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강의 작업실/대도전능(大盜全能)

[대도전능] 16화 그 와중에 흥정

와룡강입니다 2025. 1. 1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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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 와중(渦中)에 흥정

 

 

 

온유향은 시력을 잃은 대신 청력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덕분에 독천존이 아들에게 무언가 하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온유향은 다급히 방안으로 뛰어 들려 했다.

기다리거라.”

그런 그녀의 팔을 천불투가 잡아 저지했다.

강철처럼 변한 손으로 부운의 가슴을 겨누던 독천존이 힐끔 돌아보았다.

<아버님! 놓아주세요!>

진정해라. 서노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느냐?”

천불투는 몸부림치는 온유향을 달랬다.

앞이 안 보이는가?”

부녀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독천존이 물었다.

딸년은 사연이 있어서 농맹(聾盲;벙어리와 소경)의 장애를 얻었소이다.”

안 보이는 눈으로 용하군. 노부가 뭘 하려는지도 알아차리고...”

!

독천존은 코웃음을 치며 강철같이 변한 손가락으로 부운의 가슴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의 다섯 손가락은 부운의 가슴으로 두 마디씩 깊이 박혔다.

!”

아들 몸에 무언가 박히는 소리가 온유향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말은 못해도 가슴 속에서 터지는 비명은 입 밖으로 나온다.

퍼득!

독천존의 다섯 손가락이 가슴에 박힌 부운의 몸이 벼락에 맞은 듯 경련을 일으켰다.

지지지!

실제로 독천존의 다섯 손가락은 벼락에 휩싸여 있었다.

<... 부운아!>

아들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온유향이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왼손으로 수양딸의 팔을 잡고 있는 천불투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빠직!

천불투의 오른손에 쥐여진 두 개의 구슬 껍질이 조금 갈라졌다. 한 푼만 더 힘을 가하면 구슬은 압축열에 의해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벽력탄(霹靂彈)은 사양일세.”

독천존은 부운의 가슴에 다섯 손가락을 박아 넣은 채 웃었다. 화기에 민감한 터라 화탄이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상황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노부는 노형의 손자 놈 머리에까지 미치고 있는 구룡짐독의 독성을 아래로 끌어내고 있는 중일세.”

빠지직!

독천존의 손가락을 휘감은 벼락이 강해졌다.

끄윽...”

그에 따라 벌벌 떠는 부운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

온유향은 그제야 독천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안도했다.

천불투 역시 수양딸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온몸에 퍼져 있는 구룡짐독의 독성을 단전에 몰아넣어주면 생활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걸세.”

독천존은 부운의 몸에 주입하는 내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말했다. 내공을 운용하면서도 말하는 데 부자연스러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독천존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일각 정도가 흘렀다.

으으으...”

이윽고 부운은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떴다.

구룡짐독이 마침내 단전으로 모두 수납된 것이다.

“!”

눈을 뜨던 부운은 움찔했다.

괘씸한 놈! 살고 싶으면 숨김없이 말해라!”

독천존이 두 눈에서 시퍼런 벼락을 토해내며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소멸시키는 검은 용들을 삼키고도 죽지 않았구나. 정신을 잃고 있던 사이에 독천존 서래음이 온고당으로 찾아왔고...)

부운은 단박에 지금 상황을 이해했다.

네놈... 어떻게 구룡짐독을 들여 마시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느냐?”

독천존이 노려보며 물었다.

저도 그건...”

경고하는 데 허튼 수작은 부리지 마라. 네놈 목숨뿐 아니라 세 개의 목숨이 더 걸려있으니...”

시간을 벌기 위해 하려던 부운의 말을 독천존이 막았다.

(세 개의 목숨!)

곁눈질로 방 밖을 본 부운은 즉시 이해했다. 방문 밖에 외조부가 어머니의 팔을 잡고 있고 안채 문 밖에는 분이가 쓰러져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다. 자기 사문의 비밀이 유출된 걸 알면 독천존이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으니....)

부운은 찰나지간에 어찌 해야 가족을 지킬 수 있을지 판단을 내렸다.

믿을지 말지는 노야의 자유겠지만... 아홉 마리의 검은 용이 알아서 내 몸속에 들어왔어요.”

부운은 열여섯 살 소년에게 어울리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어떤 생명체든 죽이는 구룡짐독을 그냥 마셨는데 멀쩡하다는 말을...?”

그래서 믿을지 말지는 노야의 자유라고 하지 않았나요?”

