풀지 못했다.

적들 중에는 요사한 술법을 쓰는 자들이 여럿 섞여 있었다.

양소가 다시 물었다.

"감독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소? 우리를 어떻게 찾았고?”

"저에게는 우리 나으리께 전수받은 작은 재주가 있어 적을 먼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여 이곳까지 들키지 않고 왔습니다.”

말소리와 함께 희야가 그들이 은신한 진흙 구덩이 앞에 나타났다.

양소는 그 수법이 전날 곽범이 자기를 찾아낸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

 

척살객들 중 하나가 양소를 엎고 여섯 명이 희야의 뒤를 따랐다.

희야는 어둠 속에서 적들과 함정을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갈대밭에는 크고 작은 뱀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희야는 뱀의 기척을 미리 알고 뱀이 없는 곳으로만 움직였다.

놀란 양소가 전음으로 물었다.

"감독 아가씨는 뱀의 소리도 미리 들을 수 있소?”

". 듣고자 하는 소리는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재주가 없었더라면 저희는 벌써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아쉽게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 재주가 없습니다.”

 

***

 

희야는 방향을 수도 없이 바꾸며 나아가 마침내 갈대밭을 벗어나 야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야산은 경계가 더욱 삼엄했다.

희야는 성동격서의 방법으로 적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에 돌파하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철 냄새가 나는 동굴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굴로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움직여 물이 흘러나오는 바위틈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광산 갱도에 고인 물이 빠져나가는 물길이었다.

일백 보 정도를 기어가자 넓은 동굴이 나왔다.

피 냄새와 분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육연부의 여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네 명이 다쳤으며 세 명이 그들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친 계집애들 중에는 단아도 있었다.

"네 말대로 집행관님을 모시고 왔다. 집행관님도 중상이시구나.”

희야가 단아에게 말하며 다친 애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었다.

단아가 누운 채 인사한 후 말했다.

"감독님, 장영의 말을 듣고 생각하니 적들 속에 광대산(狂大山)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옮겨도 계속 따라잡히는 건 술법으로 저희를 찾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장영이 정신을 잃기 전에 했던 말이었다.

양소가 말했다.

"광대산이라면 그럴 수 있소. 그들도 무공보다는 술법이 많은 자들이니. 아가씨들 부상은 어떠하오?”

희야가 울컥하며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양소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영단마저 다 소모했다.

희야가 양소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다른 은신처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곳도 발각되기 전에 움직이지 않으면 발이 묶입니다.”

희야는 필사적이었다.

계집애들의 목숨이 자신의 어깨위에 있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이안신통으로 숨을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양소가 단아를 보살피는 전옥에게 물었다.

"아가씨들은 어떤 독에 당했소?”

전옥이 고저가 전혀 없는 음성으로 냉담하게 대답했다.

"부끄러운 독이라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각하께서는 저희와 거리를 두십시오.”

사정을 짐작한 양소가 나직하게 탄식했다.

"강호의 사마들은 언제나 교활하니.”

희야가 눈을 떴다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여기도 들켰다. 숨을 자리는 가면서 찾아야겠구나. 여기는 좀 오래 갈 줄 알았더니.”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일이다.

희야와 다치지 않은 셋이 다친 넷을 등에 엎었다.

양소는 척살객과 육연부가 합류하여 인원이 16명이나 되었으니 운신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살 수 있는 방법은 함께 모여서 육연과 구양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는 척살객으로 강호에 몸을 던진 순간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 위급하면 나를 버리고 저들을 구하거라. 악인을 추살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고 위험에 처한 여자와 어린아이를 구하고 죽는 것 또한 우리가 추구하던 협이 아니냐.”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각하.”

척살객들이 전음으로 양소에게 대답했다.

 

희야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줄을 일행 모두가 잡도록 했다. 허리띠를 이어서 만든 줄이 없다면 빛 한 점 없는 동굴속에서 희야를 따라가지 못한다.

피신함에 있어서 왔던 곳으로 직접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희야는 동굴의 넓은 쪽으로 나아가며 빠져 나가지 못한다면 옥쇄하리라 결심했다.

막힌 곳으로 들어가 입구를 지키며 결사항전 하다가 버틸 수 없으면 자결하여 맑음을 지킬 것이다.

희야는 전옥에게 몰래 지시했다.

"내가 만약 자결하면 너는 다친 애들을 베고 그들이 더럽혀지지 않게 해주어라.”

", 감독님.”

대답하며 전옥이 눈물을 흘렸다.

전옥이 엎고 있는 장영은 중상으로 의식조차 없었다.

희야의 등에서 단아가 전음으로 물었다.

"감독님, 우리와 같이 온 새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는가요?”

"다 죽거나 잡혔을 것이다. 누가 빠져나가 상황을 알렸더라면 나으리께서 벌써 오셨겠지.”

"사로잡혀 있는 새가 있다면 감독님이 찾아서 탈출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희야는 그 말에 힘이 났다.

"찾아보마.”

단아가 말했다.

"새를 찾으면 우리를 두고 척살객들과 감독님만 빠져 나가세요. 새에게 나으리와 낭낭이 오지 말라고 전하도록 해요. 지금 여기는 용담호혈이에요. 우리가 아니라 나으리를 잡으려는 함정이라서 아직 우리를 살려두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가 담담히 말했다.

"함정에 들지만 않으면 나으리와 낭낭께서 천천히 우리 복수를 해주시겠지요. 저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공이 우리보다 높으니 감독님이 새한테 갈 때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어차피 저분들이나 우리는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요.”

희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으리와 낭낭께선 오지 말라고 해도 오셔. 절대로 우릴 두고 물러나지 않아.”

계집애 하나가 모두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 여기서 죽으면 전부 처녀귀신이네. 처녀귀신 돼서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리자.”

"그런 소리말고 마음에 평정이나 유지해. 무슨 추한 꼴 보이려고.”

희야가 듣고 꾸짖었다.

 

***

 

동굴의 갈림길은 위로 향하는 것도 있고 아래로 향하는 것도 있으며 양쪽으로 벌어진 곳도 있다.

두 세 사람이 겨우 지나갈 좁은 갱도는 물이 흘러 바위가 미끄러운 데도 있고, 깨진 암석이 칼날처럼 돌출된 곳들이 있었다.

희야는 그런 위험한 곳만 골라서 걸었다.

코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로지 희야의 이안신통만이 지형을 읽게 해주었다.

희야가 끄는 줄을 잡고 일행은 서로의 보폭을 감지하며 나아갔다.

이렇게 하면 추적자들은 동굴속의 위험을 쉽게 간파하지 못해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야는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을 느꼈다.

빠져 나갈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희야는 여러 길 중에서 갱도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잡았다.

이제 끝이 가깝다.

적이 막고 있는 곳이지만 희야는 그들을 뚫고 나갈 작정이었다.

죽게 된다면 수원과 동진, 그리고 양설과 곽범이 시체를 찾아 거두기가 용이한 곳이 낫다.

갱도의 출구로 가면서 희야는 옷을 베어 등에 엎은 단아를 단단히 몸에 묶었다.

그 기척을 알고 바로 뒤에 따르는 전옥이 따라했고 이는 뒤로 이어졌다.

희야는 쌍검을 나누어 쥐고 갱도를 나섰다.

 

갱도 밖은 여전한 어둠 속에 흰옷을 입은 서생 차림의 남자들이 서있었다.

양소가 탄식하고 말했다.

"축릉사(築陵社), 무덤을 만드는 자들까지 왔군. 육연부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손을 잡았단 말인가?”

단아가 물었다.

"각하, 축릉사가 무엇인가요?”

"고대 유교의 이단자들이오. 무덤을 만들어주고 도굴하며 사는 자들인데, 제왕과 부호, 강호의 절대자들 무덤도 저들이 만드오.”

단아는 의아해했다.

"도굴 될 걸 알면서도 제왕들이 축릉사에게 무덤을 만들게 하는가요?”

"제왕들은 알 수 없소.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 저들은 슬그머니 끼어들어가오. 무덤을 완공하고 비밀을 감추기 위해 모두 죽여도 저들은 빠져나갈 수 있소.”

양소가 힘겹게 대답했다.

저들은 무공도 괴이하고 술법과 기관에도 능하오. 세상의 절대자들을 상대하니 일반 강호인은 안중에도 없는 자들인데 저들이 여기서 육연부를 잡을 덫을 놓은 모양이오.”

흰옷을 입고 유생건을 쓴 축릉사들 중 한 명이 오만하게 말했다.

"집행관 양소 아니시오? 삼존청은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는데 왜 끼어들었소?”

양소가 힘을 모아서 대답했다.

"삼존청이 축릉사를 내버려둔 이유는 강호의 살겁을 일으키거나 도리를 무너뜨리지 않았기 때문이오. 귀하들은 왜 귀하들의 일이 아닌 음모에 끼어들어 삼존청에 맞서려하시오?”

축릉사가 말했다.

"왕을 묻는 일이 우리 일이지. 우리는 염왕(閻王) 육연을 묻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소. 집행관은 여기가 무덤 속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소?”

곽범이 목장에서 염왕현신을 사용한 이후 강호에서는 염왕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5

 

              밤에 찾아온 손님

 

 

 

6월 중순이 되었을 때였다.

곽범은 희야와 단아에게 화독문을 유명곡과 같은 방식으로 멸문시키라고 명령했다.

은희, 지우, 미연만 동진에게 남겨 놓은 채 나머지 계집애들을 모두 데리고 가게 했다.

희야의 무공은 유명곡을 칠 때 수원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단아는 용병과 지략에 능하다.

그 둘이 힘을 합치고 계집애들 여섯이 도우면 화독문을 무리없이 응징할 수 있을 것이다.

 

희야 일행이 떠난 밤이었다.

곽범의 집인 육연별부의 대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자가 있었다.

"육연대인! 육연대인!”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절박하게 울렸다.

육연부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한 밤 중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수원은 한 달음에 곽범과 양설의 침실로 달려갔다.

동진은 벌써 검을 들고 나와 있으며 은희와 지우, 미연도 놀라서 앞마당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신가요?”

지우가 대문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추헌부 집행관이신 양소 어르신의 수하 김혁입니다. 급히 육연대인을 뵙고자 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삼존청 추헌부의 척살객!)

동진과 계집애들은 놀라고 긴장했다.

"여기는 우리 나으리께서 손님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용무이신지요?”

지우는 경계하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대나무 잎 같이 생긴 방패를 든 청년이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서있었다. 차림새가 추혼부의 척살객이었다.

김혁이라 자신을 소개한 척살객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육연대인, 저희 집행관 나으리를 구해주십시오. 집행관께서 육연부의 아가씨들을 보호하려다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간신히 소인만 명을 받고 탈출하여 왔습니다.”

"모셔라!”

양설의 음성이 건물쪽에서 들렸다.

척살객 김혁은 기운을 다한 듯 일어서지 못했다.

미연과 지우가 달려가 부축하여 응접실로 데려갔다.

곽범과 양설은 옷을 챙겨 입은 후였다.

곽범은 김혁의 손을 잡고 요상대법을 써서 위중한 부위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은희와 지우 등은 급하게 달려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떻게 된 거요?”

곽범은 응급처지를 해준 후 물었다.

귀댁의 아가씨들께서 함정에 빠지셨습니다.”

김혁이 기진한 목소리를 쥐어짜 대답했다.

"그걸 안 집행관께서 돕기 위해 저희와 함께 화독문으로 갔지만 오히려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양설이 곽범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애들이 아직 괜찮을까요?”

김혁이 곽범 대신 대답했다.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다친 아가씨들이 있었습니다.”

"!”

동진이 이를 악물었다.

"화독문으로 가면 되오?”

곽범이 김혁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집행관께서 전하시길, 함정은 육연대인을 잡기위한 게 분명하지만 알리지 않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적들은 추헌부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김혁이 면목이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분을 찻집으로 모셔서 쉬게 해드려라.”

양설이 동진에게 말한 후 곽범에게 물었다.

"수원만 데리고 우리 두 사람이 가야겠지요?”

곽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원에게 명령했다.

"새들을 깨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라.”

수원이 정원의 새장으로 달려갔다.

은희와 지우가 김혁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

미연은 마차방으로 가서 마부를 깨워 마차를 준비시켰다.

은희와 지우가 김혁을 마차에 태우고 소리쳤다.

"낭낭! 저희도 데려가주세요!”

수원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양설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같이 가자. 동진이 그동안 집을 돌봐라. 너희들은 내 가마를 가져와라.”

양설의 가마는 집에 있었다.

은희 등이 달려가서 끌고 왔다.

양설은 곽범과 가마 안에 들어가고 수원과 은희는 가마의 앞쪽을, 미연과 지우는 뒤쪽을 나누어 잡았다.

양설의 가마가 출발하자 동진은 기관을 발동시켜 집을 폐쇄했다.

그런 후 김혁을 태운 마차를 타고 찻집으로 향했다.

 

성안의 여러 곳에서 곽범의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곽범은 숨결의 용을 이용하여 가마를 떠받쳤다.

덕분에 가벼워진 가마를 든 수원 등은 힘을 다해 경신술을 펼쳤다.

가마는 어둠을 가르고 남쪽으로 유성처럼 달려갔다.

화독문을 치러 간 희야와 단아에게도 앵무새 여섯 마리가 따라갔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위급한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양설은 희야 일행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몇 명이 다쳤다고 하니 자기의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모두 양설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화독문은 화독장이라는 독을 쓰는 장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력은 그리 강하지 않고 사람 숫자도 적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장문인도 희야의 손에서 10초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 사실이 화독문을 경시하게 했고, 적들로 하여금 함정을 파게 만들었다.

양설은 육연부가 강호에 대해서 지나치게 적대감을 드러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곽범을 두려워해서 숨죽이는 자들도 있지만 힘을 합해 함정을 파는 자도 나오는 게 당연했다.

함정마저 무용하다는 것이 드러날 때까지, 앞으로도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양설은 마주앉은 곽범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강호에 몸을 담아야 할까 봐요. 발만 걸치지 말고요. 사업은 원선생님과 종리서기를 내세워서 하고, 우리는 강호에 서서 사업을 돌봐야 할 것 같아요.”

"강호인들이 사업하는 방식이군요.”

곽범은 썩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양설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업 방식은 강호인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세속의 사업을 하면서 방해되면 강호인을 없애려고만 했으니까요.”

