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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潛龍出世

 

 

 

 

동굴 안!

“...!”

“...!”

두 노소(老少)가 앉아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 아래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

군무현과 신기황, 바로 그들이었다.

신기황은 여전히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에 잠긴 채 상반신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군무현, 그는 신기황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말없이 가운데 뜨겁게 엉켜들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인간적인 유대가 형성되었다.

철천지한을 품고 무표정한 침묵으로 일관해온 군무현, 결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괴인(怪人) 신기황, 그들 두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는 것,

그것은 정()! 바로 뜨거운 정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감정이 아니겠는가?

문득, 신기황의 엄격한 얼굴에 한가닥 희미가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그는 먼저 침묵을 깨고 너털웃음 떠올렸다.

헛허... 벌써 오년(五年)이 지났는가?”

그는 감회가 깃든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오년(五年), 그가 천마애에 떨어져 무공을 연마한 지도 벌써 오년이 지났다.

병약한 십오세 소년에게이제 천하를 짊어질 헌앙한 기품의 약관 청년으로 성장한 군무현, 그의 변화는 실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변화를 지켜보아 오면서 흐뭇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다.

하나, 인간사(人間事) 만남이 있으면 이별(離別)도 있는 법, 마침내 두 사람은 이별의 날을 맞았다.

그러기에 무거운 침묵이 동굴 안을 메우고 있었던 것일까?

신기황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어느덧... 너는 과거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상으로 강해졌다. 허허... 천하무림이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는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 달리 인자하고도 부드러웠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진정어린 눈빛으로 신기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올 때는... 반드시 만년빙지(萬年氷芝)를 구해올 것입니다!”

 

만년빙지(萬年氷芝)!

만년(萬年) 동안 얼음 속에서 자라는 전설의 영약, 신기황을 지극음령수액의 금제로 묶고 있는 무형화린산의 독기는 바로 만년빙지로만 해독이 가능했다.

 

신기황, 그는 군무현의 말에 씁씁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없다. 노부의 나이 이미 백팔십이 넘은지 오래다. 살만큼 살았으니 괜한 심기 쓰지 말거라!”

“...!”

군무현은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는 추호도 그 뜻을 꺾지 않을 의지가 엿보였다.

신기황은 고개를 흔들며 내심 중얼거렸다.

(녀석... 무슨짓을 해서라도 만년빙지를 구해오겠군!)

그는 대견함을 금치못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더할 수 없이 흐뭇한 마음과 함께 군무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느꼈다.

그때, 군무현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가능한... 빨리 돌아와 어르신네를 모시겠습니다!”

그는 무표정했으나 신기황은 잘 알고 있었다. ()으로 응어리진 차디찬 그의 내심에는 누구보다 뜨겁고 진실한 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신기황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무림에 나가거든 신기곡(神機谷)의 아이들을 돌보아다오. 그 아이들은 풍진에 묻히기를 싫어하지만 혼탁한 세상이 그들을 편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군무현에게 당부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신기곡(神機谷)! 그것은 신기황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문파였다.

이윽고, 군무현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삼배(三拜), 그는 연이어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순간, 신기황의 노안에 언뜻 아쉬운 빛이 스쳤다.

하나, 그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을 뒤로 하고 묵묵히 몸을 돌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동굴을 나섰다.

그림자(), 야명주 불빛 아래 길게 깔리는 뒷그림자만을 남긴 채...

동굴 밖!

혈영천종과 육대거두의 시신 대신 거둔 유해와 그들이 남긴 유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군무현은 그것들을 묵묵히 품 속에 갈무리했다.

이어, 그는 힐끗 뒤를 돌아 보았다.

퀭하니 뚫려 있는 동굴, 그곳에는 한명의 외로운 기인(奇人)이 기약없는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무현, 이제 그는 이곳을 떠난다.

무림(武林)! 그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오년간의 뼈를 깎는 수련을 마치고 마침내 그는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출도(出道), 한 마리 용()이 거대한 용트림과 함께 창천을 향해 치솟았다.

순간,

!”

쐐 액! 한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창룡이 비상하듯 까마득한 절벽 위로 치솟아 올랐다.

아아!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웅대한 일보(一步)를 내디딘 것이었다.

그때,

무현... 잘 가거라...!”

문득 천마애 밑의 한 동굴에서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X X X

 

휘이 잉! 스스스...

바람(), 바람이 분다. 차가운 설풍(雪風)이었다.

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대파산(大巴山)!

엄동설한, 때는 겨울이었다.

하나의 구릉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백설을 딛고 우뚝 서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깎은 듯 미려한 용모에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선명한 입술이 강렬한 인상을 물씬 풍겼다.

백의청년의 눈빛은 흡사 맑게 닦여진 차가운 검날을 연상케 했다.

그의 일신에서는 신비하고도 서늘한 한기가 물처럼 배어나오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청년,

군무현! 바로 그였다.

마침내 그는 천마애를 떠나 이곳 대파산록에 이른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싸늘한 살기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대파산봉을 주시했다.

나는 잊지 않았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리고 삼천의 적룡검사(赤龍劍士), 그 모두의 한()...!”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살기가 뻗어나왔다.

선인들의 영령께서 네게 힘을 주셨으니... 천하(天下)로부터 대가를 받아내리라!”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다짐했다.

한순간, 파파파팍! 그의 발밑에 있던 바위가 무서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로 부서져 내렸다.

그것은 군무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한()은 이미 하늘에 닿고 있었다.

뼈를 깎는 오년간의 수련, 그것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던가?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살아온 그가 아닌가?

군무현은 질근 입술을 악물었다.

나로 하여금 아버님의 유체조차 모시지 못하게 한 자들... 백배, 천배로 그보응을 받으리라!”

그는 냉혹한 한광을 폭사하며 굳게 맹세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몸을 돌렸다.

그의 어깨, 천마애에서 죽은 육대거두의 신물들이 천에 감긴 채 짊어져 있었다.

돌아서는 군무현의 얼굴은 어느새 무표정하게 변해 있었다.

한차례 눈덮힌 대파산을 둘러본 군무현,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데, 그가 막 구릉을 내려섰을 때였다.

스슥! 돌연 전면에서 한줄기 회영(灰影)이 나타났다.

군무현은 무심한 눈으로 힐끗 회의인영을 주시했다.

(상당한 경공이군!)

하나,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간격이 점점 좁혀지자 회의인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회포를 걸친 청년이었다. 나이는 군무현과 비슷한 정도, 그의 용모는 제법 영준했다.

하나, 별로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가늘게 번뜩이는 눈과 얄팍한 입술 끝이 위로 치켜진 것이 간교하고 음악한 인상을 풍겼다.

게다가, 그의 두 눈썹 사이는 음침하게 그늘져 푸르스름해 보였다.

생김새로 미루어 극히 음탕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군무현은 다가서는 회포청는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중럴거렸다.

(인간 구실을 못할 놈이군!)

하나, 그는 곧 회포청년에게서 시선을 떼며 무심하게 걷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스슥!

서랏!”

돌연 회포청년이 군무현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포청년을 주시했다.

회포청년,

흐흐...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라. 한명의 자의(紫衣)계집이 이쪽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자는 지극히 오만한 어조로 물었다.

“...!”

군무현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못들은 척 묵묵히 회포청년의 옆을 비켜 지나갔다.

순간, 회포청년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 그자는 눈을 부릅뜨며 다시 몸을 날려 대뜸 군무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그자의 음침한 두 눈에 살기를 번뜩였다.

내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한명의 자의계집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군무현은 귀찮다는 듯 무감정한 어조로 대꾸했다.

보지 못했다!”

그 한 마디를 내뱉은 그는 다시 태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 아니...!”

회포청년의 안색이 거듭 변했다. 그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무현의 몸에서 뻗어나오는 막강한 잠력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옆으로 물러나고 만 것이 아닌가?

회포청년의 안색은 이내 수치로 이지러졌다.

하나, 군문현은 게의치 않았다.

그는 회포청년을 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으으...!”

회포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치욕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나, 이내 그자의 입가에는 살기어린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네놈이 감히 나 사망신준(死亡神俊)을 무시하다니...!”

그자는 악독한 눈으로 군무현의 등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죽어랏!”

위 잉! 그자는 군무현의 뒤를 노리고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그자의 공격은 독랄하고 잔혹하기 이를데 없었다.

격중되면 그대로 즉사하고 마는 치명적인 살수.

순간, 군무현의 두 눈에 싸늘한 살기가 번뜩 떠올랐다.

인간같지도 않은 놈!”

그는 냉갈하며 홱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콰르릉! 양인 사이에 격렬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직후,

!”

사망신준(死亡神俊)이라 자칭한 회포청년은 다급성을 발하며 휘청 물러섰다.

그자는 군무현을 후려진 장()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그제서야 그자는 경각심을 돋구었다.

(강한 놈이다. 잘못 건드린 것 같다!)

그자는 내심 아차하며 후회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자가 만난 상대가 누군가?

군무현! 천하를 상대로 복수를 다짐한 군무현이 아닌가?

그때,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사망신준을 향해 다가갔다.

본인을 이유없이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는 냉막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그 짤막한 한 마디는 사망신준으로 하여금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으으...!)

그 자는 완전히 기가 질리고 말았다.

군무현의 태산같이 막강한 기도는 도무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나, 그자는 간악한 작자였다. 그자의 가늘게 찢어진 두 눈이 일순 음흉하게 번득였다.

다음 순간,

에 잇!”

그자는 벼락같이 외치며 대뜸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화르르!

그자의 소매 속에서 돌연 시커먼 독무(毒霧)가 확 쏟어져 나왔다. 그것은 치밀한 그물처럼 삽시에 군무현의 전신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짙은 눈썹이 무섭게 꿈틀했다.

()을 쓰다니...!”

그의 안색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때, 자욱한 독무 속에서 사망신준의 득의에 찬 음소가 흘러나왔다.

흐흐... 네놈이라고 별 수 있겠... !”

득의의 음소를 흘리던 사망신준, 하나 그 자는 이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보라. 화르르...! 콰 쾅!

시커먼 독무 속을 뚫고 시뻘건 극양지기가 활화산같이 터져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스악! 사망신준은 대경실색하며 급급히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다.

하나 그보다 빨리, 콰쾅!

케 엑!”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충격적인 폭음과 함께 한 마디 처절한 비명이 터져올랐다.

사망신준, 그자는 고통스런 비명을 토하며 벼락같이 뒤로 튕겨나갔다.

끔찍하게도 그자의 가슴이 시커멓게 탄 채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몸을 날리며 그자는 부득 이를 갈았다.

... 두고 보자!”

휘익! 그자는 고통과 분노의 신음성을 발하며 그대로 몸을 날려 군무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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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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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魔兵, 修羅血刀를 얻다

 

 

 

무량관을 쓴 도복(道服) 차림의 인물, 그는 수중에 한 자루의 신홀을들고 있었다.

무당(武當)의 진산지보로 알려진 태청신홀, 바로 그것이 아닌가?

도인(道人)은 바로 태현자(太賢子)이리라.

다음으로 군무현의 시선이 이른 것은 한 명의 청포노인이었다.

지극히 청수한 용모를 지닌 청포노인, 군무현은 그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이 종남(終南)의 개파조사인 종남연기사(終南鍊奇士)시로군!”

이어, 그는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종남연기사(終南鍊奇士)의 옆에 서 있는 인물은 여인(女人)이었다.

일신에 백색궁장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궁장미부, 그녀는 모습은 극히 요염했다.

그녀는 다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격탕되고 피가 빨라지는 듯 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녀는 마치 날아갈 듯 춤을 추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군무현은 이내 알 수 있었다.

만화환선무(萬花幻仙舞)...! 만화부(萬花府)의 시조이신 만화성녀(萬花聖女).”

 

만화부(萬花府)!

만화성녀(萬花聖女)가 처음 만화부(萬花府)를 세웠을 때는 정파를 표방했다.

하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만화부는 차츰 변질되었다.

그들은 차츰 관능적 욕망에 휩쓸려 사파(邪派)로 흘러든 것이었다.

결국, 당금에 이르러 만화부(萬花府)는 천하염색굴(天下艶色窟)로 변해 버렸다.

그들은 천하를 음란의 색()의 열풍으로 휘몰고 있었다.

문득, 군무현은 만화성녀를 주시하며 형형하게 눈을 번뜩였다.

만화성녀께는 미안한 일이나... 만화부(萬花府)는 반드시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그는 한맺힌 어조로 중얼거렸다.

만화부(萬花府)!

그들은 바로 적룡세가를 친 십삼 개 주력 문파중 일파(一派)가 아닌가?

일순 군무현의 두 눈에서 싸늘한 한광이 뻗어 나왔다.

하나, 이내 그는 눈길을 돌렸다.

만화성녀의 옆, 한 명의 유생과 흑포노인이 눈을 부릅뜬 채 서 있었다.

수려하고 기품있는 용모의 유생(幼生), 그는 장검을 들어 단전(丹田)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흑포노인, 그의 용모는 위맹하고도 괴팍하기 이를데 없었다.

군무현은 그들을 주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일천 년 내 최강자이던 검황유(劍皇儒) 남궁천인(南宮天人) 선배님... 그리고 당문(唐門) 이대가주인 혈륜태세(血輪太世) 당종요(唐種要)...!”

그는 양인의 헌앙하고 뛰어난 기품과 강력한 기도에 감탄을 금치못했다.

일대종사(一代宗師), 과연 그 위명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군무현의 옷깃이 남궁천인(南宮天人)의 장검을 건드려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우수수... 스스... 나머지 오인의 시신마저 모두 부서져 흩어지고 말았다.

... 이런...!”

군무현은 낭패한 표정으로 급히 물러섰다.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군무현은 고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신물(身物)들이나마 후인에게 전해주는 것이 도리이리라!”

이어, 그는 시신들의 의복 속에서 각기 한 가지씩의 신물을 찾아냈다.

무우선사의 달마보장(達磨寶杖), 태현자의 태청신홀 외에도, 종남연기사에게는 종남연기경(終南鍊奇經), 검황유에게서는 황유보선(皇儒寶扇), 만화성녀에게서는 만화옥부(萬花玉符), 그리고, 혈륜태세 당종요의 신물로는 아홉 개의 개세혈강륜을 찾아냈다.

 

개세혈강륜!

그것은 혈강모로 만든 암기였다.

호신강기 파해 전문의 가공할 위력을 지닌 암기, 그 아홉 개 중 세 개는 혈영천종의 시신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두 개는 석벽에 꽂혀 있었으며 나머지 네 개는 혈륜태세가 수중에 지니고 있었다.

 

군무현, 마지막으로 그는 혈영천종의 수라혈도(修羅血刀)를 집어들었다.

수라혈도(修羅血刀)!

그것은 종잇장같이 얇은 면도로써 둥글게 말면 손 안에 들어올 정도였다.

이로써, 군무현은 팔백 년 전 일대를 풍미한 기인들의 신물을 모두 거둔 것이다.

문득, 그는 바람에 흩어져 있는 시신들이 남긴 재를 바라보았다.

천마애를 나갈 때 여러 선인들의 유체를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다짐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후 석실을 나섰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라던가?

무심한 가운데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세월, 그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었다.

쏘아진 화살처럼 금방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는 세월, 그것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다.

특히, 무엇엔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화르르... 쿠르르릉!

광폭한 태양을 집어삼킬 듯한 강렬한 극양지기가 방원 십장을 뒤덮었다.

그와 함께, 콰콰쾅! 퍼 엉!

천지가 일제히 허물어지는 듯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뿐만이 아니었다.

치지지직... 지면의 흙과 돌덩이마저 극렬한 극양지기에 견디지 못하고 형체도 없이 녹아들었다.

한데, 이럴 수가...!

츠츠츠... 위 잉!

극양지기와 상극을 이루는 가공할 극음지기(極陰之氣), 흡사 만년빙동을 깨고 흘러 나오는 듯한 엄청난 극음지기가 그 위를 뒤덮는 것이 아닌가?

아아! 그것은 실로 일대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내, 우르릉! 콰콰콰 쾅! 위 잉! 츠츠츠!

극양과 극음의 양대지기는 서로 충돌하며 들썩 지축을 뒤흔들었다.

보라! 하나의 높은 바위 위, 그곳에는 입을 딱 벌릴만한 진기한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듯 시뻘건 기류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눈같이 흰 백색기류가 무지개같이 서로 어우러져 감돌고 있지 않은가?

그 홍백(紅白)의 기류 안,

“...!”

한 명의 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한순간, 스스스... 홍백의 신비한 기류가 마치 안개 걷히듯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그러나는 청년의 모습, 그는 청격한 백의(白衣)차림이었다.

바람이라도 휙 불면 금방 쓰러져 버릴 듯한 유약한 모습, 하나, 백의청년의 인상은 지극히 인상적이었다.

충격적인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미녀(美女)의 그것같은 단순호치의 용모, 하나 그는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싸늘한 기도가 배어 흘러 종잡을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군무현! 천하에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인물은 오직 그밖에 없었다.

문득,

“...!”

군무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서늘하게 가라앉아 무심하기만 한 눈빛,

역시... 안되는군. 무상패엽공공강이나 태청혜극신공(太靑慧極神功)으로도 양극지기를 합일 시키지 못하다니...!”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무상패엽공공강!

그것은 무우선사의 달마보장(達磨寶杖)에서 찾아낸 소림무상기공(少林無上奇功)이었다.

 

태청혜극신공(太靑慧極神功)!

태청신홀에 적혀있던 세 가지 무당절기 중 하나였다.

 

군무현은 실망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불문(佛門)과 도가(道家)의 최고 신공으로도 양극지기를 합일시키지 못하다니...!”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미간을 모았다.

또한 수라혈영공(修羅血影功)은 패도만을 추구한 마공인지라 위력만 강할 뿐 현묘함이 없으니 아무 소용도 없고...!”

이어,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려듯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회가 닿으리라. 언젠가는...!”

그는 묵묵히 앞을 노려보았다.

그와 함께, 그는 번쩍 손을 쳐들었다.

순간, 우 웅!

웅후한 검명(劍鳴)이 주위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파파팟! 쐐 액!

이십 장 밖의 석벽에 박혀있던 적룡검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그 순간,

!”

한소리 웅후한 장소가 허공으로 뒤흔들었다.

파 앗! 쐐액!

한순간 군무현의 몸이 적룡검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신검합일(身劍合一)!

아아! 천지가 뒤집히려는가?

파파팍! 츠츠츠츠... 꽈르릉!

웅장하기 이를데 없는 검세가 노도같이 천지를 질타하며 퍼져나갔다.

