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전능] 24화 망나니의 금의환향
24화
망나니의 금의환향(錦衣還鄕)
가진 것의 크기가 반드시 행복의 크기와 일치하진 않는다.
해하촌 주민들은 갖은 게 거의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해하촌에는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다.
헐벗었고 맨발이지만 아이들은 골목골목 뛰어다니며 자지러지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다를 떨거나 거친 술로 기분을 낸다.
하지만 평화롭고 즐거운 일상이 늘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갑자기 거리를 오가던 주민들이 놀라 주춤 거리며 물러선다.
활개 치며 해하촌으로 들어서는 세명의 사내들 때문이다.
앞장 선 사내는 아직 풋내가 느껴지는 청년인데 차림새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채색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었으며 무거워 보이는 금 사슬 여러 개를 목에 걸고 있다.
양쪽 손목에도 몇 개의 금팔찌를 겹쳐 끼었고 손가락마다 보석이 박힌 반지를 끼고 있다.
청년이 걸친 옷과 장신구만으로도 천냥 이상은 나갈 것이다.
거만한 표정으로 부채를 부치며 걸어오는 청년의 왼쪽 뺨에는 긴 흉터가 나있다.
부채를 부칠 때마다 드러나는 팔뚝은 문신으로 덮여있으며 허리춤에는 두 자 쯤 되는 칼이 꽂혀있다..
비단옷을 입은 청년 뒤로 두 명의 건달이 따라오며 주위 사람들에게 눈을 부라린다.
한 놈은 육척 넘는 키에 바위덩이 같은 몸을 지녔으며 다른 한 놈은 키는 비슷하지만 몸매가 날렵하다.
체형은 달라도 두 놈의 얼굴은 어딘가 닮아서 피붙이 사이로 보인다.
“이 동네는 참 하나도 변한 게 없구만. 해하촌이라는 이름답게 게딱지같은 집들은 다 쓰러져가고 인간들은 하나같이 비루먹어 꾀죄죄하니 말이야.”
비단 옷의 청년은 부채로 코를 가리는 시늉을 하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자의 말 대로 오가는 사람들이 걸친 옷은 누더기고 아이들 얼굴은 땟국물로 지저분하다.
“이런 뒷골목 시궁창에서 어떻게 십육 년 넘게 뒹굴며 살았었는지 모르겠다.”
청년이 오만상을 쓰며 걸어갈 때였다.
“이게 누구야. 너 도화정(桃花亭)의 일곱째 아들 정칠 아니냐?”
지나가던 서너 명의 노인들 중 한명이 청년을 아는 척했다.
정칠!
그렇다. 비단 옷의 청년은 부운의 졸개 노릇을 하던 정칠이었다.
“삼 년 전 금릉 성내로 이사 간 후로는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고향에 찾아온 거냐?”
노인은 반가운 마음에 정칠의 소매를 잡았다.
“어허!”
탁!
정칠은 부채를 접어 노인의 손목을 모질게 때렸다.
“아이쿠!”
옥으로 살이 만들어진 부채에 손목을 맞은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이 옷 비단이야. 세탁 한번 하려면 닷냥이나 든다구.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지고 지랄이야?”
탁! 탁!
정칠은 노인이 잡았던 소매를 부채로 털면서 눈을 흘겼다.
“정칠이 너 이 새끼, 어른들에게 무슨 싸가지 없는 짓거리냐?”
“우리가 그렇게 더러워?”
“여자 장사하는 포주의 자식 티를 내는 거냐?”
함께 지나가던 다른 노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힉!”
“으헉!”
그러다가 노인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포주의 자식 티를 내?”
“늙은 것들이 찢어진 입이라고 막 내지르는군.”
우둑! 우둑!
정칠을 따라온 건달들이 주먹을 마주 쥐어 소리를 내며 노인들을 노려본 것이다.
“이... 이놈들아! 너희들은 아비 어미도 없어?”
“어... 어디서 늙은이들에게 행패냐?”
노인들은 겁에 질리면서도 용기를 내어 삿대질을 했다.
“그래 우린 아비도 어미도 없다. 어쩔래?”
“아가리를 좀 더 찢어놔야 조용해지겠냐 늙탱이들아?”
건달들은 눈을 부라리며 노인들에게 다가갔다.
“히익!”
“이... 이놈들이...”
