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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불의의 사고

 

 

복우산의 서북쪽은 칼날을 세운 듯 험한 봉우리들이 병풍같이 에워싸고 있다.

그 봉우리들 남쪽에 정파백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호천무맹이 자리하고 있다.

때는 늦여름의 오후다.

음습한 비구름이 복우산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휘익!

험하기 이를 데 없는 복우산의 바위 봉우리들 사이를 나는 듯이 달리는 소년이 있었다.

헝클어진 봉두난발에 다 헤어진 남루한 의복을 입었으나 눈빛만은 영기로 총총하게 빛나고 있는 소년...

바로 고검추였다.

고검추는 신개령에서 천면음마 등천하의 임종을 지켜본 뒤 닷새 만에 복우산에 이르렀다.

열흘이 걸릴 것으로 예정했던 복우산까지 닷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화마의 경신술 덕분이었다.

탐화비록에 수록되어있는 축지성촌(縮地成寸)은 무림을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실술이다.

완전히 연마하면 이름 그대로 축지법(縮地法)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게 축지성촌이다..

고검추는 복우산까지 오는 동안 꾸준히 축지성촌을 연마해왔다.

아직은 입문한 수준이지만 걷는 속도가 전과 비교했을 때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휘익! 파앗!

고검추는 복우산의 험준한 산봉우리들 사이를 마치 한 마리 표범처럼 날렵하게 치달렸다.

(거의 다 왔다. 저 봉우리만 넘으면 호천무맹이다.)

바람처럼 달리던 고검추는 앞쪽에 거대한 병풍처럼 서있는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는 도중 심마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호천무맹은 그 봉우리를 등진 채 자리하고 있다.

고검추가 호천무맹의 앞쪽이 아니라 뒷쪽에 자리한 험한 봉우리로 접근하고 있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생부 철사자 고창룡은 호천무맹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이다.

물론 십칠 년 전 벌어진 그 치욕적인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개입된 듯한 심증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검추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아직은 자신이 철사자 고창룡의 아들임을 떳떳이 밝힐 상황이 못 된다.

그래서 고검추는 은밀하게 호천무맹에 잠입하여 고현경을 만나려는 것이다.

헌데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 섰던 고검추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흐윽... ... 틀렸는가?"

어디선가 여인의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와 고검추를 흠칫하게 만들었다.

(이 산중에 웬 여인의 신음소리란 말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여인의 신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잠시 후 고검추는 높은 단애로 둘러싸인 은밀한 계곡에 이르렀다.

(!)

헌데 무심코 단애 아래를 내려다보던 고검추는 눈을 치떴다.

그와 함께 그의 얼굴은 단번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에 둘러싸인 계곡 끝에는 그리 크지 않은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높이가 오장쯤인 폭포 아래에는 원형의 연못이 형성되어 있다.

"... 으으! 도저히... 못 견디겠다."

지금 그 연못에는 한 여인이 허리까지 잠긴 채 괴로운 듯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 사고(師姑)!)

몸에 연신 물을 끼얹고 있는 그 여인을 본 고검추는 숨이 턱 막혔다.

검은 옷을 걸치고 있는 여인은 바로 아버지의 사매이며 사촌누이이기도 한 철봉황 고현경이었기 때문이다.

탕음마고가 촉발한 욕화에 시달리던 고현경은 복우산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한 연못으로 와서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촤아! !

고현경은 온몸 구석구석에 물을 끼얹으며 꿇어 오르는 욕화를 식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도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는 몸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흐윽... ... 이걸로는 안돼!"

마침내 고현경은 참지 못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성이 한계에 이르러 본능에 대항할 힘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몸 속 깊은 곳에서 치미는 열기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진 자극으로 인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는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이제...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결국 고현경은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이 되었다.

뜨거워진 몸을 식혀줄 가능성이 있는 마지막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눈이 풀린 고현경은 비틀거리며 연못 밖으로 나왔다.

(... 들키면 안된다!)

충격에 휩싸인 채 연못을 내려다보던 고검추는 급히 근처 바위 뒤로 숨었다.

연못에서 나온 고현경은 연못가에 놓여있는 널찍한 바위 위에 무너지듯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민밍한 치태를 시작했다.

(... 보면 안된다!)

고검추는 내심 부르짖었다.

그는 복우산으로 오는 동안 귀동냥을 통해서 자신의 생부 고창룡과 고현경이 단순한 동문이 아니라 사촌지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현경은 사고이기 전에 당고모(堂姑母;아버지의 사촌누이)인 집안 어른이다.

조카가 되어 당고모의 치태를 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걸 알면서도 고검추는 고현경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사고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익숙하구나.)

그와 함께 고검추는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비록 도도하고 냉철해서 고현경이라는 별호까지 얻었지만 어쨌든 그녀도 젊은 여자다.