장쾌한 검광(劍光)과 웅후한 검명!

과연 검중패왕(劍中覇王)다운 가공할 검세였다.

거대한 창룡(蒼龍)의 기세로 치솟는 검기는 그대로 일대장관이었다.

적룡대제의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

바로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뒤이어,

차 핫!”

사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드높은 창룡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쐐 액!

군무현의 품에서 한 덩어리의 찬란한 광휘가 폭사되었다.

그것은 눈부시게 사위를 휘감으며 창천으로 치솟았다.

 

적룡어강살!

바로 그것이었다.

실로 엄청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순에 무려 일천 장을 날아 태산이라도 둘로 갈라버릴 듯한 가공할 위세.

그것은 보통의 어검술과는 가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극상승의 검결이었다.

빠르기, , ()로 비유한다면 열 배에 달하며, ()함에 있어서는 가히 백 배 더 강한 패도무적의 절기였다.

 

한순간, 스윽! 적룡검은 이미 군무현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지면에 우뚝 내려 서 있었다.

무공을 펼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 적룡어강살만 하더라도 가히 무적(無敵)이거늘... 적룡천종(赤龍天宗)께서는 이보다 십 배 강한 검결을 어딘가에 비장하셨다니...!”

그는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 적룡팔대식과 적룡어강살, 그 두 가지 검결만으로도 적룡대제 군천휘는 검황(劍皇)으로 군림하지 않았던가?

군무현은 생각에 잠기며 검미를 모았다.

수라혈영제의 어떤 마공도 적룡어강살보다 강하지는 않다. 다만, 최후의 수라혈영파천무(修羅血影破天舞)만이 적룡어강살을 능가할 뿐!”

사실, 적룡천종의 검학과 혈영천종의 마공을 비교하기란 실로 난해했다.

적룡천종! 그의 검학은 웅후하며 장쾌함에 특징을 두고 있었다.

일단 펼쳐지면 태산을 짓누르는 듯한 육중함이 천지사방을 뒤덮는다.

반면, 혈영천종의 마공은 악랄한 것이었다.

일단 기회를 잡으면 끈질기게 파고들어 상대의 심장을 갈라버리고마는 잔혹무비한 살검(殺劍)!

그 때문에, 혈영천종의 마공은 선후(先後)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신속, 기민함과 독랄함이 그 특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적룡천종과 혈영천종의 무공은 비교가 불가능했다. 각기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다만,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그것은 연마하는 자의 신체적 특징과 수련의 연륜에 의해 결정될 뿐이었다.

군무현, 그는 적룡검을 내려다보며 한차례 쓰다듬었다.

무심(無心)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있어서 적룡검은 일체감과 함께 큰 힘을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적룡검에서 생명(生命)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조심스럽게 적룡검을 내려놓았다.

수라혈영파천무... 오늘은 반드시 펼쳐 보이리라!”

그는 강한 의지가 깃든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문득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순간, 스으... 스으... 그의 주위로 칙칙한 혈기(血氣)가 일어났다.

그와 함께, 스르릉...!

군무현의 허리에 요대같이 둘러져 있던 수라혈도(修羅血刀)가 들려졌다.

위 잉! 츠츠츠... 수라혈도의 시뻘건 도신에서는 마귀에 혓바닥같은 섬뜩한 도기(刀氣)가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실로 전신을 섬뜩하게 만드는 가공할 기운, 군무현은 일순 수라혈도를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수라혈영파천무!

수라파천도(修羅破天刀)!

수라혈살강뢰!

 

그 세 가지의 마공이 동시에 펼쳐지는 가공무비한 살초, 그것이 바로 수라혈영파천무였다.

 

문득, 츠츠츠 위 잉!

군무현의 몸 주위로 칙칙한 핏빛기류가 혈사(血蛇)처럼 휘감겨 들었다.

이어, 그것은 숨통을 조일 듯 사위로 가득 메웠다.

파파팍! 가공할 경기가 일순 폭발을 기다리며 한껏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한순간,

파천(破天)!”

지축을 떨어 울릴듯한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직후, 콰르르릉! 콰콰 쾅!

가공할 폭발음과 함께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무서운 진동이 사위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오...! 경천동지(驚天動地)!

그것은 가히 상상치도 못할 엄청난 광경이었다.

파파파팍! 번 쩍!

수라혈도의 전율스러운 핏빛 도영(刀影)이 방원 오십 장을 치뻗었다.

그와 함께, 쿠쿠쿵... 위 잉!

폭풍! 대폭풍이 휘몰아쳤다.

질풍노도같은 핏빛강기는 사위를 온통 폭풍같이 휩쓸어 버렸다. 실로 믿을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성공이다!”

문득 천지를 몰아치는 선풍 속에서 한소리 들뜬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렇다. 군무현, 마침내 그는 해낸 것이다.

수라혈영파천무!

그 끔찍무비한 잔영(殘影) 속에서 새로운 대풍운(大風雲)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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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前代奇人들의 屍體

 

 

 

우르릉... 콰쾅!

군무현의 내부는 계속 들끓고 있었다.

군무현은 전신이 재로 화해 부서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크 윽!”

마침내, 악문 그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 극렬한 고통 속에서, 그는 점점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눈앞이 흐려지며 가물가물해졌다.

하나, 정신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군무현은 더욱 거세게 입술을 악물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를 지녔다. 그렇지않고서는 이토록 엄청난 고통을 견뎌낼 수 없으리라.

그는 고통으로 허물어지려는 육신을 오직 초인적인 인내와 의지로 지탱하며 운공에 몰두했다.

하나,

크 으... 으윽!”

고통은 갈수록 극힘해졌다.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서로 충돌하며 일으키는 가공할 고통, 그것은 군무현의 몸을 용광로같이 뜨겁게 달구었다가 이내 만년한설처럼 차갑게 얼리곤 했다.

그 극렬한 고통은 몇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각의 고통은 군무현을 열배 더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 !”

군무현은 연신 계속되는 참혹한 고통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스스스...!

신비한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보라, 붉고 흰 두 가지 기류가 지하광장의 한 곳을 완전히 뒤덮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서로 뒤엉켜 낮게 흐르듯 주위에 깔려 있었다.

한데, 스스스 스슥... 붉고 흰 기류가 바닥을 스칠 때 마다 기현상이 일어났다.

우수수... 휘류류!

놀랍게도 지하광장에 쌓여있던 건조한 시신들이 모조리 재로 화해 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우수수... 파파팟!

근 일만 구에 달하던 무수한 시신들이 일제히 재로 화해 스러져 버렸다.

이윽고, 우웅! 붉고 흰 두 가지 기류는 점차 응고되기 시작했다.

보라! 그것은 이내 반백(半白), 반홍(半紅)의 강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순간, 스슥...!

반백반홍의 양극강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광경, 군무현 먼저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

그는 눈을 감은 채 단정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유약한 모습이었다.

하나, 결코 유약한 것이 아니었다. ()함이 극()에 이르러 오히려 유()하게 보일 뿐이었다.

문득, 군무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물처럼 담담하고 무심한 눈빛, 그것은 심연처럼 깊고 맑았다.

군무현은 뜨거운 격동에 몸을 떨었다.

(아버님의 영령이 돌보심이다. 마침내 태양신맥(太陽神脈)이 치유되었다!)

그는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 그렇다. 마침내 그는 고통을 극하고 눈부신 성취와 더불어 제이의 생명을 얻어 새롭게 태어난 것이었다.

생명(生命), 그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더욱이, 가슴에 철천지한을 품은 군무현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군무현의 입가에 한가닥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진정한 희열의 미소였다.

그의 내부는 완전히 변화했다. 온통 극양지기만이 가득하던 그의 심맥의 반은 이제 지극히 강한 극음지기로 채워졌다.

따라서, 극양지기가 크게 일어 심맥을 태울 걱정은 이제 사라졌다.

새 삶을 얻은 것이다. 또한, 그는 극령정뇌수의 무궁한 효력으로 인해 무려 삼갑자의 내공으 보유하게 되었다.

실로 놀랍고도 눈부신 성취였다.

하나, 문득 군무현은 미간을 좁히며 내심 중얼거렸다.

(극양(極陽), 극음(極陰)의 양극진기를 하나로 융합시키지 못한 것이 안타깝구나!)

그렇다. 그의 몸속에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극양지기와 극음지기가 공존하고 있다.

만약, 그 상극의 거창한 잠력이 합일(合一) 된다면 실로 엄청난 결과를 얻게 된다.

(), 그것도 가공할 힘을 지닐 수가 있다. 태산이라도 번쩍 들어올려 집어 던질 수 있는 극강의 초인적인 힘을.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쉽지만... 천기귀원심공 정도의 내공심법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잠력들이다. 우선 삼갑자의 내공을 얻은 것으로 만족하자!”

그는 아쉬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이 동부의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들은 또한 무엇을 위해 이 지하동부에서 죽어간 것일까?)

그의 두 눈은 다시 강렬한 호기심과 의혹으로 물들었다.

이미 재로 부서져 흔적을 잃은 일만여 구의 시신들.

?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 지하광장에 매장되어야 했던가?

군무현은 강한 의문을 느끼며 지하광장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 들어가볼 생각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의 넓이는 점점 더 좁아졌다.

또한, 주위는 희미한 빛 한 점 새어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스산하고 음습한 기운이 숨막힐 듯 전신을 조였다.

하나,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더욱 밝아진 안광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이미 그가 지나온 길은 수백 장에 달하리라.

문득, 군무현의 눈앞에 하나의 석문(石門)이 나타났다.

전신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음침한 석문이었다. 그것은 전체가 시커먼 흑옥석(黑玉石)으로 되어 있었다.

한데, 문의 안쪽으로 모골이 송연케 만드는 섬칫한 마기(魔氣)가 줄기줄기 뻗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절로 흠칫 몸이 굳어졌다.

(대단한 마기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안에 무엇인가 있다!)

이윽고... 그는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번쩍 쌍장을 치켜들었다.

스스스... 그의 쌍장에서는 희고 붉은 양극강기가 뻗어나왔다.

순간, 콰르릉... 콰쾅!

사방을 들썩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석문이 그대로 박살났다.

... 보라! 놀랍게도 흑옥석의 거대한 석문은 모래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이미 신위(神威)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윽고, 군무현은 부서진 석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 순간,

(!)

그는 다급성과 함께 그대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석실, 석문 안은 한 칸의 넓은 석실이었다.

한데, 그곳에 칠인(七人)의 인물이 대치하고 있었다.

끔찍한 아수라의 형상이 생생히 조각된 석벽, 그 석벽을 등지고 한 명의 혈포인이 우뚝 서 있었다.

나머지 육인(六人)은 그 혈포인을 반월형으로 포위하고 있는 형태였다.

혈포인, 그의 인상은 험악하고 사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의 일신에서는 숨통을 조이는 가공할 마기가 줄기줄기 뻗어나오고 있었다.

혈도(血刀), 지금 그는 전체가 온통 시뻘겋게 물든 한 자루의 혈도(血刀)를 불쑥 앞으로 내민 형상이었다.

실로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 가공할 기도, 그 반면 혈포인을 포위하고 있는 여섯 명의 인물들, 그의 형상은 각기 달랐다.

(), (), ()등 각기 다른 부류의 인물들이었다.

하나, 한 가지 모두 혈포인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형상이라는 점이다.

군무현, 그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동귀어진(同歸於盡)했다!)

그는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석실 안의 칠인, 그들 역시 지하광장의 인물처럼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다.

군무현의 두뇌는 빠르게 회전했다.

(이들이 양세력의 수뇌들일 것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중앙의 혈포인을 주시했다.

한데, 놀라운 일이었다.

혈포인은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움찔 몸을 떨게 만드는 무서운 마기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군무현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죽은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목을 조이는 마기를 발산한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 인물이 살아 있을 때는 아무리 철석간장을 지닌 자라 해도 감히 맞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윽고, 군무현은 천천히 혈포인을 향해 다가갔다.

무엇인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추측하며 즉시 혈포인의 시신에 손을 댔다.

그 순간, 우수수...! 혈포인의 시신은 삽시에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 혈포인이 들고있던 혈도(血刀)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군무현은 실소를 발하며 검미를 모았다.

(육인의 막강한 합벽공에 내부가 박살나 있었다. 극고한 공력으로 간신히 육체를 유지하고 있기는 했으나 수백 년의 세월이 그것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바닥에는 한 자루의 시뻘건 혈도와 함께 혈포인의 의복이 떨어져 있었다.

“...!”

군무현은 조심스럽게 혈포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

무엇인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양피지로 된 한권의 비급이었다.

흠뻑 핏물에 젖은 듯한 시뻘건 표지, 그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혈영경(血影經)!>

 

묵중하고도 강렬한 서체, 글씨는 시커먼 묵빛이었다.

군무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혈영경(血影經)...!”

그는 크게 호기심이 동함을 느꼈다. 이어, 그는 급히 비급의 겉장을 넘겼다. 그런 그의 눈에 물씬 마기를 풍기는 강렬한 서체가 들어왔다.

 

<혈영천하(血影天下)를 위하여 혈영천종(血影天宗) 적는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홱 변했다.

혈영천종(血影天宗)!”

그는 경악에 떨리는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혈영천종(血影天宗)!

 

팔백 년 전, 천하를 혈영(血影)으로 뒤덮은 대효웅(大梟雄), 그의 출신사문은 실로 엄청났다.

전설적인 마문(魔門), 바로 아수라궁(阿修羅宮)과 혈영문(血影門)의 공동전인이었다.

이후 그는 양대 마문(魔門)을 통합했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수라혈부(修羅血府)였다.

천하를 장악했던 혈영(血影)의 세력, 혈영천종은 수라혈부(修羅血府)를 세워 천하를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기를 삼십 년(三十年), 돌연 그는 자신이 세운 수라혈부와 함께 신비하게 실종되었다.

그 이후 아무도 혈영천종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한데, 군무현은 천마애의 깊숙한 지하동부 안에서 그 혈영천종의 시신을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군무현,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천지십강(天地十强) 중의 일강(一强)을 이곳에서 보게되다니...!”

그는 눈앞의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혈영천종! 그 위명은 천하를 떨어 울리지 않았던가?

 

천지십강(天地十强)!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십인의 절대자(絶代者)!

혈영천종은 그 당당한 영예의 일석(一席)을 차지한 인물이 아닌가?

군무현은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이번에는 혈영천종과 대치하고 있던 육인(六人)을 주시했다.

(이글은 대체 누구이기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일인을 격살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의혹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눈을 빛내며 육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맨 좌측의 인물, 그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고승(高僧)이었다.

그는 석자 가량되는 보장(寶杖)을 번쩍 들어올린 자세를 쥐하고 있었다.

군무현은 두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소림(少林)의 불광현세(佛光現世)의 자세다. 소림의 고승(高僧)이신가?”

그는 생각을 굴리며 유심히 고승을 주시했다.

하나, 바로 그 순간, 스스스... 고승의 시신은 덧없이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고승의 보장(寶杖)이 떨어졌다.

군무현은 허리를 숙여 보장을 집어 들었다.

 

달마(達磨)!

 

보장의 손잡이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군무현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것은 녹옥불장(綠玉佛杖) 조사령과 함께 소림삼대중령(少林三大重令)의 하나인 달마보장(達磨寶杖)이다!”

과연 그의 짐작은 맞아들었다.

군무현의 머리는 계속 민활하게 움직였다.

달마보장은 소림십이대방장 이시던 무우선사(無優先師)와 함께 실종되었다. 그것이 팔백 년 전의 일이다!”

문득, 생각을 굴리던 군무현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렇다! 이분이 바로 소림십이대방장이셨던 무우선사(無優先師)가 분명하다.”

그는 비로소 얽혔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그의 뇌리속에 한 가지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혈영천종(血影天宗)이 천하를 손 안에 넣은지 삼십년(三十年), 천하가 도탄에 빠지다. 문득 신무(神霧)가 크게 일더니 혈영천종(血影天宗)은 수라혈부(修羅血府)의 사천(四千) 마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그와 함께 당시 무림을 떠받히던 육대거두(六大巨頭)가 육천(六千)의 정영(精英)과 함께 의문의 실종을 당하다...

 

고사(古事)의 내용은 그러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군무현은 흥분의 눈빛으로 육인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육대거두(六大巨頭)... 그들은 바로 소림십이대 방장이셨던 무우선사(無優先師), 무당(武當)의 구대장문인(九代掌門人) 태현자(太玄子)...!”

문득, 중얼거리던 그의 시선이 한 명의 도인(道人)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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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일만구의 屍體, 그리고 千古奇緣

 

 

 

사방이 훤히 트인 거대한 지하광장, 한데, 보라! 시산(屍山)!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시체로 산이 쌓여 있지 않은가?

오오... 이럴 수가! 그것은 실로 섬뜩하고 전율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족히 일만(一萬)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의 시신들이 온통 지하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 시신들은 서로 격렬히 싸우다 죽은 듯 마구 뒤엉킨 채 죽어 있었다.

열 명의 비율로 따지자면, 그 중 네 명은 혈포인이요, 여섯 명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로 뒤섞여 있었다.

(), (), (), (), 여인(女人) ...

그들은 하나같이 생전의 형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죽어 있었다.

가공할 지극음기(地極陰氣), 그것으로 인해 부패되거나 변질됨이 없는 것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군무현이 처음 동굴을 들어설떼 본것같이 팔백 년 이전의 시신들이 아닌가?

군무현은 그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끔찍하군. 이런 지하(地下)에서 일만명의 생명이 죽어갔다니...!”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끔찍한 광경인가? 일만여 구의 시신들, 그것들은 모두 사지가 끊어지고 머리가 박살났으며 복부가 찢어져 내장이 흘러나온 처참한 형색들이었다.

한데, 한 가지 기이한 것이 있었다.

그 시신들은 습기가 완전히 사라져 모두 강시화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

군무현, 그는 아연한 표정으로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찍이 이같이 처참한 광경은 상상도 못한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미간을 모으며 전면을 주시했다.

보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시신들의 중앙, 기이하게도 그곳에는 자욱하게 백무(白霧)가 서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그냥 지나칠 군무현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스슥! 그의 신형은 가볍게 시산(屍山) 위로 날아올랐다.

한데,

!”

시산의 중앙에 있는 백무(白霧)를 향해 다가서던 군무현, 일순 그는 신형을 휘청했다.

... 지독한 한기(寒氣)!”

그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극랭한 한기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군무현은 극양지맥(極陽之脈)의 소유자였다.