곽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드는군요. 강호가 세상과 다르게 이어져 왔다면 강호의 물산도 세상과 다른 게 많지 않을까 하고요. 영단, 영물, 보물, 신병이기 외에도 더 있겠지요.”

양설은 말을 이어갔다.

"세속에 착한 사람과 악한 자가 섞여 있듯이 강호도 마찬가지고, 어느 쪽이든 사람들 세상이고 문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곽범은 한숨을 쉬었다.

"막는 자는 모두 벤다! 내가 나도 모르게 패도를 추구하고 있었군요.”

"막지 않는 자는 무시한다! 도 있었지 않겠어요?”

양설이 미소를 머금었다. 곽범의 생각이 바뀌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양설은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곽범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제 무공이 조금 늘게 되니 강호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감히 거스르려는 게 아니랍니다.”

곽범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강호에 들어가도 벗을 사귀지 못해요.”

양설은 손을 뻗어 곽범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럼 또 어떤가요?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어떤 게 있는지 보고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면 되지요. 제 생각으로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 강호를 열었고 강호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곽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구들을 구하고 봅시다.”

양설은 곽범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을 달랬다.

양설도 곽범도 화가 나있고 식구들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4화

 

                   번창하는 사업

 

 

 

호숫가에는 봉사에 고자가 된 북두칠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외공이 높은 그들은 추위 속에 굶주리고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훈련이 끝난 육연부의 계집애들은 북두칠성을 일곱 마리 개라고 바꿔 부르며 평상 밑으로 옮겨 놓았다.

첩밀관 장영이 북두칠성의 심문을 맡았다.

심문이라고 해봐야 각자의 이름만 물어보고 더 묻지 않았다.

언덕 너머의 기문진 속에 갇혀 있는 놈들도 바글바글하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 서로 싸우는 소리가 언덕을 올라가면 들을 수 있었다.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고문이다.

강호인들이니 며칠 가둬둔다고 얼어 죽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영은 천천히 심문할 작정을 했다.

 

***

 

은희는 다음날부터 종리율 등의 도움을 받아서 목장 공사를 일으켰다.

원래 고용하려 했던 늙은 목수 두 사람을 부르고, 겨울이라 일이 없는 인근의 목수들도 되는 대로 청했다.

잡일을 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마차방 앞에 모였다.

지우는 그들을 데리고 목장으로 가는 도로 공사를 하였다.

마차가 다니는 궤도가 이미 깔려있는 대로에서 목장까지는 십리 남짓한 거리였다.

먼저 소와 말에 쟁기를 달아 거친 십리 길을 평탄하게 다듬었다.

그런 다음 짐마차에 자갈을 실어 와서 길을 단단하게 메우고 다져서 궤도를 만들었다.

서로 비켜갈 수 있는 우회궤도는 1리마다 설치하였다.

그 사이에는 궤도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는 입출 궤도도 설치했다. 오가던 마차들이 마주쳤을 때 한 마차가 비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이라 땅 파는 일이 더뎠지만 노동력은 풍부했다.

은희는 봉사가 된 북두칠성을 큰 힘이 필요한 곳마다 보내서 소처럼 부렸다.

언덕 뒤의 기문진 속에 갇혀있는 자들도 끌고 와서 일을 시켰다.

말이나 돈을 받은 자들은 풀어주었다.

몸값을 치르지 못한 포로들은 체념하고 노동에 종사했다.

칼질 주먹질 밖에 할 줄 몰랐던 자들이 밥을 얻어먹기 위해 거친 노동에 내몰렸다.

그들을 이용하여 호숫가에는 건물을 지을 땅고르기가 진행되었다.

목장 부지 안의 도로들도 만들어졌다.

호숫가와 산에 있는 돌을 떼서 건물과 담장, 바닥에 쓸 준비를 하였다.

석수들이 돌을 쪼는 소리가 호수의 얼음을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인부들이 임시로 거처할 천막과 밥을 짓는 천막들이 피난처를 연상시키며 늘어섰다.

 

은희의 목장 공사는 하호성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대역사였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계집애들도 전부 매달려 현장을 감독하거나 생각을 짜내서 도왔다.

검술 훈련은 새벽에 연무장에서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너무 바빠서 집안일 할 사람들을 구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졌다.

동진은 가난한 집 여자들 열명을 고용해서 썼다.

 

***

 

3월이 되니 대규모 인력을 투입한 궤도가 완성되었다.

목장에는 터 고르기가 끝나고 담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호수 남쪽 4분지 1에서 시작하여 언덕배기를 에워싸는 석담 축조에는 200명 가량의 인력이 투입되었다.

궤도를 달리는 마차들로 실어온 목재들로 건물들이 올라갔다.

건축 자재들은 산더미처럼 쌓였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은희는 단순한 목장이 아니라 큰 장원을 만들고 있었다.

담으로 구획된 한 곳에는 닭장들이 옮겨왔다.

다른 구획에는 사람 장사로 번 말들이 들어갔다.

사람이 머물 건물들은 산중에 지어진 큰 절을 참조하였다.

소나 말 대신으로 밖에는 쓸모없는 강호인들 외에 닭을 치고 말을 키우며 목장을 관리할 사람도 오십 명 가까이 고용했다.

투입된 돈이 3천냥에 가까웠다.

은희는 강호 세력들에게 뜯어낸 속죄금으로 그 비용을 다 충당했다.

단아가 계집애들을 지휘하여 야생마를 세 무리, 40마리나 잡아와서 마사에 넣었다.

대규모 공사와 그에 부수한 일들을 해보면서 은희와 계집애들은 큰일을 꾸미고 진행하여 어떻게 성공시키는 가에 눈이 트였다.

늘 자기가 먼저 생각했던 거라 말해서 욕먹던 계집 미연(美姸)이 두각을 드러냈다.

미연은 여러 가지 장치에 대한 의견을 내고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공사에 큰 공을 세웠다.

그 보상으로 미연은 기공관(起工官) 자리를 꿰찮다.

 

3월 말부터 차를 실은 마차들이 육연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차 도매 사업이 활기를 띠었다.

암말들을 데려다가 새끼를 가지게 해서 목장으로 내보냈다.

4월 말이 되자 완공된 건물들이 생겨났고, 5월 중순쯤에는 중요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닭장에는 자연 부화시킨 노란병아리들이 바닷가 모래를 연상시킬 만큼 많았다.

 

곽범과 양설은 이따금씩 목장에 나와 보았다.

파란 기와를 얹은 긴 담장이 굽이굽이 언덕을 타고 넘어 호수에 이어져 있는 모습만으로도 장관이었다.

300 마리에 가까운 말들이 담으로 에워싸인 축사 영역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은희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말 훈련을 겸해서 수차를 돌려 언덕 위로 끌어올린 물이 목초지를 풍성하게 했다.

말들 사이로 닭들도 돌아다녔고, 닭똥은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목장에서 공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빠져나갔다.

늙은 목수 두 사람과 십 여 명의 인부들만이 남아서 자잘한 손을 보거 있었다.

본의 아니게 종살이를 하게 된 강호인들의 숫자는 북두칠성을 제하고도 30여 명이었다.

그들은 목장의 경비와 허드렛일에 투입되었다.

원래 조직에서 버림받았거나 말과 바꾸어 데려가줄 가족이 없는 자들이었다.

절망하던 중 그들은 육연부의 위상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육연부에 남으면 강호의 험난함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살 수 있다.

30여명의 강호인들은 기꺼이 종살이를 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두칠성은 목장에서 일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목줄을 하지는 않았지만 방울 소리를 듣고 따라가서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개처럼 한 그릇에 밥과 반찬을 던져주면 수저도 없이 손으로 먹었다.

북두칠성은 노동을 하는 외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명령을 어겼다가는 강호에서 저지르고 다녔던 악행의 대가를 혹독한 채찍질로 치렀다.

원래가 중이었던 그들은 일이 없을 때면 가부좌를 하고 참선을 하면서 시련을 견디고 있었다.

 

"은희는 역시 통이 커요. 이 큰 일을 다 해내다니.”

양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내는 은희를 칭찬했다.

은희가 한숨을 쉬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낭낭, 저기를 못 막았어요.”

"저기는 호수잖아?”

양설이 물었다.

은희가 말했다.

"말들 중에 헤엄을 잘 치는 놈들이 있더라구요. 호수에 물먹으러 들어가서 헤엄쳐서 도망가요. 배도 없어서 붙잡아 오는 데 애를 먹었어요.”

"호수에 수정(水亭)과 다리를 만들어서 막아야겠네.”

"네, 저 쯤에 수정을 짓고 다리를 북쪽과 동쪽으로 만들어 둘러쳐 막아야겠어요.”

단아가 끼어들었다.

"이런 산중 호수 밑에는 바위가 많아서 물이 얕은 곳이 있어요. 수심을 조사해보고 만들면 좋겠네요. 수정도 얕은 곳에 만들고, 수정 주변에 섬을 만들어도 좋겠네요. 여름에 들어가서 놀게.”

은희가 토를 달았다.

"이제 돈 없어. 닭하고 계란 팔아서 수정 지으려면 몇 달 걸려. 말들은 그 새 자꾸 도망가려 할 거고.”

"그럼 물가에 울타리를 쳐. 말들이 물을 꼭 거기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니잖아. 수차로 퍼올린 물이 고일 웅덩이들만 만들어줘도 되잖아.”

단아가 의견을 냈다.

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정은 굳이 만들 필요없네. 돈도 안 되는데 그걸 왜 만들어.”

지우가 펄쩍 뛰며 말했다.

"야! 손님도 청해서 묶고 가게 하고 해야지. 그거 다 돈 되는 거야. 예쁜 배도 만들어서 뱃노래도 할 수 있게 하고.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그럼 네가 반 부담해라.”

은희가 코웃음을 쳤다.

지우가 물러서며 대꾸했다.

"내가 무슨 돈 있어?”

단아가 꼬질렀다.

"낭낭, 얘 돈 많아요. 여기 부지 살 때 1500냥 꿍쳤어요.”

양설이 깜짝 놀라고 지우가 단아와 은희를 노려보았다.

"이 배신자들!”

양설이 곽범에게 물었다.

"당신이 받은 거 아니었어요?”

"난 당신이 받은 줄 알았어요.”

곽범이 대답했다.

다들 해먹고 꿍치고 훔치고 뇌물 받는 줄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의 경우에는 규모가 달랐다.

양설이 지우를 보며 감탄했다.

"너도 통 크구나. 그 만큼 꿀꺽하고 잠이 편하게 왔어?”

단아가 말했다.

"쟤 뻔뻔한 거하고 배짱 빼면 아무 것도 없어요. 거짓말까지 해요. 자기가 집에 일꾼 다 고용할 거라더니 결국 감독님이 했잖아요.”

양설이 단아에게 물었다.

"넌 알고 있으면서도 말 안했어?”

"고물이라도 좀 생길 줄 알았죠. 영 아니었지만요.”

양설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하루에 몇 전 벌면서 기뻐하고, 나으리가 한 두 냥 벌어다 주면 감격하던 게 엊그제였는데.”

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다 토해내야 돼요?”

"그럴 필요 없다. 네가 알아서 쓰겠지.”

양설이 손을 저었다.

"네?”

단아와 은희가 놀라서 물었다.

지우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주머니 돈이나 쌈지 돈이나 그게 그거죠. 제가 가지고 있으나 낭낭이 가지고 있으나...”

양설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 쓰려고 꿍쳐둔 거니?”

"더 모아서 전장 하나 차리게요. 그래야 안심하고 제가 돈을 빼서 쓸 수 있잖아요.”

지우가 냉큼 대답했다.

“강대인 전장하는 거 보니까 그 사업이 괜찮은 거 갈더라구요. 물어보니 만냥이면 시작할 수 있다네요.”

"운영은 누가 하고?”

"시작할 돈만 제가 마련하면 나머지는 은희가 알아서 하겠죠. 돈 있어도 전장 만드는 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제 능력 밖의 일이에요.”

은희가 기막혀했다.

"너 나한테 그런 말 안했잖아.”

지우가 버럭 소리쳤다.

"바빴잖아. 여기 공사하느라 눈코 못 뜨는데 어떻게 말해?”

은희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얼마 모았는데?”

"1700냥. 강대인이 200냥 불려 줬어. 지금 더 늘어나고 있을 거야.”

 

곽범은 이미 양설에게 줬던 일이고 그 돈을 움직이는 것도 양설과 식구들이 할 일이라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전장이라면 문제가 좀 달랐다.

사업이 커지면서 돈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차였다.

곽범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를 산지에서 사와서 파는 차 도매는 지금 많은 돈을 벌어주고 있었다.

강대인과 거래를 튼 후 지우도 돈화전장을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전장 일을 눈여겨보고 강대인에게 들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장은 일하는 사람들이 업무를 잘 알아야 할 텐데.”

"처음에는 전장에서 일 해본 사람을 데려다가 쓴대요. 그런 사람 두 사람만 있어도 작게 하는 게 가능해요.”

곽범 말에 지우가 대답했다.

"전장을 만들자.”

곽범은 전장을 만들기로 결정해버렸다.

전장을 통해서 여러 사업장의 상태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면 모든 사업 관리가 수월해진다.

그러나 곽범이 생각한 전장은 아직 대부업을 하는 전장은 아니었다.

자기 사업에서 돌고 있는 모든 자금을 통합하여 관리하는 수준으로 시작한다면 전장 경험이 없어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어떻게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으니까.

여기서 경험을 쌓으면 돈화전장 같은 본격적인 전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곽범은 축부관인 은희가 전장을 관리하면서 돈을 운용하여 사업을 개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은희는 육연부의 모든 돈을 관장하는 재무관(財務官)으로 승격되었다.

벌어들인 돈은 모두 은희에게로 들어가고 나오는 모든 돈도 은희로부터 나온다.

미연이 기공관이 된 후 새로운 직책을 맡은 계집애가 없었는데 은희만 승승장구였다.

종리율과도 동급이다.

종리율은 문서를 관장하고 은희는 돈을 관장하게 되었다.

전옥을 비롯한 계집애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죽도록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길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3화

 

                 손 큰 계집애들

 

 

수원이 와서 고했다.

"나으리, 돈화전장의 강대인이 뵙기를 청합니다.”

곽범은 종리율이 챙겨준 보고서들을 읽던 중이었다.

