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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血袍單客 (1)

 

 

 

(틀림없이 그 여인이다. 소림사로 가던 중에 만났던...!)

석두공은 혈포단객의 뒤를 유유히 쫓아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쐐애액!

혈포단객의 앞으로는 한사람의 여인과 네 명의 흑의인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 중 여인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석두공은 자칫 그녀 때문에 죽을 뻔 한 적이 있는 것이다.

잔혼각(殘魂閣)의 절대칠살(絶代七殺)의 한명인 그녀는 그때 사내들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석두공의 평정심을 흔들어놓았었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여체의 은밀한 구조, 게다가 사내의 흉칙한 물건이 그곳을 쑤셔대며 유린하는 장면을 보며 석두공은 그만 정신이 흐트러지고 말았고,

그 결과 잔혼살객의 사신겸(殘魂鎌)에 심장을 찔려 자칫 죽을 뻔 했었다.

헌데 그때 그 요사한 계집이 동료들과함께 혈포단객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동행하고 있는 네명의 사내는 바로 절대칠살중 살아남은 네명이었다.

 

휘이익!

청의여인과 절대칠살의 생존자들은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혈포단객은 숲으로 들어간 적은 쫓지 않는다는 강호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달려들어갔다.

여름의 숲은 입과 가지를 무성하게 펼쳐놓았고 그 사이로 다섯 사람은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 사라져 버렸다.

“...!”

혈포단객은 형형한 눈초리로 사방을 살폈다.

숲으로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에 나뭇잎들이 피로 물든 듯이 보였다.

스윽!

혈포단객은 소매를 걷어올렸다. 소매 속에서 드러난 손은 그의 옷이나 마찬가지로 피처럼 붉었다.

그것은 붉은 장갑이었다.

[혈천갑(血天匣)에 오랫만에 피를 먹이게 되었군.]

혈포단객은 살기어린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나무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의 힘찬 발걸음에서 강렬한 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은은한 강기의 막이 그의 몸을 공처럼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혈포단객의 무공도 전보다는 훨씬 강해진 것같군.)

석두공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숲으로 스며들어갔다.

그의 청력으로도 다섯 사람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풀은 무릎까지 자라있었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이루는 빛과 그늘은 눈앞을 아롱지게 만들었다.

혈포단객은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 귀로는 팔방을 들으며 한발한발 걸어나갔다.

스윽!스윽!

그는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하지만 풀벌레 소리들 조차 갑자기 사라져버린, 오직 고요만이 깃든 숲속은 혈포단객 같은 고수에게도 심장이 조여드는 긴장을 주었다.

긴장의 도가 높아지고 신경이 팽팽이 당겨짐에 따라서 그의 발소리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는 무릎까지 자란 풀들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끝을 밟고 나아가고 있었다.

초상비(草上飛), 초상비의 경공술이었다.

숲 안에는 넓직한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공터의 한쪽에 수 백 년은 됐음직한 고목(古木)이 있었다.

“...!”

혈포단객의 눈에 번개불 같은 섬광이 비쳤다.

고목은 굵기는 수 아름이 되지만 크지는 않았다. 가지는 앙상하고 가운데는 썩어서 구멍이 파여있었다.

하지만 몇 개의 푸른 입은 아직도 그 나무가 고사목(枯死木)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번쩍!

갑자기 혈포단객의 발아래서 강렬한 백색 섬광이 한가닥 솟구쳐올랐다.

[흥!]

혈포단객은 미끄러지듯 옆으로 반보 물러서면서 왼발로 섬광을 차버렸다.

팍!

또한 그의 몸이 천근추(千斤錘)의 수법으로 뚝 떨어졌다.

푹!

[으악!]

그의 가경할 공력이 실려있는 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하나!]

혈포단객은 웅혼하게 내뱉으며 고목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스스스슷!

풀 위를 낮게 날면서 흑의복면인이 검으로 그의 다리를 베어왔다.

바다위로 배가 지나간 듯이 풀들이 갈라졌다.

혈포단객은 오른손을 휘둘렀다.

파앗!

붉은 빛이 한순간 번쩍하고,

휘리리리!

흑의인은 풀위를 뒹굴어 혈포단객의 혈천갑에서 뿜어나온 강기를 피했다.

푸앗!

혈천갑의 강기에 격중된 풀들이 가루가 되어 날아올랐다.

쏴아아!

하지만 흑의인은 여전히 혈포단객을 향해 베어오고 있었다.

[제법....]

혈포단객은 살기어린 음성을 터뜨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핑!

깡!

흑의인의 검이 부러졌다.

스스스슷!

흑의인은 귀신처럼 빠르게 풀숲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고목 쪽으로 일부의 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바람이 그쪽으로 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차앗!]