범인이라면 능히 얼어 죽어버릴 극심한 한기도 가벼운 추풍(秋風) 정도로 느낄 뿐이었다.

한데, 그런 그가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한기를 느끼다니... 대체 그것은 얼마나 지독한 극음지기란 말인가?

만약 군무현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면 단번에 심맥이 얼어붙고 말았으리라.

한데, 신기한 것이 있었다.

심맥을 파고들며 뼈를 얼리는 극심한 한기, 그것은 넓게 퍼지지 않고 백무(白霧) 주위에만 응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의혹을 금치못했다.

지극음령수액보다 천배 더 차갑다. 도대체 어떤 물체가 있기에 이렇게 지독한 한기를 발산한단 말인가?”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더구나, 그는 극양(極陽)의 절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극음지물(極陰之物)은 더할 수 없는 보신지물(寶身之物)이 아닌가?

군무현으로서는 큰 관심사요,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두 눈을 유현하게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지 찾아보리라!”

그렇게 결심한 순간, 그는 주위에 널려있는 시신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선자(先者)의 유체를 손상함은 도리가 아니다...!”

그는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하나,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이윽고, 그는 시신의 산을 향해 쉴새없이 손을 내저었다.

우수수...! 휘르르!

그의 손짓에 따라 백무 주위의 시신들이 경기에 밀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기를 일각(一角), 군무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는 무려 사백여 구의 시신을 치우고서야 비로소 바닥에 이를 수 있었다.

한데 그 순간,

... 이것은...!”

시신을 모두 치운 군무현, 그는 대경성을 발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앞, 넓이 일 장 정도의 널찍한 흑석(黑石)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그 흑석에는 전신을 뼈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이다!)

만년한옥(萬年寒玉)이 천만 년 동안 극음지기(極陰之氣)를 흡수하며 형성하는 기석(奇石), 이는 한 조각만으로도 능히 활화산(活火山)을 식혀버리는 엄청난 극음지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군무현이 놀란 것은 그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 때문이 아니었다.

극음현령옥의 중앙, 그곳에는 흡사 낙수(落水) 구멍같이 우푹한 홈이 패어져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 홈 속에는 투명한 유백색의 반고체 덩어리가 고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음식으로 먹는 묵과 같은 형태였다. 만지면 물컹하게 손에 닿을 듯한 투명반고체, 그 분량도 제법 되었다.

어른의 주먹 두 개를 합친 정도, 표면에는 신비한 유백색의 광휘가 감돌고 있었다.

기이하고도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모습, 문득 군무현은 숨이 멎을 듯한 표정이 되었다.

... 혹시... ... 이것은...!”

그는 엄청난 경악으로 두눈을 휩떴다.

그런 그의 얼굴은 온톤 희열과 흥분으로 물들었다.

내심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군무현, 그가 이렇듯 경악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순, 군무현은 번개같이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에 전율했다.

 

인간이 죽으면 그 뇌수(腦髓)와 정수(精髓)는 대기(大氣) 중에 산화되고 만다. 하나 만일 극음현령옥(極陰玄靈玉)과 같은 극음(極陰)의 지보가 있는 곳에서 죽게되면 정수는 뇌수와 더불어 극음현령옥에 응결된다. 이것을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라 하며 실로 무궁무상의 효과가 있다...

 

바로 신기황에게 의술을 배울때 들은 내용이었다.

군무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

특히 그것은 너무도 기이하게 여겨져 강한 의혹과 함께 군무현의 뇌리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던 차였다.

한데, 천마애의 깊은 곳에 자리한 은밀한 지하동부, 그곳에서 실로 뜻밖에도 그 극령정뇌수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이내 확신이 섰다.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극령정뇌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동과 흥분으로 휩싸였다.

신기황이 들려준 또 다른 놀라운 사실 때문이었다.

 

일백인(一百人)의 뇌수와 정수가 모여야 그것은 겨우 밤톨만 해진다. 알아두어라.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만이 너의 태양신맥(太陽神脈)을 치료할 수 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희열과 격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극령정뇌수만이 너의 태양신맥을 치료할 수 있다...

 

군무현의 귓전에 신기황의 그 말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군무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감격의 표정을 지었다.

전설(傳說)로만 믿었거늘... 극령정뇌수가 실제로 있었다니...!”

그는 눈앞의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 하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군무현, 그로서는 실로 엄청난 일생일대의 대기연을 만난 것이었다.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가?

그는 마침내 불치의 절맥인 태양신맥을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희열과 격동에 몸을 떨던 군무현, 문득 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극음현령옥에 고여있는 극령정뇌수, 그것은 족히 일만 명의 정뇌가 모인 것이었다.

어찌 기분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제 나의 태양신맥은 치료할 수가 있다. 하나... 인간으로서 어찌 같은 인간의 정뇌를 복용한단 말인가?)

그는 난색을 지으며 거리낌을 금할 수 없었다.

일종의 죄의식이랄까? 아니, 그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할 양심인지도 몰랐다.

군무현은 잠시 갈등과 함께 망설임의 표정을 지었다.

하나, 생각해 보라. 누가 이런 엄청난 기연을 포기하겠는가?

 

극령정뇌수(極靈情腦髓)!

 

이는 인간의 정뇌와 극음현령옥의 극음지기가 뭉쳐진 정화였다.

그 때문에, 태양신맥의 극양지기를 누르고 태음경(太陰經)과 소음경(小陰經)을 능히 부활시킬 수 있었다.

뿐인가? 그것을 복용함으로해서 지고무상한 내공도 얻을 수가 있다.

극령정뇌수를 복용하게 되면 능히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효능인가?

물론, 군무현도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꺼림직한 기분과 함께 썩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어쩌랴? 그는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이윽고, 그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개운치는 않으나... 내 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니...!”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어, 그는 극음현령옥의 앞으로 다가가 우뚝 섰다.

우선 그는 흥분된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그런 다음, 그는 조심스럽게 극령정뇌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뭉클...! 손바닥 가득 기분 나쁜 감촉이 전해졌다.

(!)

군무현은 내심 다급성을 발했다. 뭉클하는 감촉과 함께 삽시에 두 손이 마비되는 듯한 엄청난 한기가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 지독한 한기다...!)

그는 뼈골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지독한 한기가 전신을 엄습함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순간, 군무현은 급히 입을 열었다.

꿀꺽...! 마침내 그는 극령정뇌수를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

그와 함께,

크 윽!”

군무현의 안면이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그는 몸 전체가 사정없이 얼어붙는 듯 했다. 치가 떨리는 가공할 한기였다.

으으... ... 운공을 해야 한다...!”

군무현은 온통 고통으로 이지러진 얼굴로 간신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극음현령옥 위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그는 전신에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운용했다.

그러자, 우르르...! 이내 그의 내부에서 천지개벽을 하는 듯한 대변동이 일어났다.

(으윽...!)

군무현의 영준한 얼굴은 참혹한 고통으로 얽혀들었다.

꽈르릉... 태양같이 뜨거운 극양지기는 엄청난 기세로 그의 내부를 뚫고 일어났다.

그와 함께, 극령정뇌수의 가공할 극음지기도 이에 지지않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극양지기와 극음지기의 상반된 두 가지 기운의 대결, 그것은 마구 뒤엉켜 군무현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우르릉! 콰 앙!

미친 듯이 전신을 질타하는 상극의 양대기류,

(크윽...!)

군무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었다.

전신이 터져 폭발해 버린 듯한 지극한 고통, 난마처럼 전신 구석구석을 치달리는 극을 달한 고통에 그는 눈앞이 캄캄해 졌다.

으윽... !”

군무현은 마침내 입 밖으로 신음성을 토해냈다.

전신이 뜨거운 불구덩이에 빠진 듯 화끈거렸다.

심맥이 타들어 가는 듯한 참혹한 고통, 하나 그런가하면 어느새 전신이 얼어붙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가공할 한기가 짓쳐들었다.

실로 인간으로서 참아낼 수 없는 엄청난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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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修羅天魔洞府奇緣

 

 

 

신기황은 만년에 감회와 격동의 빛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고금제일음공(古今第一音功)이 적혀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나, 그는 새로운 무공을 대할 때마다 새로운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하고자 하는 그의 왕성한 의욕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뛰어난 오성과 총명을 믿고 있었다.

노부도 음공(音功)에는 별반 너보다 나은 점이 없으니 천황음경(天皇音經)은 제 스스로 터득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군무현은 천황음경을 내려다보며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문득, 신기황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황음경에는 천음황의 한()이 실려있다. 천음일맥(天音一脈)을 잇는 너는 선인(先人)의 심한(心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엄숙한 어조로 당부했다.

군무현은 그런 신기황의 내심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각골명심 하겠습니다!”

그는 굳은 결의의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기황의 노안이 음울한 빛으로 젖어들며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볼 수 있었다.

나가 보아라!”

그의 음성 또한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무현은 몸을 일으키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음황 선배님을 생각하시는 것이리라...!)

이어, 그는 신기황을 향해 공손히 일배한 후 몸을 돌렸다.

물러가겠습니다!”

“...!”

신기황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눈길을 다시 벽쪽으로 돌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부쩍 늙어 보였다.

 

X X X

 

삘릴리 삘리... 부드러운 소성이 절곡(絶谷)을 가득 메우며 흐른다.

맑고 흥겨운 음률, 그것은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분지를 어루만졌다.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가 만발한 방대한 분지, 그 중앙의 평평한 바위 위, 한 명의 백의청년이 단좌하고 있었다.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의 미청년.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 누늘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술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하나의 목적(木笛)이 가볍게 물려져 있었다.

삘리리... 삘리... 그 목적(木笛)에서는 심신을 온유롭게 만드는 부드러운 음률이 흘러나왔다.

! 이 순간 천지는 온통 신비의 조화지경으로 화한다.

천지동화(天地同和)!

만물(萬物)이 피리소리에 끌려 하나로 융합된다.

상극(相極)과 상생(相生)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삼라만상(森羅萬象).

하나, 이 순간만은 상극(相極)이 없다. 오직 상생(相生)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극의 묘리는 흔적없는 티끌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위는 평화롭고 피리소리는 더없이 흥겹고 부드럽다. 문득, 분지를 울려퍼지던 부드러운 소성이 뚝 끊어졌다.

군무현, 그는 목적(木笛)을 입에서 떼며 비로소 눈을 떴다.

항상 서늘한 살기가 어려있던 그의 눈빛, 하나 이 순간 그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스스로 음률에 취한 것일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감정하고 서늘한 한기가 일렁거리는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문득, 군무현의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천락화영춘(天樂和英春)...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에 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음공(音功)이다!”

천음황의 천황음경(天皇音經)!

그것은 음공(音功)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천황오대음종(天皇五大音宗)이다.

(), (), (), (), ()의 묘결을 담은 오대음종. 그것은 하나하나가 각기 한 방면의 최고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군무현은 천황오대음종에 대해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묘결은 모두 이해했다. 다만 그 위력이 지나쳐 화(), ()의 음종 외에는 펼칠 수가 없을 뿐...!”

과연 그러했다. ()와 환()까지는 단지 허상을 만들고 심기를 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하나, (), (), ()의 음종은 그 목적이 본격적으로 달랐다.

파괴(破壞). 그것은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무서운 음공인 것이다.

설사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는 가공할 위력.

군무현, 그는 불과 일년만에 천황음경 내의 정수를 모두 터득했다. 이 또한 범인으로서는 상상치도 못할 눈부신 성취였다.

그는 수중의 목적을 만지작거리며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천황음경에서는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다. 실제로 펼쳐보는 일만 남았을 뿐!”

문득, 그는 눈을 돌려 북쪽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신기황이 기거하는 동굴의 맞은편에 위치한 석벽, 그 석벽을 주시하며 군무현은 눈을 빛냈다.

저 석벽에 대고 음공을 시험해 보자!”

중러거림과 함께, 스슥...! 그의 신형이 앉은 채 소리없이 떠올랐다.

 

파향비운산(波香飛雲散)!

 

천황음경 중에 실린 극상의 경공.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스스스... 이내 군무현의 신형은 마치 산향(散香)이 퍼지듯 흩어졌다.

잠시 후, 스슥! 군무현은 깃털처럼 가볍게 석벽 앞으로 내려섰다.

그는 눈을 빛내며 석벽을 주시했다.

제삼붕음종(第三崩音宗)은 목표한 것만 무너뜨릴 뿐,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제사멸음종(第四滅音宗)과는 다르지. 성세는 약하나 최고 십리(十里) 밖의 목표물도 부술 수 있는 묘용이 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어, 그는 수중의 목적을 입에 댔다.

그러다 문득,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혹의 빛을 지었다.

(오성(五成)의 공력으로 저 석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는 저으기 염려스러웠다.

하나, 삐 익!

이내 그의 목적(木笛)으로부터 천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파 팍!

그 엄청난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목적이 그대로 박살나고 말았다.

직후, 우르릉... 쩌 억!

음파에 격중당한 석벽이 굉음과 함께 마치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콰르르릉! 콰 쾅!

가공할 폭음이 짓터져 오르며 거대한 석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아아! 그것은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단 한 번의 음파(音派)! 그로 인해 엄청난 두께의 석벽이 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음공을 시전한 군무현, 그 역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붕뇌명후(天崩雷鳴吼)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그는 아연하여 절로 탄성을 터뜨렸다.

위 잉! 파파앗! 일진 회오리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온통 허공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아니...!”

군무현은 흠칫하며 경호성을 발했다.

이어, ! 그는 즉시 앞으로 날아내렸다.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다니...!”

군무현은 경이의 눈빛으로 전면을 주시했다. 무너진 석벽의 뒤쪽, 뜻박에도 그곳에는 높이 십여 장의 높은 동굴이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옥(地獄)의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동굴, 그 동굴 앞에 내려선 군무현, 그는 다시 한 번 흠칫 놀랐다.

(마기(魔氣)가 뻗힌다!)

그는 동굴에서 뻗어나오는 전율적인 마기에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동굴, 그 안쪽에서는 전신을 오그라붙게 만드는 섬뜩하고 칙칙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문득, 군무현의 두 눈이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의 뇌리로 언뜻 신기황이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천마애(天魔崖)에는 신비가 숨겨져 있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서 나갈 수 없어 알아보지 못했으니 기회가 닿으면 네 스스로 찾아보아라!

 

군무현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직감을 느꼈다.

(범상한 동부가 아니다. 신기황께서 지칭한 신비(神秘)라는 것이 어쩌면 이 동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강렬한 호기심에 마음이 끌렸다.

이윽고,

(들어가보자!)

그는 결심을 굳히며 동굴 앞으로 다가섰다.

스슥! 이내 그는 망설임없이 동굴 안으로 날아들었다.

 

동굴 안, 그곳은 불빛 한점 없이 어두컴컴했다.

전신을 조여들게 만드는 칙칙한 마기(魔氣). 그것은 동굴의 통로를 따라 들어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뻗쳐나왔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군무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동부(洞府), 눈앞에 하나의 광활한 동부가 나타났다.

한데, 군무현은 일순 흠칫 놀라며 전면을 주시했다.

시신(屍身)!”

그는 나직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의 전면, 어둠 속에 한 구의 시신이 보였다.

시신은 삼십 대의 장한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장한은 눈을 감은 채 동굴의 벽에 기대어 죽어 있었다.

“...!”

군무현은 눈썹을 모으며 천천히 시신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는 손끝으로 가볍게 시신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우수수...!

시신은 단번에 가루로 화해 부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흠칫하며 물러섰다.

하나, 이내 그의 머리는 민활하게 움직였다.

(복장으로 보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복색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팔백년 전의 시신이다!)

그는 눈을 빛내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휘 잉!

문득 귀기서린 한줄기 음풍이 군무현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칫한 한기가 모발을 쭈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하나, 군무현은 담력이 컸다.

그는 한줌의 재로 화해버린 시신을 내려다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이곳은 천지지간의 음기(陰氣)가 모이는 곳...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시신의 부패를 막았으리라!)

과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윽고, 군무현은 예리한 눈을 빛내며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시신은 재로 화해버린 장한을 기점으로 계속 발견되었다.

또한, 갈수록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걸음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두 개의 인물들이 싸우다가 동귀어진했다. 혈포를 걸친 자들은 여러 부류의 인물들이 합공한 것으로 보이는군!)

시신의 형태는 실로 각양각색이었다.

서로 뒤엉킨 채 나뒹굴어진 시신, 목이 댕강 잘려 나가고 없는 시신, 검을 끌어 안고 꼬꾸라졌거나, 혹은 심장이 관통되어 창자가 흘러나온 시신 등...

군무현은 예리한 눈빛으로 시신들을 살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지하광장의 입구에 이르게 되었다.

그 순간,

“...!”

군무현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춰섰다.

지하광장의 입구, 그곳에는 오 장 높이의 거대한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지 않은가?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석비 위에는 섬뜩한 핏빛 글씨가 그와 같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전율스러운 마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수라천마동부(修羅天魔洞府)?”

군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모았다. 그로서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성큼 지하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하한 일에도 좀처럼 감정을 내색지 않는 군무현, 그런 그였건만 그의 두 눈은 이 순간 한껏 부릅떠졌다.

대체 그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 一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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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天皇音經, 古今最强音功

 

 

 

적룡검(赤龍劍)!

 

아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인가?

오백 년 전, 돌연 거창한 일대선풍이 천하를 휩쓸었다.

한 명의 검수(劍手)!

그의 등장은 돌풍처럼 무림을 뒤흔들었다. 그는 온통 신비 속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나이나 용모는 물론, 심지어는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 그 신비검수는 나타나자마자 무림을 벌컥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는 천하의 일백대 고인과 일백대 강대 문파를 질타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뿐, 비무(比武)! 바로 그것이었다.

단순히 비무를 원한 행동이었으나 그 결과는 실로 어이없을 정도였다.

당당히 천하최강을 자부하던 인물들, 그들은 허무하게도 신비검수의 일초반식도 받지 못하고 연속 패하고 말았다.

완패(完敗). 무림의 완전한 패배였다.

신비검수, 그는 이 결과에 대해 실망을 금치못했다.

 

... 천하(天下)가 이토록 좁단 말인가! 구주팔황(九州八荒)의 넓이가 겨우 본 검종(劍宗)의 일초 검식도 완전히 펼칠 수 없이 협소하다니...!

 

그는 그렇게 탄식하며 종적도 없이 무림에서 사라졌다.

실로 경악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출도한지 불과 반년만의 일이었다.

반년(半年), 단 반년의 활동으로 그 신비검수는 천지십강(天地十强) 중에 든 것이 아닌가?