노인들은 뒷걸음질 쳤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아이들도 겁에 질려 정칠 일행의 눈치를 보았다.
“육항(陸抗), 육철(陸鐵),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너희들이 참아라.”
정칠은 부채로 건달들의 등을 툭툭 쳤다.
“예 사두(蛇頭)!”
“죄송합니다.”
건달들이 정칠을 돌아보며 굽신거렸다.
사촌 형제 사이인 두 놈의 이름은 육항과 육철이다. 몸집이 좋은 놈이 육철이고 날렵한 놈이 육항이다.
(사두라면 흑사회의 부(副) 두목급 호칭이잖아.)
(정칠이 저놈이 금릉의 흑사회에 투신하여 출세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육철과 육항 형제의 말을 들은 노인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흑사회에서는 두목을 용두(龍頭)라 부르고 용두 아래의 새끼 두목들은 사두라 부른다.
놀랍게도 정칠은 스무살도 안된 나이에 사두라 불리고 있다.
“잘 들어 영감탱이들아! 나 옛날의 정칠 아니야.”
정칠이 노인들을 거만하게 쓸어보았다.
정칠의 시선을 접한 노인들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테니까 아는 척도 마.”
콧방귀를 뀌던 정칠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길가 한쪽에 꾀죄죄한 행색의 아이들이 호기심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서 정칠을 보고 있었다.
“이거 어째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걸. 돈!”
정칠은 웃으며 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여기...”
그 즉시 육항이 묵직한 돈주머니를 정칠의 손에 얹어주었다.
“너 이놈들 나 알지? 삼 년만에 만났다고 생 까면 이 형아가 많이 섭섭하다.”
정칠은 돈 주머니를 들고 아이들 앞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주춤거리며 물러서려 할 때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용돈을 주마. 이걸로 맛 나는 까까나 사먹어라.”
정칠은 끈을 푼 돈주머니를 허공에 홱 뿌렸다.
따당! 티팅!
그러자 돈주머니에서 수많은 동전들이 튀어나와 놀라는 아이들 주변에 뿌려졌다.
“돈이다! 돈!”
“와아! 열문짜리 동전이야!”
“건드리지마. 이건 내 거야!”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동전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 놈들, 좋아 죽으려 하는구만.”
정칠은 아이들이 동전을 줍느라 엉덩이를 쳐들고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은 채 아귀다툼 벌이는 걸 보며 웃었다.
어른들은 오만상을 쓰지만 겁이 나서 끼어들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다.
“이래서 돈이 좋은 거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고 살 수 있으니까.”
정칠을 껄껄 웃으면서 육항과 육철을 데리고 아이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거 내거야! 내놔!”
“챙기지 못한 놈이 병신이지. 네거 내거가 어디 있어?”
아이들은 돈을 줍거나 다른 아이가 주운 돈을 빼앗으려고 뒤엉켜 난리가 났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이 자란 아이들을 거지 취급하다니...”
“이래서 씨는 못 속이는 거야. 계집 장사하는 놈의 새끼가 어련하겠어?”
졸개들을 거느리고 멀어지는 정칠을 보며 노인들은 궁시렁거렸다.
“그렇긴 해도 정칠이 저 놈, 불과 삼 년만에 엄청나게 출세했구만.”
“금릉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조직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정칠이 놈은 어렸을 때부터 넉살 좋고 독하기도 했잖아. 계집장사 크게 하는 제 아비의 도움을 받기도 했겠지만 저 나이에 흑사회의 사두가 된 걸 보면 난 놈은 난 놈이지.”
정칠의 싸가지 없는 태도에 빈정이 상하긴 했지만 노인들의 말에는 어쩔 수 없는 부러움이 배어 있었다.
***
해하촌의 시장통 한쪽에는 간판도 달려있지 않은 푸줏간이 있다.
간판은 없어도 제법 규모가 있는 푸줏간이다.
탕! 탕!
나무 도마에 얹어놓은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칼로 내리쳐서 토막 내는 청년이 있었다.
덩치가 산만하고 팔뚝이 다른 사내들의 허벅지만큼 굵은 그 푸주한은 철두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철두는 덩치도 엄청 커졌다. 키는 육척하고도 오푼이 넘고 떡 벌어진 근육질 가슴은 무성한 털로 덮여있다.
이마는 끈으로 질끈 묶고 있는데 구렛나루와 수염도 덥수룩하다.