목장에서 할 일들을 정리하던 은희가 말했다.

"그 사람이 어제 산 땅의 전 주인이었어요.”

"모셔라.”

곽범은 집무실 한 쪽에 마련된 손님을 맞는 자리로 갔다.

단아가 침실이었던 방으로 가서 지우를 불렀다.

"너 손님 왔어. 나으리하고 같이 만나.”

"누구?”

"돈화전장.”

"빠르기도 하다! 한 번 오랬더니 벌써 왔어?”

지우가 바느질하던 옷감을 집어던지고 단아보다 더 빨리 달려가며 면사를 썼다.

 

강대인은 곽범을 두려워하며 고개도 잘 들지 못하였다.

육연부 앞에 엎드려 있는 자들 중에는 강대인이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거만하게 굴던 강호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대고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강대인은 큰 호랑이를 받은 답례로 보검 한 자루와 큰 옥 벼루를 가져왔다. 육연이 벼루로 시작했으니 벼루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지우가 들어가자 강대인은 벌떡 일어섰다.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소이다.”

지우가 곽범에게 말했다.

"나으리, 제가 청을 드려 강대인께서 귀한 걸음 해주셨으니 제가 차를 내오겠습니다.”

"그리해라.”

곽범이 대답했고 강대인은 엉거주춤하며 다시 앉았다.

하지만 좌불안석이었다.

다행히 나갔던 지우가 금방 찻상을 들고 돌아왔다. 부엌에서 동진이 물을 데우고 있던 중이라 다과 준비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대인께선 우리 나으리 편하게 대하세요. 강호인은 강호인의 법으로 대하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법도에 따르십니다.”

찻잔을 강대인 앞에 내려놓은 지우가 웃으며 말했다.

“아랫사람들인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을 들지 않은 사람에게 칼을 뽑거나 힘으로 누르지 않는답니다.”

곽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나으리께는 세속 사람들이 더 귀하고 높습니다. 강호인들은 밥버러지라고 생각하시니까요.”

지우가 곽범 대신 말을 이어갔다.

강대인이 안도하면서 물었다.

"밖에 있는 강호인들은 육연대인께 죄를 지은 것이군요.”

"그들은 우리를 적대하고 염탐하며 해치려 했던 자들의 우두머리들입니다. 어제 나으리께서 대노하시자 오늘 살기 위해 빌러온 것입니다.”

강대인이 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숙였다.

"아가씨께서 너그럽게 이끌어주어 보잘 것 없는 제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지우는 짐짓 겸양했다.

"강대인께서 적절히 마음을 써주셨던 덕이지요.”

강대인이 곽범에게 말했다.

"대인께서는 어진 낭낭과 현명하고 용맹한 첩들을 두루 거느리셨으니 일세의 영웅입니다.”

곽범은 머리를 저었다.

"이들은 제 첩이 아닙니다. 식구들입니다.”

"그럼 이 아가씨들은...”

"혼처가 정해지면 시집가겠지요.”

곽범의 말에 강대인은 입을 딱 벌렸다.

절세미녀들과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몇 마디 횡설수설한 강대인은 곽범과 거래를 청한 후에 말했다.

"어제 대인께서 살아있는 호랑이를 오전에 보내시고 오후에는 죽은 호랑이를 보내주시니 저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우와 단아, 은희 등이 소리 죽여 웃었다.

강대인이 지우를 보며 곽범에게 말했다.

"오늘 대인의 진면모를 알게 됐으니 몹시 기쁩니다. 제가 드리는 보검을 저 아가씨에게 드릴 수는 없겠는지요?”

“저는 육연부의 유세관입니다. 혀가 무기이니 보검은 쓸 일이 없지요.”

지우가 사양했다.

"그 보검은 저 대신 호랑이를 잡은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았거든요. 가죽 상하지 않게 하느라고.”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강대인 놀라자 지우가 곽범에게 물었다.

"나으리, 전옥이에게 보검을 주실 거면 지금 오라 할까요?”

곽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가 또 방으로 달려가서 전옥을 데려왔다.

가죽 상하지 않게 하려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누군가도 지우와 다를 바 없는 아가씨였다.

그걸 안 강대인은 육연부의 여자들이 요괴처럼 무서워졌다.

곽범이 전옥에게 검을 주며 말했다.

"강대인께서 보검을 선물하셨다.”

전옥이 무릎을 낮추어 받고 강대인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강대인은 육연부를 나섰다.

엎드려 있는 강호인을 위풍당당하게 훑어본 강대인은 기다리고 있던 호위무사들과 서기를 데리고 돌아갔다.

 

***

 

집무실을 나온 후 지우는 전옥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전옥은 지우가 갖고 싶어하던 빼똘구두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지우가 직접 만들 수 있지만 그 구두를 만드는 솜씨도 전옥이 최고였다.

 

은희는 장영이 뽑아온 명세서를 들고 육연부 앞에 나가서 부르는 게 값인 사람 장사를 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엎드려 있는 강호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강호인들은 곽범에게 바칠 보물이나 돈을 가져왔다.

은희는 어제 호수쪽으로 왔다가 붙잡힌 사람이 각각 몇 명인지를 물어보고 사람값을 말 머리로 계산했다.

그런 후에 사람값이 아닌, 침입한 죄에 대한 속죄금으로 얼마를 낼 것이냐를 각각 말하게 하여 그들의 기둥뿌리를 뽑았다.

잡힌 사람은 말을 가져오는 대로 풀어주기로 하였다.

은희는 사람장사 한 것 외에 속죄금까지 자기가 챙겼다. 목장 때문에 생긴 것이니 당연히 자기 권한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보물과 속죄금을 동진한테 맡겨 놓은 은희는 닭장을 돌보기 위해 생 계란 두 개로 점심을 대신한 채 떠났다.

바느질을 하면서 한 계집애가 중얼거렸다.

"재주는 나으리가 부리고 돈은 은희가 다 챙기네.”

"부러우면 너도 그러던가.”

지우가 말했다.

문득 전옥이 지우에게 물었다.

"너, 2천냥 중에서 500냥 쓰고 남은 거 낭낭께 돌려드렸어?”

지우가 대꾸하지 않고 속속곳에 뜸박질만 했다.

"너! 너무 심하다. 1500냥이나 꿀꺽한 거야?”

다른 계집애들이 펄쩍 뛰었다.

1500냥은 비옥한 전답을 5000평 넘게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지우가 마지못해 대꾸했다.

"꿀꺽한 게 아니야. 낭낭께서 돌려달라고 안하셨고... 나도 유세하고 다니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잖아. 선물도 사서 줘야 할 거고 뇌물도 뿌리고 해야 하니까 비상금으로 가진 거지.”

"1500냥이나 되는 비상금이 어디 있어? 이년 완전히 도둑년이네.”

계집애들이 펄펄 뛰었다.

지우가 말했다.

"낭낭한테 다 돌려주고 손가락 빨까? 아니면 내가 너희들 원하는 것도 사주고 용돈도 줄까? 은희한테도 받고 나한테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계집애들이 금방 대꾸를 못했다.

지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또 기회 많아. 다음엔 니들한테 들키지도 않을 거고. 그땐 국물도 없어.”

계집애 하나가 개탄했다.

"자리만 차지하면 탐관오리가 되어버리네. 부정부패가 우리 집만큼 심한 곳은 없을 거야.”

"장영이는 안 해먹잖아. 걔는 깨끗해.”

한 계집애가 말했다.

"장영이는 돈 많이 받아. 하는 일이 돈 많이 쓰는 일이잖아. 설마 받은 돈 다 쓰겠어? 어디 꿍쳐 놓고 있겠지.”

"감사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첩밀관은 감사해도 소용없어. 장부에 적으면 그게 다야. 대조할 수도 없고. 밝혀봤자 처벌도 못해. 적당히 해먹게 두는 게 최선이지.”

"엄청 좋은 자리였네.”

"장영이도 단아한테 상납할 걸? 단아가 첩밀관 예산 책정한다니까.”

한 계집애가 소리쳤다.

"그래도 지금 제일 많이 해먹은 건 지우 저년이야! 1500냥이라니! 무려 1500냥!”

지우가 말했다.

"지금부터 1500냥 입에 올리기만 해도 국물조차 없어. 한 번 올려 보시지. 얌전히 있으면 집에 일할 사람부터 내가 구할 거고.”

계집애가 바로 수그러들며 중얼거렸다.

"벼슬이 장땡이다. 무조건 직책을 맡아야해.”

동진이 불러서 계집애 셋이 점심 준비하러 나갔다.

남아 있는 한 계집애는 바느질 하던 야한 속치마에 여우털을 붙이고 있었다.

바깥에는 눈발이 슬슬 날렸다.

 

***

 

양설은 신신이진공을 수련하다가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늦겨울은 눈발에 봄이 묻어있다.

나른한 감이 있어서 곽범에게 기대며 물었다.

"눈 와요. 낮잠 안 잘래요?”

"난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아요.”

양설은 곽범을 어깨로 쿡쿡 밀었다.

"가서 자요.”

"혼자서 어떻게 자요.”

또 어깨로 툭툭 받았다.

단아가 말했다.

"나으리, 남은 일은 제가 처리할게요. 좀 쉬세요.”

장영도 말했다.

"오늘 올 손님은 다 온 것 같아요. 눈도 오는 걸요.”

"난 잠이 안 와.”

곽범이 말했다.

양설이 입을 삐죽거렸다.

"누가 자래요? 베개 해달라는 거지.”

곽범이 양설에게 끌려 침실로 가자 계집애들은 소리없이 만세를 불렀다.

커다란 눈송이에 가슴이 부풀은 계집애들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을 해치우거나 내일로 미뤄놓고는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

 

양설은 곽범에게 물었다.

"춥죠?”

"안 추워요.”

"제가 따뜻하게 해줄게요.”

"안 춥다고 했잖아요.”

"그냥 따뜻하게 해준다니까요.”

양설은 곽범의 머리를 끌어서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곽범이 가만히 있었다.

양설은 이 사람과 함께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하고 생각했다.

가진 게 많아져도 태어난 것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격랑 속에 흐르는 나뭇잎 같았다.

인생에 취해서 상처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주지 않으면 아파서 울 수밖에는 부부.

괜찮다고 해도 어루만지고 위로 해줘야할 연약한 순수.

양설은 곽범을 자꾸 안아주고 싶었다.

자기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처가 안타까웠다.

잠이 오지 않는다던 곽범은 양설의 품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곽범에게서 느껴지는 상처의 이름도 모르겠고 영문도 알 수 없었다.

베이고 벌어져 햇살아래에서 말라가는 속살 같은 아픔도 있고, 문득 느껴지면 죽음 같이 섬뜩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죽어주면 치유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느낌도 있었다.

행복한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신을 보지 못하면 이렇지 않을까?

당신이 나를 보지 못하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당신 곁에 있는데 당신은 왜 아파하고 나는 왜 따라서 아파하는가?

당신이 이토록 좋은데. 우리는 이토록 행복한데.

양설은 자기가 알 수 없는 벽 앞에서 곽범을 보듬어 주기만 했다.

 

***

 

계집애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꿍쳐두었던 돈으로 사고 싶은 것들을 산 후 마차방으로 몰려갔다.

은희는 닭들이 춥지 않게 하느라 닭장 위에 거적을 두 겹으로 씌우는 중이었다.

마차방의 기술자들도 돕고 있었지만 닭장이 많아 손이 더뎠다.

계집애들이 달려가서 은희를 도와 금방 거적을 다 씌웠다.

닭장에서 일했던 은희의 옷과 신발에는 닭똥도 묻었고 냄새도 심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은희는 닭장에서 그렇게 일했었다.

은희의 노력을 알기에 부러워할지라도 비방은 못한다.

은희는 옷을 갈아입고 계집애들은 사온 물건을 집에 숨겼다.

그런 후에 함께 찻집으로 몰려가 2층의 다실에서 차와 과자, 꿀대추며 사탕을 먹었다.

사람구경을 하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사내들을 보면서 깔깔거리다가 쌓인 눈을 밟으며 육연부로 돌아갔다.

동진이 저녁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2화

 

                신신이진, 새롭게 새로워지며 달라져서 나아간다.

 

 

 

지우는 밤새 자기 마차의 요구 조건을 정해서 이른 아침에 마차방으로 달려가 전했다.

네 마리 말이 끌며 육연부 여자들이 다 타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마차였다.

사대부나 큰 부호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비싼 물건이다.

마차방의 책임자가 된 조대붕이 물었다.

"낭낭께서 타실 마차입니까?”

"타시겠죠.”

지우는 낭낭도 가끔 태워 줄 거라 속으로 생각하며 조대붕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낭낭이 탄다고 해야 더 공을 들여 만들 거란 계산이었다.

"가마도 곧 완성될 텐데, 앞으로 낭낭께서 행차가 많으실 모양이군요.”

조대붕이 말했다.

"가마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우가 물었다.

"얼마 전에 모양이 최종 결정 되어 제작 중에 있습니다. 만든 적 없는 형태라서 완성이 느려졌습니다.”

"구경해도 돼요?”

지우의 눈이 반짝거렸다.

 

조대붕은 지우를 데리고 벽 없이 지붕만 있는 큰 공방으로 갔다.

지우는 그곳에서 이상한 물건을 보았다.

가마 같기도 한데 마차처럼 바퀴가 달려있다.

네 개의 바퀴가 한 줄로 서있다.

가운데 두 바퀴는 크기가 같았고 양 끝의 것은 훨씬 작았다.

사람이 타는 부분을 들여다보니 의자 두개를 마주 놓은 정도로 좁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타거나 혼자 탈 때에는 맞은편 의자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구조였다.

양옆뿐만이 아니라 앞뒤로도 창이 나있다.

바닥에는 방패모양이면서 빨래판 같은 장치가 달려있다.

의자 좌우에는 지렛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가마가 참 이상하네.”

지우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렸다.

“이 가마는 가마꾼이 들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바퀴를 밀고 갈 수 있습니다. 경사진 길을 오르거나 내릴 때도 가운데 바퀴가 크고 앞 뒤 바퀴가 작아서 마차가 크게 기울어지지 않지요.”

조대붕이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궤도가 있는 곳에서는 궤도에 올려놓고 달릴 수 있습니다. 급할 때는 가마꾼 한 명이 움직일 수도 있고, 세웠을 때는 가마가 옆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양쪽에서 발을 내릴 수도 있지요. 혹시 가마꾼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가마는 쓰러지지 않도록 장치가 되어있습니다.”

