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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에 걸린 봉황

 

 

-복우산(伏牛山)!

 

그 모습이 마치 엎드려 있는 소와 같다고 하여 복우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하남성의 명산이다.

복우산 동북방 오백여 리에는 저 유명한 중원 무림의 태두 소림사(少林寺)가 자리하고 있다.

본래 중원 무림의 심장부는 소림사가 있는 숭산(嵩山)이었다.

하지만 삼십여 년전부터 무림의 중심은 숭산에서 복우산으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복우산에 중원 무림 최대의 세력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호천무맹!

 

바로 그들이다.

비록 십칠 년 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봉문하다시피 했으나 여전히 호천무맹이 중원 무림의 정점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구파일방등 전통의 명문들, 각기 독특한 절기를 발전시켜온 삼문육가(三門六家), 정파백도를 자처하는 천여 개의 문파들이 호천무맹에 속해있다.

구성인원 수로 따지자면 거의 백만에 이르는 무림인들이 호천무맹의 영향력 안에 들어 있다.

그 방대한 조직의 심장부가 바로 이곳 복우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호천무맹은 변황 무림에 대항할 목적으로 세워졌었다.

삼십여 년 전 변황 무림은 서역 출신의 한 인물에 의해 일통되었었다.

 

-신월지존(新月至尊)!

 

회회교(回回敎;이슬람)가 배출한 최강의 무인이다.

신월지존이라는 별호는 회회교가 초승달, 즉 신월(新月)을 상징으로 삼는 데에서 생겼다.

사실 신월지존이 회회교 출신중 최강자이긴 했어도 서역 무림의 최강자는 아니었다. 사패천 중 한 세력이 서역을 기반으로 번성해왔기 때문이다.

사방무신 중 서호(西虎)의 후손들이 세운 태양성전(太陽聖殿)이 바로 그들이다.

무공만으로 평가하면 신월지존은 태양성전의 십대고수들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월지존이 서역 무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인물을 아버지로 둔 덕분이었다.

 

-티무르(鐵木兒)!

 

제이(第二)의 징기즈칸을 자처했던 서역 역사상 최강의 정복군주 티무르가 신월지존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티무르의 넷째 아들인 신월지존의 이름은 샤르흐이며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티무르제국의 제이대 황제가 된다.

샤르흐는 티무르의 넷째 아들이라 제국을 물려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 서역 무림을 지배하는 데 주력했으며 마침내 성공했다.

태양성전조차도 티무르제국과 충돌하는 데 부담을 느껴 샤르흐에게 복속했을 정도였다.

샤르흐는 서역 무림을 일통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었다.

 

-신월동맹(新月同盟)!

 

회회교를 바탕으로 결성된 사상 최강의 세력이다.

회회교에 속한 거의 모든 무림 세력이 신월동맹에 가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월동맹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론 중원 무림의 정복이었다.

샤르흐의 아버지 티무르는 서역과 천축은 물론 멀리 대식국까지 정복했었다.

그 티무르의 마지막 목표는 징기스칸의 후손들을 중원에서 몰아낸 명나라에 복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티무르는 넷째 아들 샤르흐를 전위로 세웠다.

본격적인 명나라 정벌에 앞서 신월동맹으로 하여금 먼저 중원 무림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

중원 무림으로서는 명운이 걸린 일대위기였다.

이에 구파일방을 주축으로 신월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통합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흑도, 백도, 녹림, 하오문 등의 이질적인 성격 때문에 파벌을 초월한 중원 무림의 결맹은 실패로 돌아갔다.

대신 같은 길을 걷던 정파백도의 문파들만으로 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그것이 호천무맹이었다.

호천무맹의 맹주는 십자검존 종극이란 인물이었다.

십자검존은 전설적인 검법의 명가 십자검막(十字劒幕)의 후예로 호천무맹의 결성을 주도했다.

당시 십자검존 종극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다.

비록 초절한 검법을 지녔다지만 정파 무림인들을 영도하기에는 너무 젊었다.

본래 호천무맹의 맹주로는 당시 천하제일인으로 공인되던 소림사의 장로 철목신승(鐵木神僧)이 거론되었었다.

하지만 철목신승은 자신이 출가인임을 이유로 들어 맹주의 자리를 사양했다.

그리하여 십자검존 종극이 호천무맹의 맹주가 된 것이다.

십자검존의 영도 하에 호천무맹은 신월동맹의 공세를 막아내어 중원 무림의 위기를 해소했다.

덕분에 호천무맹은 중원 무림의 보루로 인정받았으며 맹주인 십자검존 종극도 중원제일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것이 삼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헌데 십칠 년 전 예의 그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호천무맹은 신월동맹을 좌절시키고 얻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다.

그 후 호천무맹은 거의 봉문하다시피 했다.

그 틈을 탄 사마외도의 세력들이 창궐하여 무림의 판도를 뒤흔들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십칠 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온갖 세력들로 인해 무림은 대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마천루가 마도 무림의 맹주로 부상했고 사신각이라는 암살조직이 횡행하며 살육을 일삼았다.

심지어 화류계의 기녀와 매춘부들까지 야화맹(夜花盟)이라는 조직을 이루어 자신들의 권익을 부르짖을 정도였다.

무림의 말세가 올 것일까?