몸이 뜨거워져 견딜 수 없을 때가 있고 그럼 그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고현경의 손길이 능란하고 거리낌이 없는 데에는 그런 슬픈 사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몸을 달구고 있는 욕정은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지독한 것이었다.

(... 좋지 않다!)

철봉황 고현경의 치태를 훔쳐보는 고검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검추도 고현경의 상태를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욕정에 사로잡혀 이성을 완전히 잃을 줄은 몰랐다.

제발... 사형... 사형! 저 좀 어떻게...!”

눈을 하얗게 까뒤집은 고현경의 입에서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짐승이 토해내는 것같은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사고는 사촌오빠이기도 한 아버지를 짝사랑했구나.)

고검추는 고현경이 토해내는 신음을 통해서 그녀가 자신의 생부 고창룡을 연모했음을 깨달았다.

그 사이에도 고현경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 저대로 방치하면 위험하다.)

그걸 확인하고 다급해진 고검추는 숨어있던 바위틈에서 벌떡 일어났다.

멀리서 보기에도 고현경의 상태가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고검추는 서둘러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연못 근처에 이른 고검추는 숨이 콱 막혔다.

가까이에서 본 고현경의 치태가 너무도 민망하다.

고현경의 치태를 지근거리에서 보게 되자 고검추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침착... 침착해야한다.)

고검추는 필사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상의 속을 더듬었다.

다시 꺼낸 고검추의 손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 은제상자 안에는 수십 개의 은침(銀針)이 들어 있었다.

고검추가 복우산으로 오는 도중에 약방에 들려 구한 침이었다.

탕음마고를 제거하려면 그 은침을 정해진 순서대로 고현경의 혈도에 찔러야만 했다.

(... 우선 마혈을 찔러 진정을 시켜야만 제독술(除毒術)을 시전 할 수 있다.)

!

고검추는 떨리는 손으로 고현경의 가슴 근처에 자리한 마혈을 침으로 찔렀다.

!

하지만 고현경의 살갗에 닿는 순간 강력한 반진력이 고검추의 손가락 끝을 강타했다.

"!"

고검추는 손가락이 부러지는 듯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 정말 강하신 분이다."

고검추는 그제서야 고현경이 은발마희 옥여상 못지않은 강자임을 깨달은 것이다.

고검추는 놀라면서도 자신에게 이토록 막강한 무공을 지닌 사고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윽... 사형!"

돌연 고현경이 와락 고검추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

고검추는 손목이 끊어지는 듯한 격심한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고현경은 고검추의 손목을 끌어당기며 뜨겁게 할딱거렸다.

"... 사형! 현경이를 제발...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악!"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고검추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

(아차...)

고검추는 당황했다.

고현경이 자신을 부친인 고창룡으로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부자지간이므로 고검추는 당연히 고창룡을 닮았다.

게다가 고현경은 끔찍한 욕화로 인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다.

그녀가 고검추를 고창룡으로 오인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 사고. 저는 선부가 아닙니다."

고검추는 당황하며 고현경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목을 쥐고 있는 고현경의 손은 강철 족쇄같이 요지부동이었다.

"흐윽... ... 너무 하세요 사형!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현경이를 마다하시다니요."

그녀는 오열하며 고검추를 와락 끌어안았다.

(허억!)

얼떨결에 철봉황 고현경의 몸에 올라타게 된 고검추는 전율했다.

몸 아래 느껴지는 고현경의 알몸이 너무도 뜨거웠기 때문이다.

" 어서... 제발 현경이를... 사형의 여자로 만들어주세요!"

고현경은 뼈가 없는 듯 부드러운 사지로 고검추를 휘감으며 몸부림쳤다.

그 바람에 고검추의 몸도 의지와 상관없이 달아올랐다.

"... 이러시면 안됩니다 사고!"

당황한 고검추는 고현경에게서 떨어지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강철같은 고현경의 팔 다리에 휘감겨 있어서 저항 자체가 불가능했다.

고검추의 하의는 고현경의 손과 발에 의해 단번에 벗겨졌다.

순간 물기에 젖은 서늘한, 그러면서도 너무도 매끈하고 부드러운 고현경의 피부가 느껴졌다.

(... 안돼. 이분은 아버지의 동문 사매시다! 핏줄로는 당고모고...)

고검추는 이를 악물며 본능의 충동과 맞서려 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저항이었다.

고현경은 결국 고검추를 상대로 뜻을 이루었다.

쿠쿠쿵!

강제로 한 몸이 되는 순간 고검추의 귓전으로 천둥치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 끝났다!)

고검추는 자신의 일부가 더 할 수 없이 뜨거운 늪으로 빨려 들어가며 절망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고검추는 동정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첫 경험인 고현경도 고검추를 받아들이며 작살에 꿰뚤린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그러면서도 고현경은 고검추를 부여안은 채 격렬한 요분질을 일으켰다.

그녀가 일으키는 파도에 휩쓸려 고검추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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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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