이는 무림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이었다.

 

적룡검은 바로 적룡천종(赤龍天宗)께서 사용하신 명검(名劍)이다!”

신기황은 진중한 안색으로 말을 계속했다.

군무현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다. 하나, 그의 내심은 흥분과 격동으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는 유현하게 눈을 빛내며 수중의 적룡검을 내려다 보았다.

그때, 신기황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적룡검에는 적룡천종(赤龍天宗) 선배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아마 네 부친 적룡대제는 그 중 두 가지 정도를 알아내었을 것이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

그것은 부친 적룡대제의 최대절기였다.

한데, 신기황의 다음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아버지는 그 두가지의 절기로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이란 소리를 들었겠으나... 사실 그것은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진정한 진전의 반푼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그의 말에 군무현은 의혹과 경악을 금치못했다.

적룡대제 군천휘를 천하제일검으로 군림케 만든 그의 최대검식, 그것이 겨우 적룡천종(赤龍天宗)의 반푼의 진전에 불과한 것이라니...

그는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신기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신기황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네 아버지와 노부도 찾지못한 세 번째 것이 적룡천종(赤龍天宗)의 진정한 절기다. 그것을 알아낸다면 너는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의 뒤를 잇게 된다. 그 경지는 우내사천황도 이룰 수 없는 지고무상(至高無上)의 경지임을 알게 될 것이다!”

“...!”

군무현의 가슴은 뜨겁게 요동쳤다.

(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

그는 격동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그는 새삼 신기황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신기황께서는 적룡팔대식(赤龍八大式)과 적룡어강살을 찾아내셨구나!)

그 두 가지 검식(劍式)은 군무현도 알고 있었다.

적룡검, 그것의 검집에는 매우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적룡팔대식을 나타내는 구결이었다.

적룡어강살! 그것은 적룡검의 손잡이에 구결이 암시되어 있었다.

적룡검의 손잡이는 만년온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곳에 흐릿하게 파여져 있는 종횡의 복잡한 선()들이 바로 적룡어강살의 구결이었다.

그때, 신기황이 두 눈에 기광을 폭사하며 말했다.

흐흐... 적룡천종의 진정한 절기를 얻는다면 네명의 천마황(天魔皇)이라도 벨 수 있다!”

! 그의 말은 실로 경악할만 했다. 군무현은 새삼 천지십강(天地十强)에 대한 경외심이 일었다.

(천지십강... 그 분들이 그렇게 강하단 말인가?)

신기황은 군무현을 똑바로 주시하며 물었다.

이제 네가 천마황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을 알겠느냐?”

!”

군무현은 낮으나 힘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기황은 신뢰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부터 노부의 재간을 전수하겠다. 노부의 재간은 무공이라기보다 학문(學文)에 가깝다. 하나, 명심해 두어라!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무공수련보다 일백배 더 어렵다는 것을...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명심하겠습니다!”

군무현은 신념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이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러기에 그는 확신이 섰다.

범인이라면 노부의 재간을 모두 얻으려면 일백 년도 부족할 것이나 너는 이년(二年)안에 끝내리라 믿는다!”

그 말과 함께, 우 웅! 다시 한줄기 강력한 잠력이 웅덩이 속에서 뻗어나왔다.

이어, 휘익 탁! 동굴의 뒤쪽의 벽면에서 두 권의 두툼한 책자가 날아와 군무현의 무릎 앞에 떨어졌다.

“...!”

군무현의 눈길은 빠르게 그 두 권의 책자를 살폈다.

 

신기천망해(神機天網解)!

활심대성록(活心大聖綠)!

 

두 권의 양피자 책자, 그 표지에는 각기 그와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범인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웅휘한 필체.

그때, 신기황이 다시 엄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삼절(三絶)이다. 기절(機絶)이 그 첫째이며, 의절(醫絶)이 그 둘째, 그리고 암기술(暗器術)이 셋째이다!”

신기황! 그는 삼십년간의 금제생활과 골수에 맺힌 원한으로 인해 성격이 괴팍하게 변해있었다.

하나, 본래 그는 뛰어난 인품과 덕망의 소유자였다.

그를 일컬어 무림제일의 현자(賢者)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오랜 세월 고립된 생활로 인해 그 성격이 다소 변하기는 했으나 본래의 훌륭한 인품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다.

이윽고, 신기황은 자신의 절기에 대해 설명했다.

노부의 암기술은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다투어도 될만한 것이나 글로 남기기에는 부끄러운 것이라 노부가 직접 구술하겠다. 우선 신기천망해(神機天網解)부터 전수하겠다!”

군무현은 정신을 집중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집중력은 결코 범인이 따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신기천망해! 그것은 천지지간의 모든 이치를 담은 심오한 내용이었다.

군무현, 그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신기황의 말을 경청했다.

차갑고 무심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이 순간 쉴새없이 빛나고 있었다.

신기황의 또 다른 분신, 제 이의 신기황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X X X

 

천마애(天魔崖)!

나는 새도 접근을 불허하는 천험(天險)의 절지.

스으... 스으... 안개, 천마애는 사시사철 음울하고 검푸른 안개로 휩사여 있다.

암울한 신비가 전설처럼 구비구비 서린 곳, 그 누구도 감히 천마애의 신비를 벗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묵운(墨雲). 그것은 천마애 주위에 펼쳐진 상고대진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었다.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

 

이것이 바로 그 절진의 이름이었다.

언제, 누가 이 절진을 설치해 놓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애장비대진(天崖藏秘大陣)을 돌파할 수 있는 인물은 천하에 단 두 명 뿐이었다.

기문제일인(機門第一人)인 신기황, 그리고 그의 분신으로 새롭게 탄생한 젊은 기재 군무현이 바로 그들이었다.

천하애는 온통 신비로 뒤덮인 곳이었다.

그곳은 세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신비가 처처에 깔려 있었다. 또한, 천마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넓고 방대한 규모였다.

신기황, 그는 천마황의 독수에 당한 후 은신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천마애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이곳에 몸을 숨기고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근 채 독기를 억누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천마애 아래, 뜻밖에도 그곳은 방대한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 새외도원의 낙원(樂園)이 그러할까?

보라! 수십마장에 이르는 거대한 분지, 그곳은 온통 화려한 기화이초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실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 정녕 세인들은 알지 못하리라.

천험의 절지 천마애, 그 아래 이토록 화려하고 평화로운 낙원이 있다는 것을.

초하(初夏). 싱그러운 첫여름이었다.

천마애의 여름은 너무도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방대한 분지는 온통 싱싱한 초록의 물결로 출렁거렸고 하늘은 눈부시게 청량했다.

한데, 우르릉! 콰쾅...! 돌연 맑은 하늘을 뒤흔드는 가공할 뇌성벽력이 터져나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뒤이어, 콰르릉 콰쾅! 우르르... 쏴아!

광풍(狂風)이 몰아치며 세찬 폭우가 대지를 두드렸다.

갑자기 천마애는 온통 지축이 뒤흔들리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천지(天地)에 종말이 도래하려는가?

콰르르... ! 우르르릉!

광풍폭우가 미친 듯이 천마애를 뒤흔들었다.

일시에 사위는 암운천지로 돌변했다.

한데,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일순 모든 것이 정지했다.

가공할 뇌성벽력도, 천지를 함몰시킬 듯한 광풍폭우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것들은 마치 환상처럼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아! 이럴 수가...

보라! 천마애의 그 어디에도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창해(蒼海)처럼 맑게 출렁거리는 푸른 하늘, 그 눈부신 햇살 아래 생기롭게 빛나는 초목들, 꽃잎에는 물기 한 방울조차 남아있지 않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비쳤다 사라져버린 환상이라면 너무나 생생하지 않은가!

그때였다.

풍운대라굉벽진(風雲大羅轟碧陣)...!”

문득 한소리 담담한 청년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이어, 분지의 한쪽 옆 돌무더기 사이에서 한 명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투명하리만치 흰 피부, 미인의 그것처럼 붉고 정령적인 입술, 깊고 깊은 신비를 담은 채 서늘하게 가라앉는 눈빛, 옥수같이 미려한 자태가 헌앙하기 이를 데 없다.

청년은 일신에 용모와 썩 잘 어울리는 백색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백의청년, 그에게서는 실로 종잡을 수 없는 기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만년한옥에서 스며나오는 듯한 서늘한 한기, 그것은 무형중에 사위를 짓누르는 기이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윽고, 백의청년은 몸을 돌려 어지러이 널려있는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풍운대라굉벽진... 신기황 어르신과 나 외에는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천하절진(天下絶陣)...!”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방금 전 천마애를 휩쓸었던 뇌성벽력과 광풍폭우, 그것은 바로 진식이 만든 허상(虛象)이 아닌가?

누가 믿으려 할것인가? 이 엄청난 사실을... 천지를 질타했던 그 엄청난 광경이 어이없게도 환상에 불과하다니...

한데, 바로 그때였다.

무현... 들어오너라!”

문득 한소리 창노한 노인의 음성이 분지를 울렸다.

!”

그 음성에 백의청년은 공손한 대답과 함께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지의 끝, 그곳은 높은 벽면으로 앞이 가로막혀 있었다.

한데, 그 벽면에는 하나의 퀭한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백의청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어, 그는 동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이 비치는 동굴 안, 움푹 패인 웅덩이 속에 한 명의 괴인이 목만 내놓은 채 잠겨 있었다.

신기황 바로 그였다.

그는 벽쪽을 주시하고 있다가 백의청년이 들어서자 시선을 돌렸다.

무현, 앉거라!”

!”

백의청년은 담담히 대답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군무현! 물론 그는 군무현이었다.

신기황은 대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허허... 이년(二年)이 족히 걸릴줄 알았거늘 석달이 모자라는 이년 동안에 노부의 밑천을 모두 뺏기고 말았구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군무현의 얼굴은 무심하고 담담했다.

하나, 그는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어 대꾸했다.

모두 노인장께서 소생을 아껴주신 덕분입니다!”

그는 신기황을 사부(師父)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황 또한 그것을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군무현을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황의 노안에 오랜만에 미소가 떠올랐다.

헛허... 공자께서도 훌륭한 인재를 기름을 인생삼락(人生三樂)에 넣지 않았느냐? 늙으막에 뛰어난 기재를 가르치게 된것을 노부의 홍복으로 생각한다!”

부끄럽습니다!”

군무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신기황은 흐뭇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주시하며 말했다.

이제 천음황(天音皇)의 진전을 배울 차례다!”

! 어느새 말을 하는 그의 수중에는 한 권의 비급이 들려졌다.

이어,

받아라!”

! 그는 쥐고있던 비급을 가볍게 군무현에게 던져주었다.

군무현은 공손히 그 비급을 받아들었다.

 

<천황음경(天皇音經)!>

두툼한 비급의 표지에는 그와 같은 글씨가 일필휘지의 서체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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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赤龍劍秘密

 

 

 

백발괴인은 문득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노부가 바로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중 기문제일(機門第一)로 불리던 신기황(神機皇)이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괴인, 그가 바로 일백년 전 혁혁한 명성을 날리던 기인(奇人) 신기황이라니...

실로 놀랍고도 뜻밖의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군무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은 신기황(神機皇) 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때, 백발괴인, 아니 신기황(神機皇)! 그도 군무현을 주시하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린 녀석의 심기가 삼갑자를 살아온 노부에 뒤지지 않다니...!)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그는 일순 안색이 변했으나 이내 지극히 무심한 표정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의 모습에 고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현! 너는 노무가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

군무현은 그제서야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떼었다.

궁금합니다!”

신기황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테지. 노부가 이 모양으로 잔생(殘生)하게 된 것은 어쩌면 천하대풍운(天下大風雲)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 말에 군무현은 내심 흠칫 놀랐다.

(천하대풍운(天下大風雲)의 시작...!)

그는 나직이 뇌까리며 안색을 굳혔다.

신기황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 아버지 적룡대제(赤龍大帝)와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몰락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순간, 군무현의 전신이 미미하게 경련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 한복판으로 차가운 한풍이 휙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는 묵묵히, 그러나 긴장된 눈빛으로 신기황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기황은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문득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어,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삼십년(三十年) 전이었다. 노부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천음황(天音皇)을 만나보러 청성(靑城)의 천음애(天音崖)로 갔었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그들 중에서도 천음황(天音皇)과 신기황(神機皇)은 각별한 사이였다.

독천황(毒天皇)이 정사중도(正邪中道), 천마황(天魔皇)이 마도(魔道)를 걷는데 비해, 천음황과 신기황은 함께 정도(正道)를 걷던 인물들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히 두 사람의 의기는 서로 투합하게 되었다.

우내사천황은 비록 걷는 길은 달랐으나 서로를 깊이 존경했다.

특히, 천음황과 신기황의 우의는 아주 긴물했다.

신기황이 천음황을 만나기 위해 천음애(天音崖)를 찾았던 날, 천음황은 변함없이 반가운 얼굴로 신기황을 맞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술잔을 나누며 쌓였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몇 순배 술잔이 돌고 양인이 한창 회포를 풀고 있을 때였다. 천음애를 찾은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천마황(天魔皇)! 그는 바로 우내사천황 중의 일인인 천마황이었다.

천마황은 진정한 마웅(魔雄)이었다.

천하마도(天下魔道)를 수하로 결집시키고 천하의 반()을 얻은 그는 스스로 자족(自足)했다. 그리하여 그는 미련없이 자신이 세운 거대한 패세(覇勢)인 천마궁(天魔宮)을 폐했다.

그 후, 그는 후진들을 기르는 데 열정을 쏟고 있었다.

실로 일대종사(一大宗師)다운 처신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그런 천마황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평소에 친교는 없었으나 만나면 서로 웃으며 대하던 그들이었다.

한데, 그런 삼인(三人)이 실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뒤늦게 찾아온 천마황을 환대하며 맞아들였다.

이윽고, 삼인은 격의 없이 술자리를 같이했다. 그들은 모두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로부터 반나절 후, 천마황은 적당히 술기운이 올라 기분좋은 모습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가지 볼일이 있어 남황(南荒)으로 가던 길이었소.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소이다!”

그는 신기황과 천음황에게 인사를 한 후 총총히 천음애를 떠났다.

한데, 사태는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천마황을 배웅한 직후, 신기황은 이내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기문지학 뿐 아니라 의술(醫術)로도 당대제일이었다.

그는 즉시 자신이 맹독에 중독되었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중독당한 것 같소!”

신기황의 그 말에 천음황은 대경했다. 이어, 다급히 자신의 몸을 살피던 천음황,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노부도 역시 그렇소!”

두 명의 절대고인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마황(天魔皇)! 그 자의 짓이다!)

그들은 분격하며 치를 떨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그들이 당한 독()은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맹독이었다.

사심없이 천마황을 믿었던 두 고인, 그들은 전혀 경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쪽같이 중독 당하고 만것이었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경악과 분노, 그들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그 이상이었다.

한데, 더욱 놀라운 사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들이 분노를 금치못하고 있을 때, 돌연 일단의 무리들이 천음애로 들이닥쳤다.

갑작스런 습격이었다. 신기황과 천음황은 미처 대항할 여지조차 없었다. 그들은 독기(毒氣)를 두르며 간신히 천음애를 빠져나왔다.

하나, 어찌 알았으랴?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철저하고도 치밀한 죽음의 함정 뿐인 것을.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적도들이 그들을 침습해 들었다.

결국, 그들은 싸워야 했다.

천음황, 그는 중독을 무시한 채 분전을 펼쳤다. 무려 일천 명의 적도들이 그의 음공(音功) 아래 쓰러졌다.

그들은 천음애의 괴멸과 함께 영원히 그곳에 묻히고 말았으니...

하나, 그로인해 천음황 또한 돌이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닌 신기황이었으나 그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마침내, 천음황은 청성(靑城)을 벗어나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

“...!”

동굴 안은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신기황, 그의 모발 사이로 뻗힌 안광이 살기로 시퍼렇게 변했다. 그는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노부와 천음황이 당한 독()은 무형화린산(無形火燐散)이라는 것으로 천하에서 가장 극양(極陽)한 맹독이다!”

“...!”

군무현은 침중한 안색으로 신기황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을 하는 신기황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원한의 광망이 폭사되었다.

무형화린산(無形火燐散)을 다룰줄 아는 곳은 독황궁(毒皇宮)과 남만의 사망림(死亡林) 외에는 없다. 노부는 지극음령수액에 몸을 담그고 간신히 무형화린산의 독기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군무현, 문득 그는 의아한 빛을 지으며 물었다.

지극음령수액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단 말입니까?”

신기황은 그의 말에 쓰디쓰게 웃었다.

흐흐... 해독이 가능했다면 노부가 이렇게 앉아 있겠느냐? 당장 뛰쳐나가 천마황(天魔皇)놈을 때려 잡았을 것이다!”

그는 흥분한 듯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하나, 이내 그의 안색은 침중하게 굳어졌다.

전후 사정으로 보아 독천황(毒天皇)도 변을 당했을 것이다!”

“...!”

군무현은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이어, 그는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천마황은 무엇 때문에 세 분을 헤쳤을까요! 천하제패(天下制覇)가 목적이었다면 이미 천하가 천마황의 손 안에 들어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는 의혹의 표정을 지으며 신기황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 말에 신기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흐... 천하를 네 손바닥만 하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는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설명했다.

천하에는 고인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알 같이 많다. 네 아비였던 적룡대제(赤龍大帝)가 우리 우내사천황에 육박했던 것이 그 본보기가 아니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얼마나 될지 장담하지 못한다!”

“...!”

군무현의 창백한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살짝 붉어졌다.

신기황은 기광을 번뜩이며 계속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독황궁(毒皇宮)이나 천마궁(天魔宮)의 힘이 가장 강대했다. 하나... 천회쌍비(天外雙秘)나 세외사천(世外四天)도 각기 그에 못지 않다!”

그 말에 군무현은 흠칫했다.

천외쌍비(天外雙秘), 세외사천(世外四天)...!”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신기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나는대로 이야기해 주겠다!”

이어, 그는 두 눈에 싸늘한 한망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천마황은 암중에 방해되는 세력을 하나하나 제거하느라 삼십 년을 소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놈은 어떤 형태로든 천하를 거의 손아귀에 넣었을 것이다!”

“...!”

결국... 적룡세가가 몰락한 것은 바로 천마황의 마무리 작업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신기황, 그는 그런 군무현의 모습을 정면으로 주시했다.

군무현의 두 눈, 그것은 지금 엄청난 비분과 원한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얼음 속에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본적이 있는가? 군무현의 눈빛이 바로 그러했다.

