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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황(血皇) 등장!

 

 

(... 무슨 망상이냐? 아들 뻘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에게...!)

이검한을 대상으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던 나유라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책했다.

(너무 오래 굶었구나! 나무 오래 굶었어!)

나유라는 부끄러운 망상을 억지로 떨쳐버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의를 애써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보다 저 아이가 한 말을 믿어야만 하나? 내 몸이 흑혈맹호단의 아이들에게 더렵혀지기 전에 구했다는 말을...?)

얼마 전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는 나유라의 얼굴이 고통으로 이지러졌다.

자신이 수족처럼 여기던 흑혈맹호단의 청년들에게 유린당한 부분으로 마치 불로 지지는 듯한 전율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나유라는 흑혈맹호단의 청년들에게 몸을 더럽히기 직전에 기절한 탓에 그 후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남편 아닌 외간 사내들의 손길이 몸에 닿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나유라였다.

나유라는 아무래도 마음 속의 미심쩍은 부분을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없었다.

과연 자신의 몸은 더럽혀지기 전에 구원받은 것일까?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

입술을 깨문 나유라는 섬섬옥수로 나신을 가리며 천천히 호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검한이라고 했느냐?”

이검한은 등 뒤에서 들려온 서늘한 음성에 움찔했다.

비록 눈은 앞쪽을 보고 있지만 그의 모든 신경을 등 뒤로 쏠려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는 나유라가 목욕을 마치고 호수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나유라의 음성을 듣는 순간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교가 계십니까 마마?”

마음을 진정시키며 몸을 돌린 이검한은 공손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렇다. 네게 한 가지 확인해볼 일이 있다!”

나유라는 오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몸 위에 이검한의 적룡풍을 걸치고 있었다. 적룡풍 하나로 풍만한 나신을 감싼 그녀의 자태는 더할 수 없이 뇌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일신에는 범접키 어려운 기품과 수백만 명의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여왕으로서의 위엄이 배어 있었다.

정말 내게 아무 일도 없었느냐?”

나유라는 형형한 눈으로 이검한을 노려보며 물었다.

이검한은 그녀의 그 싸늘하고도 찌르는 듯 강렬한 눈길에 움찔했다. 그렇기는 해도 나유라의 그같은 질문은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물론입니다. 소생이 왜 거짓으로 아뢰겠습니까?”

이검한은 단호한 음성으로 잘라 말했다.

이검한의 그같은 반응에 나유라의 눈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시 한 번 이검한을 추궁했다.

너를 낳아준 어머니의 정조를 걸고 맹세할 수 있느냐?”

그녀의 말에 이검한의 안색이 일변했다.

어머니...!

이검한은 지금껏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얼굴도 모르는 처지긴 해도 생모의 정조에 걸고 거짓 맹세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난감한데...)

이검한은 당황하는 기색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느라 즉답을 못했다.

왜 대답이 없느냐? 설마 내게 숨기는 것이 있는 게냐?”

이검한의 그같은 미심쩍은 태도에 나유라는 두 눈을 의혹으로 물들인 채 재차 추궁했다.

... 그게...”

이검한은 억지로 웃으며 대답을 꾸며내려고 했다.

헌데 그 직후였다.

(살았다!)

이검한의 두 눈이 갑자기 번뜩 빛났다.

스스스!

돌연 모래가 흐르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귓전에 들려온 때문이다.

나유라도 움찔했다. 그녀 역시 누군가 녹원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일단 숨자!”

스윽!

누군가 녹원으로 접근하는 것을 알아차린 나유라는 이검한에게 전음을 보내며 급히 한쪽에 서있는 고목 위로 날아올랐다. 그 고목은 키가 크고 가지와 잎사귀가 울창하여 아래쪽에서는 나무 위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휘릭!

이검한도 즉시 나유라의 뒤를 따라 그 고목 위로 날아올라갔다.

먼저 고목 위로 올라간 나유라는 굵은 나뭇가지 위에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쪼그려 앉아서 녹원 밖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 나유라 옆으로 내려서던 이검한은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순간적으로 훅 느껴지는 그윽한 살 냄새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때문이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이검한은 이미 여체의 비밀을 모두 알아버린 상태였다. 그 때문에 여자의 살내음을 맡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의 일부가 뜨거워진다.

살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고목의 굵은 가지 위에 왼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쪼그려 앉는 바람에 나유라의 오른쪽 다리는 거의 대부분 적룡풍 밖으로 드러나 있다.

종아리는 탄력이 넘치면서도 미끈하고 뽀얀 허벅지는 한 아름은 됨직하게 풍만하다.

두근!

나유라 옆쪽의 가지 위에 쪼그려 앉으며 곁눈질을 하던 이검한의 가슴이 세차게 뛴다.

적룡풍이 갈라진 사이로 오른쪽 다리가 거의 다 드러난 탓에 나유라의 사타구니 깊은 곳도 일부 엿보였기 때문이다.

흐드러진 한 쌍의 허벅지가 아래위로 엇갈리는 중심부의 둔덕은 황금빛 방초로 덮여있다.

하지만 나유라의 신경은 온통 녹원 밖을 향해 있는 상태인지라 자신의 은밀한 부위가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검한아! 이 가엾은 여자에게 딴 마음을 품기나 하고...!)

나유라의 도발적인 자태에 자기도 모르게 매혹되었던 이검한은 이내 자책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럴 수가!)

그 직후 이검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시야로 기이한 광경이 들어온 때문이다.

쿠쿠쿠쿠!