혈포단객은 한줄기 홍영(紅影)이 되어 고목나무를 향해서 쇄도해들었다.

그 순간에 흑의인은 고목나무의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으합!]

혈포단객이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횡으로 그어졌다.

스파앗!

붉은 강기가 고목나무로 파고들었다.

그그그그... 쿵!

고목나무가 반듯하게 베어지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 뒤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흑의인의 등이 보였다.

 

석두공은 공터의 다른 나무 위에서 혈포단객의 모습을 바라고 있었다.

[저 한 수는 아주 멋지군. 나무를 벨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큰 나무를 베어 그 뒤에 있는 적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순간적으로 먹기는 어려울 것인데...]

한데 흑의인이 쓰러진 그곳엔 또 다른 시체가 있었다. 마른 풀과같은 빛의 청의를 입은 가날픈 몸매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 시체의 머리는 몸에서 두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청의여인, 석두공이 소림사로 갈 때 만났던 여인이며 또한, 석두공이 객점에서 부터 쫓아온 그 여인이었다.

[...?]

석두공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혈포단객의 손에 죽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동료가 죽였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천천히 날아올라 고목의 뒤로 돌아갔다.

한데,

[헛]

석두공은 무심코 눈을 돌리다가 숲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머리를 볼 수가 있었다. 젊은 여인의 머리였다.

하지만 그 여인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셋인가?]

스읏!

혈포단객은 나직하게 내뱉으며 청의여인의 시체를 지나치고 있었다.

석두공은 크게 외쳤다.

[위험하오!]

그때였다.

파파팟!

혈포단객의 뒤에서 흑의인이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쐐애애액!

이미 그의 손에서 두자루의 비수(匕首)가 발출된 후였다.

혈포단객은 석두공의 외침과 흑의인의 기습에 흠칫했으나 콧웃음을 쳤다.

[가소로운... ]

카캉!

두자루의 비수가 그의 호신강기에 부딪히며 깨어졌다.

휙휙!

날아오른 흑의인은 다시 두자루의 비수를 던졌다.

혈포단객은 비수엔 신경도 쓰지않고 흑의인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와우우웅...

수 백 개의 손그림자가 생기면서 흑의인을 뒤덮었다.

흑의인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회오리 바람처럼 움직여 허공에서 이동했다.

펑펑펑펑!

하지만 혈포단객의 손그림자는 그의 몸을 공처럼 두들겼다.

헌데 그때였다.

스팟! 찌이익!

두자루의 비수가 그의 호신강기를 찢으며 들어왔다.

혈포단객의 두눈이 부릅떠졌다.

[놈!]

그는 황급히 혈천갑을 휘둘려 비수를 쳐갔다.

퍼억!

하지만 비수는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비스듬히 틀어지며 그의 어깨에 박혔다.

그 비수는 호신강기마저 찢어버리는 특별한 병기였던 것인데 호신강기와 부딪히면서 방향이 틀어졌던 것이다.

팍!

혈포단객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붉은 그의 혈포가 더욱 검붉게 변했다.

나머지 하나의 비수는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쿵쿵!

혈포단객은 두걸음을 물러섰다.

그의 눈앞에는 자신의 혈천갑의 수공에 격중된 흑의인의 시체가 폭죽처럼 터져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하나 남았군.]

그는 어깨에 박힌 비수를 뽑았다.

헌데 바로 그 직후였다.

스읏!

그는 문득 자신의 뒤에서 무엇인가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옆으로 몸을 미끄러 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함정이었다.

펑!

흙더미가 눈앞에 치솟으며 그의 몸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에 혈포단객은 옆구리가 화끈해옴을 느꼈다.

청의여인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

혈포단객의 눈이 부릅떠졋다. 청의여인은 분명 몸통과 머리가 분리된 채 쓰러져 있었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혈포단객의 옆구리를 찔러오는 그녀의 몸은 온전했다. 머리만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머리가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으로 생각했던 머리없는 여인의 시체는 여전히 누워있었고 청의여인의 목이 놓여있었던 곳에는 웅덩이가 파여있었다.

청의여인은 바로 그 웅덩이에 몸을 숨기고 목만 남은 시늉을 한 것이었다.

[속았구나.]

콰창!

혈포단객은 버럭 소리치며 혈천갑을 휘둘렀다.

순간 청의여인의 웃을듯 말듯하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미처 가라앉지도 않은 흙더미 속에서 또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오며 혈포단객의 팔을 찔렀다.

[멈춰라!]

쐐액!

석두공은 벼락같이 소리치며 날아갔다. 그의 손바닥에서 파란 불꽃이 발출되었다.