신기황은 그런 군무현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았다.

이어, 그는 엄숙하고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일신의 원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백만 무림동도들을 위해서다. 천마황을 죽여라!”

그것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엄이 깃든 명령이었다.

순간, 군무현의 전신이 한차례 부르르 경련했다.

기필코 그 자를 죽이겠습니다! 소생의 힘이 천마황의 그것에 미치지 않는다면 음모(陰謀)를 써서라도 쓰러뜨릴 것입니다!”

그는 싸늘하고 결연한 어조로 다짐했다.

신기황은 그의 말에서 신뢰를 느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자부심이 깃든 어조로 말했다.

흐흐... 천마황이 결코 네가 상대못할 강자(强者)가 아님을 알게될 것이다. 그놈의 마공(魔功)이 아무리 패도적이라도 우내사천황 중 이황(二皇)의 절기가 합쳐지면 결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순간 그의 두 눈은 강렬하고도 형형한 광채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눈빛 속에는 만가지 감정이 서로 교차되고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숙원이 달성된다는 것에 대한 감회, 그리고 당당한 우내사천황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었다.

문득, 신기황은 생각난 듯 말했다.

네게 줄것이 있다!”

말과 함께, 위 잉! 돌연 그의 몸에서 강한 잠력이 일어났다.

이어, 츠츠츠읏!

지극음령수액이 떨어지는 벽면의 뒤에서 한 자루의 보검이 불쑥 솟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은은한 붉은 빛을 띤 투명한 검신, 그 검신에는 한 마리 적룡(赤龍)의 문양이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룡검(赤龍劍)!

 

! 그것은 바로 적룡대제가 남긴 적룡검(赤龍劍)이 아닌가?

순간, 군무현의 두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음울하고도 냉막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신기황은 군무현의 내심을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이 검을 보고 원한에 집착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주지 않았지만 이제 네게 돌려 주겠다!”

군무현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그는 뜨거운 격정이 가슴을 뭉클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다시금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부친 적룡대제의 위엄있는 모습.

이윽고, ! 군무현은 말없이 적룡검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부친 적룡대제가 남긴 두 가지 유물 중 하나였다.

따라서, 적룡검이야말로 적룡대제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었으며 군무현에게 있어 생명보다 더 귀중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그때, 신기황이 문득 기이한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너는 적룡검의 내력을 아느냐?”

모릅니다!”

군무현은 음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흐흐... 그렇겠지. 천하의 누구도 적룡검이 천지십강(天地十强) 중 한 고인의 애검(愛劍)임을 모른다. 네 아비였던 적룡대제조차도...!”

! 신기황의 말은 실로 놀랍고도 뜻밖이었다.

군무현, 그는 내심 기이한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혔다.

(적룡검이 천지십강 중의 한 고인이 쓰던 애검이란 말인가?)

그는 기대의 눈빛으로 신기황을 주시했다.

신기황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오백년 전, 불과 반녀(半年) 만에 구주팔황(九州八荒)을 질타한 일대검종(一代劍宗)을 아느냐?”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적룡천종(赤龍天宗)!”

그는 경악의 음성으로 나직이 외쳤다.

신기황은 기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분은 바로 적룡천종(赤龍天宗)이라 불린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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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 章

 

                      宇內四天皇傳說

 

 

 

 

부친 적룡대제를 생각하자 군무현은 들끓는 격정과 함께 처절한 슬픔에 가슴이 메어지는 것을 느꼈다.

강직하고 위엄있는 모습의 적룡대제, 군무현은 그 모습을 떠올리며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천지를 얼려버릴 듯한 강렬한 살기가 치뻗혔다.

순간, 백발괴인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혈한(血恨)이 이 어린 녀석으로 하여금 저토록 강한 살기를 지니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는 나이답지 않게 깊은 한으로 점철된 소년 군무현에게 왠지 마음이 끌림을 느꼈다.

그때, 문득 군무현의 입에서 살기 어린 냉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천하와 맞서 싸워야 하는 신세, 노인장께서는 그 점은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백발괴인은 섬칫한 전율을 느꼈다.

하나, 곧 그는 동굴이 떠나갈 듯한 우렁찬 대소를 터뜨렸다.

우하하... 좋다! 좋아! 네놈이라면 오년 내에 천하를 뒤엎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흡족한 듯 오랜만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군무현의 입가에 비정한 결의의 냉소가 어렸다.

천하를 피로 씻어 버릴 텐데 그까짓 일인 정도 더 죽이는 것이 무엇이 대수겠습니까?”

“...!”

그의 냉혹한 어조는 다시 백발괴인을 전율케 했다.

(이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는 심신이 절로 으스스해지는 느낌이었다.

하나, 이미 흥정은 이루어졌다.

군무현, 그는 서늘한 한광이 일렁이는 시선으로 백발괴인을 주시했다.

노인장께서는 어떻게 소생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시겠습니까?”

그는 냉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에 백발괴인은 물속에 잠겨있던 고개를 쭉 빼며 말했다.

흐흐... 너는 노부가 몸을 담그고 있는 이 액체가 무엇인줄 아느냐?”

군무현은 흠칫했다. 그제서야 그는 백발괴인이 몸을 담그고 있는 웅덩이 속의 새파란 액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기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방 벽면을 뒤덮고 있는 나무 뿌리들, 그 끝에서는 한 방울 한방울 액체가 떨어져 웅덩이로 흘러들고 있었다.

나무 뿌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액체, 그것은 투명한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을 본 군무현의 안색이 일변했다.

혹시...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이 아닙니까?”

백발괴인은 군무현의 안목에 놀람을 금치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클... 어린 놈의 안목이 대단하구나!”

“...!”

군무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나, 그는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

 

지하(地下)에는 강한 극음지기(極陰之氣)가 흐르고 있다.

그것이 일만년을 살아온 만년지령수(萬年地靈樹)에 흡수되어 수액(樹液)으로 응결된 것이 바로 지극음령수액(地極陰靈樹液)이었다.

이는 천하에서 두 번째로 지독한 극음령수(極陰靈樹)였다.

범인이라면 단 한 방울만으로도 백년을 무병장수하며, 무림인 이라면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무궁무진한 내공을 얻을 수가 있다.

 

백발괴인. 그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놀라운 사실을 일러 주었다.

이곳 천마애가 바로 지극음기(地極陰氣)가 응집되는 성음극지(聖陰極地)이니라!”

“...!”

군무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놀라운 빛이 떠올랐다.

성음극지(聖陰極地)!

그것은천하의 지극음기가 모이는 곳을 일컫는 것으로 만물(萬物)에 생명을 주는 근원이 된다.

백발괴인은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노부는 이 지극음령수액으로 네 녀석에게 연혼활심대법(連魂活心大法)을 펼쳐 주겠다!”

연혼활심대법(連魂活心大法)...?”

군무현은 의아한 듯 나직이 되뇌었다. 그는 무려 십만 권의 경서를 읽고 외운 천고기재(千古奇才)였다.

학문(學文)이라면 이미 통달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하나, 그런 그로서도 백발괴인의 말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백발괴인은 군무현의 내심을 짐작한 듯 신비한 기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흐흐... 노부는 삼절(三絶)이다. 그 중 일절(一絶)이다. 네녀석은 안심해도 된다!”

군무현은 내심 의문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도대체 이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감탄과 함께 백발괴인에 대한 의혹과 궁금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백발괴인이 지체할 것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흐흐... 시작하겠다!”

그 말과 함께, 우 웅...!

돌연 지극히 강대한 힘()이 군무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동시에, 군무현의 몸이 둥실 지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흐흐...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네 몸에는 유익한 일이니 참아라!”

백발괴인은 괴이한 미소를 흘리며 미리 일러 두었다.

다음 순간, 파파팍! 돌연 웅덩이 속의 지극음령수액이 튀어올라 일시에 군무현의 삼백육십대혈을 가격했다.

그것은 실로 갑작스런 일이었다.

으윽!”

군무현은 돌연히 가해진 엄청난 고통에 안면을 이지러뜨리며 절로 신음성을 발했다.

하나, 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 훌륭한 암기수법...!)

그것은 실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천만근의 추가 일시에 전신을 두드리는 듯한 엄청난 고통, 군무현은 단 일격에 까마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하나, 파파팍! 그 모습에도 아랑곳 없다는 듯 백발괴인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흐흐... 비록 이십 오 세까지긴 하지만 네녀석을 천하에서 가장 강한 놈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는 득의의 웃음을 흘리며 자신있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파파앗... 파파파팍!

푸른빛을 띈 지극음령수액은 쉴새없이 튀어올라 군무현의 전신 대혈을 잇따라 가격했다. 그것은 실로 눈부신 속도였다.

웅덩이 속에 잠겨 간신히 목만 내밀고 있는 백발괴인, 그의 몸 어디에서 이토록 강대한 힘이 작용하는 것일까?

한데, 그때였다. 실로 신비한 광경이 벌어졌다.

보라! 파파앗 파앗... 파앗! 스스스...

군무현의 대혈에 부딪힌 지극음령수액이 돌연 푸르스름한 안개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것은 신비한 청무(靑霧)가 되어 군무현의 전신을 에워쌌다.

청무는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군무현의 몸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군무현은 까마득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나, 그는 신비한 청무 속에 감싸인 채 한겹 허물을 벗고 있었다.

병약하고 무력하기만 하던 신체의 허물을 깨끗이 벗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탄생(誕生)! 제 이(第二)의 탄생이었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

누가 세월을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는가? 그것은 대자연(大自然)과의 어김없는 약속이었다.

혹한(酷寒)의 겨울도 어느새 춘풍(春風)에 흔적없이 녹아내리는가 싶더니 금방 신록이 우거지고, 찌는 듯한 혹서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리고, 언제인지 모르게 천지는 추색(秋色)이 완연해졌다.

가을, 단풍의 계절이 온 것이다.

 

동굴(洞窟). 하나의 음산한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희미한 야명주 불빛이 비치고 있는 동굴 안, ... ...!

맑은 청음을 내며 물방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투명하고 푸른빛을 띈 액체, 그것은 동굴의 중앙에 움푹 패여있는 웅덩이 속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만년(萬年)을 두고 계속되어 온 지극음령수액의 낙수(落水). 바로 그것이었다.

지극음령수액이 떨어져 고인 웅덩이 속, 한 명의 괴인이 몸을 담근 채 깊숙이 잠겨 있었다. 그는 벽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수초(水草)처럼 마구 헝클어진 백발의 모발이 온통 그의 등을 뒤덮고 있었다.

문득, 뚜벅... 뚜벅! 조용하던 동굴의 입구 쪽에서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별로 크지않은 소리였다. 하나, 그 속에는 심령을 뒤흔드는 묵중한 기도가 실려 있었다.

잠시 후, 동굴의 입구에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소년(少年), 그의 나이는 이제 십오륙 세 정도로 보였다.

핏기 한점 없는 창백한 얼굴. 하나, 그의 용모는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주는 절륜한 용모. 전체적으로 약간 그늘져 어두운 듯 하면서도 그는 투명하리만치 아름다웠다.

특히, 소년의 두 눈은 신비(神秘), 바로 그 자체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맑게 가라앉아 서늘하게 일렁거리는 눈빛, 누구든 그 눈빛을 대하면 전율처럼 사정없이 전신을 끌어 당기는 강한 마력(魔力)에 사로 잡히고 말 것이다.

소년의 입술, 그것은 미인(美人)의 그것처럼 붉디 붉었다.

얼음 가운데 핀 불빛같은 정열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년은 전체적으로 몹시 유약한 인상을 풍겼다.

하나,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실로 종잡을 수 없는 싸늘한 기도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흠칫 몸을 떨게 만드는 살기(殺氣), 그것은 냉연하고 차디 찬 살기였다.

이윽고,

“...!”

소년은 말없이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겨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무현(武玄)! 왔느냐?”

그가 들어서자 웅덩이 속의 괴인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 그렇다. 소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군무현은 괴인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

그러자, 괴인은 벽쪽으로 향하고 있던 고개를 군무현을 향해 돌렸다.

백발괴인! 괴인은 바로 전신이 수초에 휘감겨 있는 듯한 모습의 그였다.

앉아라!”

그는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하나, 그의 무심한 어투와는 달리 그의 두 눈에는 훈훈한 정감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하고 냉막해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백발괴인에게만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그는 말없이 동굴의 바닥에 꿇어 앉았다.

이어, 그는 지극히 무심하고 냉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완성했습니다!”

천기귀원심공을 완성했다...!”

백발괴인은 나직한 어조로 되뇌었다.

하나, 그의 두 눈에는 경악의 빛이 번뜩 스쳐갔다.

(일년(一年)이 채 아니되어... 노부의 삼갑자(三甲子) 정화가 담긴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을 완성하다니...!)

그는 내심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놀라운 녀석...!)

사실 그는 놀랍고도 기쁘기 한량없었다. 하나, 겉으로는 전혀 그런 감정을 내색지 않았다.

그다지 느린 진도는 아니군.”

그는 무심히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군무현은 그런 백발괴인을 주시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어른이시다. 지니신바 학문은 창해(蒼海)보다 깊고 심기는 구중천(九中天)에 못지 않으시니...!)

그는 백발괴인의 지닌바 학문의 조예와 신비한 능력에 갈수록 감탄을 금치못하고 있었다.

각기 서로 다른 생각에 젖어있던 두 노소,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나, 곧 백발괴인이 과묵한 어조로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천기귀원심공을 완성했다니 태산(泰山)이라도 짊어질 수 있는 정력(定力)이 생겼을 것이다!”

 

천기귀원심공(天機歸元心功)!

 

실욕적인 모용은 별로 없다. 대신, 태산보다 육중한 정력을 길러주므로 그 중요성은 어떤 무공보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백발괴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군무현을 주시했다.

이제 넥 비로소 노부와 노부 친우(親友)의 전세절학을 전수할 기반이 닦였군!”

“...!”

군무현은 무릎을 꿇은 채 묵묵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백발괴인은 기광을 빛내며 군무현에게 물었다.

무현, 너는 노부의 본래 신분이 궁금하지 않느냐?”

“...?”

군무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백발괴인은 문득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원하되 원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험난한 강호를 살아가는데 긴요한 자세지!”

“...!”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한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백발괴인은 안색을 진중하게 고치며 말했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을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군무현은 흠칫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그들을 모르는 자 뉘 있으랴?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백년 이전에 이미 천하최강(天下最强)으로 군림해온 절대기인들, 그들의 무공은 극고의 경지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각기 한 방면에서 가히 고금무적(古今無敵)에 이르렀다는 점이었다.

고금을 통틀어 단연 최강으로 손꼽히는 천지십강(天地十强)!

설사 그들이라 해도 우내사천황의 한 가지씩의 특기에는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독천황(毒天皇)!

신기황(神機皇)!

천음황(天音皇)!

천마황(天魔皇)!

 

이들 사인을 일컬어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이라 한다.

 

독천황(毒天皇)!

우내사천황의 최고령자. 그는 바로 청해(靑海) 독황궁(毒皇宮)의 개파조사였다.

천년 내에 가장 강한 독문제일인(毒門第一人).

 

신기황(神機皇)!

고금제일(古今第一)을 논할 수 있는 현자(賢者). 그가 무공을 지녔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싸운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관지학과 기문진법(奇門陣法)은 천하무적(天下無敵)이었다.

 

천음황(天音皇)!

음공(音功) 조종(祖宗). 그는 천하의 모든 악기를 다룰줄 아는 기인(奇人)이었다.

악기의 소리로 태산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상초유의 인물. 그에 의해 전무후무한 음공(音功)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천마황(天魔皇)!

마도제일인(魔道第一人)이자 마공제일인(魔功第一人).

마종(魔宗)의 패도적인 마공이 그의 일신에 집약되었다.

마공에 있어 최고최강의 경지에 오른 인물, 그는 패도적인 마공과 뛰어난 통솔력으로 천하마도(天下魔道) 일백팔류(一百八流)를 일통시켰다. 그리하여 세운 것이 바로 천마궁(天魔宮)! 마도제일궁(魔道第一宮)인 저 천마궁(天魔宮)이었다.

 

하나, 우내사천황!

그들은 이미 일갑자 이전에 무림에서 사라졌다.

청해의 독황궁(毒皇宮)도 천마궁(天魔宮)도 일갑자 동안 무림에 출현하지 않고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백발괴인의 입에서 그 우내사천황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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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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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章

 

                    洞窟속의 怪人

 

 

 

쐐 애액!

귓청을 찢는 날카로운 파공성, 군무현의 신형은 급격히 아래로 추락해 내려갔다.

한데, 기이한 일이었다. 환영투도에 의해 천마애의 묵운 속으로 던져진 군무현, 그는 벌써 지면으로 떨어졌어야 마땅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의 몸은 끝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하락하고만 있지 않은가?

한순간,

(!)

군무현은 전신이 경직되는 아찔함을 느끼며 숨을 들이켰다. 그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절벽이다!)

그는 내심 부르짖으며 전신을 부르르 경련했다. 그것은 아찔한 죽음의 예감이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 앞에 처절한 최후를 남기며 죽어간 부친 적룡대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적룡세가!

온통 화마에 휩싸여 덧없이 쓰러지던 웅장한 적룡세가의 위용이 망막을 가득 채웠다.

특히, 자신과 적룡대제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검()을 안고 쓰러져간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의 영상은 파편처럼 날카롭게 그의 가슴에 와 박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얼굴..

!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유명을 달리하신 생모(生母)의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문득,

(어머니...!)

군무현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격동을 느끼며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와 함께, 그는 마치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 듯 스르르 정신을 잃고 말았다.

 

X X X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억겁(億劫) 같기도 하고 일수유 같기도 한 아득한 시간, 군무현은 그 시간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마치 죽음처럼 깊고 깊은 잠, 그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나, 아직 운명이 다히자 않았음인가?

문득,

(이곳이... 저승인가?)

군무현은 오랜 혼몽 끝에 깨어나며 정신을 차렸다.

그의 전신은 지극히 무기력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듯한 무력하고 공허로운 느낌..

하나, 그는 그 가운데 끝없이 안온한 기분도 함께 느꼈다.

일생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마침내 아늑한 풀밭에 누워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군무현은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너무 지쳐 편안하게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때였다.

...! 문득 무엇인가 한 방울의 액체가 무력하게 벌어진 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

군무현은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무심고 떨어지는 액체를 목구멍으로 삼켰다.