조대붕의 설명을 들으며 지우는 가마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가마는 이상하게 생겼지만 매우 예뻤고 오밀조밀했다.

“아주 험한 길에서는 바퀴를 접을 수도 있고, 바퀴가 있는 하체를 분리해서 사람이 타는 상체부만 들고 갈 수도 있지요.”

조대붕의 설명을 듣던 지우는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가마 들려면 힘 쎈 가마꾼이 필요하지 않아요? 낭낭 가마면 남자 가마꾼을 못 쓸 텐데... 여자 가마꾼이 있어요?”

조대붕이 웃었다.

"여자 가마꾼이라니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지우가 긴장하며 또 물었다.

"혹시 우리를 가마꾼으로 쓴다든가 하는 그런 말씀은 없었어요?”

조대붕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단지 가마꾼에 대해서는 염려 말라고 하시더군요.”

 

지우는 집으로 달려가 계집애들한테 말했다.

"늬들 큰일 났다. 낭낭 가마가 만들어지는 중인데 빨리 한 자리 못하면 가마꾼 된다.”

"진짜야?”

아직 직책을 받지 못한 계집애들은 화들짝 놀랐다.

"내가 지금 그 가마 보고 왔어. 다 만들어가.”

지우는 계집애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찻집에 갈 준비를 했다.

 

***

 

아침을 먹으면서 단아가 물었다.

"낭낭, 가마가 다 되어간대요. 가마꾼 누가해요?”

직책을 받지 못한 계집애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단아를 노려보았다.

단아는 못 본척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중에 누가 들어야 할 거잖아요. 한쪽은 제가 들까요?”

양설이 웃으며 말했다.

"넌 안 해도 돼.”

"그럼 누가 해요?”

단아가 물었다.

양설은 대답 대신 계집애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직책 없는 얘들이 시선을 피했고 나름 벼슬한 것들은 당당했다.

"내가 해.”

곽범이 불쑥 말했다.

"네?”

수원마저 놀라서 소리쳤다.

양설이 웃었다.

"나으리께서 하신다잖아.”

희야가 급히 말했다.

"제가 하면 되는데 왜 나으리가 해요? 제가 할게요. 전 요새 일이 없어서 칼질이나 하면서 빈둥거려요.”

동진도 거들었다.

"나으리께서 어떻게 가마꾼을 해요. 저하고 희야가 할게요.”

동진과 희야가 하겠다고 자청하자 단아부터 모든 계집애들의 표정이 하얘졌다.

단아도 자기가 한쪽을 들까요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랬는데 동진과 희야가 진심으로 말하니 물러설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수하에 계집애가 열 명이나 있는데 동진과 희야가 가마를 들게 하는 건 말이 안 됐다.

계집애 둘이 동시에 손을 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할게요.”

열 명 중에서 무공이 가장 약하고 겁도 많은 계집애들이었다.

두 계집애는 겁이 많아서 오히려 상황판단을 잘한다.

첫날 희야에게 맞을 때도 몇 대 맞고는 바로 항복했던 바 있었다.

전옥은 끝까지 버티다가 죽사발이 되었지만 그 둘은 거의 멀쩡했었다.

이번에도 버텨봐야 견딜 수 없으니 미리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양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가마는 바퀴를 안에서도 돌릴 수 있는 거야.”

 

양설은 말로 설명하기 귀찮아서 가마가 다 만들어지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계집애들은 밥 먹다 말고 우루루 몰려나가 마차방으로 달려갔다.

그 가마는 양설이 곽범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많은 고심 끝에 만들어낸 역작이었다.

"이 굽은 가맛대 봐. 가마꾼이 들 수도 있고 놓으면 발처럼 땅에 닿는다는 거지?”

계집애들이 가마를 뜯어보다시피 구석구석 살폈다.

"그런데 안에 타고 있으면서 바퀴 굴리면 옆으로 안 넘어지나? 나으리 무공이 높으시니 공 타듯이 중심 잡는 걸까? 여간 피곤한 게 아닐 텐데.”

"이 지렛대만 당겨도 바퀴가 움직여! 지렛대가 꼭 검 같아.”

지우는 자기도 이런 가마를 만들어 달라고 할 걸 하며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을 바꾸기는 곤란했다.

뻔뻔하게 낭낭이 탈거라며 네 마리 말이 끄는 거대한 사두마차를 주문해 놓았다.

그런 마당에 가마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은 신용만 까먹힐 일이었다.

마차방에 부탁할 일이 앞으로도 많을 테니 신용을 잘 지켜야 한다.

"이건 별 거 아니야. 도르레하고 지렛대, 바퀴 다 사용하면 만들 수 있어. 나도 비슷한 생각했어.”

뭐든지 다 해보고 다 아는 계집애가 또 헛소리를 했다가 욕만 먹었다.

 

***

 

찻집에서 다도를 한 곽범 일행이 일하기 위해서 육연부로 갔을 때였다.

육연부 앞에는 곽범을 기다리는 사람들 수십 명이 있었다.

강호인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엎드렸다.

복장으로 봐서는 제각각인 듯했지만 행동은 하나였다.

어제 곽범이 보였던 모습과 경고의 힘이었다.

"육연대인께 죄를 지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가장 먼저 엎드린 자가 애원했다.

유명곡이 멸망한 전말은 강호에 파다하다.

자신들의 힘이 유명곡 보다 윗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가문이나 문파는 드물다.

곽범의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자기 한 몸이야 도망치면 혹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식솔들이나 문중들은 유명곡이 당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강호인들로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육연부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십시오 대인.”

강호인들이 합창하듯 입을 맞춰 애걸했다.

곽범은 대꾸도 하지 않고 육연부로 들어갔다.

계집애 하나가 엎드려 비는 사람들을 발로 찰 듯한 시늉을 하면서 문으로 사라졌다.

 

***

 

직책이 없는 계집애들은 원래 그들의 침실이었던 방으로 들어가 바느질이나 노리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아와 장영, 은희는 곽범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유세관 지우는 집무실로 가봤자 할 일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바느질하러 다른 계집애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동진은 살림살이 장부며 살림 궁리 하느라 방에 처박혔다.

수원은 앵무 새끼들을 훈련시켰다.

양설은 할 일 없어 빈둥거리는 희야에게 등석자(鄧析子) 한 권을 주어서 읽게 했다.

등석자는 제자백가 중 명가(名家)의 비조인 등석의 이름을 빌려 궤변에 가까운 변론술을 설명한 책이었다.

희야는 말에 두서가 없어 말하다보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그런 희야가 적을 상대하면서 속을 뒤집어 놓을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책이 등석자다.

 

***

 

양설은 연공실로 내려가서 거울을 보며 자기의 몸과 얼굴을 바꾸는 무공을 연습했다.

곽범이 긴 명상과 연구 끝에 만든 무공이다.

그 무공의 바탕은 세 가지다.

몸과 얼굴은 물론 거의 모든 것을 따라서 바꾸는 곽범 사부의 역용변신공,

보는 사람의 정신과 내공까지 빨아들이는 유명곡 요경의 원리,

마지막으로 변화의 방법을 말하는 금왕경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무공이었다.

요경과 달리 이 무공은 얼굴을 보는 사람의 내공을 끌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 사람 몸속의 심맥을 끊어 놓을 수도 있으며 주화입마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얼굴로 펼치는 일종의 심검(心劍) 또는 심공(心功)이었다.

다만 곽범도 아직 그 정도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양설 역시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바꾸는 역용변신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역용변신만으로도 전혀 다른 사람인양 눈빛과 목소리까지 바꾸는 게 가능했다.

누군가를 보고 모습을 바꾸면 원래 사람의 습관까지 빌려올 수 있었다.

한번 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기억하는 한도에서는 재현이 가능했다.

곽범은 이 무공을 염왕현신(閻王現身)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양설은 자기가 사용할 이름을 따로 지었다. 염왕으로 현신할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양설은 이 무공을 익히면서 몸과 얼굴을 바꾸는 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릇이 바뀌면 담긴 내용이 달라진다.

사람의 모습이 바뀌면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진다.

마음이 달라지면 상황을 다르게 본다.

보는 상황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다른 행동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행하여 얻고 깨닫는 바도 달라지게 된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도 결국은 사람의 얼굴과 형상과 상황이라는 굴레에서 이루어진다.

하늘이 사람이라는 그릇을 내고 어떤 환경에 두었으면 그 해야 할 바와 할 수 있는 바가 그 안에 갖추어져 있다.

그릇을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릇을 바꿀 수 있으면 그것 역시 하늘이 지은 환경이니 바꾸어야 옳다.

바꾸어야 할 그릇을 고집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지 않는 것이다.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담고자 애쓰는 건 자기의 그릇을 그렇게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다.

배우고 익히며 깨닫고자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바를 늘여서 그릇을 바꾸는 것이다.

양설은 곽범이 만든 이 무공에서 사람이 사람의 한계를 넘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기문둔갑의 둔갑변신의 참된 의미가 여기에 있을지도 몰랐다.

온갖 술법들로 몸을 휘감고 있어도 정작 자신을 바꾸지 못하면 작은 도구들을 들고 다니는 바와 다를 바가 없다.

지식도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반영되지 못하면 먹다 버린 음식처럼 자기를 부패하게만 할 것이다.

은(殷)나라의 시조 성탕(成湯) 태을(太乙)이 세숫대야에 새겨놓고 날마다 보았다는 글귀를 떠올렸다.

일신일일신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고 새롭고 또 새로워져야 한다.

끝없는 자기 변화의 의무를 말해주는 글귀다.

양설은 바탕은 같지만 괵범과는 쓰임새가 다른 이 무공에 신신이진공(新新以進功)이라는 이름 붙였다.

새롭게 새로워지고 달라지며 나아가는 공부라는 의미였다.

하는 바에 정성을 들인다면 몸은 바뀌지 않더라도 행동과 마음은 신신이진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양설에게 신신이진은 사람의 큰 도리였다.

달라지고 나아가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양설이 지은 도였다.

물산을 왕성하게 하여 사람을 부귀롭게 하는 것으로 이 길을 세우며, 가로막는 것을 베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은 곽범의 도일 수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101화

 

                염왕의 얼굴, 재신의 얼굴

 

 

 

마부들이 북두칠성이라 불리는 일곱 거한들을 끌어와 한 자리에 모아두었다.

북두칠성은 알이라는 알은 다 까여서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들의 수작에 분노한 계집애들이 달려들어서 칼로 쓸고 발로 짓밟고 돌로 뭉개버린 것이다.

곽범은 그들의 몸에 주화입마까지 걸어놓았다. 그 때문에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절세고수들인 이십팔수도 상대할 수 있다던 북두칠성의 비참한 말로였다.

북두칠성을 모아놓은 마부들은 사냥한 짐승들을 마차에 싣고 부리나케 돌아가 버렸다. 곽범이 드러낸 염왕의 모습에 혼백이 날아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계집애들 역시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도 곽범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곤 했다.

"찻집 샘은 물맛이 좋아요. 찻집에서 술도 담가보라고 할까요?”

양설이 곽범의 잔에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그게 좋겠어요.”

곽범은 유순하게 대답했다.

계집애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곽범의 말투와 얼굴이 아까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말은 잘 못하지만 관대하고 따뜻한 원래의 나으리였다.

곽범이 보여준 서로 다른 모습은 적응하려 애써도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아까 내가 놀라서 울지나 말라고 했지?”

양설이 웃으면서 계집애들에게 말했다.

"네...”

계집애들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양설이 농을 걸었다.

"깔깔거리더니 오줌이나 싸지 않았으려나.”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대부분의 계집애들이 실제로 지려버렸기 때문이다.

양설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아까 그건 나으리 얼굴들 중 하나야. 염왕의 얼굴! 나으리께서 싸울 때 사용하려고 만드신 거라 많이 무서워.”

"다른 얼굴들도 있나요?”

누군가가 물었다.

양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할 때 얼굴도 있어. 재물의 신, 재신의 얼굴! 그리고 원래 이 모습이시지. 더 필요한 얼굴이 있을 리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었던 계집애가 또 물었다.

"낭낭은 안 무서웠어요?”

"안 무서울 수가 없잖아. 낭군님이니까 원래 무섭고... 하지만 낭군님이니까 무서워도 괜찮은 거지.”

양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단아가 군사답게 가장 먼저 알아들었다.

"아! 그럼 우리도 무섭지만 무서워도 괜찮구나.”

다른 계집애들의 머리도 동시에 까닥거렸다.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은희는 술잔을 들며 투덜거렸다.

"술 맛이 안나요. 너무 놀라서 취하지도 않는 거 같아요.”

기력을 회복한 첩밀관 장영도 말했다.

"나으리의 경고를 돌이나 비석에 새겨서 표시해놓아야겠어요. 나쁜 놈들이 우리 땅에 아예 못 들어오게. 그놈들 두 번 만 더 들어오면 제가 나으리한테 놀라 죽겠어요.”

양설이 고개를 저었다.

"나으리의 이 무공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야. 지금은 무서운 정도지만 완성되면 보는 순간 급살 맞아 죽을 거야.”

계집애들의 얼굴이 다시 사색이 되었다.

가장 겁 많고 소심한 계집애가 덜덜 떨며 물었다.

"그럼 우리 어떻게 해요? 실수로 볼 수도 있잖아요.”

"실수가 안타까운 거지.”

양설의 놀리는 말에 그 계집애는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다른 계집애가 씩씩한 척 하며 말했다.

"괜찮아. 싸울 때 나으리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면 돼!”

울먹이던 계집애가 빽 소리쳤다.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는데 어떻게 안 봐!”

"눈... 감아야겠네...”

또 다른 계집애가 중얼거렸다.

울먹이던 계집애가 곽범에게 물었다.

"나으리, 그 무공 안 하면 안 돼요? 그냥 우리가 다 죽일게요.”

"안 돼.”

양설이 곽범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사람이 적어. 많은 적을 상대할 때 불리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나으리께서 이 무공을 펼치면 사람이 몇 명이든 상관없어. 이 사실을 적들도 알아야해. 수가 많다고 함부로 우리를 공격 못하게.”

 

곽범은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할 말도 없고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말할 줄도 모른다.

오히려 새들하고 말을 더 잘 하는 편이다.

