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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앙큼한 추격자

 

 

 

(심상치 않은 사연과 배경이 있는 여자임에 분명하다. 어쩐지 조만간에 다시 만날 것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고...)

멀어지는 진상파를 보며 강유는 점원이 안내하는 자리로 갔다.

(확실히 값이 나가는 물건은 아니다.)

안내받은 창가의 자리로 가서 앉은 강유는 진상파가 주고 간 쌍룡환을 살펴보았다.

반지의 재질은 은이고 두 마리 용의 눈 부위에 박혀있는 보석들은 질 낮은 홍옥이다.

시장에 내다팔면 아마 은자 몇 냥 받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쩐지 정감이 가는 반지다. 마치 언젠가 전에 이 반지를 보거나 만진 적이 있었던 것처럼...)

강유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홀린 듯이 쌍룡환을 살펴보았다.

(이런 게 기시감(旣視感)이라는 것일 텐데... 비록 싸구려로 보이지만 뭔가 사연이 있는 반지임에 틀림없다.)

강유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꺄악!”

“엄마야!”

“으헉!”

갑자기 주점 밖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강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길을 가던 사람들과 말들이 화들짝 놀라 피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사람과 말들이 물살처럼 갈라지는 사이로 한 마리의 짐승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몸길이가 세 자쯤인 담비인데 온몸이 황금색 털로 덮여있고 한 쌍의 눈은 타는 듯이 붉다.

그놈은 바로 구미호리 구숙정이 진상파를 추적하라고 풀어놓은 영물 담비 섬전초였다.

(별일이 다 있구나. 어떤 짐승보다 조심성이 많고 사람을 싫어하는 담비가 백주 대낮에 관도를 활보하다니...)

강유가 놀라며 섬전초를 보고 있을 때였다.

섬전초는 주점 입구에 이르러 급정거했다.

킁킁!

그리고는 코를 벌름거리며 주점 입구로 방향을 틀었다.

“저 짐승 새끼가...”

“들어오지 마!”

“엄마야!”

주인과 점원들은 기겁하여 외치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동행한 사내들에게 달라붙었다.

담비는 비록 체구는 작아도 아주 날래고 사나워서 늑대에 못지않은 맹수로 통한다.

대부분의 경우 담비가 알아서 사람을 피한다.

하지만 담비가 작정하고 덤벼들면 속수무책으로 물릴 수밖에 없다. 너무 날래서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담비를 두려워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끼이...

그러거나 말거나 섬전초는 코를 벌름거리며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저리가 이놈아! 나가!”

“꺼져라 이 못된 짐승!”

휙휙!

주인과 점원들은 빗자루를 휘둘러 섬전초를 주점 밖으로 쫓아내려고 했다.

휘익!

하지만 섬전초는 바람처럼 움직여 빗자루질을 피하며 주점 안쪽으로 달려 들어왔다.

“꺄악! 엄마야!”

“오... 오지마라!”

주점 안은 삽시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안기며 비명을 지르고 남자들 중에서도 겁이 많은 자는 의자나 탁자 위로 뛰어올라가 피했다.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강유를 비롯한 몇 몇 무림인들뿐이었다.

(볼수록 맹랑한 놈이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다니...)

강유는 자신 쪽으로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오는 섬전초를 보며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담비가 날래고 사납다는 건 산속에서 살아온 강유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금모적안의 희귀한 담비인 섬전초의 모습에는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면이 있었다.

강유가 신기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섬전초를 보고 있을 때였다.

섬전초의 새빨간 눈이 무언가 발견한 듯 번뜩였다.

카아!

이어 그놈은 강유의 탁자 옆에 이르러 강유를 올려다보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야 임마! 언제 봤다고 나한테 시비냐?”

강유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카아!

하지만 등을 활처럼 굽힌 섬전초는 한층 더 흉포한 표정을 지으며 강유를 노려보았다.

“조... 조심하시오 젊은이. 담비는 작다고 깔보면 안되는 위험한 짐승이오.”

“옛말에도 범 잡는 담비라는 말이 있지 않소? 몇 마리만 모이면 호랑이도 사냥한다는 무서운 놈이오.”

주변 사람들이 강유를 향해 외치며 걱정을 해주었다.

“이거 참...”

강유는 한숨을 쉬었다.

“초면인데 그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 아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빨 감춰라.”

강유가 섬전초에게 눈을 부라릴 때였다.