영락없는 수호전(水滸傳)의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 모습인 철두는 튀는 피를 막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탕! 탕!
오만상을 쓴 철두가 커다란 칼을 내리칠 때마다 고기 덩어리가 잘게 잘린다.
“설마 그거 인육(人肉) 아니지?”
신경질적으로 칼질을 하던 철두의 손이 누군가의 말에 멈칫했다.
“내가 고기에 환장하긴 하지만 사람 고기는 사양이다.”
비단옷을 입은 정칠이 푸줏간 입구에 서서 실실 웃고 있었다.
육항과 육철 형제는 좀 떨어진 뒷쪽에 두손을 앞으로 모은 채 서있다.
“너 이 새끼...”
철두는 찡그리며 정칠을 노려보았다.
“얌마! 인상 펴라. 오랜만에 만나서 농담 좀 한 거니까.”
정칠이 넉살 좋게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바람이 분 거냐? 삼 년 전에 떠나면서 해하촌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한 놈이...”
탕!
철두가 칼을 도마에 내리쳐 꽂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저리쳐지긴 해도 나고 자란 고향인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냐?”
정칠은 부채를 접어 허리춤에 끼우며 말했다.
“그보다 오랜 만에 만났으니 우리 철두 한번 안아보자!”
그리고는 우쭈쭈 하는 표정으로 팔 벌리며 철두를 끌어안으려 했다.
“개수작 말고 날 찾아온 꿍꿍이나 털어놔라.”
철두는 정칠을 피해 뒤로 물러서며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 새끼 참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머쓱해진 정칠은 피식 웃었다.
“새끼?”
펄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정칠이 너 많이 컸다! 어렸을 때는 내 눈도 똑바로 보지 못하던 피라미 새끼가...”
철두는 앞치마에 손 닦는 걸 멈추며 정칠을 노려보았다.
“거 말 좀 가려 합시다 형씨!”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첩혈당의 팔대사두(八大蛇頭)중 한분께 무슨 말 버릇이오?”
가게 밖에 있던 육항과 육철이 눈을 부라리며 시비를 걸었다.
“충성스러운 졸개들까지 뒀군.”
콱!
철두가 도마에 박혀있던 칼을 다시 뽑아들었다.
“눈꼴시면 들어와라. 도리를 쳐줄 테니까.”
“이 거 참...”
“우리가 다른 놈팽이들처럼 백정이라면 쫄 줄 아는가 보네.”
육항과 육철이 눈을 희번덕이며 가게로 들어오려 할 때였다.
“이 새끼들이...”
정칠이 육항과 육철을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육항과 육철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정칠이 두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사과 안해? 내 친구면 나와 동급이란 거 몰라?”
“죄... 죄송합니다 사두님.”
“용서해주시오 형장. 우리가 주제넘게 나댔소.”
육항과 육철은 겁에 질려 급히 철두에게 허리를 꺾었다.
“흥!”
콱!
철두는 뽑았던 칼을 다시 도마에 박았다.
정칠이 짐짓 한숨을 쉬었다.
“철두 너도 성질 좀 죽여라. 오랜만에 만났는데 얼굴 붉힐 거 없잖냐?”
“개소리 말고... 찾아온 용건이나 털어라.”
철두는 허리에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거칠게 풀며 내뱉었다.
정칠은 철두의 팔을 툭툭 치며 넉살좋게 말했다.
“얘기가 좀 길어질 테니 술집 가서 한잔 하며 하자. 안주로 쓸 고기나 좀 넉넉히 챙겨라.”
(건방진 새끼...)
철두는 오만상을 쓰면서도 고기를 싸기 위해 말린 연잎을 집어들었다.
정칠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분이 엄마는 여전히 선술집 하고 있지?”
“분이네 가게로 가려고?”
말린 연잎에 고기를 싸던 철두의 손이 움찔하며 멈춰졌다.
철두의 반응을 본 정칠이 히죽 웃었다.
“왜? 분이네 가게 가서 술 마시는 건 좀 껄끄럽냐?”
철두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고기를 쌌다.
“껄끄럽긴 뭘... 다른 가게들 보다 조용하니 분이네 집으로 가자.”
“너처럼 나도 어렸을 때는 분이 엄마한테 공짜 밥 많이 얻어먹었었잖아.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는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
정칠은 넉살좋게 웃으며 가게에서 나갔다.
철두도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