양설이 채워준 술잔을 비운 곽범은 고기를 먹으면서 새들과 놀았다.

새들도 남아있는 짐승들 고기를 뜯으며 놀았다.

바람쟁이가 곽범에게 날아와 물었다.

"여자 하나인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많아?”

바람쟁이는 탁양앵무들 중 가장 빨리 날았다.

그래서 반란군 속에 숨어 흑귀면탈을 감시하는 임무를 받았었다.

그러던 중 오늘 흑귀면탈이 곽범을 노리고 하호성에 다시 숨어들어왔다.

바람쟁이는 그걸 곽범에게 알리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아내는 설 하나야.”

곽범이 대답했다.

바람쟁이가 다시 물었다.

"나머지는 다 첩인 거야? 짝짓기 다 해봤어?”

당황한 곽범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양설은 큭큭 웃었다.

계집애들은 바람쟁이의 노골적인 말에 황당해서 고기 씹는 것도 잊었다.

바람쟁이가 코웃음을 쳤다.

"짝짓기도 안 하면 암컷에게 무슨 쓸모가 있어? 밥만 축내지.”

곽범의 밥버러지 타령은 새들에게도 전염되어 있었다.

바람쟁이는 계집애들을 둘러보았다.

"괜찮게들 생겼네. 틈내서 확 따먹어버려.”

계집애 하나가 바람쟁이한테 말했다.

"저.... 새님. 말씀이 너무 심합니다.”

“뭐가? 따먹는 거?”

바람쟁이가 뚱해서 되물었다.

"암컷들은 따먹히는 게 당연하잖아. 따먹혀야 알 낳고 새끼 까지. 나도 봄마다 얼마나 많이 따먹히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 수십 놈이 달려들어. 알주머니 무겁게.”

보다 못한 빽빽이가 바람쟁이를 옆으로 끌고 갔다.

"쟤들 새 아니야. 사람이라고. 사람은 우리하고 달라.”

"다르긴 뭐 달라. 우리보다 더 하지. 밤낮 짝짓기 하는데.”

"그것도 다 사정이 있어. 사람들 사랑은 복잡해서 밤낮 짝짓기 하면서 만드는 거야. 우리는 짝짓기 해서 알 만들지만 사람들은 사랑 만들어.”

"곽범이가 그런 걸 알아? 짝짓기 못해서 안달 났던 곽범이가!”

바람쟁이가 불신에 차서 소리쳤다.

다른 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바람쟁이를 멀찌감치 끌고 갔다.

겁쟁이가 빽빽이에게 소리쳤다.

"바람쟁이 좀 잘 가르쳐! 고생했지만 저러다 곽범이한테 맞아 죽는다.”

 

지우는 원했던 대로 유세관이 되었다.

곽범이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지우는 자기가 얼마나 멋지게 돈화전장 강대인을 혼내고 거래를 잘 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래서 나으리, 저 이제 유세하고 다니려면 마차가 꼭 필요할 것 같아요. 나이도 어린데 마차는 타고 다녀야 사람들이 무시 못할 거잖아요.”

지우가 뭘 요구할지 알고 있던 계집애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곽범의 눈치만 살폈다.

지우가 마차를 얻으면 자기들도 공을 세웠을 때 마차, 또는 그 이상의 걸 얻을 가능성이 컸다.

“마차하고 마부 한 사람만 주세요 네? 마차 타고 오가면서 생각도 해야 하고, 문서나 물건도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지우의 간청에도 곽범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즉각 호통을 듣지 않은 건 좋은 징조다.

“특히 먼 길이라도 가면 옷이랑 가져가야 할 게 한 짐일 수도 있는데...”

이어지던 지우의 간청을 동진이 막았다.

"낭낭도 마차 없어. 나으리도 안 타시고.”

지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양설이 역성을 들어주었다.

"나야 집에만 있으니까 필요가 없는 거고. 지우는 필요하겠네.”

이미 반은 허락 받은 거나 다름없었지만 지우가 재빨리 인사하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낭낭! 감사합니다. 유세관 역할 잘 할게요.”

희야가 지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필요할 때만 이번처럼 한 대 가져가서 쓰면 되지 왜 전용 마차가 필요해?”

"유세관 마차인데 좀 특별해야죠. 꾸미기도 꾸며야 하고.”

지우가 기다렸다는 듯 늘어놓았다.

“또 지금 마차는 타보니까 그렇게 편하지 않더라구요. 자리도 좀 더 푹신하게 해야 되겠고... 바람 안 들어오게 휘장도 치고... 멀리 갈 땐 야영 대신 잠도 잘 수 있게 긴 의자도 하나 넣고. 화살 같은 거 막게 안에 철판도 좀 대고.”

"대체 얼마나 생각했으면 저런 말이 한 번에 다 나와?”

듣고 있던 동진이 혀를 찼다.

곽범은 지우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마차방에 이야기해서 만들어라. 물과 음식을 넣어둘 자리도 마련해놓고.”

지우가 날아갈 듯이 절을 했다.

"유세관 지우, 나으리와 낭낭을 위해 신명을 다 하겠습니다.”

샘이 난 은희가 단아한테 말했다.

"이제 말 잡으러 가자.”

단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굿간도 없잖아. 마굿간 만들고 데려와도 돼.”

"그렇겠다. 말 먹이 아끼겠네.”

은희는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첩밀관 장영이 곽범에게 물었다.

"나으리, 흑귀면탈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죽으니까 도망친 것일까요?”

단아가 곽범 대신 대답했다.

"어딘가에 숨어서 나으리를 봤을 거야. 북두칠성을 풀 베듯 쓰러트리시는 걸 보고 도망갔을 거라고 봐.”

"집이 걱정된다. 흑귀면탈이 금왕경 찾는다고 몰래 들어가지나 않았을지.”

한 계집애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양설은 웃었다.

흑귀면탈은 무시무시한 고수지만 신중하다.

직접 곽범의 집을 침입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대신 보냈다면 그 자는 육연부나 육연별부의 기문진에 갇혀있을 것이다.

 

***

 

지우가 타고 왔던 마차도 짐마차들과 함께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곽범 일행은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차방에서는 마차방의 방장이 된 조대붕이 사냥한 짐승들을 분배하여 보낼 곳에 보내는 중이었다.

양설은 쓸개를 뽑지 않은 곰 한 마리를 찻집의 전 주인이자 투자자인 서문노인에게 보냈다.

전옥이 주먹으로 때려잡은 호랑이는 돈화전장 강대인에게 선물로 보냈다.

 

다행히 집에 침입자는 없었다.

계집애들은 방마다 불을 지피고 욕간의 물을 데우러 갔다.

고기를 먹어 든든했기 때문에 동진은 고기로 죽을 끓여 식구들 저녁으로 대신했다.

양설은 곽범과 함께 눈이 나무 밑에 쌓여있는 정원으로 나와 걸었다.

희야가 석등을 밝혀 두었다.

겨울 산책은 함께 하는 사람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한다.

양설은 곽범의 손을 잡고 정원을 한 바퀴 돈 후 방으로 돌아갔다.

 

계집애들은 방마다 불을 밝히고 저마다 궁리한다.

떼어 놓으면 나태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계집애들은 함께 있는 한 모든 것으로 경쟁하고, 또 협력하며 다퉜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무공천재의 무림경영 2

 

                프롤로그

 

 

 

곽범은 천재다.

도적에게 부모를 잃은 곽범을 제자로 거둔 사부는 색마다.

사부는 곽범도 색마로 만들어 자신의 무공을 높이는데 이용하려했다.

하지만 곽범은 사부가 가르쳐준 색마의 무공을 전혀 다르게 변형시켜 버렸다.

분노한 사부는 곽범을 죽기 직전까지 구타한 후 떠났다.

스스로 만든 무공 덕분에 목숨을 건진 곽범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사부가 보낸 새장수 이판이란 자가 곽범을 죽여서 새들의 먹이로 쓰려 한 것이다.

기지를 발휘하여 새장수 이판을 죽인 곽범은 그자가 기르는 탁양앵무들을 거둔다.

탁양앵무는 양을 잡아먹을 먹을 정도로 흉포한 새다.

탁양앵무들을 사람처럼 똑똑하게 길러낸 인물은 금왕(禽王) 오신이다. 사왕(四王) 중 한명인 금왕의 제자가 새장수 이판이었다.

탁양앵무들과 함께 산을 내려온 곽범에게 세상은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곽범은 그 좋은 것들을 누리기 위해 부자가 될 결심을 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책으로 배우려던 곽범은 양설을 만났다.

낡은 책방 주인인 양설도 고아였다.

양설의 사부는 여자들 중의 제일고수였다.

양설에게 반한 곽범은 무작정 구애를 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양설은 이윽고 체념하듯 곽범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짝이 된 곽범과 양설은 함께 성장하고 함께 부자가 되어갔다.

부가 늘어나고 명성이 높아지자 곽범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사부가 알게 되었다.

곽범은 정체를 숨기고 접근한 사부에게 하마터면 양설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길 뻔했다.

분노하여 사부를 죽인 곽범은 점차 무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는데...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제 5장

 

                     난감한 명령

 

 

 

검의 서슬(날카로운 기운)을 검 밖으로 확장시킨 것이 검기다.

검기를 일으킬 수 있으면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적을 벨 수 있다.

물론 검법을 수련했다고 누구나 검기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검과 한 몸이 되는, 검신합일(劍身合一)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그 검기를 극한까지 응축시키면 검강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검기의 결정체인지라 검강에 베어지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호신강기이든, 단단하기로 소문난 한철(寒鐵)이든 검강을 막지 못한다.

심지어 귀신이나 혼백도 벨 수 있다고 한다.

능풍운은 흑룡선단의 해적들이 하나같이 일격에 몰살당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자들 중 누구도 흑의여인이 발휘한 검강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하물며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능풍이다. 검강에 스치면 간단히 토막 쳐질 것이다.

절체절명!

말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너는....]

갑자기 흑의여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같은 외침을 터뜨렸다.

운기조식 하던 그녀는 누군가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었다.

한데 검강을 뽑아낸 검으로 그자의 목을 치려던 흑의여인은 아연실색했다.

상대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소년이어서가 아니었다.

소년의 얼굴은 흑의여인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떤 인물을 빼닮았다. 그 인물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사병까지 앓았었다.

흑의여인이 능풍운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였다.

(안돼!)

흑의여인은 검에 주입했던 내공을 사력을 다해 거두어 들였다.

츠읏!

그러자 검 끝에서 이장 넘게 뻗어 나왔던 검강이 눈 녹듯 사라졌다.

퍼억!

직후 검은 흑의여인의 손에서 빠져나와 한쪽 선실 벽에 꽂혔다. 내공을 억지로 거두자 경맥이 강한 충격을 받았으며 그 바람에 손아귀에서 힘이 빠진 것이다.

[컥....]

검을 놓친 흑의여인은 단말마같은 비명을 토하며 뒤로 넘어졌다.

[아주머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능풍운은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갔다.

[끄윽...]

침대에 널브러진 흑의여인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검은색 저고리 속에서는 한 쌍의 푸짐한 살덩이가 갓 쑨 묵처럼 요동을 친다.

얼굴을 가린 면사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흑의여인은 성치 않은 몸 상태에서 내공을 억지로 역류시켰다. 그 충격으로 인해 경맥이 여러 곳 손상되며 내상을 입고 말았다.

침대로 달려간 능풍운이 급히 흑의여인을 부축하려할 때였다.

[내... 내 몸에 손대지 마라.]

흑의여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괜... 괜찮으신지요?]

능풍운은 움찔하며 손을 거두었다.

[물, 물러서라.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흑의여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검은 옷에 감싸인 풍만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으며 얼굴을 가린 면사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말과 달리 그녀의 몸 상태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진... 진기가 흩어지는 바람에 겨우 억눌러놨던 최음제(催淫劑)의 독성이 폭주하고 있다.)

흑의여인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숨은 거칠며 면사 위로 드러난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실 흑의여인은 강렬한 최음제에 중독당한 상태였다.

그녀에게 최음제를 쓴 자는 선실 입구에 죽어있는 음침한 인상의 서생이었다.

 

-음양수재(陰陽秀才)!

 

흑룡선단 단주 독안용왕의 오른팔이다.

박식하고 꾀가 많아 흑룡선단의 군사 역할을 맡고 있는 그자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지나치게 색을 밝힌다는 게 그것이었다.

음양수재는 어떤 여자든 일단 회가 동하면 기어코 욕심을 채우곤 했다. 상대가 유부녀이든 처녀든 가리지 않고 범했다.

비구니나 여자도사라도 거리낌 없이 욕정의 제물로 삼았다.

음양수재에게 신세를 망친 여자는 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던 차에 대단한 명성과 미모의 소유자인 흑의여인이 남해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흑의여인을 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흑의여인의 무공이 대단해서 일단 무력화시키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결국 함정에 빠진 흑의여인은 상당량의 최음제를 복용하고 말았다.

음양수재가 쓴 최음제는 독성이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단 중독당하면 욕화에 휩싸여 이성을 완전히 잃는다. 오직 욕정의 해소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흑의여인이 최음제를 복용한 사실을 확인한 음양수재는 본색을 드러냈다. 저항력을 상실한 그녀를 겁탈해서 욕심을 채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능풍운이 본 대로였다.

음양수재는 물론이고 그 자가 이끌고 해적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최음제에 중독되어 제 정신이 아니었음에도 흑의여인은 배안의 모든 인간들을 몰살시켜버렸던 것이다.

음양수재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결말이었다.

 

(틀... 틀렸다!)

흑의여인은 절망했다.

비록 음양수재가 쓴 최음제의 독성이 지독하긴 했어도 해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후하기 이를 데 없는 내공으로 최음제의 독성을 조금씩 태워버리면 되었었다.

대략 한 시진쯤 지났으면 완전히 최음제의 독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내공을 역류시키는 과정에서 입은 내상으로 인해 최음제의 독성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욕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온몸으로 퍼져간다. 펄펄 끓는 기름을 삼킨 듯 몸속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정신은 아득해져갔다.

사내!

욕정을 해소시켜줄 사내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대로 가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발정 난 짐승처럼 아무 사내에게나 마구 몸을 내돌리게 될 것이다.

[어디가 불편한지 말씀해주십시오.]

흑의여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알아차린 능풍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러가라고 했다.]