“이쪽이다.”

“섬전초가 주점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 강유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휘익! 휙!

섬전초가 온 쪽에서 십여 명의 사내들이 바람같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옷자락에 <鐵>자가 새겨진 무림인들이었다.

“저... 저자들은...!”

“제왕성의 사대무력집단중 철위사대의 철위사들이다.”

“저 흉악한 것들이 무슨 일로 이런 곳에...”

달려오는 무사들을 본 주점 안의 무림인들은 겁에 질리고 긴장하는 표정이 되었다.

무림인들에게 제왕성의 위사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시비가 붙을 경우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객기를 부리거나 분을 참지 못해서 제왕성 위사들과 싸우게 되면 뒷감당이 안된다.

제왕성의 무시무시한 보복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저들이 제왕성의 철위사...)

강유도 제왕성의 사대무력집단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어서 적잖게 놀랐다.

소요신군 강조는 안탕산을 떠나는 강유에게 제왕성의 위사들과는 절대 충돌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었다.

섬전초를 따라온 자들은 물론 철위사대 대주 냉혈철심 사우와 철위사들이었다.

강유가 보고 있을 때 사우 일행이 주점으로 들어섰다.

주점으로 들어온 그자들은 곧 섬전초를 발견하고 강유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섬전초는 그때까지 강유 옆에서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네놈, 진상파와 무슨 관계냐?”

다가온 사우가 음산한 눈초리로 강유의 아래위를 살피며 물었다.

강유는 한눈에 사우가 일행의 우두머리임을 알아보았다.

“진상파? 금시초문인 이름이오만...”

강유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저 새끼가 건방지게 대주님 말씀에 대꾸를...”

사우 뒤에 서있던 철위사 한 놈이 눈을 부라리며 칼을 뽑으려 하였다.

“진상파를 모른단 말이냐?”

사우는 손을 들어 그자를 자제시키며 다시 강유에게 물었다.

“그렇소. 나는 진상파라는 이름을 귀하를 통해 오늘 처음 들었소.”

강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그 직후였다.

쩍!

강유의 목에는 날카로운 검의 날이 닿아있었다.

사우가 발검하여 검을 강유의 목에 댄 것이다.

“헉!”

“저... 저런...”

주변 사람들. 특히 무림인들은 기겁하는 표정이 되었다. 사우의 발검이 너무나 빨라 눈에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주르르!

사우의 검이 강유의 목으로 조금 파고들면서 피가 배어나왔다.

(대단한 쾌검! 검을 뽑는 게 보이지도 않았다.)

강유의 표정도 조금 굳어졌다.

사우는 강유가 강호에 나와 처음 상대해보는 일류고수였다.

실제로 철위사대의 대주인 사우의 실력은 강유의 아버지이며 칠절의 으뜸인 소요신군 강조와 비교해도 그리 아래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네놈 진상파와 무슨 관계냐?”

검을 강유의 목에 댄 채 사우가 음산한 어조로 물었다.

“나도 물읍시다.”

강유는 목에 검이 닿아있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우를 올려다보았다.

“뭐라?”

“저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보고 있던 철위사들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유는 무뚝뚝한 어조로 사우에게 말했다.

“귀하는 내가 왜 진상파라는 여인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요?”

“속이려고 해도 소용없다. 영물중의 영물인 섬전초는 희미하게 남아있는 진상파의 냄새만 맡고도 삼백여리를 달려왔으니...”

사우는 스산한 냉기가 느껴지는 눈초리로 강유를 노려보았다.

(그 여자의 이름이 진상파였군.)

강유는 비로소 자신에게 쌍룡환을 주고 간 여자의 이름이 진상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대륙의 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황금성의 성주라는 사실까지는 몰랐다.

“내게서 진상파란 여자의 냄새가 난다는 거요?”

강유는 동요하지 않고 물었다.

“그렇다. 네놈은 어떤 식으로든 진상파와 관련이 있...”

거기까지 말하던 사우는 멈칫 하며 강유의 뒤를 보았다.

끼기! 끼!

섬전초가 다른 좌석으로 가서 기웃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파는 그 좌석에서 국수를 먹었었다.

“히익!”

“저... 저리 가!”

섬전초가 살피고 있는 자리 근처의 사람들이 기겁하며 비명을 지른다.

“저놈이 왜 저러지?”

“저 자리에서도 진소저의 냄새가 나는 건가?”