순간 혈포단객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모조리 죽여주마!]

꽈르릉!

그의 혈천갑이 돌연 방향을 돌려 석두공을 쳐갔다.

“헛!”

석두공은 깜짝 놀라 자신의 상화장(翔華掌)을 거둬들이며 혈천갑을 피했다.

그리고 즉시 두가닥의 지풍을 날렸다.

핑핑!

탄지신통(彈指神通)이었다.

[욱!]

[크윽! 큭!]

세마디의 비명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혈포단객은 석두공이 자신을 공격하는 줄알고 전력을 다해서 그를 방비했다.

그리하여 흙더미 속에서 튀어나온 검을 막지 않았다. 그 검은 호신강기가 흩어진 순간적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팔에 뼈가 드러나도록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또한 청의여인은 그의 옆구리에 검을 더욱 깊이 찔렀다.

그러나 그를 공격했던 두 사람도 석두공의 탄지신통에 맞아 혈도가 제압당한 상태였다.

석두공은 혈포단객의 앞으로 날아내렸다.

퍽!

혈포단객의 혈천갑이 흑의인의 두개골을 깨뜨려버렸다.

그리고 엽구리를 찌르고 있는 검을 뚝 부러뜨려 뽑아낸 다음에 석두공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석두공의 머리카락은 정상이 아니다. 마치 갖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노르스름하면서도 뽀송뽀송하다. 아주 잘생긴 미청년이기는 하지만 이상해 보이기는 어쩔 수 없었다.

석두공이 말했다.

[석두공입니다. 오년전 동정호에서 만난 적이 있지요. 반갑습니다.]

순간 혈포단객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혈도가 제압되어 화석처럼 굳어있는 청의여인이었다.

부러진 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치 동호천 노선배의 제자 석두공인가?]

혈포단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석두공이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선 몸을 돌보도록 하시지요.]

[어느 구석에 숨어있다가 이제서야 나왔는가?]

혈포단객은 스스로 혈도를 눌러 지혈시키며 물었다.

석두공이 청의여인을 보면서 대답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여인의 도움이 컸던 것같더군요.]

“...!”

청의여인은 파랗게 질린 채 눈썹을 바르르 떨었다.

혈포단객의 표정이 확 변했다.

[무슨 뜻인가?]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이 여인에게 유인되어 잔혼살객과 부운청풍객에 의해 절벽에 떨어졌다가 간신히 살아나왔으니까요.]

석두공은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혈포단객이 물었다.

[지금 천하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고 있겠지?]

[대충은... 그런데 어쩌다가 이자들을 만나게 됐습니까?]

[그렇지, 깜박 잊을 뻔 했군. 그 육시를 할 세놈들이 또 다시 힘을 합쳤네. 부하들 중에서 고수들을 뽑아서 척살대(刺殺隊)를 조직한다는군. 만리어옹(萬里漁翁)이 내게 그 말을 전해주고 이놈들에게 죽었어.]

혈포단객은 흉광을 발하면서 말했다.

만리어옹이라면 장강의 곳곳,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노인이다. 한 자루의 묵철간(墨鐵竿)을 병기로 사용하며 구구팔십일의 팔십일초 어룡간(魚龍竿)은 일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리어옹은 우연히 잔혼각과 검종맹, 그리고 적룡혈운도가 연합하여 전문적으로 고수들만을 죽이는 척살대를 조직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잔혼각의 절대칠살에게 쫓기던 만리어옹은 혈포단객을 만나 그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리어옹은 결국 절대칠살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절명했다.

또한 절대칠살은 사실을 알고 있는 혈포단객마저 이중 삼중의 덫을 꾸며서 암살하려했던 것이다.

혈포단객이 말했다.

[무림이 단결해야만 하네. 그놈들은 악마의 무공이라는 삼마경(三魔經)을 익히고 있네. 무림첩(武林帖)이라도 띄워져야만 할 걸세.]

[척살대라면... 설마 무림에서 고수들은 다 죽여버리겠다는 그런....]

[그게 아니라면 척살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혈포단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만리어옹의 말로는 그들 척살대의 하나하나는 삼마경중에서 필요한 무공은 어떤 것이든 배울 것이라고 했네.]

실로 놀라운 말이었다.

척살대란 자들이 삼마경을 익히는게 사실이라면 그자들에게 지목되고서도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혈포단객의 말이 이어졌다.

[그자들이 연공을 끝내고 나오기 전에 검종맹 등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천하는 영원히 그 마귀같은 세놈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 것일세.]

[...!]

석두공의 얼굴도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혈포단객이 두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천하제일인이셨던 무치 동호천 노선배의 유일한 제자. 만약에 자네가 무림첩을 뛰워서 무림인의 단결을 호소한다면 아마 거역할 사람이 그다지 없을 것일세.]