뜻밖에도 그 액체는 매우 달콤하고 향긋했다. 또한, 전신을 상쾌하게 만드는 강렬한 향기마저 지녀 입안 가득 기분좋은 청량감을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무엇일까?)

군무현은 눈을 감은 채 의아한 듯 내심 중얼거렸다.

하나, 그는 몸을 일으키거나 눈을 떠 주위를 살피지는 않았다.

그 한방울의 액체 탓일까? 기이하게도 군무현은 무기력하기만 하던 전신에 새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강렬한 기운이 그의 몸속을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 입을 벌렸다.

하나 이번에는 다소의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러자, ! 다시 한방울의 달콤한 액체가 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이어, ... ...!

그것은 규칙적으로 떨어지며 그의 입 안을 청량하고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의아함과 함께 신기함을 금치못했다.

이제 그는 금방이라도 허공으로 튕겨질 듯 새 힘이 용솟음침을 느꼈다.

그의 전신에는 강력한 잠력이 무섭게 꿈틀거리며 살아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이놈! 정신을 차렸으면 냉큼 눈을 뜨고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돌연 한소리 사나운 호통이 군무현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순간,

“...!”

군무현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군무현, 그가 있는 곳은 천정이 유난히 높은 하나의 동굴이었다.

지금 군무현은 동굴의 바닥에 누워있었다.

동굴. 기이하게도 그 동굴은 사면 벽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온통 기이한 나무 뿌리가 서로 뒤엉켜 벽면을 덮고 있는 기이한 광경.

동굴의 중앙, 넓이 이장 정도 되는 하나의 웅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 웅덩이 속에는 무엇인지 모를 새파란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데,

!”

막 몸을 일으키던 군무현, 그는 일순 대경성을 발하며 눈을 크게 떴다.

웅덩이 속,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오오! 놀라운 모습이었다.

괴인(怪人), 한 명의 괴인이 불쑥 목만 내놓은 채 웅덩이 속에 잠겨 있지 않은가?

그의 모습은 실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제멋대로 자란 허연 백발이 전신을 뒤덮어 마치 수초(水草)에 휘감겨 있는 듯한 괴이한 몰골.

봉두난발이 된 모발 사이로는 귀화같은 안광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실로 절로 간담이 오그라붙는 섬뜩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철석간담을 지닌 인물이라 할지라도 혼비백산하고 말 음산하고 기괴한 풍경이었다.

그때, 웅덩이 속에 잠겨있던 백발괴인이 문득 경악으로 굳어있는 군무현을 주시하며 혀를 찼다.

끌끌... 사내 놈의 담력이 어찌 그 모양으로 보잘 것 없느냐?”

그 말에 군무현은 비로소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순간, 그의 영민한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이내 전후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는 내심 은은한 경악을 금치못했다.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에 당한 상세가 완치되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하나, 군무현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지극히 무표정했다. 이윽고, 그는 괴인을 향해 무심하나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노인장께서 소생을 구하셨습니까?”

백발괴인의 두 눈에 언뜻 한줄기 이채가 스쳤다. 하나, 이내 그는 전율스런 귀광을 번뜩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퉁명하게 대꾸했다.

클클클... 삼십년 간을 이 모양으로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워 네놈을 구했을 뿐이다!”

“...!”

군무현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을만큼 무표정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잃은 것일까? 그의 안색은 차갑고 무심하게 굳어 있었다.

하나, 그는 명가(名家)의 후손이었다. 결코 예의를 모르는 불손한 인물은 아니었다. 군무현은 백발괴인을 향해 정중히 일배를 올렸다.

순간,

치워랏! 마음에도 없는 인사는 받고싶지 않다!”

백발괴인은 눈을 부릅뜨며 버럭 대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강력한 잠력이 뻗어나와 군무현의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

군무현은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굽혔던 허리를 펼 수밖에 없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을 노려보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불쑥 내뱉았다.

구하기는 했으나 괜한 골치만 썩게 되었다!”

그 말에 군무현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소생의... 절맥(絶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는 직감적으로 백발괴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그러자 백발괴인은 뜻밖이라는 듯 오히려 되물었다.

네놈 스스로 절맥(絶脈)을 알고 있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군무현은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괴인은 두 눈을 기이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말해 보아라!”

군무현은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생의 절맥은 천지지간에 가장 양강(陽强)하다는 태양신맥(太陽神脈)입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백발괴인은 기광을 번뜩이며 의미모를 괴소를 지었다.

 

태양신맥(太陽神脈)!

 

일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극양절맥(極陽絶脈). 마치 태양(太陽)이 몸 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지극한 극양지기(極陽之氣)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체질이다.

태음경(太陰經)은 물론 소음경(小陰經)마저도 없는 완전한 극양지체(極陽之體). 이 신맥을 타고난 인물은 오성이 범인(凡人)보다 백배 뛰어난 천고기재가 된다.

하나, 불행하게도 단명(短命)의 운을 함께 타고 태어나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 속의 극양지기는 더욱 강렬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십세가 되면 극양지기는 최고에 이르러 전신 심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가게 되며 결국 목숨을 잃고마는 것이었다.

한데, 군무현! 그가 바로 그 기이한 절맥인 태양신맥(太陽神脈)을 타고 태어 났다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야명주 불빛이 희미하게 밝혀진 동굴 안, 잠시 그곳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것은 백발괴인이었다.

노부는 네놈과 흥정을 하고 싶다!”

그는 퉁명스러운 어조로 불쑥 그렇게 말했다.

“...!”

군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백발괴인을 주시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의 얼굴을 꿰뚫어 볼 듯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흐흐... 네녀석에게는 하늘을 얼려버릴 듯한 엄청난 살기(殺氣)가 뻗힌다. 이는 곧 네녀석에게 불공대천지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순간, 군무현의 무심한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은은한 경악과 함께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 괴인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타인의 마음을 훔칠 지경에 이른 모사(謀士)!)

하나, 그는 내심의 놀라움과는 달리 지극히 냉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백발괴인은 그런 군무현의 심중을 마치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흐흐... 그리고 그 원한은 네 녀석이 이십세(二十歲)가 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도 안다!”

순간,

“...!”

군무현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하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백발괴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백발괴인은 기이한 눈빛을 번뜩이며 군무현을 주시했다.

클클... 노부가 네녀석의 수명을 오년(五年) 더 연장시켜 줄 수 있다고 하면 믿겠느냐?”

군무현은 그 말에 흠칫하며 백발괴인을 마주 주시했다.

순간, 그는 마음의 확신이 섰다.

(이 기인(奇人)이라면...!)

그같은 믿음이 서자 그는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그의 대답에 백발괴인은 괴이한 기소를 터뜨렸다.

클클... 네녀석이 오십(五十)까지만 살 수 있어도 향후 일천년의 중원무림사(中原武林史)가 뒤집혀지고 말 것이다!”

그의 어조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하나, 군무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는 감정이 깃들지 않은 냉담한 어조로 물었다.

소생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간, 백발괴인의 두 눈에 끔찍한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한놈을 노부 대신 죽여라!”

그의 음성에는 엄청난 원한과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일인격살(一人擊殺)! 그것이 전부입니까?”

군무현은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백발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했다.

흐흐... 쉽게 여기지 마라. 그놈은 천하에서 가장 음흉한 놈이다. 또한 백년내에 무적(無敵)으로 통하는 절세고수다! 그놈 일인을 죽이기 위해서는 천하(天下)와 맞서 싸워야 될지도 모른다!”

천하(天下)와 맞서 싸운다...!”

군무현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한줄기 고통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그의 망막에 천하를 상대로 맞서 싸우던 한 거인(巨人)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무현 자신의 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천라지망 안으로 스스로 몸을 내던진 인물, 부친 적룡대제!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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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天魔崖慘劇

 

 

 

환영투도는 안면 가득 분노와 의혹의 빛을 떠올리며 적룡대제를 올려다 보았다.

... 주공!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적룡세가가 불타고 삼천(三千)의 정영들이 참살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느 놈들이...!”

그는 부르르 전신을 떨며 영문을 캐물었다. 그가 잠시 적룡세가를 비운 사이 참화가 밀어닥친 것이었다.

적룡대제의 안면은 고통스럽게 이지러졌다.

음모(陰謀)외다. 어느 작자인가... 적룡세가의 성세를 못마땅하게 여겨 본제(本帝)가 천지십강(天地十强)의 비도(秘圖)를 얻었다고 소문을 낸 것이오!”

그 말에 환영투도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으득... 어느 놈이...!”

그의 두 눈에서는 엄청난 분노의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안색이 대변하여 경악의 음성으로 외쳤다.

주공! 중상을 입으셨군요!”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적룡대제의 상세를 발견한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그런 환영투도를 향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늦었소. 그보다... 주이에 널려있는 적들은 얼마나 되오!”

그 물음에 환영투도는 침중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천(二千)의 강적들이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임해(林海) 주위로 열화신문(熱火神門)이 열화천염대진(熱火天焰大陣)을 치밀하게 펼쳐놓고 있습니다!”

“...!”

적룡대제는 굳은 안색으로 절망의 눈빛을 지었다.

문득, 그는 고통과 연민이 얼룩진 눈으로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애비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잠시나마 적의 눈길을 따돌리는 것 뿐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파파앗!

돌연 그는 들고 있던 적룡검으로 자신의 왼팔을 힘껏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 한소리 둔탁한 음향과 함께 피보라가 확 퍼져올랐다.

환영투도는 적룡대제의 그 갑작스런 행동에 대경함을 금치못했다.

주공!”

그는 경악의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하나, 이미 늦은 후였다. 적룡대제의 왼팔은 그의 적룡검에 싹뚝 베어져 나간 것이었다. 끊어진 그의 왼팔에서는 뚝뚝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그 선혈을 혼절한 군무현의 입속으로 흘려넣었다.

파리한 잿빛으로 물든 군무현의 입술, 그 사이로 선연한 핏물이 주르르 흘러들었다.

적룡대제는 그 모습을 묵묵히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는 만면에 염려의 표정을 짓고있는 환영투도를 주시했다.

환노(幻老)! 무현은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에 당했소!”

순간,

파옥쇄심수!”

환영투도의 안색이 급변했다.

적룡대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무현은... 일각 내에 추궁과혈을 해주어야 하오! 무현을 환노에게 맡기겠소!”

환영투도는 대뜸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안색이 일변했다.

주공! ... 설마...!”

적룡대제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노의 은신술은 당금제일이니... 충분히 임해를 빠져나가리라 믿소!”

그는 신뢰어린 눈빛으로 환영투도를 주시하며 말했다.

순간,

주공...!”

환영투도는 치받치는 오열을 참지못하며 전신을 세차게 경련했다. 그 모습에 적룡대제의 강인한 눈빛이 한 차례 미미한 동요를 보였다.

하나, 곧 그는 한시가 급하다는 듯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천마애(天魔崖)로 가시오! 그곳이라면 적도들도 따르지 못할 것이오!”

“...!”

환영투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그는 말없이 적룡대제를 주시할 뿐이었다.

그 말없는 눈빛 속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격정과 염려, 그리고 비애의 빛이 뒤엉켜 떠올랐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하나, 그 중에는 숨막히는 살기가 팽팽히 깔려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 !”

문득 한소리 나직한 신음성과 함께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군무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 마자 핏자국이 묻은 파리한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님... 환노(幻老)!”

그는 환영투도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의 빛을 지었다.

그때, 적룡대제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군무현을 급히 저지하며 말했다.

무현! ... 들어라!”

, 아버님!”

군무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적룡대제의 표정과 어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엄숙한 신색으로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이 애비가 무림을 살아온 신조가 무엇인줄 아느냐?”

그는 먼저 군무현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의 그 음성에는 일대종사(一代宗師)의 당당한 자부와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군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 또한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나를 건드리면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적룡대제의 입가에 한가닥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나, 그의 얼굴은 이미 산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그를 함락시키고 있었다. 다만, 그는 죽음을 초월한 무서운 의지로 고통에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타는 듯 강렬한 눈빛으로 군무현을 응시했다.

이제 애비의 모든 것을 네게 넘긴다!”

순간,

“...!”

군무현은 세차게 전신을 경련했다. 부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품속을 뒤져 하나의 옥패를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그 옥패를 적룡검과 함께 군무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군무현은 보았다. 부친 적룡대제의 피로 흥건히 물든 어깨를... 왼쪽 팔이 싹둑 잘려져 나간 그의 어깨는 끔찍하게도 피투성이었다.

“...!”

그것을 본 군무현은 부르르 몸을 떨며 전율했다. 그의 눈빛은 처절한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졌다.

하나, 그는 입술을 짓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삼켰다.

이어,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적룡검과 옥패를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적룡대제의 두 눈에 자랑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이 속에 애비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

군무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가슴이 메어질 듯한 슬픔을 느끼며 소리없이 오열했다.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단장의 아픔이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군무현, 그는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절맥(絶脈)을 타고난 몸이었다. 그런 반면, 그는 지극히 영민하여 그 지혜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그런 군무현이 부친 적룡대제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

(아버님은 살신성인(殺身成人)하실 생각이다!)

부친의 그런 의도를 짐작한 그는 처절한 비애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적룡대제 군천휘, 그 또한 군무현의 내심을 읽고 있었다. 하나, 그는 강인하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결코 감정을 경솔히 드러내지 않는 인물, 그는 엄숙한 안색으로 군무현을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잊지마라! 삼천(三千)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이 너 하나를 위해 웃으며 죽어 갔다는 것을...!”

그는 강인한 어조로 힘주어 말했다.

그 말을 마침과 함께,

!”

한 소리 웅후한 장소성과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튀듯이 날아올랐다.

이어, 파 앗!

그의 몸은 당겨진 화살처럼 허공으로 폭사되어 갔다.

그 순간,

나왔다!”

적룡대제다!”

쏴라!”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일제히 분분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 쐐 액! 화르르... ! !

수천 송이의 불길이 일제히 적룡대제의 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 그것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일시에 허공에는 찬란한 불꽃이 작렬하듯 터져올랐다.

뒤미처, ! 콰르르릉...!

천붕지열의 굉음이 천지를 들썩 뒤흔들었다.

오오... 보라! 적룡대제 군천휘!

그의 몸은 한순간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산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순간 그의 몸은 한줌의 재로 화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살신성인(殺身成人)! 이토록 무참히, 흔적도 없이 한순간에 재로 사라지는 것으 그 숭고한 희생의 대가란 말인가?

그것은 너무나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주공...!”

환영투도는 적룡대제 군천휘의 장렬한 최후를 지켜보며 피를 토하듯 오열했다.

“...!”

군무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신은 벼락을 맞은 듯 연신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나, 그는 필사적으로 입술을 악물며 오열을 짓씹어 삼켰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엄청난 슬픔과 충격! 부친의 장렬한 최후는 그의 가슴에 피멍을 맺히게 했다.

있는 힘을 다해 악다문 그의 입술은 처참하게 터져 선혈이 흘러내렸다.

, 지금 그의 두 눈에는 피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혈루(血淚), 그것은 통한의 혈루였다.

아아... 아버님이시여!

군무현은 으스러져라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긴 것일까? 잔뜩 핏발이 선 그의 두 눈은 엄청난 원한과 분노의 광휘로 번뜩이고 있었다.

어쩌랴? 이제 십사세에 불과한 어린 소년 군무현, 그는 실로 감당치 못할 너무도 크나큰 한()을 짊어지고 만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찾아랏!”

적룡대제의 시신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열쇠가 있을 것이다!”

와아!”

사방에서 수천 명의 군웅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벌떼같이 덮쳐들었다.

그 순간,

소주(少主)! 노복이 모시겠습니다!”

환영투도가 비감어린 음성으로 말하며 군무현의 허리를 굳게 끌어안았다.

말과 함께, 스스스... 그는 기민하게 몸을 움직여 장내를 빠져나갔다.

군무현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잊지 않는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아버님을 시해하고 적룡세가를 무너뜨린 자들... 반드시 그 천만배로 갚아 주리라!)

그는 두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며 다짐했다. 일생을 다해도 결코 잊지못할 철천지한(徹天之恨).

처절하고도 뿌리깊은 원한이 어린 그의 가슴에 깊이깊이 심어지고 있었다.

 

X X X

 

천마애(天魔崖).

 

대파산의 제일험지(第一險地). 세인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천고절지(天古絶地)였다.

천마애는 사시사철 온통 시커먼 묵운(墨雲)으로 휩싸여 있다. 짙은 공포와 암울한 신비가 어려있는 곳, 천마애의 진실된 모습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문득, 스스슥...!

스산한 음풍을 타고 하나의 인영이 천마애로 날아내렸다.

천험절지의 암울한 침묵을 깨며 날아든 인영, 일노일소(一老一少)! 바로 군무현을 안은 환영투도였다.

! 환영투도는 신형을 멈추며 앞을 노려보았다.

(저 묵기(墨氣)는 진세(陣勢)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천마애에 가공할 절진(絶陣)이 쳐져 있다는 것이 사실이었군!)

그는 형형한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결연한 신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소주(少主)를 숨길 수 있는 곳은 오직 저곳밖에 없다!)

결심한 순간, 그는 축 늘어진 군무현을 안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넘쳐 흘렀다.

(소주...! 천마애의 절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나... 적도들의 마수(魔手)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니...!)

그는 측은한 연민의 눈빛으로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이럴 줄 알았다!”

돌연 한소리 싸늘한 일성이 환영투도의 귓전을 울렸다.

순간,

!”

환영투도는 대경하며 홱 돌아섰다.

그런 그의 삼장 앞, 언제였을까?

한 명의 백의노인이 유령같이 우뚝 서 있었다.

고아한 용모에 신선같은 풍모를 지닌 노인, 귀밑까지 늘어뜨린 허연 백미(白眉)가 무척 특이한 인상을 풍겼다.

환영투도는 홀연한 백의노인의 등장에 내심 경악을 금치못했다.

(나의 이목을 속이는 자가 있다니...!)

환영투도! 그가 누군가?

천하(天下)가 알아주는 경공의 대가가 아닌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의노인이 지척까지 접근하도록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환영투도는 절로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귀하는 누구요?”

환영투도는 백의노인을 노려보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백의노인은 기품있는 용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흐흣! 알 필요 없다! 네놈은 곧 죽게 될테니까!”

그자는 음산한 눈빛을 번뜩이며 일축했다.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환영투도를 향해 다가섰다.

“...!”

환영투도는 일순 이마에 땀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 주공에 못지않은 강자다. 노부의 상대가 아니다!)

그는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리며 백의노인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두 눈에 엄청난 살광이 번쩍 폭사되었다.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이 모두가 네놈의 짓이었군!”

