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전능] 20화 가련한 제물
20화
가련한 제물(祭物)
(죽일 놈들... 양가집 규수를 납치해서 욕보이려 들어?)
문이 닫힌 건물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표정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
별호와 이름이 날수비연(辣手飛燕) 신소심(申素心)인 여인은 무림맹 사대장로 중 금정사태의 제자다.
그녀는 금정사태와 함께 사천일교 당아연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밤 어떤 여자가 납치되는 걸 목격하고 따라왔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납치된 여자가 당아연은 아니었다.
(비록 찾고 있던 당아연은 아니지만 한 여자의 삶이 걸린 일이니 못 본 척 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신소심은 손자경이 끌려들어간 건물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부웅!
바로 그때 신소심 옆으로 참새 만한 말벌이 섬뜩한 날개짓을 하며 지나갔다.
(흑!)
신소심은 오싹 소름이 돋아 몸이 굳어졌다.
비록 무공을 익힌 몸이라 해도 말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물며 그녀의 옆을 스쳐간 말벌은 거의 참새만할 정도로 큰 괴물이었다.
(무슨 말벌이 저렇게 크지?)
신소심은 몸서리를 치며 몸을 숙였다.
(크기도 크기지만 밤눈이 어두운 벌이 한 밤중에 날아다닌다는 게 심상치가 않다. 누군가 특별하게 길러서 부리는 놈이기 쉽다.)
신소심이 몸을 숙인 것은 지나간 말벌이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걸 직감 한 때문이다.
그리고 은신한 직후 신소심은 급히 숨까지 멈추었다.
“...!”
언제였는지 문이 닫힌 건물 앞에 한 인물이 서있었다.
헌칠한 체격의 사내인데 얼굴에는 검은색 복면을 쓰고 있다.
대독금봉을 따라온 부운이다.
(나... 나타나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림맹이 천마련에 대항하기 위해 길러낸 복수사영(復讐四英)중 한명인 나 신소심이...)
신소심은 몸을 더 낮게 숙이며 부운을 살펴보았다.
붕! 붕!
부운의 머리 위로 대독금봉이 원형을 그리며 날아다니고 있다.
(저자가 괴물 같은 말벌의 주인이겠구나.)
신소심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였다.
부운은 신소심이 숨어있는 건물 쪽을 힐끔 보며 건물로 다가갔다..
(내가 여기 숨어있는 걸 알아차렸다.)
신소심은 오싹한 전율이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 것을 느꼈다.
***
건물 안에서는 천인공노할 만행이 벌어지려는 중이었다.
눈이 벌개진 세명의 사내가 침대에 잠옷 차림으로 누워있는 손자경을 에워싸고 있었다.
독안효 마삼이라는 애꾸는 손자경의 입과 코에 축축한 천을 대고 있었다.
“운이 좋구만. 황태손의 스승인 손태부의 딸년을 직접 보게 되었으니...”
“철이 든 이래 손부 밖으로의 거의 출입을 하지 않아서 저년 얼굴을 본 사람이 드물다지?”
소당주라는 자와 술을 마시고 있었던 두 놈은 연신 침을 삼키며 손자경의 가냘픈 몸매를 훑었다.
(아편과 술, 계집질로 날을 지새우는 말종들의 표적이 되었으니 소저의 신세도 참 안타깝게 되었소이다.)
손자경의 코와 입에 천을 댄 채 마삼은 혀를 찼다.
손자경은 몽혼약(曚昏藥)에 중독당해 정신을 잃은 상태다.
마삼이 손자경의 코와 입에 대고 있는 젖은 천에는 그 몽혼약의 해독제가 묻어있다.
(이것도 다 소저의 운수소관이니 날 원망하진 마시오.)
마삼은 어쩔 수 없이 손자경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일어났다.
그녀의 정조를 유린하려는 세 놈은 금릉 흑사회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악우(惡友)들이었기 때문이다.
소당주란 자의 이름은 이보옥(李寶玉)으로 금릉 흑사회 삼대조직 중 하나인 첩혈당의 후계자다.
삐쩍 마른 놈은 금릉에서 가장 큰 도박장 만복도장(萬福賭莊)의 둘째 아들 엄승환(嚴承煥)이다.
피둥피둥 살이 찐 놈의 이름은 천계주(天季主)로 이곳 탐화루의 후계자다.
“북경으로 영락제를 따라 간 황태손이 저년에게 반해서 틈만 나면 남경으로 달려온다던가?”
“장차 황후(皇后)가 될지도 모를 계집의 꿀단지를 맛보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회가 도는구만.”
엄승환과 천계주는 불룩해진 아랫도리를 만지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흐흐흐 우리가 미리 길을 내주면 주첨기도 좋아라 하겠지.”
이보옥도 히죽거릴 때였다.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마삼이 손자경의 입과 코에 대었던 천을 떼며 물러섰다.
“해독제 냄새를 맡았으니 곧 마취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으으음...”
마삼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자경은 애처로운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정신이 드시오 손소저?”
이보옥은 음험하게 웃으며 손자경에게 말을 걸었다.
“흐윽!”
잠시 어리둥절하던 손자경은 두 팔로 가슴 끌어안으면서 웅크렸다.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내가 누군지는 소개하지 않아도 아시겠지?”
이보옥은 침대로 올라가 손자경 옆에 앉으며 음험하게 웃었다.
“당신... 첩혈당의 소당주로군요.”
손자경은 사색이 되어 침대 구석으로 피하려 했다. 그녀는 전에 이보옥을 본 적이 있다.
“그렇소. 영친의 회갑연에 참석했다가 소저를 보고 한 눈에 반한 첩혈당의 소당주 이보옥이오.”