[...]

석두공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당장 백검보로 가게. 일초진천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도 단독이기는 하지만 삼인에 대항하고 있네. 가능하면 그와도 힘을 합치는 것이 좋을 것일세.]

[일초진천수는 저의 의형인 금사종입니다.]

석두공의 말에 혈포단객은 희색을 띄었다.

[그래? 그렇다면 더욱 잘됐군. 어서 가보게.]

[한데 이 여인은...]

석두공이 청의여인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혈포단객이 말했다.

[작은 것에 매이지 말게. 이 계집은 내가 심문하겠네.]

혈포단객의 혈천갑을 낀 우수가 청의여인의 목을 잡아갔다.

석두공은 무언가 미진한 기분이 들엇다. 그의 비상한 본능이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혈포단객의 말이 워낙 완강한 지라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대로 떠났다.

백검보,

백검보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부운청풍객등이 만든다는 척살대가 무림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들을 분쇄시켜야만 한다.

쐐애액!

석두공은 한줄기 빛살처럼 동쪽으로 날아갔다.

 

혈포단객의 손아귀에 목이 잡힌 청의여인의 다리가 땅에 떠서 바둥거렸다.

[잔혼각의 살수냐?]

혈포단객은 그녀의 목을 잡고 들어올린 채 물었다.

“...!”

청의여인은 눈알이 빨갛게 되어갔다.

뚜둑!

혈포단객은 손아귀에 힘을 더욱 가하며 물었다.

[잔혼각의 살수냐?]

청의여인은 숨도 재대로 쉬지 못하고 입술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혈포단객의 창백한 얼굴은 마치 저승사자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냉혈한이기라도 하듯 혈포단객은 더욱 손아귀에 힘을 주며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잔혼각의 살수냐?]

[끄륵 끄륵!]

여인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혈포단객은 전혀 표정이 없었다. 그는 청의여인에게서 죽고싶은 의지마저 박탈해버릴 모양이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여인의 몸이 빨래줄에 걸린 빨래처럼 흐느적거렸다.

갑자기 혈포단객은 손을 풀어버렸다.

스르르...

청의여인은 뼈가 없는 사람처럼 무너져 내렸다. 눈빛은 망연하고 동자가 빛을 잃고 풀려있었다.

혈포단객의 음성이 유부(幽府)에서 흘러나오는 악마의 음성처럼 그녀의 귀로 파고들었다.

[척살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곳을 말해라.]

청의여인의 입술이 달짝거렸다.

혈포단객은 그녀의 혈도를 풀었다.

[처 척살... ]

청의여인은 완전히 이지를 잃어버리고 들릴 듯 말듯한 음성을 흘러냈다.

휘청!

한데 그 순간에 혈포단객의 몸이 갑자기 휘청했다.

[웃!]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 혈포단객은 흔들리는 몸을 바로 잡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푸른 풀밭이 그의 면전으로 다가왔다.

풀썩!

혈포단객은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같이 무거워지면서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청의여인의 얼굴과 불과 세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쓰러져 있었다.

[척살대는... 운... ]

청의여인이 실성한 듯이 우물거린다.

[일곱째! 말할 필요없다.]

돌연 혈포단객이 쓰러진 곳에서 삼정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 명의 흑의인이 일어서면서 말했다.

[분명히 죽였는데... ]

혈포단객은 입밖으로 겨우 나오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흑의인이 일어난 곳은 혈포단객이 처음 암습을 받았던 그곳이었다.

혈포단객의 천근추(千斤錐)에 의하여 죽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물, 그는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뚜껑이 열려진 납작한 병이 들려져 있었다.

[혈포단객! 산공독(散功毒) 맛이 어떤가? 내 아우들을 죽인 후이니 더욱 맛이 있었을 거다.]

흑의인은 혈포단객에게로 걸어오며 말했다.

파앗!

그는 청의여인의 마혈을 풀어주고 비수를 뽑아들었다.

[크흐흐흐... 더욱 신나는 맛을 보여주마. ]

[휴우... 휘우... ]

청의여인은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조금 더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으왕! ]

청의여인은 눈앞에 있는 혈포단객의 코를 물어뜯었다.

[크윽!]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지 못하는 혈포단객의 코가 걸레처럼 뜯어졌다.

[퉤!]

여인은 입에든 코의 조각을 뱉어내며 새파란 살기를 발했다.

[개새끼! ×을 뽑아버리겠다.]

청의여인은 흑의인의 손에서 비수를 뺏어들며 소리쳤다.

쫘악!

혈포단객의 옷이 길게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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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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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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