흑의여인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능풍운의 몸에서 느껴지는 수컷의 냄새가 그렇잖아도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의 불길에 부채질을 한다.

능풍운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노려보는 흑의여인의 눈에 핏발이 서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저 아주머니를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능풍운은 흑의여인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도움이 필요치 않으시다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능풍운은 흑의여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그때였다.

[기, 기다려라!]

흑의여인의 급히 불러 세웠다.

[분부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선실을 나가려던 능풍운은 흑의여인을 돌아보았다.

(닮았어. 그 무정한 사내와 정말 닮았어.)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능풍운을 훑어보는 흑의여인의 숨결이 가빠졌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애송이는 자신으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했던 어떤 사내를 빼닮았다.

몇 년만 더 지나면 능풍운은 그 사내의 판박이가 될 것이다.

[이름... 이름이 무엇이냐?]

흑의여인은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능풍운이라고 합니다.]

[능.... 능씨란 말이지?]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흑의여인의 풍만한 몸에 세찬 전율이 치달렸다. 애송이는 그녀의 애를 태웠던 사내를 닮았을 뿐 아니라 성도 같았다.

(틀림없다. 저놈은 그 사람의 아들이다. 어떤 사연으로 일초무학인 채 남해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흑의여인은 능풍운의 정체를 확신했다. 피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저렇게 닮을 수는 없다.

능풍운이 자신으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했던 사내의 아들이라 생각하자 안도감과 망설임이 함께 밀려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 사람의 아들이라면 몸을 허락할 수도... 아니야! 어떻게 그 사람의 아들과 그런 짓을...)

흑의여인은 격렬한 갈등에 휩싸였다.

제어가 불가능해진 욕정을 해소하려면 사내에게 몸을 맡겨야만 한다.

그렇다고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여는 건 흑의여인의 고고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길거리 창녀 신세가 될 바에는 죽어버리는 게 좋다.

그랬는데 능풍운이 자신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때 사모했던 사내를 빼닮은 소년에게라면 몸을 허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짝 사랑했던 사내의 아들과 그 짓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흑의여인의 갈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몸 상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깊은 곳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리고 머릿속은 오직 욕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무슨 추태를 부리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흑의여인은 이성이 남아있을 때 결단을 내렸다.

[정말, 나를 도와주겠느냐?]

이미 초점이 사라지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능풍운을 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제 능력이 닿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능풍운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먹이처럼 훑어보는 흑의여인의 시선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몇, 몇 살이냐?]

흑의여인은 헐떡이며 다시 물었다.

[열여섯 살입니다만....]

흑의여인이 갑자기 나이를 묻자 능풍운은 의아해하면서도 숨김없이 대답했다.

[열여섯... 겨우 열여섯살이란 말이지?]

능풍운의 나이를 안 흑의여인은 당혹이 서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능풍운이 건장한 체격과 달리 아직 어리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열여덟 살 쯤은 되었을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무려 두 살이나 더 어리다.

(내가 살자고 아들, 아니 손자뻘인 저 아이에게 몸을 허락해도 되는 걸까?)

흑의여인은 다시 한 번 갈등에 휩싸였다.

사실 그녀는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다. 오십을 넘긴지도 몇 년이나 지났다. 만일 평범한 인생이었다면 능풍운 정도의 손자를 봤을 수도 있다.

헌데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손자뻘인 소년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의 갈등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어느덧 욕정은 그녀의 조금 남은 이성마저 태워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능풍운에게 몸을 허락해야하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날 도와줄 마음이 변치 않았다면... 천지신명께 맹세해라. 날 돕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흑의여인은 충혈된 눈으로 능풍운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의 뜻밖의 요구에 능풍운은 움찔했다.

도와주려는데 설마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요구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소생 능풍운은 부인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것을 하늘과 땅에 계신 여러 신명께 맹세합니다.]

능풍운은 엄숙하게 맹세했다.

[지금의 그 맹세... 잊지 마라.]

능풍운의 맹세를 들은 흑의여인은 안도하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내가... 명령하겠다. 이리 와서... 나를 범해라.]

[뭐, 뭐라고요?]

능풍운의 입에서 비명같은 신음이 터져나온 것은 당연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제4장

 

                      난파선에서 만난 마녀

 

 

 

뱃전에 선 능풍운은 수평선 쪽을 살피고 있었다.

[난파선인가?]

손을 이마에 댄 능풍운의 미간이 모아졌다.

시간은 막 오시(午時)를 지났다.

능풍운이 있는 곳은 해복진에서 남동쪽으로 오십여 리쯤 떨어진 해상이다.

그물을 내리던 능풍운은 수평선에 작은 점 하나가 떠있는 걸 발견했다.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그 점은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다.

능풍운은 직감적으로 그 점이 추진력을 잃은 배임을 알아차렸다.

(가볼까?)

호기심이 일었다.

무림인들이 수십 명 죽고 여러 척의 배가 난파당했다는 왕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물을 치고 물고기가 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갔다 오자.)

능풍운은 빠르게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그물에는 말린 박에 밀납을 발라 만든 부표가 여럿 달려 있다. 부표들은 그물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게 해줄 뿐 아니라 그물 친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부표들이 제대로 그물을 지탱하는 것까지 확인한 능풍운은 난파선이 보이는 수평선을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끼익 끽!

구릿빛 팔의 근육이 노를 저을 때마다 굼실거린다.

촤아...!

노가 저어질 때마다 뱃전의 물살이 좌우로 쩍쩍 갈라졌다.

능풍운을 태운 조각배는 경쾌하게 파도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얼마나 갔을까?

작은 점으로만 보였던 물체가 뚜렷하게 형태를 드러냈다.

(역시 난파선이었다.)

능풍운의 눈이 반짝였다.

점이었던 물체는 길이 이십여 장에 수면으로부터 뱃전까지의 높이가 삼장이나 되는 거대한 배였다.

배 위에는 이층누각까지 세워져 있었다.

뱃사람인 능풍운도 본 적이 없는 크고 화려한 누선(樓船;누각이 있는 배)이다.

누선은 좌측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선체 아래쪽이 깨져서 바닷물이 스며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누선에 가까이 접근한 능풍운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괴괴한 적막만이 거대한 배를 휘감고 있을 뿐이었다.

(올라가 보자.)

능풍운은 뱃전 밖으로 늘어져 있는 밧줄에 타고 온 조각배를 묶었다.

그리고는 밧줄을 잡고 누선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헉....]

이윽고 누선의 갑판 위로 얼굴을 내밀던 능풍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밧줄을 놓치고 바다에 떨어질 뻔 했다.

누선의 갑판이 흥건한 피와 시체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끔... 끔찍하구나.]

진저리를 치면서도 능풍운은 누선으로 올라갔다. 강렬한 호기심이 공포와 혐오조차 눌러버렸다.

그래도 갑판에 올라서자마자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야했다. 너무도 역겨운 피비린내에 구토가 치밀어 오른 때문이다.

능풍운은 사람 시체를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난파를 당해 익사한 시체가 종종 해변으로 밀려오곤 한다. 그 시신들을 거두고 안장해주는 일은 바닷가 사람들의 일상 중 하나다.

능풍운도 마을 어른들을 도와서 익사한 시신을 수습하곤 했었다. 그래서 시체를 보고 만지는 것쯤은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몸서리가 쳐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누선의 갑판 위에 펼쳐진 지옥도는 상상조차 못해본 것이었다.

갑판 위에 널려 있는 수십 구의 시체는 그 형상이 실로 끔찍했다.

팔 다리가 잘려나간 자,

목이 동체와 분리된 자,

허리가 끊어져 내장과 피를 꾸역꾸역 쏟고 있는 자...

말 그대로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시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일격에 죽었다는 점이었다. 시체에 남아있는 상처는 한 곳에 불과했지만 예외없이 치명적이었다.

(무섭구나. 인간이 어찌 이토록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능풍운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그러다가 발치에 둥그런 동패(銅牌)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능풍운은 조심스럽게 동패를 집어들었다.

피에 흠씬 젖어있는 동패 전면에는 정교한 교룡(蛟龍)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흑룡선단의 표기 아닌가?)

교룡 문양을 본 능풍운은 흠칫 놀랐다.

 

-흑룡선단(黑龍船團)!

 

남해 일대를 횡행하는 해적들 중 가장 규모가 큰 해적 무리다.

수백 척의 배를 지녔다는 흑룡선단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바다에서는 그들을 당해낼 세력이 전무한 실정이다. 대륙을 구석구석까지 장악하고 있는 황실의 권위도 흑룡선단에게는 미치지 못할 정도다.

흑룡선단의 단주는 독안용왕(獨眼龍王)이라는 인물이었다.

해적무리의 수괴답게 독안용왕은 수중공부(水中功夫)에 탁월하다. 물이 있는 곳에서는 그자를 당해낼 상대가 없다고 할 정도다.

독안용왕 휘하의 흑룡선단은 먼 바다를 활동무대로 삼아왔다. 대륙을 통일해서 한창 기세가 등등해진 황실과 충돌해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풍운도 흑룡선단의 이름만 들었을 뿐 직접 조우한 적은 없었다.

그 흑룡선단의 표기가 난파선에서 발견된 것이다.

능풍운은 다른 시체에서도 흑룡패(黑龍牌)를 몇 개 더 찾아냈다.

시체들이 흑룡패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 누선은 흑룡선단 소속의 해적선임에 틀림없다.

(누가 흑룡선단의 해적들을 몰살시켰을까? 바다에서는 무적이라 불리던 자들인데...)

능풍운은 조심스럽게 시체들 사이를 지나 이층 누각의 일층 입구로 다가갔다.

입구에 달려있던 튼튼한 문은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베어져있다.

끼익!

능풍운은 반쯤 잘려나간 문을 조심스럽게 옆고 선실로 들어섰다.

(여자!)

한데 선실로 들어서던 능풍운의 눈이 치떠졌다.

널찍하고 호화롭던 선실 역시 폭풍이 스쳐 지나간 듯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선실에서 능풍운은 처음으로 생존자를 발견했다.

[...]

선실 끝에 놓인 널찍한 침대에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두터운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나이는 물론이고 용모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옷 밖으로 드러난 풍만한 몸매를 통해 중년에 접어든 여인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여인은 일신에 칠흑같이 검은 흑의(黑衣)를 걸치고 있었다.

검은색 옷 때문에 소매 밖으로 드러난 양손이 눈부시게 희어 보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흑의여인의 허벅지 위에는 한 자루의 검이 가로 놓여있었다. 본래 새파랬을 검날은 피를 머금어 검붉게 변해있었다.

(저 여인이 이 배의 선원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이겠구나.)

흑의여인의 허벅지 위에 놓인 피 묻은 검을 본 능풍운은 전후 사정을 짐작했다.

(여자의 몸으로 한 두 명도 아니고 수십명의 사내를 죽이는 게 가능했구나.)

상황을 파악한 능풍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연약했다. 당연히 여자가 살인을 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놀라움과 충격을 억누르며 능풍운은 선실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선실 안에는 흑의여인 외에도 세 명의 사내가 더 있었다. 하지만 그자들 역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침대 옆에는 소매가 없는 가죽옷을 걸친 사내 두 명이 쓰러져 있다.

흉포하고 거친 인상을 지닌 자들인데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인 듯 얼굴이 비슷했다.

그자들은 허리가 잘려 네 토막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선실 입구, 즉 능풍운의 발치에 쓰러져 있다. 서생 차림을 한 그자는 분을 바른 듯 새하얀 얼굴에 단정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하지만 준수한 얼굴과 달리 음산한 인상을 풍기는 자였다.

능풍운은 서생차림의 사내가 심기가 아주 깊은 모사꾼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는지 서생은 두 눈을 한껏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서생이 입은 치명상은 목에 난 자상이었다. 그자의 목은 절반 넘게 베어져 대량의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서생의 오른손에는 부채가 꽉 쥐어져 있었다.

부챗살이 투명한 옥으로 만들어진 그 부채는 일견하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능풍운은 서생의 손에서 부채를 빼내어 펼쳐 보았다.

부르르!

직후 능풍운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음양선(陰陽扇)>

 

부채 상단에 그같은 글이 적혀 있으며 그 아래로 아홉 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데 그 그림이란 것이 실로 낯 뜨거웠다. 발가벗은 남녀가 각각 다른 체위로 뒤엉켜 있는 춘화(春畫)였던 것이다.

춘화는 그 묘사가 더할 수 없이 정교하다.

교합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 듯 생생하다.

여인의 아랫도리에 핏줄이 툭툭 불거진 흉측한 살덩이가 결합되어 있는 것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너무도 음란하고 망측한 그림을 본 능풍운은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었다.

(못 볼 것을 보았다.)

그는 급히 부채를 접었다.

하지만 가슴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리기도 해서 능풍운은 남녀관계에 무지하다. 당연히 여자의 알몸을 본 적도 없다.

그런 그에게 적나라하게 묘사된 춘화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벌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음양선이란 부채에 그려진 아홉 폭의 춘화가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단순히 춘화의 묘사가 떠오른 정도가 아니었다.

 

-환희음양법(歡喜陰陽法)!

 

첫 번째 그림 위에 적혀있던 춘화의 제목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추잡한 물건이다.]

휘익!

화가 치민 능풍운은 음양선을 선실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시선을 흑의여인에게로 돌렸다.

(이 여자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죽은 건 아닌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흑의여인을 살펴보며 능풍운은 의아해졌다,

무공에 문외한인 능풍운이다.

흑의여인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운공요상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능풍운은 조심스럽게 말하며 흑의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번-쩍!

굳게 감겨있던 흑의여인의 눈이 면사 위로 치떠지며 번개 치는 듯한 안광이 작렬했다.

(헉!)

능풍운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스악!

그 직후 능풍운은 흑의여인의 새하얀 손이 검을 잡더니 자신을 향해 검을 그어내는 걸 보았다.

그의 눈에는 흑의여인의 손짓이 느린 동작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눈으로는 볼 수 있어도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을지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흑의여인의 느린 듯한 일검은 능풍운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제압하며 다가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흑의여인과의 거리가 이장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척이 채 안되는 검에 베일 일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능풍운의 착각이었다.

쩌엉!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흑의여인이 휘두르는 검이 쭉 늘어났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검날이 무려 이장 가까이로 길어진 것이다.

실제로 검날 자체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검날에서 거의 고형화 된 검기(劍氣)가 뿜어진 것뿐이다.