이보옥은 손을 뻗어 손자경의 얼굴 만지려 했다.
“안... 안돼요!”
손자경은 진저리를 치며 피하려 했지만 곧 등이 벽에 닿았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소. 한눈에 반해 구혼했지만... 소저와 소저의 아비는 날 천한 뒷골목 인생이라며 상대해주지도 않았소.”
이보옥은 궁지에 몰린 손자경을 훑어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보옥은 단 한번 손자경을 보았음에도 완전히 매혹되어버렸었다.
손자경은 이보옥 주변의 천박한 계집들과는 인종 자체가 다른 것처럼 보였다.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 같은 손자경을 본 후 이보옥은 상사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할 지경이 되었다.
첩혈당의 당주 소면첩혈(笑面喋血) 이세창(李世昌)은 아들이 드러누운 이유를 알고 기가 막혔다.
자신이 비록 금릉의 뒷골목에서 기침 꽤나 한다고 하지만 태자태부 정도의 고관과 사돈이 된다는 건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다.
손충의 회갑연에 참석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든 인맥을 동원하고 막대한 돈을 뿌려서 가능했었다.
그랬는데 하나뿐인 아들놈이 손충의 외동딸에게 한눈에 반해 싸고 누웠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아들놈이 죽겠다는 데 두고 볼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염치 불구하고 손부에 매파를 보내 손자경을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물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시도였다.
태자태부쯤 되는 인물이 하나뿐인 딸을 뒷골목 잡배에게 시집보낼 생각 따위를 할 리가 없다.
심지어 손자경은 황실로부터 청혼 얘기가 오가던 귀한 몸이었다.
손충은 같잖고 귀찮아서 첩혈당으로부터의 청혼을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이세창으로서도 관부와 척을 질 경우 뒷감당이 안되었다. 몇 번 매파를 보냈다가 무시당한 후 더 이상 손충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다만 이세창도 손충도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이보옥이 얼마나 무모하고 막 나가는 말종인가 하는 점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이라면 황태자의 최측근인 태자태부의 외동딸을 납치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는데 이보옥은 아무 생각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
“거듭 해서 매파를 보냈어도 거절당한 모욕을 내가 어떻게 갚아줄 것같소?”
이보옥은 핏발이 선 눈으로 손자경을 내려다보았다.
“이... 이러지 말아요 소당주. 다시... 다시 한 번 매파를 보내면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볼게요.”
손자경은 사색이 되어 애원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돌려 보내주...악!”
애원하던 손자경은 비명을 질렀다.
“개수작!”
이보옥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챘던 것이다.
“네년의 지금 말이 그저 이 자리를 모면해보려는 수작이란 걸 모를 줄 아느냐?”
이보옥은 손자경의 머리채를 틀어쥐며 이를 갈았다.
“아니... 아니에요! 제발... 제 말을 믿어주세요.”
손자경은 두 손을 모아 빌며 애원했다.
명문가의 외동딸로 자란 손자경이 이런 취급을 당해본 적이 있을 리 없다.
수치스럽고 두려웠으나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야만 한다.
“이미 늦었다.”
팍!
이보옥은 머리채를 쥐로 있던 손을 뿌리쳐서 손자경을 나뒹굴게 만들었다.
“악!”
손자경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에 나뒹굴었다.
“네년을 마누라로 삼는 건 포기했다. 대신 절친들과 네년을 함께 즐기며 우의를 돈독하게 하기로 결심했다”
침대에 나뒹군 손자경을 보며 이보옥은 거칠게 허리띠를 풀었다.
그자 뒤에서 눈이 벌개진 천계주와 엄숭환도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흐윽!”
손자경은 공포에 휩싸였다.
한명도 아니고 세 명의 사내에게 유린당하게 된 이 상황이 도저히 현실로 믿어지지 않았다.
“네년이 오늘밤 수청을 들어줘야할 저 친구들을 소개하지.”
이보옥은 상의를 벗어 침대 옆으로 던지며 천계주와 엄숭환을 소개했다.
“만복도장의 소장주 천계주형과 이곳 탐화루의 후계자 엄승환 형이다. 금릉 흑사회의 유력한 후계자들에게 몸을 바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그자는 하의도 까내리며 천계주와 엄승환에게 말했다.
“천형! 엄형! 시작합시다.”
“그러자구!”
“계집 하나를 함께 즐기는 것도 오랜만이로군!”
이보옥의 말이 떨어지자 천계주와 엄숭환도 침대로 올라와 손자경을 덮쳤다.
“악!”
손자경은 두 놈의 거친 손길에 잠옷과 속곳이 뜯겨나가며 비명을 질렀다.
“싫어! 안돼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가냘픈 소녀가 건장한 사내들을 당해낼 리 없다. 삽시에 손자경은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었다.
“마삼! 날이 밝을 때까지 아무도 접근시키지 마라.”
하의까지 벗은 이보옥이 독안효 마삼에게 지시했다.
“예 소당주님!”
마삼은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아악! 제발... 하지 말아요. 아흑!”
문으로 가는 마삼의 귀에 손자경이 유린당하면서 지르는 애처로운 비명이 들렸다.
(좀 안됐긴 하군. 꿈 많던 명문가의 여식이 하룻밤 사이에 신세를 망치게 되었으니...)
마삼은 쓴웃음을 지으며 문고리를 잡았다.
(소당주같은 인간 말종 눈에 띈 게 불운한 것이니 남 탓 할 수도 없... 헉!)
덜컹!
한데 문을 열던 마삼의 외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문 밖에 시커먼 복면을 쓴 인물이 서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