부운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독천존은 날카롭게 변한 손가락을 여전히 부운의 가슴에 꽂아넣은 상태로 노려보았다.

“...!”

“...!”

두 노소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순진하면서도 겁에 질린 연기를 하는 소년과 노회할 대로 노회한 늙은 생강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부운은 삽시에 독천존의 기억 대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손가락들을 자신의 몸에 깊이 박은 상태를 유지해준 덕분이다..

물론 기억을 읽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문 밖에 있는 천불투와 온유향의 긴장은 극한에 이르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독천존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가족 모두가 오늘 죽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단 네놈의 말은 믿도록 하겠다!”

!

독천존이 부운의 가슴에서 다섯 손가락을 뽑아냈다.

손가락들이 뽑힌 곳에는 다섯 개의 구멍이 나있었다. 가슴에 자리한 오대중혈(五大重穴)의 위치였다.

츠츠츠!

놀랍게도 그 구멍들은 순식간에 메워졌다.

독천존에게는 독을 이용하여 상처를 급속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상당히 깊었던 상처가 단번에 아물었다.)

놀라며 일어나는 부운의 가슴에는 오행(五行) 형태의 흉터만 남아있었다.

네가 일각 전쯤에 마신 검은 용들이 무언지는 네 조부가 알려줄 것이고...”

독천존은 탁자에 진열되어 있는 크고 작은 병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세치 정도 크기에 붉은 빛은 띤 옥병(玉甁)이었다.

받아라.”

무엇인지요?”

부운은 독천존이 내미는 옥병을 두 손으로 받았다.

붉은 빛을 띤 옥병에서는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열기를 품고 있는 옥, 온옥(溫玉)으로 만들어진 듯 했다.

독천존이 금천구룡로를 비롯한 물건들을 살천독낭에 넣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빙결화옥고(氷結化玉膏)라는 것이다.”

얼어붙어 옥이 된다? 이름은 어여쁘군요.”

부운은 능력을 써서 온옥으로 만들어진 옥병의 내력을 살펴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얼음구덩이와 끔찍한 냉기가 느껴졌다. 한 모금 정도 되는 빙결화옥고를 구하기 위해 백명 가까운 목숨이 희생되었고...

(저 병에 든 것은 혹시...)

천불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대신투답게 빙결화옥고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독천존이 천불투를 힐끔 보며 말했다.

약효는 이름 그대로다. 그걸 복용하면 네 몸뚱이는 꽁꽁 얼어붙어 옥같이 단단해질 것이다.”

... 독약이었군요.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부운은 겁에 질린 척 했다.

<흐윽!>

(역시...)

문 밖의 온유향이 몸서리를 치고 천불투는 한숨을 쉬었다.

구룡짐독은 절대 세상에 퍼지면 안되는 존재다. 만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빙결옥화고를 마셔라. 그럼 네 몸뚱이는 꽁꽁 얼어붙어서 몇 달 정도는 구룡짐독이 몸 밖으로 퍼지는 걸 막아줄 것이다.”

독천존은 탁자 위의 물건들을 남김없이 살천독낭에 챙기며 말했다.

그 사이에 노부가 네 시신을 수습해서 구룡짐독을 어떻게든 봉인할 것이다.”

(무섭고 잔인한 얘기를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군.)

부운이 기막혀 할 때였다..

경고하는데... 오늘 이후로 금릉을 떠나지 마라. 정기적으로 노부가 와서 확인할 것이며 당연히 감시하는 눈도 있을 것이다.”

감시하는 눈길이란 만독의종을 말한다.

도척총림 정도는 아니어도 만독의종의 이목은 세상 도처에 널려있다.

부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일 제가 금릉을 벗어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럼 네놈 대신 다른 사람들이 대가를 치루겠지.”

독천존은 서늘하게 웃으며 방 밖의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대놓고 협박을 하는군.)

독천존의 말뜻을 모를 리 없는 부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는 본래 망산쌍독을 쫓아 금릉에 왔었네만...”

살천독낭을 챙긴 독천존은 문 쪽으로 가면서 천불투에게 말했다.

망산의 그 망나니들이 서노사에게 죄를 지었소?”

천불투는 수양딸과 함께 문에서 비켜섰다.

놈들은 노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실혼고라는 걸 훔쳤는데... 놈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이곳 금릉 일원이라더군.”

독천존은 방을 나섰다.