그는 부르르 몸을 떨며 찌렁한 분노의 폭갈을 내질렀다.

백의노인. 그 자를 일견한 순간 환영투도는 직감적으로 눈앞의 백의노인이 음모(陰謀)의 원흉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와 함께, 그는 축 늘어져 있는 군무현을 향해 급히 전음을 보냈다.

소주! 노복이 저자를 막을 동안 천마애로 들어가십시오! 위험을 벗어나시면 천중산(天中山) 자하곡(紫霞谷)으로 가십시오! 그곳에 원수를 갚기에 충분한 무공비급들이 있습니다!”

“...!”

군무현의 창백한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그때, 백의노인은 음흉한 음소를 흘리며 바짝 환영투도의 앞으로 다가섰다.

풀을 뽑을 때는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법!”

그 자는 냉혹하고 음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우르릉!

그 자의 소매에서 돌연 산악같은 경기가 쏟아져 나왔다.

환영투도는 질끈 입술을 악물었다. 이어, 그는 군무현을 바라보며 결연한 음성으로 전음을 보냈다.

소주! 가십시오!”

말을 마침과 함께, 휘 익!

그는 안고있던 군무현을 그대로 천마애의 자욱한 운무 속으로 힘껏 집어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 갑작스런 사태에 백의노인은 낭패함을 금치못했다.

이런... 여우같은 놈!”

그자는 안면을 흉측하게 이지러뜨리며 폭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쉬 익!

그 자는 벼락같은 기세로 허공으로 날아가는 군무현을 낚아채려 했다.

하나,

어딜!”

위 잉! 콰르릉... !

환영투도가 황급히 장을 내질러 백의노인을 막아섰다. 그의 소매에서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경기가 섬전처럼 폭사되었다.

백의노인은 대노하며 발을 굴렀다.

교활한 도둑놈!”

우웅!

그자는 노기충천하여 맹렬히 우장을 휩쓸어냈다. 그러자, 그의 우수가 돌연 새파랗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환영투도는 흠칫하여 눈을 부릅떴다.

... 천강쇄옥수! ... 네놈은...!”

그는 경악과 불신의 눈빛으로 백의노인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콰쾅! 백의노인의 새파란 우수가 여지없이 환영투도의 가슴을 가격했다.

직후,

크 악!”

환영투도의 처절한 비명이 천마애를 울렸다.

그는 무참하게 가슴이 박살난 채 가랑잎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 직후, ! 백의노인은 환영투도의 생사(生死)를 살피지도 않고 다급히 천마애로 뛰어들었다.

하나, 군무현의 모습은 이미 천마애의 자욱한 묵운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백의노인의 청수한 안면은 보기싫게 이지러졌다.

이런 낭패가...!”

그자는 길게 뻗은 백미를 부르르 떨며 발을 굴렸다.

이윽고, 그 자는 체념의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 자의 얄팍한 입꼬리에 한 가닥 음흉한 음소가 떠올랐다.

개운치 않지만...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천마애에 접근했다가 살아난 자는 아무도 없으니...!”

그 자는 음산한 눈을 번뜩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어, 스스스... 그 자의 신형은 유령같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 명의 장렬한 의혈(義血)이 뿌려진 천마애. 천고의 침묵 속에 잠긴 천마애는 여전히 무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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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 章

 

                    悽絶父情

 

 

 

 

적룡대제는 있는 힘을 다해 벼락같이 적룡검을 휘둘렀다.

가랏!”

츠츠츠읏!

한소리 찌렁한 폭갈과 함께 눈부신 검기가 해일같이 금붕천왕(金鵬天王)을 휩쓸어 갔다.

다음 순간, 콰콰쾅! 콰릉...

크 악!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듬과 함께 붕조의 처절한 괴성이 터져올랐다.

그와 동시에,

크윽!”

적룡대제는 무서운 폭풍에 휘말려 십 장 밖으로 거칠게 튕겨져 나갔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실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의 복부는 길게 찢어져 시뻘건 내장과 검붉은 핏물이 마구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금강지체(金剛之體)에 가까웠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붕의 사나운 발톱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었다.

그때, 구워억! 콰아아...!

고통스러운 붕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르는 금붕의 몸에서도 무지개같은 혈무가 확 퍼져올랐다.

금붕의 거대한 한쪽 날개, 그것이 적룡검의 검기에 처참하게 짓이겨진 것이었다.

그때,

흐흐... 적룡대제! 다시 오마!”

허공으로 떠오른 금붕천왕은 지면을 내려다보며 음산한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그와 동시, 콰르르... 쐐 액!

그 자는 부상을 입은 금붕을 타고 벼락같은 기세로 남()으로 방향을 잡아 날아갔다.

하나 그 순간, 적룡대제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치솟았다.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는 이를 갈며 안고있던 군무현을 눈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킴과 함께 수중의 적룡검을 단전(丹田)에 붙였다.

다음 순간,

죽어랏! 적룡검강!”

푸 학! 적룡대제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짐과 함께 적룡검이 한 무더기 광채로 화해 허공을 향해 폭사되었다.

직후, 케에 엑!

처절하고 날카로운 금붕의 비명이 허공을 뒤흔들며 터져올랐다.

파파파앗! 번갯불이 몰아치는 듯한 엄청난 광채와 함께, 섬뜩한 피보라가 일순 산지사방으로 확 퍼져 올랐다.

보라! 거대한 금붕의 강철같은 오른쪽 날개는 흔적도 없이 싹둑 잘려져 나가버리고 없었다.

이어, 쐐 액!

금붕천왕을 태운 금붕은 남쪽 골짜기 너머로 내리 꽂히듯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쉬학!

적룡검이 번쩍 검광을 폭사하며 다시 적룡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

... !”

적룡대제는 미처 검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뒤로 휘청 물러서며 허리가 꺾여 졌다.

진기가 끊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파파앗! 적룡검도 급격히 방향을 잃고 허공에서 뚝 떨어지며 눈 속에 푹 박혔다.

적룡대제, 그의 안색이 일순 고통과 함께 당혹함으로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 진기가 이어지지 않다니... 한 번 더...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크윽!”

그는 입술을 악물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이어, 바닥에 내려놓은 군무현과 함께 적룡검을 집어들었다.

그의 형상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상처는 완전히 치명상이었다.

그의 심장 부근, 늑대의 이빨같은 낭아표(狼牙剽)가 다섯 개나 찍혀 있었다.

그것도 모두 사혈(死穴)에만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뿐인가? 그의 복부는 처참하게 찢겨 끊어진 내장이 연신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실로 그런 상태로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 적룡대제는 자신의 상처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핏발선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갈았다.

금붕천왕(金鵬天王)...! 그 놈을 일검(一劍)에 죽이지 못했으니... 곧 놈들이 개미떼같이 몰려오리라!”

그의 강직한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의 빛이 떠올랐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육신, 그대로 주저앉으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릴 듯하다.

하나, 그는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적룡대제는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아들 군무현을 내려다보며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질끈 악물었다.

백짓장같은 얼굴로 혼절해 있는 군무현, 그를 내려다보는 적룡대제의 심정은 칼로 저미는 듯 쓰라리고 아팠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힘겹게 다리를 끌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설원은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그의 선혈은 끝없이 백설을 적시고 있었다.

하나, 적룡대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천근같은 몸을 끌며 계속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스스스... 걸음마다 피가 고이는 혈로(血路).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적룡대제는 마침내 아득한 설원을 지나 하나의 작은 구릉을 넘어섰다.

그러자, 눈앞에 갑자기 울창한 송림이 나타났다. 태고 이래 인적이 닿지않은 은밀한 절지(絶地).

울울창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길을 찾아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송림 앞에 이른 적룡대제, 그의 두 눈에 비로소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 이곳이 대파산(大巴山) 제일의 험지(險地)인 천마애(天魔崖) 앞의.... 임해(林海)...!”

그의 목소리가 떨림을 띠며 두 눈에 생기가 감돌았다.

천마애(天魔崖)까지 가면... 놈들도 추격을 못할 것이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나 문득, 그의 강직한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육신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천만(千萬)의 적()이라도 결코 피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적룡대제의 신조(新條)였다.

한데, 지금 그는 어떤가? 적을 피해 등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적룡대제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현... 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다!)

적룡대제는 스스로 그렇게 자위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 자신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색(死色)이 완연했다.

하나, 그는 게의치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 지금 적룡대제의 뇌리 속에는 오직 아들을 살리려는 일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처절한 고통도, 일생(一生)을 통해 굳게 지켜온 신조마저도 과감히 버렸다.

군무현!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이윽고, 적룡대제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균형을 잃어 불규칙한 걸음걸이, 하나 그는 계속 걸었다.

필사의 의지와 신념으로, 마침내 그는 울창한 송림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그 순간,

(!)

그는 움찔하며 전신이 굳어졌다.

(적이 이미 와있다!)

그는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끼며 내심 부르짖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을 검날 위에서 살아온 그의 직감이었다.

(). 살기어린 형형한 눈빛, 적룡대제는 수백 개의 살기어린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나, 스슥...! 그는 잠시 주춤했을 뿐 발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 송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멈추면... 덤벼들 것이다!)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긴장된 눈빛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삐 익! 돌연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송림 속을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크르릉... !

사나운 울부짖음과 함께 시뻘건 그림자들이 질풍같이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 놀라운 일이었다.

돌연히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드는 시뻘건 그림자, 그것은 호랑이만큼 거대한 체구의 시뻘건 핏빛 늑대의 무리가 아닌가?

적룡대제는 흠칫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혈랑천왕(血狼天王)! 네놈이냐?”

그는 대갈일성하며 홱 돌아섰다.

그 순간, 츠츠츠읏! 스 악!

가공할 검기가 그의 주위로 무지개를 일으키며 확 퍼져올랐다.

직후, 크 악! 케에엑!

삽시에 수십마리의 혈랑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그놈들은 모두 목이 절단된 채 피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하나, 혈랑떼는 두려움 따위는 모르는 듯했다.

크르릉... ! !

그놈들은 시뻘건 이를 쩍 벌리며 흉폭한 기세로 재차 적룡대제를 향해 덮쳐들었다.

혈랑의 몸뚱이는 쇠보다 질긴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다. 따라서, 보통의 보검으로는 상처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단단했다.

하나, 위 잉! 콰자작 콰릉...!

적룡대제의 신위는 가히 눈부실 정도였다.

케엑! 끄륵... 크악!

그의 적룡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호랑이만한 거대한 체구의 혈랑떼가 마치 썩은 짚단처럼 나뒹굴었다.

그와 함께, 역겨운 짐승의 피가 송림을 붉게 물들었다.

츠츠읏... 번 쩍!

적룡대제는 계속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필사적인 대항이었다. 그는 점차 손에 힘이 빠짐을 느끼고 있었다.

(큰일이다. 다시... 진기가 막힌다. 더 이상 공격이 계속되면...!)

그의 내심은 온통 초조와 절박감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삐 익!

재차 한차례 날카로운 호각성이 적룡대제의 귓전을 찢었다.

그러자, 크르르... 우 우!

혈랑떼는 그 즉시 공격을 멈추고 마치 썰물이 빠지듯 일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실로 뜻밖의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적룡대제는 그 모습에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위, 백여마리가 넘는 혈랑의 시체들이 끔찍한 형상으로 널려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일단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이미 임해(林海)는 천라지망으로 뒤덮여 있으니...!)

그의 안색은 무겁게 굳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콰르릉 콰쾅!

갑자기 적룡대제의 전면에서 거창한 폭음이 짓터져 올랐다.

순간,

!”

적룡대제는 군무현을 안은 채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직후, 화르르!

그의 전면 십장이 강렬한 화기(火氣)에 휩싸이더니 삽시에 주위의 송림들이 한줌의 재로 화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에 적룡대제는 낭패함을 금치못했다.

(가장 골치아픈 열화신문(熱火神門)의 놈들까지...!)

그의 안색은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바로 그때, 파 앗! 송림 위로 다시 몇 개의 주먹만한 구슬이 날아들었다.

순간, 스슷! 적룡대제의 신형이 눈부시게 움직였다.

차 핫!”

그는 대갈일성하며 일시에 삼십 장 밖으로 물러섰다. 그것은 실로 기쾌무비하기 이를 데 없는 몸놀림이었다.

그 직후, 콰쾅! 화르르르...

가공할 폭음이 들썩 송림을 뒤흔들며 적룡대제가 서 있던 곳이 무참하게 박살났다.

스슥! 적룡대제는 그 순간을 틈타 삽시에 백여장을 쏘아나갔다.

하나,

크윽!”

콰당! 너무 급박한 나머지 그는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군무현을 안은 채 거칠게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고통과 함께 낭패함으로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으윽... 틀렸는가?”

그는 주먹만한 선혈을 한모금 울컥 토해냈다.

이어, 그는 입술을 악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군무현, 그의 얼굴은 완전히 사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본 적룡대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을 느꼈다. 그는 급히 군무현의 심맥을 짚어보았다.

순간, 그의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 큰일이다.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의 기운이 심장에 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두면...!)

그는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문득, 그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내 피를 먹이는 수밖에... 내 피속에는 만년설삼(萬年雪蔘)의 영기(靈氣)가 흐르고 있으니...!”

적룡대제! 그는 젊었을 때 한 뿌리의 만년설삼(萬年雪蔘)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

만년설삼의 영효는 실로 뛰어난 것이었다. 그것을 복용한 덕분에, 적룡대제는 나이 채 사십(四十)이 못되어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명예로운 권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만년설삼을 복용한 그의 피는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영약과 마찬가지의 효력을 지녔다.

이윽고, 적룡대제는 망설임없이 번쩍 적룡검을 쳐들었다.

아아... 부정(父情)!

부정은 뜨겁고도 처절한 것이었다. 적룡대제는 질끈 입술을 악물며 적룡검으로 거침없이 자신의 왼손을 내리치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우르릉! 돌연 은은한 진동음과 함께 주위의 지면이 기우뚱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순간,

(!)

적룡대제는 안색이 대변했다.

(누군가 땅 속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급히 신형을 바로 잡으며 긴장된 눈빛으로 적룡검을 고쳐쥐었다.

바로 그때, 파파파팍!

지면의 흙이 팍 터지며 한 명의 인물이 불쑥 흙덩이를 뚫고 치솟아 올랐다.

적룡대제는 그 인영을 향해 사력을 다해 적룡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나 문득, 그의 안색이 급변하며 경악의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환노(幻老)!”

그는 눈을 부릅뜨며 발 아래를 주시했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뚫고 나온 인물, 그는 뜻 밖에도 적룡대제의 적이 아니었다.

적이 아닐뿐더러 그가 가장 신임하고 가깝게 여기는 인물이 아닌가?

백의노인, 그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 결코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백의노인은 만면에 격동의 빛을 감추지 못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주공(主公)!”

그는 적룡대제의 앞에 털석 무릎을 꿇었다.

적룡대제, 그의 안면에 부르르 격동의 떨림이 일었다.

환노(幻老)! 그대가...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구려!”

그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백의노인의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환영투도!

 

그는 이미 일백년(一百年)을 살아온 대신투였다.

역용(易容), 은신(隱身), 신투술에 있어 천하제일로 꼽히는 인물. 그는 배짱 또한 놀란만큼 두둑하여 황궁보고(皇宮寶庫)를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인물이었다.

적룡대제와 환영투도,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진 것은 삼년(三年)전이었다.

적룡대제는 우연히 죽어가던 환영투도를 구해주게 되었다.

그 당시, 환영투도는 황궁(皇宮)에 숨어 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황실제일인(皇室第一人)인 금령천존(金靈天尊)과 맞닥뜨려 크게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결국, 적룡대제는 환영투도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었다.

그후, 환영투도는 적룡대제를 주인(主人)으로 모셨다.

적룡대제, 그가 천하제일의 문파 적룡세가(赤龍勢家)를 이루는 데는 환영투도의 보이지 않는 공로가 지대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유대관계는 지극히 밀접했다. 환영투도는 진심으로 적룡대제를 주공(主公)으로 받들어 섬겼다.

적룡대제 또한 그런 그를 가장 믿고 신임했다. 그는 적룡세가의 모든 대소사(大小事)를 환영투도와 더불어 의논해왔다.

한데, 죽음의 위기에 몰린 적룡대제, 그의 앞에 뜻밖에도 그 환영투도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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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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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쫓기는 父子

 

 

 

사천(四川) 검운산(劍雲山)!

 

하나의 웅장하고 거대한 성보(成堡)가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천하를 굽어 호령하며 위세당당한 기세로 우뚝 선 무적(無敵)의 철옹성!

 

적룡세가(赤龍勢家)!

 

오오...! 그 이름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당금무림의 최강문파, 사천(四川)에서 일어나 호남(湖南), 호북(湖北), 섬서(陝西)를 완전히 장악한 거대패세(巨大覇勢)가 바로 그들이었다.

백도무림(白道武林)의 위대한 투혼을 기치로 일어선 그들은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이 그 기세가 날로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나는 새조차 떨어뜨릴 듯한 드높은 위명의 적룡세가(赤龍勢家)! 그 누구도 적룡세가에 대적하려들지 않았다.

명실공히 천하거봉(天下巨峯)으로 우뚝 선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한데,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보라! 화르르르...! 콰르릉... 쿠 쿵!

화마(火魔)! 거대하고 웅장한 적룡세가(赤龍勢家) 전체는 지금 온통 시뻘건 화마의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콰콰쾅 우르릉... 천지겁멸의 장이 열리는가?

엄청난 폭음과 화마 속에 적룡세가는 통째로 붕괴되고 있었다.

아아... 누가 있어 당금무림의 최강문파인 적룡세가를 괴멸시킨단 말인가? 실로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무적(無敵)의 절대패세(絶代覇勢)! 천하대세(天下大勢)의 한 획을 긋는 거대패세가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만물이 잠든 깊은 밤에... 그것은 철저하고 뿌리깊은 거대한 흑암(黑暗)의 꿈틀거림과 함께 시작되었다.

 

X X X

 

대파산(大巴山)!

 

섬서성에 연한 사천(四川) 변경의 험산(險山). 천년(千年)의 장구한 세월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해온 처녀지(處女地).

사시사철 산허리를 휘감아 흐르는 자욱한 안개와 함께 태고의 신비가 구비구비 서린 심산(深山)이었다.

겨울(). 대파산 전체는 온통 흰 눈에 뒤덮여 있었다.

건곤일색! 사위는 온통 눈부신 백색(白色)의 설경(雪景)으로 덮여 신비롭고 평화롭기 이를데 없었다.

