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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봉황의 살기 어린 교갈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네년도 저 암중처럼 만들어주마!"

파앗!

뜻밖에도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은 천면음마가 달아나기는커녕 철봉황을 덮쳐오는 게 아닌가?

그자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천면음마는 절묘한 역용술과 함께 빼어난 경신술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까지 어떤 강적에게도 잡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천면음마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철봉황이 노렸는지는 몰라도 천면음마는 한쪽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몸 상태라면 달아난다고 해도 멀리가지 못하고 철봉황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높다.

달아나지 못한다면 먼저 철봉황을 공격하여 쓰러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자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

대담하게 쇄도하는 천면음마를 향해 철봉황의 검이 벼락같이 그어졌다.

그녀의 이 일검은 빠르면서도 변화가 막측하여 천면음마가 막을 수도 피하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스슥!

헌데 쇄도하는 천면음마의 모습이 갑자기 네 개로 불어났다. 경신술과 보법을 이용한 속임수다.

스악!

철봉황은 흠칫 놀라면서도 그어냈던 검을 놀라운 속도로 회수한 후 비스듬히 내리쳤다.

그녀의 신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반응에 네 명으로 불어났던 천면음마의 모습 중 세 개가 갈라졌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가 철봉황의 검을 피하며 쇄도해 들어왔다.

그것이 천면음마의 실체였다.

부악!

단번에 철봉황에게 접근한 천면음마는 오른손을 비스듬이 그었다.

강철 갈고리같이 변한 그자의 손가락에 스치면 금강불괴라 해도 상처가 날 것이다.

거리가 아주 가까워 철봉황은 도저히 천면음마의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순간 철봉황의 입에서 사나운 고함이 터졌다.

!

그러자 막 철봉황의 목을 손가락으로 그으려던 천면음마는 가슴을 철퇴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휘청했다.

위기의 순간 철봉황은 소림사의 칠십이절기중 하나인 복마사자후(伏魔獅子吼)를 토해낸 것이다.

복마사자후는 일반적인 사자후와 달리 소리를 한 곳에 집중시켜 타격을 가하는 위력을 지녔다.

!”

!

복마사자후에 가슴을 강타당한 천면음마는 허공에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그자가 뿜어낸 패가 안개처럼 확 퍼진다.

!

철봉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쇄도하며 철검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어냈다.

"케엑!"

후두둑!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선혈이 확 번졌다.

퍼억! 털썩!

세 조각의 육괴가 바닥에 흩어졌다. 천면음마는 두 다리가 허벅지에서 잘린 채 나뒹군 것이다.

"...!"

헌데 철봉황의 안색도 일변하며 교구를 바르르 떨었다.

천면음마를 벤 직후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진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현기증은 이내 사라져서 철봉황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크크크! 네년은 이제 영원히 본좌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천면음마는 두 다리가 잘렸음에도 악에 바쳐 웃었다.

"헛소리는 지옥에나 가서 해라."

철봉황은 차갑게 일갈하며 검을 흔들었다.

퍼억!

케엑!”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천면음마의 두 팔도 성둥 잘려 동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제 그 자는 두 팔과 두 다리는 모두 잘려나간 처참한 모습이 된 것이다.

"간단히 죽이지는 않겠다. 지옥에 이르기 전까지 네놈이 그동안 저지른 죄과를 두고두고 참회해라."

스윽! !

철봉황은 얼음같은 표정으로 철검을 어지러이 흔들었다.

퍼퍼퍽!

"케에엑!"

끔찍한 비명과 함께 천면음마의 전신 혈도에서 분수처럼 선혈이 치솟았다.

철봉황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검기로 그 자의 전신을 난자해 버린 것이다.

끄윽...”

결국 천면음마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는 혼절해버렸다.

철봉황은 그제야 분이 풀린 듯 검을 거두며 자운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휴우! 한 발 늦었구나."

자운 비구니의 알몸을 훑어본 철봉황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남녀 관계에는 문외한인 그녀였지만 자운 비구니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심 당혹한 심정이 되었다.

(자운사매의 몸에 파과의 흔적이 없는 게 의외로구나.)