 

-검강(劍罡)!

 

그렇다! 흑의여인은 검강을 뽑아내 능풍운을 죽이려는 것이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제 3장

 

                 기인의 선물

 

 

-낭왕 혁련사!

 

음산(陰山)과 관외(關外) 일대에서 패자로 군림해온 인물이다.

늑대의 왕이라는 별호답게 그는 수천 마리의 늑대를 수족처럼 부린다.

게다가 늑대의 무리와 섞여 살며 독특한 무공을 창안하여 일문(一門)을 이루었다.

천랑마검은 바로 그 낭왕 혁련사의 제자였다.

물론 그자가 자랑하는 천랑십이식도 낭왕 혁련사가 창안한 검법이다.

무림인들이 천랑마검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가 낭왕 혁련사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쯧쯧, 혁련사, 그 덜 떨어진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애송이를 무림에 내보냈군.]

마의노인은 천랑마검을 흘겨보며 혀를 찼다.

마의노인은 관외 무림의 패자인 낭왕 혁련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욕했다.

그러나 마의노인이 스승을 욕하는 데에도 천랑마검은 찍소리도 못냈다.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천랑마검의 그같은 모습이 능풍운을 더욱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노인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기에 저 작자는 스승이 욕을 먹어도 억지웃음만 짓고 있단 말인가?)

능풍운은 새삼 마의노인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의노인은 평범한 촌노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의노인의 눈동자가 녹색을 띠고 있다는 정도였다.

[하... 하교가 없으시다면 후배는 이만....]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굳이 더 잡지는 않으마.]

마의노인은 곰방대의 재를 능풍운의 뱃전에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감사합니다.]

안도한 찬랑마검은 급히 마의노인에게 포권을 한 후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너를 그냥 보내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그때 마의노인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안도하던 천랑마검의 얼굴이 단번에 사색으로 질렸다.

[노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어린놈들의 잡기를 재롱삼아 구경하는 게 그것이다.]

마의노인은 근처 어선의 뱃전에 걸터으며 말했다.

(휴... 난 또 뭐라고!)

천랑마검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이 무서운 노독물(老毒物)은 자기보고 천랑일문(天狼一門)의 독문 검법 천랑십이식을 한 번 펼쳐 보이라는 것이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천랑마검으로서는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그럼 미거하나마 노야의 높으신 안목에 폐를 끼치겠습니다.]

천랑마검은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두 팔을 내려뜨렸다.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덮치려는 듯한 자세였다.

그 자세야말로 천랑십이식의 기수식인 아랑출림세(餓狼出林勢)였다.

[....]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천랑마검을 주시했다.

[카앗!]

다음 순간 천랑마검의 입에서 늑대가 울부짓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쉬학! 파츠츠...

뒤이어 시퍼런 검광(劍光)이 사위를 휘감았다.

섬뜩한 섬광과 날카로운 예기가 빗발치듯 아침하늘을 그어갔다.

천랑마검의 발검(拔劍)은 너무나도 빨라서 언제 검을 뽑아 검법을 시전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노야!]

스-윽!

그러던 어느 순간 검기가 싹 가시며 천랑마검의 모습은 삽시에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랑십이식을 모두 펼쳐 보인 후 떠난 것이다.

괜히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의노인이 또 어떤 명령을 내릴지 모른다.

(저것이 무공이란 것이구나!)

능풍운은 멍한 표정인 채 천랑마검이 검법을 펼치던 곳을 보고 있었다.

[모두 몇 가지 변화를 보았느냐?]

그런 능풍운에게 마의노인이 불쑥 물었다.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열 두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아홉 개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놈 봐라? 기껏해야 천랑십이식중 삼사식 정도밖에 못 볼 줄 알았는데...)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마의노인의 노안에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역시 노부의 눈이 정확했다. 이놈은 백 년 내 다시없을 천부지재(天賦之才)다!)

능풍운의 빼어난 재질을 확인한 마의노인은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잘만 다듬으면 철혈대제(鐵血大帝) 능무벽(陵無壁)에 못지않은 거목이 되겠구나!)

마의노인은 내심의 흥분을 숨기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능풍운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름은 풍운이라 하고 성은 능가입니다.]

[능풍운이라....]

마의노인은 능풍운의 이름을 되뇌이며 왠지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능무벽, 그 괴물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마의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능풍운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아비의 이름은 무엇이냐?]

마의노인이 다시 물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이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능초(陵超)라는 분이신데 제가 어렸을 때 괴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노부가 잘못 보았는가?)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마의노인은 눈가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하긴 능가 괴물이 살아 있다면 이미 팔순을 넘었을 테니 이렇게 어린 아들놈을 두었을 리가 없겠지!)

염두를 굴린 노인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꽤 귀찮게 굴었지?]

[아닙니다.]

[허허허, 마음에 없는 소리할 것 없다. 예쁜 계집이라면 몰라도 노부같은 늙은이와 노닥거려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마의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노부는 갈황(葛煌)이라는 늙은이다. 어린 것들은 노부를 노독물(老毒物), 또는 천독노조(千毒老祖)라 부르며 상종하지도 않으려 하지.]

마의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노인의 이름을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그 즉시 아랫도리를 적시며 달아날 것이다

 

-천독노조 갈황!

 

무림인들에게는 염라대왕이나 다름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나이 이미 이갑자(二甲子)를 넘긴 그는 천독곡(千毒谷)이란 문파의 주인이기도 하다.

무림에 적을 둔 인생치고 천독노조를 모르는 자는 없다.

그럼에도 천독노조의 출신내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저 전설 속의 고금제일독종(古今第一毒宗) 만독조종(萬毒祖宗)의 진전을 잇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천독노조는 마음만 먹으면 중원의 무림인 모두를 독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독 다루는 재주, 용독술(用毒術)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용독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천독노조의 독공(毒功)이다.

천독노조는 백년 넘는 세월 동안 맹독을 상식(常食)하며 독공을 쌓아왔다. 그 결과 숨결만으로도 십리내의 생명체를 몰살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히 독(毒)의 제왕(帝王)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 바로 천독노조다.

만일 천독노조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무림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천독노조에게는 그런 야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천독곡에 칩거한 채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그 무서운 독의 제왕이 이 한적한 어촌에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아깝구나 아까워. 무림칠보의 출토가 임박하지만 않았어도 이놈을 제자로 삼아서 물건으로 만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천독노조는 능풍운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가를 이룬 인물들의 가장 큰 소망은 뛰어난 후계자를 얻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성취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천독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천고의 기재인 능풍운을 후계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아쉽고도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선물을 주마.]

천독노조는 아쉬움을 달래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노야.]

능풍운이 난색을 표할 때 천독노조는 품속에서 한 장의 죽편(竹片)을 꺼냈다. 폭이 두 치, 길이 한자 정도의 죽편인데 오래된 물건인 듯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다.

[사양하지 말고 받아둬라.]

천독노조는 죽편을 능풍운에게 내밀었다.

[노부의 신물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보여 주거라. 그러면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능풍운은 천독노조가 내민 죽편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값이 나가거나 진귀해 보이는 물건이라면 사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저 대나무 조각이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능풍운은 받아든 죽편을 살펴보았다.

죽편 앞면에는 곰방대를 물고 있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노인은 어딘지 모르게 천독노조와 닮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죽편 위의 그림은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 전에 새겨진 것이다. 천독노조의 모습일 수는 없었다.

앞쪽의 그림을 살펴본 능풍운은 죽편을 뒤집어보았다.

죽편의 뒷면에는 여러 가지 색의 얼룩이 찍혀 있었다. 적(赤), 황(黃), 흑(黑), 자(紫) 등의 색이 뒤섞인 얼룩이다.

(이런 대나무 조각이 무슨 신묘한 능력을 지녔단 말인가?)

능풍운은 죽편을 살펴보며 내심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천독노조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야! 긴요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고맙기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천독노조는 곰방대를 뱃전에 탁탁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능풍운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살펴 가십시오.]

능풍운은 천독노조의 등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포권을 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광세의 기연을 만났다는 것을...!

 

<독성죽결(毒聖竹訣)>

 

천독노조가 능풍운에게 준 낡은 대나무 조각의 이름이다.

천독노조는 젊은 시절 어느 산동(山洞)에서 독성죽결을 얻었었다.

독성죽결에는 신묘한 용독심결(用毒心訣)이 숨겨져 있었으며 천독노조는 그 비밀을 풀어내어 천하제일의 독공 고수가 될 수 있었다.

멀어지는 천독노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능풍운은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해가 수평선 위로 한 뼘 넘게 떠올라 있었다. 천랑마검과 천독노조를 상대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햇님.]

능풍운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습관적으로 합장을 했다.

스으... 스으...

점점 강렬해지는 아침 햇살이 바다를 향해 우뚝 선 능풍운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제 2장

 

                 몰려든 무림인들

 

 

 

해복진의 포구는 초승달 모양의 만(灣)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평선의 칠 할 이상을 가리고 있는 산맥의 꼬리부분이 난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 대부분을 막아준다.

덕분에 만 안쪽은 늘 호수처럼 잔잔하다.

해변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다.

십여 척의 어선이 눈부신 백사장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혼자, 또는 서너 명이 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어선들이다.

한데 어쩐 일인지 날이 완전히 밝았음에도 어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러 척의 어선들 중 단 한척에만 사람이 올라가 있다.

[어제 그 황새치 녀석이 크긴 컸네.]

건장한 청년, 아니 소년이 뱃전에 걸터앉아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키가 육척 가깝고 구릿빛 팔에는 근육이 울퉁불퉁하다.

몸만 보면 건장한 청년이지만 얼굴은 아직 앳되다.

소년 어부 능풍운이다.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무명조끼를 걸친 능풍운은 그물을 손질하기에 바빴다. 올이 굵고 튼튼해 보이는 그물이다.

하지만 그물은 여기저기 끊어져 있었다. 어제 무려 삼백근이 넘는 대물 황새치가 걸렸었기 때문이다.

반나절 넘는 악전고투 끝에 황새치를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그물이 많이 상했다. 다시 조업을 나가려면 끊어진 올들은 모두 이어야한다.

어느덧 수평선 위로 시뻘건 불덩어리가 떠오르고 있다.

날씨도 좋으니 이맘때쯤이면 포구는 출어 준비로 부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능풍운을 제외하면 다른 배의 주인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해상에서 무림인들이 죽고 죽이는 난투를 벌인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물을 손질하는 능풍운의 손길은 빠르고 능숙하다.

[휴... 겨우 끝났군.]

이윽고 능풍운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그물의 수리가 끝난 것이다.

물고기를 유인할 미끼와 다른 어구들은 준비가 되어있으니 그물을 싣고 바다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였다.

[네가 이 배 주인이냐?]

뒤쪽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렸다.

능풍운이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 인물이 서있었다.

검은색 경장을 걸친 서른 살 가량의 사내인데 오른쪽 허리에 검을 차고 있다.

옷 색깔과 달리 얼굴은 지나치리만치 하얗다. 가늘게 찢어진 눈매와 얄팍한 입술까지 더해져서 섬뜩한 인상을 풍긴다.

(무림인인가?)

흑의인이 차고 있는 검을 본 능풍운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무림인에 대해 마을의 형들로부터 듣긴 했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인상이 별로 안 좋네.)

사내를 찬찬히 살펴본 능풍운의 두 번째 생각이다.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그럼에도 흑의인이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는 좋아할 수가 없다.

능풍운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놈! 귀를 처먹었냐? 이 배가 네 배냐고 물었지 않느냐?]

흑의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내뱉었다.

초면인데 대뜸 욕설이 튀어나왔다.

능풍운의 응대도 무뚝뚝해질 수밖에 없다.

[맞소만 왜 묻는 거요?]

능풍운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흑의인의 눈꼬리가 꿈틀했다.

보통의 양민이라면 상대가 무림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눅이 들어 굽신거린다.

그런데 이 어린놈은 뻣뻣하기가 바짝 마른 대나무 같다.

하지만 흑의인은 치미는 화를 억지로 눌러 참았다. 무림인이 이유 없이 양민을 해치면 공적(公敵)으로 지목되어 앞날이 고달파진다.

살인을 해도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현재 해복진 근처에는 흑의인 말고도 무림인들이 다수 몰려와있다. 무고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혐의를 벗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양민을 해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그는 지금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이 배가 네 소유라니 잘 되었다. 옛 다.]

흑의인은 작은 주머니를 소매에서 꺼내 능풍운의 배 안에 던졌다.

쩔렁!

주머니가 배의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금속성이 들렸다.

[이게 뭐요?]

능풍운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뱃삯이다. 오늘 하루 네 배를 빌려야겠다.]

흑의인이 마치 시혜를 베푼다는 듯이 말했다. 능풍운이 당연히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보시오. 나는 어부이지 뱃사공이 아니....]

[좋게 말할 때 본좌를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우고 가라.]

불쾌해하는 능풍운의 항변을 흑의인이 손을 들며 저지했다.

[지옥도!]

능풍운은 흠칫하며 눈을 치떴다.

 

-지옥도!

 

해복진에서 남동쪽으로 백여 리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섬이다.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아 날씨만 좋으면 해복진에서도 바라다 보인다.

하지만 지옥도는 해복진의 어부들 뿐 아니라 남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모든 뱃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며 절대금지(絶代禁地)로 알려져 있다.

뱃사람치고 맨 정신으로 지옥도에 접근하려는 자는 없다.

이유는 지옥도 일대해역의 물길이 아주 험하기 때문이다.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지옥도 주변 바다 속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숨어있다.

멋모르고 지옥도로 접근했다가는 그 암초들에 부딪혀 좌초당하기 십상이다.

암초뿐만이 아니다.

지옥도 일대 바다 속에는 수많은 수중동굴이 뚫려 있다.

그 수중동굴들 때문에 지옥도 주변에는 수많은 소용돌이가 존재한다. 일단 그 소용돌이들에 휘말리면 배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끝장나버린다.

오죽했으면 뱃사람들이 지옥도 일대 해역을 불귀마해(不歸魔海)라 하겠는가?

한데 음산한 인상을 지닌 흑의인은 능풍운에게 다짜고짜 지옥도로 가자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

철컹!

능풍운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돈주머니를 도로 흑의인의 발치로 던졌다.

(이 촌놈이...!)

흑의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지렁이 어부 따위에게 무시당했다 생각하자 살기가 치민 것이다.