어둠, 그 눈부신 백설 위로 짙은 어둠이 쌓이고 있었다.

하나, 찬란한 설광(雪光)은 어둠마저 흰빛으로 물들여 주위는 마치 불을 밝힌 듯 환했다.

한데, ! 혈점(血點)! 희디흰 설원에 너무도 철저하도록 붉고 선명한 혈흔(血痕)이 얼룩져 있지 않은가?

그 혈흔은 실로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점점이 이어지는 핏자국, 누가 어둠 속의 설원에 선혈을 뿌린 것일까?

하나, 기이한 일이었다. 눈 위에 시뻘건 핏자국은 선명히 남아있건만 피를 흘린 이의 발자국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휘이이잉...! 스스스...

바람이 분다. 뼈를 저미는 매서운 설풍(雪風).

그 설풍이 휩쓸고 지나는 설원으로 붉고 처절한 핏자국은 점점 크고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선홍의 혈흔은 손바닥만하게 커지며 그 간격이 점점 더 좁아진다.

게다가, 어느 시점, 모락모락 뜨거운 김까지 피어오르지 않는가? 피를 흘린 자의 체온이 그 혈흔 속에 배어있음이다.

문득,

... 무현(武玄)! 잊지마라! 잊어서는 아니된다!”

처절한 한()과 분노가 서린 한소리 중얼거림이 설원을 울렸다.

! 보인다.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어 혈인(血人)이 된 한 명의 인물이 어둠 속의 설원을 가로지르고 있지 않은가?

스스스... 눈덮인 설원을 바람처럼 지나는 인물, 끔찍했다.

그는 처참하게도 일신에 무려 칠백여 군데의 상처를 입은 모습이 아닌가?

그 혈인(血人)이 설원을 스쳐 지날 때마다 희디흰 설원에는 새빨간 선홍의 무늬가 아로새겨졌다.

얼마나 그렇게 달려온 것일까?

간신히 몸을 날리고 있기는 했으나 혈인(血人)은 몹시 지친 듯 연신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의 걸음걸이는 갈수록 불규칙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듯 위태로운 모습,

하나, 스슥...!

보라! 혈인의 발은 바닥에 닿지 않을 뿐 아니라 설원의 두치 위를 떠가고 있었다.

답설무흔(踏雪無痕)! 그 지고무상한 경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데, 그때였다.

... 잊지 않습니다... 소자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끊어질 듯 미약한 소년의 음성이 혈인의 말에 대꾸해 왔다.

희미하게 꺼져 들어가는 극히 무기력한 음성, 하나, 그 힘없는 음성 속에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철천지한(徹天之恨)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 그러고보니 혈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왼팔, ! 한 명의 소년이 축 늘어진 채 힘없이 안겨있지 않은가?

이제 십사오세 정도 되었을까? 백짓장같이 창백한 안색에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하나, 소년의 용모는 놀랍도록 준미했다.

특히, ()! 소년의 두 눈은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깊숙하고 신비한 가운데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 그의 두 눈은 싸늘한 검날 위에 빛나는 은은하고 투명한 달빛, 그것이었다.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못할 신비하고 인상적인 소년의 두 눈, 그것은 차라리 마력적인 신비(神秘)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소년을 안은 채 설원 위를 치달리고 있는 혈인(血人).

그의 두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와 원한, 그리고 엄청난 격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 그의 호목(虎目)은 찢어질 듯 한껏 부릅떠져 있었으며 붉은 입술은 피가 나도록 꽉 짓깨물고 있었다.

지금 그는 통한의 음성으로 소년에게 거듭 당부하고 있었다.

그렇다! 잊으면 안된다. 비명(非命)에 쓰러진 삼천(三千)의 적룡지혼(赤龍之魂)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년의 여인처럼 붉은 입술도 꽉 깨물려 선렬한 피가 흘러 내렸다.

그는 비분에 찬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 천지가 뒤집혀도... 소자 군무현(君武玄)은 적룡세가(赤龍勢家)의 삼천정영(三千精英)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아!

적룡세가(赤龍勢家)!

적룡세가라 했던가? 당금무림의 최강문파인 적룡세가가 바로 혈인의 가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적룡대제(赤龍大帝) 군천휘(君天輝)!

 

한 자루 적룡검(赤龍劍)으로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보좌를 차지한 일대영웅(一代英雄)! 그는 바로 적룡세가(赤龍勢家)의 당대가주였다.

백년 전 우내사천황(宇內四天皇) 이래 최강(最强)으로 불리는 절대검제(絶代劍帝), 그의 검법은 당대 무적(無敵)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사천(四川) 검운산(劍雲山) 정상에 차리한 적룡세가, 그곳에서 무적의 적룡검사(赤龍劍士)들을 호령하고 있어야할 적룡대제(赤龍大帝) 군천위.

그가 어찌 이같은 처참한 모습으로 심야에 대파산을 넘고 있단 말인가?

 

군무현(君武玄)!

 

이것이 적룡대제의 품에 안긴 소년의 이름이었다.

적룡대제가 목숨보다 더 아끼는 그의 외아들.

지금 그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문득, 혈인 적룡대제의 강직한 얼굴에 절박한 표정이 떠올랐다.

(큰일이다. 절맥(絶脈)을 지니고 태어나 허약할대로 허약한 데다가 파옥쇄심수(破玉碎心手)를 맞았으니...!)

그는 초조한 눈빛으로 소년 군무현을 내려다 보았다.

군무현,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불그스름한 수인(手印)이 꾹 찍혀 있었다.

그는 지금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그의 조각같이 준미한 얼굴에는 차츰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적룡대제의 안색은 처참하게 이지러졌다.

문득, 그의 부릅떠진 두 눈에서 엄청난 살광이 폭사되었다.

으득... 쇄심선자(碎心仙子)! 무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네년은 나 적룡대제의 검() 아래 천참만륙 당하리라!”

그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그때,

... 잊지 않습니다... 소자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군무현은 파리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힘없이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나, 그런 그의 시선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절박한 심정을 금치못했다.

안된다! 눈을 감지마라, 무현! 잠들지 말라!”

그는 아들 군무현을 세차게 흔들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하나 어쩌랴! 군무현의 눈빛은 점점 아득하게 흐려지기만 했으니... 이미 그의 두 눈에는 죽음이 깃들고 있었다.

무현! 무현!”

적룡대제는 비통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아아... 처절한 부정(父情)이여...!

그의 상세 또한 심각하기 이를데 없어 지금 그는 골수를 쪼개는 처절한 고통에 짓눌리고 있었다.

하나, 어찌 자신의 고통쯤이 문제이랴?

아들(). 자신이 목숨보다 아끼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적룡대제는 가슴이 뽀개지는 듯한 고통을 무릅쓰고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스슥! 그가 몸을 날릴 때마다 설원 위에는 시뻘건 혈화(血花)가 어둠이 무색할 정도로 선명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파파팍! 돌연 눈앞에 번쩍 광채가 작렬했다.

그와 동시에, 찬란한 금광(金光)이 적룡대제를 향해 벼락같이 날아 꽂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

적룡대제는 눈을 부릅뜨며 신형을 휘청했다.

! 어느새 한 자루 금빛의 강전이 그대로 적룡대제의 어깨를 관통한 것이 아닌가?

금붕강전!”

그는 노갈을 터뜨리며 홱 돌아섰다.

그 순간, 끄 악! 쐐액!

허공을 쥐어뜯는 흉측한 괴성과 함께 적룡대제의 전면으로 한 마리 거대한 금빛의 거조(巨鳥)가 내리박히듯 쇄도해 들어왔다.

오오!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콰르르... 콰쾅!

금빛의 거조(巨鳥)! 그것의 날개짓에 주위 십장 방원이 삽시에 초토화되어 버렸다.

찰나지간 거조의 금빛 그림자는 천지를 메우듯 사위를 뒤덮었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적룡대제는 눈을 부릅뜨며 노갈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파 앗! 그의 신형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직후, 콰르릉... 콰콰 쾅!

천번지복의 가공할 폭음이 들썩 장내를 뒤흔들며 터져올랐다.

츠츠츠... 쉬 잉!

장내를 온통 휩쓸며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보라.

그 가운데, 카 악! 거조의 날카로운 괴성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하나, 쐐 액! 십장의 거대한 붕조(鵬鳥)는 한차례 휘청 거구를 비틀거렸으나 이내 쏜살같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광경에 적룡대제는 분노를 금치못했다.

감히 여기까지 쫓아 오다니...!”

그의 두 눈에 번쩍 살광이 폭사되었다.

그때, 휘르르... 파파앗!

적룡대제의 주위로 무수히 잘려진 붕조의 찬란한 금우(金羽)가 어지럽게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크윽...!”

적룡대제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신형을 휘청했다.

그런 그의 가슴, 실로 끔찍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의 가슴 부분은 처참하게 짓이겨져 허연 늑골이 드러나 보였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엄청난 중상.

하나, 적룡대제는 핏발선 호목(虎目)을 부릅뜬 채 무섭게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때, 콰콰콰... 쐐액!

금붕(金鵬)의 거대한 거구가 다시 적룡대제를 향해 벼락같이 짓쳐들었다.

그런 금붕의 등 위, 한 명의 위풍당당한 체구의 금포노인이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자는 한 자루 강궁을 쳐든 채 적룡대제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으하하! 적룡대제! 이번에는 심장을 갈라 주겠다!”

금포노인은 득의의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적룡대제는 이를 악물며 신형을 부르르 경련했다. 그런 그의 두 눈에서는 줄기줄기 원한과 분노의 광망이 치뻗쳤다.

그는 허공을 노려보며 찌렁찌렁한 음성으로 외쳤다.

금붕천왕(金鵬天王)! 양단을 내주리라!”

다음 순간, 쩌 엉! 그의 손에 한 자루 눈부신 장검(長劍)이 들려졌다.

아아!

 

적룡검(赤龍劍)!

 

그 장검은 바로 적룡검(赤龍劍)이 아닌가?

무적제황검(無敵帝皇劍)!

적룡검의 검신(劍身)은 마치 홍옥처럼 서늘하고 투명해 보였다.

그 투명한 검신, 한 마리 비등하는 용()의 문양이 너무도 정교하고도 웅장한 자세로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다.

적룡검을 뽑아드는 순간 눈부신 보광(寶光)과 함께 수천가닥의 날카로운 예기가 숨통을 조일 듯 뻗어나왔다.

오늘의 적룡대제를 있게 한 신검(神劍)!

 

적룡대제, 적룡검을 든 채 우뚝 선 그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태산(泰山)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콰르르릉! 쐐 액!

다시 금붕의 그림자가 장내를 가득 뒤덮으며 거대한 금붕이 위맹한 기세로 적룡대제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와 함께, 파 앗!

섬뜩한 파공성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하나의 금붕강전이 섬전같이 적룡대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위기일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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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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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무려 39년 전에 쓴 작품입니다. 20대 초반, 중2병의 흔적이 남아있을 시절에 쓴 글입니다. 실소가 나오는 설정과 표현이 있더라도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序 文

 

 

 

봄(春), 봄(春), 봄(春)!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사실 드디어... 라는 말이 싱거울 정도로 지난 겨울의 동장군은 위세가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월동용 품장사들이 망했다고 아우성을 치겠습니까? 그러나 어쨌든 겨울은 겨울이었고, 누구나 봄날의 따사로움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계절의 순환은 무상하되, 또한 속임도 없는 법, 이윽고 봄날의 자비로움이 우리곁에 이르렀습니다.

봄은 실로 생명의 터라고 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닐런지...!

많은 인간들이 새봄과 함께 가슴 벅찬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세상만사는 결코 화사한 봄빛만도ㅛ 아닙니다. 물가는 오르고, 정치판은 개판이 된지 오래며, 수많은 부조리가 우리 주위에서 난리를 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숨막힐 듯한 절망감에 인간들의 눈에는 핏발이 맺히고 절로 공격적이 되어 버립니다.

인심은 흉흉하고 가슴을 따스하게 해줄 미담이 실로 절실한 때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또 계절은 변합니다.

희망의 싹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이봄의 환희를 만끽합시다.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 탓하지 마시고 피곤하고 염증나는 이 세상의 일일랑 본졸저(卒著)와 함께 잊어주십시오.

그것이 비록 찰나의 짧은 환각이 될지라도...!

끝없는 독자제현의 애정과 관심이야말로 졸저자 와룡강으로 하여금 좀더 나은 작품을 쓰도록 다그칠 수 있는 채찍입니다. 그러면 와룡모모도 독자제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이 봄의 화기(和氣)를 함께 나누길 바라며,

道峯山下 臥龍小屠에서 臥龍岡 拜上.

 

 

 

 

序 章

 

風雲武林의 序

 

 

 

무림개사(武林開史) 오천년(五千年)!

수없이 많은 전설(傳說)과 신화(神話)가 역사 속에 명멸해 갔다. 대부분의 전설이나 신화는 잠시 무지개를 쫓는 허황된 꿈과 야망(野望) 속에 존재하다가 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하나, 그 가운데 가장 무림인의 뇌리에 뿌리깊게 살아온 전설이 있었으니... 그것은 무림인들의 최대 최고의 이상이며 꿈에라도 그리는 신천지(新天地)이기도 했다.

 

천외쌍비(天外雙秘)!

그렇다! 그것은 하늘 밖의 전설(傳說)이었다.

너무도 오랜 세월동안 천하무림(天下武林)을 무대로 잠들어온 전설.

무림(武林)! 천하무림인들은 언제나 평화를 구가한다.

하나, 그 전설의 여파는 무림의 평화를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혈문(血門)!

선부(仙府)!

 

이것이 바로 천외쌍비(天外雙秘)의 전설이었다.

누가, 언제 세웠는지조차 알려지지 않는 천외(天外)의 비밀.

하나, 천하는 알고 있었다.

천오백년(千五百年)의 무림사(武林史)! 그것이 바로 천외쌍비(天外雙秘)에서 파생되었음을.

 

혈종(血宗)의 저주(詛呪)가 천세(千世) 후에 깨어나리라. 혈종(血宗)의 미소는 대지(大地)를 찢고, 혈종의 혈루(血淚)는 대해(大海)를 인혈(人血)로 가득 채우리라! 오오! 천지(天地)가 혈운(血雲)으로 뒤덮이리니 그 피의 향기(血香)가 억겁을 지나리라!

 

가공할 전율의 전설! 이것이 바로 혈문(血門)의 전설이었다.

피(血)를 숭상하는 혈마(血魔)들이 살고 있다는 혈문(血門)!

하나, 그들은 일천오백 년의 세월을 어두운 그늘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전설이 말해준다.

 

천지(天地)가 극락지기(極樂之氣)로 가득하리라! 평화(平和)와 열락(悅樂)만으로 만천(萬天)을 가득 채우고 사마(邪魔)의 그림자 지옥(地獄)으로 사그러들리라. 선부(仙府)가 다시 열리는 날, 천하가 발음(明)과 바름(正)으로 가득차리니 그 정대한 기운이 억겁에 이르리라!

 

천세(千世)를 통하여 정(正)을 세우고 의(義)를 지켜온 선부(仙府)! 선부가 있었기에 혈문(血門)은 이를 갈며 그늘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극(極)과 극이 공존하는 천외천(天外天). 하나, 그것은 그저 전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전설은 예고하고 있었다. 천외쌍비의 전설이 당금(當今)에 현세(現世)하리라는 것을.

천하인들은 그 엄청난 기대와 공포에 전율하며 가슴 조이고 있었다.

과연... 전설의 현세는 무림에 어떤 대풍운(大風雲)을 몰고올 것인가?

 

X X X

 

무림에 신화(神話)를 창출한 기인이사들은 무수히 많다.

하나, 그 가운데도 천년의 풍진을 거치며 지워지지 않고 무림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신화를 남긴 인물들이 있으니...

 

천지십강(天地十强)!

 

아아! 그 이름은 무린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위대한 신화를 남겼다.

천하(天下)를 떠받친 열 개의 하늘! 그 십인(十人)의 고금무적인(古今無敵人)들의 신화를 아는가?

멀리는 일천 오백 년 전부터, 가깝게는 일백 오십 년 전에 이르기까지... 서로 시대(時代)를 달리한 십인(十人)의 대영웅(大英雄)들, 그들에 의해 천지십강(天地十强)의 신화가 이루어졌다.

 

혈영천종(血影天宗)!

태양염제(太陽焰帝)!

빙백염후(氷魄焰后)!

만독노조(萬毒老祖)!

표향음룡(瓢香淫龍)!

자전신군(紫電神群)!

수라마제(修羅魔帝)!

적룡천종(赤龍天宗)!

현천신모(玄天神母)!

대비신니(大悲神尼)!

 

이들이 바로 천지십강(天地十强)이었다.

그들은 인간(人間)임과 동시에 하늘이었다. 그것도 광활하도록 넓고 큰 하늘(天).

일천 오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의 육신은 풍진에 삭아 스러졌다. 하나, 그들의 신화(神話)는 무공(武功)으로 남아 당세에 이른다.

천지십강의 가공할 무공! 그것은 현신(現身)! 이는 또 다른 대천의 군림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세외사천(世外四天)!

 

중원무림에 천지십강(天地十强)이 있다면 변황(邊荒)에는 네 개의 하늘(四天)이 존재한다.

그들을 일컬어 세외사천(世外四天)이라 칭했으니... 그들은 아득한 역사의 전통과 더불어 세외(世外)의 하늘로 군림해 왔다.

 

동천(東天) 보타암(普陀庵)!

서천(西天) 혈륭마찰(血隆魔刹)!

남천(南天) 사망림(死亡林)!

북천(北天) 빙백궁(氷魄宮)!

 

아무도 알지 못한다. 세외(世外)의 네 하늘, 그들이 지닌 엄청난 잠력을...

불심(佛心) 깊은 여니(女尼)들만의 보타암(普陀庵).

피(血)와 색(色)에 굶주린 서천의 혈륭마찰(血隆魔刹).

독(毒)과 죽음(死)의 절지(絶地) 사망림(死亡林).

염색절륜의 미인(美人)들의 한숨이 서린 빙백궁(氷魄宮).

한(恨)과 욕(欲). 죽음과 정(情)을 찾아 세외사천(世外四天)이 대풍운(大風雲)을 일으킨다.

 

전설(傳說)! 그리고 신화(神話)!

야심(野心)과 애욕(愛欲)이 서로 뒤엉켜 천하혈란(天下血亂)의 대풍운은 음모(陰謀) 속에 서서히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음모(陰謀)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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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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