하지만 구룡짐독에 비하면 실혼고를 도난당한 건 일도 아니고... 해서 노부는 이 후로 조룡여의대법이나 극독성심결을 찾는데 매진할 작정일세. 그러니 노부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손주놈이 다른 곳으로 튀지 못하게 단속하시게.”

명심하겠소이다.”

천불투가 대답할 때였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부운이 서둘러 상의를 걸치며 문쪽으로 오며 외쳤다.

제가 남의 손에 죽을 걸 걱정하셨는데... 그럼 제게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가르쳐주시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런지요?”

무공을 가르쳐달라?”

독천존은 어이가 없었다.

천불투는 슬쩍 웃었고 온유향은 당황하여 소매로 입을 가렸다.

그렇습니다.”

부운은 방을 나서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 뻔뻔한 놈이... 소매치기를 한 것도 모자라 무공까지 가르쳐달...”

눈을 부라리면서 호통을 치려던 독천존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 말 그대로 천고기재(千古奇才). 무공을 익히기에는 최적의 몸을 지닌...)

독천존은 비로소 부운이 이제껏 본적이 없는 빼어난 자질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제자로 삼고 싶지만 문중의 규율을 어길 수는 없는 게 유감...)

독천존은 애써 아쉬움을 달랬다.

만독동천은 위험한 독들을 다루다 보니 제자를 받아들이는 데 매우 까다롭다. 출신성분을 따질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제자를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그런 면에서 부운은 만독동천의 제자가 되기에는 여러 모로 결격사유가 있다.

독천존 자신이 만독동천의 문주이니 결단을 내릴 수는 있다.

다만 그 전에 부운의 성품이나 자격을 꼼꼼하게 검증해야한다.

(구룡짐독을 품고 있는 것도 그렇고... 시간을 두고 지켜본 후에 만독동천의 제자로 받아들일지 결정해야겠지.)

독천존은 마음을 정리하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네놈에게 호신수단을 가르쳐줄 필요와 이유는 충분한 것같구나.”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운은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포권했다.

하지만 제자가 아닌 네게 우리 만독동천의 독공을 가르쳐줄 수는 없는 일... 대신 노부가 얼마 전에 얻은 치명적인 위력의 지법(指法)을 전수해주마.”

우내칠절 중 한분이신 노야께서 치명적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위력이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부운은 과장되게 감탄하는 척 했다.

늙은 구렁이인 독천존은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더할 수 없이 강력한 지법인데 특히 아주 빨라서 일단 펼쳐지면 피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지법을 가르쳐주기 전에 한 가지 다짐을 받아둘 것이 있다.”

제가 무엇을 약속해드리면 되는지요?”

저 계집아이에 관한 것이다.”

독천존은 가게로 통하는 문 밖에 쓰러져 있는 분이를 돌아보았다.

천불투와 온유향의 시선도 반사적으로 분이에게 향했다.

부운은 외조부와 어머니의 반응이 심상찮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이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노부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저 계집을 네 목숨인 듯 지키겠다고 약속해야한다.”

독천존이 엄숙하게 말했다.

부운은 분이와 독천존 사이에 간단하지 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지금의 그 장담, 잊지 말아라.”

독천존은 천불투를 힐끔 보며 말했다.

잠깐 가게에 나가 있도록 하자.”

천불투는 온유향의 팔을 잡고 가게쪽으로 갔다.

온유향은 아들을 독천존과 단 둘이 있게 하는 게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천불투를 따라갔다.

독천존이 말했다.

기억력은 좋겠지?”

남보다 그리 쳐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번거롭지 않을 테니...”

고개를 끄덕인 독천존은 전음입밀로 바꿔 말을 이었다.

<이 지법의 이름은 비파천강지(琵琶天罡指)>

특이한 이름이로군요.”

시전할 때 비파를 치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나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워낙 빨라서 상대가 비파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몸에 구멍이 나있을 것이다.”

독천존은 전음입밀을 써서 한 가지 내공 운용비결을 말해주었다.

그 비결대로 운용하면 내공을 일점에 집중시켰다가 말 그대로 전광석화같이 발출할 수 있다.

가게로 나가며 천불투는 뒤를 돌아보았다.

독천존이 손짓발짓을 섞어서 무언가 설명하고 있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부운이 진지하게 듣고 있다.

(전화위복이라더니... 독천존의 주머니를 턴 덕분에 부운이가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상승무공을 배울 숴 있게 되었구나. 물론 몸속에 구룡짐독이라는 재앙을 담고 살아야하는 몸이 되었지만...)

천불투의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한 겹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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