[말했지만 난 고기 잡는 어부지 사람 태워주고 돈 받는 뱃사공이 아니....]

다시 어구를 정리하려고 허리를 숙이던 능풍운의 눈이 부릅떠졌다.

스악!

한 가닥 푸르스름한 섬광이 눈앞을 스쳐지나간 때문이다.

능풍운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굳어질 때였다.

펄럭!

능풍운의 이마를 동여매고 있던 머리띠가 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럴 수가...!)

능풍운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발치에 떨어진 머리띠가 매끈하게 잘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능풍운은 반사적으로 흑의인을 돌아보았다.

흑의인은 처음 자세 그대로 서있는데 허리에 차고 있는 검도 여전히 칼집에 들어있다.

능풍운은 그 자가 언제 검을 뽑아 자신의 머리띠를 잘랐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흑의인은 정확히 머리띠만을 잘라냈을 뿐 능풍운의 이마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실로 빠르고도 정확한 검법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 나 천랑마검(天狼魔劍)이 지금껏 참고 있었던 것은 네놈이 일초무학의 무지렁이임을 감안해서다.]

흑의인은 놀라는 능풍운을 흘겨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

천랑마검이라 자칭한 흑의인의 시선을 접한 능풍운은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자신이 마치 굶주린 늑대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금부터 본좌를 모시고 지옥도까지 간다.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

천랑마검이 내뱉듯이 말했다.

 

-천랑마검!

 

좌수검(左手劍)의 달인인 그자는 무림에 출도 한 이래 한 번도 패해 본 적이 없다.

신랄하고도 빠른 그자의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은 무림의 십대검법(十大劍法) 중 하나로 꼽힌다.

어지간한 무림의 명숙들도 천랑마검과는 시비를 피할 정도다.

워낙 빠른 쾌검을 구사하는데다가 오른 손이 아닌 왼손을 쓰는 탓에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림인들 간의 승부는 사소한 차이로 승부가 난다.

그런 면에서 왼손을 사용하는 좌수검은 무시못할 이점이 된다.

하지만 무림에 문외한인 능풍운이 이같은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하물며 능풍운은 나이는 어려도 협박에 굴하는 성격이 아니다.

[나도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오. 무어라 해도 귀하를 내 배에 태워줄 수는 없소.]

능풍운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라?]

천랑마검은 능풍운의 단호한 어투에 두 눈을 부릅떴다.

[흐흐...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군! 감히 본좌의 명을 거역하다니....]

그 자의 표정이 냉혹하게 변했다.

[오냐! 네놈 스스로 판 무덤이니 나를 원망치 마라.]

천랑마검은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왼손을 오른쪽 허리에 찬 검에 가져갔다.

한데 그 직후였다.

부르르!

막 검을 뽑으려던 천랑마검의 몸이 갑자기 세찬 경련을 일으켰다.

찢어질 듯 치떠진 그자의 눈은 능풍운의 뒤쪽을 보고 있었다.

(저 작자가 갑자기 왜 그러지?)

천랑마검의 돌변한 태도에 능풍운이 의아해할 때였다.

[후... 후배가 불민하여 노사(老師)의 왕림하심을 미처...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천랑마검은 두손을 모으며 굽신거렸다.

방금 전까지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변한 천랑마검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만큼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천랑마검이 보이고 있는 갑작스런 변화를 능풍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기에 그토록 사납던 이자가 고양이 앞의 쥐가 되었지?)

능풍운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였을까?

[...]

능풍운 뒤에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노인인데 일신에는 낡은 삼베옷을 걸치고 있다.

사람 좋은 인상을 지닌 노인은 자기 키 만큼이나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마의(麻衣)의 노인을 일별한 능풍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마의노인에게서는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의노인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촌노였다.

[노야께서도 내 배를 빌리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능풍운은 무뚝뚝한 어조로 마의노인에게 물었다.

[글쎄다.]

마의노인은 곰방대를 입에서 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검 좀 곤란한데...)

능풍운은 마의노인의 모호한 대꾸에 난감해졌다. 연로한 노인이 지옥도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면 차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의노인은 그런 능풍운의 내심을 읽었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걱정마라. 이 늙은이가 네게 신세를 지지 않을 테니까.]

이어 그는 시선을 천랑마검에게로 돌렸다.

[네 녀석은 낭왕(狼王) 혁련사(赫連射)의 전인이냐?]

천랑마검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그 분이 후배의 스승입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제 1장

 

                         소년 어부

 

 

 

-해복진(海復津)

 

절강성(浙江省) 남단에 자리한 어촌이다.

산이 가까이 다가와 있어 배후지가 넓지 않다. 큰 포구가 될 수는 없는 지형인 것이다.

그래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보금자리다. 활 모양으로 휘어진 산맥의 끄트머리가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이다.

 

새벽 무렵이다.

바다에는 해무가 자욱하게 깔려있다.

해무 너머로 붉은 기운이 긴 띠처럼 어리기 시작한다.

또 하루가 밝아오고 있다.

그렇긴 해도 육지 도처에는 어스름이 서려 있다. 날이 완전히 밝으려면 제법 시간이 흘러야한다.

 

해복진 남쪽 끝에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송림 속에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부엌 하나, 방 하나 뿐인 작은 초가집이다.

삐걱

[오늘도 날씨는 괜찮겠네.]

초가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양 볼에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소년이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체격은 건장하다. 육척(六尺) 가까운 키에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피부는 짙은 구릿빛이다.

긴 머리를 빛바랜 천으로 대충 묶고 있는데 이목구비가 단정해서 잘 빚은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

성숙한 어른과 천진한 아이의 분위기가 함께 느껴지는 소년이다.

[으라차차! 오늘도 신나는 하루가 되겠구나.]

집을 나선 소년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벌써 바다에 나가려는 게냐?]

소년이 나온 집안에서 여인의 연약한 음성이 들렸다.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검박하고 단출한 실내가 보인다.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침대 두 개가 전부다.

그래도 벽에 몇 폭의 고서화가 걸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

두 개의 침대 중 하나에 누워있던 여인이 힘겹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불면 꺼질 듯 가냘픈 몸매에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한 여인이다.

삼십대 중반 정도인 여인은 비록 병약하게 보이지만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

이목구비는 섬세하고 몸에는 단아한 기품이 배어있다.

삼단같은 머릿결은 허리 아래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 때문에 얼굴은 더 한층 창백해 보였다.

[해가 뜨려면 이각 넘게 남았다.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여인이 가냘프지만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출항하기 전에 그물을 좀 손봐야 할 것 같아서요. 좀 더 주무세요 어머니.]

소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쪼록 무리하지는 마라. 너무 먼 바다까지 나가지 말고...]

[명심할게요.]

소년은 여인을 안심시키고는 방문을 닫았다.

(가엾은 것...)

문이 닫히자 여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용서하거라. 천벌을 받아 마땅한 어미와 오라버니를...!)

주르르...!

여인의 창백한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윽...]

그러다가 무너지듯 침대 위로 쓰러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흐느낄 때마다 여인의 삼단같은 머릿결이 물결같이 일렁거린다.

과연 그녀는 무슨 말 못할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일까?

 

***

 

쏴아... 철썩!

파도는 끊이지 않고 밀려와 바위에 부딪힌다.

소년은 높직한 바위 위에 서서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바다를 덮고 있는 해무, 하늘의 구름 등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아침의 일기만으로도 오늘 하루 바다의 상태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오년 넘게 고기를 잡으며 쌓아온 경험 덕분이다.

어부로서의 경력은 제법 길지만 소년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다.

 

이름이 능풍운(陵風雲)인 소년은 해복진 출신이 아니었다.

십육 년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작은 난파선이 해복진에 표착(漂着)했었다.

난파선에는 이십대 초반의 미녀와 갓 태어난 듯한 핏덩이가 타고 있었다.

능풍운 모자였다.

능부인(陵婦人)이라 불리는 능풍운의 어머니는 본명을 비롯해서 알려진 게 전혀 없다.

표류해올 당시 능부인은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난파 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싸워서 입은 부상이었다.

해복진 주민들은 그녀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의 사람이 아님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정 많은 주민들은 죽어가는 모자를 방치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간호해 주었고 덕분에 능풍운 모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능부인은 해복진을 떠나지 않았다.

갈 곳이 없는 능부인 모자를 해복진 주민들은 흔쾌히 이웃으로 받아 주었다.

박식했던 능부인은 해복진 아이들에게 글과 학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해복진의 젊은이 중 몇은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지방관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공로도 있어서 능부인은 해복진 주민들로부터 극진한 존경을 받아왔다.

핏덩이였던 능풍운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반면 능부인은 급격히 쇠약해져갔다.

그녀가 눈에 띄게 병약해져 가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능부인은 자신의 병명을 아는 듯했다.

하지만 이웃이 아무리 물어도 쓸쓸히 웃기만 할뿐 병명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능풍운은 마을 어른들을 따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열한 살이 되던 오년 전부터였다.

능풍운은 고기잡이에 금방 익숙해졌다.

또래보다 신체조건이 월등할 뿐 아니라 무엇이든 쉽게 배우는 재주 덕분이었다.

열여섯 살이 된 지금 능풍운의 체격은 어른이나 다를 바 없었다.

힘도 장사여서 작은 배쯤은 혼자 번쩍 들어 옮길 정도였다.

어느덧 능풍운은 해복진의 누구보다도 숙련된 어부가 되어 있었다.

 

[후우....]

능풍운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바다를 주시하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 바다로 나가 어떤 일을 만날지 가슴이 뛴다.

능풍운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수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놀이터다.

물론 예기치 못한 폭풍을 만나 몇 번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바다는 매번 가슴을 뛰게 만드는 미지의 세계다.

헌데 능풍운이 일출을 기다리며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을 때였다.

[허허! 해복진에서는 역시 네가 가장 부지런하구나.]

뒤쪽에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마을 쪽에서 늙은 어부가 뒷짐을 진 채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왕(王) 할아버지?]

능풍운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노인은 해복진의 늙은 어부 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때 능풍운은 왕(王)씨 성을 지닌 이 노인으로부터 낚시질과 그물 치는 법, 배 모는 기술등을 배웠었다.

[오늘도 바다에 나갈 작정이냐?]

왕노인은 주름진 얼굴로 능풍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능풍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머님께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드리려면 오늘도 잔뜩 잡아야지요.]

[허허, 풍운이 너는 역시 효자로구나.]

왕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해복진에서 능풍운이 병약한 어머니에게 지극정성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능풍운은 왕노인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바위 아래에 도착한 왕노인은 근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은 출어를 그만 두는 게 좋을 것같다.]

왕노인은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째서인가요? 날씨가 나빠질 것 같지는 않은데...]

능풍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날씨 때문이 아니다.]

왕노인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면 왜지요?]

[어제 강(姜)씨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여러 척의 깨진 배와 수십 구의 시체들을 발견했다더구나.]

강씨는 해복진의 어부들 한명이다.

[해적(海賊)...입니까?]

능풍운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글쎄다.]

왕노인은 자신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해적, 즉 바다를 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도적들은 하나같이 포악한 자들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가는 어부들이나 연안의 백성들에게 왜구(倭寇)를 포함한 해적들만큼 겁나는 존재도 없다.

동영에 근거지를 둔 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해적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바다로 도망쳐온 죄인들이다.

그자들에게는 인성(人性)도 양심이란 것도 없다. 그저 죽이고 빼앗고 노략질할 뿐이다.

다행히 오십여 년 전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후 해적들 대부분은 연안에서 구축(驅逐)되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해 일대에 다시 해적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나마 해복진의 어부들 중에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직 없다.

 

[해적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죽은 시체들이 하나같이 무림인들이었다는구나.]

왕노인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림?]

능풍운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무림이란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자신의 운명이 무림이란 그 한 마디로 인해 어디론가 끌려갈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예감이었다.

왕노인이 말을 이었다.

[소문이기는 하지만 남해 어딘가에서 무림인들이 몽매에도 원하는 보물이 곧 출토된다더구나. 그 때문에 무림인들이 몰려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무림지보(武林之寶)라고요? 우리같은 어부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로군요.]

능풍운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왕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무림인들은 사람 죽이는 걸 여반장으로 아는 자들이다. 해적들보다 오히려 더 포악하고 잔인한 무리지.]

[예....]

능풍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마을의 형들로부터 무림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일반인들에게 무림인들은 신선이나 마귀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하늘을 새처럼 날고 맨 주먹으로 바위를 깨트리며 검을 날려 수십 리 밖의 적도 죽인다고 한다.

물론 과장된 얘기라고 새겨들었다.

능풍운에게 무림이나 무림인의 존재는 다른 세상일처럼 느껴질 뿐이다.

[바다에 나갔다가 무림인들과 마주쳐서 좋을 일은 없다. 며칠 동안은 바다에 나가지 말거라.]

왕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싱긋 웃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쯧쯧...)

왕노인은 내심 소리없이 혀를 찼다.

능풍운이 끝내 바다에 나갈 작정임을 안 것이다.

[내 말 잘 생각해 보거라. 병약하신 자당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왕노인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마을 쪽으로 멀어져 갔다.

왕노인이 떠나자 능풍운은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쏴아... 철썩!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연신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바다가 깨어나고 있다.

그걸 보는 능풍운의 가슴속에서도 벅찬 무언가가 눈을 뜨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728x90

***창작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가는 <나한대협>의 수정본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고 문장과 일부 설정만을 바꿀 생각입니다. 1권 분량을 연재할 계획이며 <19금> 부분은 자율규제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삭제본>은 홈페이지인 <와룡소>의 <지밀보고>에 연재가 될 것입니다.*** 

와룡소 - Daum 카페

 

와룡강 무협소설

 

 

            武林七寶 -무림칠보

 

 

 

서장

 

                무림칠보의 전설

 

 

<무림칠보(武林七寶)를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

 

오랜 세월 무림인들을 흥분시켜온 전설이다.

 

-치우기(蚩尤旗)

-천손갑(天孫鉀)

-혈마경(血魔鏡)

-혼원신주(混元神珠)

-연혼마적(鍊魂魔笛)

-등선천익(登仙天翼)

-나한법륜(羅漢法輪)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게 만들어준다는 일곱 가지 보물!

무림인치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 자는 없다.

얻기만 하면 어떠한 욕망이든 꿈이든 이룰 수 있기에...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이전버튼 1 2 3 4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