자운 비구니의 몸위에서 출혈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유린당한 건 확실한데 피가 나지 않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를 수가 없다.

(조신한 척 해왔지만 사실은 남 몰래 어떤 사내와 통정을 한 것일까? 아니다. 무공 수련 과정에서 처녀의 상징이 훼손되었을 수도 있으니 예단하지 말자.)

철봉황은 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찢어진 승복으로 자운 비구니의 알몸을 대충 감쌌다.

"어쨌거나 오늘 일로 자운사매가 다른 생각은 하지 말아야할 텐데..."

자운 비구니를 안아든 철봉황은 한숨을 쉬며 토지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쏴아아!

이내 그녀의 모습은 장대 같은 빗줄기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으으으..."

고통에 찬 신음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영이 토지묘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들어선 그 인물은 고검추였다.

고검추는 천면음마의 도룡삼첩장을 등에 맞고 순간적으로 혼절했었다.

사실 도룡곡의 비전 절기인 도룡삼첩장은 치명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다.

표적에 닿는 순간 세 번 연속 진동을 일으켜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방비하는 게 극히 어렵다.

막았다고 방심하는 순간 연이어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다.

고검추는 그 도룡삼첩장에 무방비 상태로 가격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검추는 잠시 격심한 고통을 느꼈을 뿐 별다른 상처는 입지 않았다.

고검추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태을강기가 몸을 보호해준 덕분이었다.

도룡삼첩장의 역도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아직 불완전하긴 하지만 태을강기가 즉각 반응하며 그 역도를 밀어내었다.

고검추의 몸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멀리 튕겨져 나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도룡삼첩장의 역도는 순간적으로 고검추의 내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고검추는 그 충격에 머리가 흔들려 잠시 혼절했던 것이다.

까무라쳤던 고검추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철봉황이 자운 비구니를 알고 토지묘 밖으로 날아나가고 있었다.

고검추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자운 비구니를 구해간 여인이 바로 자신이 복우산으로 찾아가던 그 철봉황임을...

고검추는 그저 그녀가 대단한 기세를 지닌 여인이라고 느꼈을 뿐이었다.

비록 정신을 차렸으나 고검추는 즉각 운신은 할 수 없었다.

도룡삼첩장에 당한 충격으로 인해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고검추는 한 동안 쏟아지는 빗속에 누워 팔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길 기다려야만 했었다.

 

"...!"

토지묘 안으로 들어서던 고검추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참혹했다!

낭자한 선혈 속에 사지가 모두 잘려나간 천면음마의 몸뚱이가 푸줏간의 고깃덩어리처럼 누워 있었다.

(... 끔찍하다. 그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솜씨인 모양이구나.)

고검추는 천면음마의 무참한 모습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헌데 그가 역겨운 피비린내를 견디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할 때였다.

"으으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천면음마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구나.)

천면음마가 살아있는 것을 알아차린 고검추는 갈등에 휩싸였다.

천면음마는 비구니조차 서슴없이 겁탈한 용서받지 못할 색마다.

그런 인간 말종에게 동정을 보일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

하지만 고검추는 이내 한숨을 쉬며 천면음마에게로 다가갔다.

상대가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악인이라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매정하게 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으으으... ... 내가 죽어 저승에 온 것이냐?"

고검추가 다가가자 천면음마는 피에 젖은 눈을 치뜬 채 올려다보며 헐떡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자신의 도룡삼첩장에 격살되었다고 믿었던 고검추가 멀쩡하게 살아 있지 않은가?

"유령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고검추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면음마 옆에 앉았다.

(틀렸다. 이런 몸으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이다.)

그는 천면음마의 난도질당한 몸을 내려다보며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팔 다리가 모두 잘린 것은 치명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저 출혈이 심할 뿐 당장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치명상은 철봉황의 검기에 온몸의 경맥이 토막 쳐진 것이었다.

철봉황은 일격에 천면음마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코 회복할 수 없는 중상을 입혀서 천면음마가 고통 속에 죽어가게 만든 것이다.

천면음마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경험을 한 후에야 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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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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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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