녹원 밖의 사막에 갑자기 불룩한 두둑이 생기더니 일직선으로 녹원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두더지가 땅속으로 길을 내며 다가오는 것처럼....

이검한보다 먼저 그 현상을 발견한 나유라가 전음입밀(傳音入密)을 써서 설명해주었다.

저것은 유사마부(流砂魔府)라는 신비문파의 독문무공인 토룡사행둔(土龍砂行遁)이 펼쳐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유사마부!)

나유라의 설명을 들은 이검한은 해연히 놀랐다. 그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품 속에 있는 유사지존령(流砂至尊令)을 어루만졌다.

(혹시 유사마부는 유사신령의 후손들이 세운 문파가 아닐까?)

이검한은 녹원을 향해 달려오는 긴 두둑을 보며 염두를 굴렸다.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천 년도 전에 죽은 서역사천왕의 명맥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검한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였다.

쿠오오오!

돌연 모래가 허공으로 확 번지며 인간의 상반신이 모래 밖으로 불쑥 드러났다.

상반신을 모래 밖으로 드러낸 인물은 노인이었다. 음침하고 괴팍한 인상의 노인인데 늘 땅 속에서만 살아서인지 피부가 아주 창백했다.

노인은 양 손에 두더지 발 모양의 기형도구를 차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으로 모래를 파고 전진하는 듯했다.

오기는 제대로 찾아왔군!”

상반신을 밖으로 드러낸 노인은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시력이 약한 듯 눈을 찡그리며 햇빛을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노부가 그 빌어먹을 놈보다 먼저 온 것일까?”

노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촤아!

이어 그는 하반신마저 완전히 모래 밖으로 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흐흐... 그렇지 않다. 본좌는 늙은이 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갑자기 호수 쪽에서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 “...!”

반사적으로 돌아보던 이검한과 나유라는 동시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언제부터였을까?

호수가에 한 명의 괴인이 굵은 고목을 등진 채 우뚝 서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온통 시뻘건 피빛 천으로 휘감은...!

비단 옷의 색깔만 붉은 게 아니었다.

츠츠츠!

괴인의 몸 주위로는 핏빛의 안개같은 것이 칙칙하게 휘돌고 있었다.

나유라는 물론 이검한도 절정의 내가고수다. 그들보다 내공이 심후한 사람은 서역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혈포인이 언제 나타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서운 고수다!)

이검한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괴인을 주시했다.

츠츠츠...

혈포인의 몸에서는 핏빛의 안개 뿐 아니라 섬뜩한 마기(魔氣)가 구름같이 일어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 마기가 얼마나 강렬한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워지는 이검한과 나유라였다.

아연긴장한 두 사람은 숨을 멈추고 심장 박동도 극한까지 느리게 만들었다. 자칫 혈포인의 이목에 감지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때문이다.

혈포인보다 먼저 모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노인도 보기 드문 고수다. 단순히 내공만 따져도 노인은 이검한이나 나유라를 압도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 역시 혈포인이 흘려내는 음산한 기세에 주눅이 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놈이 자칭 혈황(血皇)이란 말종이냐?”

노인은 위축된 내심을 감추려는 듯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혈황!)

순간 이검한과 나유라는 경악으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만큼 혈황이라는 이름은 놀랍고도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신마풍운록 서열 이위(二位)!

 

혈황은 바로 저 신마풍운록에 고독마야 연남천의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유성신검황, 독천존, 유령마제, 태양신협등 사방무제(四方武帝)들보다도 앞 선 서열로 기록된 혈황은. 그러나 그의 신상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전무하다.

이름과 출신내력은 물론이고 심지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비밀에 쌓여있다.

누구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혈황이 신마풍운록의 서열이위로 기록되어 있는 것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의견이 분분했다.

혹자는 혈황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라 했고 또 혹자는 그가 알려지지 않은 비밀 세력의 주인일 것으로 추측했다.

분명 존재하지만 세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상 최강의 세력 마교(魔敎)의 당대 교주가 혈황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혈황이 신마풍운록을 작성한 장본인일 거라는 말도 떠돌았다.

별 볼일 없는 어떤 인물이 자기만족을 위해 신마풍운록을 만들면서 자신에게 혈황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서열이위로 올려놓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혈황은 신마풍운록에 이인자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그다지 없었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혈황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혈황의 이름이 의외의 장소에서 거론된 것이다

 

(저자가 정말 고독할아버지에 이어 천하제이인(天下第二人)이라는 혈황일까?)

이검한은 필사적으로 흥분을 억누르며 혈포인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대단한 고수이긴 하다. 이모보다도 강해보이는 걸 보면...)

온몸이 칙칙한 피빛 노을에 뒤덮여 있는 혈포인을 살펴보며 이검한은 새삼 긴장했다.

고독마야와 누란왕후 흑요설, 현음마모를 제외한다면 혈황이라 불린 혈포인을 능가하는 고수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흐흐흐! 허세를 부릴 거 없다 지둔노조(地遁老祖)! 기왕 일찍 도착했으니 서로의 용무나 빨리 해결하면 되지 않겠느냐?”

혈황이라 불린 혈포인이 음산한 음성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지둔노조! 역시 저 노인의 지둔노조 유마조율(維魔朝律)이었구나!”

고목 위에 숨어서 보고 있던 나유라가 다시 전음입밀로 이검한에게 말했다.

지둔노조? 마마께서 아시는 사람입니까?”

이검한도 전음입밀을 써서 되물었다.

그렇다. 저 노괴는 당금의 서역무림에서 최강자들로 꼽히는 하토삼기(蝦土三奇)중 지둔노조다!”

나유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둔노조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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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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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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