다른 좌석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는 섬전초를 보며 사우와 철위사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소... 소인은 이 가게의 주인 장씨입니다요.”

그때 주인이 용기를 내서 나섰다.

“어떤 소저가 얼마 전 저희 가게에 들렸다 갔는데 저 담비 놈이 그 냄새를 맡고 들어온 듯합니다요.”

주인은 비지땀을 흘리며 섬전초를 가리켰다.

“그럼 섬전초가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건가?”

“주점 안에 남아있는 진소저의 냄새를 오인해서 들어왔구나.”

상황을 파악한 사우와 철위사들이 난감해할 때였다.

끼이!

진상파가 앉아있던 자리 여기저기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던 섬전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휘익!

코를 허공에 대고 벌름거리던 그놈은 바람같이 주점 입구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급히 피해주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주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젠장! 헛걸음 했다.”

“저놈이 엉뚱한 짓을 했군.”

“가자!”

철위사들은 섬전초를 따라 급히 주점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우도 강유의 목에서 검을 떼었다.

“바짝 따라붙어라. 또 놓치면 안된다.”

철컹!

사우는 검을 칼집에 꽂으며 먼저 주점을 빠져나가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귀하의 이름이나 압시다.”

강유는 목의 상처에서 나는 피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수하들을 따라 주점에서 나가려던 사우는 멈칫 하며 돌아보았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강유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좌에게 앙심이라도 품었다는 거냐?”

사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강유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고 말없이 그자를 바라보았다.

(안... 안돼!)

(상대는 제왕성의 철위사야!)

주점 안의 무림인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사우와 강유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제왕성과 척을 지고도 무사할 수 없는 게 당금 무림의 현실이다.

(저 벽창호가... 가게 안에서 칼부림이 나면 장사에 지장이 있을까봐 힘들게 무마시켰건만...)

주점의 주인 역시 원망스런 표정으로 강유를 흘겨볼 때였다.

“어린놈의 용기가 가상해서 본좌가 누군지 알려주마. 본좌는 제왕성 철위사대의 대주인 냉혈철심 사우다!”

사우가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냉... 냉혈철심 사우!)

(맙소사! 평범한 철위사가 아니라 철위사대의 수령이었구나.)

(구대문파 장문인들도 저자와 싸우면 이긴다고 자신하지 못한다는데...)

사우의 정체를 안 무림인들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냉혈철심이라는 별호답게 사우는 적을 대함에 있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일단 시비가 붙으면 기어코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 때문에 설령 사우보다 무공이 높은 고수라도 사우와 싸우는 것은 꺼려한다.

“피를 본 게 억울하면 언제든지 본좌를 찾아와라. 상대해 줄 테니...”

사우는 음산하게 웃으며 주점에서 나갔다.

휘익!

그리고는 앞서 주점을 나간 수하들의 뒤를 따라 날아갔다.

“에휴! 십년 감수했구만.”

“하여간 좋게 끝나서 다행이다.”

주점 안의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하며 참았던 숨을 토해내었다.

“하여간 요즘 제왕성의 인간들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와 이유를 불문하고 도륙한다잖아.”

“마교와 혈교를 절멸시켜 세상을 구한 제왕성이 저렇게 패도적인 세력으로 변질될 줄 누가 알았겠나?”

“십팔 년 전부터는 제왕성에 밉보이고 무사한 인간이나 문파가 없잖아.”

“진짜 문제는 제왕성의 폭압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점이야.”

“하긴 황실도 제왕성의 눈치를 본다더만...”

제왕성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을 쏟아내던 사람들은 흠칫했다.

강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때문이다

“이보게 젊은이, 화가 나더라도 참게나.”

“냉혈철심 사우를 만나고도 그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야.”

“사우가 인간백정이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손님들, 그중에서도 특히 무림인들이 입구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유에게 충고를 했다.

(진상파라고 했지?)

하지만 강유는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서둘러 주점을 나섰다.

(그 여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제왕성의 표적이 되었다. 잠깐이나마 인연이 있었던 여자인데 위험에 빠진 걸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휘익!

주점을 나온 강유는 사우 일행이 간 쪽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저 어린 친구가 혈기를 못 참고 일을 저지르려는 모양이구만.”

“안됐어. 제왕성에 죄를 짓고도 살아난 사람이 없는데...”

삽시에 멀어지는 강유를 보며 주점 안의 무림인들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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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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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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