뜻있는 강호인들은 도의와 명분이 상실된 무림의 실태에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런 가운데 십칠 년의 기나긴 잠에 빠져 있던 호천무맹 내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철봉황이라는 여걸이 나타나 호천무맹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검존이 거둔 네 명의 제자 중 막내인 철봉황 고현경은 사실상 은퇴한 스승을 대신하여 호천무맹을 영도하고 있다.

먼저 철봉황 고현경은 정파백도의 젊은 인재들을 모아 철혈호천위(鐵血護天衛)란 조직을 만들고 스스로 총사(總士)가 되었다.

호천무무맹에 속한 문파와 가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철혈호천위의 전력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증강되고 있는 중이다.

천여 명의 일류고수들로 이루어졌다는 철혈호천위가 강호로 나오면 어떤 세력도 맞서지 못할 것이다.

비록 일개 여인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호천무맹의 이같은 용틀임은 무림인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일 호천무맹이 삼십여 년 전의 패기와 단결력을 회복한다면 그동안 무림을 농단하던 여타 세력들은 아침안개처럼 스러져야만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의 각 세력들은 숨을 죽인 채 호천무맹의 동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호천무맹의 부활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존세력들이 사신각에 청탁하여 철봉황 고현경의 암살을 기도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았다.

호천무맹이라는 거인의 부활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

 

"흐윽! ...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고통스러운 여인의 신음소리가 그리 넓지 않은 석실을 울리고 있었다.

석실 내부는 몇 자루의 장검이 벽에 걸려 있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어 투박해 보인다.

그 석실 가운데에 놓인 좌대 위에는 흑의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좌대 위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는 그 여인은 철봉황 고현경이었다.

철봉황 고현경은 지금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얼굴은 구워진 가재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으며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땀에 흠씬 젖은 검은 옷에 휘감긴 탄력 넘치는 육체는 학질에라도 걸린 듯 부들부들 떨린다.

"흐으윽! ... 그때 천면음마란 놈이 무엇인가 수작을 부렸음이 분명하다."

고현경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그녀는 천면음마가 투사한 탕음마고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천면음마의 저주가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고현경은 삼십여 년의 세월동안 오로지 무공 연마에만 몰두해 왔었다.

그녀의 지난 삶 자체가 수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그녀는 이성과 교제한 경험이 없다.

물론 고현경에게도 가슴이 설레였던 기억은 있었다.

자신보다 십여 살 연상인 동문의 사형을 남몰래 연모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형은 그녀를 그저 귀여운 사매 정도로만 여길 뿐 전혀 이성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고현경은 가볍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러다가 그 사형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자결하고 말았다.

철사자 고창룡-!

그가 바로 고현경의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던 연모의 대상이었다.

사실 고창룡과 고현경은 사촌 남매 사이였다.

두 사람의 집안은 산서(山西)성의 명문가인 고가장(高家莊)이었는데 신월동맹의 중원 침공 때 멸문지화를 당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고검추는 당시 열다섯 살 소년이었고 고현경은 겨우 다섯 살에 불과한 어린 계집아이였었다.

십자검존은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두 남매를 가엾이 여겨 함께 제자로 삼았었다.

물론 십자검존이 단순히 연민의 감정으로 두 남매를 제자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고창룡과 고현경이 남자와 여자들 중에서 최고의 자질을 지닌 기재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두 남매의 자질에 감탄한 십자검존은 철사자와 철봉황이라는 별호를 직접 지어주었었다.

비록 사촌지간이었으나 고현경은 고창룡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유일한 피붙이이기도 해서 의지하다보니 고창룡은 어느덧 고현경에게 하늘 아래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고창룡이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사모를 겁탈하고 자살을 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고현경이 받은 충격과 상실감은 형언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날 이후로 고현경은 이성에 대한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 버린 채 무공수련에만 전념해왔다.

그 결과 그녀는 삼십대 중반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우내팔강에 드는 고수가 되었다.

여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각고 연마한 성취였다.

헌데 그런 그녀가 잃어 버렸던 본능의 유혹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탕음마고 때문이었다.

천면음마의 말대로 탕음마고는 고현경의 원영지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에 고현경의 육체는 부족해진 원영지기를 이성과의 교접으로 채우기를 간구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탐하듯이...

"으음... 방심하는 게 아니었다. 그 간악한 말종에게 수작을 부릴 기회를 주지 말고 척살했어야만 했다."

고현경은 도도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얼굴을 이지러뜨리며 뜨거운 신음을 토해냈다.

탕음마고가 촉발한 욕정은 굶주림이나 갈증과 다를 바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과의 교접을 갈구하는 욕정은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고 있다.

너무도 강렬한 욕정으로 인해 고현경의 이성이 거의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불구덩에 빠지기라도 한 듯 뜨거워진 몸 때문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당장이라도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던져 범해지고 싶은 충동이 고현경은 사로잡고 있었다.

(... 위험하다. 이러다가 사내라면 아무에게나 가랑이를 벌리는 탕녀가 될지도 모른다.)

고현경은 흩어지려는 이성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았다.

(끝내 욕정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결해야한다. 나 자신과 사모님의 명예를 위해서...)

그녀는 이를 악물며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랫도리 깊은 곳에서 치미는 욕화는 시간이 갈수록 강렬해질 뿐이었다.

"으음... 찬물이라도 뒤집어써야겠다."

고현경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좌대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독한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다리를 움직여서 힘겹게 석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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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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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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